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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전개된 3·1 독립 만세 운동. 경기도 포천지역의 3·1 운동은 1919년 3월 13일 오전 11시 포천 공립 보통 학교의 정수환(鄭壽煥)을 비롯한 3·4학년 학생들이 일본인 교원의 눈을 피해 학교 뒷산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비롯되었다. 같은 시각 영중면(永中面)에 위치한 영평 공립 보통 학교에서도 시위운동이 기도되었고, 이후 3·1 운동은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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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후 미국과 소련의 합의에 의해 포천 일대에 나누어진 군사 분계선. 미소에 의한 3·8선의 획정과 미소군의 남북한 진주는 한반도의 산과 평야 농촌과 도시, 통신과 수송망들을 일시에 분할시켜 놓았을 뿐만 아니라 공업화된 북한 지역과 농업이 압도적인 남한 지역을 분리시켰다. 경기도 포천군의 북쪽에서도 영평천을 경계로 3·8선이 그어짐으로써 그 남쪽은 추동리, 가양리, 양문리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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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5월 8일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에서 일어난 미군과 소련군 간의 총격 사건. 1945년 9월 2일 맥아더 사령관이 전후 처리를 위한 ‘미국 육군 태평양 지역 총사령부 일반 명령 제1호’를 포고하였다. 이에 한반도에 있는 일본군에게 명령이 하달되었다. 즉 38°선 이남에서는 맥아더 사령관에게, 이북에서는 소련 극동군 총사령관에게 항복하라는 것이었다. 이후 남북한에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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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부터 1953년까지 남한과 북한이 싸운 전쟁 당시의 경기도 포천 지역.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주력 병력을 포천-서울 일대로 집중하여 일제히 공격을 개시하였다. 북한군이 남침한 직후 주오 공격 대상이 된 경기도 포천 지역에는 국군 제7사단이 3·8선 경계 임무를 담당하고 있었고, 정면에는 제9연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사단 예비대는 없었다. 제7사단 방어 지역을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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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운천 1리에 있는 2003년 해방을 기념하여 세운 탑. 8·15 해방 기념탑은 원래 포천군 영북면 운천 9리 꿈이 있는 마을 보육원 자리에 주민들이 1945년 8월 해방을 기념하여 돌로 세웠던 것이다. 그런데 1950년 6·25 전쟁 당시 파괴되고 말았다. 그 뒤 포천시 영북면이 수복되면서 그 뜻을 기리기 위해 2003년 6월 3일 포천군 영북면 운천 1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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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갈월리에 설립된 야학. 1919년 3·1 운동 이후 전국 각지에서 지역의 청년 단체들, 유지들과 주민들, 종교 단체들 등의 주도 하에 노동 야학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경기도 포천 지역에도 여러 노동 야학이 설립·운영되었는데 갈월리 동기 야학도 그중 하나였다. ‘동기 야학’은 농한기인 겨울철을 이용하여 야학을 개설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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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지형(姜芝馨)[1881~1931]은 1881년 3월 18일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정교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만주 지역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 독립단(大韓獨立團)에서 활동하였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이헌교(李憲敎)·이민태(李敏台)·한남수(韓南洙)·이규갑(李奎甲)·김사국(金思國) 등과 서울특별시 종로구 내자동 한성오(韓聖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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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이후 1910년 국권 피탈 이전까지 경기도 포천 지역의 역사. 경기도 북부에 위치한 포천 지역은 상대적으로 산간 지대가 주를 이루고 있다. 개항 이후 경기도 포천 지역은 서울·경기 지역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근대화되어갔다. 주요 생산물은 느타리버섯 등이었으며, 수공업은 양주 윤씨 집성촌인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감암리 일대에서 싸리 공예품을 만들어 내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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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포천군민을 포함한 경기 북부 지역 주민들이 적대 세력에 의해 희생된 사건. 1950년 7월 22일부터 1950년 10월 5일까지 경기도 가평군, 포천군, 양주군, 파주군, 고양군 등 경기 북부 지역에서 진실규명대상자 19명과 조사과정에서 인지된 희생자 3명 등 총 22명이 적대세력에 의해 희생당하거나 강제연행되었음을 참고인 진술과 문헌자료를 통해 확인 또는 추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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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유학자 김평묵이 경장(更張)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책. 조선 후기 포천에서 출생하고 세거하였던 김평묵이 당시 사회가 경장이 필요함을 지적하고, 그와 관련된 입장을 정리한 글이다. 김평묵은 경장을 위해서는 임금의 마음을 바로 잡는 것이 선결 과제임을 강조하였다. 김평묵의 문집인 『중암 문집』 권34에 수록되었다. 김평묵(金平黙)[1819~1891]의 본관은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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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포천 출신의 문인인 김평묵이 제자들과 문답한 내용을 정리한 책. 김평묵(金平黙)[1819~1891]의 본관은 청풍이고, 자는 치장(穉章), 호는 중암(重菴)이다. 포천의 화산면 시우촌에서 출생했고, 20세 때에는 당시 포천 현감인 성근수(成近壽)의 권유로 포천 현학(縣學)에서 수학하였다. 20대에는 양근에서 이항로(李恒老)와 홍직필(洪直弼) 등에게 수학하였다. 이후 포천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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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친일 전시 동원 선전 조직이었던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 연맹의 포천 지역 연맹.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 연맹은 일제 강점기 중일 전쟁 발발 직후 대륙 침략 전쟁 수행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기 위한 교화 운동을 목적으로 조선 총독부의 종용에 의해 조직된 친일 어용 단체이다.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 연맹은 1938년 6월 22일 59개 단체와 개인 자격으로 56명의 인원이 참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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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에 있는, 조선 후기 포천 지역 현감과 군수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군내면 선정비군(郡內面善政碑群)은 19세기 초에서 19세기 말까지 포천에 부임해 선정을 베풀었던 역대 현감과 군수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공덕비로서 포천 지역의 지방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비는 모두 9기로 되어 있다. 각 비는 1759년(영조 35), 1706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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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권승묵(權承黙)[1872~?]은 1872년 경기도 양주군 어등산면에서 출생하여 포천군 청송면 장수리로 이주하였다. 이후 포천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한 강기동(姜基東) 의병 부대에서 활동하였다. 강기동은 1909년 1월 헌병 보조원 출신으로 의병장 이은찬(李殷瓚)이 이끄는 창의 원수부에 투신하여 의병 운동을 펼친 인물이다. 창의 원수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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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설립되어 활동했던 저축 조합. 근검저축 조합은 일제 강점기에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농촌 경제의 자립을 위해 청년 단체를 중심으로 저축 장려 활동을 전개한 단체이다. 1920년대 이후 경기도 포천의 각 지역에서 많은 청년 단체들이 조직되었으며 주요 사업의 하나로 가난한 농민을 계도하여 궁핍한 삶에서 구제하기 위한 조합 활동들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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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년 포천 출신의 유학자 김평묵이 저술한 『근사록』의 주석서. 김평묵(金平默)[1819~1891]의 본관은 청풍이고, 자는 치장(穉章), 호는 중암(重菴)이다. 포천의 화산면 시우촌에서 출생했고, 20세 때에는 당시 포천 현감인 성근수(成近壽)의 권유로 포천 현학(縣學)에서 수학하였다. 20대에는 양근에서 이항로(李恒老)와 홍직필(洪直弼) 등에게 수학하였다. 이후 포천과 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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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포천 출신의 문신인 조성하가 저술한 기행 일기. 조성하(趙成夏)[1845~1881]는 개항기 포천 출신의 문신이다. 본관은 풍양, 자는 순소(舜韶), 호는 소하(小荷)이다. 병조 판서 조병준(趙秉駿)의 아들로 조병구(趙秉龜)에게 입양되었으며, 신정 왕후(神貞王后) 조씨(趙氏)의 조카이다. 1861년(철종 12)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1864년 고종 즉위와 함께 동부승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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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금주리에 세워진 사설 교육 기관. 일제 강점기였던 1928년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포천군 영중면의 지역 교육 기관으로는 거사리의 진명 학원(進明學院)이 있었다. 그러나 금주리에서 진명 학원이 있는 거사리까지는 통학하기가 곤란한 거리였다. 이에 1928년 3월 초순 지역 유지 양재원(楊載元), 김병호(金炳浩) 등이 금주리에 교육 기관을 설립하기 위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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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의병. 김복길(金福吉)[1876~?]은 1876년 경기도 포천군 내동면 내리 6통 2호[현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내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포천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한 강기동(姜基東) 의병 부대에서 활동하였다. 강기동은 1909년 1월 헌병 보조원 출신으로 의병장 이은찬(李殷瓚)이 이끄는 창의 원수부에 투신하여 의병 운동을 펼친 인물이다. 창의 원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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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의병. 김수동(金守同)[1876~?]은 1876년 경기도 포천군 서면 목동 신기[현 경기도 포천시 포천동]에서 태어났다. 이후 1907년 음력 10월경 이은찬(李殷瓚) 의병 부대에서 활동하던 황재호(黃才鎬)의 부하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은찬 의병 부대는 대다수가 농민으로 구성되었고 대규모 전투를 제외하고는 대개 10~30명 규모의 소단위로 조를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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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의병. 김순복(金順福)[1883~?]은 1883년 경기도 포천군 내소면 초가팔리[현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초가팔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1907년 음력 10월부터 1909년 음력 10월까지 이은찬(李殷瓚) 의병 부대, 강기동(姜基東) 의병 부대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이은찬 의병장은 경기도에서 활동하던 허위(許蔿) 의병 부대와 함께 전국 의병 연합 결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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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영관(金榮觀)[1924~?]은 1924년 9월 15일 경기도 포천군 영중면 영송리 465번지[현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영송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일제에 의해 강제 징병되어 1944년 10월 중국 저장 성[浙江省] 의오현(義烏縣)에 주둔 중인 일본군 요코이[橫井] 부대에 배속되었다. 