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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에 소재하고 있는 봉수터. 가곡산 봉수는 원덕 해안으로 침투해 오는 적에 대한 방어와 연락 체계를 갖추어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밤에는 횃불을 들고 낮에는 연기를 피우는 방법으로 주요 사항을 전달함으로써 주변 마을 주민들에게 빠르게 알림과 동시에 경비, 통신 수단 역할을 한 중요 국방 시설이 있던 곳이다. 『세종실록』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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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도호부 관내 봉산과 관양산의 송감(松監) 및 산직 명단. 『각면송감직안』은 1858년(철종 9) 1월 당시 삼척도호부 관내 봉산과 관양산에 해당하는 각 산의 감관과 산직 명단이다. 겉표지에 ‘관상(官上)’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삼척도호부에서 업무에 참고하기 위하여 자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규격은 24.0⨯9.8㎝이다. 형식은 8면 접철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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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도호부 각 면의 면주인(面主人) 명단. 『각면주인안』은 1858년 1월 현재 삼척도호부 산하 12면의 면주인 명단이다. 겉표지에 ‘관상(官上)’이라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삼척도호부에서 업무 참고용으로 자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규격은 28.5⨯11.0㎝이다. 형식은 6면 접철이며, 지질은 저지(楮紙)이다. 문서 겉과 안의 표제는 ‘함풍팔년정월일각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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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도호부 산하 풍헌·면임 명단. 1858년 1월 현재 삼척도호부 산하 12개 면 풍헌 23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또 속지에는 같은 해 6월 현재 12개 면 면임 23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표지에 ‘관상(官上)’이라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삼척도호부에서 업무 참고용으로 자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각면풍헌안』의 규격은 23.8⨯12.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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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성북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산성. 갈야산성은 삼척 지역의 토착 세력인 실직씨의 유허라고 전해지고 있다. 갈야산성에서 신라 고분이 발견되어 신라 때 개축된 후 고려 중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갈야산성 기록은 『여지도서』, 『증보문헌비고』, 『대동지지』 등에 나타난다. 이 가운데 『증보문헌비고』에서는 “북 2리의 산 위에 있는 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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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삼척 지역 열부. 경주김씨(慶州金氏)는 사인(士人) 김치선의 딸이고, 전용탁(全龍鐸)의 처이다. 경주김씨는 18세에 전씨 집안으로 시집가서 시부모와 남편을 모시기에 정성을 다하였다. 그러나 결혼 후 1년이 지나자 남편이 중병에 걸려서 남편의 병치료에 온 정성을 다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남편은 사망하였다. 경주김씨는 혼절을 몇 번이나 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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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에 건립된 사우. 경행사우는 17세기 때 삼척에 건립된 사우로, 김효원을 봉안하였다가 나중에 서원이 된 뒤 삼척부사 허목을 추봉하였다. 1868년에 훼철된 뒤 복원되지 못하였다. 1631년(인조 9) 지방 유림의 공의로 김효원(金孝元)[1542~1590]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삼척 교리북정산(北亭山) 밑에 사우(祠宇)인 경행사(景行祠)를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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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조가 지속되던 시기의 삼척 지역 역사와 문화. 757년부터 삼척군으로 존재해 오던 삼척 지역은 고려시대에 들어와 995년 척주로 명칭이 개칭되고 읍격이 군에서 주로 승격되었다가 1018년 삼척현으로 강등되었다. 그러나 고려 말인 1376년에 다시 삼척군으로 승격되었다. 고려 태조 왕건은 개국과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지방 세력의 향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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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은 공양왕이 피살됨으로써 고려가 멸망한 곳이며, 조선 건국을 암시한 태조이성계의 5대조 묘가 있는 지역. 강원도 삼척지역은 고려 멸망과 조선 건국의 묘한 인연이 만나는 곳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이성계가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을 이곳 삼척에서 살해[공양왕의 사망과 관련하여서는 교살설(絞殺說)과 사사설(賜死說)이 전해진다.]하였다. 이성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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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강원도 삼척 지역 일대를 그린 지도. 조선시대의 삼척 지역을 공간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게 표현한 지도는 『신증동국여지승람』류의 지리지에 삽입된 지도와 함께 조선 후기에는 삼척 지역을 다양한 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그린 지도들이 만들어졌다. 대부분의 지도들은 강원도 전체 속에서 삼척 지역을 살펴볼 수 있는 지도로 그려졌다. 그러나 「해동지도」에서의 삼척도호부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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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도호부 소속 관노비 명단. 『관노비관안』은 경인년 6월 현재 삼척도호부에 소속된 관노비 명단이다. 삼척도호부에서 업무에 참고하기 위하여 자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규격은 27.2⨯14.0㎝이다. 형식은 8면 접철이며, 지질은 저지(楮紙)이다. 겉표지의 제목은 ‘관노비관안(官奴婢官案)’으로 되어 있으나 본문 첫머리에는 ‘경인유월일관노비관안(庚寅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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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울에서 양평-원주-강릉-삼척-울진을 거쳐 평해에 이르는 도로. 조선시대 서울 도성에서 망우리를 거쳐 양평[당시는 양근, 지평]-원주-안흥[횡성 강림면]-방림[평창]-진부[평창]-횡계[평창]-대관령-강릉-삼척-울진-월송진[울진]-평해까지 이르는 도로이다. 『증보문헌비고』에 따르면 9개 대로 가운데 하나였다. 총 거리는 서울에서 885리였다. 조선 전기는 주로 농업을 위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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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팔경의 하나로, 강원도 삼척시오십천 절벽 위에 자리한 누정. 삼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가운데 하나가 죽서루이다. 오십천 절벽 위에 자리한 보물 제213호 죽서루는 우리나라 대표 누각이기에 삼척의 상징이 되었다. 죽서루는 건물 자체의 오래된 역사나 웅장함뿐만 아니라 주변의 뛰어난 경관으로 말미암아 사시사철 시인과 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풍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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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과 관련하여 건치연혁, 풍속, 성씨, 토산 등의 내용이 영역별로 간략하게 실려 있는 관찬 지리지. 역대 관찬 지리지 가운데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관동지』, 『관동읍지』, 『강원도지』에서의 삼척군(三陟郡) 서술에 대한 편찬 체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454년(단종 2)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는 『세종장헌대왕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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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에 있는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 이보혁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 이보혁(李普赫)[1684~1762]이 선정(善政)을 베푼 덕을 기리고자 1734년(영조 10)에 세웠다. 이보혁은 조선 후기의 문신(文臣)이다.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성원(聲遠)이다. 좌의정 이세백(李世白)[1635~1703]의 재증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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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에 있는 강원도관찰사 한익상의 선정비. 조선시대 강원도관찰사 한익상이 선정을 베푼 덕을 기리고자 1836년(헌종 2)에 세웠다. 현재 1980년에 옛 비석의 내용을 그대로 새겨서 만든 비석과 함께 도로변에 나란히 세워져 있다. 한익상(韓益相)[1767~1846]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서원(西原)[지금의 청주]이다. 초명은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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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하장 지역의 뜻있는 인사들이 펼친 구휼 활동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 금옥첨원불망비는 삼척 하장 지역의 유력 인사들이 백성들을 구휼한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1870년(고종 7) 금옥첨원비를 세웠다. 현재 세워진 비석은 1984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비문 내용은 그동안의 비석 중건 과정과 현재 비석을 다시 세운 경위에 대하여 간략하게 소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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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교동 광진산에 소재하고 있는 봉수터. 광진산 봉수는 삼척 후진·광진·정라진·오분리 해안으로 침투해 오는 적에 대한 방어와 연락 체계를 갖추어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밤에는 횃불을 들고 낮에는 연기를 피워 주요 사항을 전달함으로써 주변 마을 주민들에게 빠르게 알림과 동시에 경비, 통신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한 국방상의 중요한 시설이 있던 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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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광태리에 있는 성터. 광태리 고성은 일명 ‘부남고성(府南古城)’이라고도 불린다. 신평마을의 구릉 산지 해발 65~15m에 입지하고 있으며, 근덕면 지역 최대 하천인 마읍천(麻邑川)의 강안에 인접해 있다. 이 성의 내력과 관련하여 김종언(金宗彦)의 『척주지(陟州誌)』, 심의승(沈宜升)의 『삼척군지(三陟郡誌)』, 최만희(崔晩熙)의 『진주지(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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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에 소재한 역. 교가역(交可驛)은 조선 초기 3개 역로 가운데 평릉도에 속한 역의 하나이자 삼척도호부에 속한 5개 역 가운데 하나였다. 18세기 교가역은 찰방이 주재하는 평릉도 본역이었다. 조선 초기 강원도의 역은 보안도(保安道), 대창도(大昌道), 평릉도(平陵道) 등 3개 역로에다 속역이 57개였다. 그러다가 고려 말 조선 초에 여러 곳의 역을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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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뗀석기를 도구로 만들어서 사용하던 시대. 구석기시대는 인류가 유인원(類人猿)에서 진화하여 도구를 제작 및 사용하기 시작한 단계에서부터 농경이나 목축 또는 토기 제작이 시작되기 이전까지의 문화 단계로, 고인류(古人類)가 등장하는 약 250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를 말한다. 지질학상으로 신생대 제4기 갱신세(更新世)[홍적세(洪績世)]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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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교가리 692-11 관덕정에 있는 조선시대 평릉도의 교가역을 관리한 역대 찰방들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 조선시대 평릉도(平陵道)[조선시대 강릉, 삼척, 울진, 평해 지역에 있던 16개 역을 관장하던 역도(驛道)]의 소관 중심역이던 교가역(交柯)[1475년 평릉역에서 이전, 1896년 폐지]의 찰방(察訪)[조선시대 각 도의 역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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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과 원덕면 지역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 고분군. 근덕면 지역에는 궁촌리 고분군과 교가리 고분이 알려져 있다. 궁촌리 고분군은 마을 남쪽으로 흐르는 추천천(秋川川) 하류역의 북쪽에 형성된 해발 25~40m 안팎의 야트막한 3개의 구릉성 산지에 고분군 A·B·C가 각각 입지하여 분포하고 있다. 이 가운데 고분군 B는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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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 조선 선조, 광해군 때의 삼척 지역 유생으로, 삼척향교의 동무와 서무를 지었다. 본관은 강릉이고, 아버지는 김인지(金仁祉)이다. 그러나 가계는 자세하지 않다. 자는 계순(啓純)이며, 1606년(선조 39) 생원시에 합격하여 정온(鄭蘊) 등과 함께 사마방목(司馬榜目)에 올랐다. 당시 박세신(朴世信)이 삼척향교의 재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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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문신. 김경정(金景淨)의 본관은 강릉이며, 참봉 김효뢰(金孝賚)의 증손이다. 가계는 자세하지 않다. 조선 인조 대 문신이다. 음서(蔭敍)로 금부도사(禁府都事)를 거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使)에 올랐다. 예학(禮學)에 밝아 1604년(선조 37)에 정대춘(鄭大春), 김성건(金誠鍵) 등과 더불어 삼척 지역에서 여씨향약(呂氏鄕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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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의 향현. 김계건(金啓鍵)은 장례원(掌隷院) 사평(司評) 김인복(金仁福)의 아들이다. 형은 김기건(金起鍵), 동생은 김득건(金得鍵)이다. 김계건의 초명은 용건(用鍵), 자는 이계(而啓), 호는 호해정(湖海亭)이다. 1660년(현종1) 생원시에 급제하였다. 강원도 관찰사에게 건의하여 삼척향교의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를 건축하였다. 저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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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삼척 출신 무관. 김광유(金光裕)의 호는 돈재(遯齋)이며, 삼척김씨 시조 김위옹(金渭翁)의 후손이다. 김광유는 고려공민왕 때 관창신교위 비순위겸후령 중랑장(中郞將)으로서 홍건적을 평정한 공을 인정받아 보리공신(輔理功臣)에 책봉되었다. 김광유는 장수로서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승리하고 돌아왔기 때문에 왕이 김광유의 장렬함에 감탄하였으며, 그 공로를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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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김구정(金九鼎)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다. 1738년(영조 14)에 후손인 김효윤(金孝胤)이 효자비각 내의 퇴락한 비석에 대신하여 새로 세운 비석이 있다. 김구정은 1674년(현종 15)에 현종 국상을 당하자 3년 동안 상복을 한결같이 입었다고 한다. 또 모친의 병세가 위독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흘려 넣었는데 모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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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향현. 김구혁(金九爀)[1798~1859]의 본관은 강릉이다. 아버지는 칠암공(七巖公)김종집(金宗鏶), 어머니는 강릉최씨이다. 김구혁의 자는 군직(君直), 호는 구봉(九峯)이다. 당시의 명유(名儒) 최종원(崔鐘遠)에게 글을 배웠다. 18세 되던 해에 강릉김씨 항길댁(恒吉宅)에 양자로 들어갔다. 김구혁은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병석에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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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척 출신 문관. 김기문(金起文)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며, 자는 비중(斐仲)이다. 김기문은 1561년(명종 16) 음사(蔭仕)로 사부(師傅)가 되었다가 제조(提調)로 임명되었으며, 이후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올랐다. 임진왜란 때 김양보 등과 함께 선조를 의주까지 호송하였다. 