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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가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부터 현대까지 세워진 12기의 비석.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가구리에 있는 고북중학교 앞 길가에 총 12기의 가구리 비석군이 있다. 1. 전고북국민학교장신영주공적비(前高北國民學校長申英柱功積碑)는 옥개형으로, 1989년에 건립되었다. 전체 높이는 195㎝이며, 비신은 높이 130㎝, 너비 45㎝, 두께 2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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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토기·자기·기와 등을 굽는 가마가 있던 터. 도자기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각 도자기에는 해당 시기의 문화와 일상생활의 패턴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왔다. 따라서 각 시기에 제작된 도자기들의 양식과 시기별 변화 양상을 살펴보면서 과거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시기에 따라 생활 문화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유추해 볼 수 있게 되었으며, 각 시기에 제작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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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가좌리 남당동[남댕동]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가좌리 남댕동 백자 가마터는 아직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사례가 없으며, 『문화유적분포지도』에 간략한 정황이 서술되어 있다. 지표 조사 및 『문화유적분포지도』를 통해 조선 시대 가좌리 남댕동 백자 가마터 유적이 알려져 왔으나, 현재는 서해안고속국도 건설과 민가 조성 과정에서 대부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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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돌을 갈아 만든 도구나 무기. 간석기는 돌의 일부 또는 전체를 갈아 만든 일상생활용 도구나 무기를 일컫는다. 이를 ‘마제석기’라고도 한다. 한반도의 청동기 시대는 간석기의 시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전체 역사에서 간석기가 가장 발달한 시기였다. 석기를 가는 ‘마제기법(磨製技法)’은 구석기 시대에도 일부 확인되지만,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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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갈산동 산뒤마을에 있는 고분군. 갈산동 고분은 서산시에서 북서쪽으로 약 3㎞의 거리에 있다. 북서쪽의 굴재말봉에서 남동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의 상부에 고분이 분포되어 있다. 지표 조사를 통하여 고분군의 존재가 확인되었는데, 지표면에서 도굴 갱과 함께 고분의 덮개돌로 추정되는 석재가 노출되어 있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마을의 축대를 쌓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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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갈산1리 산막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서산시 운산면 갈산1리 산막마을 북쪽 당진군과 서산시의 경계를 이루는 은봉산에서 남동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의 동남향 사면 중·하단부에 위치한다. 갈산리 유물 산포지(葛山里遺物散布地)의 북서쪽 상단부 능선에는 서산~당진 간 도로 공사 과정에서 청동기 시대 주거지가 확인된 갈산리 유적(葛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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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갈산리 1구 산막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주거 유적. 서산~당진 간 도로 확장 공사 과정에서 갈산리 유물 산포지(葛山里遺物散布地) 주변 지역에 대하여 2002년 6월 15일부터 동년 12월 11일까지 충청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를 진행한 결과 청동기 시대 유적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발굴 조사를 통하여 확인된 유구는 청동기 시대 주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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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주. 자는 경휴(景休). 아버지는 강의(姜儀)이고, 아들은 영산현감으로 임진왜란 때 죽은 강효윤(姜孝胤)이다. 서산의 진주 강씨는 서산 지역에서 오래 산 성씨로 서산 강씨라 불리기도 한다. 기록이 많지 않아 추적이 어렵지만 서산의 유력 성씨인 청주 한씨 한효순(韓孝純)의 후취 부인이 강몽서(姜夢瑞)의 손녀인 것으로 미루어 영향력 있는 성씨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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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강수리 버드렁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부터 철기 시대까지의 유물 산포지. 서산시 부석면 소재지에서 태안 방면으로 개설된 도로를 따라 북서쪽으로 약 4.5㎞ 정도 가면 강수리에 이르며, 이 지점에서 동쪽으로 개설된 도로를 따라 약 2㎞쯤 가면 강수리 버드렁마을이 나타난다. 강수리 유물 산포지(江秀里遺物散布地)는 서산시 부석면 강수리의 버드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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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서산. 자는 선술(善述). 아버지는 진사 강몽서(姜夢瑞)이다. 아들은 집의(執義)를 지낸 강수이다. 강씨는 서산의 토성으로 등재되어 있지만 기록이 많지 않아 추적이 어렵다. 1619년 편찬된 서산의 사찬 읍지 『호산록(湖山錄)』에서는 강흡(姜洽)이 향임을 맡아 고을의 풍속을 바르게 하였다고 하니 그가 강효윤(姜孝胤)의 조상일 것으로 추측될 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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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향임(鄕任). 1619년에 편찬된 서산 지방의 사찬 읍지인 『호산록(湖山錄)』에 ‘강흡(姜洽)이라는 사람이 향임을 맡아 고을의 풍속을 바르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강흡은 향임으로서 기품이 맑고 강하여 시비가 분명하였으며, 고을의 풍속을 바르게 하고 일을 올바르게 판단하고자 했다. 백성 가운데 범법자가 있으면 그 경중에 따라 죄목을 붙여 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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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거성리에 있는 조선 시대 사창 터. 거성리 사창(巨城里社倉)은 조선 시대 해미현(海美縣)에 설치되어 세곡을 보관하던 창고였다. 서산시 운산면 거성리는 조선 시대에 서산과 해미의 접경지로 대교천의 동편에 있다. 지금은 내륙 지역이지만, 전언에 의하면 1900년 이전까지 마을 앞의 음지말들과 홍안들 일대가 모두 바다였고, 배가 들어와 정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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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노비. 걸포(乬布)는 귀천(貴千)과 형제로 노비였다. 둘은 무척 우애가 깊어 먹을 것이 있으면 꼭 나누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갔다. 어느 해 형의 목화밭에 목화가 피지 않자 동생은 자기 밭에서 좋은 목화송이를 따서 나누어 주었다. 형제의 이런 돈독한 우애는 주변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다. 걸포와 귀천의 이야기는 서산의 사찬 읍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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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군수를 역임한 문신이자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은 1582년(선조 15) 서산군수로 부임하여 목민관으로서 명성을 얻었다. 서산에 왔던 수령 중 최고의 선정(善政) 수령으로, 서산 5현으로 추대되었다. 학문 발전과 후학 양성에 전력하고 『호산록(湖山錄)』 발행을 권유하는 등 서산의 사족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이순(而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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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고북면과 홍성군 갈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고구현은 현재 서산시 해미면·고북면과 홍성군 갈산면에 해당된다. 995년(성종 14)에 운주도단련사(運州都團練使)를 두었는데 운주(運州)는 현재의 홍성군이다. 이후 운주에는 군이 3개, 현이 11개가 소속되어 있었다. 고구현은 운주에 소속된 11개 현 가운데 하나였다. 고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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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고남리 두무골마을에 있는 고분군. 고남리 두무골 고분은 성연면 소재지에서 서남쪽으로 약 2.5㎞의 거리에 있는 고남리 두무골마을에 위치한다. 이 마을 북서쪽으로 해발 98m의 야산이 있는데, 고분군은 이 산의 남동향 사면 하단부에 있다. 고남리 두무골 고분은 지표 조사와 지역 주민에 대한 탐문 조사를 통하여 확인되었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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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 고려 개국에서 1392년 멸망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 서산의 역사. 고려 시대의 서산 지역은 부성군(富城郡)을 중심으로 지곡현(地谷縣), 정해현(貞海縣), 여미현(餘美縣), 고구현(高丘縣)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해안의 드나듬이 심한 서산 지역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하여 많은 군현이 설치된 것이다. 이 중 여미현은 백제 때 여촌현, 신라 때 여읍현이었다. 서산시 운산면 소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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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기록의 발급자와 수취자 간에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주고받은 문서의 총칭. 고문서는 역사학의 기본이 되는 문헌 사료로, 대부분이 유일본이다. 형태는 낱장이 많고 이것을 책처럼 묶은 성책 고문서도 있다. 종류는 매우 다양하여 관문서(官文書)·공문서(公文書)·사대문서(事大文書)·교린 문서(交隣文書) 등 공공의 성격을 갖는 문서와 개인 간에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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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는 선사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무덤. 고분은 과거 사회에서 죽은 이를 위해 수행된 매장 의례 행위의 결과로 남겨진 물질적인 증거이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역사·고고학적으로 의미를 갖는 경우에 국한한다. 넓은 의미에서 선사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옛 무덤을 가리키지만, 일반적으로 고대 국가가 성립되는 삼국 시대의 고총 고분을 의미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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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두산마을에 있는 고려 후기~조선 전기의 기와 가마터. 고산리 두산 기와 가마터는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와 수당리를 잇는 지방도 609호선 변에 위치하고 있다. 지방도 609호선을 사이에 두고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두산마을과 마주 보는 지역에 해당한다. 고산리 두산 기와 가마터는 아직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사례가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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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고산리 백자 가마터는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와 수당리를 잇는 지방도 609호선 변에 자리한 고산리 사기점골마을에 위치한다.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사기점골마을은 고풍저수지 동편에 위치한 높이 280여 m의 험준한 산지에서 북동쪽으로 뻗은 가지 능선 남동향 사면에 자리한다. 아직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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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판소리 명창. 고수관(高壽寬)은 주로 19세기 전반에 활동하였으며, 권삼득(權三得), 송흥록(宋興祿), 모흥갑(牟興甲), 김제철(金齊哲), 방만춘(方萬春), 송광록(宋光祿), 주덕기(朱德基) 등과 전기 8명창에 꼽힌다. 전기 8명창이란 19세기 전기에 판소리의 여러 가지 조를 구성하고 더늠[판소리에서, 명창이 독특한 방식으로 다듬어 부르는 어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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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 고인돌은 거대한 돌을 이용하여 만든 선사 시대 거석 건조물의 일종으로 큰 돌을 이용하여 돌함 모양의 무덤방을 만든 후, 그 위에 큰 돌로 덮어 높은 형태의 무덤을 말한다. 고인돌의 명칭도 큰 돌을 괴고 있다는 뜻의 괸돌[고임돌]에서 유래되었다. 고인돌은 지역에 따라 명칭이 다른데 한국에서는 ‘고인돌’이라고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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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고파도리에 있는 조선 전기 진성. 고파도성(古波島城)은 서해안으로 진입하는 왜적을 상륙 전에 바다에서 막기 위해 세운 진성(鎭城) 가운데 하나이다.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서산군 관방조에 “고파도는 군의 서쪽 문현면에서 35리 떨어져 있으며, 오래전 수군만호가 있었다. 1516년(중종 11)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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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충청도의 수군 편제에 따라 서산에 속해 있던 방어 시설. 고려 후기 서해안 지역에 왜구가 자주 침입하여 1373년(공민왕 22)에는 태안군이 폐군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해 서해안 일대에 군사 시설을 마련하면서 파지도에 성을 쌓게 되었다. 조선 전기에 들어와서는 고파도에 파지도만호진을 설치하였고, 태종 때에 파지도만호영을 태안 호리로 옮기면서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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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예천동에 있는 토성. 공림산성(公林山城)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성내에서도 관련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축조 시기 및 축조 배경은 알 수 없다. 서산에서 국도 32호선을 따라 태안 방면으로 약 5㎞ 정도 가면 도로 우측으로 예천동의 공림마을이 있다. 공림산성은 서산시 예천동의 공림마을 북쪽에 위치한 공림산[태성산 또는 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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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뗀석기를 사용하던 시기. 구석기 시대라는 용어는 원래 톰센(Thomsen)의 삼시대법에서 정의한 석기 시대를 러벅(Lubbock)이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로 나눈 것에서 유래하였다. 돌을 때려 만든 뗀석기를 사용하는 시대라는 기술 발전 단계상의 한 개념으로 등장했으며, 이 시대의 시기 구분은 주로 석기로 대표되는 유물의 변화 양상에 따라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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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에 있었던 운하. 고려에서 조선까지 수도가 개성과 한양에 설정됨에 따라 서해 연안 해로의 운송로 기능은 극대화되었다. 당시 세곡과 각종 공납품의 가장 중요한 공급지는 경상, 전라, 충청의 삼남 지방로서 물류의 대부분이 태안반도 연안을 경유하여 개성 혹은 한양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이 조운의 과정에서 태안반도 안흥진 앞의 안흥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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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발견된 철이나 청동 등 쇠붙이나 석재에 기록한 글씨나 그림. 금석문의 개념은 포괄적이어서 금속이나 돌에 새긴 문자뿐만 아니라 나무와 그릇, 기와 등 글을 새길 수 있는 곳에 기록된 문자를 뜻한다. 금석문은 긴 세월 보존이 가능하면서 기록자의 신원과 연대가 표기된 경우가 많고, 중앙 중심의 문헌 자료를 보완한다는 측면에서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높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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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금학리에 있는 고분. 금학리 고분은 팔봉면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2.5㎞ 내외의 거리에 있다. 이 지역은 서산시의 서쪽에 해당하는 곳으로 바다에 인접해 있다. 주변에 높은 산지가 잘 발달되어 있는데, 고분군은 서산시 팔봉면 금학리 남쪽의 높은 산에서부터 북동쪽으로 길게 흘러내린 능선의 남동향 사면 중하단부에 분포한다. 금학리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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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금학1리 사기점골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서산시 서북단 가로림만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팔봉면에서 성연면으로 향하는 지방도 634호선 변에 있는 금학1리 소길마을[우길마을]에 위치한다. 서산시 팔봉면 금학1리 소길마을 입구에서 연화산 쪽을 향한 동북~남서 방향의 긴 계곡 초입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연화산으로부터 남서쪽을 향해 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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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군(郡). 백제는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방(方)·군(郡)·성(城)[현(縣)]제를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지금의 서산시 일대는 기군(基郡)으로 편제되었다고 여겨진다. 기군에는 성대혜현(省大兮縣), 지육현(知六縣)의 2개 성(城)이 예속되었다. 삼국은 고대 국가로 발돋움해 나가는 과정에서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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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기은리 고양골마을에 있는 널무덤. 기은리 토광묘는 고양골마을의 남쪽 배산인 둥근산의 북서향 사면 하단부에 있다. 기은리 토광묘는 밭으로 개간된 경작지에서 유물이 노출되어 그 존재가 확인되었다. 현재 약 991.74㎡[300여 평]의 밭을 포함하여 주변의 완만한 구릉 지대가 고분군으로 추정되는데, 지표상에서 유구의 존재를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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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행주(幸州). 처음 이름은 기자정(奇自靖), 자는 사정(士靖), 호는 만전(晩全). 증조할아버지는 기묘사화 때 죽은 응교(應敎) 기준(奇遵)이며, 할아버지는 한성부윤을 지낸 기대항(奇大恒)[1519~1564]이고, 아버지는 기응세(奇應世)[1539~1585]이다. 부인은 종실 하원군(河原君) 이정(李鋥)의 딸이다. 아들은 기준격(奇俊格)과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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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기지리에서 조사된 신석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생활·분묘 유적. 기지리 유적은 서산시의 남서쪽에 위치한 해미면 기지리에 있다. 유적이 위치한 곳의 지형은 해발 20~30m의 저산성 구릉지이며, 주변에 비교적 넓은 충적 지대가 발달되어 있다. 특히 조사 지역 주변에는 해미천과 남정천 등의 하천이 인접해 있어 배후의 산록에서 뻗어 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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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있는 기지리 유적 분구묘에서 출토된 철정. 철정은 덩이쇠라고도 부른다. 철정의 기능에 대해서는 철기 중간 소재 설, 화폐 설, 위신재 설, 철기 중간 소재와 화폐로 동시에 사용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철정은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되며, 대체로 판상철부 → 판상철부형 철정 → 철정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철정은 크게 대형과 소형으로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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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있는 기지리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 거울. 기지리 출토 청동경은 기지리 유적 21호 분구묘에서 출토되었으며, 사유훼룡문(四乳虺龍文) 방제경(倣製鏡)으로 판단된다. 21호 분구묘는 3차에 걸쳐 매장이 이루어진 것으로, 1차에 조성된 매장 주체부 내 피장자의 가슴에 해당하는 중앙 부분에서 청동 거울이 출토되었으며, 더불어 청동제 환과 방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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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기지리 유적에서 출토된 백제 시대 토기. 2005년 7월 1~2006년 3월 30일 기지리 유적(機池里遺蹟) 분구묘 가운데 모두 7기의 유구에서 9점의 흑색 마연 토기(黑色磨硏土器)와 흑색 마연 토기 방제품이 출토되었다. 이 가운데 구체적인 형태를 알 수 있는 것은 Ⅱ-27호 분구묘의 주매장주체부 출토품 1점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저부(底部)만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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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일(景日). 