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제도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세워진 전 화정면장 임태진 기념비. 1921년 2월 4일부터 1926년 4월 20일까지 화정면장을 역임한 임태진의 업적을 높이 찬양하고자 화정 면민이 성금을 거두어 1942년 4월 가선대부전화정면장임공태진기념비(嘉善大夫前華井面長林公泰辰紀念碑)를 건립하였다. 가선대부전화정면장임공태진기념비는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제도리 225번지에...
-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옥적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때 세워진 가선대부 장태지 기적비. 장태지(張泰址)의 둘째 아들 장기순(張基恂)이 아버지의 행적을 후대에 남기고자 가선대부행동돈녕장공기적비(嘉善大夫行同敦寧張公紀蹟碑)를 건립하였다. 가선대부행동돈녕장공기적비는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옥적리 1307-2번지에 있다. 기단석에 비신을 세우고 비갓을 올린 전형적인 비석의 형태이다. 총 높이...
-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백야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세워진 제주고씨 어머니의 열과 아들 경주김씨의 효를 기리는 쌍절비. 제주고씨(濟州高氏)의 아버지는 고광락(高光樂)이고, 남편은 김제곤(金濟坤)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아들은 김동익(金東翊)이다. 고씨 부인과 그 아들 김동익의 열과 효를 후대에 널리 기리기 위하여 경주김씨모자열효비(慶州金氏母子烈孝碑)를 건립하였다. 경주김씨모자열...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여수애양병원 안에 있는 일제 강점기 세워진 포사이드 의사 기념비. 1909년(순종 3) 미국 남장로교에서 파송한 의사 W. H. 포사이드(W. H. Forsythe)가 한센병 환자 치료와 병원 건립에 도움을 준 공을 기리기 위하여 고 포싸잍 의사 기념비를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봉선리 광주 나병원 안에 건립하였다. 고 포싸잍 의사 기념비는 1928년...
-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화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곡화목장 감목관 김시좌의 선정비. 김시좌 선정비는 화양면 화동리 여수화양고등학교 교문 앞 느티나무 숲에 있다. 고인돌의 덮개돌을 다듬어서 마애비로 석각을 하였다. 고인돌의 덮개돌 하나에 3기 감목관 정현 선정비와 감목관 송유식 선정비, 감목관 김시좌 선정비를 같이 새겼다. 비신의 높이는 110㎝이고, 너비는 40㎝이다. 바위[고인돌...
-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서도리 서산사에 있는 일제강점기 선행을 베푼 김지옥의 불망비. 장방형의 비좌에 비신의 이수부가 없이 비신이 둥글게 마무리된 갈(碣)의 형태이다. 김지옥 불망비의 높이는 107㎝이고, 너비는 40㎝이다. 삼산면 서도리의 서산사 경내 오른쪽에 거문부사 김정태불망비인 철비와 같이 서있다. 비석에 "유망효의원시천진갑오계축연활촌인승기모훈시덕이인사창설시우휼궁린우승부훈경...
-
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의 진남관 앞 비각 안에 있는 조선 후기 비석. 여수시에는 도치뿔샘[공화동에 있는 큰 샘]과 큰샘[군자동 남쪽에 있는 큰 샘]이라고 불리는 큰 샘 두 곳이 있다. 이 중 정확히 어느 샘을 파고 나서 대정서변립비(大井西邊立碑)를 세웠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현재까지 군자동 아래에 남아 있는 샘을 큰샘이라 부르며, 주변 지역을 큰샘골이라고 부르는 등의 정황으...
-
전라남도 여수시 고소동에 있는 ‘여수 통제이공 수군대첩비’를 세우게 된 내력을 적은 조선 후기 기실비. 현감 심인조(沈仁祚)가 ‘여수 통제이공 수군대첩비’의 건립 경위와 여기에 참여한 인물들, 그리고 건립하기까지의 어려움 등을 상세히 기록함으로써 후세에 충무공 이순신을 숭모하는 정신을 전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장방형 비신 뒷면 음기에 "숭정기원후주갑무술인정일립(崇禎紀元後周甲戊寅丁...
-
전라남도 여수시 여천동에 있는 유학자 주현석을 기리는 유허비. 1949년 7월 초순 방산(芳山) 주현석(朱玄錫)의 제자들이 주현석의 행적을 널리 알리고자 방산신안주선생현석유허비(芳山新安朱先生玄錫遺墟碑)를 건립하였다. 방산신안주선생현석유허비는 전라남도 여수시 삼일동 화치마을에 세워졌으나 화치마을이 철거되어 주민들이 이주를 하게 되자 세명당 앞 정문인 여수시 여천1길 48-2[여천동...