임진왜란 때 선조를 의주까지 호송한 공이 인정되어 1604년(선조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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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출신 문신. 김병수(金秉洙)의 본관은 삼척(三陟)이고, 자는 성원(聖源)이다. 군왕(郡王) 김위옹(金渭翁)의 후손이다. 김병수는 1858년(철종 9)에 문과 장원 급제 뒤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에서 근무하였고, 성균관(成均館) 사예(司藝)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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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출신 무관 김복만(金福萬)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다. 자는 양원이며, 호는 송헌(松軒)이다. 김복만은 1724년(경종 4) 무과에 급제하여 참의(參議)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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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의 호장. 김상구(金尙矩)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다. 자는 치경(致慶)이며, 호는 화사(花史)이다. 실직군왕김위옹(金渭翁)의 후손이다. 김상구는 삼척도호부 호장으로 있었다. 1754(영조 30) 삼척부사가 보관하고 있던 태조의 하사품 홍서대(紅犀帶)를 직접 가지고 가서 왕에게 보였더니 왕은 태조의 유품을 오래도록 보관한 공을 기려 특별히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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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김석조(金錫祚)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며, 자는 영우(永佑)이다. 아들은 김익수(金翼洙)이며, 며느리는 박씨이다. 김석조는 유복자로, 평소에 어머니를 정성껏 모셨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위독하자 손가락을 깨물어서 피를 입에 흘려 넣었다는 일화가 있다. 김석조는 어머님을 위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단을 쌓고 기도를 하고 있을 때 날짐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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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김성표(金星杓)의 본관은 강릉(江陵)이고, 팔회현(八悔晛)의 조카이다. 김성표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지극하여 밖에 나가 생선이나 고기를 보면 품어 가지고 와서 아버지에게 드렸다고 하며, 아버지를 지나칠 정도로 공경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또 김성표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것이 한이 되어 다시 3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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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에 이주한 문신. 김세민(金世敏)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이호(而好)·장육당(藏六堂)이며, 호는 장육(藏六)이다. 문성공김인존(金仁存)의 후손이다. 1652년(효종 3) 증광 진사시에 급제하여 강릉의 위촌(渭村)에서 구미리(九美里) 대평(大坪)에 정착하였다. 1667년(현종 8) 호군(護軍) 최세익(崔世益)과 함께 문묘(文廟)를 중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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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의 자선가. 김순필(金淳弼)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며 김인궤(金仁軌)의 후손이다. 김순필은 벼슬길을 멀리하고 농사에 매진하면서 황폐한 땅을 개간하였다. 특히 개간하기 어려운 들판을 찾아 경인(庚寅)년 봄에 그와 뜻을 함께하는 동지들과 더불어 도수로를 만들었다. 새롭게 관계수로를 보수하고 다듬고 개척하는 한편 논을 개간하여 막대한 몽리(蒙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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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교가리에 있는 김순필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김순필 영세불망비(金淳弼永世不忘碑)는 1890년(고종 27) 김순필(金淳弼)을 중심으로 마을 농민 김성간(金成侃), 김중백(金仲伯), 최오길(崔五吉), 이범식(李凡植), 이민조(李敏祚), 이윤정(李潤政), 이창현(李昌鉉), 이희조(李希祚) 등 8명과 더불어서 협력하여 도랑을 치고 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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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척 출신 무관. 김양보(金良輔)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다. 자는 양좌(良佐)이며, 호는 송봉(松峯)이다. 시어(侍御) 김난손(金蘭孫)의 아들이며, 동래부사(東萊府使) 김양필(金良弼)의 동생이다. 김양보는 형 김양필과 함께 어려서부터 활쏘기를 즐기며 무(武)를 단련하였고, 책읽기를 즐기며 문(文)을 숭상하였다. 1524년(중종 19)에 김양보는 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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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척 출신 무관. 김양필(金良弼)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다. 자는 양우(良佑)이며, 호는 오산(梧山)이다. 시어(侍御) 김난손(金蘭孫)의 아들이다. 김양필은 어려서부터 용맹하였고 활쏘기를 익히며 무(武)를 단련하였을 뿐만 아니라 문(文)에도 소홀함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1510년(중종 5) 김양필은 무과에 급제하여 경상좌도우후겸동래부사(慶尙左道虞侯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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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출신 무신. 김언지(金彦之)의 본관은 강릉(江陵)이고, 자는 성약(聖若)이다. 승지(承旨) 김시진(金始振)의 아들이다. 김언지(金彦之)는 1684년(숙종 10) 무과에 급제하고 1707년(숙종 33) 중시(重試)에 합격했다. 선전관(宣傳官), 주부(主簿), 판관(判官), 경력(經歷), 첨추(僉樞), 오위장(五衛將), 부호군(副護軍), 내금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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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문인. 김연철(金演哲)의 본관은 강릉(江陵)이고, 임경당(臨鏡堂)김열(金說)의 후손이다. 김연철은 조선 후기 때 강릉에서 삼척 효가리로 이주한 문인이다. 수차례 향시에 합격하였으며, 부지런히 가르쳤다. 1803년(순조 3) 부사 이수빈과 함께 삼연영당을 창건하려고 계획하였지만 이루지 못하였다. 도하(道下), 미로(未老) 2개 면에서 도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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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문신. 김영순(金永淳)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다. 자는 사한(士翰)이며, 호는 봉촌(鳳村)이다. 군왕 김위옹(金渭翁)의 후손이다. 김영순은 1856년(철종 7) 통정대부(通政大夫)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지냈다. 순조와 헌종의 국상을 당하였을 때 6년간 복상(服喪)을 하고 애도하였다는 사실이 1854년(철종 5) 어사 강난향(姜蘭香)에 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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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김옥권(金玉權)의 아버지는 4년 동안 설사병으로 고생하였다. 김옥권은 사람의 근본은 하늘이라 믿고 신을 감동시키기 위하여 3년 동안 하늘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였다. 그랬더니 겨울철에 흰눈 속에서 청사[푸른 구렁이]를 얻어 마침내 부친의 설사병을 고쳤다. 아버지는 90세까지 장수하였다고 한다. 김옥권의 효행은 헌종에게 알려져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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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김요령(金堯齡)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며, 시중(侍中) 김인궤(金仁軌)의 후손이다. 김요령은 붓을 던지고 활을 잡아 스승을 택하여 자식을 가르치면서 집안의 화목을 위하여 노력하는 한편 불쌍한 사람들을 도왔다. 김요령은 아버지가 병으로 앓아 눕자 3년 동안 온갖 노력을 다하여 약을 지어 드리며 간호를 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병은 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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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군왕으로 책봉된 뒤 삼척군 일대를 식읍으로 하사받은 신라대보공(大輔公)김알지(金閼智)[65~?]후예. 실직군왕 김위옹의 위패는 보본단에 모셔져 있으며, 갈야산 중턱에 위치한 실직군왕묘에 봉안(奉安)되어 있다. 김위옹의 아버지 김추의 위패는 보본단 내 숭모사에 모셔져 있다. 김추의 외아들 김위옹은 실직군왕으로 책봉된 뒤 삼척군 일대를 식읍(食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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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을 본관으로 하는 고려 말 문관. 고려 말 대장군 김윤성(金允成)의 아들이자 문하시중 김인궤(金仁軌)의 동생이다. 삼척김씨 태사공파(太師公派)의 금자광록대부공파(金紫光祿大夫公派) 파조이고, 동생 김의궤는 문하시중공파(門下侍中公派) 의 파조이다. 김자남(金自男)-김광립(金光立)-김승우(金承祐)-김손(金蓀)-김자주(金自柱)-김중윤(金仲允)-김지제(金志悌)-김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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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때 삼척을 본관으로 하는 관료로, 조선 건국 후 삼척으로 낙향한 인물. 생몰년은 미상이며, 본관은 삼척이다. 고려 말 문관으로, 조선이 건국된 후 삼척으로 낙향하였다. 고려 말 대장군 김윤성(金允成)의 아들이며 김의궤(金義軌)의 형이다. 삼척김씨 태사공파(太師公派)의 금자광록대부공파(金紫光祿大夫公派) 파조이고, 동생 김의궤는 문하시중공파(門下侍中公派)의 파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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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김인백(金仁伯)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감찰공(監察公)파 김자현(金子鉉)의 후손이다. 김인백은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간 우애가 두터웠다. 양친상을 당하여 6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김인백은 조선숙종 때 정려문(旌閭門)을 세우고 조세(租稅)와 부역(賦役)을 면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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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조선 전기에 삼척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김인우(金麟雨)는 고려 후기, 조선 전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삼척(三陟)이다. 김인우는 1387년(우왕 13) 삼척지군사(三陟知郡事)로 남은(南誾)이 부임하자 그의 휘하에 있으면서 왜구를 소탕하는데 전공을 세웠다. 그로 인하여 안인포만호(安仁浦萬戶)를 거쳐 장기현사를 지냈다. 1416년(태종 16) 울릉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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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척 출신 문신. 김인지(金仁祉)[1555~1614]의 본관은 강릉이며, 자는 중상(仲祥)이다. 참봉 김황(金璜)의 아들이며, 사평 김인복(金仁福)의 동생이다. 김인지는 음사를 통하여 제용감봉사(濟用監奉事)를 지냈다. 1584년(선조 17)에 외조부인 참봉 민달충(閔達忠)이 후손이 없어 그의 전장(田莊)을 물려받았으며, 외조부를 봉사(奉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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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척 출신 문관. 단종이 양위하자 세조의 찬위 사건을 불의의 행위로 단정하고 이에 벼슬을 버린 후 낙향하여 은둔 생활을 하면서 단종을 추모한 충절 인물이다. 김자의(金子義)의 본관은 삼척(三陟)이고, 호는 동명(東溟)이다. 사육신 가운데 한 명인 하위지(河緯地)[1412~1456]의 조카 사위이다. 김자의는 단종을 위하여 사절(死節)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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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학자. 김종언은 경행서원이 철폐되자 선비들과 경행서원의 강당을 수리하였고, 『척주지』 등을 편찬하였다. 김종언(金宗彦)[1818~1888]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후명(後名)은 학묵(學默), 자는 혜중(兮重), 호는 송고(松皐)이다. 김정한(金正漢)의 아들이다. 김종언은 1818년(순조 18) 강원도 강릉 송정리에서 출생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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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여종. 김창분(金昌分)은 진세기(秦世基)의 여종(女婢)이다. 진세기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김창분은 주인 진세기가 자식도 없이 죽자 그 주인을 위하여 3년 동안 수묘(守墓) 살이를 하며 진세기의 묘를 지켰다. 이후 나라에서 이 일을 알고 정려(旌閭)하였으며, 신기리(新基里)에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김창분의 묘는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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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김태명(金台命)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삼로(三老)이며, 호는 용장(龍庄)이다. 봉사 김인지(金仁址)의 후손이다. 김태명(金台命)은 구천이세필(李世弼)의 문인으로 처음에는 용암최세필에게 글을 배웠다. 85세 되던 1766년(영조 42)에 통정대부(通政大夫)가 되었고 1767년(영조 43)에 부호군(副護軍) 및 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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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출신 문관. 김현하(金顯河)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다. 자는 경필(敬弼)이며, 호는 우산(愚山)이다. 김현하는 1819년(순조 19) 문과 초시에 올랐고, 왕으로부터 칠서(七書)를 하사받았다. 1821년(순조 21)에 준원전 봉향관(奉香官)으로 제수되었다가 충훈부 도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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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김형택(金亨澤)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원여(元汝)이며, 호는 소재(素齋)이다. 효자 신당(信堂)김성표(金星杓)의 아들이며, 김하택(金夏澤)과 사촌이다. 김형택(金亨澤)은 효라는 훌륭한 가풍을 이어 가기 위하여 효행 실천에 몸과 마음을 다하였다. 김형택은 어버이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할 적에 아버지를 지켜 주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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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무관. 김훈(金勳)은 아요봉기(亞擾蜂起)에 창의장(倡義將)으로 추천되었다. 무신으로서 삼척군에 임하여 정무를 주관하였다. 신유(新儒)가 유적(儒籍)에 통록(通錄)할 것을 주장하자 구유(舊儒)는 불허하는 주장을 하여 상호 간에 논쟁이 벌어졌을 때 양 사이를 보호하고 조정하려 하였지만 사람들의 무고(誣告)로 경술에 옥사하였다. 고향 마을에 반친(返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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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에서 활동한 자선가. 남상렬(南尙烈)의 본관은 양양(襄陽)이다. 자는 중호(仲鎬)이고, 호는 소산(笑山)이다. 통정대부(通政大夫) 남한(南澣)의 손자이다. 남상렬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인자하고 문필에 능하였다고 전해진다. 남상렬의 인자한 성품과 문필은 이웃 마을에까지 전해져서 칭송이 자자하였다. 남상렬은 또 의리를 숭상하였으며, 측은지심(惻隱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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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출신 문신. 남석(南奭)의 본관은 영양(英陽)이며, 자는 우애(偶愛)이다. 남석은 조선고종 때 문신이다. 1865년(고종 2)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 정언, 이조 정랑, 사헌부 감찰, 성균관 직강을 거쳐 찰방으로 있다가 비서승에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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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출신 문신. 남식(南湜)의 본관은 영양(英陽)이다. 초명(初名)은 호(灝)이며, 자는 활여(活女)이다. 남식은 조선고종 때 문신이다. 1867년(고종 4)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 정언(正言)과 사헌부 지평(持平)을 거쳐 강원도 도사(都事)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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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도호부에 유배(流配)되어 온 죄인 명단. 『도류안』은 1858년 당시 삼척도호부에 유배되어 있던 죄인 10명의 명단이다. 겉표지에 ‘관상(官上)’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삼척도호부에서 유배되어 온 죄인들의 관리를 위하여 자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규격은 25.5⨯8.5㎝이다. 