예조참의를 지내고 성암서원에 제향된 김홍욱(金弘郁)[1602~1654]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김두광(金斗光), 할아버지는 김운경(金運慶), 아버지는 김한록(金漢祿)이다. 어머니는 서옥업(徐玉業)의 딸이다. 김한록은 영조의 장인인 김한구(金漢耉)의 사촌 동생이다. 서산의 경주 김씨는 일명 한다리 김씨라고도 불리는데 가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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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득지(得之), 호는 소봉(蘇峰)·이안당(易安堂). 증조할아버지는 김숙문(金叔文)이고, 할아버지는 김종(金綜), 아버지는 동지돈녕부사를 지낸 김원록(金元祿)이다. 어머니는 원주 원씨로 원국량(元國良)의 딸이다. 김대덕(金大德)은 큰아버지 김원상(金元祥)에게 입양된 후 지금의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자경마을에 정착하여 광산 김씨 소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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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는 가야산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 김서형(金瑞衡)은 1475년(성종 6) 충청도병마절도사(忠淸道兵馬節度使)를 지내면서 훈련을 핑계로 수시로 군졸들을 징발하여 사냥을 즐겼으며, 때마다 이를 맞이해야 하는 인근 각 고을의 수령들에게 부담을 주었다. 그러던 중 1475년(성종 6) 가야산에서 역시 사냥을 하다 금산(禁山)에 불을 놓아 국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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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서산의 경주 김씨 입향조. 본관은 경주. 고려 말의 충신인 김자수(金自粹)의 후손이다. 아들은 증좌승지 김호윤(金好允)과 효릉참봉을 지낸 김호열(金好烈)[1534~?]이다. 맏손자[김호윤의 아들]는 송곡서원에 배향된 김적(金積)[1564~1646]이다. 증손자[김적의 아들]는 김홍익(金弘翼)[1581~1636]과 김홍욱(金弘郁)[1602~165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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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행(仲行), 호는 백운헌(百雲軒). 김장생(金長生)의 5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숙종의 장인인 김만기(金萬基)[1633~1687]이다. 아버지는 예조판서 김진구(金鎭龜)[1651~1704]이고 어머니는 한산 이씨로, 이광직의 딸이다. 김운택(金雲澤)[1673~1722]은 1699년(숙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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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유생.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사홍(士弘), 호는 미암(迷菴). 김장생(金長生)의 6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 김만기(金萬基)[1633~1687]이고 할아버지는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지낸 김진구(金鎭龜)[1651~1704], 아버지는 형조참판을 지낸 김운택(金雲澤)[1673~1722]이다. 아들은 김정묵이다. 광산 김씨의 서산 입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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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덕유(德裕), 호는 용주(龍洲)·용곡(龍谷). 할아버지는 김자진(金自珍)이고, 아버지는 진사 김두징(金斗徵)[1646~1678]이며, 어머니는 군수를 지낸 파평 윤씨 윤필은(尹弼殷)의 딸이다. 김유경(金有慶)은 서산 대교[한다리] 경주 김씨의 후손이다. 세칭 한다리 김씨라고 불리는 김유경의 가계는 김연(金堧)[1494~?]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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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인 김유경(金有慶)의 신도비와 묘역. 김유경[1669~1748]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서산 음암면 유계리 한다리마을의 명문 경주 김씨(慶州金氏) 가문의 후손이다. 1693년(숙종 19) 사마시 합격 후 1710년(숙종 36) 문과에 급제하고 수많은 관직을 거쳐 1746년(영조 22) 좌참찬으로 관직에서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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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선여(善餘), 호는 단구자(丹丘子). 할아버지는 서산 지역에 자리 잡은 경주 김씨 입향조 김연(金堧)이다. 아버지는 증 좌승지 김호윤(金好尹), 부인은 화순 최씨(和順崔氏)로 좌윤 최원지(崔遠之)의 딸이다. 아들은 연산현감 김홍익(金弘翼), 김홍양, 김홍필, 충청도관찰사 김홍욱(金弘郁)이다. 김적(金積)[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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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부성위(富城尉)[서산현령]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할아버지는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에 추봉된 김광세(金光世)이고, 아버지는 금오위대장군(金吾衛大將軍)을 지낸 김경량(金鏡亮)이다. 김주정(金周鼎)[1228~1290]은 1257년(고종 44)에 음서로 부성위가 되었다. 부성위로 제수되었을 때, 몽고병이 대대적으로 침략하자 적을 방어하고 백성들을 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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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자정(子定), 호는 용계(龍溪). 평양서윤을 지낸 김순성(金順誠)의 현손으로, 생부는 영동현감을 지낸 김표(金彪)이며, 재종숙 김양(金讓)에게 입양되었다. 김지남(金止男)[1559~1631]은 1591년(선조 24) 생원시 동방진사과에 3등 43인으로 합격하고 그 해 별시 문과에 병과 12인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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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김해. 자는 이룡(而龍). 판서공 김불비(金不比)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중손(金仲遜)이다. 부인은 밀양 박씨이다. 김취명(金就明)[1737~1812]은 1774년(영조 50) 무과에 급제하여 1790년(정조 14) 양주와 광주에서 일어난 민란을 평정하여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임명되었다. 또한 기장현감, 운봉현감, 충주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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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화곡리에 있는 김취명(金就明)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비석. 김취명[1737~1812]의 본관은 김해로, 1774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운봉현감(雲峯縣監), 충주영장(忠州營將) 등을 역임하였다. 1793년(정조 17) 대산의 평신진수군첨절제사겸감목관(平薪鎭水軍僉節制使兼監牧官)으로 부임하여 6년간 권학(勸學), 부역 폐단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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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 아버지는 안주목사 김연(金堧)이다. 부인은 재령 이씨이며, 사위 중 한 명이 광산 김씨인 용천(龍川) 김지남(金止男)이다. 경주 김씨가 서산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안주목사를 지낸 김연이 명종 조[1545~1567]에 만년의 은거지로 이곳을 택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실제로 서산에 이거하여 정착한 것은 김연의 큰아들인 김호윤(金好尹)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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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유생. 본관은 경주. 아버지는 안주목사를 지낸 김연(金堧)이다. 아들은 안기도 찰방(安奇道 察訪)을 지낸 김적(金積)이다. 손자는 김홍욱(金弘郁)이다. 1500년대 중반 김연이 정계 은퇴 후 서산에 자리를 잡아 경주 김씨 입향조가 되었다. 이후 후손들이 대대로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에 모여 살았다. 마을에 큰 다리가 있어 유계리의 경주 김씨를 ‘한다리 김씨[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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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문숙(文叔), 호는 학주(鶴洲). 증조부는 서산 지역의 경주 김씨 입향조인 김연(金堧)[1494~?]이고, 조부는 증 좌승지 김호윤(金好尹), 아버지는 찰방(察訪)을 지낸 김적(金積)이며, 어머니는 화순 최씨(和順崔氏)로 좌윤 최원지(崔遠之)의 딸이다. 부인은 참의(參議) 오정(吳靖)의 딸 동복 오씨(同福吳氏)이다. 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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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먹수지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인 김홍욱(金弘郁)의 신도비와 묘역. 김홍욱(金弘郁)[1602~1654]은 1654년(효종 5) 7월 효종에게 응지상소(應旨上疏)[나라가 어려울 때 임금이 직접 구언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완남군 이후원(李厚源)[1598~1660]에게 편지를 보내 “부모님 곁에 묻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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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익지(翼之), 호는 묵재(默齋). 증조부는 서산 지역의 경주 김씨 입향조인 김연(金堧)[1494~?]이고, 조부는 증 좌승지 김호윤(金好尹), 아버지는 찰방(察訪)을 지낸 김적(金積)이며, 어머니는 화순 최씨(和順崔氏)로 좌윤 최원지(崔遠之)의 딸이다. 초취[처음 장가가서 맞이한 아내]는 파평 윤씨 참판 윤민일(尹民逸)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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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도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인 김홍익(金弘翼)의 신도비와 묘역. 김홍익이 연산현감(連山縣監)으로 재임 중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충청감사 정세규(鄭世䂓)를 따라 인조가 몽진한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진군하였으나, 도중에 험천(險川)에서 청나라 군대의 습격을 받아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그 후 시신을 수습하여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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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에 은거하였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 또는 미재(美齋). 조선 개국 공신 남재(南在)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남식(南烒)이고 아버지는 현령을 지낸 남일성(南一星)이며, 어머니는 안동 권씨로 권박(權瞨)의 딸이다. 남구만(南九萬)[1629~1711]은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와리에서 태어났으며, 송준길(宋浚吉)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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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남정리 정동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군. 남정리 고인돌은 인지면 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약 1㎞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남정1리 정동마을에 있다. 고인돌은 두 곳에서 확인되는데, 남정1리 산214번지 일원의 공수골 일대 고인돌과 남정1리 전318번지 일원에 분포하는 고인돌이 있다. 초기에 고인돌의 존재가 확인되었을 때는 7기로 알려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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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명지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백제 고분. 대로리 명지 고분은 남쪽의 둥근산에서 북동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의 중하단부에 있는데, 행정 구역상 대산읍 대로리 2구에 해당한다. 지표 조사 당시 40~50㎝ 내외의 봉토가 확인되었는데, 이 가운데 15기는 명지마을 입구의 구릉사면에 분포하고 나머지 3기는 명지감리교회 주변에서 확인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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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주거 유적. 대로리 주거지 유적(大路里住居址遺蹟)은 1983년에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유적의 존재는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마을 주민인 이갑수가 산소의 봉분을 만들기 위해 흙을 채취하던 중 수습하였다는 백제 토기 2점과 민무늬 토기[무문 토기] 및 간석기[마제 석기] 10여 점을 신고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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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던 국영 목장. 조선 전기 서산 지역에는 다리곶(多利串)·흥양(興陽)·토진(土津)·맹곶(孟串)에 목장이 산포되어 있었는데, 1426년(세종 8)에 네 목장의 말을 합쳐 방목할 수 있는 곳을 물색한 결과 홍주(洪州)의 대산곶(大山串)으로 결정되었다. 대산곶은 물과 풀이 모두 풍족하고, 목장을 축조하는 공역도 편리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4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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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 대산중학교 향토관에 소장된 유물. 서산시 대산 지역은 1950년대 후반에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그 과정에서 지역 출토 유물이 외부로 반출되자 대산중학교 김기풍 교장이 지역 문화재를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지속적인 수집을 통해 대산 지역에서 출토된 선사 시대 이래의 각종 유물에서부터 민속자료에 이르기까지 약 1,000여 점의 유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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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부터 근대에 세워진 8기의 비석. 대산리 비석군은 조선 후기 대산 지역에서 어사(御使)와 첨사(僉使) 등을 역임한 인물들과 근대의 면장 등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졌다. 대산리 비석군은 김봉환[1~3대 읍장으로 1944년~1960년까지 근무]이 대산읍장으로 재임할 때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 곳곳에 흩어져 있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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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에 있는 신석기 시대 유적. 서산시 대산읍 대산면 소재지에서 오지리 방면으로 난 도로를 따라 약 1.2㎞ 가면 좌측으로 주민 이상은의 집이 있는데, 대산리 신석기 유적(大山里新石器遺蹟)은 이상은 집에서 동남방으로 약 100m 정도 떨어진 개울가에 위치한다. 2011년 현재까지 대산리 신석기 유적에서는 갈돌과 갈판이 각각 2점씩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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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산 출신의 노비. 노비 대언(大言)은 삼대에 걸쳐 개심동(開心洞)[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로 추정]에 살았다. 대언은 미천한 신분이었으나 15세 무렵부터 마늘, 파와 같은 음식을 가리고 20세에 선법(禪法)을 배워 입산수도하니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였다. 대언은 성격이 강직하고 불의를 참지 않았다. 『호산록(湖山錄)』은 대언의 강직한 성품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일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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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죽리에 있는 신석기 시대 조개더미. 대죽리 조개더미는 1997년과 1999년, 2008년에 각기 다른 지점에서 충청매장문화재연구원, 한서대학교 박물관, 백제문화재연구원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에서는 신석기 시대 야외 화덕 시설과 더불어 다양한 조개더미가 발견되었다. 서산시 대산읍 대죽리의 북쪽 끝 해안선에 접한 높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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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도당4리에 있는 구석기 시대 유적. 서산 지역 대부분의 구석기 시대 유적은 지표 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적들이다. 도당리 구석기 유적(道堂里舊石器遺蹟) 역시 지표 조사를 통해 구석기 시대로 추정되는 유물이 수습되어 유적이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서산시 음암면 도당4리 삼태기고개에서 율목리의 배시동 쪽으로 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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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도당리에 있는 개항기에서 현대까지 세워진 5기의 비석.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도당리 국도 32호선에서 음암초등학교 왼쪽 담장을 낀 샛길로 200m 정도 떨어져 있는 음암면 주민자치센터 주차장에 도당리 비석군이 위치하고 있다. 본래 음암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한 곳에 모아 둔 것이다. 1. 군수이공운재선정비(郡守李公雲栽善政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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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대. 도비산 봉수(都飛山烽燧)는 안국산 봉수(安國山烽燧), 주산봉수(主山烽燧)와 더불어 서산시 관내에 자리하고 있는 3개의 봉수대 중 하나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서산군조에 “도비산 봉수는 동쪽으로는 홍주(洪州) 관내 고구(高丘)의 성산(城山)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태안(泰安)의 주산(主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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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도성리 쇠팽이에 있는 야철 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충청도(忠淸道) 해미현(海美縣) 호장(戶長) 김연(金鍊)이 서산군(瑞山郡) 임내(任內) 지곡현(地谷縣) 땅에 은돌[銀石]이 있다고 하니, 관가에서 사람을 보내어 파내어서 납[鉛] 1근 8냥쭝[兩重]을 녹이었는데, 정련(精練)한 백은(白銀)이 1전 3푼이었다. 또 다른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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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가좌리와 갈산리에 걸쳐 있는 토성. 동암산성(銅岩山城)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확인되는 유물이 없어 축조 시기 및 축조 배경은 알 수 없다. 서산에서 당진으로 통하는 국도 32호선을 타고 당진 쪽으로 약 12㎞ 정도 가면 운산면 가좌리에 이른다. 서산시 운산면 가좌리 동쪽에는 갈산리와 경계를 이루는 동암산[17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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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동암리 사직재에 있는 조선 시대 사직단 터. 1927년 간행된 『서산군지』를 보면, 동암리 사직단(冬岩里社稷壇)은 면적 약 2,872.73㎡[약 869평]에 석축으로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1908년(순종 2) 1월 칙령 제85호로 사직단을 옮겼다는 기록이 있으며, 1910년(순조 4)에는 사직단을 폐하고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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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수석동에 있는 작은 망루. 서산 정씨 시조 정신보(鄭臣保)[?~1261]와 정인경(鄭仁卿)[1237~1305]과 관련된 사적이다. 양렬공 정인경은 14세기 고려의 정치인으로서 서산의 중흥조에 해당하는 역사적 인물이다. 정신보, 정인경 부자는 남송에서 망명하여 처음 간월도에 살다가 서산 시내 대사동으로 주거를 옮겼다. 서산에서 생활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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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명천리 창말에 있는 조선 시대 사창 터. 명천리 사창(鳴川里社倉)은 조선 시대 서산군에 설치되어 세곡을 보관하던 창고였다. 명천리 사창 터에 관해서는 일제 강점기인 1927년에 편찬된 『서산군지』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당시 명천리 사창은 조선 시대 서산군의 해창(海倉)으로 ‘명천창(鳴川倉)’이라 불렸는데, 창고의 규모는 기와와 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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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고북면과 홍성군 갈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지방에 대한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전국을 9주로 나누었다. 서산 지역은 웅천주[웅주] 소속의 부성군(富城郡)으로 2개의 영현이 설치된 가운데 해미면과 고북면 및 홍성군 갈산면 일대는 이산군(伊山郡)의 영현인 목우현(目牛縣)으로 편제되었다. 삼국 통일 후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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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남도 서산에 몽고군이 침입한 사건. 고려 시대에 일어난 몽고 전란 가운데 충청남도 지방에 몽고군이 이른 것은 1236년 제3차 침입과 1254년 이후 수년간 지속된 제6차 침입이었다. 그 가운데 서산 지역이 몽고군의 위협을 받은 것은 1257년의 일이다. 