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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서계양리에 전해지고 있는 걸치기마을의 개 무덤에 관한 설화. 「걸치기의 개무덤」은 예산군 신양면 서계양리의 자연마을인 걸치기마을에 전해지고 있는 개 무덤에 관한 지형지물 유래담이다. 지관인 김만석의 아내가 죽어 저승에 갔다가 아직 죽을 때가 안 되었다 하여 아들 집에 개로 다시 태어났다. 아들은 말썽만 부리던 개를 처음에 잡아먹겠다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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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일대에 전해지는 무덤의 흙을 다지며 부르는 노래. 「달구소리」는 산소를 지을 때 광(壙)을 파고 널을 넣은 다음, 널 속으로 물이 들지 않도록 널 위의 흙을 다지며 부르는 노래이다. 장례 절차에 따른 의식요이지만, 여럿이 산소를 만들어 가는 노래이기 때문에 노동요의 성격을 지닌다. 소리꾼이 선창하여 메기면 흙을 다지는 달구질꾼들이 후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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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지형이 가지처럼 생겼다고 하여 ‘가지’ 또는 ‘고래때것소’[거질물소(巨叱勿所)]라고 불렀다. 거변소(巨邊所)가 있었으므로 ‘거변’이라 하였다가 다시 가지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 거변면(居邊面)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자은동(自隱洞), 덕동(德洞)과 청양군 북하면의 하두리(下斗里) 일부를 병합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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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가지리에서 해마다 정월 열나흗날에 지내는 마을 제사. 신양면 가지리에서는 해마다 정월 열나흗날이면 산제당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당산제를 주관하는 제관과 축관은 길일인 생기복덕일을 따져 마땅한 사람으로 선정하며 제사 비용은 마을 기금으로 충당한다. 현재 신양면 가지리 주민들이 언제부터 산신제를 지냈는지를 명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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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에 있는 대한불교선학원 소속의 사찰. 구련사는 대한불교선학원에 구련선원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예산군 대흥면에 있던 대련사 뒤쪽의 ‘구련사’라는 암자에서 유래되었다. 1916년 구련사가 화재로 불타 없어지자 승려 정영법이 남아 있는 사찰의 일부를 현재의 신양면 차동리 억백산으로 옮겨 왔다. 그 후 1948년 부임한 승려 조혜안이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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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기점에서 충청남도 예산군을 거쳐 대전광역시 중구 용두동에 이르는 일반국도. 국도32호선은 태안~대전선이라고도 한다.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을 기점으로 서산, 당진, 예산, 공주 등 충청남도 내륙 중심부를 대각선 방향으로 관통하고 대전광역시 중심부를 거쳐 중구 용두동까지 뻗어 있는 도로이다. 국도32호선은 충청남도 서북단 및 중부 내륙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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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원동면(遠東面) 지역일 때 귀곡(貴谷) 또는 귓골이라 부른 데서 귀곡리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 원동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기곡리(基谷里), 업목리(業木里), 가좌동(可坐洞), 시목동(枾木洞), 외촌(外村), 신기리(新基里)와 예산군 술곡면(述谷面)의 수조리(水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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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에서 매년 정월대보름에 마을의 평안과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선돌로 상징되는 거리 신에게 지내던 마을 제사. 귀곡리 노신제는 매해 정월대보름에 귀곡리 마을 입구의 길가에 있는 ‘노제돌’이라 부르는 선돌에서 지내던 제의로, 산짐승과 잡귀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마을의 평안과 주민들의 안전을 기원하였다. 노신제의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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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 엄나무골에 있는 노신제를 지내던 돌.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 에서는 30년 전까지 엄나무골과 가자울마을이 정월보름에 함께 노신제를 지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 옆에는 노신제를 지내던 돌 한 기가 여전히 남아 있는데 이 돌을 노제돌이라고 한다. 노제돌 근방에서 옛날에 활쏘기를 하였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노제돌이 있는 지역을 활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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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에서 매해 음력 정월에 마을의 평안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며 산신령에게 올리던 마을 제사. 귀곡리 산신제는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 밀무리 마을에서는 매해 정월에 길일을 택일하여 바위 아래의 자연 제당에서 마을의 평안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던 산신제이다. 