항목 ID | GC002016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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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時若 |
영어음역 | Kim Siya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나경준 |
[정의]
조선시대의 충신.
[개설]
조선 후기 정묘호란 때 절개를 지킨(節臣) 사람이다.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字)는 기오(箕吾)이고 청주 출신이다. 비안현감(比安縣監) 김인갑(金仁甲)의 아들이며, 진주목사(晋州牧使) 김시민(金時敏)의 종제이다.
[경력]
동부승지(同副承旨)를 역임하고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추증(追贈)되었다.
[활동사항]
서애(西崖) 유성룡(柳成龍)의 천거로 훈련원(訓練院) 첨정(僉正)을 거쳐 만호(萬戶)·첨사(僉使)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1596년(선조 29) 괴산(槐山) 선봉장으로 창의병(倡義兵)을 거느리고 각지에서 왜적을 격파하고 관찰사(觀察使)의 천거를 받아 별장(別將)에 발탁되었다. 이듬해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관군과 의병을 인솔하고 창원, 옥천에서 왜군 24명을 사살하였다.
인조반정 후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고, 이듬해 1624년 의주부윤(義州府尹)이 되었다가 다시 창성부첨절제사(昌城府僉節制使)가 되었다. 1627년(인조 5)정묘호란에 성이 함락되고 그의 두 아들 김환(金桓), 김규(金糾)와 함께 적에게 사로잡혀 굴하지 않고 죽음을 당하였다.
[의의와 평가]
1683년(숙종 9) 충신의 정문(旌門)이 세워지고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추증(追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