몽고 전란이 일어났을 때 서산 출신 정인경(鄭仁卿)[1237~1305]이 인근 지역에 출전하여 공을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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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동암리에 있었던 역(驛). 몽웅역은 고려 태조 때 설치되어 조선 시대까지 이어졌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현(縣)의 서쪽 9리에 있었다 하고, 딸린 지도의 서쪽에 역촌(驛村)이라는 지명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현재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동암리 역말이라는 마을에 해당된다. 몽웅역은 남동쪽으로는 운주[홍성]로 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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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무장리에 있는 조선 시대 분청사기와 백자 가마터. 서산에서 대산으로 향하는 국도 29호선의 지곡면 무장리 일원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서산지방산업단지 조성 지역을 대상으로 하여 1996년 7월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고, 이후 1997년 10월 27일부터 1998년 3월 4일까지 충청매장문화재연구원에서 시·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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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무장3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서산시 지곡면 소재지에서 국도 29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약 1㎞ 정도 가다가, 도로 동쪽으로 개설된 마을 진입로에서 이 길을 따라 0.8㎞ 진행하면 무장3리 마을이 나온다. 무장리 유물 산포지(舞將里遺物散布地)는 서산시 지곡면 무장리 3구 마을 중앙의 한티골 능선부에 위치한다. 무장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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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사람들의 행위를 통해 전승되는 문화재. 무형 유산은 음악·연극·무용·공예 기술 및 놀이 등 사람들의 행위를 통해 전승되는 문화재 전반을 가리킨다. 서산 지역의 무형 유산은 서산시 음암면 탑곡리 고양동에 전해 오는 「서산박첨지놀이」와 심화영류 승무(僧舞), 그리고 고수관(高壽寬) 명창 등이 대표적이다. 「서산박첨지놀이」는 우리나라에서 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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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충신. 본관은 홍주(洪州). 자는 달원(達源). 아버지는 성균생원(成均生員) 문응벽(文應璧)이다. 문성해(文成海)[1540~?]는 1575년(선조 8) 서산의 유생들과 함께 서산향교 이건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1588년(선조 21) 49세의 늦은 나이에 식년시(式年試) 생원 3등 57위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 공부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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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는 국가 및 지방 지정 문화유산. 문화재는 인류 문화 활동의 소산으로서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문화재 보호법에 의한 지정의 유무에 따라 지정 문화재와 비지정 문화재로 구분된다. 지정 문화재는 학술적·예술적·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으로, 국가 지정 문화재와 시·도 문화재 보호 조례에 의한 시·도 지정 문화재, 법령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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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 초명은 경립(敬立), 자는 직재(直哉)·군언(君彦), 호는 관포(灌圃). 고조할아버지는 대사성을 지낸 박간(朴幹)이고, 아버지는 박현룡(朴顯龍)이다. 어머니는 현감 윤환(尹瓛)의 딸이다. 박홍미(朴弘美)[1571~1642]는 1603년(선조 36) 사마시에 합격하고, 1605년(선조 3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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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반양리에 있는 백제 시대 석성. 반양리 산성(磻陽里山城)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조 시기를 확인할 수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해미현 고적조에 “성산성(城山城)은 석축 둘레 1,403척으로 현재는 폐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현재의 반양리 산성 위치에 고성(古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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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판소리 명창. 방만춘(方萬春)[1825~?]은 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판소리 명창으로, 본관은 온양(溫陽)이다. 중고제 명창이며 권삼득(權三得), 송흥록(宋興祿), 모흥갑(牟興甲), 김제철(金齊哲), 고수관(高壽寬), 송광록(宋光祿), 주덕기(朱德基) 등과 전기 8명창에 꼽힌다. 전기 8명창이란 19세기 전기에 판소리의 여러 가지 조를 구성하고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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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웅소성리에 있는 문인석. 방죽골 문인석은 서산시 해미면 웅소성리 마을회관에서 동쪽으로 약 350m 거리에 있는 방죽골 야산에 위치하고 있다. 서산시 해미면 웅소성리 41-1번지에 있는 김태용의 집 뒤쪽의 계곡을 따라 약 40m 정도 올라가면 조그마한 웅덩이가 확인되고, 웅덩이에서 약 60m 더 올라가면 방죽골 문인석이 쓰러져 있다. 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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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을 관할했던 국가.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건국하여 서기 660년에 멸망하기까지 지금의 충청도·경기도·전라도 일대를 관할했던 고대 왕국이다. 백제의 역사는 수도 이전을 기준으로 한성(漢城) 시대[B.C. 18~A.D. 475], 웅진(熊津) 시대[A.D. 475~538], 사비(泗沘) 시대[A.D. 538~660]의 세 시대로 대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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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멸망 이후 충청남도 서산 지역을 비롯한 백제 전역에서 발생한 국권 회복 운동. 사비성이 함락된 직후 백제 각지에서는 나·당 연합군을 축출하기 위한 부흥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부흥 운동을 이끈 대표적인 인물로는 흑치상지(黑齒常之), 복신(福信), 도침(道琛), 부여풍(夫餘豊), 지수신(遲受信) 등을 들 수 있다. 초기 부흥 운동의 중심지였던 임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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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에서 발굴 조사된 백제 시대 지방 세력의 고분군. 서산 부장리 고분군(瑞山副長里古墳群)은 2004~2005년에 이루어진 임대 아파트 조성 부지에 대한 발굴 조사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2006년 11월 6일 사적 제475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사적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사적 제475호로 지정된 지역은 보존되어 있지만, 나머지 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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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봉생리에 있는 조선 시대 사창 터. 봉생리 사창 터는 조선 시대 홍주목에서 세곡을 보관하던 창고 중 하나인 서창(西倉)이 있던 곳이다. 봉생리 사창(鳳生里社倉)이 있던 자리는 지금은 내륙이지만 개간하기 전까지 바다에 접한 곳이었고, 그 위치로 보아 서해안 수로 교통에 바로 연결되는 요충지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정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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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관아에서 긴급한 상황을 중앙에 전하던 군사 통신 시설. 봉수는 옛날에 널리 쓰인 통신 수단이다. 이를 봉화, 봉수대, 봉화대 등이라고도 한다. 밤에는 횃불을 올리고, 낮에는 연기로써 산봉우리에서 산봉우리로 신호를 보내어 변경의 위급을 중앙에 통보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고려 때부터 비롯된 봉수 제도를 이어받아 좀 더 체계적인 봉수 제도를 확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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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설치되었던 특수 행정 구역. 부곡(部曲)은 향(鄕)이나 소(所)와 마찬가지로 지방의 특수한 하급 행정 구역인데, 일반 양민이 아닌 노비·천민 등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촌락 집단이었다. 부곡은 신라 시대 이후, 특히 고려 시대에 각 지방에 설치되었다. 부곡은 대체로 신개발지로서 군현의 규모에 미달하는 소규모 단위를 행정적으로 편제한 것이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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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있는 백제 시대 석성. 부성산성(富城山城) 성내에서 백제 토기편과 기와편이 다량으로 수습되어 오래전부터 삼국 시대 백제에 의해 축성된 것으로 알려져 왔고, 성내에서는 삼국 시대 유물만이 아니라 통일 신라, 고려, 조선 시대에 이르는 유물도 수습되어 오랜 기간 동안 사용된 중요한 성으로 여겨지고 있다. 부성산성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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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일대를 관할하였던 군(郡).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지방에 대한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전국을 9주로 나누었다. 서산 지역은 웅천주[웅주] 소속의 부성군(富城郡)으로 편제되었으며, 그 밑에 소태현(蘇泰縣)과 지육현(地育縣)이 설치되었다. 서산 지역은 통일 신라 시기에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대중국 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였는데 최치원(崔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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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부성현[지금의 서산]에서 일어난 민란. 서산[부성현]에서 민란이 일어난 시점은 1182년(명종 12)이다. 이때는 무인 정권 시대로 당시 무인의 집권에 자극받은 각 지역에서 농민 혹은 천민들이 난을 일으켜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충청 지역에서는 1176년(명종 6) 공주에서 망이·망소이의 난을 시작으로 충청도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서산에서 민란이 일어난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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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대. 부춘산 봉수(瑞山富春山烽燧)는 옥녀봉 뒤쪽 옛 북주산성(北主山城) 내에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북산봉수동응해미현안국산 서응태안군백화산(北山烽燧東應海美縣安國山西應泰安郡白華山)”이라 기록되어 있어 당시 당진의 안국산[당시 해미현]과 태안의 백화산을 연결하던 봉수임을 알 수 있다. 북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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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백제 시대 석성. 북주산성(北主山城)은 아직까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바 없어 정확한 건립 경위 및 축조 시점을 알 수 없다. 성내에서는 삼국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유물이 출토되어, 적어도 삼국 시대에 축성되어 조선 시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서산시 읍내동 북쪽 서산시청 뒤편에 솟아 있는 부춘산 정상부에 위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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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사기리 절골마을에 있는 고려 시대 고분. 사기리 고분은 서산시 고북면의 남서쪽 외곽에 있으며, 서쪽은 간척 사업이 이루어진 천수만에 맞닿아 있다. 고분군은 사기리의 북쪽에 위치한 절골마을 전방에 있는 경작지에 있다. 사기리 고분은 경작지를 밭으로 개간할 때 청동 합과 수저, 상감청자가 함께 출토되면서 확인되었다. 주민들의 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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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산 지역 향촌 사회의 지배 계층. 사족(士族)은 대체로 고려의 향리 가문의 후예로 고려 후기 및 조선 전기에 첨설직(添設職)·동정직(同正職)·군공(軍功)·과거(科擧) 등을 통하여 사족으로 신분이 상승하였거나, 고려 후기 이래 서울로 가서 벼슬을 하다가 정치적 격변기에 본향(本鄕)·처향(妻鄕)·외향(外鄕)을 따라 낙향하여 재지 기반을 확보하고 있던 계층이었다. 사족은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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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 갈마실마을에 있는 고분군. 산성리 갈마실 고분은 지곡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약 2.5㎞ 내외에 있는 갈마실마을의 북서쪽 뒷산에 있으며, 산성리 젓다리 고분군과는 골짜기를 경계로 인접해 있다. 북쪽의 야산[90.4m]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리듯이 형성된 능선의 남향사면 중하단부에 있으며, 남서쪽으로 서해와 인접해 있다. 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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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2리 젓다리 골짜기에 있는 고분. 산성리 젓다리 고분군은 지곡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2.5㎞의 거리에 있다. 산성2리의 북서쪽에 있는 굿박골산[50.1m]의 남향 사면에 고분군이 분포하는데, 이곳은 소나무와 잡목이 우거져 있는 산림 지역이다. 산성리 젓다리 고분군은 지표 조사를 통하여 유적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남향 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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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산수리 사창벌마을에 있는 고분군. 산수리 고분군은 서산시 해미면 산수리 사창벌마을 동쪽 야산의 남동향 사면에 있다. 산수리 고분군은 지표 조사 과정에서 3, 4기가 확인되었다. 주로 주민들의 증언으로 유구 내용이 채록되었다. 현재 구체적인 발굴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고분군으로 전하는 지역의 상당 부분에는 고분 석재로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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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에 있는 석성. 상왕산 대성(象王山大城)과 관련된 직접적인 기록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건립 경위는 알 수 없다. 다만 1619년(광해군 11)에 편찬된 서산 지역 읍지(邑誌)인 『호산록(湖山錄)』에 “상왕(象王)이 쌓았다는 전언과 함께 1597년(선조 30) 정유년에 이시언(李時彦)이 증축하려다 그만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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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상홍리에 있는 토성. 상홍리 산성(上紅里山城)은 성벽의 구조조차 확인할 수 없고, 유물도 확인되지 않아 성의 축성 시기를 파악하기 어렵다. 따라서 앞으로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산성의 축성 경위에 대해서 알 수 없다. 서산에서 당진으로 통하는 국도 32호선을 따라 당진 쪽으로 약 8㎞ 정도 가면 음암면 상홍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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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상홍리 상노치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서산시 음암면 소재지에서 서남쪽으로 약 1.6㎞ 거리에 있는 상홍리 상노치마을에 위치한다. 서산시 음암면 상홍리 상노치마을의 북동쪽에는 상홍리 산성(上紅里山城)이 있는 높이 70m 내외의 산지가 있는데, 상홍리 유물 산포지(上紅里遺物散布地)는 이 산의 서남향 사면 일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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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를 비롯한 삼국 시대 백제의 서쪽 지역을 관할하였던 지방의 중심 성(城). 사비 시기[538~660] 백제는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지방 통치 제도를 개편하였다. 수도인 사비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을 5방으로 나누고, 중심 성인 방성에 군과 현급의 성을 예속 관계로 설정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서방에는 도선성(刀先城)[역광성(力光城)]이 설치되었으며, 그 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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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에 있는 조선 시대 명종(明宗)의 태실과 비. 명종대왕 태실(明宗大王胎室)은 조선 제13대 임금인 명종[1534~1567]의 태를 모셨던 곳으로, 1538년(중종 33)에 건립되었다. 태실은 왕이나 왕실 자손의 태를 모셔 두는 작은 돌방을 말한다. 태를 모신 것을 기념하기 위한 비 3기가 함께 자리하고 있는데, ‘대군춘령아지씨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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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에 있는 고분군. 서산 부장리 고분군은 음암 임대 아파트 신축 공사 부지에 대한 문화 유적 발굴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조사 지역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 219-2번지 일대이다. 조사 지역의 자연 지형을 살펴보면, 해발 35~50m 정도의 구릉으로 주변에 대교천이 집수되는 성암저수지가 있어 구릉과 계곡부, 평야 지대 곳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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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에 있는 서산 부장리 고분군의 널무덤 목관 내에서 출토된 금동관모. 서산 부장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금동관은 4~5세기에 백제 지방의 중요 거점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는 최고의 위세품이다. 서산 부장리를 비롯하여 공주 수촌리, 천안 용원리, 익산 입점리, 나주 신촌리, 고흥 길두리 등 백제 금동관이 출토된 곳의 입지적 특성은 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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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에 있는 서산 부장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금동 신발 편. 서산 부장리 고분군 출토 금동식리는 서산 부장리 고분군 Ⅱ지점 6호분 6호 널무덤과 8호분 1호 널무덤에서 출토되었다. 백제의 금동식리는 금동관과 함께 피장자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위세품이자 장송용품(葬送用品)이다. 중앙에서 지방의 수장에게 사여하는 것으로서 피장자의 위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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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에 있는 서산 부장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금동제 이식. 서산 부장리 고분군에서는 금제와 금동제 이식이 모두 발견되었으며, 형태 면에서는 소환식 이식과 수식부 이식이 출토되었다. 백제의 이식(耳飾)은 재질이 금제(金製)나 금동제가 대부분이고, 동봉(銅棒)을 구부려 만든 후 금도금한 금동제도 있으며 은제나 청동 제품도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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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에 있는 서산 부장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자기. 서산 부장리 고분군 출토 녹유자기 사이부호편은 서산 부장리 고분군 Ⅱ지점 6호 분구묘의 주구에서 출토되었다. 삼국 중 백제는 다른 나라에 비하여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이를 반영하듯 백제 지역에서는 많은 중국 자기가 발견되었다. 중국 자기는 특히 위세품적 요소가 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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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에 있는 서산 부장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칼. 삼엽환두대도는 장식 대도의 하나로, 장식 대도는 무덤에서 출토되는 유물 가운데 가장 위력적인 성격을 지닌 무구류(武具類)이다. 하지만 화려한 장식성으로 인해 무기로서의 기능보다는 피장자의 사회적 위치와 권위를 나타내는 위세품으로 활용되었거나, 혹은 복식의 일부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백제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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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에 있는 서산 부장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철제초두. 서산 부장리 고분군 출토 철제초두는 서산 부장리 고분군 Ⅱ지점 5호 분구묘 1호 널무덤의 목곽 내에서 출토되었다. 초두는 솥의 일종으로 다리가 3개 달려 있고 몸통 중간에 긴 손잡이가 있으며, 일반적으로 술이나 약, 음식물을 데우거나 끓이는 용도로 알려져 있다. 재질에 따라서 청동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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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조선 전기 읍성. 