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7049 |
---|---|
한자 | 崔東洛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형수 |
[정의]
일제 강점기 창원시 진해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최동락(崔東洛)[1892~1963]은 1919년 3월 21일 경상남도 마산(馬山)에서 기독교 인사들과 창신(昌信)·의신(義信) 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서울에서의 만세 운동에 참가하고 마산으로 내려온 이갑성(李甲成)은 창신 학교 교사 임학찬을 만나 서울의 만세 운동 상황을 전하고 의신 학교 교사 박순천과 세브란스 의학 전문학교 학생 배동석에게 독립 선언서를 전달하였다. 한편 서울의 만세 운동에 참가하고 마산에 내려온 대동 청년단 김관재는 이형재를 만나 독립 선언서를 전달하고 거사 계획을 밝혔다. 이들은 동지들과 협의하여 3월 21일 구마산(舊馬山)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최동락은 명도석, 최용규, 신택식 등과 함께 창신·의신 학교 학생대표에게 연락하여 거사 일을 알렸다.
3월 21일, 3,000여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대를 이끌었다. 계속되는 대규모 시위에 일본 경찰은 마산 주둔 헌병 포병 대대에 병력을 지원 요청하여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하였다. 최동락은 이날 시위에서 체포되어 1919년 5월 15일 부산 지방 법원 마산 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2002년에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