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후기 삼척 출신 무관 김복만(金福萬)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다. 자는 양원이며, 호는 송헌(松軒)이다. 김복만은 1724년(경종 4) 무과에 급제하여 참의(參議)를 지냈다....
-
조선 후기 삼척 지역의 자선가. 김순필(金淳弼)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며 김인궤(金仁軌)의 후손이다. 김순필은 벼슬길을 멀리하고 농사에 매진하면서 황폐한 땅을 개간하였다. 특히 개간하기 어려운 들판을 찾아 경인(庚寅)년 봄에 그와 뜻을 함께하는 동지들과 더불어 도수로를 만들었다. 새롭게 관계수로를 보수하고 다듬고 개척하는 한편 논을 개간하여 막대한 몽리(蒙利)...
-
현대 강원도 삼척 지역 교육가, 문화예술인. 김영준(金榮俊)[1934~1996]의 본관은 김해이며, 부친 해은(海隱)김병수(金炳洙)와 모친 고일봉(高一奉) 사이의 7남 2녀 가운데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영준은 1934년 강원도 춘성군[현재 춘천시] 동산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삼척으로 이주하여 삼척국민학교와 삼척공업고등학교를 거쳐 동국대학교에서 공부하였...
-
근현대 강원도 삼척 출신 정치인. 김진구(金振九)[1906~1987]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동생은 7선 국회의원인 동곡(東谷)김진만(金振晩)[1918~2006]이다. 김진구는 1906년 강원도 삼척군[현 동해시] 송정동에서 출생하였다. 1927년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백곡농장(百谷農場)을 경영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광복과 동시에 격렬히 다툰 좌·...
-
조선 후기 삼척 지역 여종. 김창분(金昌分)은 진세기(秦世基)의 여종(女婢)이다. 진세기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김창분은 주인 진세기가 자식도 없이 죽자 그 주인을 위하여 3년 동안 수묘(守墓) 살이를 하며 진세기의 묘를 지켰다. 이후 나라에서 이 일을 알고 정려(旌閭)하였으며, 신기리(新基里)에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김창분의 묘는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서하...
-
조선시대 삼척 지역에서 활동한 자선가. 남상렬(南尙烈)의 본관은 양양(襄陽)이다. 자는 중호(仲鎬)이고, 호는 소산(笑山)이다. 통정대부(通政大夫) 남한(南澣)의 손자이다. 남상렬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인자하고 문필에 능하였다고 전해진다. 남상렬의 인자한 성품과 문필은 이웃 마을에까지 전해져서 칭송이 자자하였다. 남상렬은 또 의리를 숭상하였으며, 측은지심(惻隱之...
-
조선 후기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활동한 자선가. 박지생(朴芝生)은 진사 박세영(朴世榮)의 손자이고, 향노(鄕老) 박영백(朴苓百)의 5세손이다. 아들로 박사철(朴斯哲)이 있다. 박지생의 자(字)는 무숙(茂叔)이고, 호(號)는 동은(東隱)이다. 박지생은 북삼 홍월평[현 동해시 이도동]에 수로를 개척하고 홍월평을 넓게 개간하여 백성들이 그 은혜를 보았기 때문에 부사...
-
조선시대 삼척 지역의 충노. 석복(石福)은 역리(驛吏) 김덕령(金德岭)의 노복(奴僕)으로, 지금의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옥원리(沃原里)에 살았다. 주인 김덕령은 나이가 칠십이 되도록 자식이 없었는데 가세가 급격히 기울면서 헐벗고 굶주리게 되었다. 자식이 없다보니 의탁할 곳마저 없었다. 그럼에도 노복인 석복은 김덕령의 곁을 떠나지 않고 날품팔이를 해서 옷과 음식을 공급하는...
-
강원도 삼척시 출신 학자이자 정치인. 장을병은 성균관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계엄에 저항하는 등 민주화 투쟁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로 인하여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강제 해직된 뒤 1984년 성균관대학교에 복직하였다. 1991년부터 1995년까지 성균관대학교 총장을 지냈으며, 국회의원으로 현실 정치에 참여하였다가 정계를 은...
-
조선 후기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활동한 자선가. 최상화(崔相和)의 본관은 강릉이다. 자는 중신(重信)이고, 호는 도은(桃隱)이다. 최상화는 효자 최진후(崔鎭厚)[1603~1676]의 후손이다. 최상화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인자하고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다. 또 남 돕기를 좋아하여 집안과 이웃의 가난한 자를 도와 주었다. 어려워서 결혼하지 못한 자가 있으면 그...
-
조선 후기 삼척 지역에서 활동한 자선가. 최한(崔澣)은 1705년(숙종 31) 동지와 함께 흥학회(興學會)를 결성하였다. 그런 뒤 1722년(경종 2) 4월 안동김씨김상헌(金尙憲)[1570~1652]의 후손인 첨정(僉正) 김양겸(金養謙)이 삼척으로 유배를 온다. 김양겸은 유배를 와서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렸다. 하루는 먹을 것을 얻으로 나갔다가 길 가운데에서 쓰러졌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