귀곡리 산신제의 유래에 대해서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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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에서 지냈던 마을 제의. 귀곡리 서낭제는 신양면 귀곡리 마을 사람 중 ‘습실댁’이라고 불리던 무당이 주도하여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며 음력으로 정월에 지냈던 마을 제의이다. 일반적인 서낭제가 동제 형태를 띤 마을 공동체 의식이었던 반면에, 귀곡리 서낭제는 무당이라는 한 개인이 주도하고, 참여하기를 바라는 마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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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연리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인·학자. 김려(金鑢)[1766~1821]는 노론계의 비중 있는 명문 출신이었지만 당쟁의 화를 입어 생애를 대부분 유배지에서 보냈고 유배지에서 농어민과 친밀하게 지내며 많은 시문과 저서를 남겼다. 김려의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는 사정(士精), 호는 담정(藫庭)이다. 할아버지는 김희(金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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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죽천리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김이교(金履喬)[1764~1832]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789년(정조 13)부터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1810년(순조 10)부터 일본통사로 활동하였으며, 1811년부터 조선의 마지막 통신사로 대마도에 가서 임금의 국서를 전달하는 일을 수행하였다. 이후 우의정에 이르렀으며, 1836년(헌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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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불원리에 있는 영농조합이자 마을기업. 꼼지락예산적정기술협동조합은 소농을 위한 적정기술 농기구 연구와 제작, 보급과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협동조합이다. 농기구를 생산하는 협동조합으로 국내 1호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협동조합이다. 꼼지락예산적정기술협동조합은 귀농인들이 겪게 되는 농기구에 집중하였다. 자급자족형 소농인 귀농인들에게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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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원동면(遠東面) 지역일 때 지형이 ‘노루의 목’처럼 생겼으므로 노루목 또는 장항이라 불렀다가, 녹문(鹿門)이라 변한 데서 녹문리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 원동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송암리(松岩里), 박산리(朴山里), 신양리(新陽里)를 병합하고, 녹문리라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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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를 기점으로 충청남도 예산군을 거쳐 경상북도 영덕군을 종점으로 하는 고속도로. 당진영덕고속도로(唐津盈德高速道路)[고속국도30호선]는 2016년 완전히 개통되었으며, 당진시를 기점으로 하여 예산군을 거쳐 영덕군을 종점으로 하는 고속도로이다. 당진영덕고속도로 중 예산군을 지나는 당진대전고속도로 구간은 당진시 사기소동에서 대전광역시를 1시간으로 연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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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거변면(居邊面) 지역일 때 대덕동(大德洞) 또는 대덕(大德)이라 부른 데서 대덕리(大德里)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 거변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덕리(新德里), 동죽리(東竹里), 토동(土洞), 화현리(花峴里), 강변리(江邊里)를 병합하여 대덕리(大德里)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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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거변면(居邊面) 지역일 때 만사동(晩士洞) 또는 만사(晩士)라 부른 데서 만사리(晩士里)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애는 대흥군 거변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용복리(龍伏里), 주올리(注兀里), 동촌(東村)을 병합하고, 만사리라 하여 예산군 신양면에 편입되었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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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원동면(遠東面) 지역일 때 무봉(舞鳳) 또는 무봉골이라 부른 데서 무봉리가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 원동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내곡리(內谷里), 성곡리(城谷里)와 근동면의 석천리(石川里)를 병합하고, 무봉리라 하여 예산군 신양면에 편입되었다. 무봉리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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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황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박도한의 정려. 