-
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 여수 진남관에 있는 조선 중기 전라좌수사 변국간의 선정비. 변국간 선정비는 임진왜란 4년 전인 1588년(선조 21)에 전라좌수영 백성들이 변국간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 새로 만들어진 비좌와 장식이 없는 단순한 비갓으로 되어 있다. 비석에 "수사변공국간선정비만력십육년육월일(水使卞公國幹善政碑萬曆十六年六月日)"이라 쓰여 있다. 비각 안에 보관되어 있으나...
-
전라남도 여수시 여천동 내동마을 사충사 터에 세워진 비. 사충사(四忠祠)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을 따라 종군하다가 전사한 정철(丁哲), 정린(丁麟), 정춘(丁春), 정대수(丁大水)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847년(헌종 13)에 건립되었다. 이후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철거되었다가 1921년 여수 웅천동에 오충사(五忠祠)란 이름으로 복원되었다. 이에 192...
-
전라남도 여수시 덕충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삼황묘를 증축하면서 세운 비. 삼황묘는 여수 유림들이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 고종 태황제(高宗太皇帝), 순종 효황제(純宗孝皇帝)의 유덕을 숭모하고, 민족 정신을 고양하기 위하여 1927년에 세운 사우(祠宇)이다. 삼황묘비에는 삼황묘를 세우면서 모금한 내력이 적혀 있다. 비는 여수 충민사 입구 삼황묘 앞에 있다. 삼황묘비는 전체 높이가 2...
-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돌산군수 서병수의 선정비. 단순한 형태의 기단과 비갓을 갖춘 조촐한 비석이다. 서병수 선정비의 높이는 127㎝이고, 너비는 48㎝이다. 서병수 선정비의 앞면에는 "군수서병수애민선정비(郡守徐丙壽愛民善政碑)"라고 쓰여 있다. 돌산읍 군내리 군 관청 옆에 다른 비석들과 같이 위치해 있다. 풍화 작용으로 훼손될 우려가 있으나 아직은 비교적 상...
-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에 있는 양선유의 유허비. 양선유(梁善有)의 본관은 남원(南原)이고, 자는 치유(致有), 호는 수헌(睡軒)이다. 양선유의 학문과 얼을 기리고 본받기 위하여 문중의 후손들이 수헌선생양공선유유허비(睡軒先生梁公善有遺墟碑)를 건립하였다. 수헌선생양공선유유허비는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1540번지에 있다. 기단석과 비갓 없이 비신만 있으며, 총 높이는 160㎝이고, 비...
-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에 있는 조선 말기 법부대신 신기선의 비. 신기선은 갑신정변 후 개화당과 가까이 지냈다는 이유로 고금도와 흥양현 여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 갑오개혁 후 법부대신으로 등용되었을 때, 섬사람들이 행정 구역을 정비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도재의 건의를 받아들여 완도군, 지도군과 함께 돌산군이 창설되었다. 이때 신기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군민들이 그...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 수군절도사 신택희의 불망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대로변에 있는 여감바위, 또는 역의암이라고 부르는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비신만 있다. 높이는 100㎝이고, 너비는 37㎝이다. 비의 앞면에는 "수군절도사신공택희영세불망비(水軍節度使申公宅熙永世不忘碑)"라고 기록되어 있다. 비석의 석질이 사암이라 마멸의 속도가 빨라 시멘트로 보전(補塡...
-
전라남도 여수시 덕충동 여수 충민사 안에 있는 정화 사적비. 여수 충민사는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의민공(毅愍公) 이억기(李億祺), 충현공(忠顯公) 안홍국(安弘國)을 모신 사당이다. 여수 지역 유림과 주민들이 매년 음력 3월 10일에 춘기 석채례를 지내고 음력 9월 10일에는 추기 석채례를 지낸다. 또 4월 28일에는 충무공 탄신제를 거행하고 있다. 1975년 여수 충민...
-
전라남도 여수시 고소동 내에 있는 조선 중기 이순신 부하들이 세운 추모비. 여수 타루비는 이순신이 죽은 지 6년 후인 1603년에 부하들이 공의 덕을 추모하여 세운 것이다. 여수 고소대 내 비각 안에는 통제이공수군대첩비와 타루비, 동령소갈이 있다. 향좌에 있는 비가 타루비이다. 타루비의 비좌 아래는 땅에 묻혀 알 수 없다. 비의 형태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신을 세우고, 머릿돌을...