서산읍성(瑞山邑城)은 여말 선초에 축조된 대부분의 읍성이 그러하듯이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축조되었다. 1452년(문종 2) 삼도도체찰사였던 정분(鄭苯)의 건의에 의해 축조가 시작되었다. 1452년(단종 즉위년)에 일시 중단되었다가 1475년(성종 6) 11월 축성이 완료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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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 지역에 세거한 정충신 후손가에 전래된 조선 후기 고문서. 진무공신(振武功臣) 정충신(鄭忠信)[1576~1636] 후손가에는 정충신이 받은 공신 교서를 비롯하여 고신 교지(告身敎旨), 유서(諭書), 유지(有旨), 치제문(致祭文) 등 53점이 지금까지 전해졌다. 이 고문서인 서산 정충신 문서 일괄이 2011년 7월 20일 충청남도 유형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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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시대 읍성. 서산 해미읍성(瑞山海美邑城)은 1416년(태종 16) 이후 예산 덕산(德山)에서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이 서산으로 이설된 뒤, 1652년(효종 3) 청주로 옮겨 가기 전까지 약 230여 년간 군사권을 행사하던 거점성이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해안 방비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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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조선 후기 객사. 서산시청에 있는 ‘서령군문(瑞寧郡門)’에서 남쪽으로 약 100m 직선거리에 위치한다. 서산객사(瑞山客舍)는 서산읍성(瑞山邑城) 내에 있던 객사 건물로, 가운데에 국왕의 위패를 봉안하고 매달 1일과 15일 망궐례(望闕禮)를 올리던 곳이다. 양편 익실[옆방]은 조정에서 파견된 사신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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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서산읍성의 관아문 및 외동헌. 서산읍성(瑞山邑城) 내의 건물이었던 관아문(官衙門)과 외동헌(外東軒)으로, 1867년(고종 4) 군수 오병선이 부임하면서 건축하였다. 관아문은 서산읍성의 입구 건물이며, 외동헌은 서산군에 부임하였던 수령이 근무하였다. 1917년 외동헌은 16.53㎡[5평]로 증축하였다. 관아문은 서산시청 입구에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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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에 설치된 군(郡). 서산군(瑞山郡)이 탄생하게 된 데는 고려 시대 이 지역 인물인 정인경(鄭仁卿)의 공로에서 비롯되었다. 정인경은 남송(南宋) 귀화인의 후예로 고종 때에 내침한 몽고군을 아산 지역에서 여러 차례 격파하여 큰 공을 세웠다. 이에 그는 충렬왕 대에 시종1등공신이 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부성현이 서산군으로 승격되었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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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남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두징(金斗徵)을 기리는 묘비. 김두징[1646~1678]은 성균관 생원으로 학문이 깊고 문장이 뛰어났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 탐구에만 열중하다가 32세에 세상을 떠났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김두징의 묘비에 쓰인 오석을 운반하는 데 동원된 노비가 3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김두징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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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둔당리 둔산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 서산 둔당리 지석묘는 인지면 소재지인 둔당1리에 있는 둔산마을의 서북쪽 야산 능선 상부에 위치한다. 고인돌 주변 지역은 동쪽의 풍전천 변에 넓은 충적 지대와 구릉 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확인되는 유적은 남서쪽에 둔당2리 고려장터 고인돌과 둔당리 토성산성이 있다. 서산 둔당리 지석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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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탑곡리 고양동에서 전승되고 있는 인형극. 「서산박첨지놀이」는 고려 시대부터 전승되었다고 전해지는 인형극으로,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탑곡리 고양동 주민들에 의해 시연되고 있다. 조선 시대까지도 유사한 인형극들이 전국에 산재해 시연되고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자취를 감추고 유일하게 「서산박첨지놀이」만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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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휴암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주거 유적. 유적의 존재는 마을 주민 이천호가 밭을 경작하는 과정에서 수집한 빗살무늬 토기편 등을 신고하면서 확인되었다. 이에 국립중앙박물관이 1968년부터 197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총 4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 모두 청동기 시대 주거지 11기와 야외 노지 1기, 그리고 신석기 토기편이 출토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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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서주목(瑞州牧)이 탄생하게 된 데는 고려 시대 이 지역 인물인 정인경(鄭仁卿)의 공로에서 비롯되었다. 정인경은 남송(南宋) 귀화인의 후예로 고종 때에 내침한 몽고군을 아산 지역에서 여러 차례 격파하여 큰 공을 세웠다. 이에 그는 충렬왕 대에 시종1등공신이 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부성현이 서산군으로 승격되었다가 충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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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이후 이른바 ‘4대강 사업’으로 운하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연안 해로를 중요한 교통로로서 사용해왔던 만큼 운하의 필요성이 높지 않았다. 그런데도 일찍이 태안반도에 운하를 개착한 것은 매우 특이한 사건이었다고 할 만하다. 운하 건설은 1134년(인종 2)에 처음 시작되어 1669년(현종 10)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에 걸쳐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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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석남동에 있는 구석기 시대 유적. 서산 지역의 구석기 시대 유적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대부분의 구석기 시대 유적은 지표 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적들이며, 석남동 구석기 유적(石南洞舊石器遺蹟) 또한 지표 조사를 통해 구석기 시대 석기로 추정되는 유물이 수습되어 구석기 시대 유적이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석남동 구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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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전개된 역사 이전의 시대. 우리나라에 있어 선사 시대라 함은 구석기 시대·중석기 시대·신석기 시대·청동기 시대, 그리고 초기 철기 시대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며, 약 70만 년 전부터 서력기원을 전후한 시기까지를 의미한다. 이에 반해 역사 시대는 우리나라의 경우 서력기원 전후인 삼국 시대 형성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약 2,000여 년 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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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발견된 역사 기록이 존재하지 않은 시대의 유적. 선사 유적은 선사 시대 사람들이 남긴 생활·분묘·생산 등 다양한 삶의 흔적이다. 선사 시대는 문자가 존재하지 않은 시기의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그리고 초기 철기 시대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며, 약 70만 년 전부터 서력기원을 전후한 시기까지를 의미한다. 서산 지역은 충청남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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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남아 있는 흙이나 돌로 구축된 방어 시설. 성곽이란 성(城)과 곽(郭)의 합성어이다. 성은 내성을 말하고 곽은 성의 주위를 에워싼 나성의 형태로, 우리나라는 내성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공간을 성곽으로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늘날의 서산 지역은 백제 시대 때의 기군(基郡)이 모태가 되었다. 기군은 통일 신라와 고려 시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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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령판관을 지낸 무신. 본관은 창녕. 자는 덕일(德一). 증조할아버지는 개성유수(留守)를 지낸 성세정(成世貞)이고, 아버지는 증병조참판 성진(成鎭)이다. 7촌 작은아버지가 성혼(成渾)이다. 성응길(成應吉)은 성품이 온화하였다. 이른 나이에 무과에 급제하여 30세 무렵에 판관으로 있다가 서산군수로 부임하였다. 1563년(명종 18)부터 1567년(명종 22)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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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설치되었던 특수 행정 구역. 소(所)는 각 지역에 국가가 필요로 하는 광산물, 수공업품, 해산물, 농산물 등 각종 특수 물품을 생산하는 특수한 하급 행정 구역이었다. 또한 소는 향(鄕)이나 부곡(部曲)과 마찬가지로 일반 양민이 아닌 노비·천민 등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특수한 촌락 집단이었다. 향과 부곡은 신라 때부터 시작되었지만 소는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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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소중1리 소동마을에 있는 고분. 소중리 고분군은 소동마을 입구에서 남서쪽 민가 주변의 야산에 있다. 소중리 고분군은 밭을 경작하는 과정에서 쟁기 끝에 청자 3점이 겹쳐진 상태로 걸려 나옴으로써 확인되었다. 유구의 형상을 알 수 있는 별도의 구조물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유물의 출토 상태나 주변의 지형으로 미루어 볼 때 고려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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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소중1리 소동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서산시 운산면 소중1리 소동마을 중앙에 남서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높이 30m의 야산 정상부에 위치한다. 유물의 존재는 나지막한 야산 구릉을 밭으로 개간하여 경작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간돌살촉[마제 석촉] 1점이 수습된 것으로 전하는데, 2011년 현재 유물은 확인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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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애정리에 있는 송곡서원에 소장된 자료. 송곡서원 소장 자료는 제향 인물과 관련된 것이 많은데, 주로 인물의 행적과 추배 당시의 상황을 정리한 것이다. 「5선생행장록(五先生行狀錄)」은 송곡서원에 제향된 5선생의 행장과 관련 기록을 모아 놓은 행적록으로, 창건 시 제향된 인물 4명[정신보(鄭臣保), 정인경(鄭仁卿), 유방택(柳方澤), 유백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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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수평1리 점골에 있는 야철 터.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와 수당리를 잇는 지방도 609호선 변에는 고산리, 수평리 등의 마을이 있는데, 수평리 야철 터는 수평1리 점골에 위치하고 있다. 수평리 야철 터가 자리한 곳은 고풍저수지의 동쪽에 위치한 높이 278m의 험준한 산지가 북동쪽으로 뻗어 내린 가지 능선의 말단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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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진장리에 설치되었던 진(鎭). 순성진(蓴城鎭)은 1397년(태조 6) 이루어진 지방 군제 개편에 따라 서해안 수호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진을 설치하고 지군사(知郡事)를 두어 관할하던 곳이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해안 방비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집중적으로 시행하였는데, 이는 고려 말부터 자행된 극심한 왜적의 침입에 대처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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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신상리 날새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서산시 고북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2.8㎞ 거리에 있는 신상리 날새마을 입구의 동남향 사면 구릉지에 위치한다. 신상리 유물 산포지(新上里遺物散布地)에서는 청동기 시대 간돌살촉[마제 석촉]이 출토되었다. 2011년 현재 유물 산포지로 전하는 지역은 공장 개발 과정에서 지형 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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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토기와 간석기를 사용하던 시대. 신석기 시대는 인류의 물질문화 발전 단계에서 구석기 시대 다음부터 금속기 사용 이전에 이르는 시대로서 연대로는 기원전 약 1만 년 전부터 약 1500년에 이르는 시기이다. 고전적 정의에 따르면 신석기 시대는 뗀석기를 쓰던 구석기 시대에 이어 간석기를 만들고 사용한 시대를 말한다. 신석기 시대를 정의하는 문화 요소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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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신송리에 있는 석성. 신송리 산성(新松里山城)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이 없는 만큼 누가, 언제, 어떠한 목적으로 축조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홍주목 봉수조에 “고구성산 봉수는 남쪽으로 결성현의 고산과 응하고, 서쪽으로는 서산군의 도비산과 호응한다[高丘城山烽燧南應結城縣高山西應瑞山郡都飛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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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신송리 소정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서산시 고북면 신송리 소정마을의 동쪽에 자리한 봉화산에서 서쪽으로 흘러내린 높이 40m 내외의 나지막한 구릉 지대에 위치한다. 신송리 유물 산포지(新松里遺物散布地)가 자리한 능선은 행정 구역상 홍성군과 경계를 이루는 지역이다. 신송리 유물 산포지에서는 청동기 시대 간돌살촉[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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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신송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에서 조선 시대까지 생활·분묘 유적. 2003년 대전지방국토관리청에서 시행하는 서산 해미면~홍성 갈산면 도로 건설 공사 구간에 대한 지표 조사를 통해 청동기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해당되는 유물이 수습되었다. 2007년 시굴 조사에서 청동기 시대 주거지와 백제 시대 유구가 확인되었고, 2008년 충청문화재연구원의 발굴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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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신정리 아래황골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서산시 고북면 소재지에서 국도 29호선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약 1㎞ 정도 가면 해미면과 고북면의 경계 지역에서 서쪽으로 개설된 4차선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이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약 4㎞ 정도 가면 도로 남쪽으로 서산시 고북면 신정리 2구 아래황골마을이 나온다. 신정리 유물 산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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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화원. 본관은 지곡. 자는 가도(可度), 또는 득수(得守). 호는 현동자(玄洞子), 혹은 주경(朱耕). 1619년(광해군 11) 편찬된 『호산록(湖山錄)』에 ‘본읍지곡인(本邑池谷人)’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안견(安堅)은 세종~세조 대에 도화서(圖畵署)에 소속되어 그림을 그렸던 화원이다. 특히 세종 때 활동이 활발하였다. 시와 그림, 글씨에 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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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산수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객관(客館) 터. 안흥정(海美安興亭)의 위치에 대해서는 전하는 기록마다 다르다. 송나라의 사신인 서긍(徐兢)의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마도[현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신진도리]에 있다고 하였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그 위치가 “해미현(海美縣)의 동쪽 11리” 지점이라고 나와 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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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1리 곧우실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충청남도 서북단에 위치한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곧우실마을에 자리한다. 팔봉면사무소에서 지방도 605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약 500m 내려오면 도로의 동쪽에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곧우실들 계곡이 동서 방향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 일대는 높이 350m의 팔봉산 서향 가지 능선 말단부에 해당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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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2리 대문다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충청남도 서북단에 위치한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대문다리마을에서 확인된 백자 가마터로, 서산시와 태안군을 잇는 국도 32호선의 중간 정도 부분에 위치한다.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일대는 서산과 태안을 오가는 교통의 요지일 뿐만 아니라 고려 시대 영풍창(永豊倉)이 설치되었던 지역으로, 현재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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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창개마을에 있는 고려 시대 고분군. 어송리 창개 고분군은 창개마을의 북쪽에 위치한 팔봉산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의 남향 사면 하단부에 있다. 어송리 창개 고분군은 1996년 서산문화원에서 진행한 문화재 지표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조사 당시 지역 주민들이 고분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나, 대부분 도굴 및 자연적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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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언암리에 있는 백제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생활·분묘 유적. 언암리 낫머리 유적은 서산 공군 기지 내 체력 단련장 부지에 대한 문화 유적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2005년 충청문화재연구원에서 지표 조사와 시굴 조사[시굴 면적 9만 8301㎡]를 실시하였으며, 백제 시대와 조선 시대 유구가 확인되었다. 이 중 수목 보존 지구를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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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있는 언암리 유적에서 출토된 아궁이틀. 언암리 주거지 출토 아궁이틀은 언암리 유적 나 지구 14호 주거지에서 발견된 것으로, 주거지 내부의 난방 또는 취사와 관련된 구조물이다. 언암리 주거지 출토 아궁이틀은 적갈색 경질로 정선된 점토를 사용하였다. 아궁이틀은 길이 70㎝, 너비 32㎝, 두께 2.9㎝이다. 형태는 ‘ㄱ’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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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생활 및 분묘 유적. 여미리 유적은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와 안호리의 일부 지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은봉산에서 남동쪽으로 분기되어 흘러내린 능선 말단부의 정상부와 남·북사면에 있다. 여미리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는 한국도로공사에서 시행한 서해안고속국도 건설 구간 내 당진~서천 구간의 2공구 지역에 대한 지표 조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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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유적(余美里遺蹟)에서 출토된 백제 시대 토기. 1999년 여미리 유적 13호 횡구식(橫口式) 석곽분에서 충청매장문화재연구원의 조사로 출토되었다. 