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0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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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秀彦 |
영어음역 | Yi Su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석린 |
[정의]
조선후기의 문신, 학자.
[가계]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미숙(美淑), 호는 농계(聾溪)·취몽헌(醉夢軒)이다. 관찰사 이동직(李東稷)의 아들이며, 이색(李穡)[1328~1396]의 후손이다.
[활동사항]
1660년(현종 1)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669년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예문관의 벼슬을 거쳐 정언·지평을 역임하고 1681년(숙종 7)응교를 거쳐 경상도관찰사로 특진된 뒤 승지·대사간·대사헌 등을 지냈다. 1689년 기사환국 때 초산(楚山)에 유배되었다가 1694년 갑술옥사로 풀려나와 형조판서에 올랐다.
이어 대사헌으로 오도일(吳道一)을 탄핵하다가 전라도관찰사로 좌천되었다. 그 뒤 다시 내직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인 청주에 내려갔다. 그 뒤 예조판서를 비롯하여 판윤·참찬·지중추부사 등의 벼슬로 조정에서 여러 번 불렀으나 뜻을 굽히지 않고 끝내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시호는 정간이다.
[학문과 사상]
송시열(宋時烈)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묘소]
충청북도 청원군 쌍이리 산37-13번지에 위치해 있다.
[제향]
충청북도 청주의 국계사(菊溪祠)에 제향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