-
전라남도 여수시 고소동에 있는 조선 중기 이순신 장군의 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여수 통제이공 수군대첩비는 일제강점기에 여수경찰서장 마쓰키[松木]가 1942년 봄 우리 민족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하여 대첩 비각을 헐고 대첩비와 타루비를 반출했던 것을 1946년 경복궁 뜰에서 김수평이 발견하여 1948년 5월 24일 여수에 복구하였다. 여수 통제이공 수군대첩비는 충무공 이순신...
-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흥국사에 있는 조선 중기 석조 탑비. 원래는 사찰의 정문인 영성문(迎聖門) 건너에 있었으나 수해로 인해 현재 영성문은 없어졌다. 현재 사찰경내로 진입방향 영취교 직전 왼쪽에 있다. 귀부의 지대석은 보이지 않는다. 흙바닥 위에 그대로 놓여 있어 바닥이 다소 거칠고 난삽해 보인다. 귀두가 유달리 크고 불균형하여 기이한 느낌을 준다. 귀갑의 6각형 기하학적 무늬는...
-
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 진남관에 있는 조선 중기 이량이 쌓은 방왜축제를 기념하는 비석. 여수 이량 장군 방왜축제비는 1497년(연산군 3) 전라좌수사로 부임해 온 이량(李良) 장군이 장군도 동쪽과 돌산 북쪽 사이의 해협으로 왜적이 침입하는 것을 봉쇄하고자 둑을 쌓은 사실을 적은 내용으로, 원래 장군성비와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고 전한다. 이량의 5세손 이배원(李培元)이 글을 짓고,...
-
전라남도 여수시 연등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전라좌수사 안숙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적비. 여수 절도사 안공 사적비는 1823년(순조 23)에 세운 것으로, 1809년(순조 9) 절도사(節度使)로 부임한 안숙은 문무를 권장하고 좌수영을 수리하여 주민들의 구제에 심혈을 기울였고, 부하 군졸을 가족처럼 여겼다. 또한 서민의 혼례, 장례 등 길흉사를 돕는 등 선정 정치의 모범을 보였다...
-
전라남도 여수시 연등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적비. 1779년(정조 3) 지방의 군사들과 의승(義僧)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것으로, 호남좌수사로 부임한 김영수(金永綬)가 좌수영성을 대대적으로 개축, 보강하고 군사를 정비하였다. 또한 군기, 잡물 등을 마련하고 월과미(月課米) 및 정조(正租) 등을 마련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비신은 방형의 머릿돌을 갖추고 있다. 높이는 167...
-
전라남도 여수시 만흥동에 여순사건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 여순사건희생자위령비는 여순사건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2009년 9월 13일 건립하였다. 전라남도 여수시 만흥동 149-6번지에 있다. 만흥동 마래터널을 지나 200m쯤 가면 나오는데, 이곳은 여순사건 때 대표적인 집단 학살지였다. 여순사건희생자위령비는 대좌, 비신, 개석 세 부분으로...
-
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전라좌수사 유광로의 선정비. 장방형의 비좌 위에 세워진 철비로, 옥개가 가지 모양을 하고 있으나 왼쪽 가지는 부러진 상태이다. 비의 앞면에 "수사유공광로청덕선정비함풍사년십이월일영내(水使柳公光魯淸德善政碑咸豊四年十二月日營內)"라고 쓰여 있다. 철제로 된 비이지만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부정 부패가 극심했던 철종 때 세워진 청덕선정비...
-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화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감목관 윤동계의 선정비. 고인돌의 덮개돌에 선정비를 새겼다. 비의 높이는 100㎝이고, 너비는 40㎝이다. 비의 앞면에는 "행감목관윤후동계선정비무술팔월(行監牧官尹侯東啓善政碑戊戌八月)"이라고 쓰여 있다. 비석이 있는 곳에 고인돌을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를 둘러서 비교적 관리가 잘 되고 있다....
