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에 있는 자연 마을. 계란마을은 소래산 남쪽 하연(河演) 선생 묘 아래 진양 하씨(晋陽河氏)[진주 하씨(晉州河氏)]들이 세거지를 이루면서 조성된 마을이다. 6.25전쟁 후에는 피란민들이 들어와 정착하였으나, 지금은 원주민들과 정착민들의 일부만 남아 있다. 소래산 남쪽 자락에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하연 선생 묘가 있다. 전하는 이...
-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과 목감동을 거쳐 인천광역시와 경기도 안산시를 연결하는 국도. 국도42호선은 인천광역시 중구에서 강원도 동해시까지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국도이다. 이 중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수서창동에서 수원역까지의 구간은 수인로라고 불리기도 한다. 시흥시의 신천동, 은행동, 매화동, 목감동을 지나며 신천동 구간은 국도39호선과 중복된다. 국도42호...
-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에 있던 옛 장터. 뱀내장은 조선 후기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오랜 역사를 가진 시장으로, 매월 1일과 6일에 개장하였다. 축산물 거래가 대부분인 우시장의 성격이 강했으며, 농산물·수산물·직물 등도 거래하였다. 특히 수원장, 소사장과 함께 경기도의 대표적인 우시장이었다. 가장 많은 소가 들어온 것은 200~300마리 정도의 소가 들어온 때...
-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에 있던 자연 마을. 복음자리마을은 1977년 도시 빈민 운동가 제정구(諸廷坵)와 정일우(鄭日祐) 신부[John Vincent Daly]의 주선 아래 서울 양평동, 문래동 등 안양천 주변의 판자촌 철거민이 처음 세운 마을이다. 이후 서울 시흥동, 난곡동, 사당동, 목동 등의 철거민들이 들어와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었다. 삶의 터전, ‘보금자리...
-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복음자리마을에서 단오 때 행하는 마을 잔치. 복음자리마을은 1977년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양남동, 문래동 등지의 철거 판자촌 주민 170세대가 공동 이주해 형성되었다. 당시 주민들은 '가난하지만 빈곤하지 않은 마을 공동체'를 꿈꾸며 주민 스스로의 참여와 활동을 통해 경제·교육·생활 공동체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
-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신천동은 경기도 시흥시 북서부에 있는 행정동이자 법정동으로 따로 관할하는 법정동은 없다. 신천동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인천부 신현면의 신촌리(新村里)와 사천리(蛇川里)에서 각 한 글자씩 따서 ‘신천리’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 사천은 하천의 모양이 뱀처럼 구불구불하여 얻은 이름이다. 신천동...
-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83번지에서 1993년 발생한 대형 화재. 시흥시 신천동 83번지는 무허가 판자촌이 밀집한 지역으로, 1995년 큰불이 난 후 영구 임대 아파트 주택 건설을 요구하는 주민들과 시행사 간의 공방이 계속되다가 2003년에 철거 작업이 시작되었다. 2006년 6월 16일 당시 무허가 주택은 모두 강제 철거를 당하였다. 2005년 시공사가 이주...
-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과 과림동을 거쳐 인천광역시와 경기도 광명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제2경인고속도로는 인천광역시 남구 용현동을 기점으로 하여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까지 이어지는 총연장 48㎞의 고속도로로 인천광역시, 경기도 시흥시·광명시·안양시·과천시·의왕시·성남시를 지난다. 시흥시는 신천동, 방산동, 은행동, 안현동, 과림동을 지난다. 제2경인고속...
-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하연의 묘. 하연(河演)[1376~1453]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연량(淵亮), 호는 경재(敬齋)·신희(新稀)이다. 아버지는 판청주목사(判淸州牧事) 하자종(河自宗), 어머니는 이조판서 정우(鄭寓)의 딸이다.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으로 1396년(태조 5) 식년(式年)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이조정랑...
-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과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을 잇는 도로. 호현로는 국도39호선으로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소사삼거리에서 경인로와 접속, 남쪽 방향으로 내려와 시흥시 신천동 신천육교삼거리에서 수인로와 연결된다. 시흥시에서는 신천동과 대야동을 지난다. 호현로는 예전부터 시흥과 부천을 연결하는 주요 도로 중 하나인 여우고개를 넘어가는 도로였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