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0814
한자 金周鼎
영어음역 Kim Juje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고수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별
생년 미상
몰년 1290년연표보기
본관 광산

[정의]

고려 후기의 문신.

[상훈과 추모]

본관은 광산이다.

[활동사항]

음서(蔭敍)로 부성위(富城尉)가 되었다. 1264년(원종 5) 과거에 합격하였으며, 그 뒤 해양부녹사(海陽府錄事)에 임명되고, 1275년(충렬왕 1) 대부경 좌사의대부(大府卿左司議大夫)에 임명되었다. 1278년 충렬왕(忠烈王)이 원나라에 갈 때 우부승지로서 수행하여 다루가치(達魯花赤)와 둔전군의 뒷받침이 번거로워 백성들의 고통이 심한 것과, 또한 김방경(金方慶)이 무고를 입어 유배된 사실 등을 원나라에 밝힌 공으로 귀국하여 좌부승지로 임명되었다.

또한 그 해에 재추회의(宰樞會議)에서 따로 필도치(몽고어로 서기라는 뜻)를 두어 중요한 국사를 담당하게 하도록 건의하였으며, 또 내료(內僚)의 계사(啓事: 궁중의 관리가 임금에게 정사를 알리는 일)를 금지하고 신문색(申聞色)이 대신하도록 주장하였다. 이것이 관철되어 필도치와 신문색에 뽑힌 사람들이 궁중에 모여 중대사를 결정하니 이를 당시 사람들은 ‘별청재추(別廳宰樞)’라 불렀다.

1280년에는 소용대장군 좌우부도통(昭勇大將軍左右副都統)이 되었고, 다음해에 주사(舟師)로서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대명포(大明浦)에 이르렀으나, 태풍을 만나 병선이 전복되어 많은 군사들이 익사하게 되었는데 이때 많은 사람을 구출하였다고 한다. 1284년 진변만호(鎭邊萬戶)가 되면서 남도의 해변을 순력하였다.

1287년에 군신이 모여 연회를 할 때 무례한 행동을 하여 청주목사로 좌천되었으나, 목사 시절 송사를 공평히 한 치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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