-
전라남도 여수시 삼일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이규보의 자선기념비. 이규보는 천성이 영특하고 부모에 대한 효심이 두터웠을 뿐만 아니라 관리로서 백성을 위해 많은 치적을 쌓았다. 이에 감복한 백성들이 비석을 세워 칭송하였는데, 동문(洞門) 밖에 비를 높게 세워 지나가는 사람들이 절로 머리를 숙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비의 규모는 높이가 172㎝이고, 너비는 130㎝이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
-
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전라좌수사 이도빈의 선정비. 이도빈은 1644년(인조 22) 여수 진남관을 개축하였던 인물로, 『하멜표류기』에도 기록이 남아 있다. 이도빈이 전라좌수영의 수사로 재임하면서 베풀었던 공적을 추모하기 위하여 좌수영의 백성들이 세웠다. 방형의 대좌 위에 장방형의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옥개석을 올렸다. 옥개석에는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놓고 다...
-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에 있는 조선 말기 학부대신 이도재의 불망비. 이도재는 갑신정변 후 개화당과 가깝다는 이유로 신기선과 함께 고금도와 흥양현 여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 갑오개혁 후 학부대신으로 등용되어 섬사람들만의 행정 구역을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고 법부대신 신기선에게 제의하였다. 이에 따라 완도군, 지도군과 함께 돌산군이 창설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군...
-
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전라좌수사 이봉상의 선정비. 이봉상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5세손으로서, 1709년 3월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후 곡창을 설치하여 곤궁한 백성을 구휼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혼례비와 장례비를 제공하는 등 백성들에게 많은 혜택을 베풀었다. 1710년 퇴임 후 이봉상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장방형 지대석에 탑신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
-
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에 있는 조선 후기 함은군 이삼의 불망비. 장군도에 방왜축제를 축조했던 이량 장군의 8세손으로, 1710년(숙종 36)에 전라좌수사로 부임하면서 선정을 베풀어 주민들이 이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단순한 비좌 위에 비신이 세워져 있으며, 비갓에는 소박한 구름 무늬가 새겨져 있다. 비의 높이는 168㎝이고, 너비는 51㎝이다. 비의 앞면에 "함은군이삼거사불...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 순천부사 이종의 불망비. 소라면사무소에서 대포 쪽으로 가는 덕양역 부근 도로변 여감바위 위에 수군절도사 신택희 영세불망비와 나란히 서 있다. 단순한 형태의 좌대와 훼손이 심한 상태의 비갓이 올려져 있다. 비의 높이는 173㎝이고, 너비는 65㎝이다. 비의 앞면에 "행부사이후종영세불망비(行府使李侯宗永世不忘碑)"라고 쓰여 있다. 비바람에...
-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에 있는 이순신 모친 초계변씨의 유적비. 1592년(선조 25)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순신 장군은 충청도 지방이 전란에 휩싸이자 모친 변씨부인과 부인 방씨부인을 여수시 웅천동 송현마을 정대수 장군 집으로 불러들여 전란 중에도 모친에게 아침과 저녁에 문안을 올렸다. 현재 이 비가 있는 정평호 집에는 자당이 쓰던 절구통과 밥솥이 보존되어 있다. 1973년 여천군에...
-
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에 있는 조선 말기 전라좌수사 이희갑 불망비. 비갓은 유실되고 좌대와 비신만 있다. 비의 높이는 156㎝이고, 너비는 48㎝이다. 비의 앞면에는 "절도사이공희갑영세불망(節度使李公熙甲永世不忘)"이라고 쓰여 있다. 비갓은 유실되었고, 좌대와 비신만 남았으며, 비석의 재질이 사암이라 마멸이 심하다....
-
전라남도 여수시 중앙동에 있는 조선 중기 이량 장군이 장군성을 쌓고 세운 비석. 1497년(연산 3)에 이량 장군이 왜적을 막기 위해 장군도와 돌산 사이에 제방을 쌓았는데, 이것이 국내 유일의 수중성인 장군성이다. 이량 장군이 방왜축제를 쌓은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웠다. 여수시 중앙동 장군도 선착장에서 오른쪽으로 50m 정도 떨어진 바닷가에 있다. 사암으로 된 비신에 비갓이 새겨...
-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방답첨사 장익복의 선정비. 단순한 좌대 위에 비갓 없이 비신만 있다. 높이는 100㎝이고, 너비는 37㎝이다. 비의 앞면에는 "첨사가선대부장공익복영세불망비(僉使嘉善大夫張公益福永世不忘碑)"라고 쓰여 있다. 바닷가에서 해풍을 맞으면서 풍화가 진행되고 있다. 방답진(防沓鎭)의 첨사에 관한 유일한 비석으로 방답첨사 장익복의 행적을 알 수 있...