당시 중국에 있던 한국광복군에 편입할 목적으로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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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흥근의 묘. 김흥근(金興根)[1796~1870]의 자는 기경(起卿)이고, 호는 유관(遊觀)이며,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이조 참판 김명순(金明淳)의 아들이고, 형은 좌의정 김홍근(金弘根)이다. 시호는 충문(忠文)이고, 노년에는 포천군 일동면 수입리 웃갈기에서 살았다. 포천시 일동면 기산리에 있는 일동 초등학교에서 오른쪽 지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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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포천 출신의 유학자 김평묵이 자신이 속한 학통의 논리를 변호하기 위해 작성한 책. 김평묵(金平默)[1819~1891]의 본관은 청풍이고, 자는 치장(穉章), 호는 중암(重菴)이다. 포천의 화산면 시우촌에서 출생했고, 20세 때에는 당시 포천 현감인 성근수(成近壽)의 권유로 포천 현학(縣學)에서 수학하였다. 20대에는 양근에서 이항로(李恒老)와 홍직필(洪直弼) 등에게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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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우금리에 있는 현대 6·25 전쟁 당시 육사 생도 대대가 방어 전투를 벌인 곳. 내촌 전투는 6·25 전쟁 초기 육사 생도 대대가 내촌 일대에 방어 진지를 편성하여 북한군을 저지하였던 전투이다. 육사 생도 대대는 372고지에서 철야 경계 태세를 갖추고 진지 작업을 하였다. 대대는 교육을 받은 부대로 주진지와 예비 진지 및 보조 진지까지 구축하면서 사계 청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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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유학자 김평묵이 자신의 생각을 문답식으로 정리한 책. 조선 후기 포천에서 출생하고 세거하였던 김평묵이 문답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 논설이다. 김평묵이 노강(鷺江)에서 머물면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며, 노강은 김평묵이 1842년(헌종 8) 스승인 홍직필을 만나기 위해서 찾아갔다가 머물었던 노강(露江)과 같은 곳으로 추정된다. 김평묵(金平默)[1819~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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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전개된 근로 대중 교육 및 계몽 운동. 노동 야학 운동은 농촌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서 1920년대 농촌 지역에서 농민들을 계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는 1927년 12월 25일 포천 산업 청년회(抱川産業靑年會)에서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지역 노동 청소년들을 위해 야학을 개설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노동 야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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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을 중심으로 농민의 사회적·경제적 지위 개선을 목적으로 전개된 운동.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농민들이 항일 민족 운동의 주체로서 소작 쟁의를 중심으로 농민 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였다. 소작 쟁의의 주요 원인으로는 토지 조사 사업으로 인한 농민의 토지 상실 및 소작농으로의 전락, 고율의 소작료와 소작권의 불안정성, 중간 수탈 심화와 과중한 지대 및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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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포천 출신 최익현(崔益鉉)이 포천 군수 박영세(朴永世)에게 보낸 편지. 「답 박 포천(答朴抱川)」[포천 박 군수에게 답한다]은 면암(勉庵) 최익현[1833~1906]이 1895년 11월 25일부터 1898년 9월 10일 사이에 당시 포천 군수였던 박영세에게 보낸 서신이다. 최익현은 1895년 을미개혁으로 인해 단발령(斷髮令)이 공포되자 이에 크게 반발하였다. 그리하여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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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포천 출신의 유학자 최익현(崔益鉉)이 포천의 유생들에게 쓴 편지. 「답 포천 유생(答抱川儒生)」[포천 유생에게 답함]은 포천 출신 면암(勉庵) 최익현[1833~1906]이 1885년(고종 22)에 위정척사(衛正斥邪) 사상을 고취시키려는 목적으로 포천의 유생들에게 보낸 서신이다. 「답 포천 유생」은 최익현의 문집 『면암집(勉庵集)』 권9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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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포천 출신의 문인인 김평묵이 저술한 책. 조선 후기 포천에서 출생하고 세거하였던 김평묵이 유교 경전의 중요성 등을 지적하고, 그와 관련된 입장을 정리한 글이다. 유학의 학설에 대한 입장이라든지 선배 학자에 대한 논평 등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김평묵(金平默)[1819~1891]의 본관은 청풍이고, 자는 치장(穉章), 호는 중암(重菴)이다. 포천의 화산면 시우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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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조직된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의 경기도 포천 지역 지부.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는 조국의 완전 독립을 달성할 때까지 강력하면서도 영구적인 조직체를 만들 목적으로, 기존의 반탁(反託) 운동 단체인 이승만(李承晩) 중심의 독립 촉성 중앙 협의회와 김구(金九) 중심의 신탁 통치 반대 국민 총동원 중앙 위원회가 통합하여 1946년 2월에 발족했으며 이승만이 총재, 김구가 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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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에 조직된 대한 부인회의 경기도 포천 지역 지부. 대한 부인회는 8·15 해방 이후 전국 각지에서 대한 애국 부인회 등 수많은 여성 단체가 조직되어 혼란을 겪던 중 하나로 통일해야 한다는 사회의 공론에 따라 여러 여성 단체를 통합하여 1949년 2월 24일 서울시청 회의실에서 결성되었다. 당시 각 여성 단체 대표 및 회원 약 1,000여 명이 모여 박순천의 경과보고, 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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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건국 직후 설립된 대한 청년단의 경기도 포천 지역 지부. 대한 청년단은 8·15 해방 이후 국내 지지 기반이 필요했던 이승만(李承晩)에 의해 1948년 12월 19일 우익 청년 단체인 대동 청년단을 중심으로 청년 조선 총동맹·국민회 청년단·대한 독립 청년단·서북 청년회 등 전국 20여 개의 청년 단체를 통합하여 결성되었다. 이어 각 지역별 단부가 세워졌는데, 대한 청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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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기지 2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독곡 성석린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견성지(堅城志)』의 명승(名勝)조에 독곡 폭포(獨谷瀑布)에 관한 기록이 있다. “현(縣)의 북쪽 10리 천주산(天柱山) 아래 독곡촌(獨谷村)에 있다. 좌우에 폭포가 있는데 수십 길이나 된다. 기암이 벌려져 솟아 있다. 독곡(獨谷) 성석린(成石璘)이 만년에 벼슬에서 물러나 이곳에 정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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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의 독립운동. 경기도 포천지역은 구한말부터 의병 운동의 중심지로서 항일 의식이 남다른 곳이었고 일제 강점기에도 독립 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또한 의병, 대동 청년단, 대한 광복회, 3·1 운동, 대한 독립단, 주비단, 의열단, 한국 독립당, 광복군 등의 계열에서 경기도 포천 지역 출신 독립 운동가가 지속적으로 배출되었다. 먼저 의병 운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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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출신의 독립운동가. 경기도 포천지역의 독립운동가는 의병, 대동 청년단, 대한 광복회, 3·1 운동, 대한 독립단, 주비단, 의열단, 한국 독립당, 광복군 등 다양한 곳에서 활동하였다. 먼저 의병 운동을 펼친 독립운동가가 적지 않다. 경기도 포천 지역이 구한말 의병 운동의 중심지였던 것과 포천 출신의 김평묵(金平默)·최익현(崔益鉉) 등 화서 학파의 위정척사 사상의 영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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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1월 경 경기도 포천 지역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민간인 유격대. 독수리 유격대는 서울 수복 직후인 1950년 11월 경 경기도 포천군 일동면에서 자생적으로 민간인 유격대를 결성하여 북한 지역이나 적진에 침투하여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독수리 유격대는 최종성과 최종철 형제를 비롯한 63명이 결성했으며 장총, M1소총 등으로 무장하여 수복 후 패잔병 소탕과 치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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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노곡 2리에 있는 현대 6·25 전쟁 당시 독수리 유격대의 활동을 기념하여 세운 비. 포천은 6·25 전쟁 당시 북한 공산군 남침의 주요 길목이었다. 이곳의 현충 시설 중 독수리 유격대 전적비가 있다. 1950년 11월 30일 대한 청년단 간부인 최종성·최종철 형제를 주축으로 포천군 신읍에서 나라와 고향을 지키려는 포천 지역 젊은이 63명이 독수리 유격대를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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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노곡리에 있는 1950년 6·25 전쟁 당시 노곡리 일대 주민들이 독수리 유격대를 창설한 곳. 독수리 유격대 창설지는 1950년 11월 포천 노곡리 일대 주민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독수리 유격대가 만들어진 곳이다. 독수리 유격대는 1950년 6월 북한군의 남침 직후 포천 노곡리 일대에서 당시 대한 청년단 간부인 최종성과 최종철 형제를 주축으로 모두 63명의 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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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의병. 유문재(柳文在)[1873~?]는 1873년 경기도 포천군 청송면 초동에서 태어났다. 이후 김연성(金演性) 의병 부대에서 활동하였다. 김연성은 경기도 양주군 출신으로 1907년 9월 의병을 일으켜 1908년 1월부터 이강년(李康秊) 의병 부대의 의병 소모관(義兵召募官)을 역임하였고, 1909년 1월부터는 관동 창의 원수부(關東倡義元帥府)의 중군장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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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만세교리에 있는 1950년 국군 제9연대가 북한군의 도하를 저지하였던 곳. 국군 제9연대 2대대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을 저지하기 위해 4시간 동안 홀로 싸우고 있었고, 전방의 분산 병력을 수습하면서 북만세의 급편 방어 진지를 고수하고 있었다. 제9연대 주력은 2대대를 지원하기 위해 6월 25일 아침 일찍 주둔지를 출발하여 북상하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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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출신의 문인인 최익현이 저술한 글을 모아 1909년 간행된 문집. 조선 후기 위정척사 운동을 전개한 대표적 인물인 포천 출신 최익현의 시문집이다. 1909년과 1931년 두 차례 활자로 간행되었으며, 모두 48권 24책이다. 저자의 위정척사 사상과 활동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최익현(崔益鉉)[1833~1906]의 본관은 경주이고, 경기도 포천현 내북면 가채리에서 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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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 있던 소년 계몽 운동 단체. 소년회(少年會)는 1919년 봄 이후로 서울·안변(安邊)·진주(晋州) 등 전국 각지에서 조직된 소년 운동 단체이다.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도 1930년 9월 2일 군내면 유교리 평촌에 있는 명신 학원(明新學院)을 중심으로 명신 소년회가 조직되었다. 명신 소년회는 소년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와 함께 경기도 포천 지역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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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에 있는 3·1 운동 당시 무봉리 주민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 1919년 서울에서 전개된 3·1 운동 소식은 곧바로 포천 지역에 알려졌다. 3월 13일 포천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은 일본 교원들의 눈을 피해 학교 뒷산에서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러한 학생들의 시위는 포천 전 지역에 영향을 주어 3월 24일 영중면 영평리와 소흘면 송우리에서 본격적인 대중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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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호는 근곡(槿谷). 