병형 토기(甁形土器)는 백제 고분에서 일반적으로 출토되는 토기 기종으로 형태상 큰 차이점은 없으나, 어깨 부분에 기마 인물상이 음각으로 표현되어 있다. 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34에 소재한 국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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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점말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및 옹기 가마터. 서산시 운산면의 여미리 점말은 여미리 윗장터로도 불리는데, ‘점말’은 바로 장터의 다른 이름으로, 여미리 일대가 조선 시대 시장 혹은 도자기와 같은 수공업품 생산지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여미리 점말 백자·옹기 가마터는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마을에 있는 높이 85m의 전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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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과 운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995년(성종 14)에 운주도단련사(運州都團練使)를 두었는데 운주(運州)는 현재의 홍성군에 해당된다. 이후 운주에는 군이 3개, 현이 11개가 소속되어 있었다. 여미현(餘美縣)은 운주에 소속된 11개 현 가운데 하나였다. 여미현이라는 지명이 기록에 처음 보이는 것은 삼국 시대부터이다. 『삼국사기(三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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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지방에 대한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전국을 9주로 나누었다. 서산 지역은 웅주 소속의 부성군(富城郡)과 지금의 당진군 일대를 중심으로 한 혜성군(槥城郡)에 속한 여읍현(餘邑縣) 등으로 편제되었다. 여읍현이 위치한 운산면(雲山面) 일대는 가야산으로부터 발원한 용장천이 당진군 내를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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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백제는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방(方)·군(君)·성(城)[현(縣)]제를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지금의 당진군 일대를 관할하는 혜군(槥郡) 예하에 여촌현이 편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촌현 성립 이전 시기에도 서산 지역에는 강력한 토착 세력이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해미면 기지리 유적에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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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충청남도 서산의 역사와 문화. 한반도의 중서남부에 돌출한 태안반도에 자리한 서산은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선진 문물이 해양을 통해 충청 내륙 지방으로 전달되는 관문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마애삼존불상을 비롯한 다수의 유적과 유물이 남아있으며, 법인국사 탄문, 정인경(鄭仁卿)[1237~1305], 유숙(柳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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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역로의 교통·통신 및 숙박 시설. 역원은 전통 시대 역로(驛路)에 설치되었던 국영 숙식 시설이다. 관리가 파견되어 역마와 역로를 관할하고, 길을 지나는 관원에게 말과 숙식을 제공하였으며, 공문서의 신속한 전달과 관수 물자를 운반하는 육상 교통의 핵심 기관이다. ‘역(驛)’은 대로변에 12㎞마다 설치한 교통 통신 조직이라면, ‘원(院)’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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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에 있는 석성.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견성산은 현의 동쪽 9리에 있다”, “견성산성(犬城山城)은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9,960척이며, 지금은 폐성되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연암산성(燕岩山城) 성벽은 석축이며, 조선 초기에는 폐성된 것으로 보아 적어도 고려 시대에는 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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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 미륵골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 일대에서 확인되는 유적으로, 남서~남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미륵골 계곡의 남쪽 북사면 하단부에 해당한다. 가로림만으로 유입되는 여러 하천들과 높이 100~200m 내외의 능선들이 동~서, 남~북으로 복잡하게 형성되어 주변에 둘러져 있다. 연화리 미륵골 백자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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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열녀(烈女)와 열부(烈婦). 전통적으로 열녀란 남편이 죽어서 개가할 수 있는데도 개가하지 않는 여인을 뜻하였으나 조선 후기에 들어와 주로 상층 지식인들이 엮은 한문본 『열녀전(烈女傳)』에는 대체로 남편을 따라 죽은 소위 종사(從死) 여인들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어, 결과적으로 열(烈)과 죽음을 밀접하게 연계시키는 관습을 만들었다. 열녀 개념의 변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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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에 위치한 고려 시대 13조창(漕倉) 중의 하나. 고려 시대에는 육상 교통로가 충분히 정비되어 있지 않았다. 이를 극복하고자 선박을 통해 지방의 세곡을 중앙으로 운송하는 조운 제도가 생기게 되었다. 조운 제도의 시행을 위하여 고려는 전국에 13조창을 설치하였다. 13조창은 흥원창[원주], 덕흥창[충주], 하양창[평택], 영풍창[서산], 안흥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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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예덕2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서산시 성연면 소재지인 평리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개설된 도로를 따라 약 1.5㎞ 정도 가면 창말삼거리에 이른다. 창말삼거리에서 다시 서산시 성연면 명천리 방면으로 가다가 명천리 말우리마을에서 북쪽으로 개설된 도로를 따라 약 2㎞ 정도 가면 예덕2리 하솔마을에 다다른다. 예덕리 유물 산포지(禮德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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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예천동·읍내동에 있는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생활·생산 유적. 예천동 유적(禮川洞遺蹟)은 서산시 예천동과 읍내동 일원의 도시 개발 구역 예정 부지에 대한 문화 유적 발굴 조사[조사 면적 6만 7454㎡]를 통해 확인되었다. 도시 개발 예정 부지에 대한 지표 조사[33만 7970㎡]는 2004년 3월부터 동년 5월까지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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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오사리에 있는 고려 전기 청자 가마터. 고려 시대 이후 나타나는 여러 사회상의 변화 중 가장 획기적인 변화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일상생활 용기로 자기(瓷器)가 사용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고려 이전 시기 대부분의 일상 용기로는 거친 재질의 도기(陶器)와 함께 목기(木器)[칠기(漆器) 포함], 동기(銅器), 철기(鐵器)가 사용되고 있었는데,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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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의 여류 문인. 본관은 해주. 아버지는 오기태이고 어머니는 여흥 민씨이다. 남편은 경주 김씨 김한량이다. 오청취당(吳淸翠堂)[1704~1732]은 1704년(숙종 30) 경기도 양성[현 평택시 포승면]에서 4남 5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여섯 살에 어머니를 잃고 길러 주던 할머니마저 일찍 죽어 외롭게 컸다. 22세에 서산 음암면 유계리에 사는 김한량과 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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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석남동에 있었던 조선 시대 관청의 전답으로 왕자에게 소속된 토지. 왕자제(王子堤)의 둔전(屯田)은 서산시 석남동 망운대 아래에 위치한 둔전으로, 왕가(王家)의 대군(大君)에 소속된 궁의 전답이다. 그런데 어느 시기에 어떤 대군에게 소속되었는지는 불명확하다. 둔전은 고려 때부터 국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설치한 토지로, 왕자제의 둔전 역시 같은 목적으로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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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걸쳐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왜구가 침입한 사건. 14~15세기에 왜구는 한반도 전 지역을 위협하였다. 그 가운데 일부는 충청남도와 서산 해안 지역에도 침입하여 민생을 더욱 도탄에 빠뜨리는 결과를 빚었다. 서산에 대한 왜구의 침입은 1352년(공민왕 1)부터 기록에 등장한다. 14세기 공민왕 때는 고려가 원의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벗어나는 시기였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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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고북면과 홍성군 갈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백제는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방(方)·군(君)·성(城)[현(縣)]제를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지금의 서산 지역에는 기군과 그 영현으로 지육현(知六縣), 성대혜현(省大兮縣)의 1군 2현이 설치되었다. 반면, 현재 서산시와 홍성군이 인접한 해미면·고북면 일대를 중심으로 마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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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운산리에 있는 선사 시대 조개더미. 서산시 대산읍 소재지에서 운산리로 들어가는 도로를 따라 북동쪽으로 2㎞ 정도 가면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이 길에서 서산시 대산읍의 양지편마을 방면으로 2㎞ 정도 가면 운산2리가 나오는데, 운산리 삼박골 조개더미는 운산2리의 삼박골마을에 위치한다. 운산리 삼박골 조개더미 유적이 위치한 지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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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운산2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조개더미. 서산시 대산읍에서 동쪽으로 운산리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 약 5㎞ 정도 가면 운산리 갈마리마을이 나오며, 갈마리마을을 지나면 전백마을에 이른다. 운산리 토끼섬 조개더미 유적이 자리한 토끼섬은 서산시 대산읍 운산리 전백마을의 북쪽 해안에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조개더미 유적은 육지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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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웅도리에 있는 신석기 시대 조개더미. 서산시 대산읍 소재지인 대산리를 통과하는 국도 29호선에서 서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오지리 방향으로 가다 보면 대로리 광암마을 삼거리에 이른다. 원래는 섬이었으나 지금은 연륙교가 가설되어 육지와 교통이 순조롭다. 웅도리 조개더미 유적은 서산시 대산읍 웅도리 동편말마을의 높이 80m의 산봉우리에서 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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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웅소성리에 있는 토성. 웅소성(雄梳城)은 어리성이라고도 하는데 직접적인 기록이 없어 건립 경위를 알기는 어렵다. 다만 천수만과 가까이에 있고, 주변 지역이 원래는 바다로 되어 있었을 것을 고려해 볼 때, 바다 즉 항해와 관련된 산성이 아닌가 한다. 서산시 해미면에서 국도 29호선을 타고 서산 쪽으로 약 3㎞쯤 가다 보면 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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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의 소속 군현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땅. 월경지는 소속 읍과 따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군현(郡縣)의 특수 구역이었다. 월경지라는 독특한 행정 구역이 존재했던 것은 큰 고을의 물자 조달 문제와 관련이 있다. 즉 월경지는 소속된 고을과 경계를 접하지 않고 다른 지역에 동떨어져 있지만 조세는 당연히 소속 고을에서 거두었다. 이것은 과거의 연고지, 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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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에 있는 청동기·조선 시대 주거 유적. 유계리 유적(遊溪里遺蹟)은 기존에 위치한 현대모비스 자동차 부품 센터 부지를 주변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2004년 중앙문화재연구원에서 지표 조사를 진행하여 유적의 존재 가능성을 추정하였고, 이후 2005년 2월 18일부터 동년 3월 18일까지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시굴·발굴 조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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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유생. 본관은 서령(瑞寧)[서산]. 아버지는 유침(柳忱)이다. 유민수(柳敏遂)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향촌에서 살면서 공부하였던 유생이다. 풍채가 좋고 마음 씀씀이가 공명정대하여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거짓이 없었다. 1582년(선조 15) 고경명(高敬命)이 서산군수로 부임한 뒤 서산 군내 20세 이하의 청년 30여 명을 뽑아 가르쳤다. 이들을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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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인이자 학자. 본관은 서령[서산]. 자는 자계(子繼), 호는 태재(泰齋). 아버지는 유기(柳沂)이고 어머니는 한산 이씨로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를 지낸 이종덕(李種德)의 딸이다. 아들은 유윤경(柳允庚)과 유윤겸(柳允謙)이다. 유기는 태종이 제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보위에 오르는 데 협력한 공으로 1401년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 3등에 책봉된 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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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 서산 출신의 천문학자. 본관은 서령[서산(瑞山)]. 호는 금헌(琴軒). 서령부원군 유성간(柳成澗)의 6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유굉(柳宏)이고, 아버지는 유성신(柳成臣)이다. 부인은 예조판서 손애(孫埃)의 딸이다. 자식은 유백유(柳伯濡)·유백종(柳伯淙)·유백순(柳伯淳) 세 아들과 딸 둘을 두었다. 서산의 서령 유씨는 대부분 유방택[류방택, 柳方澤]의 셋째 아들인 유백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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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 서산 출신의 문신. 유백순(柳伯淳)[?~1420]은 조선 개국 후 어지러운 정치 질서를 바로잡고, 왕권을 강화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학문과 경서에 뛰어나 성균관대사성을 지냈으며 많은 문하생을 배출하였다. 또한 효경과 절의로 이름이 높았다. 본관은 서령[서산]. 호는 위촌(葦村). 아버지는 유방택[류방택, 柳方澤]이고, 형은 유백유(柳伯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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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서령[서산]. 자는 순부(淳夫), 호는 저정(樗亭). 아버지는 유방택[류방택, 柳方澤]이고, 동생은 유백순(柳伯淳)이다. 유백유(柳伯濡)는 동생 유백순과 함께 이색(李穡) 밑에서 공부하였는데, 사람들은 형제를 ‘유씨쌍벽(柳氏雙璧)’이라고 불렀다. 유백유는 목은이색의 손서(孫壻)이다. 유백유는 춘추관수찬으로 박실(朴實)·김도(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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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문화. 자는 성부(聖夫). 태종 때 우의정을 지낸 충경공(忠景公) 유량(柳亮)의 12세손으로, 아버지는 통정대부 유광록(柳光綠)이다. 부인은 밀양 박씨와 평양 조씨이다. 슬하에 유세욱(柳世郁), 유세흥(柳世興) 형제와 딸 하나를 두었다. 증손자는 유홍(柳泓)이다. 유사(柳泗)[1599~1636]는 20세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훈련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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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서령[서산]. 증조할아버지는 조선 초 천문학자였던 유방택[류방택, 柳方澤]이고, 할아버지는 성균관대사성을 지낸 유백순[류백순, 柳伯淳]이다. 서산의 토착 성씨인 서령 유씨 중에는 고려 말 조선 초의 정치적 혼란기에 관직을 버리고 은둔한 이들이 많았다. 특히 유백순-유사종(柳嗣宗)으로 이어지는 서산 지역의 서령 유씨들은 여말 선초의 절의계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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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에 정착했던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서령[서산]. 이칭은 유성재(柳成梓). 문화 유씨의 시조인 유차달(柳車達)의 9세손으로, 밀직(密直) 유순(柳淳)의 아들이다. 이제까지 나왔던 자료에서는 서령 유씨는 유성간(柳成澗) 대에 문화 유씨에서 분적하였고 유성간을 서령 유씨의 시조로 보았으나, 17세기 중반 조종운(趙從耘)[1607∼1683]이 편찬한 통합보『씨족원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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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유숙(柳淑)[1324~1368]은 고려 후기 공민왕을 호종하여 정국을 이끈 당대 주요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1340년(충혜왕 1) 과거에 급제한 뒤 연경에서 공민왕을 호종하였고, 즉위 초 정국의 안정을 도모하는 데 기여하였다. 특히 홍건적이 침입하자 또 다시 왕을 호종하여 남행하였고 이에 공신으로도 책록되었다. 관직이 첨의평리(僉議評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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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서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서령[서산]. 정당문학[고려 시대 중서문하성에 설치된 종2품의 관직]을 지낸 유성간(柳成澗)의 6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서령부원군 유성계(柳成桂)이며, 아버지는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유숙(柳淑)이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이 재차 침입해 오자 왕이 안동으로 피난하였고, 그때 왕을 호종하던 유실(柳實)은 그 공을 인정받아 공신으로 책록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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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서령[서산]. 아버지는 유회(柳淮), 할아버지는 저정(樗亭) 유백유(柳伯濡)다. 서령 유씨는 고려 때 서산 지역에 정착한 토착 성씨다. 유윤(柳潤)[?~1476]은 생원시에 합격하여 벼슬살이를 시작했으나, 1455년 단종이 폐위되자 관직을 버리고 청주 무동[현 충청북도 청원군 강외면 연제리]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세조가 여러 차례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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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서령[서산]. 자는 형수(亨叟). 할아버지는 유기(柳沂)[?~1410]이고 아버지는 유방선(柳方善)[1388~1443]이다. 서령 유씨는 고려 후기 및 조선 초기에 서산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 세거 성씨이다. 하지만 유기가 태종의 처남 민무구(閔無咎)·민무질(閔無疾)의 옥사에 연루되어 해남에 유배되었다가 사사되고, 아들 유방선·유방경(柳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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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관아의 서리. 유윤당(柳潤塘)의 가계는 구체적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호산록(湖山錄)』에 ‘전춘(全春), 경준(景俊) 형제도 비록 서리라고 하나 천성이 양순하고 착하여 집에 살면서 모친을 봉양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관리들이 모두 피란을 가 버렸지만 구실아치인 유윤당은 서산 관아에 남아 예부터 전해져 오는 문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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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충신. 본관은 서령[서산]. 자는 입부(立夫). 서산의 유력 성씨인 서령 유씨 유백순(柳伯淳)[?~1420]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성균진사 유방익(柳邦翼)이며, 형은 유경립(柳景立)이다. 유지립(柳之立)[1555~?]은 1575년에 사마시에 합격했고 1579년(선조 12) 25세에 생원 3등 54위로 입격하였다. 사마방목에 나타나는 서산 거주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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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서산에 정착하여 활동한 교육자. 