-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손죽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때 세워진 이기신 송덕비. 전 주사 이기신(李起申)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문중에서 전주사이공기신송덕비(前主事李公起申頌德碑)를 건립하였다. 전주사이공기신송덕비는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손죽새터길 28-7[손죽리 산1103]에 서 있다. 화강암으로 된 기단과 비석이 있으며, 비신은 오석으로 되어 있다. 총 높이는 297㎝이며, 비석...
-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정계생의 신도비. 사충사에 봉안되어 있는 임진왜란 공신인 정철, 정린, 정춘, 정대수와 그의 부친 정계생의 가계와 신상을 살필 수 있는 비이다. 금석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故月川丁公歿三百餘年至哲宗壬戌에 始贈公吏曹參判하고 高宗甲子에 又加贈資憲大夫吏曹判書兼判義禁府事弘文館直提學하니 於法에 得竪碑神道而後孫이 久以孱力未遑이러니 今其遺裔龍洙相...
-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정대수의 신도비. 정대수(丁大水)는 자는 여숙이고 호는 용서(龍西)며 1565년에 웅천 송현마을에서 증 호조참판 정호인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대사성 정득우의 9대손이고 월천공 정계생의 증손으로 정철, 정춘, 정린의 종질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휘하의 별장으로서 노량해전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당진현감에 임명되었으나 취임을...
-
전라남도 여수시 여천동에 있는 임진왜란 때 무신 정춘의 신도비. 여수시 여천동 여천고등학교 건너편 내동마을 입구 표지석 위 학동 정수장 아래 오른쪽에 사충사 유허비와 함께 있다. 원래의 비는 비좌는 존재하지 않으며 가첨석도 한쪽이 완전 박락되고 비신도 박리현상이 심하였다. 비의 높이는 196㎝이고, 너비는 55㎝였다. 이 비는 풍화정도가 너무 심해 비문 해독이 거의 불가능하였다....
-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화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감목관 정현의 선정비. 화양면 화동리 여수화양고등학교 입구에 세워져 있다. 고인돌의 덮개돌에 선정비를 새겼다. 비의 높이는 100㎝이고, 비의 너비는 40㎝이다. 비의 앞면에는 "행감목관정후현선정비무술팔월(行監牧官鄭侯鉉善政碑戊戌八月)"이라고 쓰여 있다. 비석이 있는 곳에 고인돌을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를 둘러서 비교적 관리가 잘 되고...
-
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에 있는 조선 말기 돌산군수 조동훈의 영세불망비. 여수가 한창 복군(復郡) 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초대 돌산군수로 임명된 조동훈이 종포에 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지방 유지들은 조동훈에게 돌산을 돌산군에 편입시켜 여수에서부터 돌산까지 다스려 달라고 청원하였다. 이에 조동훈은 조정에 여수 네 개 면(面)을 돌산군에 편입시켜 줄 것을 건의하는 한편, 주민들...
-
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전라좌수사 조문현의 선정비. 조문현의 전직은 승지(承旨)로 1869년에 절도사로 여수에 부임하였다. 부모를 모시듯 군사와 백성을 사랑하고 아껴 관내 백성들이 모두 감격하여 그를 생불(生佛)이라고 불렀으며, 이임 후 선정비를 세웠다. 여수시 군자동 여수 진남관 입구의 비각 안에 있다. 형식적으로 조각한 조잡한 귀부 위에 철제로 된 비신을 세웠...
-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죽포리 마주교 옆에 있는 조선 후기 비석. 1666년(헌종 12) 김석휴 등 마을 사람들이 만재석교(또는 마주교)를 만들었다. 만재석교비는 당시의 마을 주민들이 다리를 만든 사람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비는 오랜 풍상으로 인해 글씨 등이 많이 마멸되어 1961년에 재건되었다....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복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황치연의 처 김해김씨의 정렬비. 김해김씨(金海金氏)의 아버지는 김재택(金在澤)이고, 남편은 황치연(黃致淵)으로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김씨 부인의 정과 뜻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창원황치연처김해김씨정렬비(昌原黃致淵妻金海金氏貞烈碑)를 건립하였다. 창원황치연처김해김씨정렬비는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복산리 달천노인회 도로변에...
-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에 있는 처사 이종채의 처 효부 김해김씨의 사적비. 김해김씨(金海金氏)의 아버지는 김정두(金正斗)이고, 남편은 이종채(李鍾彩)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이종채의 처 김씨 부인이 남편과 같이 널리 아픈 사람은 구휼하고 부모에게 효도가 지극하므로 지역 사회에서 처사경주이공종채처효부김해김씨실적비(處士慶州李公鍾彩妻孝婦金海金氏實蹟碑)를 건립하였다. 처사경주이공종채처효...