아버지는 박형순(朴馨淳)이다. 박동완(朴東完)[1885~1941]은 1885년 12월 27일 포천에서 민족의식이 강한 박형순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비교적 여유 있는 가정에서 자라 다섯 살 때부터 독선생을 두고 한문을 배웠으며 열세 살 때 포천의 명문가 현석윤의 딸 현마리아와 혼인하였다. 1901년 서울로 이주하여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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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의병. 박복인(朴福仁)[1879~1911]은 1879년 경기도 영평군 서면 고소성리[현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고소성리로 1914년 영평군이 포천군에 병합됨]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기도 북부와 강원도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던 연기우(延基羽) 의병 부대에 가담하였다. 연기우는 강화 진위대 부교로 군대 해산 이후 의병을 결성하였다. 1908년 11월 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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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인인 김평묵이 스승인 이항로의 논설을 재정리한 책. 김평묵(金平默)[1819~1891]의 본관은 청풍이고, 자는 치장(穉章), 호는 중암(重菴)이다. 포천의 화산면 시우촌에서 출생했고, 20세 때에는 당시 포천 현감인 성근수(成近壽)의 권유로 포천 현학(縣學)에서 수학하였다. 20대에는 양근에서 이항로(李恒老)와 홍직필(洪直弼) 등에게 수학하였다. 이후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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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조직되었던 여성 단체. 부인회는 경기도 포천 지역 농촌 여성들의 생활 개선과 노동을 장려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32년 경기도 포천군 군내면 용정리 신촌 부인회를 비롯하여 군의 각 면에 부인회가 조직되었다. 이중 확인된 것으로는 경기도 포천군 일동면 수팔리 부인회, 군내면 명산리 부인회, 영중면 영송리 내하동 부인회, 영북면 운천리 적현동 부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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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포천 출신의 문인인 김평묵이 정리한 문답서. 조선 후기 포천에서 출생하고 세거하였던 김평묵이 자신을 찾아온 유긍수(柳肯秀)·이병익(李秉翼) 등과 정전(井田) 등 여러 문제를 문답한 내용을 정리한 글이다. 그의 문집인 『중암 문집』 권34에 수록되었다. 김평묵(金平黙)[1819~1891]의 본관은 청풍이고, 자는 치장(穉章), 호는 중암(重菴)이다. 포천의 화산면 시우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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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사직리에 있는 6·25 전쟁 당시 국군 제9연대 2대대가 북한군을 맞아 전투를 수행한 곳.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침할 때 국군 제9연대 2대대는 포천시 일동면 추동리~사직리 일대에서 경계하던 중에 북한군 제3사단 예하 부대의 남침을 받았다. 제2대대는 6중대와 7중대를 전방 경계 지대에 배치하고 있었으나 전투가 여의치 않자 적의 공격을 받으면서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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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유학자 김평묵이 제자들과의 문답을 정리한 책. 조선 후기 포천에서 출생하고 세거하였던 김평묵이 문답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 논설이다. 김평묵이 홍창섭(洪昌燮), 김부순(金富淳), 최우하(崔禹夏) 등이 거처를 마련해 주어 생활하던 삼천강(三川江) 근처에 살던 때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강문답(三江問答)』은 그의 문집인 『중암 문집』 권37에 수록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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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에 있는 개항기 포천 지역에서 최초로 의병 활동이 일어난 곳. 1907년 9월 20일 오전 3시경, 포천군 외면 상송우리에 의병 약 100명이 내습하여 일본 경찰의 밀정으로 추정되는 마을 사람 1명을 총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힌 뒤 일진회원 1명을 납치하였다. 그 후 이 소식을 접한 포천 주재 순검 신석주(申錫柱)가 수비병과 함께 추격해 오자 의병은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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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 출신의 한학자. 서석구(徐錫九)[1897~1982]의 호는 한호재(漢湖齋)이다.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울뫼 출신으로 이청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이청열은 경기도 포천군 군내면 명산리 출신으로 중추원 의관이 되었으나 1910년 8월 경술 국치 이후 낙향하여 군내면 명산리에 서당을 세워 인재를 양성하는 데 힘썼다. 서석구는 이청열에게 천문과 주역을 전수받았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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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호는 농천(農泉), 묵재(默齋). 조선 중기의 문신 서성(徐渻)의 12세손이며, 아버지는 선전관(宣傳官)을 지낸 서병갑(徐丙甲)이다. 서정희(徐廷禧)[1876~?]는 1876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1894년에 관립 영어 학교에 입학하였다. 1907년 7월 권중현(權重顯) 암살 미수 사건에 연루되어 전라남도 진도군에 3년간 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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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의병. 서춘만(徐春萬)[1884~?]은 1884년 경기도 포천군 외소면 상송우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1908년 11월 9일 윤인순(尹仁順)[혹은 尹仁淳] 의병 부대에 가담하여 경기도 고양군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펼쳤다. 윤인순은 1907년 군대 해산 이후 봉기하여 경기도 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활약하였고, 1908년 이후에는 30~40명 단위의 소규모 유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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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신팔리에 있는 6·25 전쟁 당시 북한군에 맞서 전투를 행한 곳. 서파 전투지(西坡戰鬪址)는 북한의 남침 당일 북한군 주력을 방어한 전투 현장이다. 1950년 6월 25일 국군 제9연대는 포천 일대에서 북한군 제3사단 예하 부대의 남침을 받았다. 북한군 전차 부대가 아군의 주저항선 방어 지대 중앙을 통과하자 제9연대 장병들은 후속하는 적 도보 부대만은 격퇴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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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소농을 위해 설립된 농민 조합. 소농 공제 조합은 일제 강점기에 농촌에 있는 빈약한 중소 농민층을 구제할 목적으로 설치되었으며, 농회를 통해 소농에게 자금을 융통하거나 금전을 대부하기도 하고 부업과 저축을 장려하기도 하였다. 중소 농민을 위한 저리의 자금 융통, 농산물 거래 지원, 부업 장려 등을 위해 설립되었다. 성북 소농 공제 조합은 19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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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 전쟁 때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지역에서 활동한 민간 유격 부대. 소리봉 부대는 1950년 6·25 전쟁으로 경기도 포천 지역이 북한군 치하가 되었을 때 포천 지역의 청년들이 조직한 유격대로 북한군과 싸워 많은 전과를 올렸다. 소리봉 부대는 6·25 전쟁 기간 동안 경기도 포천 지역을 지키고, 북한군을 물리치기 위해 조직되었다. 1950년 7월 중순경 경기도 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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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 있었던 금융 조합. 금융 조합은 1907년 칙령 제33호 「지방 금융 조합 규칙」을 발표한 이후에 전국 각지에 세워졌다. 일제 강점 이후에는 여러 차례 조합령 개정으로 변하였으며, 1918년 조합령 개정 후에 예금 업무를 시작하였다. 송우 금융 조합은 조합원에게 농업상 필요한 자금 대부, 예금, 곡물의 창고 보관 업무 등 지역 농민들의 금융 지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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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 송우리에 세운 상업 진흥 단체.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 송우리는 호구 수가 300호에 달하는 시장 소재지로서 지역의 상업 중심지였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에 들어 상업 활동이 저조하여 지역의 상업 중심지 역할을 다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시민들이 힘을 합해 송우 진흥회를 조직하였다. 송우 진흥회는 산업 진흥, 수요 공급의 원활화, 구습 제도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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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 송우리 지역에 세운 청년 단체. 1919년 3·1 운동 이후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노동 야학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이는 주로 청년 단체와 그 회원들에 의해서 주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1920년대에 포천 지역에서 많은 청년 단체도 조직되었는데 송우 청년단은 그 중 대표적인 단체였다. 송우 청년단은 포천의 상업 중심지로 시장이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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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 일대에서 일어난 방어 전투. 1950년 6월 25일 북한군 제3사단[소장 이영호]·제4사단[소장 이권무]의 2개 보병 사단과 1개 기갑 여단이 기습적으로 남침하자, 포천 지역에서 국군 제7사단 제1, 제9연대가 대적하여 방어전을 전개하였다. 본래 제7사단 예하에는 제3연대도 편제되어 있었지만, 6월 1일자로 수도경비사령부 산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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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 송우리에 세운 야학. 1919년 3·1 운동 이후 1920년대 들어 전국적으로 야학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도 여러 곳에 야학이 세워져 많은 노동자, 농민들의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문맹 퇴치에 공헌하였으며 국권 회복을 위한 항일 운동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송우리 야학도 그중 하나이다. 1930년대 초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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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에 있는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의 전투력에 밀려 철수하였던 곳. 송우리는 6·25 전쟁 초기 서쪽으로 화엄령을 넘어 동두천 가도의 덕정과 횡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방어 요충이었다. 여기에서 적을 방어하지 못하면 8㎞ 후방의 축석령 사이에 방어할 만한 곳이 없기 때문에 국군 제3연대는 태봉산과 해룡산 동남쪽의 178고지를 방패삼아 이곳에서 적을 저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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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에 있는 3·1 운동 당시 송우리 주민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 1919년 3월 1일 거족적인 만세 시위가 시작된 이래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 되어 가던 중 포천 지역에서도 만세 시위가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1919년 3월 24일 송우리 주민 600여 명이 시위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출동한 송우리 헌병 분견소 헌병 경찰들의 총검에 맞서 다수의 부상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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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포천 출신의 학자. 송철회(宋哲會)[1890~?]의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포천 화현면[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화현리]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글 읽기를 즐겼고 글재주도 남달랐다. 16세에 이미 『주역(周易)』을 독파하였고 20세가 넘어서는 서당을 차려 제자를 길러냈다. 