본관은 기계. 자는 천일(千一), 호는 존재(存齋). 아버지는 유치섬(柳致暹)이다. 유진하(兪鎭河)[1846~1906]는 1846년(헌종 12) 8월 4일 경기도 고양군 벽제[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에서 태어났다. 1865년 20세가 되던 해에 이미 학문으로 명성을 떨쳤는데, 권세가를 가까이 하지 않으면 관직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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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회이(晦爾), 호는 야당(野堂). 할아버지는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을 도와 명랑해전에서 공을 세운 충경공 유형(柳珩)이고, 아버지는 이괄(李适)의 난을 진압한 진무이등공신 진양군 유효걸(柳孝傑)이며, 어머니는 의령 남씨로, 3남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외조부 역시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운 진무이등공신 남이흥(南以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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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유학자. 유형손(柳亨孫)은 1480년(성종 11)에 서산에서 태어났다. 품은 기질과 용모가 수려하여 주변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하였다. 평생 천성이 강직하고 의젓하며 행동하는데 법도가 있고 점잖아 도리를 잃지 않으므로 큰일을 잘 결정지을 수 있었다. 때문에 향당 사이에 결정짓기 어려운 일이 있으면 모두들 찾아와 유형손에게 의견을 묻고 수렴하여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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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서령[서산]. 할아버지는 유기(柳沂)[?~1410]이고 아버지는 유방경(柳方敬)이다. 삼촌은 유방선(柳方善)[1338~1443]이고, 사촌동생은 유윤겸(柳允謙)[1420~?]이다. 유휴복(柳休復)은 일찍이 삼촌인 유방선에게 두보(杜甫)의 시를 배웠다. 이에 1443년(세종 25) 사촌동생인 유윤겸과 함께 『두시언해(杜詩諺解)』 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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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흥원(興源). 아버지는 광해군 때 공조참의를 지낸 윤응시(尹應時)이다. 아들은 윤은성(尹殷聖)으로, 경학을 숭상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무송 윤씨의 주요 세거지는 태안군 소원면 시목리로, 윤사(尹泗) 이후에도 많은 후손들이 풍부한 학식과 바른 품행으로 지역민들의 귀감이 되었다. 윤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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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흥보(興甫), 호는 경당(敬堂). 5대조 윤사(尹泗)와 고조부 윤은성(尹殷聖)은 인품과 학문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할아버지 윤여대(尹汝大)는 당쟁을 피하여 고향에 은거하였다. 아버지 윤재(尹梓)는 성현의 책읽기를 좋아하였으며, 품행이 바른 문인이었다. 또한 현손 윤호(尹昊) 등 많은 후손들이 풍부한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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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홍양일기(洪陽日記)』의 저자. 본관은 파평. 아버지는 윤선필(尹善必)이다. 윤시영(尹始永)[1855~?]은 1891년(고종 28) 문과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가주서, 홍문관교리, 홍문관부수찬, 중학교수, 양호선무사종사관, 부안현감, 홍문관시독, 비서원승을 지냈다. 1902년(고종 39) 함흥에서 민란이 일어나자 안핵사(按覈使)로 파견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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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 윤찬구 가(家)에 소장되어 있는 윤시영(尹始永)의 일기와 관련 문서. 윤시영(尹始永)[1855~1913]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1891년(고종 28) 문과 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다 1902년(광무 6) 함흥 민요(民擾)에 안핵사(按覈使)로 파견되어 수령의 장부(臧否)를 조사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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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임백(任伯), 호는 도천(道川) 또는 수본재(守本齋). 할아버지 윤응시(尹應時)는 광해군 때 공조참의에 올랐던 문인이자 관료였으며, 아버지 윤사(尹泗)는 강직한 성품과 문학적 재능으로 유명한 문인이었다. 무송 윤씨의 주요 세거지는 태안군 소원면 시목리로, 증손인 윤재(尹梓)와 현손인 윤선무(尹宣茂) 등 많은 후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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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자간(自幹), 호는 화산(華山). 고조부 윤사(尹泗)와 증조부 윤은성(尹殷聖)은 학행으로 이름났으며, 아버지 윤여대(尹汝大)는 당쟁을 피하여 고향에 은거하였다. 또한 아들 윤선무(尹宣茂) 대에 이르러서도 깊은 학식과 바른 품행으로 고을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다. 무송 윤씨의 주요 세거지는 태안군 소원면 시목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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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있는 송곡서원에 제향된 고려 말 충신. 본관은 남원(南原). 호는 후송(後松). 할아버지는 합문지후예조전서(閤門祗候禮曹典書)를 지낸 윤영찬(尹英贊)이고, 아버지는 도평의록사(都評議錄事)를 지낸 윤수균(尹守均)이다. 부인은 지안주사(知安州事)를 지낸 이광필(李光弼)의 딸 신평 이씨다. 윤황(尹璜)은 고려 말 조선 초에 살았던 문신이다. 고려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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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율목리 장작울마을에 있는 토성. 율목리 산성(栗木里山城)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이 없으며, 발굴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건립 경위는 알 수 없다. 서산에서 지방도 649호선을 타고 성연면 쪽으로 8㎞쯤 가다 보면 음암면과 성연면의 경계를 이루는 모가울고개가 나오는데, 율목리 산성은 모가울고개의 동쪽에 솟아 있는 성재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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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에서 은을 캐냈던 광산. 조선 전기에 조정에서 은광을 발굴하기 위해 특별히 서산 지역에 은장(銀匠)을 보내 은을 채굴하게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417년(태종 17) 해미현 호장(戶長) 김연(金鍊)이 지곡현(地谷縣)에 은돌[銀石]이 있다고 보고하자, 관가에서 이를 확인하고 파내어 납 1근 8냥을 녹여 정련하니 백은(白銀) 1전 3푼가량이 나왔다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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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도당리 음암중학교에 소장된 유물. 음암중학교 소장 유물은 선사 시대 유물로서 반달돌칼, 돌도끼, 홈자귀, 석촉 등이 있다. 이들 유물들은 음암 지역의 선사 시대 유적지에서 수습된 것이다. 음암중학교 소장 유물은 모두 15점으로, 삼각형 반달돌칼 1점, 파손된 반달돌칼 1점, 돌도끼 3점, 홈자귀 1점, 돌끌 1점, 석제품 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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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백제 고분군. 읍내동 고분군은 서산시 읍내동의 북서쪽에 있다. 고분군이 위치한 곳은 봉화산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가지 능선의 말단부에 해당되는 낮은 구릉 지대로서 지형 변화로 인하여 독립된 구릉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읍내동 고분군은 읍내동 공동주택 신축 부지에 대한 지표 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2006년 충청문화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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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의 서산시청 앞에 있는 조선 후기부터 현대까지 건립된 31기의 비석. 읍내동 비석군은 조선 후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산 지역과 관련 있는 인물들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비석들이다. 원래 서산 지역 곳곳에 위치하던 것을 관리상의 이유로 한 곳에 모아 두었다. 서산시 읍내동 서산시청 앞에 조성된 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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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건립된 8기의 비석. 읍내리 비석군은 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까지 해미 지역과 관련 있는 인물들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비석들이다. 원래는 해미면의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관리상의 이유로 한 곳에 모아 두었다. 이와 같이 비석군은 통상적으로 해당 지역에 도로 공사가 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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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귀부석. 읍내리 귀부석(邑內里龜趺石)의 건립 경위나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근거는 없으나, 형태적으로 보았을 때 2기의 귀부석이 동일 시기에 만들어지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서산시청 정문 앞에 있는 서산관아문(瑞山官衙門) 정면의 동쪽과 서쪽에 귀부석 2기가 나란히 서 있다. 원래 위치는 아니지만 개발로 인한 훼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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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 아버지는 변성군(邊城君) 이계연(李繼連)이다. 변성군은 정종(定宗)[1357~1419]의 10남인 덕천군(德泉君)의 증손자로, 광주목사를 지낸 서산 송씨 송효명(宋孝命)의 손녀와 혼인한 후 처가가 있는 서산시 음암면 신장리로 거처를 옮겨 서산의 전주 이씨 입향조가 되었다. 이후 전주 이씨 후손들은 서산시 수석동과 음암면 신장리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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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지역을 목으로 승격시켜 달라고 상소를 올린 인물. 본관은 알려지지 않았고, 아버지는 이산(李山)이다. 이상(李相)은 고려 시대 이후 서산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온 토착 세력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성씨 조에는 지곡과 인정에 토착 성씨인 이씨가 살고 있다고 적혀 있다. 지방의 행정 체제 개편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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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전주 이씨 사족. 본관은 전주. 전주 이씨 덕천군파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유인(李惟仁)이다. 어머니는 경주 최씨이고 아들은 이호익과 이우익을 두었다. 장남 이호익은 사마시 생원에 급제하였고, 차남 이우익은 선조때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좌랑에 올랐다. 이순(李淳)은 향촌에 살면서 사족을 단속하고 향촌의 질서 유지에 힘썼다. 『호산록(湖山錄)』에는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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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증조할아버지는 변성군(邊城君) 이계연(李繼連)이고 아버지는 이유직(李惟直)이다. 이계연이 광주목사를 지낸 서산 송씨 송효명(宋孝命)의 손녀사위가 되는 연원으로 서산에 입향하게 되었다. 이원길(李元吉)[1580~1636]은 무과 급제 후 초계군수, 함종현령, 봉산군수 등을 지냈다. 1636년(인조 14) 봉산군수 재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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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 자는 중약(仲約). 변성군(邊城君) 이계연(李繼連)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비인현감(庇仁縣監)을 지낸 이학수(李鶴壽)이다. 동생은 충청병사를 지낸 이유직(李惟直)이다. 이유검(李惟儉)[1538~1592]은 1564년(명종 19)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순찰사 김수(金睟)는 초계군수 이유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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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 정종의 6세손으로 전주 이씨 덕천군파 종실의 후손이다. 부인은 경주 최씨이다. 아들은 이순(李淳)이고, 손자는 사마시 생원 이호익과 문과 급제 후 병조정랑에 오른 이우익이다. 이유인(李惟仁)은 서산의 음암면 신장리와 도당리에 모여 살았던 전주 이씨 덕천군파 종실의 후손이다. 문관으로 적순부위(迪順副尉)를 지냈다. 그는 향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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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 자는 중온(仲溫). 전주 이씨 변성군(邊城君) 이계연(李繼連)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비인현감(庇仁縣監)을 지낸 이학수(李鶴壽)다. 형은 임진왜란 당시 패전의 책임을 지고 억울하게 효수당한 김해 수문장 이유검(李惟儉)이다. 이유직(李惟直)[1552~?]은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한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전관으로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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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태소(太素), 호는 서암노인(西巖老人). 선성군(宣城君) 이무생(李戊生)의 7세손으로, 아버지는 호조참판에 증직된 이정방(李定邦)이고, 어머니는 부사를 지낸 조기(趙祁)의 딸이다. 부인은 청송 심씨이다. 아들은 이택(李澤)과 이연(李沇)이다. 이진백(李震白)[1622~1707]은 1657년(효종 8) 35세에 사마시에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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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 자는 운몽(雲夢). 정종의 넷째 아들인 선성군(宣城君)의 8세손으로, 할아버지는 호조참판에 증직된 이정방(李定邦)이며, 아버지는 참판 이진백(李震白), 어머니는 청송 심씨이다. 동생은 이연(李沇)이다.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는 전주 이씨들의 동족 마을로, 이곳에 세거하는 전주 이씨를 속칭 ‘예미 이씨’라고도 부른다. 전주 이씨가 서산시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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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이택(李澤)을 기리는 신도비. 이택[1651~1719]은 정종(定宗)의 넷째 아들인 선성군(宣城君)의 후손으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평안도 병마절도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이택 신도비는 1731년(영조 7)에 건립되었다. 운산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647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약 1㎞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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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일람리에 있는 구석기 시대 유적. 서산 지역 대부분의 구석기 시대 유적은 지표 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적들이다. 일람리 구석기 유적(日藍里舊石器遺蹟) 역시 지표 조사를 통해 구석기 시대로 추정되는 유물이 수습되어 구석기 시대 유적이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일람리 구석기 유적은 서산시 성연면 일람리 냇가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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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일람리에 있는 청동기·조선 시대 주거 유적. 일람리 유적(日藍里遺蹟)은 그동안 구석기 유적 출토지로 전해져 오던 지역이다. 유적이 자리한 지역 일대에 서산시 국도 대체 우회 도로 음암~성연 간 도로 개설이 예정되면서, 2004년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당시 기존에 알려진 구석기 시대 관련 유적과 조선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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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충청남도 서산시를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전국을 통일한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조선에 가도입명(假道入明)을 요구하면서 1592년(선조 25) 4월 13일 부산포 상륙을 시발로 조선을 침략하였다. 이에 조선은 관군과 각처에서 모집된 의병 등이 총력전을 펼쳤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명(明)이 개입하여 조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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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잠홍동에 있는 구석기·통일 신라·조선 시대 유적. 잠홍동 유적(潛紅洞遺蹟)은 서산시 잠홍동 742-1번지 일대의 아파트 신축 예정 부지에 대한 발굴 조사를 통해서 확인되었다. 지표 조사[3만 2529㎡]는 2004년 2월 2일부터 동년 4월 20일까지 한서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하였다. 시굴 조사[3만 2529㎡]는 같은 해 11월 10일부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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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실직(實職) 또는 송산(松山). 고려 말의 문신인 정을보(鄭乙輔)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공조참판에 오른 바 있는 정윤표(鄭允彪)이고, 어머니는 양주 송산 출신의 기계 유씨(杞溪兪氏)이다. 아들은 정홍인(鄭弘仁)이다. 정건(鄭謇)[1554~?]은 사헌부집의(執儀) 벼슬을 지낼 때 친족인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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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출신으로 조선 제21대 왕인 영조(英祖)의 계비. 본관은 경주. 경주 김씨 김한구(金漢耉)[1723~1769]와 원주 원씨의 장녀이다. 김한구는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종하였고, 황해도관찰사를 지내다 강옥 사건(姜獄事件)으로 장살당한 김홍욱(金弘郁)의 현손이다. 김한구 가문은 경주 김씨의 양대 명문으로, 추사 김정희(金正喜)를 비롯하여 8명의 정승과 정순왕후를 배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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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가 망한 후 고려에 망명해 서산에 살았던 중국인. 서산 정씨의 시조. 부인은 고창군부인 오씨로, 고창[현 덕산]의 세력가였던 오세재(吳世才)의 손녀딸이다. 아들은 정인경(鄭仁卿)·정준경(鄭俊卿)이다. 아들 대에 서산을 본관으로 하사받아 서산 정씨의 시조가 되었다. 정신보(鄭臣保)는 송나라에서 상서형부원외랑(尙書刑部員外郞)을 지냈으며, 몽골의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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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정유재란 당시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사족들이 일으킨 의병 운동.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났을 때 서산 지역에서 직접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른 여러 군현과 마찬가지로 서산의 사족들은 의병을 일으키거나 관리로서 전투에 참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호산록(湖山錄)』에는 정유의병을 일으킨 사람들로 유흡(柳洽)·곽설(郭說)·한효순(韓孝純)[1543~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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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서산. 자는 춘수(春叟). 아버지는 송나라가 망하자 고려로 귀화한 정신보(鄭臣保)이다. 이후 정신보는 서산에 정착하여 살았다. 어머니는 고창군부인 오씨이고, 부인은 양주군부인 진씨이다. 동생은 정준경(鄭俊卿)이다. 정인경(鄭仁卿)[1237~1305]은 1254년(고종 41) 과거에 급제하고, 1256년 원나라의 침입을 물리치고 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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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서산 출신의 공신인 정인경(鄭仁卿)이 받은 공신 녹권. 정인경[1237~1305]은 고려 원종 대에 태자인 심(諶)[훗날 충렬왕]을 호종하여 두 차례 원나라에 입조하였다. 1261년(원종 2) 쿠빌라이 즉위 축하 사절로서 입조하는 태자를 호종하였고, 섭교위(攝校尉)의 직에 있던 1269년(원종 10)에는 호위무관 겸 통역관으로 태자를 시종하였다. 특히 귀국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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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공신인 정인경(鄭仁卿)의 묘지명. 정인경 묘지명은 1306년(충렬왕 32) 2월에 제작되었다. 정인경[1237~1305]은 서산에서 중흥조(中興祖)와 같이 추앙되며 존경받는 인물이다. 정인경은 몽고 침략기인 고종 말년에 내침한 몽고군을 아산 지역에서 공격하여 전공을 세웠다. 그 이후 무반으로 입신하여 즉위 이전의 충렬왕을 호종하여 두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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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서산 출신의 공신인 정인경(鄭仁卿)의 인사 기록. 양렬공(襄烈公) 정인경[1237~1305]은 아버지인 남송 관인 정신보가 1237년(고종 24) 서산에 정착함에 따라 서산에 살게 되었다. 