형식은 12면 접철이며, 지질은 저지(楮紙)이다. 표제는 ‘도류안(徒流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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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문인 이승휴의 문집. 『동안거사문집』은 이승휴의 문집으로, 그의 아들 이연종이 1359년 전후 시기에 간행하였다. 1책으로, 「잡저」 1부와 「행록」 4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승휴(李承休)[1224~1300]의 셋째 아들 이연종(李衍宗)이 부친의 시문을 수집·정리하여 편찬하였다. 『동안거사문집(動安居士文集)』은 고려 후기 문인 이승휴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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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삼척 지역에 설치한 군사 시설. 고려시대 삼척 지역에는 외적의 침입에 대비한 군사 시설로 동진수가 있었다. 이 밖에 임원수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고려 전기에 설치된 것으로, 동여진의 잦은 침략에 대비한 군사 시설이었다. 고려시대 삼척현에도 수소(戍所)가 있었다.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에 따르면 삼척 지역에 위치한 수소로 동진수(桐津戍)와 임원수(臨遠戍)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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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존재한 초기 형태의 국가. 실직국은 삼척 지역에 존재한 초기 형태의 국가로, 중심지는 지금의 삼척시 사직동 일대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직국은 삼척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경상북도 청하와 흥해에서 강원도 강릉시 옥계에 이르는 동해안의 띠 형태 공간을 활동 무대로 삼으면서 강원도 및 경상북도동해안 일대의 해상 교역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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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내물왕 4대손으로, 동해의 섬나라 우산국을 정벌한 삼국시대 신라 장군이자 정치인. 이사부는 지금의 울릉도인 고대 섬나라 우산국을 정복함으로써 동해의 해상왕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국가이다. 바다는 우리 민족이 탁월한 기상을 펼치던 무대였다.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바다를 정복하는 것은 곧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었다. 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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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영장이 주관하여 국가 제사를 지내던 제단. 둑제(纛祭)는 조선시대 군대를 출동시킬 때 군령권(軍令權)을 상징하는 둑(纛)에 지내는 국가 제사로, 경칩[음력 2월]과 상강[음력 9월]에 병조판서가 주관하여 제사를 지낸다. 둑제는 국가의 군사권을 상징하는 제사로, 이에 관한 기록은 고려시대 때부터 나온다. 조선성종대에 편찬된 『국조오례의』에는 소사(小祀)로 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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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하맹방리에 있는 고대 성터. 맹방리 고성(古城)의 내력과 관련하여 여러 문헌에는 단편 기록이 전해 오고 있다. 즉 삼척부사 허목(許穆)[1595~1682]이 편찬한『척주지(陟州誌)』에는 “맹방 옆에 고성이 있는데 세월이 오래되어 그 연대를 알 수 없다.”고 하였고, 『척주지』의 동일한 조항에 “해리현(海利縣)은 김부식이 말하기를 옛날 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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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 이안사가 살던 집터 흔적과 준경묘·영경묘 재실. 현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일대에는 고려고종 때 전주에서 삼척으로 이주하여 산 목조이안사의 집터와 토지·우물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또 목조의 부모 묘인 준경묘와 영경묘의 제향을 위하여 건립된 재실이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고조이자 전주 지방의 유력한 토착 세력이던 목조(穆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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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건국한 태조이성계의 고조부인 고려시대 목조이안사의 삼척 이주.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목조이안사는 1236년 가을 무렵 본관인 전주를 떠나 삼척에 도착한 것은 그해 겨울 또는 이듬해인 1237년 봄으로 추정된다. 이후 이안사는 삼척 지역에 약 17년 동안 거주하였다. 그동안 이안사는 평창이씨 효공왕후와 결혼하였다. 삼척은 효공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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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에 있는 조선태조이성계의 5대조 이양무와 4대조 목조이안사가 살던 옛터를 기념하여 세운 비석. 조선시대 태조이성계의 5대조 이양무와 4대조 목조이안사가 살던 옛터를 기념하여 세운 비석이다. 비문의 주요 내용은 목조가 전주에서 이곳으로 온 사실과 함께 당시 목조가 살던 집터·밭·우물이 유적으로 남아 있어 그 위치를 비정할 수 있다. 목조의 외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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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은거한 문신.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동안로에 있는 천은사는 동안이승휴가 『제왕운기』를 편찬한 곳이다. 오랜 벼슬살이에 지친 이승휴는 그의 외가이자 고향인 이곳 삼척 미로에 은거하였다. 그러나 세상을 등진 것은 아니었다. 벼슬살이 때는 조정에서 직접 국왕과 신료들을 상대로 자신의 소신을 펼쳤다면 삼척에 은거하면서부터 상대는 역사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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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척 출신 무관. 박걸남(朴杰男)[?~1603]은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상거노리 옷바우골[의암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자는 사정(士貞), 호는 의암(衣岩) 또는 의암공(衣岩公)이다. 진사(進士) 박순(朴淳)의 후손이다. 박걸남은 어려서부터 기력이 강하고 기재에 능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박걸남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크게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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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박대혁(朴大赫)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호는 귀호(龜湖)이다. 가의대부(嘉義大夫) 박범(朴䒮)의 후예이다. 박대혁의 부친은 늙어서 악성 종기로 고생하였다. 그때 박대혁은 입으로 고름을 빨아 내고 여러 번 하늘에 빌었지만 아버지의 병환은 좀처럼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의원의 말로는 잉어의 담(膽)을 먹으면 낫는다고 하였다.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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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의 효자. 박득복(朴得福)은 개상웅(改尙雄) 세마(洗馬) 원손(元孫)의 후예이다. 박득복은 아버지가 다리에 난 악성 종기로 고생이 심해서 의원을 찾아가니 의원은 “구렁이 담(膽)이 약”이라고 하였다. 박득복은 동생 박이복(朴以福)과 함께 울며 간절하게 부친의 병환이 낳게 해 달라고 하늘에 빌었다. 그랬더니 엄동설한 겨울철에 눈 속에서 구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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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열녀. 박소사(朴召史)는 최명륜(崔鳴倫)의 처이다 박소사는 나이 15세에 부친을 여의고 최명륜에게 시집와 삼척 월천리에서 살았다. 결혼 생활 5년 만에 남편과 헤어져 자식없이 살았지만 원망하지 않았으며, 시부모가 돌아가시자 홀로 장례를 치렀다. 길쌈을 하며 조상 제사를 받들 위토도 사 놓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남편의 죽음을 당하여 정성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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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삼척박씨의 시조. 박원경은 고려 말 홍건적 침입 시 공을 세워 삼척군대광(三陟君大匡)에 책봉되었고, 삼척박씨의 시조가 되었다.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셋째 아들 박언신(朴彦信)의 후손이다. 삼척박씨 시조 박원경(朴元慶)은 고려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하였고, 권지교서정자(權知敎書正字), 개성부윤(開城府尹), 사농시사(司農侍事)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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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활동한 자선가. 박지생(朴芝生)은 진사 박세영(朴世榮)의 손자이고, 향노(鄕老) 박영백(朴苓百)의 5세손이다. 아들로 박사철(朴斯哲)이 있다. 박지생의 자(字)는 무숙(茂叔)이고, 호(號)는 동은(東隱)이다. 박지생은 북삼 홍월평[현 동해시 이도동]에 수로를 개척하고 홍월평을 넓게 개간하여 백성들이 그 은혜를 보았기 때문에 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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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배병호(裵秉鎬)의 자는 선익(善益), 호는 도남(桃南)이다. 참의(參議) 배순진(裵淳晋)의 증손이다. 배병호는 아버지의 병으로 앓아 누워 있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넣어 드렸다. 배병호는 아버지상과 어머니상을 당하여 전후 6년 동안을 고기나 생선이 없는 소식(素食)을 하였다고 한다. 배병호는 임금이 돌아가셨을 때 단을 모아서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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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에서 변경 지대 군사 동향을 연기와 불꽃으로 중앙에 보고하기 위하여 만든 시설. 봉수는 변경 지대의 긴급한 상황을 중앙이나 변경의 진영(鎭營)에 알리는 통신 체제로, 주로 군사 목적에서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특히 봉수는 변경 지대의 긴급한 상황을 중앙 정부에 신속히 알림으로써 대책을 마련하도록 하는 기능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방에서는 군사 주둔지인 진영에 신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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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성내동에 있는 삼척부사 이규헌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부사 이규헌은 1835년(헌종 원년)부터 1839년(헌종 5)까지 5년 동안 삼척부사로 재직하였다. 1836년[병신년]과 1837년[정유년]의 큰 흉년에 유민(流民)을 구활(救活)한 이규헌은 봉록(俸祿)을 덜어내고, 부민(富民)들에게서 많은 돈을 마련하여 굶주린 사람들을 구제하였다. 또 백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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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삼척부사 홍인걸(洪仁傑)[1541~1603] 등이 왜군을 체포하여 죽였다고 허위 보고한 사건. 1595년 7월 삼척부사 홍인걸 등은 바닷가에 정박한 왜선 한 척을 나포하여 왜군들을 죽였다고 강원감사에게 보고하였다. 그러나 이후 홍인걸 등이 정말 왜군을 죽였느냐, 아니면 포로로 잡혀가다가 도망쳐 돌아온 조선인을 죽였느냐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다. 임진왜란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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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동해안 지역의 북쪽 변경 지대를 방어하기 위하여 설치한 군사 행정 구역. 실직이 신라 영토로 확정된 것은 505년(지증왕 6)에 실직주를 설치하고 이사부를 군주로 파견하면서부터이다. 512년(지증왕 13)에는 이사부로 하여금 우산국을 복종시켜 따르게 함으로써 동해안 일대는 완전한 신라 영역이 되었다. 이후로도 실직은 동해안 지역의 정치·군사 구심점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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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삼척 지역에서 지방 제의를 지내던 장소. 신라의 제의인 명산대천제(名山大川祭) 체계에서 삼척 지역의 비례산은 중사(中祀) 가운데 사해(四海)에 속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제4조에는 신라가 통일 후에 정비한 제의(祭儀) 체계가 정리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제사 대상은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왕실 관련 제사이거나 수도인 경주 부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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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휴가 고려 후기에 편찬한 원나라 사행록. 『빈왕록』은 고려시대 이승휴가 1273년 원나라 사행 때 쓴 기록물을 정리하여 1290년에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나중에 그의 아들 연종이 부친 문집 『동안거사문집』을 펴내면서 편입시켜 간행하였다. 이승휴(李承休)[1224~1300]는 자가 휴휴(休休)이고 호는 동안거사(動安居士)로, 경산부(京山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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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이천리에 위치하는 사금산 구역 안으로는 드나들지 말 것을 알리는 푯말 또는 표지. 금표는 조선시대 왕이나 왕족의 사냥을 비롯하여 군사훈련·산림보호 등의 목적으로 신성 지역·유배지·지정된 산·산삼 자생지 등과 같은 일정한 구역이나 건물 안으로 드나들지 말 것을 알리기 위해 세운 표지이다. 일종의 금지나 경고를 알리는 푯말이다. 대개 금지구역의 입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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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도호부 소속 사령 명단. 『사령안』은 1858년 1월 당시 삼척도호부 소속 사령 26명의 명단이다. 겉표지에 ‘관상(官上)’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삼척도호부에서 업무 참고용으로 자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규격은 28.7⨯92.0㎝이다. 형식은 8면 접철이며, 지질은 저지(楮紙)이다. 문서 겉과 안 모두 표제는 ‘함풍팔년정월일사령안(咸豐八年正月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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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사직동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삼척 사직동 고분군은 삼척시내를 관통하여 동해 바다로 유입하는 중심 하천인 오십천(五十川) 유역 남쪽의 야트막한 구릉성 산지에 입지하고 있으며, 오십천을 사이에 두고 성북동 갈야산고분군과는 직선 거리로 약 2㎞ 떨어져서 남북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다. 사직동 고분군은 태백산맥 지맥 가운데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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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에 소재한 역. 사직역은 조선 초기 3개 역로에서 평릉도에 속한 역 가운데 하나이자 삼척도호부에 속한 5개 역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 후기에는 삼척에 속한 6개 역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 초기 강원도의 역은 보안도(保安道), 대창도(大昌道), 평릉도(平陵道) 등 3개 역로에다 속역이 57개였다. 그러다가 고려 말 조선 초에 여러 곳의 역을 통합 또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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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역대로 편찬된 사찬지리지. 강원도 삼척 지역은 1662년(현종 3)에 삼척부사 허목의 『척주지』가 상·하권으로 건치연혁부터 그가 이임하는 1662년까지 수록하여 편찬되었다. 이후에 편찬되는 삼척 지역 사찬지리지는 이를 모본으로 삼아 이 지리지의 미비점을 보완하면서 여러 차례 발간되었다. 1848년에 김종언(金宗彦)이 기존의 『척주지』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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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의 삼국시대·남북국시대 역사. 102년 실직국의 항복으로 삼척 지역을 차지한 사로국(斯盧國)[신라(新羅)]은 초기에 간접 지배를 하였지만 4세기 이후에는 직접 지배를 하였다. 그러나 삼척 지역은 5세기 후반에 들어와 고구려 영토에 편입되었다. 그 후 신라는 6세기 초에 삼척 지역을 되찾은 뒤 505년에 실직주를 설치하였다가 556년 무렵 실직군으로 개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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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동안로 816 두타산에 있는 고려시대 문인이자 정치가인 이승휴 관련 유적. 동안거사 이승휴는 삼척 지역에서 머무르는 동안 현재의 천은사 자리에 용안당, 지락당, 보광정, 표음정을 지어 삼화사에서 약 1000상자의 불경을 빌려 읽으며 『제왕운기』와 『내전록』을 저술하였다. 이후 1294년(충렬왕 20) 되던 해에 홀연히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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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에 있던 토지를 관장하는 신 ‘사신’과 곡식을 관장하는 신 ‘직신’에게 제례를 올리는 제단. 