박도한 정려는 박도한(朴道漢)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동부승지 송병학(宋秉學)[1853~1928]이 조정에 보고하여 1892년(고종 29) 5월 6일에 세운 정려이다. 예산군 신양면 소재지에서 지방도616호선을 따라 서쪽으로 4㎞ 가면 예산군 노인요양원이 나온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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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원동면(遠東面) 지역일 때 불원(不元)이라 부른 데서 불원리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 원동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대리(新垈里), 하원리(下元里)와 공주군(公州郡) 신상면(新上面)의 시왕리(時旺里)를 병합하고, 불원리라 하여 예산군 신양면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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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서계양리(西界陽里)라 부른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원동면(遠東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리(新里), 격양리(擊壤里), 신흥리(新興里), 성주리(聖住里), 군약리를 병합하고, 서계양리라 하여 예산군 신양면에 편입되었다. 북서부, 중부 및 남서부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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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성흔의 묘. 1613년(광해군 5) 일어난 계축옥사로 인해 정국이 혼란스럽자 성흔(成炘)[1555~1626]은 벼슬을 버리고 양주로 낙향하였다. 이후 증조할아버지 성희옹의 처가인 대흥군 원동면 가좌울[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로 낙향하였다. 귀곡리에 정착한 성흔은 ‘모든 재앙을 추방하고 덕을 심는다.’라는 뜻으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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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사당이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성희옹(成希雍)[1464~1523]은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형 성희안(成希顔)과 더불어 정국공신에 봉해졌다. 성희옹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당옹(戇翁), 호는 의재(義齋)이다. 할아버지는 사온서직장 성효연(成孝淵)이고, 아버지는 동녕부참판 성찬(成瓚)이며, 어머니는 덕천군(德泉君) 이후생(李厚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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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 중종반정에 참여한 성희옹의 사당. 성희옹사(成希雍祠)는 조선시대 문신 성희옹(成希雍)[1464~1526]을 모신 사당이다. 성희옹은 중종반정에 참여해 정국공신 3등에 봉해졌다. 원래 김포 고촌면 개화산에 부조묘와 묘소가 있었지만 성희옹의 처가가 귀곡리인 인연으로 1943년 후손들에 의해 귀곡리로 옮겨졌으며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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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손응시의 신도비. 손응시 신도비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손응시(孫應時)[1540~?]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988년 후손들이 세웠다. 손응시는 조선시대 인물로 예산과 관련이 없지만 후손들이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로 이주하면서 묘를 이장하고 신도비를 세웠다. 손응시는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경전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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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원동면(遠東面) 지역일 때 시왕(時旺), 시왕이, 또는 삼왕(三王)이라 부른 데서 시왕리 지명이 유래되었다. 본래 대흥군 원동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불운리(上不雲里)와 하불운리(下不雲里)를 병합하고, 시왕리라 하여 예산군 신양면에 편입되었다. 전 지역에 해발고도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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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시왕리에 있는 수령이 270년 정도 된 느티나무. 예산군 신양면 시왕리에 있는 느티나무 고목으로, 마을의 동구(洞口)[둥구]에서 마을을 수호하는 둥구나무[동수(洞樹)]이며, 정자나무[정자목(亭子木)] 역할도 하고 있다. 나무에 잎이 잘 피면, 풍년이 든다는 민속을 내포하고 있다. 시왕리 둥구나무는 느티나무 2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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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 대덕리, 만사리에 결쳐 있는 당진영덕고속도로의 나들목. 당진영덕고속도로[고속국도30호선]에 속한 대전당진고속도로 구간 중 예산군 일대에 개설된 3개 나들목[고덕나들목, 신양나들목, 예산수덕사나들목] 중의 하나이며, 당진영덕고속도로 기준으로는 5번 교차로이다. 