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4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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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順坤 |
영어음역 | Yi Sung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재학 |
성별 | 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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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증/추서 | 병조참판 훈련원도정 |
생년 | 1652년 |
몰년 | 1729년 |
본관 | 경주(慶州) |
호 | 중후(仲厚) |
아버지 | 이인형(李寅馨) |
어머니 | 순흥안씨 |
아내 | 연안김씨|고령신씨(高靈申氏) |
형 | 이재곤(李載坤) |
[정의]
조선 후기의 무신.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중후(仲厚)이고, 청주 남일면 고은치(현, 청원군 남일면 고은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호조참판으로 추증된 이인형(李寅馨)이고, 할아버지는 좌승지로 추증된 이경회(李慶會)이며, 증조할아버지는 풍천부사를 지낸 이시득(李時得)이다.
어머니는 순흥안씨로 진사 안여지(安汝止)의 딸이다. 부인으로는 김위(金煒)의 딸인 연안김씨 부인과 진사 신필한(申弼漢)의 딸인 고령신씨(高靈申氏) 부인이 있다. 형으로 이재곤(李載坤)이 있다.
이순곤(李順坤)의 집안은 증조부 이시득 이후 무과(武科)로 관리를 많이 배출한 무관 집안이다. 당색은 아버지 이인형이 청주 신항서원의 재임(齋任)으로 있으면서 송시열과 갈등을 빚은 것으로 보아 친소론 계열로 파악된다.
그의 후손들의 묘소가 북이면 일대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말년에는 청주 북강내이면(현, 청원군 북이면 일대)에 거주한 것으로 본다.
[활동사항]
1696년(숙종 22) 목민관으로서 기근을 당한 순천(順天)의 백성들을 잘 진휼하고 다스린 공으로 가자되었다. 1712년 죽산부사(竹山府使)로 재직 중 향교에서 정원 외로 모집한 교생이 너무 많아 450명을 제외시키자, 교생들이 향교의 문을 부수고 위판을 부수는 난동이 일어났다. 사건을 빨리 해결하지 못한 과오로 파직되었다.
그 뒤 경상우병사를 역임하였고, 1723년(경종 3)에 함경도 북병사로 임명되었으나 나이가 많아 곧 물러났다. 말년에 고향에서 은거하고 있었는데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 등이 난[무신란]을 일으키자 고령에도 불구하고 반란군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웠다. 1729년에 사망했다.
[상훈과 추모]
영조(英祖)가 제관을 보내 제사를 지냈고, 병조참판 훈련원 도정을 추증하였다. 묘소 입구에 1978년 후손들이 세운 신도비가 있는데 비문은 좌의정 이유원(李裕元)이 지은 것이다. 이순곤의 후손들이 호명리에 재실(齋室)을 짓고 매년 향사하고 있다.
[묘소]
충청북도 청원군 북이면 호명리에 있으며 상석, 망주석, 문관석 등이 갖추어져 있다.
[의의와 평가]
청주와 인근지역에 세거하는 경주이씨(慶州李氏) 팔별자손 풍천공파 종중의 대표적인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