정인경은 고종 말년에 내침한 몽고군을 아산 지역에서 공격하여 전공을 세우고 무반으로 입신하였다. 몽고어에 능통하여 외교적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장군, 상장군, 삼사사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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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정자동에 있는 고려 시대 고분군. 정자동 고분군은 정자동과 대문다리마을의 경계에 해당되는 띠앗골 능선의 서향 사면 중앙부에 있다. 정자동 고분군은 1996년 서산문화원에서 진행한 문화재 지표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고분 2기가 도굴된 상태로 지표상에 노출되어 있었는데, 유물은 수습되지 않았다. 현지 주민들의 말에 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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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정자1리 초막골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서산시 고북면 소재에서 남서쪽으로 1㎞ 정도 가면 정자1리의 초막골마을에 이른다. 정자리 유물 산포지(亭子里遺物散布地)는 서산시 고북면 양천리와 정자1리의 경계 지점인 초막골에 조성된 과수원 부지에 해당한다. 수습된 유물은 청동기 시대 석기로, 북쪽으로 흘러내린 높이 30m의 낮고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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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괄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충청남도 서산 일대의 토지를 사패지로 받은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 고려 말의 명장 정지(鄭地)의 9세손으로, 아버지는 금천군(錦川君) 정윤(鄭綸)이다. 어머니는 영천 이씨(永川李氏)로 이인조(李仁祚)의 딸이다. 부인은 하양 허씨(河陽許氏)이다. 아들은 정빙(鄭砯)이다. 정충신(鄭忠信)[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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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인 정충신(鄭忠信)의 묘. 정충신[1576~1636]과 부인 하양 허씨(河陽許氏)의 묘가 나란히 있으며, 주위에 묘비·상석·망부석·무인석·동자상 등이 있다. 정충신 묘는 진충사에서 약 600m 떨어진 국사봉 남향 사면에 있다. 정충신 묘역은 1633년(인조 11)에 정충신이 아들 정빙(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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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진충사(振忠祠)에 보관된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유품. 정충신[1576~1636]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활약하여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정충신 장군 유품은 총 5종으로 영정(影幀) 1점, 갑옷 1착, 서군사명기(西軍司命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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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진충사에 보관된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갑옷. 정충신 장군 유품[갑옷]은 1978년에 국가민속문화재 제36-2호로 지정되었다. 정충신[1576~1636]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활약하여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갑옷의 바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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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진충사에 보관된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사명기(司命旗). 정충신 장군 유품[서군사명기]은 1978년에 국가민속문화재 제36호-3로 지정되었다. 정충신[1576~1636]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활약하여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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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진충사에 보관된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영정(影幀). 정충신 장군 유품[영정]은 1978년에 국가민속문화재 제36-1호로 지정되었다. 정충신[1576~1636]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활약하여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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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진충사에 보관된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향로(香爐). 정충신 장군 유품[향로]은 1978년에 국가민속문화재 제36-4호로 지정되었다. 정충신[1576~1636]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활약하여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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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는 진충사에 보관된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향합(香盒). 정충신 장군 유품[향합]은 1978년에 국가민속문화재 제36-5호로 지정되었다. 정충신[1576~1636]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다.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활약하여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향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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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정해현은 현재의 서산시 해미면 지역에 해당된다. 고려 태조 때에 고구현(高丘縣)의 땅을 분할하여 정해현이 만들어졌다. 995년(성종 14)에 운주도단련사(運州都團練使)를 두었는데 운주(運州)는 현재의 홍성군에 해당된다. 운주에는 군이 3개, 현이 11개가 소속되어 있었다. 정해현은 운주에 소속된 11개 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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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 호는 지산(芝山). 할아버지는 정윤표(鄭允彪)이고, 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정건(鄭騫)이다. 정홍인(鄭弘仁)은 서산 지공(芝公)에서 출생하여 지산이라는 호를 썼다. 광해군[재위 1609~1622] 때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인조 때 이조참판을 지냈으며,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임금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으로 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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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평양. 고려 충선왕(忠宣王) 때의 공신 정숙공(貞肅公) 조인규(趙仁規)의 9세손이다. 조광국(趙匡國)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전관으로 신립(申砬)을 도와 출전하였다. 당시 삼도도순변사(三道都巡邊使)였던 신립을 도와 충주 탄금대(彈琴臺)에서 배수진을 치고 북상해 오는 왜군과 접전하였으나 4월 28일 고니시 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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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평양. 자는 희보(熙甫), 호는 낙분당(樂分堂). 고려 충선왕(忠宣王) 때의 공신 조인규(趙仁規)의 후손으로 아들 형제를 두었다. 조목(趙穆)은 연일현감[연일은 현 경상북도 포항]으로 재직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두 아들과 함께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 바칠 것을 맹세하였다. 조목 부자가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의병을 모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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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서산 지역은 서로 독립적인 행정 구역이었던 서산군과 해미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리고 서산군과 해미현은 독자적인 역사 문화적 배경과 기반을 지니고 있었다. 서산군은 본래 백제의 기군(基郡)이었으나 통일 신라 때 부성군(富城郡)으로 고쳐졌다. 이어 고려에 들어서도 그대로 이어지다가 지서산군사(知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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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서산 지역에 평양 조씨가 이거하게 된 계기를 마련한 인물. 본관은 평양. 정숙공 조인규(趙人規)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조호(趙瑚)[?~1410]이다. 조아(趙雅)의 후손으로는 『여지도서(與地圖書)』와 1927년에 발간된 『서산군지(瑞山郡誌)』에 그 행적이 기록 된 조후윤(趙後尹)·조후량(趙後亮) 형제가 있다. 조후윤은 선전관으로 병자호란에 참여하였다 전사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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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평양(平壤). 아버지는 정로위(定虜衛)를 지낸 조경록(趙景祿)[1542~?]이다. 조안방(趙安邦)은 서산 출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수레를 호종하였다. 선조의 행차가 영유[현 평안남도 평원군]에 이르렀을 때 특별히 실시한 무과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여 선전관겸비변사낭청(宣傳官兼備邊司郞廳)을 역임하였다. 안동판관(安東判官)에 부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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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현물로 거둬들인 조세를 중앙으로 운반하던 제도. 조운은 조전(漕轉)·조만(漕輓)·해조(海漕)라고도 한다. 주로 내륙의 수로(水路)나 해로(海路)를 이용하였다. 내륙의 수로를 이용하는 경우는 수운(水運) 또는 참운(站運), 해로를 이용하는 경우는 해운(海運)이라고 하였다. 서산은 개경으로 이어지는 서해 연안 항로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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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수초(守初), 호는 용호(龍湖) 또는 정곡(鼎谷). 할아버지는 증판서 조연손(趙連孫)이고 아버지는 조준수(趙俊秀)다. 부인은 용인 이씨로 이신충(李藎忠)의 딸이다. 둘째 아들은 병조판서를 지낸 조계원(趙啓遠)이다. 조존성은 증좌찬성 조남(趙擥)에게 입양되었다. 조존성(趙存性)[1554~?]은 성혼(成渾)·박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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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양주. 자는 선계(善繼), 호는 청호(聽湖). 할아버지는 좌참찬 조사수(趙士秀)이고, 아버지는 조지(趙摯)이다. 조존세(趙存世)[1562~?]는 1582년(선조 15) 생원시에 합격하고, 1590년 증광별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92년 예문관봉교 겸 춘추관기사관이 되어 『명종실록(明宗實錄)』의 찬수에 참여하였다. 한성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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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평양. 자는 성천(聖天), 호는 연소(蓮巢). 고려 충선왕 때의 공신인 조인규(趙仁規)의 후손으로, 여러 대에 걸쳐 태안 풍천촌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조의석(趙毅錫)이고 어머니는 파평 윤씨이다. 조존화(趙存華)[1804~1889]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글을 잘 지어 고을에서 이름을 떨쳤다. 평생 독서와 시부(詩賦) 공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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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산 출신의 유학자. 조회영(趙懷瑛)은 아들 삼형제를 두었는데, 큰아들은 영암군수을 지낸 조경록(趙景祿)이고, 둘째 아들은 부여현감을 지낸 조경희(趙景禧)다. 조회영의 형 조회침 역시 재주가 좋고 기개가 높았던 인물로 21세 때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조회영은 서산 읍내에 살았다. 용모가 단정하고 의젓하였으며, 근검절약하여 재력가가 되었다. 애써 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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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평양. 서산에 평양 조씨(平壤趙氏)들이 세거하게 된 계기를 마련한 조아(趙雅)의 후손이며, 병자호란 당시 충청감사 진영에서 전사한 조후윤(趙後尹)의 동생이다. 조후량(趙後亮)은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자 임금을 호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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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평양. 서산에 평양 조씨(平壤趙氏)들이 세거하게 된 계기를 마련한 조아(趙雅)의 후손이며, 병자호란 당시 인조를 호종하였던 조후량(趙後亮)의 형이다. 조후윤(趙後尹)[?~1636]은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에 나아갔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선전관(宣傳官)으로 참여하여 충청감사의 진영으로 나아갔으나 그 곳에서 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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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대. 주산봉수(主山烽燧)는 봉수 노선과 성격상 조선 시대 봉수 중 제5거 간봉(間烽) 노선의 11번째 연변 봉수(沿邊烽燧)였다. 주변에 있는 다른 봉수와 마찬가지로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 판단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주산봉수는 동쪽으로 해미현(海美縣) 안국산 봉수(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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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대산읍·성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지곡현은 현재 서산시 지곡면, 대산읍, 성연면 일대에 해당된다. 고려 시대에 현재 서산시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부성현(富城縣)에는 속현이 2개 있었다. 지곡현은 소태현(蘇泰縣)과 함께 부성현에 소속되어 있었다. 지곡현이라는 지명이 기록에 처음 보이는 것은 삼국 시대부터이다. 『삼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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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백제는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방(方)·군(君)·성(城)[현(縣)]제를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지금의 서산시 전체를 관할하는 기군(基郡) 예하에 지육현(知六縣)이 편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제 편입 이전에 서산은 마한의 치리국국(致利鞠國)이 위치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지육현(知六縣) 설치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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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진장1리 진산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서산시 팔봉면 진장1리 진산마을에 위치한다. 지형상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평풍산[175m]에서 서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의 남동향 사면 중·하단부에 자리한다. 진장리 유물 산포지(榛檣里遺物散布地)에서는 1970년대 새마을 사업을 실시하는 도중 간돌도끼[마제 석부]가 출토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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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창리 은안티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서산시 부석면 창리 일원은 부남호를 사이에 두고 서쪽으로 태안반도를 마주하고 있는 지역으로, 인지면으로부터 시작하여 남서 방향으로 향하는 낮은 구릉성 산지의 말단부에 해당하는 곳이다. 본래 지형은 구릉성 산지의 사면 하단부가 바다와 닿아 있었지만, 일제 강점기 이후 대대적인 간척 사업으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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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창리 창촌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창고 터. 창리(倉里) 창촌(倉村)은 조선 시대 세곡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던 지역이며,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조운을 통해 운반되는 세곡의 저장 공간이었고, 또한 배를 만드는 창고인 선박소의 기능도 하였다. 창촌 창터는 1800년대에 편찬된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 화변면 왜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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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조선 전기 천문학자 유방택(柳方澤)[류방택이 제작한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은 1395년에 석재에 새겨진 천문도로, 1247년에 제작된 중국의 순우천문도(淳祐天文圖)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되었다. 우리가 무심코 보았던 1만 원짜리 지폐에 나와 있을 정도로 귀중하지만 그간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다가 근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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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청동기로 도구를 만들어 쓰던 시대. 청동기 시대는 인류의 물질문화 발전 단계 중 청동으로 연모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때로부터 철기를 만들어 쓰기 직전까지의 시기이다. 즉 청동기 시대는 석기 시대와 철기 시대의 중간에 해당하는 시대로서 구석기 시대 및 신석기 시대와 함께 선사 시대로 분류되며 조사를 통해 다양한 삶의 형태를 살필 수 있는 주거와 분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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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의 여류 시인인 오청취당(吳淸翠堂)이 지은 한시를 모아 박종규가 편찬한 시집. 『청취당집(淸翠堂集)』은 충청남도 서산의 시인 오청취당[1704~1732]이 생존해 있을 때 창작했던 한시 작품들을 그녀의 외손자[청취당 사후 남편 김한량의 세 번째 부인 파평 윤씨의 외손]인 박종규가 수집·정리하여 1803년(순조 3) 12월 하순에 편찬하였다. 박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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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이 국가 체제를 정비하기 이전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삼국이 국가 체제를 정비하기 이전의 시기에 대해 고고학계에서는 ‘원삼국 시대’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원삼국 시대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는 실제로 한강 이남의 유적·유물에 한정되었다. 또한 역사 발전 단계상 큰 차이가 있는 고구려와 삼한의 문제, 원삼국 시기를 과연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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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초록리에 있는 고분군. 초록리 고분군은 고북면 소재지를 통과하는 옛 국도 29호선에서 동쪽으로 난 농로를 따라 가구리 방향으로 가다 보면 이르게 되는 신촌마을에 있다. 초록리 고분군은 1996년 서산문화원에서 진행한 문화재 지표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고분군은 연암산에서 서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의 말단부에 해당하는 표고 5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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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초록리 1구에 있는 조선 시대 토기 가마터. 초록리 토기 가마터는 서산시 고북면 초록리 신촌마을 인근의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아직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사례가 없으며, 『서산시지』와 『문화유적분포지도』에 간략한 정황이 서술되어 있다. 초록리 토기 가마터는 서산시 고북면 초록리 신촌마을의 계곡 안쪽에서 확인되었는데, 험준한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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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 훈련참봉을 지낸 최몽전(崔夢鸇)이 아들이다. 최린(崔麟)은 무과에 급제한 후 남포현감[현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을 지냈다. 고향인 서산에 내려와 고을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친족들과도 화목하게 지냈다. 매사 온유하고 겸손하여 많은 고을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고 따랐다고 한다. 아들이었던 최몽전은 훈련참봉을 지냈으나 재상에게 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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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정려가 있는 조선 후기 충신. 본관은 경주. 자는 계명(啓明), 호는 율암(栗庵). 증조할아버지는 병마절도사 최인(崔隣)이고 할아버지는 최안세(崔安世), 아버지는 최확(崔確)이다. 어머니는 유경심(柳景深)의 딸이다. 