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1093 |
---|---|
한자 | 周道復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선명 |
[정의]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초계(草溪). 한림(翰林) 주세붕(周世鵬)의 후손이며, 사마소(司馬所)를 창건한 주여서(周汝瑹)의 7세 손이다.
[활동 사항]
주도복(周道復)[?~?]의 집안은 대대로 충효를 이어온 집안이다. 천성이 예의범절을 중시하였으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가 병이 들어 여러 해를 병석에 있자 허리띠를 풀지 않은 채 밤낮으로 간호하였다. 몸소 약 시중을 들고 대소변을 맛봐 병세를 살폈다. 또한 단(壇)을 쌓아 하늘에 빌며 자신이 아버지의 병을 대신 앓게 해 달라고 빌었다.
아버지가 죽자 피눈물을 흘리며 몹시 슬퍼하여 몸이 앙상하게 야위었다. 시묘살이를 할 때는 호랑이가 앞길을 인도하였고 까치가 움막을 함께 지켜 주었다. 세수와 빗질을 하지 않았고 삼 년 동안 상복이 세 벌이나 닳아서 떨어졌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 자리를 가리켜 ‘효자 여막터’라고 하였다.
주도복이 죽은 뒤 오랫동안 효성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읍지(邑誌)에 실렸으나 정려 표창을 받지 못하다가, 후에 사복시 정(司僕寺 正)에 추증되었다.
고손자인 주조응(周祚應)도 역시 효행이 깊었다.
[상훈과 추모]
사복시(司僕寺) 정(正)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