서울과 각 지방에 설치되어 정기로 제사를 지냈다. 농경 사회에서 땅과 곡식이 국가의 근본이기 때문에 사신과 직신은 농업을 비롯한 민생과 관련된 최고 신으로 여겨져 왔다. 이에 따라 사직단을 세워서 제사를 지내면서 풍요와 평화를 기원하였다. 우리나라의 사직 제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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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산양리에 있는 구석기 유적. 삼척시 원덕읍 산양리 구석기 유적은 해안으로부터 약 5~6㎞ 떨어져 있다. 유적의 남쪽은 가곡천[월천]이 흐르며, 북쪽은 산이다. 유적의 앞으로는 가곡천이 흐르고, 유적의 남동쪽 앞 약 0.5㎞ 지점에서 사곡천(沙谷川)이 가곡천으로 합수한다. 사곡천을 따라 남쪽으로 고개를 넘으면 경상북도 울진 방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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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에서 ‘돌아갈 곳 없는 귀신’ 여(厲)를 제사 지내던 제단. 여단이란 ‘돌아갈 곳 없는 귀신’ 여를 제사 지내던 제단을 말한다. 조선시대 때 중앙과 각 지방에 설치되어 관청에서 관리하며 제사를 지냈다. 여단은 의약 시설이 잘 갖추어 있지 않던 시절에 흉년이 들어 굶어 죽거나 병이 들어 객사한 뒤 상주도 없이 외로이 구천을 헤매는 무주고혼(無主孤魂)을 위무(慰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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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의 시공간과 관련된 제반 사항을 요목별로 기록한 읍지. 읍지는 특정 지역의 시공간과 관련된 제반 사항, 다시 말하여서 어떤 지역의 인간 및 자연환경과의 관련 속에서 이루어진 현상 및 역사 문물 전반 사항을 요목별로 기록한 지리지이다. 이러한 읍지는 조선시대에 전국지리지나 도지(道誌) 편찬을 위한 기초 자료로 작성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때 작성된 읍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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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미로면에 있는 태조이성계의 4대조인 목조이안사의 어머니 묘. 조선 고종 때인 1899년 4월 16일 고종이 태조이성계의 5대조인 양무 장군의 부인묘를 선조의 묘로 공식 추봉(追封)하여 묘호(廟號)를 영경(永慶)으로 하고, 묘역의 경계를 정하여 비(碑)를 세우며 재사(齋舍)를 건립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준경묘, 해당 묘역(墓域),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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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성내동에 있는 명승지. 삼척 죽서루는 보물 213호, 삼척 죽서루와 오십천(三陟 竹西樓와 五十川)은 명승 제28호이다. 오십천(五十川) 층암절벽 위에 세운 죽서루는 자연 암반을 초석으로 삼고 암반 높이에 맞춰 길고 짧은 기둥을 세운 5량 구조의 팔작집이다. 공포에서는 익공계수법과 다포계수법이 혼용되었다. 천장 구조로 보아 맞배집이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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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준경길에 있는 양무장군의 묘. 1899년(광무 3년) 4월 16일 고종이 태조이성계의 5대조인 양무장군의 묘를 선조의 묘로 공식 추봉(追封)하여 묘호(廟號)를 준경(濬慶)으로 하고, 묘역의 경계를 정하는 한편 비를 세우고 재사(齋舍)를 건립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영경묘, 해당 묘역(墓域), 재실(齋室), 목조대왕 구거유지(舊居遺址) 등을 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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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준경길에 있는 태조이성계의 5대조 이양무 장군과 부인 묘. 조선 고종 때인 1899년(광무 3년) 4월 16일 고종이 태조이성계의 5대조인 양무 장군과 그 부인묘를 선조의 묘로 공식 추봉(追封)하고 묘호(廟號)를 준경(濬慶)과 영경(永慶)으로 하여 수축한 것이 강원도 삼척시 준경길 333-360에 있는 준경묘(濬慶墓)와 영경묘(永慶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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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에서의 소금 생산. 조선시대 삼척 지역에서는 해수직자법으로 소금을 생산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삼척 지역에 염분이 40개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1662년(현종 3)에 편찬된 『척주지』에는 삼척에 군수용 염분 5개와 구황용 염분이 있다고 하였다. 이를 보면 생산된 소금은 군수 마련을 위한 비용에 충당하고, 기근이 들었을 때 진휼이나 구황에 사용된 것으로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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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정라동 육향산에 있는 비석. 삼척 척주동해비는 강원도 삼척시 정라동육향산 정상부에 위치하며, 조선시대 삼척부사 허목이 1661년(현종 2)에 세운 비석이다. 1660년(현종 원년) 허목이 삼척부사로 부임한 당시 동해 바다의 조수가 시내까지 들어오고, 여름철 홍수로 인해 삼척의 젖줄인 오십천(五十川) 하구가 막히고 범람하여 가옥과 농작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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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있는 천은사의 창건 설화·연혁·중수 과정 등이 기록된 비석. 삼척 천은사 기실비는 돌머들[독머들, 석탄동]에 있다. 돌머들은 방고개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천은사 기실비가 있는 곳에서 직진하면 천은사이고, 오른쪽의 흥태골로 들어서면 지시고개를 넘어 옛 삼화사터로 갈 수 있다. 비석에는 천은사의 창건 설화와 연혁, 1921년까지의 중수 과정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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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삼척과 수도 개경을 연결하는 교통로. 고려시대 때 삼척에서 수도인 개경에 가려면 명주도를 따라 횡성에 이른 뒤 횡성에서 춘주도나 평구도를 따라 오늘날의 서울에 도착하면 다시 서울에서 청교도를 따라 북상해서 올라가야 하였다.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시대 때 전국에는 525개의 역(驛)이 있었고, 이들 역은 22역도(驛道)로 연결되었다. 역도는 지금의 국도에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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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신라의 수도 경주와 강원도 삼척 지역을 잇는 교통로. 삼국시대 신라의 수도인 경주와 삼척 지역을 잇는 교통로로는 육로와 해로가 있었다. 육로의 경우 경주, 안강, 흥해, 영덕, 울진을 거쳐 삼척에 이르는 경로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통일 후 교통로의 재정비로 5통(通)·5문역(門驛)이 설치된 이후에는 간문역과 북해통이 경주와 삼척 지역을 잇는 교통로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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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에 있는 고려시대 공양왕의 능. 삼척 공양왕릉은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 추천마을고돌재에 있다. 공양왕릉, 동생 묘, 아들 묘, 말 또는 시녀의 무덤으로 여겨지는 봉분 1개를 포함하여 총 4개의 무덤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존에 전하던 공양왕릉 묘역을 광복 이후인 1977년 삼척군수 원낙희, 근덕면장 최문갑이 현재의 봉분 형태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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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 때 삼척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단위. 신라 경덕왕 때인 757년 지방 제도 개혁 때 실직군을 삼척군으로 개명하였다. 또 고려 말인 1377년에 삼척현에서 삼척군으로 승격하였다. 신라 경덕왕이 757년(경덕왕 16) 실직군(悉直郡)에서 삼척군(三陟郡)으로 개명한 것은 당시 지방 제도를 개혁하면서 주(州)·군(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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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삼척군수 심의승이 편찬한 삼척 지역 종합 지리지. 허목의 『척주지』를 모본으로 삼았으면서도 누락되거나 그 이후에 추가된 새로운 자료들을 보완하여 편찬한 종합 지리지이다. 저자인 심의승(沈宜昇)은 허목(許穆)[1595~1682]의 『척주지』가 발간된 지 250년이 지나서 그동안의 사실이 많이 누락되었기 때문에 새로이 답사하여 발간한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서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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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단위. 삼척 지역은 1413년에 삼척부에서 삼척도호부로 읍격이 강등되었다. 이에 따라 지방관도 종3품 도호부사가 임명되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1393년(태조 2)에 삼척이 자기의 고조인 목조(穆祖)이안사(李安社)[?~1274]의 외향(外鄕)이라 하여 삼척군(三陟郡)에서 삼척부(三陟府)로 승격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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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성내동 조선시대 삼척도호부 옛 관아[동헌]터에 있는 역대 삼척부사들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 역대 삼척부사(三陟府使)를 지낸 인물 가운데 이지온·이광도·김우현·이규헌·윤훤 등 5명의 부사 선정비 및 흥학비를 비롯해 군수 이구영 선정비·강석호 선정비가 보존되어 일렬로 세워져 있다. 삼척도호부 관아 건물터 내 공덕비군은 강원도 삼척시 성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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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성내동 죽서루 일원에 있는 조선시대 삼척도호부의 관아 건물지. 조선시대 삼척도호부에서 운영한 관아와 그 부속 건물터이다.『세종실록지리지』[1454년],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허목(許穆)의 『척주지』[1662년], 『여지도서』[1757년], 『관동지』[1829~1831년], 김종언(金宗彦)의 『척주지』[1848년], 『강원도지』[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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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도호부 수장. 1413년(태종 13)에 삼척 지역의 읍격이 삼척부에서 삼척도호부로 강등되면서 도호부사가 지방관으로 임명되었다. 『척주선생안』에 따르면 15세기 삼척도호부사(三陟都護府使)의 출신 성분은 다양하였다. 문관, 무관, 음관뿐만 아니라 성중관(成衆官) 출신도 다수 임명되었다. 이 가운데 문과(文窠) 출신은 약 7%에 불과하였다. 이에 따라서 1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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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노곡면 여삼리에 있는 조선시대 의병장 박걸남의 묘역. 박걸남의 출생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삼척시 미로면 상거노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이고, 자(字)는 사정(士貞)이며, 호는 의암(衣岩)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1545~1598] 장군 휘하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하며 많은 공을 세웠다. 『삼척군지(三陟郡誌)』, 『진주지(眞珠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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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삼척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단위. 조선 태조 이성계는 1393년에 삼척이 목조이안사의 외향이라 하여 그때까지의 삼척군을 삼척부로 읍격을 승격시켰다. 삼척시는 조선태조이성계의 가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지역이다. 우선 삼척시는 이성계의 고조인 목조(穆祖)이안사(李安社)[?~1274]와 그의 부친 이양무(李陽茂)[?~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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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에 있는 조선시대 삼척부사 이순응의 선정비. 조선시대 강원도 삼척부사 이순응이 베푼 선정(善政)의 덕을 기리고자 세운 비석이다. 이순응은 조선 후기 문신(文臣)이자 지방관(地方官)으로 1875년(고종 12) 예빈시주부·제용감주부, 1876년(고종 13) 신창현감, 1880년(고종 17) 흡곡현령, 1882년(고종 19) 김포군수, 1885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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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삼척 지역의 본성인 삼척산성. 고려시대 삼척 지역에도 군사 전략상의 중요성 때문에 일찍이 정종대인 947년에 성을 쌓았다. 삼척산성은 당시 삼척 지역의 본성으로 군사 목적뿐만 아니라 지방 행정, 주민 거주 등을 위하여 쌓았다. 그러나 삼척의 본성은 흙으로 쌓은 토성이어서 튼튼한 성이 아니었다. 고려시대 양계(兩界) 주진군(州鎭軍)의 외적 침입에 대한 방어 전술은 주진(州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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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산양서원1길 24[산양리 843]에 있는 산양서원의 내력을 기록하여 세운 비. 삼척산양서원 묘정비는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산양서원1길 24[산양리 843]에 위치하고 있으며, 삼척산양서원의 내력 전반을 기록하여 서원 안에 세운 비석이다. 산양서원 묘정비는 황희의 선정과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하여 세운 소공대와 관련한 내용, 황희를 기리는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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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노곡리 산67에 있는 비. 강원도 삼척시 임원리에서 원덕읍을 오가는 와현 정상에 1423년 관동 지방 흉년 극복에 큰 공을 세운 황희를 기리기 위하여 삼척 지역 주민들이 세운 소공대가 후대에 와서 무너진 것을 황희의 후손 황맹헌이 비석 형태로 세운 것이 소공대비이다. 1516년(중종 11) 황희의 4대손 황맹헌이 강원도관찰사로 부임하여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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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숙암리에 위치한 신라-통일신라기의 고분군. 삼척 숙암리 고분군은 삼척시의 서쪽 백두대간에 위치한 하장면광동댐의 북쪽 산[해발 1041m]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의 중간 부분[해발 700m]부터 그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완만한 평탄부에 이르기까지 40여 기의 고분이 밀집 분포하고, 이곳에서 북쪽으로 약 80m 지점에 10여 기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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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역둔리 산2-1에 있는 삼척부사 이규헌의 공덕을 기리는 기념비. 부사 이규헌은 1835년(헌종 원년)부터 1839년(헌종 5) 사이에 삼척부사로 재직하였다. 1836년[병신년(丙申年)]과 1837년[정유년(丁酉年)]의 큰 흉년에 유민(流民)을 구활(救活)하였다. 이규헌은 봉록(俸祿)을 덜어내고 부민(富民)들에게서 많은 돈을 마련하여 굶주린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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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에 파견되어 속오군 조련을 담당한 무신 당상관. 조선 후기에 지방군의 운영을 효율화하기 위하여 시행된 영장(營將) 제도는 1627년(인조 5) ‘영장절목(營將節目)’ 반포와 함께 무신 당상관을 전임(專任) 영장으로 파견하여 속오군(束伍軍) 조련(操鍊)을 담당하게 하였다. 1637년(인조 15) 전임 영장제가 혁파된 뒤에는 수령이 영장을 겸임하는 겸영장(兼營將) 제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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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향교길 34[교동 566]에 있는 삼척영장 윤명근의 교육 진흥에 대한 공로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 삼척영장 윤명근 흥학비는 강원도 삼척시 향교길 34[교동 566] 삼척향교에 위치하며, 조선시대 삼척영장 윤명근(尹明根)이 유교 진흥과 교육에 힘쓴 공로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다. 윤명근은 조선 후기 무관이며, 본관은 칠원(漆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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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동안 삼척 지역의 치소(治所)가 위치하여 있던 읍성. 강원도 삼척시 성내동의 시내 중심가를 둘러싼 구릉지의 자연 지형을 따라 곡선으로 쌓은 평산성이다. 서쪽 절벽 위에는 죽서루가 오십천가에 있다. 남쪽은 평지이지만 북·동쪽은 다소 높은 구릉지로, 천주교회가 있다. 고려시대에 축조되어 여러 차례 개축을 거친 읍성으로, 최근의 발굴 조사에서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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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울릉도와 독도의 수토. 조선시대 울릉도와 독도의 관리 및 수토(搜討)[알아내거나 찾기 위하여 조사함]에서 중심지는 삼척이었다. 조선 전기에 울릉도로 파견된 안무사(按撫使)에는 삼척 출신이 임명되었다. 또 조선 후기에 들어와 울릉도 수토제 운용에서도 삼척첨사[영장(營將)]와 그 휘하의 월송포만호(越松浦萬戶)가 수토관으로 파견되었고, 삼척 지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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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정상동 육향산에 있는 비석. 