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6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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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隅里 遺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석우리 산1-17 |
시대 | 선사/청동기,조선/조선 |
집필자 | 이기성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5년 3월 28일~2005년 10월 23일 - 석우리 유적 발굴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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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석우리 유적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석우리 산1-17 |
성격 | 마을 유적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석우리에 있던 청동기 시대 마을 유적.
[개설]
석우리 유적(石隅里 遺蹟)은 부여군 규암 우회 도로 및 서천-서천IC 도로 건설 공사에 따른 발굴 조사에서 확인된 청동기 시대 유적이다. 충남문화재연구원에서 2005년 3월 28일부터 10월 23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석우리 유적 외에 나복리 유적, 원문리 164-12 유적 등 총 3개의 유적이 확인되었다.
[위치]
석우리 유적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석우리 산1-17번지에 있다. 높이 52m의 독립 구릉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은 분지 구릉의 중위부에 있다.
[형태]
석우리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주거지 6기, 수혈유구 8기, 독무덤 1기와 조선 시대 이후의 무덤 총 45기 등이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주거지는 6기 모두 송국리형 주거지로, 평면 형태상 방형계와 원형계가 함께 확인되었다. 수혈유구는 대부분 부정형한 타원형의 유구로 성격을 자세히 알 수 없는 것들이며, 저장구덩이로 볼 수 있는 플라스크형 수혈은 1기에 불과하다. 주거지 내부에서는 민무늬토기와 유경식 간돌칼, 유경식 간돌화살촉, 지석, 돌칼편 등이 출토되었으며 수혈유구에서는 외반구연 톱니입술토기편, 무경식 간돌화살편, 세모돌칼편, 자귀날도끼, 부정형 석재 등이 출토되었다. 독무덤은 1호 주거지로부터 동쪽으로 약 5m 지점에 있는데, 외반구연 민무늬토기 1개체가 직치(直置)되어 있는 형태이다. 주거지의 형태 등으로 보아 청동기 시대 중기에 속하는 유적임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 이후 무덤은 대부분이 목관 또는 직장이며 회곽묘가 소수 존재한다. 유물이 부장된 예가 적어 개별 무덤의 조성 연대를 자세히 알기는 어렵지만, 유물이 부장된 사례는 모두 조선 시대의 것이다. 석우리 유적은 주거지를 비롯한 청동기 시대 유구들은 조사 범위 북쪽인 구릉 능선부에 국한하여 분포하며 조선 시대 이후의 무덤들은 조사 범위 전반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현황]
석우리 유적은 발굴 조사 후 도로 공사로 인하여 멸실되었다.
[의의와 평가]
석우리 유적은 인근에서 발굴된 나복리 유적과 함께 부여 지역의 청동기 시대 취락 양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