최몽량(崔夢亮)[1579~1627]은 1612년(광해군 4) 진사시 2등에 합격하였고, 1617년(광해군 9)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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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부성군[현 서산시] 태수를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경주. 자는 고운(孤雲) 또는 해운(海雲). 최치원(崔致遠)[857~?]의 세계(世系)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아버지 최견일(崔肩逸)이 원성왕의 원찰인 숭복사(崇福寺)의 창건에 관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최치원은 신라 육두품 출신 중 가장 대표적인 학자이다. 868년(경문왕 8) 당나라로 유학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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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이자 공신.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복초(復初), 호는 송천(松泉). 증조부는 영의정을 지낸 최항(崔恒)이고, 할아버지는 최영호(崔永灝), 아버지는 전첨(典籤) 최수진(崔秀珍)이다. 어머니는 이세신(李世臣)의 딸이다. 최흥원(崔興源)[1529~1603]은 1555년(명종 10) 소과를 거친 후 1568년(선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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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한 신하. 충신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떨쳐 일어나 일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목숨을 바친 인물을 일컫는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 활동을 한 서산 출신의 충신으로는 김호열(金好說)[1534~?], 이유검(李惟儉)[1538~1592], 강효윤(姜孝胤), 유지립(柳之立)[1555~?], 문성해(文成海)[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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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서산 해미읍성에 설치되었던 조선 시대 충청병마절도사영(忠淸兵馬節都使營). 조선 초기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은 원래 덕산(德山)에 설치되었다가, 왜구의 잦은 침략에 대한 방비와 서해안의 수호가 중요시되면서 1417년(태종 17) 이후 해미로 이설되었다. 해미로 옮겨진 이후, 충청병마절도사영으로 개칭되었고 1652년(효종 3)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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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마한의 소국. 기원전 3~2세기 무렵 한반도 중·남부 경기·충청·전라 지역에서는 세형동검 문화의 발전 및 점토대토기의 파급과 함께 다수의 소국으로 구성된 마한 연맹체가 새롭게 성장·발전하였다. 기원후 3세기 후반 무렵에 편찬된 중국의 역사서인 『삼국지(三國志)』 한조(韓條)에는 마한에 54개 소국이 있었다는 사실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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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칠전리 사기점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서산시 부석면 칠전리는 부남호를 사이에 두고 서쪽으로 태안반도를 마주하고 있는 지역으로, 인지면으로부터 시작하여 남서 방향으로 향하는 낮은 구릉성 산지의 말단부에 해당하는 곳이다. 칠전리 사기점 백자 가마터가 확인되는 지역은 서산시 부석면 칠전리 사기점마을에 위치한 야산의 서사면 말단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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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임시로 설치한 태안군 치소. 태안군은 고려 후기인 1373년(공민왕 22)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한 화를 모면하기 위해 서산으로 치소(治所)를 이전하게 된다. 현재 서산시의 어느 곳에 위치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19, 충청도 태안군(泰安郡) 궁실(宮室)조에서 관련 내용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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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6년 태종이 현재의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일대인 해미현에 머문 사건. 1416년(태종 16) 2월 16일 태종이 도비산에서 사냥을 하고 해미현에 머물렀다. 이 기록은 『태종실록(太宗實錄)』에 단 한 줄의 기록으로 남아 전할 뿐이다. 『태종실록』에 왕이 도비산에 사냥을 나왔다가 해미현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보인다. 당시 순행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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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출토된 흙을 빚어 불에 구워 만든 용기. 토기는 흙을 이용하여 형태를 만들고 한뎃가마[노천요]에서 대략 500~1,000℃ 내외의 불에 구워서 만든 용기이다. 유약을 바르고 1,300℃ 이상에서 구운 용기를 자기라고 부르는데, 유약을 바른 자기를 제외하면 대부분 토기라고 부른다. 토기의 사용은 과거 수렵·채집 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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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둔당리에 있는 토성. 토성산성(土城山城)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이 없으며, 발굴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건립 경위는 알 수 없다. 서산에서 부석으로 통하는 지방도 649호선을 타고 부석면 쪽으로 3㎞쯤 가다 보면 인지면 인지초등학교에 닿게 되는데, 인지초등학교 옆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서북쪽으로 1㎞쯤 더 나아가면 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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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통일 신라 시대는 신라가 신라·당 전쟁에서 승리하고 삼국을 통일한 676년부터 후백제가 건국한 901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그러나 북쪽의 발해(渤海)[698~926]와 남쪽의 통일 신라가 병립했던 점에 주목하여 남북국 시대로 부르기도 한다. 삼국 통일과 함께 서산 지역에는 웅주(熊州) 부성군(富城郡)과 지육현(地育縣)·소태현(蘇泰縣)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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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화곡리 반곡마을에 설치되었던 진(鎭). 평신진(平薪鎭)은 1711년(숙종 37)~1895년(고종 32)에 충청도 북서부 해안을 수호한 진으로, 종3품의 첨사가 관할하였다. 또한 평신진은 목장까지 관리하는 겸목관 체제를 채택하였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해안 방비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집중적으로 시행하였다. 더욱이 서산과 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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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멸망 후 당군(唐軍)에 의해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660년 백제는 신라·당 연합군에 의해 수도인 사비성이 함락된 직후 멸망하였다. 당은 백제 고지(故地)에 대한 지배 야욕을 드러내며 행정 구역을 개편, 5도독부를 설치하였으나 백제 부흥군의 활동으로 실질적인 지배는 실현하지 못하였다. 이에 당은 백제 부흥군을 진압하고 664년 웅진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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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인 김홍욱(金弘郁)의 시문집. 김홍욱[1602~1654]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이며, 1635년(인조 13) 문과에 급제하였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인조를 호종하였다. 1654년(효종 5) 황해도관찰사로 있을 때 소현세자(昭顯世子)의 비인 민회빈 강씨(愍懷嬪姜氏)의 억울함을 상소했던 이른바 강옥사건(姜獄事件)으로 인해 장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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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7년 충청남도 서산에서 일어난 전패(殿牌) 도난 사건. 1817년(순조 17) 서산에서 전패(殿牌)가 도난당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이에 대한 처분이 『순조실록(純祖實錄)』에 기록되어 있다. 전패는 모든 군현의 객사에 보관되는 임금을 상징하는 물건이므로 매우 엄격하게 관리되었으므로 이것을 훔쳤다는 것은 역모의 혐의를 받을 만한 심각한 사건이었다. 당시 실록의 기록이 매우 단편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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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호산록(湖山錄)』을 집필한 서산 출신의 문인. 본관은 청주. 증조할아버지는 한윤련(韓允璉)이고, 할아버지는 한익(韓翼), 아버지는 한영희(韓暎憙)[1518~?]이다. 어머니는 담양 전씨이다. 아들은 『호산록』을 완성한 한여현(韓汝賢)[1571~?]이다. 한경춘(韓慶春)은 청주 한씨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 족보에 올라 있고, 아들 한여현의 과거 급제 방목에 청주 한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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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호산록(湖山錄)』을 집필한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 자는 현재(賢哉). 증조할아버지는 한익(韓翼)이고, 할아버지는 한영희(韓永禧), 아버지는 한경춘(韓慶春)이다. 한영희의 진사 급제 사마방목에는 본관이 ‘면천’으로 되어 있다. 면천은 현재 당진의 남부 지역으로 각종 지리지의 면천 성씨 조에 한씨가 올라 있다. 청주 한씨의 서산 입향조는 고려 후기 서산 사지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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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인. 본관은 청주. 자는 희중(熹仲), 호는 우재(愚齋). 증조할아버지는 한서정(韓瑞貞)이고, 할아버지는 한윤련(韓允璉), 아버지는 충순위를 지낸 한익(韓翼)이다. 아들은 한경춘(韓慶春)이고, 손자는 한여현(韓汝賢)[1571~?]이다. 한영희(韓暎憙)[1518~?]의 진사 급제 사마방목에는 본관이 ‘면천’으로 기록되어 있다. 면천은 서산과 인접한 당진의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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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향리. 본관은 면천. 고려 시대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낸 한자희(韓自禧)의 후손이다. 아들 한인국(韓仁國)[1552~?]은 1591년(선조 24) 신묘식년시에 생원 3등 24위로 급제하였다. 한우(韓雨)는 서산 지역에서 여러 해 구실아치의 우두머리인 호장(戶長)을 지냈다. 공평하게 일처리를 한 덕분에 그가 호장을 지내는 동안 구실아치들 사이에 잡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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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독립 운동가인 김상정(金商玎)의 문집. 『한월빙설(寒月氷雪)』은 김상정[1875~1954]의 아들인 김홍제(金洪濟)가 김상정의 글을 모아 번역하여 1984년에 간행하였다. 초기에 초판본을 찾는 사람이 많았지만 간행한 지 오래되어 배포할 수 없자, 2010년 서산문화원에서 『한월빙설』 500부를 더 간행하였다. 총 388쪽이며, 크기는 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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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 아버지는 한서정(韓瑞貞)이다. 한서정은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토벌하는 토포사(討捕使)에 임명되었으나 가지 않아 귀양살이를 하였다. 후에 북방우후(北方虞侯)에 제수되었다. 어머니는 전주 이씨로 영의정을 지낸 이배(李裵)의 딸이다. 부인은 문화 유씨로 현감을 지낸 유석정(柳碩汀)의 딸이다. 서산의 청주 한씨는 입향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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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서산 지역의 세거 성씨인 청주 한씨의 입향조. 본관은 청주. 아버지 한홍서(韓洪瑞)는 고려 충선왕 때 벼슬이 판도판서(判圖判書) 추밀원직학사에 이르렀으며, 하정사(賀正使)로 원나라에 들어갔다가 원나라의 관저에서 세상을 떠났다. 서산 지역에서 청주 한씨의 가계를 잇는 것은 한정덕(韓正德)의 아우인 한정수(韓正粹)의 후손들로, 한서정-한윤련(韓允璉)-한익-한영희(韓暎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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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최초로 서산에 입향한 청주 한씨 입향조. 본관은 청주. 할아버지는 고려 때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낸 한준(韓浚)이며, 아버지는 군기감사(君器監事)를 지낸 한경선(韓敬善), 어머니는 판관 구연(具珚)의 딸 능성 구씨이다. 부인은 해주 최씨로 고성군수 최광준(崔光俊)의 딸이다. 아들로는 판서를 지내고 서산에 입향한 한정덕(韓正德)과 예조참판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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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문신이자, 서산시 해미면 양림리 청주 한씨의 입향조. 한효순(韓孝純)[1543~1621]은 기축옥사(己丑獄死)에 연루되어 1590년(선조 23)에 파직되자, 같은 해 8월 지금의 서산시 해미면 양림리에 은거하였다. 이 일대에 선대에 하사 받은 땅이 있었는데 작은 농사(農舍)를 짓고 정착했다고 하며, 서산 강씨 강효윤(姜孝胤)의 딸을 후취 부인으로 맞았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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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서산 해미읍성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비석. 해미읍성 비석군은 박민환(朴民煥)이 1847년(헌종 13)에 해미현감겸영장으로 부임하여 1848년 9월까지 쇠퇴해진 해미읍성을 중수한 사실과 선정을 기념하기 위해 1849년(헌종 15)에 마을 주민들이 건립하였다.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의 북동쪽에 있는 서산 해미읍성의 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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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오학리에 있는 해미향교에 소장된 자료. 해미향교는 조선 초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하고, 해미현 지역민들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국가에서 건립한 교육 기관이다. 해미향교는 1407년(태종 7)에 건립된 것으로 전해지며, 대성전과 명륜당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해미향교 소장 자료는 문서류, 현판류, 비석 등으로 다양하다.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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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충청남도 서산의 정해현과 여미현을 합친 현. 해미현(海美縣)은 정해현(貞海縣)과 여미현(餘美縣)을 합한 서산 지역의 옛 지명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정해현은 고려 태조 때 몽웅현(夢熊縣)의 아전 한씨(韓氏)가 큰 공이 있어 대광(大匡)의 작호를 내리고, 홍주(洪州)의 속현이었던 고구현(高丘縣)[현재의 서산시 해미면(海美面)·고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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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충청남도 서산에서 풍속 교정과 향리 규찰 등 수령을 보좌하던 자문 기구. 향서당(鄕序堂)은 조선 전기에 향리(鄕吏)를 규찰하고 향풍을 바로잡기 위하여 지방의 품관(品官)들이 조직한 자치 기구이다. 이를 유향소(留鄕所)·향사당(鄕射堂)·향청(鄕廳)·향소청(鄕所廳) 등이라고도 한다. 서산에서는 유향소를 향서당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 이유가 『호산록(湖山錄)』에 기록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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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호리에 있는 신석기 시대 조개더미. 서산시 팔봉면 소재지에서 호리 방면으로 지방도 605호선을 따라 약 5㎞ 정도 가면 팔봉초등학교 호리분교가 나온다. 호리 조개더미 유적은 초등학교 뒤편으로 난 농로를 따라 서쪽으로 약 1㎞ 정도 떨어진 해안가에 위치한다. 지표에서 회색 연질 토기편과 회청색 경질 토기편, 조선 시대의 자기편이 발견되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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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호리에 있는 조선 전기 석성.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에 따르면 호리성(虎里城)은 1516년(중종 11)에 석성으로 축조되었으며, 둘레는 1,337척이고 높이는 11척이며, 그 안에 우물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서산과 태안은 삼면이 바다로 되어 있어 해적이 왕래하는 요충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비한 진영을 설치하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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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충청남도 서산의 별호(別號). 서산이 호산(湖山)으로 불리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기원이 무엇인지는 확실하게 전해지지 않는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된 서산의 또 다른 이름은 기군(基郡)·부성(富城)·서령(瑞寧)·서주(瑞州)이며, 조선 후기의 지리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도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호산에 대한 고증은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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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 충청남도 서산 지역을 근거지로 하여 활동한 지방 토착 세력. 통일 신라의 쇠퇴와 더불어 지방 세력이 급성장하기 시작했고, 9세기 후반 이후 후삼국 시대에서 고려 전기에 이르는 시기에는 지역마다 호족이라 불리는 세력가들이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당시 서산 지역에서도 호족 세력의 지배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이나, 호족과 관련된 구체적인 양상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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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화곡2리 산수골에 있는 고려 시대 청자 가마터. 화곡리 청자 가마터는 충청남도 최서북단에 위치한 대산반도의 북쪽 끝자락인 대산읍 화곡리 산수골 일대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서산시 대산읍의 독곶과 대호방조제를 잇는 국도 29호선의 중간 부분 정도에 유적이 위치하는데, 서쪽을 향해 ‘Y’자 형태로 갈라지는 화곡리 산수골 계곡의 곡간 능선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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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화수리에 있는 토성. 화수리 산성(花秀里山城)은 서산시 관내의 다른 산성과 마찬가지로 흔적이 불분명하여 산성인지조차 의심스럽기 때문에 건립 경위 또한 분명하지 않다. 산성이라면 천수만을 지키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서산에서 태안으로 통하는 국도 32호선을 타고 태안 쪽으로 4㎞쯤 가면 인지면 화수리 양지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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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 3구 아랫말에 있는 조선 시대 토기 가마터. 화천리 아랫말 토기 가마터는 북서쪽으로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와 연접해 있는 화천리 화동골 초입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화동골 북쪽에 위치한 낮은 구릉성 산지의 남향 사면 하단부에서 확인되었는데, 주변 지형이 대부분 밭 경작으로 인해 훼손된 상태이며, 경작지를 중심으로 토기편과 가마 소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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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읍 황락리 일락골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서산시 해미면 황락리 일락골 황락저수지에 유입되는 황락천을 따라 오르면 황락리 절골, 산수리 등으로 이어지는 소로들이 나뉜다. 소로가 나뉘기 시작하는 부분의 북쪽에 위치한 남향 사면 하단부가 황락리 일락골 가마터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아직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사례가 없으며, 『서산시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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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향임(鄕任). 본관은 밀양. 아버지는 판중추부사를 지낸 황진(黃璡)이다. 외삼촌은 중종 때의 명신 진우(陳宇)[?~1535]와 진식(陳寔)[1519~1568]이다. 황유성(黃有誠)은 오랫동안 수령을 보좌하는 자문 기관인 유향소(留鄕所)의 향임으로 활동하였다. 풍속을 바로잡고 향리를 감찰하며, 민의를 대변하는 향임의 역할에 충실하여 백성들에게 불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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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효성으로 어버이를 잘 섬긴 자녀. 효자는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섬기는 자식을 일컫는다. 효(孝)는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정성껏 모시는 것뿐만 아니라 사망한 뒤에도 극진히 제사를 모시는 것 등을 포함한다. 조선 사회에서는 가정에서의 효도를 국왕의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지배 이념으로 보아서 적극 장려했다. 반대로 불효하거나 역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