삼척 척주동해비와 평수토찬비는 강원도 삼척시 정상동육향산 정상부 일대에 위치하며,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되었다.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는 조선시대 삼척부사 허목(許穆)[1595~1682]이 1661년(현종 2)에 세운 비석(碑石)이다. 허목이 1660~16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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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삼척 지역의 만호부 무관 벼슬. 고려 때인 1384년 왜구 방비를 위하여 삼척포에 만호를 두었다. 삼척포 만호는 삼척군의 지군사가 겸임하고, 소속 수군인 기선군(騎船軍)을 통솔하였다. 만호는 조선시대 때까지 운용되었다. 만호(萬戶)는 고려·조선시대 때 외적의 침입을 방어할 목적으로 설치된 만호부(萬戶府)의 무관 벼슬이다. 만호는 원나라에서 들어온 제도이며, 지방에 처음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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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과 조선시대 때 삼척 지역에 설치한 수군 기지. 삼척포진은 고려 말인 1384년에 설치되었다. 지휘관으로는 만호가 임명되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만호를 폐지하고 대신 수군첨절제사를 두었다. 당시 진관 체제 아래에서 삼척포진의 수군첨절제사는 삼척진관의 최고 지휘관으로서 안인, 고성, 울진, 월송 등 4개 포진의 만호를 통솔하였다. 삼척포진은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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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수군진인 삼척포에 배치한 수군 지휘관. 삼척포진 수군첨절제사는 조선시대 삼척포에 배치한 수군 지휘관이다. 삼척포가 수군첨절제사진으로 편성되면서 안인포(강릉시), 고성포, 울진포, 월송포 등 4개의 만호영이 삼척포진에 소속되었다. 이 가운데 삼척포에는 배 4척과 수군 245명이 배속되었다. 고려 말 조선 초의 수군은 왜구 침입에 대비하여 재정비되었다. 고려 말에 삼척포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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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향교길 34에 있는 삼척향교의 내력을 기록하여 세운 비. 삼척향교 공부자 묘정비(三陟鄕校孔夫子廟庭碑)는 강원도 삼척시 향교길 34삼척향교에서 앞쪽에 위치하며, 삼척향교의 내력을 기록하여 1976년 7월 향교 앞에 세운 비석이다. 묘정비는 보통 조선시대에 여러 지역에서 운영된 서원 앞에 세웠기 때문에 일명 ‘서원비(書院碑)’라고도 한다. 서원의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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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삼척향교의 입구에 세운 석비. 삼척향교 앞을 지날 때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타고 가던 말에서 내리라는 뜻의 명문을 새겨 놓은 돌비석[석비(石碑)]이다. 하마비(下馬碑)는 흔히 ‘大小人員皆下馬(대소인원개하마)’라고 새긴 석비를 줄여 이르는 것으로, 누구든 이 앞을 지날 때는 말에서 내리라는 지시의 푯돌이다. 조선시대 궁가(宮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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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김정경이 편찬한 삼척 지역 종합 지리지. 1955년 당시 삼척교육감 김정경이 국한문 혼용체로 삼척 지역에 관하여 총 23장으로 편찬한 종합 지리지이다. 김정경(金鼎卿)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삼척 지역의 향토 문화가 위기에 처했다고 인식하고 지역 문화·경제 재건, 군민 자립과 자활에 도움이 되기 위하여 『삼척향토지』를 발간하였다. 필사본이다.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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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삼척 지역에 둔 지방 행정 구역 단위. 1018년의 지방 제도 개편 때 삼척 지역은 척에서 삼척으로 읍명이 환원되고, 읍격도 주에서 현으로 강등되었다. 고려 성종대에 개혁이 이루어진 지방 제도는 얼마 가지 않아 실패로 끝났다. 이에 따라 현종대에 들어와서 지방 제도는 다시 개편되었다. 현종은 1018년(현종 9)에 75도안무사(道安撫使)를 폐지하고 4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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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삼척시 미로면 상거노리 출신 효자. 서정로(徐廷魯)는 어머니의 종기를 치료하기 위하여 뜨거운 쑥을 자기 팔에 붙인 다음 어머니의 팔에 대어 가며 어머니를 치료하였다. 서정로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자는 문도(文道)이며, 호는 의암(衣菴)이다. 서정로는 개항기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상거노리 웃바우골 의암촌(衣岩村)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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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의 충노. 석복(石福)은 역리(驛吏) 김덕령(金德岭)의 노복(奴僕)으로, 지금의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옥원리(沃原里)에 살았다. 주인 김덕령은 나이가 칠십이 되도록 자식이 없었는데 가세가 급격히 기울면서 헐벗고 굶주리게 되었다. 자식이 없다보니 의탁할 곳마저 없었다. 그럼에도 노복인 석복은 김덕령의 곁을 떠나지 않고 날품팔이를 해서 옷과 음식을 공급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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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문헌 사료 등 문자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의 역사. 선사시대는 문자 기록이 없는 시대로, 역사시대와 대칭되는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까지 포괄하는 시대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구석기시대는 인류가 도구를 제작해서 사용하기 시작한 단계에서부터 농경이나 목축 또는 토기 제작이 시작되기 이전까지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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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성북동 갈야산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삼척시의 진산(鎭山)으로 알려진 성북동 북편의 갈야산 일대에 위치해 있는 신라 고분군이다. 1959년 삼척김씨 시조묘인 실직군왕릉(悉直郡王陵)[강원도 기념물 제15호]으로부터 북쪽으로 약 100m 떨어진 농경지에서 돌무더기를 제거하다 토기편들이 발견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긴급 수습 조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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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숙암리에 있는 고대 산성. 숙암리산성은 동남쪽 배후의 산으로부터 서북쪽으로 내려오면서 다소 봉긋 솟은 돌출부에 입지하였다. 산 정상을 돌로 둘러가며 쌓아 올린 테뫼식 산성이다. 북벽 구간의 성벽은 높이 약 2m 정도의 외축내탁(外築內托)으로 축조하였다. 남쪽 구간도 성벽이 남아 있다. 산성의 앞쪽(서북쪽)은 번천(番川)과 골지천(骨只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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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 삼척 지역의 불교 수용과 변화. 삼척 지역에는 7세기 중엽 선덕여왕 때 불교가 본격 전파되었다. 그 후 신라 하대에 와서는 선종이 널리 보급되었다. 특히 선종 가운데 범일(梵日)이 개창한 사굴산파(闍崛山派)의 영향이 컸다. 신라의 불교는 법흥왕 대에 공인된 이후 왕실의 적극 장려에 힘입어 크게 발전함으로써 각처에 많은 사찰이 세워지고 고승과 학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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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을 둘러싼 5세기 때의 신라와 고구려 간 공방전. 5세기에 신라와 고구려는 삼척 지역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그 결과 468년에 삼척 지역은 고구려 영토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신라는 6세기 초에 고구려로부터 삼척 지역을 되찾아 505년에 실직주를 설치하였다. 신라는 102년(파사이사금 23) 삼척 지역에 위치한 실직국(悉直國)을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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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척에서 은거한 문관. 신보은(辛輔殷)의 본관은 영월(寧越)이며, 호는 백주(白洲)이다. 문정공신당계(辛唐系)의 후손이다. 신보은은 1484년(성종 15)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와 창녕부사를 지냈다. 연산군 당시 무오사화로 말미암아 벼슬에서 물러나와 삼척의 죽동(竹洞)에 내려와 살면서 개간하여 농사에 전념하였다. 늙어서는 누대(樓臺)에 오르는 등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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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구석기시대를 이어 나타나는 간석기와 토기를 만들어 사용한 시대. 신석기시대는 후빙기(後氷期)의 새로운 자연 환경 속에서 인류가 처음으로 원시 농경과 목축에 의한 식량 생산을 하게 됨으로써 이를 배경으로 인류 문화가 비약 발전하게 된 시기를 말한다. 즉 지금으로부터 약 1만 년 전쯤 기후가 지구 전반에 걸쳐 온난다습하게 되어 양극 지방의 두꺼운 얼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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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출신 문신. 신한경(申漢卿)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첨사 신덕명(申德明)의 아들이며, 금부도사 홍양해(洪洋海)의 사위이다. 신한경은 1633년(인조 11)에 진사가 되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어머니를 모시고 동생과 함께 삼봉산(三峯山)에 피신하였다가 두타산에 숨어 있는 송강정철(鄭澈)[1536~1593]의 손자 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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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에 소재한 역. 신흥역은 조선 전기에는 설치되지 않았다가 조선 후기에 와서 삼척 지역에 속한 6개 역 가운데 하나로 설치되었다. 조선 초기 강원도의 역은 보안도(保安道), 대창도(大昌道), 평릉도(平陵道) 등 3개 역로에다 속역이 57개였다. 그러다가 고려 말 조선 초에 여러 곳의 역을 통합 또는 이설하거나 명칭 개칭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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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삼척 지역에 존재한 초기 국가. 삼척 지역에 위치한 초기 국가인 실직국(悉直國)은 경주의 사로국(斯盧國)[신라(新羅)]과 일정한 정치·경제 관계를 맺고서 강원도 및 경상북도동해안 일대의 해상 교역권을 장악하여 갔다. 이 과정에서 경상북도 청하·흥해 지역의 항구 확보를 둘러싸고 안강에 있던 음즙벌국(音汁伐國)과 영토 분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를 보면 실직국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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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삼척 지역에서 벌어진 실직국과 음즙벌국 간 영토 분쟁. 강원도 삼척 지역에 위치하고 있던 실직국은 서기 102년 경상북도 안강 부근에 있던 음즙벌국과 영토 분쟁을 벌였다. 그러나 두 나라 간 거리를 감안할 때 영토 분쟁이 두 나라의 지경에서 벌어진 직접 충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추측건대 경상북도동해안 일대의 해상 교역권 장악을 둘러싼 두 나라 간 갈등과 대립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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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초기의 소국인 실직국의 항복. 삼척 지역에 존재하고 있던 초기 국가인 실직국이 102년(파사이사금 23) 당시 사로국이던 신라에 자진 항복하였다. 신라는 복속된 실직국 지역을 직접 지배하지는 않고 공납을 매개로 신속 관계를 맺고는 간접 지배를 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104년(파사이사금 25) 실직국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남으로써 신라는 군대를 동원하여 진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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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장수왕이 지금의 삼척시인 실직 지역을 확보한 뒤 설치한 지방 행정 조직. 『삼국사기』에는 ‘실직군’ 관련 기사가 두 차례 등장한다. 고구려에 속하여 실직군이었음을 보여 주는 권 제37 잡지(雜志) 제6 지리(地理) 4 고구려 하슬라주(何瑟羅州)조에 실린 실직군 관련 기록과 신라가 중사를 지내는 4해(四海) 가운데 북해를 비례산에 설치하였는데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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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성북동과 사직동에 각각 있는 삼척김씨 시조 묘와 그의 부인 묘. 실직군왕릉은 삼척김씨 시조묘(始祖墓)로, 일명 갈야릉(葛夜陵)으로 불린다. 실직군왕릉은 『삼척군지』에 따르면 1838년(헌종 4) 가을에 후손 김학조(金學祚), 김흥일(金興一) 등이 당시 삼척부사 이규헌(李奎憲)에게 시조의 유적과 지석을 찾아보겠다고 간청하여 허락을 받아 먼저 사직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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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에 실직주에 파견된 지방관. 6세기 전반 당시 실직 지역의 지방 통치는 군주-도사 체제였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실직 군주는 실직 지역뿐만 아니라 국보 제242호 ‘울진 봉평리 신라비(蔚珍鳳坪里新羅碑)’에서 보듯 울진 지역까지 관할하고 있었고, 또 하슬라[강원도 강릉지역의 옛 지명]로 이동한 주치가 다시 실직으로 이동해 온 후에는 강릉 지역까지 관할 범위 안에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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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신라에서 현재 삼척 지역인 실직에 형 집행 책임자로 파견한 관명. 실직은 동해안 지역의 정치·군사 구심점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524년(법흥왕 11)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국보 제242호 울진 봉평리 신라비(蔚珍鳳坪里新羅碑)에도 ‘실지군주’, ‘실지도사’ 등의 직명이 보인다. 여기에서 ‘실지(悉支)’는 ‘실직(悉直)’으로, ‘실지군주(悉支軍主)’는 5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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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지증왕대에 삼척 지역을 고구려로부터 회복한 후 설치한 지방 행정 조직. 동해안 지역을 상실한 신라는 5세기말 전후에 들어와 실직 회복에 나서서 고구려 세력을 물리치고 다시 신라 영토로 회복하여 505년(지증왕 6)에 실직주를 설치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 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 6년조에 “2월에 왕은 친히 국내의 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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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척 지역 출신의 문신. 심가보(沈家甫)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다. 자는 세신(世臣)이며, 호는 문암(門岩)이다. 아버지는 교수 심맹은(沈孟恩)이다. 심가보는 1453년(단종 1) 진사에 합격하였으며, 음관으로 훈도를 지냈다. 1468년(세조 14) 문과에 급제하여 박사를 거쳐 양구(楊口), 흡곡(歙谷)의 현령을 지내면서 선정을 베풀어 직강(直講)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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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심씨의 시조가 된 고려 말의 문신. 초명은 한(漢)이고, 호는 신재(信齋)이다. 고려공민왕 때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왕이 이를 만류하다가 동로(東老)[노인이 동쪽으로 간다는 뜻]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낙향한 후에는 후학 양성과 풍월로 세월을 보냈다. 왕은 그를 진주군(眞珠君)으로 봉하였다. 문림랑(文林郞) 군기시주부(軍器寺主簿) 심적충(沈迪冲)의 현손이고,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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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척 출신 문관. 심언경(沈彦慶)의 본관은 삼척(三陟)이고, 자는 사길(士吉)이며, 호는 적연(磧淵) 또는 동해랑옹(東海浪翁)이다. 아버지는 좌랑 심준(沈濬)이다. 심언경은 1516년(중종 11)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판서, 홍문관, 예문관의 제학과 좌찬성을 지냈다. 성품이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있었으며, 충직하였다고 전한다. 아우 심언광(沈彦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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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삼척을 본관으로 하는 문신. 심언광(沈彦光)[1487~1540]은 고려공민왕 때의 문신 심한(沈漢)의 후손으로, 1487년(성종18) 3월 3일 강릉 대창용지촌(大昌龍池村)에서 예조좌랑 심준(沈濬)과 강릉김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은 찬성을 지낸 심언경(沈彦慶)[1479~1556]이다. 심언광은 1502년(연산군 8) 15세에 감사(監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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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척 출신 문관. 