-
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전라좌수사 최완의 청덕비. 전라좌수사 최완은 1720년(숙종 46)에 부임하여 여수의 동쪽에 동서재(東書齋)와 서쪽에 서서재(西書齋)를 세우고 학문을 장려하였다. 제주목사로 전임하자 고장 백성들이 청덕비를 세워 그의 공을 기렸다. 여수시 군자동 여수 진남관 입구 비각 안에 있다. 개석은 없어지고 비신이 장방형의 비좌 위에 서 있다. 비의 높...
-
전라남도 여수시 덕충동 충민사 입구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하마비. 1603년(선조 36) 충민사(忠愍祠)가 이순신 사액사당 1호가 되었다. 궁궐이나 사찰 및 성균관, 사당 등 예를 갖추어야 하는 곳에는 하마비를 설치하였다. 하마비는 충민사에 올 때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여기서부터는 누구나 말에서 내려 경건하게 예를 갖추라는 의미로 세워진 비이다. 전라남도 여수시 덕충동 182...
-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세워진 이종원의 처 김해김씨 효열 기행비. 김해김씨(金海金氏)의 아버지는 김교민(金敎敏)이고, 남편은 이종원(李鍾原)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경주이씨 37세손 이종원과 결혼한 김씨 부인이 남편이 조사(早死)한 후 부모에게 효를 다하고 외아들 이홍우(李洪兩)를 훌륭히 훈육하며 가게를 유지하여 효율부로 향천되자 이를 후손에게 알리고자 경...
-
전라남도 여수시 호명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세워진 홍순봉의 처 이천서씨 효열비. 이천서씨(利川徐氏)의 할아버지는 서천로(徐千老), 아버지는 서용백(徐龍伯)이고, 남편은 홍순봉(洪淳鳳)으로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서씨 부인의 손자 홍성규(洪性奎)와 증손자 홍연의(洪淵義)가 할머니의 효열을 본받기 위하여 홍순봉처이천서씨효열비(洪淳鳳妻利川徐氏孝烈碑)를 건립하였다. 홍순봉처이천서씨효열비...
-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화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백야곶목장[곡화목장] 감목관들의 선정비. 화양면 화동리 여수화양고등학교 앞 도로가의 느티나무 숲에 있다. 비의 형식을 갖춘 비석 입비(立碑) 3기는 도로가에 나란히 세워져 있다. 향좌로부터 높이 130㎝, 폭 40㎝의 "행감목관구후준원구민선정비(行監牧官具侯駿遠救民善政碑)", 높이 110㎝, 폭 40㎝인 "행감목관김후학례영세불망비(行...
-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죽포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때 세워진 효열부 경주정씨 행적비. 바느질과 길쌈을 생활 수단으로 하면서 어려운 가계를 꾸려 나가고, 생활이 점차 윤택해지자 불우한 이웃을 돕기 시작하여 많은 사람들을 구제한 경주정씨(慶州鄭氏)의 시혜와 효열을 영원히 기리기 위하여 효열부경주정씨행적비(孝烈婦慶州鄭氏行蹟碑)를 건립하였다. 효열부경주정씨행적비는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
전라남도 여수시 여천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세워진 황원수의 처 단양우씨 기행비. 단양우씨(丹陽禹氏)의 아버지는 우명순(禹命順)이고, 남편은 황원수(廣元秀)로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효열(孝烈)로 이름난 우씨 부인의 행적을 후대에 널리 알리고자 창원황씨 집안에서 효열부단양우씨기행비(孝烈婦丹陽禹氏紀行碑)를 건립하였다. 효열부단양우씨기행비는 전라남도 여수시 여천길40[여천동 128-1...
-
전라남도 여수시 호명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세워진 홍형의의 처 창원황씨 효열비. 창원황씨(昌原黃氏)의 아버지는 황치우(黃致遇)이고, 남편은 홍형의(洪亨義)로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삼강록(三綱錄)』과 『명륜록(明倫錄)』 등에 효열(孝烈)로 이름이 올라간 황씨 부인의 행적을 후대에 널리 알리고자 남양홍씨 집안에서 효열부창원황씨지비(孝烈婦昌原黃氏之碑)를 건립하였다. 효열부창원황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