일제 강점기 내촌 면장에 내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이를 거절하였다. 비록 고사리를 캐어 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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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 있는 6·25 전쟁 당시 국군이 북한군의 진출을 저지한 곳.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침할 때 국군 제9연대는 천주산과 가랑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3사단 예하 부대의 공격을 받았다. 북한군은 이날 새벽 38도선을 돌파하여 만세교 부근까지 진출하였다. 제3사단 7연대가 국도 43호선을 따라 정면 공격을 하였고, 제9연대가 국군의 주저항선 중앙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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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영희(申榮熙)[1891~1919]는 1891년 7월 15일 경기도 포천군 내촌면 내리[현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내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 답내리로 이주하여 서당 훈장을 하던 중 3·1 운동에 참여하였다. 일제가 우리나라 국권을 침탈하자 기회를 보아 독립운동을 할 결심을 하고 있던 중 거족적인 3·1 운동이 일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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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부터 1935년까지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심곡리에서 운영된 수리 조합. 수리 조합은 일제의 산미 증식 계획 수립을 전후로 하여 본격적으로 증설되기 시작했으며 심곡 수리 조합도 그중 하나이다. 1917년에 「조선 수리 조합령」을 발포하여 수리 시설의 개량을 기도했던 일제가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일대의 관개 개선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1919년 12월 25일에 설치를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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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응건(安應乾)[1887~?]은 1887년 경기도 포천군 영북면 자일리[현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자일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일제 강점기인 1919년 3·1 운동을 주도하였다. 포천 지역의 3·1 운동은 3월 13일부터 포천읍·영중면·소흘읍·군내면·신북면·일동면 등지에서 전개되었다. 이에 영향을 받은 안응건은 4월 3일 자신의 집에서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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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군 영중면 양문리에 세운 야학. 1919년 3·1 운동 이후 1920년대 들어 전국적으로 야학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도 여러 곳에 야학이 세워져 많은 노동자, 농민들의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문맹 퇴치에 공헌했으며 국권 회복을 위한 항일 운동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양문 노동 야학도 그중 하나이다. 양문 노동 야학은 경기도 포천군 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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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포천 출신의 교육자. 양운하(楊雲夏)[1895~?]의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계유리 출신으로 인천 공립 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1923년 12월 소흘읍에 있던 송우 공립 보통학교 부훈도로 재직하면서 경기도에서 시행된 소학교 보통학교 교원 2종 시험에 합격해 같은 학교 훈도가 되었다. 이후 줄곧 포천과 연천 지역 초등학교에서 근무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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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군 영북면을 중심으로 조직된 수리 조합. 일제는 산미 증식 계획을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수리 조합 사업을 통해 토지 개량 사업을 진행하였다. 당시 대부분의 논농사가 강우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개 개선 중심의 토지 개량 사업이 필요하였다. 이를 위해 일제는 각 지역에 수리조합을 설립하였다. 그런데 일제의 수리 조합 사업은 일제와 소수의 대지주들이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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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도평리에 있는 1954년 6·25 전쟁 당시 포천 탈환의 성공을 기려 세운 탑. 포천 일대는 1951년 1월 중공군의 3차 공세로 피탈되었다가 3월 24일 유엔군의 반격 작전으로 수복하게 되었다. 미 제3사단은 호킨스 특수 임무 부대를 편성하여 의정부, 포천으로 진출하였으나 중공군 제26군의 완강한 저항을 받아 치열한 접전을 수행하였다. 중공군은 의정부 북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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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군 영중면 영평리에 설립된 금융 조합. 금융 조합은 1907년 칙령 제33호 「지방 금융 조합 규칙」의 발표와 더불어 전국 각지에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일제 강점 이후에는 여러 차례의 조합령 개정이 있었고, 1918년의 조합령 개정 후로 예금 업무를 취급하였다. 영평 금융 조합은 농업에 필요한 자금 대부, 예금, 곡물 보관 등의 업무를 통해 지역 농민들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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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선단동에 있는 조선 후기 영평군 이경응 부부의 합장묘. 영평군(永平君) 이경응(李景應)[1828~1901]은 고종 연간의 문신으로 전계 대원군(全溪大院君)의 둘째 아들이자 철종(哲宗)의 형이다. 주요 벼슬은 1882년 판돈령부사를 역임하였고, 1895년 영돈령원사(領敦寧院事)를 지냈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의정부에서 포천으로 가는 국도 43호선 포천시 선단 4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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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선과 맞물려 있어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의 공격과 국군 및 유엔군의 반격의 경계선이 되었던 경기도 포천시의 영평천.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에 있는 영평천은 38선과 맞물려 있어 6·25 전쟁 이전에 남북을 가르는 하천선이었을 뿐 아니라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에 영평천을 넘어 포천 북쪽 창수면 추동리·가양리, 영중면 양문리 일대로 공격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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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기지리에 있는 3·1 운동 당시 신북면민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 1919년 3월 29일 중면 신사리의 유중식은 2통의 통문을 받았다. 그 내용은 “내일 신북면사무소 앞에 군중이 모여 만세를 부르고자 하니 여러 사람과 같이 나오라”는 일종의 사발통문이었다. 유중식은 독립 만세를 부른다는 통문 내용에 찬성하여 동리 사람을 모아 놓고 “지금 사발통문이 돌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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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선단동에 있는 1907년 의병 활동이 일어났던 곳. 군대 해산 이후 울분을 금치 못한 해산 장병들은 지방 의병과 합류함으로써 의병의 역량을 배가시켰다. 1907년 9월 20일 이후부터 포천 지역에서도 이러한 영향으로 의병 활동이 산발적으로 진행되었다. 같은 해 10월 이후 포천을 주 무대로 의병 활동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2월 김연성(金演性)이 이끄는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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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포천 출신의 학자인 유기일의 시문집. 유기일(柳基一)[1845~1904]은 경기도 포천 출신의 학자이다. 자는 성존(聖存), 호는 용계(龍溪) 또는 용서(龍西)이고.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이항로(李恒老)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868년(고종 5) 이항로가 사망한 뒤에는 같은 지역 출신인 김평묵(金平黙)을 사사하였다. 같은 고향 출신인 최익현(崔益鉉), 춘천의 동문 홍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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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군 군내면 용정리에 세운 야학. 1919년 3·1 운동 이후 1920년대 들어 전국적으로 야학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도 여러 곳에 야학이 세워져 많은 노동자, 농민들의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문맹 퇴치에 공헌했으며 국권 회복을 위한 항일 운동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용정 노동 야학도 그중 하나이다. 용정 노동 야학은 당시 취학하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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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유학자 김평묵이 『중용』의 구절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논설. 『우촌수담(雨村手談)』은 조선 후기 포천에서 출생하고 세거하였던 김평묵(金平黙)[1819~1891]이 『중용(中庸)』에 등장하는 장구(章句)나 유교 경전의 구절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 논설이다. 이 논설은 김평묵의 문집인 『중암 문집(重庵文集)』 권39에 수록되었다. 김평묵의 본관은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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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군 영중면 성동리에 세운 야학. 1919년 3·1 운동 이후 1920년대 들어 전국적으로 야학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도 여러 곳에 야학이 세워져 많은 노동자, 농민들의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문맹 퇴치에 공헌했으며 국권 회복을 위한 항일 운동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유정 노동 야학도 그중 하나이다. 유정 노동 야학은 경기도 포천군 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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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중식(兪中植)[1895~1971]은 1895년 2월 29일 경기도 포천군 중면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에서 전개된 만세 운동에 참가하여 옥고를 치렀다. 유중식은 3월 29일 밤 자신의 집에서 두 통의 통문(通文)을 받았다. 그 내용은 “3월 30일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사무소 부근에 집합하여 조선 독립 만세를 부르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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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우금리에 있는 1979년 육사 생도들의 6·25 전쟁 참전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공산군의 불법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하였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자 당시 육군 사관 학교에 다니던 생도 1기[현 육군 사관 학교 10기] 312명과 2기 330명은 육사 장교 및 교관들의 지휘 아래 6월 26일 새벽 포천으로 출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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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출신의 정치인. 윤성순(尹珹淳)[1895~1971]은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계류리에서 태어났다. 경성 공업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 미네소타 주립 대학교를 거쳐 컬럼비아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이화 여자 전문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한때 대동 광업 주식회사 참사, 북선 흑연 광업 소장을 지냈다. 해방 후 충청남도 상공 국장과 학무 국장,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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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윤응원(尹應元)[1868~?]