신양나들목을 통해서 예산군의 신양면, 광시면, 대술면, 대흥면, 공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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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거변면(居邊面) 지역일 때 신양원(新陽院)이 있으므로 신양원, 신양(新陽), 원(院)터라 부른 데서 신양리(新陽里)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 거변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공장동(公長洞), 견산리(見山里), 평촌(坪村), 신리(新里)와 공주군 신상면(新上面)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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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절터. 신양리 절터는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 오리울마을에 있는 절터이다. 조선 후기에 지어진 암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양면 신양중학교를 지나 동쪽으로 난 신양3길을 따라 500m 정도 들어가면 신양리 오리울마을이 나온다. 오리울마을 남쪽에 있는 야산 북향사면 하단부에 절터가 있다. 오리울마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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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에 속한 법정면. 예산군의 남동부에 있는 면으로, 예산군 2읍 10면 중 하나이다. 북쪽은 대술면, 서쪽은 대흥면, 남쪽은 광시면과 청양군 운곡면, 동쪽은 공주시 유구읍과 접하고 있다. 예로부터 전해내려오는 경관이 아름다운 여덟 곳인 ‘신양팔경(新陽八景)’ 이 있다. 조선시대에 신양원(新陽院)이 있었던 데서 신양리 지명이 유래되었고, 면소재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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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있는 신양면의 행정 사무를 맡아 보는 기관. 신양면행정복지센터는 예산군청에 속하여 있는 행정기관이다. 신양면민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가족관계 등록·주민등록 업무, 민원서류 발급, 리·반 조직 운영 등 지방행정의 기초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예산군 신양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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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있는 사립중학교. 교육 목표는 ‘나누고 배려하여 삶이 따뜻한 사람[자주인], 끼를 기르며 감성을 발산하는 지혜로운 사람[창의인], 최고보다 최선을 다하는 노력하는 사람[건강인], 미래를 꿈꾸며 희망을 기르는 사람[세계인]’이다. 교훈은 ‘진실, 거짓이 없이 바르고 참됨’이다. 1956년 2월 8일 수덕중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아 1956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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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청양군 운곡면에서 발원하여 예산군 신양면과 대흥면 일대를 흘러 예당저수지로 흘러드는 지방하천. 신양천(新陽川)은 청양군 운곡면에서 발원하여, 예산군 신양면과 대흥면 일대를 흘러 대흥면 송지리에서 예당저수지로 흘러든다. 신양천은 청양군 운곡면에서 예산군 신양면 쪽으로 남서-북동 방향으로 흐르다가 신양면 신양리 일대에서 예당저수지 쪽으로 북서-남동 방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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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경험과 생각을 다양하게 표현하며, 마음과 행동이 예쁜 매력 있는 학생[매력인], 학습과 생활에서 문제 해결의 기초 능력을 길러 새로운 생각을 펼치는 학생[창의인], 풍부한 학습 경험으로 건강한 몸과 마음을 길러 스스로 꿈을 키우는 학생[건강인], 우리 문화·예술을 이해하고, 세계 문화를 올바른 태도로 즐기는 학생[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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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에서 경관이 아름다운 여덟 곳. 신양팔경(新陽八景)은 예로부터 전해내려 오는 예산군 신양면(新陽面) 일대의 여덟 가지 아름다운 경치를 의미한다. 신양팔경의 소재지인 신양면은 예산군의 2읍 10면 중의 하나로 예산군 남동부에 있다. 신양팔경의 구체적 내역은 다음과 같다. 제1경 응봉초적(應峯草笛)은 매봉에서 들려오는 초동의 피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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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잠을 시조로 하고 조충수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의 세거 성씨.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따르면 양주조씨(楊州趙氏) 시조는 조잠(趙岑)[?~?]으로, 고려 때 양주의 호장이었으며 판중추원사에 증직된 인물이다. 양주조씨는 조선 초 조잠의 증손자 대부터 평공파(靖平公派)·문강공파(文剛公派)·제학공파(提學公派)·강화공파(江華公派)로 분파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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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거변면(居邊面) 지역일 때 여래미(如來味)라 부른 데서 여래미리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 거변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우정리(牛井里), 도덕동(道德洞), 천구동(千具洞), 고티동(古峙洞)을 병합하고, 여래미리라 하여 예산군 신양면에 편입되었다. 대부분의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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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여래미리에 있는 절터. 여래미리 절터는 예산군 신양면 여래미리에 있는 절터로, 안곡 절터라고도 불린다. 정확한 연대는 확인하기 어렵다. 