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70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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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裵祥權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형수 |
출생 시기/일시 | 1915년 6월 28일 - 배상권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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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38년 10월 - 배상권 한인 유학생회 조직 |
몰년 시기/일시 | 1942년 6월 17일 - 배상권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3년 - 배상권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배상권 출생지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진해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배상권(裵祥權)[1915~1942]은 1931년 일본으로 건너가 고베[神戶]에 정착하였다. 연구소 급사, 백화점 취사부, 우체국 집배원, 세탁소 직원, 신문 배달원 등의 일을 하면서 즙합 상공 실수학교(葺合商工實修學校)에서 공부하다가 사립 학교 북신 상업학교(北神商業學校)에서 수학하였다. 1938년 하순 같은 학교에 유학 중이던 최창현(崔昌鉉), 조정규(趙正奎) 등을 만나 독립운동을 계획하였다. 민족의식이 투철하였던 배상권은 한인 유학생들에게 “중일 전쟁이 장기화되어 일본이 경제적으로 파탄하여 패전할 기회를 틈타 한민족의 봉기를 솔선 지도할” ‘한인 유학생회(韓人留學生會)’를 조직할 것을 제안하였다.
1931년 10월 초 배상권은 고베[神戶]에 거주하고 있던 친형 배원상(裵元相)의 집에서 친목 다과회(親睦茶菓會) 명목으로 동지인 최창현, 문규영(文奎泳) 등을 비롯하여 북신 상업학교 유학생 박영석(朴永碩), 이종만(李鍾晩) 등 14명이 모여 독립 운동을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길 ‘한인 유학생회’를 결성하였다.
1939년 2월까지 배상권, 최창현, 배원상, 조정규, 문규영, 박영석, 황도열(黃道烈), 유태열(柳泰烈), 김낙곤(金洛坤) 등은 수차례의 모임을 가졌다. 그를 비롯하여 한인 유학생들은 “한민족의 참된 행복은 민족 단결을 굳게 하여 한국 기독교의 지도 및 해외 독립 운동 단체와의 연계 하에 일본 패전의 기회를 포착, 일제히 봉기하여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연설을 하면서 민족 해방의 결의를 다졌다. 배상권은 1940년 3월에 동지 8명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고 말았다. 1940년 12월 16일 고베 지방 재판소[神戶地方裁判所]에서 소위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42년 6월 16일 가혹한 고문과 옥고의 여독으로 빈사 상태가 되어 석방된 다음날 27세로 요절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