은 1868년 경상북도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기도 포천군 내소면 이가팔리[현 포천시 소흘읍 이가팔리]로 이주하였으며, 1909년 음력 4월 18일 강기동(姜基東)의 의병 부대에 가입한 이후 의병 운동을 전개하였다. 강기동은 헌병 보조원 출신으로 의병을 일으켜 주로 양주·포천을 중심으로 활약하였다. 특히 강기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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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의병. 윤태산(尹泰山)[1891~?]은 1891년 경기도 포천군 내소면 초가팔리[현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초가팔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이은찬(李殷瓚) 의병 부대에 가담하여 경기도 일대에서 의병 운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고종(高宗) 퇴위와 군대 해산 이후 각지에서 의병 운동이 전개되었다. 1907년 9월 이은찬 의병장은 이구채(李球采) 등과 함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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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일제 강점기 초 경기도 포천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의병 운동. 경기도 포천지역은 구한말 의병 운동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다. 경기도 포천 출신인 최익현(崔益鉉)·김평묵(金平黙) 등 화서 학파의 위정척사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의병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최익현은 을사늑약 이후 전라북도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대마도에서 순국한 이후 전국의 의병 운동을 고무시키는데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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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자는 공삼(公三), 호는 경산(庚山)·동아(東啞)·우정(宇精). 다른 이름은 이규보(李圭輔)이다. 이규채(李圭彩)[1888~1948]는 1888년 6월 6일 경기도 포천군 가산면 방축리[현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 후 창신 서화 연구회를 창설하여 학생층을 상대로 비밀 운동을 전개하던 중 일본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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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이규채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이규채(李圭彩)[1888~1948]는 경기도 포천군 가산면 방축리 군자정에서 태어났다. 호는 우정(宇精)·동아(東啞)·경산(庚山)이고,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이규보(李圭輔)라고도 불렸다. 이규채 선생 행적비(李圭彩先生行蹟碑)는 선생의 조국 광복에 바친 공로와 독립 투쟁 정신을 기리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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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4일 미 제3사단이 포천 일대로 공격을 개시하여 중공군 제26군을 몰아내고 탈환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탑 한국전쟁 당시 포천은 북한군에 의해 점령되었다가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작전으로 1951년 3월 수복되었다. 미 제8군과 국군 제5군단은 공동주관으로 1954년 10월 15일 포천수복을 기념하기 위해 이 탑을 건립하였다. 수복탑의 제막식에는 이승만 대통령도 참석하였으며,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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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민식(李敏軾)[1875~1934]은 1875년 6월 26일 경기도 포천군 창수면 운산리 199번지[현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운산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독립운동 단체인 주비단(籌備團)을 결성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06년 육군 참령으로 배종무관(陪從武官)을 지냈으며,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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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의병. 이백원(李白元)[1880~1947]은 1880년 8월 26일 경기도 포천군 청량면 우금리 8통 1호[현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우금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1908년 음력 10월부터 12월까지 이은찬(李殷瓚) 의병 부대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이은찬 의병장은 1907년 이구채(李球采) 등과 함께 해산 군인 등 500여 명을 모아 의병을 일으켰다. 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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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자는 동석(東石), 호는 낙삼(樂三). 조선 시대 세종(世宗)의 아들 광평 대군(廣平大君)의 17대손으로 아버지는 화사(華史) 이재하(李在夏)이다. 이범영(李範英)[1890~1955]은 1890년 10월 6일 경기도 포천군 가산면 방축리[현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신문학을 접하였으며 1908년 서울 보광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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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에 있는, 독립지사 이범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이범영(李範英)[1890~1955]은 포천 출신의 독립지사이자 교육자로서 호는 동석(東石),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이범영 선생 공적비(李範英先生功績碑)는 이범영의 항일 독립운동과 민족 교육 사업에 바친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하여 1982년 포천 출신 독립 유공자 공적비 건립 위원회가 주최가 되어 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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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의병. 이사인(李思仁)[1885~1919]은 1885년 9월 9일 경기도 포천군 가산면 목정교리 32통 4호에서 태어났다. 이후 고종(高宗) 폐위와 군대 해산 후에 봉기한 이은찬(李殷瓚) 의병 부대에 1908년 9월 가담하여 서기로 활동하였다. 이은찬은 1907년 이구채(李球采) 등과 함께 해산 군인 등 500여 명을 모집하여 의병을 일으킨 주요 의병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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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주호(李周鎬)[1863~?]는 1863년 1월 8일 경기도 포천군 가산면 궁촌리 648번지에서 태어났다. 이후 일제의 국권 침탈에 항거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경 의병 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고, 1910년 8월 국권 상실 이후에 고향이 같은 강지형(姜芝馨)을 만나 1920년 9월경 대한 독립단(大韓獨立團)에 입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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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추동 2리에 있는 1943년 조선 후기 무신 이중로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이중로(李重老)[1577~1624]는 본관이 청해(靑海)로 자는 진지(鎭之),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1605년(선조 38) 무과에 합격한 뒤 선전관(宣傳官)을 시작으로 내외직을 두루 지내다가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에 책록되고 청흥군(靑興君)에 봉해졌다.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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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치경(李致慶)[1867~?]은 1867년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 하송리 77번지에서 태어났다. 생업으로 잡화상과 금광업을 운영하던 이치경은 1919년 11월경 강원도 김화군에서 한희수(韓曦洙), 기독교 교회 목사 서상렬(徐相烈) 등의 참여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후원하기 위해 결성된 대한 청년회 지부(大韓靑年會支部)에 사금 30냥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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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1945년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경기도 포천 지역의 역사. 일제 강점기의 경기도 포천 지역의 역사를 주요 기관, 항일 독립 운동, 청년회와 소년 단체의 활동,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과 농민 운동 등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1. 교육 기관 1911년 7월 경기도 포천에 처음으로 포천 공립 보통학교가 설립되었지만, 1개 공립학교만 설치한다는 방침에 따라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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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에 묘가 있는 정치가. 장면(張勉)[1899~1966]의 호는 운석(雲石)으로, 인천광역시에서 출생하였다. 8세에 인천 성당에서 운영하는 박문 학교(博文學校)에 입학, 한학을 수학하였다. 1917년 수원 고등 농림 학교[서울 대학교 농업 생명 과학 대학 전신]를 졸업하였다. 1919년 YMCA 영어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1925년 한국 천주교 청년회 대표 자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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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8월 17일 민주화 운동가인 장준하가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약사봉 계곡에서 추락사한 사건. 장준하(張俊河)[1918~1975]는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으로, 군사 독재 정권에 과감하게 항거하여 민주화 운동 인사들과 지식인들에게 상징적인 존재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장준하 추락 사건이 의문사(疑問死)로 규정되는 것은 장준하의 사회적 위치와 정치적인 영향력이 막대했다는 데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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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포천 출신의 교육자. 정도식[1900~1955]은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에서 출생하였다. 1920년 경기도 공립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25년 개교한 일동 공립 보통학교 훈도에 임명되었다. 1938년 13년 동안 근무했던 일동 공립 보통학교를 떠나 가평군 조종 심상소학교로 전근하였다. 정도식은 농촌 부흥을 위해 귀가 후에는 야학을 열고 마을 청년들을 가르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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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발생한 방어 전투. 1950년 6월 25일 포천 북방의 38°선 일대의 방어를 전담하고 있던 국군 제9연대 제2대대는 추동리·사직리 일대에서 북한군 제3사단 예하 부대의 남침을 받았다. 제2대대는 제6중대와 제7중대를 전방 경계 지대에 배치하였으나, 적의 공격을 받고 예비대를 투입하였다. 북한군은 6월 25일 오전 3시 40분을 전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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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계식(趙啓植)[1877~1945]은 1877년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만세교리[현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만세교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1919년 3월 30일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조계식은 이미 손병희(孫秉熙) 등이 조선 독립 선언서를 발표한 것은 알고 자신의 집에서 조훈식(趙薰植)·조종연(趙鍾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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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의병. 조문갑(趙文甲)[1860~?]은 1860년 경기도 영평군 서면 삼내정리 3통 1호[현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에서 태어났다. 이후 1907년 9월부터 의병장 이홍응(李洪應)의 의병 부대에서 군자금 모집 등을 하였다. 영평 방면의 진동대장 이홍응은 포천·양주·철원·장단·연천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던 허위(許蔿)의 휘하에서 활동하던 인물이다. 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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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조삼룡(趙三龍)[1864~?]