주민들의 전언과 지형을 살펴보면 600여 평[약 1,980㎡]의 대지에 2단에 걸쳐 조성된 비교적 큰 사찰로 추측할 수 있다. 2001년 발간된 『문화유적분포지도』 예산군 편에서는 조선시대 절터로 추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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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원동면(遠東面) 지역일 때 연화무실, 연화무시리, 또는 연동(蓮洞)이라 부른 데서 연리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 원동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공주군(公州郡) 신상면(新上面)의 율계리(栗溪里), 두지동(斗支洞), 박운동(朴云洞)을 병합하고, 연리라 하여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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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응봉면, 신양면, 광시면 일대에 걸쳐 있는 1종 저수지. 예당저수지는 예산군과 당진시를 중심으로 발달되어 있는 예당평야(禮唐平野)를 관개하는 저수지이며, 무한천의 유수가 주로 유입되고 있다.무한천이 광시면을 지나 예당저수지에 합류하며, 대술면의 송석저수지, 방산저수지에서 흐르는 물이 신양면을 거쳐 연천(連川)이 되어 합류하고 있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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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서계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예산 일산이수정은 1849년[헌종 15] 신양면에 세거하고 있는 전주이씨 집안의 이철수(李喆洙)[1824~1896]가 강학을 위해 세운 정자이다. 정자의 이름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지었으며 2002년 8월 10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82호로 지정되었다. 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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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에 있는 귀농인 모임. 초보 귀농인의 상호 정보를 공유하는 한편, 지역사회에 잘 적응한 모범 귀농 사례로 활용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예산흙사랑귀농인모임은 1998년 4월 초에 예산군농업기술센터에서 귀농인 교육을 받는 8가구가 합심하여 모임을 결성하였다. 2010년 예산군 마을기업으로 선정되었다. 예산흙사랑귀농인모임 공동으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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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대흥군수 오철상의 선정비. 오철상 선정비는 순조 때 대흥군수를 지낸 오철상(吳澈常)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선정비이다. 『순조실록』에는 오철상이 대흥군수를 역임하는 동안 대동미를 제대로 납입하지 못하여 취조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후 이천부사 역임 당시 흉년이 들자 관곡을 나누어 주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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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무봉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암자. 1991년에 편찬된 『예산의 맥』에서 용바위에 있었던 용암사가 사진과 함께 나와 있다. 용암사는 신양천이 예당저수지로 들어가는 입구의 무봉교에서 800m 정도 상류 쪽의 절벽 뒤편[신양면 서계양리 ‘용바위’]에 있었으며, ‘벼락절’이라고도 불렀다. 2005년에 당진영덕고속도로 공사 때문에 현재 위치로 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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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효자 이흥갑의 효자비. 이흥갑 효자비는 조선 정조 때 이흥갑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에 세워진 비석이다. 이흥갑(李興甲)은 본명이 이광의(李光義)이고, 자는 규원(珪原)이다. 이승재(李承在)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천하의 효자라고 이름이 알려졌다. 이흥갑은 고기를 사 오면 부모에게만 먹여 봉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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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정학수의 정려. 정학수 정려는 정학수(鄭鶴秀)[1802~1872]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870년(고종 7) 세워진 정려이다. 정학수의 본관은 온양, 자는 춘백(春伯)이고, 아버지는 정동조(鄭東祚), 어머니는 김녕김씨이다. 효성이 지극하였던 정학수는 아버지가 병이 나자 손가락을 깨물어 입에 피를 넣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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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복양(趙復陽)[1609~1671]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대제학·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조복양의 본관은 풍양(豐壤)이며 자는 중초(仲初), 호는 송곡(松谷),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의빈부도사 조간(趙侃), 할아버지는 지중추부사 조영중(趙瑩中)이다. 아버지는 좌의정 조익(趙翼)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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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영중의 묘. 조영중 묘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포저(浦渚) 조익(趙翼)[1579~1655]의 아버지 조영중(趙瑩中)[1558~1646]의 묘이다. 