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08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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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昊煥 |
영어음역 | Kim Hohwan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민식 |
[정의]
조선 후기의 효자(孝子).
[가계]
본관은 고성(固城)이며, 자는 사인(士仁), 호(號)는 용암(勇菴)이다. 부인은 파평윤씨(坡平尹氏)로 윤득규(尹得圭)의 딸이고, 남양홍씨(南陽洪氏)는 홍우섭(洪友燮)의 딸이다. 태종 때 문과에 합격하여 부수찬(副修撰)과 수원목사(水原府使), 삼도방어사(三道防禦使), 병조판서(兵曹判書), 체찰사(體察使)를 지낸 김희량(金希亮)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처음 청주에 정착한 김만경(金萬慶), 할아버지는 김용삼(金龍三)이다. 아버지는 김낙성(金樂聲), 어머니는 광주정씨(光州鄭氏)이다.
[활동사항]
임전제(任全齊)의 문하에서 경학을 닦고 부모를 섬김에 지성을 다하여 검이양지(儉而養志)하였다. 부모의 병에 작지(斫指)하고, 어머니의 병에 꿈에서 가르쳐 준 바 들기름으로 효험을 보았다 한다. 부모상에 죽으로 3년을 지내고 상(喪)이 끝나고도 슬퍼하고 근신하기를 3년이나 하여 장령(掌令) 전우(田愚)는 그 효를 말하여 ‘참으로 성효(誠孝)하며 유도(儒道)에 따랐으니 향당(鄕黨)이 본받을 만하다’고 하였다.
『가장유적기략(家狀遺蹟記略)』에 효할 것과 근검으로 본을 삼고, 국치(國恥) 이후 왜양(倭洋)을 몸에 걸치지 말고 그 물건을 집에 들이지 말라는 유계(遺戒)를 남겼다.
[상훈과 추모]
1905년 종사랑중학교관(從仕郞中學敎官)에 증직되었다.
[묘소]
충청북도 청원군 강외면 만수리 산3번지에 있으며. 강릉(江陵) 함필호(咸弼鎬)가 찬(撰)한 묘갈명(墓碣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