은 186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로 이주한 뒤 강기동(姜基東) 의병 부대에 참여하여 의병 운동을 전개하였다. 강기동은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에서 출생하여 경기도 장단군 고랑포(古浪浦)에서 헌병 보조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중, 체포 투옥된 많은 의병에게 옥문을 열어주어 구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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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활동한 항일 비밀 결사대. 조선 민족 해방 협동당은 일제가 패망하는 결정적 시기에 국외의 항일 무장 세력의 진공에 호응하여 국내에서 민중의 무장봉기를 통한 민족 해방 쟁취를 위하여 결성되었다. 1943년 6월 일본 도쿄[東京]에서 메이지[明治] 대학 출신 김종백(金宗伯)을 당수로 하여 학병 거부자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조선 민족 해방 협동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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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활동한 소년단체. 조선 소년군은 1922년 10월 5일, 서울 계동에 있었던 중앙 학교 체조 교사 조철호(趙喆鎬)가 만든 우리나라 보이스카우트[지금의 대한 소년단]운동이 그 시초다. 이를 통해 조철호는 우리 소년들로 하여금 조국애와 민족혼을 지니게 하고 몸과 마음을 다함께 튼튼하게 개조하고, 커서 나라 도로 찾는 운동에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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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호는 각산(覺山). 다른 이름은 조용완(趙鏞完)이다. 조선 태종 때 한평 부원군 우의정 양경공(良敬公)의 후손이며 인조 때 중추 대제학 문간공(文簡公)의 후손이다. 조영원(趙永元)[1892~1974]은 1892년 5월 11일 경기도 포천군 창수면 추동리[현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추동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유신 학교(維新學校)를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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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추동리에 있는 1982년 포천 출신의 독립지사 조영원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조영원(趙永元)[1892~1974]은 호는 각산(覺山)이고,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유신 학교를 졸업한 뒤 1920년 상해로 망명하여 상해 임시 정부 의정원 의원, 임정 국무원 비서장 서리 등을 지냈고, 1926년 촉성회 대표로 만주에 파견되어 김좌진 장군이 영도하던 신민부(新民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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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포천 출신의 교육자. 조종무(趙鍾武)는 1925년 설립된 포천군 영북면 영북 공립 보통학교 훈도로 교육계에 발을 디뎠다. 1934년 5월 영북 공립 보통학교 개교 10주년 기념과 동시에 10년 근속 기념식을 치렀다. 1936년 영북 공립 보통학교 증축에 10원의 의연금을 기부할 정도로 학교에 애착을 가졌다. 이듬해 포천군 소흘읍 송우 보통학교 훈도로 옮겨 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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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황(趙晃)[1882~1934]은 1882년 9월 12일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가채리[현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서 태어났다. 다른 이름은 조한석(趙漢石)이며 의열단원으로 활동하였다. 의열단(義烈團)은 3·1 운동 이후 1919년 11월 9일 만주 지린 성[吉林省]에서 김원봉(金元鳳)을 단장으로 하여 보다 적극적인 투쟁 방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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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조훈식(趙薰植)[1864~?]은 1864년 10월 10일 경기도 연천군 영근면 은대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일제 강점기인 1919년 3월 30일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현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에서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서당 교사 조훈식은 조계식(趙啓植)의 집에서 조종연(趙鍾淵) 등과 함께 손병희(孫秉熙) 등이 발표한 조선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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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이후 편찬된 포천 출신의 유학자 김평묵(金平黙)의 시문집. 『중암고(重庵稿)』는 포천 출신의 유학자인 김평묵의 문집으로, 저자의 또 다른 문집인 『중암 문집(重庵文集)』과 내용이 유사하다. 김평묵의 학문과 위정척사 사상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김평묵(金平黙)[1819~1891]의 본관은 청풍이고, 자는 치장(穉章), 호는 중암(重庵)이다. 포천의 화산면 시우촌에서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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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간행된 포천 출신의 유학자 김평묵의 시문집. 『중암 문집(重庵文集)』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위정척사 운동을 전개했던 경기도 포천 출신인 김평묵(金平黙)[1819~1891]의 시문집이다. 본집과 별집으로 구성되었으며, 그의 성리학설과 척사론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김평묵의 본관은 청풍이고, 자는 치장(穉章), 호는 중암(重庵)이다. 포천의 화산면 시우촌에서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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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의병. 진성교(秦成敎)는 경기도 연천군 관인면[현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출신으로, 1907년 음력 8월 박기복(朴基福) 의병 부대에 가담하여 경기도 연천군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경기도 연천군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는 등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다 체포된 진성교는 1908년 9월 1일 경성 지방 재판소에서 유형(流刑) 10년을 받고 고초를 겪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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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 있던 식민지 체제 안정을 위해 일제가 세운 농촌 진흥 단체. 일제는 농촌 진흥 운동을 효과적으로 실시하기 위해 각 지역별로 대표적인 관변 단체로 기능할 농촌 진흥회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농촌 부락들을 지배해 나갔다. 일제 강점기 조선 총독부의 농촌 진흥 운동 방침에 따라 농촌 진흥과 농민의 자력갱생을 목표로, 각 지역의 관공서가 중심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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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포천 출신의 유학자 김평묵이 외국 세력의 배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논설. 『척양 대의(斥洋大義)』는 조선 후기 포천에서 출생하고 세거하였던 김평묵(金平黙)[1819~1891]이 당시에 밀려드는 외국 세력의 배척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글이다. 김평묵의 문집인 『중암 문집(重庵文集)』 권38에 수록되었다. 김평묵의 본관은 청풍이고, 자는 치장(穉章), 호는 중암(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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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포천 출신의 유학자 김평묵이 ‘심(心)’을 중심으로 자신의 성리설을 정리한 논설. 『천군편(天君編)』은 조선 후기 포천에서 출생하고 세거하였던 김평묵(金平黙)[1819~1891]이 성리설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 글이다. 그의 문집인『중암 문집(重庵文集)』 권37에 수록되었다. 여기서 천군(天君)은 바로 ‘심(心)’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중심으로 성리설을 소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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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천도교 계열의 종교. 청림교(靑林敎)는 동학 혁명 후 남정(南正)이 창시한 종교이다. 남정은 본래 최제우(崔濟愚) 밑에서 동학을 배운 서울 출신의 양반이었는데, 동학 농민 운동 이후 따로 청림교를 세워 서울을 중심으로 비밀리에 포교 활동을 하였다. 교의 의식은 천도교나 시천교와 유사했으며 교리로는 새로운 지혜와 바른 생각을 발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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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선단동에 있는 개항기 종실 청안군 이재순의 묘. 청안군(淸安君) 이재순(李載純)[1851~1904]은 본관이 전주(全州)이고, 자는 덕일(德一)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은언군(恩彦君) 이인(李䄄)이며, 할아버지는 전계 대원군(全溪大院君) 이광(李㼅)이고, 외할아버지는 안동 김씨(安東金氏)인 김재협(金在協)이다. 종실 이휘응(李徽應)의 아들로 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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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선단동에 있는 개항기 종실 청풍군 이해승의 묘. 청풍군(淸豊君) 이해승(李海昇)[1890~?]은 본관이 전주(全州)이고, 아호는 이송석(李松石)이다. 전계 대원군(全溪大院君) 이광(李㼅)의 사손(嗣孫)으로 풍선군(豊善君) 이한용(李漢鎔)에게 입양되었으며, 생부는 덕흥 대원군 13세손 군수(郡守) 이건용(李建鎔)이다. 청풍군 묘(淸豊君墓)는 포천시 선단동 선단 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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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자는 경소(敬紹), 호는 염재(念齋). 할아버지는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이고, 아버지는 최영학(崔永學)이다. 최면식(崔勉植)[1891~1943]은 1891년 1월 7일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가채리[현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서 태어났다. 면암 최익현의 손자로 어려서부터 항일 정신이 강한 분위기에서 자랐다. 일제에 의해 국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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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 있는, 포천 출신의 독립지사 최면식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최면식(崔勉植)[1891~1941]은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둘째 아들 위당(緯堂) 최영학(崔永學)의 장남으로, 자는 경소(敬紹), 호는 염재(念齋)이다. 최면식 선생 공적비(崔勉植先生功績碑)는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 있다. 최면식 선생 공적비는 독립운동가 최면식의 항일 민족 독립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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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석휴(崔錫休)[1888~1919]는 1888년 10월 5일 경기도 포천군 가산면 감암리[현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감암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30일 경기도 포천군에서 전개된 3·1 만세 운동에 당시 가산면 총책임자로 청년들을 규합하여 거사를 준비하고, 1,0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곧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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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 있는 개항기 포천 출신 의병장 최익현의 생가 터. 가채리에서도 최익현이 태어난 마을은 경주 최씨(慶州崔氏)가 많이 살고 있어서 최가채리라고도 불렀다. 이 마을은 450여 년 전 경주 최씨의 중시조인 한산 군수 최수준[1472~1527]이 낙향하여 자리를 잡고 살기 시작한 듯하다. 최익현은 1833년(순조 33) 12월 5일[음력]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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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학돌(崔鶴乭)[1877~1945]은 1877년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만세교리[현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만세교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일제 강점기인 1919년 3월 30일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잡화상을 하던 최학돌은 조훈식(趙薰植)·조종연(趙鍾淵) 등과 함께 조선 민족 독립 선언에 찬동하여 동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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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하성북리에 있는 1994년 독립 유공자 및 6·25 전쟁 참전 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충혼탑. 