조영중의 본관은 풍양, 자는 군수이다. 아버지는 의빈부도사 조간(趙侃)이고, 어머니는 의령남씨이다. 어려서부터 글을 읽으며 과거 공부를 하였으나 끝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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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문신. 조익(趙翼)[1579~1655]은 임진왜란 중 음보로 군량미를 운송한 공을 세우고 1602(선조 35)년 별시문과로 관직에 진출하여 한성부우윤, 개성부유수, 이조참판, 공조판서 등을 거쳐 좌의정과 우의정을 역임하였다. 1655년에 졸하였고,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조익의 본관은 풍양(豐壤)이며,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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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조익을 모신 사당. 조익 사당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포저 조익(趙翼)[1579~1655]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조익선생묘[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84호] 아래에 조익 사당이 조성되어 있으며 최근에는 도산서원(道山書院)이라는 이름으로 성역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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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인 조익의 신도비. 조익 신도비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인 포저(浦渚) 조익(趙翼)[1579~1655]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867년(고종 4) 조익의 후손들이 신도비를 세웠다. 조익 신도비는 송시열(宋時烈)[1607~1689]이 찬한 비문을 새겨 1867년 조익의 후손들이 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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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조익의 묘. 조익 선생 묘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유학자 포저(浦渚) 조익(趙翼)[1579~1655]과 부인 성주현씨의 묘역이다.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있으며 아버지인 조영중(趙瑩中)[1558~1646] 묘 위쪽에 있다. 조익 선생 묘는 1987년 12월 30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84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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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익의 무덤에서 나온 묘지 16점. 묘지(墓誌)는 죽은 사람의 가계, 행적 등을 기록한 글이며, 사기 판이나 돌에 새겨 무덤 옆에 묻거나 관이나 호(壺)에 직접 새기기도 한다. 조익의 무덤을 보수하면서 나온 묘지는16점이다. 조익 선생 일괄 유물은 1994년 11월 4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31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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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문신. 조정(趙挺)[1551~1628]은 임진왜란 때 세자를 호종(扈從)한 공으로 벼슬이 우의정에 이르렀으나 인조반정 후 대간의 탄핵을 받아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 아버지인 조충수(趙忠秀)가 말년에 대흥 지역[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은거하면서 예산과 인연을 맺었다. 조정의 본관은 양주(楊州)이며 자는 여호(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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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조충수의 묘.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조충수와 부인 남원양씨의 묘 2기가 조성되어 있다. 조충수는 본관이 양주(楊州)이며 초명이 조윤충(趙尹忠)이다. 아버지 조방보(趙邦俌)는 사직서령으로 이조판서에 증직되었다. 어머니 파평윤씨는 찰방 윤세걸(尹世傑)의 딸이다. 1546년[명종 1]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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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죽리(竹里)와 송천(松川)의 이름을 따서 죽천리(竹川里)라 부른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大興郡) 거변면(居邊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개월리(開月里), 성민동(聖民洞), 죽리, 송천리(松川里), 용왕리(龍旺里)를 병합하고, 죽천리라 하여 예산군 신양면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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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에 있는 진주강씨와 양주조씨의 열행을 기리는 조선 후기의 비. 진주강씨·양주조씨 열녀비는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에 있으며, 성국진(成國鎭)의 처 양주조씨(楊州趙氏)와 성응기(成膺基)의 처 진주강씨(晉州姜氏)의 열행을 기리고자 1811년[순조 11] 세운 열녀비 2기이다. 양주조씨는 성국진의 세 번째 아내로, 남편에게 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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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서계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차경징과 차명징의 정려. 