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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갑봉(權甲奉)[1924~2002]은 1943년 여름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미군 공습에 맞추어 일제 봉기를 선전하고 동지를 모집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권갑봉은 1924년 12월 25일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평은리에서 출생하였다. 권춘갑(權甲春) 또는 판갑태(板甲奉)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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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상수(權相銖)[1873~1941]는 1916년부터 1918년 사이에 영주 지역에서 국외 독립운동의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중국으로 망명한 후에는 베이징[北京]에서 유림단의 군자금 모집 활동을 펼쳤는데, 주로 무기 및 자금조달과 고문 역할을 하였다. 권상수는 권상수(權相洙) 또는 권우송(權又松)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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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권석규(權錫奎)[1883~?]는 정미의병이 한창 일어나고 있던 1907년 9월부터 김성운(金成雲) 의진에 참여하였다. 여기에서 권석규는 영양군 일대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 등의 의병활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권석규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아버지는 권호균(權浩均), 어머니는 은진송씨(恩津宋氏) 송대춘(宋大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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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창수(權昌銖)[1892~1970]는 1919년 4월 4일 은산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권창수는 경상도 풍기군 하리면 금곡동[지금의 예천군 은풍면 금곡리]에서 출생하였다. 권창수는 평소 농사를 지으면서도 인근 시장에서 어물장사를 하였기에 세상 물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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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금달연(琴達淵)[1874~1914]은 순흥 지역에서 김낙임(金樂任) 등과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1907년 일본군 헌병분견소를 습격하는 등의 의병활동을 전개하다가 1909년 순흥헌병분경소의 순사대에 체포되어 종신징역을 받고 옥사·순국하였다. 금달연의 본관은 봉화(奉化)이다. 아버지는 금석주(琴錫周),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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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김두갑(金斗甲)[?~1909]은 이강년(李康秊)[1858~1908]이 1907년 충청북도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이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08년 7월 이강년이 체포된 뒤에는 의진의 지휘권을 인계받은 김상태(金尙台)[1864~1912]의 의진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김두갑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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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김봉정(金鳳政)[?~1909]은 1907년 충청북도 제천에서 재기한 이강년(李康秊)[1858~1908] 의진에서 활동한 항일 의병이다. 이강년이 순국한 후에는 중군장이었던 김상태(金尙台)[1864~1912] 의진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김봉정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에서 출생하였다. 김봉정은 1905년 을사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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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김선이(金仙伊)[1878~?]는 1909년 5월부터 9월경까지 김상태(金尙台)[1864~1912] 의진에 가담하여 수십 명의 병사와 함께 경상북도 영천군(榮川郡)과 봉화군, 강원도 영월군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김선이는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임곡리 덕거촌(德巨村)에서 출생하였다. 김선이는 1909년 김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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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성진(金聲振)[1857~1915]은 1910년 경술국치 소식을 전해 듣고 통분하였으며, 1915년 단식·순국하였다. 김성진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자는 명옥(鳴玉), 호는 야옹(野翁)·어야(於野)이다. 김륵(金玏)[1540~1616]의 후손으로 1857년 11월 29일 지금의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에서 출생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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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김수갑(金守甲)[?~1909]은 1907년 충청북도 제천에서 일어난 이강년(李康秊)[1858~1908] 의진에 투신하여 활동하다 이강년이 순국한 뒤에는 김상태(金相台)[1864~1912] 의진에서 항일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김수갑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 출신이다. 김수갑은 1905년 11월 을사늑약으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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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김시백(金時伯)[1887~1950]은 1907년 이강년(李康秊)[1858~1908] 의진 중군장 김상태(金尙台)[1864~1912] 진영의 좌선봉에 이어 김상태 의진의 소모장으로 활동하였다. 김시백의 본관 김해(金海), 자는 삼궁(三弓), 본명은 김현세(金顯世)이다. 본적지는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이며, 1887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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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영하(金永河)[1919~2015]는 1939년 경성(京城)에서 학생대표 12명을 규합하여, 조선학생동지회(朝鮮學生同志會)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준비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영하는 1919년 3월 3일 지금의 영주시 순흥면 석교리에서 출생하였다. 