심희전(沈希佺)의 자는 운경(雲慶), 호는 수암(睡岩)이다. 아버지는 심가보(沈家甫), 할아버지는 심맹은(沈孟恩)이다. 심희전은 1486년(성종 17) 생원에 급제하고 1516년(중종 11) 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이조와 호조 정랑(正郎), 봉상시정(奉常寺正), 홍원현감(洪原 縣監)을 지낸 뒤 평해군수 재임 중에 사망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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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무사 김인우(金麟雨)를 울릉도에 파견한 일. 김인우는 본관이 삼척으로 삼척 사람이다. 그는 처음 고려 말에 삼척군 지군사(知郡事) 남은(南誾)[1354~1398] 휘하의 군사였다가 군공을 세워 안인포(安仁浦) 만호와 판장기현사(判長鬐縣事)가 되었다. 그 후 조선태종·세종대에 안무사로서 울릉도에 갔다 왔다. 허목(許穆)[1595~1682]은 『척주지』에서 김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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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공민왕대에 삼척 지역으로 파견된 지방관. 안집중랑장은 고려 후기의 공민왕대인 1372년 또는 1373년부터 우왕대인 1377년까지 삼척 지역에 파견된 지방관이다. 삼척현(三陟縣)에 안집중랑장(安執中郎將)이 파견된 것은 공민왕대에 지방관으로 안집별감(安集別監)을 파견한 사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민왕은 왜구 침입과 토지제도 문란 등으로 유망한 백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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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을 소재로 하여 작품을 남긴 고려 후기 문신. 한국문학사에서 ‘경기체가’인 「관동별곡」[삼척시 경치와 풍경을 표현]과 「죽계별곡」[고향 죽계의 풍경 표현]의 저자이다.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당지(當之), 호는 근재(謹齋)이다. 할아버지는 안희서(安希諝), 아버지는 안석(安碩)이다. 어머니는 안성기(安成器)의 딸이다. 고려 후기 신흥유학자로 탁월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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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덕산리에 있는 봉수터. 양야산 봉수는 근덕 해안으로 침투해 오는 적에 대한 방어와 연락 체계를 갖추어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밤에는 횃불을 들고 낮에는 연기를 피우는 방법으로 주요 사항을 전달함으로써 주변 마을 주민들에게 빠르게 알림과 동시에 경비, 통신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한 국방상의 중요한 시설이 있던 곳이다. 『세종실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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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삼척 지역 효자. 양현석(梁玄錫)의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자는 내범(乃範)이며, 호는 은천(隱川)이다. 통정대부(通政大夫) 양재선(梁在瑄)의 조카이다. 양현석은 뛰어난 효자로, 밖에서 맛좋은 음식을 보면 품어 가지고 와서 어버이에게 드렸다고 한다. 어버이가 병이 들어 매우 위독하였을 때 어버이의 병에 멧돼지 피가 특효약이라는 말을 듣고 산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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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의 역사시대 전반에 대한 개관. 청동기시대에 들어와 각 처에 정치제가 출현할 때 삼척 지역에는 실직국(悉直國)이 존재하였다. 이 실직국은 한반도 중부 동해안 일대에서 해상권을 장악하고 교역을 독점하였다. 그러나 실직국이 102년(파사이사금 23)에 신라[사로국]에 항복함으로써 삼척 지역은 신라의 북쪽 변경지대가 되었다. 이후 5세기에 들어와 고구려의 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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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삼척 지역에 설치된 관용 교통 수단과 여행객을 위한 편의 시설. 조선시대 때 공무 출장, 공문 전달, 공물 운송 등을 위하여 설치한 역과 여행객을 위한 편의 시설인 원을 말한다. 역원(驛院)은 역(驛)과 원(院)을 말한다. 역은 일종의 관용 교통 수단으로, 서울에서 각 지방에 이르는 도로에 30리마다 설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말·역리(驛吏)·역졸(驛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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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영경로 270에 있는 영경묘에 세운 비석. 조선을 건국한 태조이성계(李成桂)[1335~1408]의 5대조 할머니 평창이씨(平昌李氏)의 무덤인 영경묘 앞에 세운 비석이다. 이양무(李陽茂)[?~1231]의 부인 평창이씨는 상장군 이강제(李康濟)의 딸이자 이성계의 4대조인 목조이안사(李安社)[?~1274]의 어머니이다. 이양무는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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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영장 홍우보(洪雨輔)가 울릉도에 몰래 사람을 보내 인삼을 채취한 사건. 1769년 삼척부사 서노수(徐魯修)는 삼척영장 홍우보가 몰래 사람을 울릉도에 보내 인삼을 캔 사실을 밝혀 냈다. 그러나 장령 원계영이 울릉도 인삼 잠채는 홍우보의 단독 소행이 아니라 강원감사 홍명한(洪名漢)[1724~1774]의 주도 아래 조직 차원에서 이루어진 계획 범행이었다는 사실을 폭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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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오분동에 소재한 고대 산성. 강원도 삼척시에 소재한 고대 산성으로, 삼국시대에 축조되어 고려시대에는 진성으로 사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오화리산성은 고산성 또는 요전산성이라고 칭해져 왔다. 요전산성의 경우 이승휴(李承休)[1224~1300]의 『동안거사집』에 나온다. 그러나 이는 두타산성을 오인한 것으로 보인다. 오화리산성은 지표 조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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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에 소재한 역. 옥원역은 조선 초기 3개 역로에서 평릉도에 속한 역 가운데 하나이자 삼척도호부에 속한 5개 역 가운데 하나였다. 옥원역에는 왜구의 요충지라 하여 일찍이 성을 쌓고 천호를 배치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삼척에 속한 6개 역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 초기 강원도의 역은 보안도(保安道), 대창도(大昌道), 평릉도(平陵道) 등 3개 역로에다 속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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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왜구의 삼척 지역 침입. 고려 말 삼척 지역에는 총 네 차례의 왜구 침입이 있었다. 특히 1381년 침입 때는 미곡 약탈을 위하여 창고를 습격하고 삼척현을 불태웠다. 고려시대 때 왜구가 처음 침입한 것은 1223년(고종 10)이었다. 그 후 충렬왕대까지 몇 차례의 산발 침입이 일부 지역에 있었지만 규모가 작고 위세도 미약하여 경미한 피해를 주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왜구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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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도호부에 속하여 있던 용산서원의 동재유생 명단. 용산서원은 숙종 대에 삼척부사를 지낸 이세필을 제향하는 서원이다. 이 용산서원의 동재유생 명단인 청금록에는 1708년 10월부터 1755년 8월까지 총 18회에 걸쳐 선발된 유생 129명의 이름이 신상 정보와 함께 기록되어 있다. 용산서원(龍山書院)은 1703년(숙종 29) 12월부터 1705년(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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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이승휴가 삼척 지역에 건립한 모옥의 당호. 이승휴는 1280년에 파직 당하여 삼척두타산 아래로 돌아온 후 구산 골짜기 용계 서쪽에다 모옥을 짓고는 용안당이라 하였다. 여기서 이승휴는 『제왕운기』, 『빈왕록』, 『내전록』 등을 저술하였다. 이승휴(李承休)[1224~1300]는 자가 휴휴(休休)이고 호는 동안거사(動安居士)로, 경산부(京山府) 가리현(加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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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에 소재한 역. 용화역은 조선 초기 3개 역로에서 평릉도에 속한 역 가운데 하나이자 삼척도호부에 속한 5개 역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 후기에는 삼척 지역에 속한 6개 역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 초기 강원도의 역은 보안도(保安道), 대창도(大昌道), 평릉도(平陵道) 등 3개 역로에다 속역이 57개였다. 그러다가 고려 말 조선 초에 여러 곳의 역을 통합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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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신라의 이사부가 동해 제해권(制海權)을 장악하기 위하여 우산국, 즉 울릉도와 부속 섬을 복속시킨 사건. 신라의 동해 제해권 확보에서 중요한 사건은 지증왕 대의 이사부에 의한 우산국 정벌이다. 신라는 울진, 삼척, 강릉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육상 교통로를 통한 진출뿐만 아니라 석탈해 이래 유지되어 온 해양 세력에 의한 연안 항로로의 양동(陽動) 작전을 구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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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삼척 지역 중심으로 울릉도의 거주를 금하고 울릉도에 관리를 파견해서 주기로 순찰을 돌며 관리한 정책. 수토란 수색을 해서 무엇을 알아내거나 찾기 위하여 조사 또는 엿본다는 의미이다. 즉 울릉도 수토란 조선 후기 때 울릉도 거주를 금하고 울릉도에 관리를 파견해서 주기로 순찰하며 관리하던 것을 말한다. 울릉도 수토는 안용복(安龍福) 도일 사건을 계기로 실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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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당동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 원당동 고분은 조선시대 삼척부 사직단지가 자리한, 해발 51m의 야트막한 구릉에 위치하고 있는 신라 고분이다. 원당동 고분은 강원도 삼척시 원당동 산43-2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1994년 무렵 원당동 지역 일대가 아파트 주택 건설 부지로 계획됨에 따라 1995년 가톨릭관동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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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허목길 13-9[정상동 82]에 있는 조선시대 삼척포진의 역대 영장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 조선시대 삼척포진(三陟浦鎭)의 역대 영장(營將)[조선시대 중앙의 총융청(摠戎廳)·수어청(守禦廳)·진무영 등과 각 도의 감영(監營)·병영(兵營)에 소속되어 지방 군대를 관할, 통솔하기 위하여 설치한 진영(鎭營)의 정3품 당상직 장관(將官)]들의 선정(善政)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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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열녀. 삼척김씨(三陟金氏)는 이구연(李九淵)의 처이다. 삼척김씨는 나이 스물에 남편이 죽자 자식이 없는 것이 지극히 한이 되어 남편을 뒤좇아서 죽으려고 여러 날 밥도 먹지 않지 않자 시부모가 보고 매우 슬퍼하며 회심이 컸다. 식사 때는 남편 묘에 올라 피눈물을 흘리니 그로 인해 잔디가 말라 죽었다. 그러다 시아버지가 병으로 눕자 대신 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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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현재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활동한 장군이자 정치인. 일명 태종(苔宗)으로, 내물마립간의 4대손이다. 지증왕 이래 법흥왕~진흥왕대까지 활약한 대표 장군이며, 신라 왕실의 중신이다. 내물왕의 4대손이다. 이사부는 512년(지증왕 13) 현재의 울릉도인 우산국을 신라 영역으로 편입시킨 장수로, 6세기 신라의 성장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사부는 『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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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신라이사부가 우산국, 즉 울릉도를 복속하기 위하여 출항한 지역으로 추정되는 강원도 삼척시오십천 하구. 신라가 동해안 제해권 확보를 위하여 우산국은 매우 중요한 전략 거점이었다. 이를 위하여 울릉도를 복속시킬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를 위한 준비는 이사부가 실직주 군주로 있을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사부가 울릉도를 향하여 출발한 오십천 하구는 동해안 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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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토지신 또는 향선생을 대상으로 행해지던 제사. 이사제는 마을에서 지내는 서낭제로, 마을에서 공동으로 모시는 토지신을 제사 지내는 것이다. 삼척 지역은 미수허목이 부사로 왔을 때 시행하였다고 한다. 이사(里社)란 옛날 동리마다 토지신을 모시던 사당이다. 중국주(周)나라 때 100가(家) 이상이면 사(社)를 세웠고, 진(秦)·한(漢)시대 이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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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이상호(李尙虎)의 본관은 우계(羽溪)이다. 자는 문숙(文淑), 호는 소재(素齋)이다. 이동익(李東益)의 아들이다. 이상호는 10세 때 아버지 이동익이 사망하자 단 것을 먹지 않고 애도하는 마음으로 일관하였다고 한다. 15세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소생시켰다. 이상호는 아버지 묘를 이장하여 3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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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에 현재의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이자 학자. 이승휴의 자는 휴휴(休休)이고, 자호(自號)는 동안거사(動安居士)이다. 경산부(京山府) 가리현(加利縣) 사람으로, 가리이씨 시조이다. 1287년에 삼척 삼화사 용안당에서 『제왕운기』와 『내전록』을 저술하였다. 가리이씨(加利李氏)의 시조이며, 가계는 자세하게 전해지지 않는다. 아들은 이연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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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 이안사의 본관은 전주이며, 이양무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평창이씨로, 상장군 이강제(李康齊)의 딸이다. 비는 천우위장사(千牛衛長史) 이숙(李肅)의 딸 공효왕후(恭孝王后 )[추존]이다. 1394년(태조 3) 태조가 4대조를 추존할 때 덕을 베풀고 의로 행했다 하여 목조로 추존하였다. 조선 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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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가리(加利)이며, 고려말 문신이다. 사헌규정을 거쳐 공민왕 때 밀직사겸감찰대부를 지냈다. 이승휴(李承休)[1224~1300]의 아들이자 이임종(李林宗)의 동생이다. 1314년(충숙왕 1)에 사신(史臣)이 되어 호군(護軍) 윤석(尹碩)[?~1348]과 승려 계송(戒松)이 왕에게 여자를 들이는 등 아첨으로 총애를 받아 왕도를 잃었다고 기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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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삼척 출신 무신. 이인호(李寅顥)의 본관은 우계(羽溪)이고, 호는 만성(晩醒)이다. 고조부는 이원혁(李原赫), 증조부는 이장엽(李章曄)[1770~?], 조부는 이명위(李命瑋), 아버지는 증가선대부 한성부좌윤을 지낸 이병조(李秉祚)이다. 황해도 해주 조니포(助泥浦) 만호(萬戶)와 수사(水使)를 지낸 이계철(李啓喆)의 조카이다. 이인호는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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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가리이다. 고려 말 문신으로, 과거 급제 후 언부산랑을 지냈다. 이승휴(李承休)[1224~1300]의 아들이자 이연종(李衍宗)의 형이다. 생몰년 미상이며, 본관은 가리(加利)이다. 부친은 가리이씨 시조인 동안거사(動安居士)이승휴이다. 이승휴의 맏아들로, 과거에 급제한 후 벼슬이 언부산랑(讞部散郞)에 이르렀다. 관직 생활이 반듯하여 『주례(周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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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의 열녀. 삼척김씨(三陟金氏)의 본관은 삼척(三陟)이고, 이주찬(李周粲)의 아내이다. 이주찬의 가계로는 4세손 이한익(李漢翊), 5세손 이종환(李鐘煥)과 이종섭(李鍾燮), 6세손 이윤갑(李潤甲)이 있다. 삼척김씨는 시집와서 시부모와 남편을 정성을 다하여 공경하다가 1878년(고종 15)에 남편이 병을 얻어 양근에서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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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활동한 서화가. 이희수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자는 지삼(芝三)이며, 호는 소남(少南) 및 경지당(景止堂)이다. 평안남도 상원군(祥原郡) 출신이다. 추사(秋史)김정희(金正喜)[1786~1856]와 쌍벽을 이루던 눌인(訥人)조광진(曺匡振)[1772~1840]에게서 20여 년 동안 글씨를 배워 평양을 중심으로 관서 지역을 대표하는 서화가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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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도호부 소속 서리 명단. 