충혼탑(忠魂塔)은 호국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1994년 포천 군민들이 뜻을 모아 건립하였다. 충혼탑은 포천시 군내면 하성북리 산106번지 청성 문화 체육공원 내에 위치한다. 기념탑 앞에는 한자로 ‘충혼탑(忠魂塔)’이 새긴 머릿돌이 정면에 있다. 기념탑의 기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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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포천 출신의 유학자 김평묵이 치도(治道)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글. 『치도사의(治道私議)』는 조선 후기 포천에서 출생하고 세거하였던 김평묵(金平黙)[1819~1891]이 당시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 글이다. 김평묵은 개항과 서양 문물의 침투를 거부하면서 도학(道學)의 입장에서 자신의 경세론(經世論)을 피력하였다. 김평묵의 문집인 『중암 문집(重庵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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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군 영북면 문암리에 있는 1974년 6·25 전쟁에 참전한 태국군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 6·25 전쟁 당시 태국은 지상군 1개 대대, 함정 3척, 수송기 1개 편대를 파병하여 작전을 지원하였다. 태국군은 1951년 7월 31일~9월 7일 연천 지역 방어 전투에서 주저항선 전방에 초소를 운영하면서 정찰을 실시하던 중 2개 중대 규모의 중공군 부대를 기습하여 많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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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야미리에 있는 1951년 태국군이 포천 일대에 배치되어 전투를 수행한 곳. 태국군의 참전 경위는 유엔이 한국 군사 원조를 결의하자 6월 30일 미곡 지원을 유엔에 통보하였고, 유엔 사무총장이 7월 14일 지상군의 파견을 요청하자 7월 20일 1개 여단 규모인 지상군 4,000명의 파견을 유엔에 통보하였다. 그러나 이 무렵 유엔군의 북진으로 전황이 호전되자 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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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실시된 일제의 토지 소유권 조사 사업. 일제는 1910년 9월 30일 「조선 총독부 임시 토지 조사국 관제(朝鮮總督府 臨時土地調査局官制)」를 공포하고 1912년 8월에 「토지 조사령」을 공포하였다. 일제는 전 근대적인 토지 소유 관계를 근대적으로 변화시킨다며 토지 조사 사업 방침을 내세웠지만, 식민지 통치를 위한 기초 작업으로 토지를 약탈하고 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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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에 있는 현대 평화 통일을 기원하며 세운 탑. 통일 기원탑(統一 祈願塔)은 평화 통일 정책 자문 회의 포천군 협의회가 38휴게소에 평화 통일을 기원하며 건립하였다. 통일 기원탑은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 917-7번지 38휴게소 앞에 있다. 의정부시에서 포천을 지나 철원으로 가는 호국로 만세교 삼거리와 성동 삼거리 사이이다. 계단식으로 축조한 2층 기단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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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에 있는 북위 38도선을 표시하는 표지석. 포천 38도선 표지석은 한반도의 남북을 가르는 북위 38도선을 표시하는 표지석이다. 민족의 비극인 분단을 상징하고 평화 통일을 기리기 위해 설치한 조형물로 보통 커다란 자연석을 받침대 위에 세워놓은 형태이다. 자연석에는 3·8선이라 쓰고 영어로 ‘THE 38th PARALLEL’이라고 함께 적은 표지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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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9월 5일 북한 간첩이 경기도 포천군 청산면 초성리 초성리역 부근 철로를 폭파시킨 사건. 1967년 9월 5일 밤 10시 5분경, 서울 발 신탄리 행 311열차가 경기도 포천군 청산면 초성리 경원선 초성리역을 500m 남겨 두고 선로가 폭파되면서 탈선하였다. 당시 열차 기관사는 사고 지점 30m 전방에서 폭음과 함께 빨간 불꽃이 튀는 것을 발견하고 급정거하였지만, 시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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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11월 26일 포천 공립 보통 학교 학생들이 일으킨 동맹 휴학. 포천 공립 보통학교 동맹 휴학은 1927년 11월 경기도 포천군 서면 신읍리[현 포천시 신읍동]에 위치한 포천 공립 보통학교의 마쓰바라[松原] 교장이 수업료를 내지 못한 학생을 구타하면서 비롯되었다. 이에 분개한 4학년생 50여 명은 11월 26일 진정서를 제출하고 동맹 휴학에 돌입하였다. 진정서의 내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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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읍길에 있는 1927년 포천 공립 보통 학교 4학년생들이 동맹 휴학을 벌인 곳. 포천 공업 보통학교 동맹 휴학은 1927년 이 학교 4학년 학생들이 송원(宋原) 일본인 교장의 학생 구타에 집단 반발하여 동맹 휴학을 한 사건이다. 1927년 포천 공립 보통 학교 송원 일본인 교장이 수업료를 내지 않은 학생을 구타하자, 교장을 배척하고자 동맹 휴학을 하였다. 학생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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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 있던 경제 단체. 계는 농촌 주민의 필요에 따라 예로부터 자생적으로 발생, 유지된 집단으로 두레·품앗이보다 보편적이고 활발한 것이었다. 포천 구우계는 지역의 경제를 살리고 조선 총독부와 싸울 수 있었던 지역 경제 단체였다. 포천 구우계는 지역의 농가 소득과 경제 발전을 위해 조직되었다. 포천군 신읍 발전 기관인 번영회와 군내면, 서면, 신북면, 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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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조직된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의 경기도 포천 지역 지부.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는 1946년 민족주의 정당들로 구성되었던 국민운동 추진 단체로 1946년 2월 8일 서울 인사동에서 이승만(李承晩)의 독립 촉성 중앙 협의회와 김구(金九)의 신탁 통치 반대 국민 총동원 위원회가 통합하여 발족하였다. 발족 당시 채택한 선언문에는 “단조(檀祖)의 성혈(聖血)이 얽히고 가갸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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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 설립된 금융 조합. 금융 조합은 1907년 칙령 제33호 「지방 금융 조합 규칙」의 발표와 더불어 전국 각지에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일제 강점 이후에는 여러 차례의 조합령 개정이 있었고, 1918년의 조합령 개정 후로 예금 업무를 취급하였다. 포천 금융 조합은 농업에 필요한 자금 대부, 예금, 곡물 보관 등의 업무를 통해 지역 농민들을 경제적으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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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경기도 포천 지역에 조직된 지역 언론 단체. 포천 기자단은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직후에 결성되었던 우익 청년 운동 단체인 대한 청년단의 사무실에서 조직되었다. 따라서 포천 기자단은 당시 우익 청년 단체인 대한 청년단과 같은 뜻을 가진 지역 언론인들로 조직된 것으로 보인다. 대한 청년단은 1948년 12월 19일 좌익계 청년 단체들의 통합체인 민주 청년 동맹(民主靑年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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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읍내에 설치한 야학. 1919년 3·1 운동 이후 1920년대 들어 전국적으로 야학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도 여러 곳에 야학이 세워져 많은 노동자, 농민들의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문맹퇴치에 공헌했으며 국권 회복을 위한 항일 운동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포천 노동 야학도 그중 하나이다. 포천 노동 야학은 경기도 포천 읍내 지역의 취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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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 7일 한국 대학 총학생회 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영평리에 있는 미8군 종합 사격장에 난입한 사건. 2003년 8월 7일 오후 5시경, 한국 대학 총학생회 연합[한총련] 소속 대학생 12명이 경기도 포천군 영중면 영평리 미8군 종합 사격장[로드리게즈, 일명 영평 사격장]에 진입하였다. 이 부대에서는 7월 31일 방한한 미국 신속 기동 여단 스트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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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인민군을 도운 부역 혐의자 및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경기도 포천군 주민들이 희생된 사건. 1950년 9·28 서울 수복 이후 1951년 1·4 후퇴 직전까지 포천 지역 주민들이 인민군을 도운 부역 혐의자 및 부역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경찰과 학도의용대 등에 집단 처형되었다. 희생자 대부분은 인민 위원회 간부거나, 인민 위원회 일을 도왔던 사람의 가족 또는 친척이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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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기지리에 있는 1948년 6·25 전쟁 당시 38도선 부근에 설치한 진지. 포천 방어 벙커는 남과 북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던 1948년에 북한군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당시 38도선 부근에 설치한 4개의 진지를 설치하여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6·25 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6·25 전쟁 후 4개의 진지 중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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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에 세운 상인 단체. 번영회는 지역의 자영업자들을 중심으로 설립·운영되고 있는 경제 단체이다. 기본적으로 회원들 상호간의 친목 도모 및 발전을 위한 상호 부조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또한 지역 경제의 발전과 자영업자들의 경제적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이다. 포천 번영회는 일제 강점기에 경기도 포천군 서면 신읍리 지역 상인들이 조직한 상인 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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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에 세운 청년 운동 단체. 포천 산업 청년회는 일제 강점기에 경기도 포천군 서면 신읍리에 살던 청년들이 모여 포천 지역의 농업 발전과 노동 야학, 지역 빈곤층 위문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 청년 운동 단체이다. 포천 산업 청년회는 농사 개량, 축산 진흥, 삼림 조성 등을 통한 농업 발전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경기도 포천군 서면 신읍리의 무산 청년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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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 설립된 소년 계몽 운동 단체. 포천 소년회는 경기도 포천 지역 어린이들을 계몽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창립 당시 강령을 살펴보면, ‘참된 사람이 되자, 배우며 일하자, 선(善)을 위하여 일하자, 대중의 종이 되자’였다. 이를 통해 포천 소년회가 계몽 사업의 전개를 위해 설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28년 3월 10일 조무환(曹武煥)의 발기로 군청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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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에 있는 1954년 미군이 중공군을 공격하여 포천 일대를 탈환한 것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6·25 전쟁 당시 포천 일대는 1950년 6월 25일부터 10월, 1951년 1~3월 두 차례 걸쳐 북한 점령 하에 있다가 1951년 3월 24일 유엔군의 반격 작전으로 1951년 3월 완전히 수복되었다. 중공군 공세에 미 제3사단은 호킨스 특수 임무 부대를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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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4월 19일 경기도 포천군 군민들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개최한 행사. 