김영하는 1939년 12월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 민족 독립에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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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용준(金容俊)[1873~1932]은 1919년 4월 9일 지금의 영주시 풍기읍에서 일어난 풍기면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었다. 김용준은 1873년 6월 13일 지금의 영주시 봉현면 대촌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농사를 짓고 살고 있었다. 김용준은 1919년 4월 9일 영주군 풍기면 성내동의 풍기장터에서 열린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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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유창(金瑬昌)[1900~1945]은 일본으로 건너가 비밀결사단체인 건달회(建達會)에서 활동하였다. 김유창은 1900년 3월 27일 지금의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에서 출생하였으며, 김완(金莞)·김자진(金子進)·김창하(金昌河)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김유창은 1922년 4월 일본으로 건너갔다. 1927년에 관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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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김재명(金載明)[1885~1977]은 1910년 경북 북부 지역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15년형의 옥고를 치렀다. 김재명의 본관은 의성(義城), 이명은 김재명(金在名)이다. 아버지는 김정한(金鼎翰)이다. 김재명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소룡리에서 1885년 7월 13일 출생하였다. 의병활동 당시에는 예천군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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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김치순(金致順)[?~1909]은 1907년 이강년(李康秊)[1858~1908] 의진과 김상태(金尙台)[1864~1912] 의진에서 활동한 의병이다. 김치순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에 거주하였다. 김치순은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 되고, 군대마저 해산당하는 등 일제의 침략이 갈수록 심해지자, 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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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택진(金澤鎭)[1874~1961]은 1919년 3월 유림단의 독립청원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27년에는 신간회 영주지회 부회장에 선임되었다. 김택진의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원중(源仲), 호는 동려(東黎)이다. 문절공 김담(金淡)[1416~1464]의 17세손이며, 백암(栢巖) 김륵(金玏)[1540~1616]의 13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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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김휘정(金輝珽)[1841~1901]은 1896년 순흥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이강년 의진(李康秊義陣)과 연합부대를 형성하여 항전하였다. 김휘정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자는 정옥(廷玉)이다. 1841년 경상도 순흥도호부 도탄(桃灘)[지금의 영주시 부석면 상석리]에서 김낙표(金樂驃)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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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남상필(南相弼)[1891~1972]은 1919년 4월 9일 안용호(安容鎬)[1884~1942] 등이 주도한 풍기면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남상필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봉현면 대촌리 출신이다. 남상필은 고향에서 농사를 짓다가 1919년 4월 9일 영주군 풍기면 성내동 풍기장날에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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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남영진(南永鎭)[1894~1920]은 같은 마을의 최성원(崔盛源)[1894~1926]·안용호(安容鎬)[1884~1942]와 함께 1919년 4월 9일 풍기면 만세시위운동을 일으켰다가,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남영진의 본관은 영양(英陽), 본적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보계리이나 영주시 봉현면 대촌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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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진양(朴震陽)[1909~1940]은 1919년 3.1운동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박진양의 본관은 반남(潘南)으로 1909년 2월 24일 지금의 영주시 풍기읍 산법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박제선(朴齊璿)[1878~1938]은 대동상점사건(大同商店事件) 주도자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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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변성출(卞聖出)[1881~?]은 1910년 안동 지역에서 의병활동을 위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922~1923년에는 영주 지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던 중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변성출은 지금의 영주시 순흥면 석교리에서 출생하였다. 이후 지금의 강원도 삼척시 정라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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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서재승(徐在承)[1876~1915]은 1907년 정미의병기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15년 일본 관헌에게 체포되어 고문 끝에 총살당하였다. 