차경징·차명징 정려는 차경징과 차명징 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이다. 원래 예산군 신양면 가지리 거변마을에 있던 것을 후손들이 서계양리 두련리마을로 옮겨 왔다. 예산군 신양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지방도616호선을 따라 1㎞ 정도 가서 북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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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와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녹천리를 연결하는 고개.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와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녹천리 경계에 있는 고개이다. 예로부터 예산과 공주를 연결하는 주요한 고개였고, 차령산지(車嶺山地) 이서의 내륙지역에서 차령산지 이동의 해안지역[내포지역(內浦地域)]으로 통하는 요충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공주[유구]의 면화(棉花)와 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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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거변면(居邊面) 지역일 때 ‘국사봉 너머’가 되므로 수레네미 또는 차동(車洞)이라 부른 데서 차동리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 거변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송정리(松亭里)와 불목동(不目洞)을 병합하고, 차동리라 하여 예산군 신양면에 편입되었다. 대부분의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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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보를 시조로 하고 성흔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의 세거 성씨. 창녕성씨(昌寧成氏)의 시조는 고려 때 호장중윤을 역임했던 성인보(成仁輔)이다. 호장부정을 지낸 성숙창(成淑昌)의 아들이다. 당나라의 학사 성경(成鏡)이 우리나라에 건너와서 정착하였는데, 성경의 후손이 번성하여 창녕을 관향으로 삼았다고 한다. 창녕성씨는 고려 때 성공필(成公弼)과 성한필(成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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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최필현과 최순홍의 정려. 최필현·최순홍 정려는 최필현(崔弼賢)[1712~1775]과 최순홍(崔舜紅)[1737~1799]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875년(고종 12)에 세워진 정려이다. 최필현은 경주최씨로 자는 정포(正浦)이고 숙종 때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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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문신인 조익과 아들 조복양의 문집 판목. 포저유서 및 송곡문집 판각(浦渚遺書-松谷文集板刻)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포저(浦渚) 조익(趙翼)[1579~1655]과 셋째 아들 송곡(松谷) 조복양(趙復陽)[1609~1671]의 시문집을 새긴 목판으로, 모두 633매이다. 조익의 호는 포저,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윤근수(尹根壽)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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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거변면(居邊面) 지역일 때 ‘샘골 아래쪽’이 되므로 아래샘골, 아래새양골 또는 하천동(下泉洞)이라 부른 데서 하천리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 거변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천동과 공주군(公州郡) 신상면(新上面)의 하천리를 병합하고, 하천리라 하여 예산군 신양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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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황계리 태봉골에 있는 조선의 제18대 왕 현종의 태를 묻은 곳. 현종 태실 터는 조선 제18대 왕인 현종의 태실을 묻은 곳으로 1681년(숙종 7) 조성되었다. 예산군 신양면 황계리 태봉골에 있다. 현재는 태실 터만 남아 있으나 1872년 제작된 「대흥군 지방지도」에서는 태실의 모습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현종 태실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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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원동면(遠東面) 지역일 때 황계(黃鷄)라 부른 데서 황계리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 원동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풍암리(楓岩里)를 병합하고, 황계리라 하여 예산군 신양면에 편입되었다. 북동부, 동부, 서부 및 남부에 해발고도 100~200여m의 구릉지가 발달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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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황계리 다박골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예산군 신양면 황계리 다박골에는 3기의 고분이 남아 있다. 첫 번째 고분은 과수원 위쪽 구릉의 중상단부에 있다. 두 번째 고분은 첫 번째 고분에서 남서쪽으로 약 100m 아래 구릉의 하단부에 있다. 세 번째 고분은 두 번째 고분에서 약 3m 떨어진 곳에 있다. 대부분의 고분은 도굴과 개간으로 파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