『인리관안』은 1859년 1월 당시 삼척도호부 소속 서리 총 67명의 명단이다. 겉표지에 ‘내상(內上)’이라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부사의 서리층 파악과 관리를 돕기 위하여 삼척도호부가 자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규격은 32.5⨯12.7㎝이다. 형식은 12면 접철이며, 지질은 저지(楮紙)이다. 겉과 안의 표제는 ‘함풍구년기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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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에 소재하고 있는 봉수터. 임원산 봉수는 임원 해안으로 침투해 오는 적에 대한 방어와 연락 체계를 갖추어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밤에는 횃불을 들고 낮에는 연기를 피우는 방법으로 주요 사항을 전달함으로써 주변 마을 주민들에게 빠르게 알림과 동시에 경비, 통신 수단 역할을 한 중요 국방 시설이 있던 곳이다. 『세종실록』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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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강원도 삼척 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임진왜란 때 왜군은 1592년 7월 상순 말 무렵 삼척 지역으로 들어왔다가 8월 초 백복령을 넘어 정선으로 철수하였다. 이에 따라서 왜군이 삼척 지역에 머무른 기간은 길어도 20일 정도였다. 그동안 삼척부사 기령이 군대를 지휘하였다. 그러나 왜군과의 직접 전투가 있었는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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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후기 문신인 미수허목이 자연재해를 물리치기 위하여 전서체로 글을 써서 오늘날의 강원도 삼척시 정라동에 세운 비석.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는 강원도 삼척시의 육향산 꼭대기에 있다. 척주동해비는 조선시대 후기 문신인 미수허목이 삼척부사로 와서 글을 짓고 전서체로 글씨를 써서 세운 것이다. 허목이 삼척부사로 재임하던 당시 삼척 지역은 자연재해가 극심하였다. 166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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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출신 의병. 정내제(鄭來濟)의 본관은 영일(迎日)이며, 자는 여문(汝文)이다. 정내참(鄭來參)의 동생이다. 정내제는 성품이 강개용력하여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1728] 등이 난을 일으키자 이에 분개하여 몸을 돌아보지 않고 군사를 모았다. 나라를 바로세우고자 하는 일념으로 정내제는 신변의 두려움도 잊어 가며 군사를 모아 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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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삼척 출신 문신이자 효자. 정두형은 여러 관직을 거친 후 7도의 도사를 여러 해 동안 역임하고 1570년에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강릉부사를 자원하여 지냈다. 정두형의 효행을 기리려 정문이 세워졌다. 본관은 영일(迎日)이다. 고려 중기 문신으로서 내시, 예부시랑, 추밀원지주사를 지낸 형양공(滎陽公)정습명(鄭襲明)[?~1151]의 후손이자 정몽주(鄭夢周)[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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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때 이승휴가 저술한 영사시. 『제왕운기』는 이승휴가 지은 책으로, 상·하 2권 1책이다. 상권은 반고로부터 금나라까지 중국의 역사를 칠언시로 읊었고, 하권은 1·2부로 나누어 단군부터 고려충렬왕 때까지의 우리나라 역사를 서술하였다. 1부는 전조선·후조선·위만조선·삼한·신라·고구려·백제·발해 등의 사적을 칠언시로 엮었고, 2부는 고려 건국부터 충렬왕 때까지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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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강원도 삼척 지역의 역사. 태조 이성계는 1393년(태조 2)에 삼척이 목조이안사의 외향(外鄕)이라 하여 삼척군에서 삼척부로 승격시켰다. 그러나 1413년(태종 13)에 삼척도호부로 읍격이 강등되었다. 삼척도호부 산하에는 당초 5개의 리가 있었지만 1630년(인조 8)경에 4개를 신설하여 9개의 리가 되었다. 그 후 숙종 연간에 리를 면으로 개칭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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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도호부 산하 행정 구역. 처음 삼척도호부 산하에는 부내·노곡·장생·미로·북평 등 5개 리가 있었다. 그러나 1630년경 매곡·덕번·소달·박곡 등 4개 리를 신설하여 총 9개 리가 되었다. 그 후 숙종 연간에 리를 면으로 개칭하는 한편 장생을 상장과 하장, 덕번을 근덕과 원덕, 북평을 도상과 도하로 각각 분리·신설하여 총 12개 면이 되었다. 면리제는 조선시대 국가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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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지방 군사제도의 일환으로 삼척 지역에 설치된 지방군. 고려시대 삼척현에는 주진군이 배치되었다. 주진군은 초군, 좌군, 우군, 영새, 공장 등 병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부대 지휘관으로는 별장, 교위, 대정 등이 있었다. 고려시대 군사제도는 크게 2군(軍)·6위(衛) 중심의 중앙군과 주현군(州縣軍)·주진군(州鎭軍) 중심의 지방군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주현군은 순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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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도호부 소속 기생 명단. 『주탕안』은 1853년 1월에 작성된 삼척도호부 소속 기생 10명의 명단이다. 삼척도호부에서 업무 참고용으로 자체 작성한 문서로 보인다. 규격은 29.7⨯9.7㎝이다. 형식은 6면 접철이며, 지질은 저지(楮紙)이다. 1853년(철종 4) 1월에 작성된 삼척도호부 소속 기생 명단으로, 표제는 ‘함풍삼년계축정월일주탕안(咸豐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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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죽서루 주변 바위와 오십천 주변 절벽에 새겨져 있는 글씨. 고려 후기에 건립되어 조선시대 삼척도호부 관아 건축물의 하나로 사용된 죽서루는 주변의 오십천 절벽 일대와 함께 송강정철(鄭澈)[1536~1593]의 「관동별곡(關東別曲)」에 소개되면서 예부터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 꼽히며, 삼척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삼척의 젖줄인 오십천에서 으뜸 절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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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준경길 333-360에 있는 준경묘에 세운 비석. 조선을 건국한 태조이성계의 4대조 목조이안사의 아버지 이양무(李陽茂)[?~1231]의 무덤인 준경묘 앞에 세운 비석이다. 이양무는 고려시대 인물로, 조선태조의 5대조이자 목조이안사의 부친이다. 그의 부인 평창이씨는 상장군 이강제(李康濟)의 딸이다. 원래 전라도 전주 지방의 호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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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척 출신 문신. 진관(陳瓘)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다. 자는 영중(瑩中, 瑩仲)이며, 호는 동강(東岡)이다. 함경도사 진가유(陳嘉猷)의 아들이다. 조부는 진숭백(陳崇伯), 증조부는 진광(陳曠)이다. 형은 진수(陳璲)이다. 1534년(중종 29) 갑오 식년시에서 생원(生員)에 급제하고, 1543년(중종 38) 계묘 식년시 문과 병과(丙科)에 급제하였다. 호조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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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때 삼척군으로 봉해진 충신. 진군명(秦君命)의 선조는 풍기(豊基) 사람이다. 진군명은 고려시대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지낸 진중기(秦中起)의 손자이다. 진군명은 고려시대 충신으로, 무관직을 지냈다. 진군명은 ‘판병부사(判兵部事)’의 벼슬을 지냈다. 판병부사와 같은 말은 ‘판상서병부사(判尙書兵部事)’로, 고려시대에 둔 ‘상서병부(尙書兵部)’의 으뜸 벼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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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의 열녀 삼척김씨(三陟金氏)[?~1844]는 통정대부 김기복(金起福)의 딸이며, 진덕귀(陣德貴)[?~1844]의 처이다. 삼척김씨는 삼척 천곡리(泉谷里)에서 살았다. 나이 18세에 진덕귀에게 시집갔지만 집안이 가난하고 시부모가 연로하여 부부가 칡뿌리를 캐고 도토리를 주어다가 부모를 공양하였다. 1844년(헌종 10)에 남편이 죽으니 예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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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원도 삼척 지역 삼척포진성의 동문루. 삼척시 정상동 육향산(六香山) 아래에는 석성(石城)이 있었다. 이곳이 바로 동해를 지키기 위하여 설치한 조선시대의 삼척포진성(三陟浦鎭城)이다. 이 진영(鎭營)의 성(城) 동문루(東門樓)를 진동루(鎭東樓), 안해루(晏海樓), 세병루(洗兵樓)라고도 불렀다. 삼척포진성은 원래 삼척시 오분동 뒷산 해변의 험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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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삼척군으로 책봉받은 문신. 진의(陳懿)의 본관은 여양(驪陽)이며, 시조 진경(陳鏡)으로부터 16세이다. 부친은 진상헌(陳尙軒)이며, 아들은 진영(陳瑛)이다. 시조 진경은 고려시대에 시중(侍中), 태보(太保) 등의 벼슬을 역임했지만 선계(先系)는 자세하지 않다. 진경의 16세손인 진의는 충렬왕 때 삼척군(三陟君)에 봉해졌으며, 조선조에 의주병마사(義州兵馬使)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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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진자사(陳子俟)의 본관은 여양(驪陽)이지만 그의 가계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고려 충렬왕 때 문신으로 본관은 여양이다. 1281년(충렬왕 7) 정월에 안집사(安集使) 병부시랑(兵部侍郎)으로 삼척에 왔을 때 큰 눈이 내려 가지 못하고 열흘 동안 묵으면서 죽서루(竹西樓)에 올라 고조(古調)를 지었다고 한다. 고려시대 민족 대서사시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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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현재의 삼척 지역을 지칭하던 별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고려사(高麗史)』에는 삼척(三陟)의 별호(別號)가 ‘진주(眞珠)’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삼척을 왜 진주라고 하였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심의승(沈宜昇)은 『삼척군지(三陟郡誌)』에서 진주는 실직주(悉直州)의 ‘직주(直州)’ 두 글자를 문치상(文致上) 개서(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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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에 편찬된 삼척 지역 종합 지리지. 『진주지』는 삼척 지역에서 발간된 기존의 지리지를 대부분 참고하여 발간한 삼척 지역의 마지막 한문본 종합 지리지이다. 삼척군 유도회에서 새로운 삼척지리지 간행을 결의하여 최만희(崔晩熙)와 홍종범(洪鍾凡)[1905~1991]이 주도하여 신임 전교 이태현 등이 7개월 동안 자료를 수집하고 편집하여 간행하였다. 필사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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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진씨의 시조가 된 조선 전기의 문신. 고려 말에 태어나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움으로써 개국 공신의 녹권과 왕지를 받았다. 진충귀(陳忠貴)는 삼척진씨(三陟陳氏)의 시조이며 형은 진의귀이다. 진충귀(陳忠貴)는 진의귀(陳義貴)[?~1424] 등과 같이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에 걸쳐 활약하였다. 진충귀는 무과에 급제하여 1393년(태조 2)부터 4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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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삼척 지역에 은거한 문신. 진학(秦鶴)의 본래 성은 안동김씨이지만 진씨(秦氏)를 사성(賜姓)하였다. 그러나 가계가 자세하지 않다. 진학은 고려충목왕 때의 문신이며, 본성은 안동김씨이다. 안동 태생으로, 충목왕 때 급제한 뒤 시중(侍中)을 지냈다. 충렬왕 때 원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원 황제의 미움을 사서 진학을 죽이라는 명을 충렬왕이 받았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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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삼척 지역에 둔 지방 행정 구역 단위. 995년(성종 14) 지방제도 개편으로 삼척군은 읍격(邑格)이 군(郡)에서 주(州)로 승격되고 읍명(邑名)을 척(陟)으로 하는 척주(陟州)로 개칭되었으며, 주로의 승격에 따라 지방관으로 단련사가 파견되었다. 고려는 후삼국을 통일하자 940년(태조 23) 통일 전쟁를 치르면서 수시로 단행된 군(郡)·현(縣) 개편을 종합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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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구혁이 삼척부에 재임한 관리 명단과 간단한 이력을 정리한 책. 김구혁이 1369년(공민왕 18)부터 1904년(광무 8)까지 삼척부에 재임한 관리 명단과 간단한 이력을 정리한 책이다. 강릉김씨 감찰공파의 김시학(金詩鶴)은 아들이 없자 봉정파 김종집의 3남인 김구혁(金九爀)을 양자로 들여 대를 이었다. 김구혁은 1816년(순조 16)에 증조부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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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구혁이 삼척 지역에서 절의와 효열이 뛰어난 인물들을 정리한 인명 사전. 『척주절의록』은 삼척 지역 양반 사족 출신인 김구혁이 19세기 중반에 편찬한 삼척 지역 인명 사전이다. 당시까지 삼척 지역에서 절의나 학행, 효행, 열행 등으로 명망이 있는 자들을 선별하여 그들의 행적을 기록하였다. 『척주절의록(陟州節義錄)』은 조선시대 삼척 지역 양반 사족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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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종언이 편찬한 삼척 지역 종합 지리지. 허목의 『척주지』에서 누락된 내용을 보완하고, 그 이후의 사실들을 추가로 기록하기 위하여 편찬한 삼척 지역 종합 지리지이다. 허목(許穆)[1595~1682]의 『척주지』가 발간된 지 오래되었고 빠진 부분이 있어 삼척 지역 자료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김종언(金宗彦)이 편찬한 삼척 지역 종합 지리지이다.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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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희가 1946년에 편찬한 삼척 지역 종합 지리지. 최만희가 편찬하고 삼척향교가 간행한 삼척 지역 종합 지리지이다. 삼척 지역에는 오랜 역사와 많은 고적이 있지만 제대로 정리된 읍지가 없어 최만희(崔晩熙), 김희경(金禧卿), 홍용학(洪鏞學) 등이 합심하여 지리지를 편찬하였다. 필사본으로, 6권 1책이다. 앞부분에 서문과 64개 항목으로 구분하고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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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허목이 편찬한 삼척 지역 종합 지리지. 조선 후기 학자이며 삼척부사인 허목이 지은 삼척 지역 종합 지리지이다. 상권과 하권으로 편재되었다. 상권은 건치연혁에서 1600년(선조 33)까지를 다루고, 하권은 1601년(선조 34)부터 1662년(현종 3)까지를 기술하였다. 허목(許穆)[1595~1682]이 1660년(현종 1) 10월에 삼척부사로 부임하여 삼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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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철을 이용해 도구로 사용하게 된 시기부터 삼국시대 이전까지의 시기. 대체로 한반도에서 철기시대는 청동기 제작이 본격화된 기원전 3세기말경 중국 북방으로부터 새로운 문화, 즉 철기문화가 들어옴으로써 시작된다. 이 시기는 대체로 기원전 300년경부터 기원후 300년까지의 약 600년 동안에 해당되지만 청동기시대 후기와 겹치는 기원전 300년경부터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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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신석기시대 뒤를 이어 청동기를 도구로 만들어서 사용한 시대. 인류는 오랜 기간 사용하여 온 간석기[마제석기(磨製石器)] 대신 구리에다 비소, 주석을 합금해서 만든 청동기를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문명 사회로 접어들었다. 우리나라는 신석기시대 말기인 기원전 2000년경에 중국의 요녕 지역, 러시아의 아무르강과 연해주 지역에서 들어온 덧띠새김무늬토기[돌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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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초곡리에 소재하고 있는 봉수터. 초곡산 봉수는 초곡 해안으로 침투해 오는 적에 대한 방어와 연락 체계를 갖추어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밤에는 횃불을 들고 낮에는 연기를 피워 주요 사항을 전달함으로써 주변 마을 주민들에게 빠르게 알림과 동시에 경비, 통신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한 국방상의 중요한 시설이 있던 곳이었다. 