서재승의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성서(聖瑞), 호는 죽림(竹林)이다. 1876년 11월 25일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사천리에서 서목렬(徐穆烈)의 아들로 태어났다. 서재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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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학자. 송상도(宋相燾)[1871~1946]는 한학자로서 『기려수필(騎驢隨筆)』을 저술하였다. 송상도의 본관은 야로(冶爐), 자는 성소(聖韶), 호는 기려자(騎驢子)·미헌(眉軒)·연파(蓮坡)이다. 시조 송맹영(宋孟英)의 26세손으로 1871년 4월 12일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휴천동 광승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송상도는 어려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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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신봉균(申鳳均)[1866~1907]은 1895년 경상도 풍기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켜 80여 명의 군사와 함께 주흘산(主屹山)에서 적군과 교전하였다. 그러나 후기의병 시기인 1907년 10월 유인석(柳麟錫)[1842~1915] 의병장의 행방을 추궁하는 일본군에 항거하다가 피살 순국하였다. 신봉균의 본관은 평산(平山), 호는 학암(鶴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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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봉익(安鳳翼)[1896~1951]은 1919년 3월 21일 경상북도 안동의 편항장터에서 열린 만세시위운동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의 옥고를 치렀다. 안봉익의 본적지는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인데, 3.1운동 당시에는 청송군 진보면 세장동에서 살고 있었다. 안봉익은 1919년 3월 다른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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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용호(安容鎬)[1884~1942]는 1919년 4월 3일 일어난 풍기면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안용호는 1884년 12월 17일 지금의 영주시 봉현면 대촌리에서 출생하였고,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안용호는 평소 일제의 식민통치와 경제적 침탈에 불만이 컸다. 그러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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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하근(吳夏根)[1897~1963]은 1919년 영주면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았다. 오하근의 본관은 고창(高敞), 호는 농고(聾故)이다. 아버지는 통덕랑 오응철(吳應澈)이며, 1897년 10월 15일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조암동 사일마을에서 태어났다. 오하근은 농촌에서 농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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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윤석오(尹錫五)[1870~?]는 1908년 2월부터 김상태(金尙台)[1864~1912] 의진 소속의 이용구(李容九)[1868~1912] 부대에 투신하여 경북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군자금 모집을 하였다. 1909년에는 충청북도 제천에서 김상태 의진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윤석오는 다른 이름으로 ‘윤석오(尹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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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윤영구(尹永九)[?~1909]는 1907년 정미의병기에 이강년 의진(李康秊義陣) 및 김상태 의진(金尙台義陣)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다 순국하였다. 윤영구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지금의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에서 출생하였다. 윤영구는 1907년 이후 이강년(李康秊)[1858~1908] 의진에 참여하여 충청북도 제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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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윤영석(尹永錫)[?~1909]은 정미의병기 이강년 의진(李康秊義陣) 및 김상태 의진(金尙台義陣)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다 피살당하였다. 윤영석의 본관은 파평(坡平)으로 지금의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에서 출생하였다. 윤영석은 1907년 고종 황제가 퇴위당하고, 정미7조약으로 군대마저 해산되자, 충청북도 제천에서 창의한 이강년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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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윤우석(尹遇錫)[?~1909]은 정미의병기 이강년 의진(李康秊義陣) 및 김상태 의진(金尙台義陣)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다 피살당하였다. 윤우석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지금의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에서 출생하였다. 1907년 정미7조약에 따라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었다. 이에 반발한 많은 군인이 의병부대에 합류하였다. 이때 이강년은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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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이교영(李敎永)[1873~1911]은 1907년 문경 지역 김상한(金商翰)[1842~1917] 부대의 좌익장으로 활동하였으며, 이후에는 소모장 이명상(李明相)[?~1909] 휘하에서 경상북도·충청북도·강원도 등지에서 항일 의병운동을 전개하였다. 이교영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노곡리에서 살았다. 의병활동을 전개하는 동안 이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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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용헌(李容憲)[1880~1934]은 1919년 4월 4일 은산장터 만세운동을 주동하다 체포되었으며, 징역 8월형의 옥고를 치렀다. 