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농민운동가. 1931년 4월 4일 창립된 양산농민조합의 조합원으로 활동하면서 일제의 소작료 착취에 항거하다가 1932년 3월 16일 양산농민조합의 간부가 구속당하자 탈환 작전에 가담하였다. 강만수는 300여 명의 조합원과 함께 경찰서 정문에서 대치하면서 구속한 간부를 무조건 석방하라고 외치다가 검거되어 1932년 10월 13일 벌금 50원의 형을 받...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28년 3월 23일 양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1년 4월 4일 창립한 양산농민조합의 소년부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1932년 3월 16일 구속된 양산농민조합의 간부를 탈옥시키기 위해, 양산경찰서 습격 사건의 주동자 전병건(全秉健)의 지령에 따라 300여 명의 조합원을 동원하여 선두에서 지휘하다가 검거되었다. 1932년 10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31년에 창립한 양산농민조합에 최달수(崔達守) 등의 권유로 소년부에 가입하였다. 1932년 3월 15일 양산경찰서에서 ‘소작료 4할 결의’를 하였다는 이유로 조합원 간부 17명을 구류 처분하자, 전병건(全秉健)의 지시에 따라 16일 조합원 300여 명이 양산경찰서를 습격하였다. 김태근도 주동자 김장호(金章浩) 등과 함께 참...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상수(安上水)는 1879년 아버지 안덕진(安德振)과 어머니 김재일(金在日)의 장남으로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에서 태어났다. 1929년 김순악(金順岳)과 결혼하여 2남 1녀를 두었으며, 1939년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교리에서 타계했다. 일제강점기 양산의 항일 독립운동가의 한 사람으로 양산농민조합의 양산경찰서 습격 사건에 참...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양명호(梁明浩)는 1870년 아버지 양갑주(梁甲柱)와 어머니 오분출(吳分出)의 차남으로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에서 태어났다. 1918년 김순등(金順登)과 결혼하여 3남 1녀를 두었으며, 1946년 타계했다. 양명호는 1931년 4월 창립한 양산농민조합의 조합원으로 가입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고율 소작료 착취에 항거하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개득(李介得)은 1903년 아버지 이재영(李宰永)과 어머니 권보배(權寶培)의 장남으로 경상남도 양산시 신기동에서 태어났다. 1929년 김복쇠(金福釗)와 결혼하여 3남 3녀를 두었으며, 1973년 양산시 북정동에서 타계했다. 1931년 4월 창립한 양산농민조합의 조합원으로 가입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고율 소작료 착취에 항거하였다...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만춘(李萬春)은 1931년 4월 창립된 양산농민조합의 조합원으로 가입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고율 소작료 착취에 항거하였다. 1932년 3월 양산농민조합 구속 간부의 탈환 작전에 가담하였다. 이만춘은 조합원과 함께 양산경찰서 정문에서 일본 경찰과 대치하다 구속자 석방을 외치며 경찰서로 진격하였다. 이만춘은 이 일로 검거되어 19...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봉재(李鳳在)는 대구고등보통학교 5학년 때 공산주의자 장적우(張赤宇)에게 포섭되어 비밀 결사를 조직하였다. 그는 사유 재산을 없애고 공산주의를 실현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1927년 12월 대구부 남산정에서 평양형무소에서 출감한 고려공산청년회 경상북도 책임자 장적우 등의 강의를 듣고 신우동맹을 결성하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희우(李禧佑)는 1931년 4월 창립한 양산농민조합의 조합원으로 가입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고율 소작료 착취에 항거하였다. 1932년 3월 양산농민조합 구속 간부의 탈환 작전에 가담하였다. 이희우는 다른 조합원과 함께 양산경찰서 정문에서 일본 경찰과 대치하다 구속자 석방을 외치며 경찰서로 진격하였다. 이희우는 이 일로 검거되어...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수만(林壽萬)은 1903년 아버지 임갑이(林甲伊)와 어머니 김소임(金小任)의 아들로 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에서 태어났다. 1928년 양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4년 조봉아(趙奉兒)와 결혼하여 2남 6녀를 두었으며, 1992년 김해시 삼방동에서 타계했다. 1931년 4월 창립한 양산농민조합의 조합원으로 가입하여 일본...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기옥(鄭冀鈺)은 1906년 아버지 정재관(鄭在瓘)과 어머니 김복림(金福林)의 장남으로 경상남도 양산에서 태어났다. 1929년 이명련(李命連)과 결혼하여 3남 2녀를 두었으며, 1999년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에서 타계했다. 1932년 일본 제국주의의 고율 소작료 착취에 항거하다 구속된 양산농민조합의 간부를 구출하는 작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