포천 시민 위안 대회는 포천 군민들을 위해 포천 번영회와 포천 청년단이 개최한 행사로, 1930년 4월 19일부터 4월 23일까지 5일간 진행되었다. 장소는 포천군 서면 신읍리[현 포천시 신읍동]에 있는 시장이었으며, 후원 단체는 『동아 일보』와 『중외 일보』 포천 지부였다. 첫날인 4월 19일에는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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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의 청년 연합 단체. 포천 연합 청년단은 일제 강점기에 경기도 포천 지역의 청년 단체들을 통합하여 만든 청년 단체이다. 일제의 지배 정책에 잘 따르도록 하고, 지역의 단체들을 친일 단체로 만들기 위해 설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1937년 10월 28일 포천 공립 보통학교[현 포천 초등학교] 대강당에서는 군내 각 청년단을 망라하여 단원 400여 명과 내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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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포천 공립 보통학교에서 열린 연합 학예회. 포천 연합 학예회는 포천 공립 보통학교[현 포천 초등학교]와 심상소학교가 연합하여 개최한 학예 행사이다. 1927년 3월 4일부터 5일까지 이틀간 포천 공립 보통학교와 심상소학교가 서로 연합하여 학예회를 개최하였다. 이날 행사에서는 남녀 학생들이 60여 종에 이르는 동화와 유희를 선보여 참여한 학부모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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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군 용상동에 있었던 야학. 1919년 3·1 운동 이후 1920년대 들어 전국적으로 야학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도 여러 곳에 야학이 세워져 많은 노동자, 농민들의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문맹 퇴치에 공헌했으며 국권 회복을 위한 항일 운동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포천 용상동 야학교도 그중 하나이다. 포천 용상동 야학교는 일반 노동 계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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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당시 경기도 포천 지역을 중심으로 북한군에 대항한 민간 유격대. 북한의 남침 직후 경기도 포천 일대가 북한군의 점령 통치하에 들게 되자, 포천의 일부 우익 인사들이 유격대를 조직하여 항전하였다. 이들은 군번 없는 용사가 되어 전투에 참가했으며, 적 후방에서 게릴라 활동을 전개하였다. 북한군은 포천을 점령하자마자 여러 좌익 기관들을 창설하여 주민들을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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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 세운 감리교 청년 단체. 의법 청년회는 엡윗 청년회(Epworth League)를 한자식으로 표한 것이다. 엡윗 청년회는 1889년 미국에서 창설된 감리교의 청년 단체이며, ‘엡윗’은 요한 웨슬리의 고향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1897년 5월 5일 서울 정동 교회에서 창립된 엡윗 청년회를 기점으로 하고 있으며 이후 전국 각지에 엡윗 청년회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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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에 있는 대한민국 재향 군인회의 경기도 포천 지역 지부. 1952년 2월 1일 대한민국 재향 군인회가 부산에서 창립되었고, 1961년 12월 27일 재건 총회로 경기도 재향군인회가 창립되었다. 이어 1962년 2월 26일에 전국 21개 시·군회, 256개 읍·면·동회가 조직되었다. 포천 재향 군인회도 이 무렵 조직된 것으로 추정된다. 포천 재향 군인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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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경기도 포천 지역에 세운 청년 단체. 1919년 3·1 운동 이후 각 지역에서는 노동 야학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도 청년 단체들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노동 야학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들 노동 야학 운동을 지원한 대표적인 단체가 포천 청년회였다. 1920년대 당시 청년 단체들의 가장 긴급하고도 중요한 사업이었던 지식 보급, 도덕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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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2003년 포천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 구역. 포천은 고려 초에 포주(抱州)로 개칭된 이래 995년(성종 14)에 단련사(團練使)를 두었다가 1005년(목종 8)에 폐지하였고, 1018년(현종 9)에 양주에 소속되었다가 1172년(명종 2) 양주에서 분리되어 감무(監務)를 두었다. 1390년(공양왕 2)에 경기도가 좌도와 우도로 분리되면서 경기좌도에 속하였다. 14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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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 세운 일제의 농업 정책 담당 기관. 농회는 1926년 1월 일제가 「조선농회령」의 공표와 함께 조선 농민을 착취하기 위해 전국적인 조직으로 설립한 농촌 단체이다. 농회는 농업에 대한 실질적인 행정 권한을 가지고 소작 쟁의 조정 및 중재, 농업 지도 장려 및 친목 도모, 복리 증진, 농업 연구 등에 관한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포천군 농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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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읍동에 있는 산림 조합. 산림 조합은 조선 시대 향약의 일종인 송계에서 출발하였다. 조합의 업무를 원활하게 운영하고 공동의 이익을 증진하고자 설립된 비영리 사단 법인으로, 「산림조합법」에 의거한 조합 구성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고 산림 보호와 개발을 촉진함으로써 국민 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포천시 산림 조합은 조합원이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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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최익현(崔益鉉)이 포천 향약을 시행하면서 작성한 맹세문. 「포천 향약 서고문(抱川鄕約誓告文)」은 최익현[1833~1906]이 고향인 포천 지역에서 1888년 향약을 시행하면서 작성한 글이다. 모두 5개 조항으로 이루어졌으며, 주로 그의 위정척사(衛正斥邪) 사상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최익현은 1898년(고종 35) 궁내부 특진관에 제수되었으나, 박영효(朴泳孝)[18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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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선단동에 있는 개항기 종실 풍선군 이한용의 묘. 풍선군(豊善君) 이한용(李漢鎔)[1875~1890]은 본관이 전주(全州)이다. 은언군(恩彦君) 이인(李䄄)의 현손이며, 전계 대원군(全溪大院君) 이광(李㼅)의 증손이다. 청안군(淸安君) 이재순(李載純)에게 입양되었으며, 생부는 소현 세자(昭顯世子) 8세손 이재철(李載徹)이다. 아들 없이 세상을 뜨자 덕흥 대원군 13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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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초 경기도 포천군 군내면 하성북리에 세운 농촌 청년 단체. 하성북리 청년단은 경기도 포천군 군내면 하성북리 지역 청년들이 농업 발전과 농사의 개량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하성북리 청년단은 밭의 하루갈이 공동 경작 및 조기 작업과 야학 경영 등을 실천하려고 하였다. 하성북리 청년단은 단장 양경혁, 총무 박영찬, 간사 박호성 외 2명 등으로 조직이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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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포천 출신의 유학자 김평묵이 유학의 정통을 수립하기 위해 저술한 논설. 『학통고(學統考)』는 경기도 포천 출신의 김평묵(金平黙)[1819~1891]이 작성한 글로, 중국 역사상 인물들을 정통(正統)·익통(翼統)·부통(附統)·잡통(雜統)·이통(異統) 등으로 나누어 서술하면서, 유학의 정통을 체계화하고자 하였다. 김평묵의 본관은 청풍이고, 자는 치장(穉章), 호는 중암(重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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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4월 결성된 한국 반공단의 경기도 포천 지역 지부. 한국 반공단은 1948년 4월 12일 서울 종로 기독교 청년 회관에서 결성된 반공 단체이다. 한국 반공단의 설립 이후로 전국 각 지역에 지부가 결성되었는데 한국 반공단 포천군 지단도 이 당시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반공단 포천군 지단은 우리나라의 완전 자주 독립과 세계 인류 평화 수립을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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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에 있던 개성 한영 서원의 분교. 한영 서원(韓英書院)은 미국 남감리교 선교부가 1906년에 세웠으며 윤치호(尹致昊)가 원장이 되어 본교는 개성에, 분교인 한영 지서원(韓英支書院)은 포천에 두고 민족 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운영하였다. 윤치호는 한영 서원의 초대 및 제4대 교장을 맡아 학교를 운영하였다. 윤치호는 교장으로 있으면서 실업 교육 중시, 근로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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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함병현(咸炳鉉)[1860~?]은 1860년 경기도 포천군 중면 양문리[현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일제 강점기인 1919년 3월 30일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에서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함병현은 3월 29일 밤에 경기도 포천군 중면 거사리에 사는 유중식(兪中植)으로부터 “3월 30일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사무소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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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년 이후 포천 출신의 유학자 김평묵이 위정척사적인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 논설. 『해상록(海上錄)』은 조선 후기 포천에서 출생하고 세거하였던 김평묵(金平黙)[1819~1891]이 서양 세력이나 주화(主和) 등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위정척사적인 입장을 정리한 글이다. 김평묵의 문집인 『중암 문집(重庵文集)』 권34에 수록되었다. 김평묵의 본관은 청풍이고, 자는 치장(穉章), 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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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포천 출신의 유학자 김평묵이 문인 박희원의 요청에 따라 공부하는 순서 등을 제시한 책. 김평묵(金平黙)[1819~1891]의 본관은 청풍이고, 자는 치장(穉章), 호는 중암(重庵)이다. 포천의 화산면 시우촌에서 출생했고, 스무 살 때에는 당시 포천 현감인 성근수(成近壽)의 권유로 포천 현학(縣學)에서 수학하였다. 20대에는 양근에서 이항로(李恒老)와 홍직필(洪直弼)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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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경기도 포천 지역의 역사. 1945년 8월 15일 한국은 35년간의 일제 압제로부터 벗어나 해방을 맞이했으나, 미·소 양국에 의해 3·8선이 획정되면서 남북으로 분할되고 말았다. 당시 분단의 고통이 가장 큰 지역 가운데 하나가 경기도 포천 지역이었다. 경기도 포천 지역의 이동면과 영북면·청산면 일부가 3·8선 이북에 위치했기 때문에, 그곳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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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서세동점(西勢東漸)[서양 세력이 차차 동쪽으로 옮김]의 위기가 닥치자 정통 주자학(朱子學)을 공부한 지식인들은 위정척사 운동으로 이에 맞섰다. 위정척사 운동은 반침략·반외세의 정치사상으로서, 성리학적 세계관과 지배 체제를 강화하여 일본과 서구 열강의 침략에 대응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당시 이를 주도하였던 대표적인 조직이 화서 학파였다. 화서 학파는 경기도 양근에서 이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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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포천 소학리에 있는 역답 분쟁과 관련하여 농상공부에서 경기 관찰사 오익영(吳益泳)에게 발급한 훈령. 「훈령 경기 관찰사 오익영 제25호」는 포천 내동 소학리에 있는 역답(驛畓)[역참에 두어 그 소출로 경비를 충당하던 논]에서 소작인과 마름 사이의 분쟁이 발생하자 1896년 10월 농상공부가 이를 잘 조정하라고 경기 관찰사 오익영에게 내린 문서이다. 훈령에서는 소작인의 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