이용헌은 경상도 풍기군 하리면 금곡동[지금의 예천군 은풍면 금곡리]에 거주하였다. 이용헌은 평소 농사를 짓고 살면서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강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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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응락(李應洛)[1924~1945]은 1944년 일본군에 징집되었지만 일본군을 탈출하여 중국군을 거쳐 1945년 광복군에 편입되었다. 1945년 6월 창사작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하였다. 이응락은 1924년 4월 4일 영주군 영주면 영주리에서 출생하였다. 이응락은 1944년 징용 1기로 징집되어 일본군에 배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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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재덕(李宰德)[1866~?]은 은산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재덕은 경상도 풍기군 하리면 금곡동[지금의 예천군 은풍면 금곡리]에서 출생하였다. 이재덕은 평소 농사를 지으며 한학을 공부하였다. 일제의 식민통치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던 중에 고종황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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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 독립운동가. 이화백(李和伯)[1884~1968]은 1919년 4월 9일 풍기면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이화백은 1884년 4월 3일 지금의 영주시 봉현면 대촌리에서 출생하였다. 이화백은 1919년 4월 9일 안용호(安容鎬)[1884~1942]·최성원(崔盛源)[1894~1926]·남영진(南永鎭)[1894~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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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사건(張師健)[1919~1951]은 1941년 6월 일본 도쿄[東京]에서 한국의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장사건의 본관은 인동(仁同)으로 1919년 12월 30일 지금의 영주시 풍기읍 성내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일본식 이름으로 송평정육(松平精育)을 사용하였다. 장사건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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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석창(張錫昌)[1924~1973]은 1944년 일본군에 강제 징병되었다가 탈출한 뒤,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에 들어가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장석창의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인서(仁瑞)이며, 아버지는 장재덕(張載德)이다. 1924년 11월 16일 지금의 영주시 안정면 오계리에서 출생하였다. 장석창은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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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응봉(鄭應鳳)[1895~1947]은 1910~1920년대 국권 회복을 위해 독립운동자금 마련과 신간회(新幹會) 활동을 전개하였다. 정응봉은 1895년 5월 15일 지금의 영주시 풍기읍 서부리에서 출생하였다. 다른 이름으로 정의극(鄭義極)과 정건중(鄭健中)을 사용하였다. 정응봉은 1915년 영주에서 대동상점(大同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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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채동진(蔡東鎭)[1878~1967]은 1919년 4월 4일 은산장터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이 일로 체포되어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채동진은 경상도 풍기군 하리면 금곡동[지금의 경상북도 예천군 은풍면 금곡리]에서 출생하였다. 채동진은 농사를 지었으며, 평소 한학을 공부하였다. 채동진은 일제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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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봉환(崔鳳煥)[1895~1937]은 1918년 만주 장백현(長白縣)에서 군자금과 의류 등을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에 제공하였다. 1923년 일본군에 체포되어 징역 10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최봉환의 본적지는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이다. 최봉환은 영주에서 만주 장백현 14도구로 이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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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성원(崔盛源)[1894~1926]은 같은 마을의 안용호(安容鎬)[1884~1942]·남영진(南永鎭)[1894~1920]과 함께 1919년 4월 9일 풍기면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다, 일본 헌병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최성원은 1894년 8월 12일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봉현면 대촌리에서 출생하였다. 최성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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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 독립운동가. 황정흠(黃政欽)[1881~1949]은 1919년 4월 9일 경상북도 영주군 풍기면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본 헌병들에게 체포되었다. 황정흠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도민(道敏), 이명은 황정흠(黃正欽)이다. 아버지는 황재훈(黃在薰)이다. 황정흠은 어려서부터 신체가 강건하고 힘이 매우 세었으며, 무인의 기질이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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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주 출신 독립운동가. 황정흠(黃鼎欽)[1889~1955]은 1919년 4월 9일 영주군 풍기면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황정흠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이경(耳敬), 호는 후송(後松), 이명은 황승흠(黃昇欽)이다. 대사헌을 지낸 황섬(黃暹)[1544~1616]의 11대 종손이며, 아버지는 황재석(黃在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