『세종실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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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척 지역 효자. 최련(崔漣)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경호(景浩)이며, 호는 유정(楡亭)이다. 강릉군(江陵君) 고려 후기 무신 최입지(崔立之)의 후손이다. 부친은 홍문관 수찬(修撰)을 지낸 최한보(崔漢輔)이다. 모친은 영양남씨로, 생원 남신석(南紳錫)의 딸이다. 최련은 9살에 아버지가 사망한 후 홀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봉양했지만 어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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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척 지역 열녀. 밀양박씨(密陽朴氏)는 유정(楡亭)최련(崔漣)의 처이다. 밀양박씨(密陽朴氏)는 근덕면 맹방리에 살았다. 남편 최련이 전사하니 적진에 뛰어들어 한칼에 함께 죽었다. 밀양박씨의 열행이 알려지면서 1571년(선조 4)에 열녀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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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무신. 최붕동(崔鵬東)의 본관은 강릉(江陵)이고, 자는 운거(雲擧)이며, 호는 병산(屛山)이다. 강릉최씨 시조 대경공최흔봉(崔欣奉)의 23세손이며, 생원 최숙남(崔叔男)의 증손이다. 사직파 파조인 21세 첨정공최응서[무과 급제]의 손자이고, 22세 전라수사 최운경[무과 급제]의 아들이다. 최붕동은 무과에 급제하여 월송만호(月松萬戶)를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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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활동한 자선가. 최상화(崔相和)의 본관은 강릉이다. 자는 중신(重信)이고, 호는 도은(桃隱)이다. 최상화는 효자 최진후(崔鎭厚)[1603~1676]의 후손이다. 최상화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인자하고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다. 또 남 돕기를 좋아하여 집안과 이웃의 가난한 자를 도와 주었다. 어려워서 결혼하지 못한 자가 있으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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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문관이자 교육자. 최세필(崔世弼)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초명은 세량(世亮), 자는 군보(君輔), 호는 용암(龍岩)이다. 최진유(崔鎭維)의 아들이며, 동지중추부사 최진남(崔鎭南)[1626~?]의 조카이다. 최세필은 조선숙종 때 천거되어 창릉참봉(昌陵參奉)이 되었지만 취임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지평(持平)에 증직되었다. 1703년(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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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척 지역에 은거한 문관. 최수(崔修)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영숙(永叔)이며, 호는 구정(歐亭)이다. 고려 말 전법판서 밀직부사를 지내다가 조선 건국 후 태조가 여러 차례 병조판서로 불렀으나 불응하고 은둔한 최유의(崔有漪)의 아들이다. 최수(崔修)는 1425년(세종 7)에 음관(蔭官)으로 고산현감(高山縣監)을 지냈다. 1427년(세종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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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척 출신 무관. 최운서(崔雲緖)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대사간(大司諫) 최수(崔修)의 조카이다. 최운서는 1447년(세종 29) 무과에 급제하여 사직(司直)을 거쳐 1445년(세종 27)에는 무릉도안무사(茂陵島按撫使)가 되었고 대호군(大護軍)을 지냈다. 1457년(세조 3)에 금성대군(錦城大君)이 화를 입을 때 예천(禮泉)으로 유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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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출신 무관. 최원각(崔元角)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탁립(卓立)이고, 호는 산저(汕渚)이다. 지사(知事) 최극강(崔克康)의 아들이자 첨추(僉樞) 최원흘(崔元屹)의 동생이다. 최원각은 1610년(광해군 2) 무과에 급제하여 봉사(奉事)가 되었다. 1613년(광해군 5) 영창대군(永昌大君)을 강화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하는 일과 폐모론(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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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출신 무관. 최원흘(崔元屹)의 본관은 강릉(江陵)이고, 자는 탁연(卓然)이다. 전주계 강릉최씨 시조인 삼한통합익찬개국공신 대경공(大卿公)최흔봉(崔欣奉)의 23세손이다. 계원(桂原)최응수(崔應壽)의 손자, 지사(知事) 최극강(崔克康)의 아들이다. 광해군 때 무과에 급제하여 둘 다 봉사(奉事)를 지낸 최원각과 최원준(崔元峻)의 형이다. 최원흘(崔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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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삼척 지역에서 은거한 문신. 최유의(崔有漪)의 본관은 강릉이며, 강릉최씨 최흔봉계(崔欣奉系) 평장사 최입지(崔立之)의 손자이다. 최입지-최안소(崔安沼)-최유의로 이어진다. 최유의는 고려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경상도 안렴사(按廉使)를 거쳐 예의판서(禮儀判書)를 지냈다. 벼슬을 그만두고 현재의 삼척 근덕 맹방촌에 내려와 살았다. 공양왕이 왕위를 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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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출신 문인. 최유혁(崔有赫)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형원(亨遠), 호는 퇴암(退菴)이다. 아버지는 최창인(崔昌仁)이다. 최유혁은 송시열(宋時烈)[1607~1689] 현손인 문간공(文簡公)송덕상(宋德相)[?~1783]의 문인으로, 정조 때 천거되어 후릉참봉(厚陵參奉)이 되었지만 취임하지 않았다. 이조참판(吏曹參判) 겸 좨주(祭酒)에 증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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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척 지역에 은거한 무관. 최응수(崔應壽)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수지(壽之), 호는 취금정(翠錦亭)이다. 삼한통합익찬개국공신 대경공(大卿公)최흔봉(崔欣奉)의 21세손이며, 계원파 파조 평장사(平章事) 최입지(崔立之)의 후손이다. 최응수는 1533년(중종 28) 진사시에 합격하고, 1535년(중종 30) 별시무과에 급제한 뒤 좌부장(左部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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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출신 문관. 최제남(崔悌男)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치공(治恭)이며, 호는 동계(桐溪)이다. 영흥교수(永興敎授) 최수량(崔守良)의 아들이다. 최제남은 1609년(광해군 1) 증광진사(增廣進士)에 합격하여 서산훈도(瑞山訓導)를 지냈다. 1619년(광해군 11)에는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전적(典籍)을 거쳐 안변교수(安邊敎授)로 갔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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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 최종원(崔鍾遠)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민원(敏元)이며, 호는 창애헌(滄艾軒)이다. 대사간 최수(崔修)의 후손이다. 최종원은 1782년(정조 6) 참의 이택징(李澤徵)[1715~1782]이 화를 당하였을 때 친척 관계 때문에 혐의를 피하기 위하여 강릉 간매동(看梅洞)에서 봉정(鳳亭)[현 강원도 동해시 단봉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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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출신 의병. 최진남(崔鎭南)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도원(圖遠)이고, 호는 죽정(竹亭)이다. 최원흘(崔元屹)의 아들이다. 최진남은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각 지방의 여러 고을에 격문(檄文)을 돌려서 강홍립(姜弘立)[1560~1627]의 죄를 성토하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한 후 거병을 하였지만 횡성(橫城)에 이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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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에서 활동한 자선가. 최한(崔澣)은 1705년(숙종 31) 동지와 함께 흥학회(興學會)를 결성하였다. 그런 뒤 1722년(경종 2) 4월 안동김씨김상헌(金尙憲)[1570~1652]의 후손인 첨정(僉正) 김양겸(金養謙)이 삼척으로 유배를 온다. 김양겸은 유배를 와서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렸다. 하루는 먹을 것을 얻으로 나갔다가 길 가운데에서 쓰러졌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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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에 소재한 역. 평릉역은 조선 초기 3개 역로의 평릉도에 속한 역 가운데 하나이자 삼척도호부에 속한 5개 역 가운데 하나였다. 옛 명칭은 평진이다. 『경국대전』에서는 평릉도에 속한 15개 역 가운데 하나였으며, 조선 후기에는 삼척에 속한 6개 역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 초기 강원도의 역은 보안도(保安道), 대창도(大昌道), 평릉도(平陵道) 등 3개 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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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삼척 출신 효자. 함재호(咸在鎬)[1879~?]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함병보(咸炳甫)의 장남이다. 함재호는 1879년(고종 16) 11월 22일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광동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자는 사길(士吉)이다. 가난한 살림에도 정성을 다하여 부모를 봉양하였다. 부모가 병이 나자 대변을 맛보아 병세를 살피면서 하늘에 쾌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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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의 향중사류(鄕中士類) 명부. 『향안』은 조선시대 향중사류 명부로, 일종의 향신록(鄕紳錄)이다. 향좌목(鄕座目), 향적(鄕籍), 향록유안(鄕錄儒案), 향목(鄕目), 사적(士籍)이라고도 한다. 향안에는 대개 세족(世族), 현족(顯族), 우족(右族) 등으로 불리는 재지사족만이 입록될 수 있었다. 또 향안에 입록되어야 비로소 양반으로서의 대우는 물론 좌수(座首)·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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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에서 실시된 향촌 자치 규약. 향약은 향촌규약(鄕村規約)의 준말이다. 넓은 의미로는 향촌규약·향규(鄕規)·일향약속(一鄕約束)·향약계(鄕約契)·향안(鄕案)·동약(洞約)·동계(洞契)·동안(洞安)·족계(族契)·약속조목(約束條目) 등을 나타낸다. 향약은 조선시대 양반들의 향촌 자치와 이를 통하여 하층민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숭유배불정책에 의하여 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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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에 있는 고려시대 산성터. 강원문화재연구소가 호산리 산성 내부를 발굴한 결과 기와를 얹은 건물지나 청자류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서 이 성이 유력 인물이나 유력층의 거주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삼척군(三陟郡)’명 기와는 삼척의 진산(鎭山)인 갈야산성과 삼척 관아 유적인 죽서루에서도 출토되었으며, 모두 소성 상태나 색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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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척 출신 무관. 홍견(洪堅)[1535~1610]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자는 강중(剛仲)이며, 호는 도장(道庄)이다. 장사랑(將士郞) 홍사웅(洪士雄)의 아들이다. 형제로는 홍벽(洪壁), 홍확(洪確), 홍광(洪礦)이 있다. 홍견은 1572년(선조 5) 별시(別試)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훈련봉사, 주부(注簿), 습독(習讀), 훈정(訓正), 부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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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홍계하의 본관은 남양(南陽)이고, 부친은 홍중겸이다. 홍계하(洪啓夏)는 학행(學行)이 탁월하여 관동의 부자(夫子)라고 불리었다. 홍계하는 부모를 위하는 정성 또한 지극하였다고 한다. 시묘살이를 하는 3년 동안에는 죽을 먹으며 예를 다하였다고 한다. 모친이 병을 얻자 홍계하는 기도를 하였으며, 지극함이 미쳐 호랑이가 물어다 준 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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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출신 문신. 홍온(洪溫)[1683~1756]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화숙(和叔)이다. 동추부사 홍우성(洪禹成)의 아들이다. 동추(同樞)의 벼슬을 받고 보사원종공신(保社原從功臣)에 책록되고, 인조 때 허견(許堅)[?~1680]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른 송재(松齋)홍응부(洪應溥)의 손자이다. 홍온은 1742년(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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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출신의 문인. 홍응부(洪應溥)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자는 대이(大而), 호는 송제(松齊)이다. 봉사(奉事) 홍연해(洪㶌海)의 아들이다. 홍응부는 어려서부터 현자를 사모하고 의리를 강론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또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여 바른 것을 지키는 데 흔들림이 없었다. 정묘호란 때는 관동 지방에서 치서(馳書)하여 여러 차례 강홍립의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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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출신 문신. 홍인조(洪寅祚)[1724~1798]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자는 현민(顯民)이며, 호는 송현(松峴)이다. 가선대부(嘉善大夫) 송재(松齋)홍응부(洪應溥)의 증손이다. 조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홍우성(洪禹成)이며,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홍온(洪溫)이다. 홍인조(洪寅祚)는 1793년(정조 17)에 관동공령과(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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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홍인협(洪仁協)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자는 치공(穉恭)이며, 호는 귀봉(龜峯) 또는 수분와(守分窩)이다. 해운(海運)홍계하(洪啓夏)[1714~1784]의 아들이며, 종손(從孫)은 홍진국(洪鎭國)이다. 홍인협의 어머니는 홍인협이 태어난 지 몇 달 만에 사망하여 할머니가 홍인협을 길렀다. 할머니마저 사망하자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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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삼척 지역에서 은거한 문신. 고려 말 문신으로,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남양홍씨는 두 성씨가 있다. 고구려 때 당나라 학사 은열(殷悅)을 시조로 하는 당홍계(唐洪系)와 고려 중기 홍선행(洪先幸)을 시조로 하는 토홍계(土洪系)이다. 홍준은 토홍계의 11세손이다. 아버지는 홍귀연(洪貴演)이고, 아들은 홍극겸(洪克謙)이다. 고려 말 이색(李穡)[1328~1396]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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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홍진국(洪鎭國)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자는 의숙(儀叔)이며, 호는 백원(栢園)이다. 도은(陶隱)홍구목(洪九睦)의 아들이다. 홍진국은 젊어서 정인후(鄭仁逅), 황종길(黃鍾吉)에게 학문을 배웠다. 홍진국은 어버이를 섬김에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가 설사병으로 여러 달 고생하니 복분자를 구하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미 복분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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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척 출신 무신. 홍확은 조선선조 때 삼척 출신 무신이다. 알성무과에 급제한 후 훈련습독, 울진포 만호, 창주첨사, 창성부사 등의 관직을 지냈다. 삼척 남양리에 삼락정을 지었다. 홍확(洪確)[1543~1621?]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자는 강수(剛叟)이며, 호는 영소당(永嘯堂)이다. 할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郞) 홍연복(洪衍福), 아버지는 전 참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