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서 태어난 정치인. 조선 개국 공신이며, 사패지(賜牌地)[임금이 내려 준 논밭]로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일대인 여의실(如意室)[속칭 여우실]과 현재의 인천광역시 남동구 구월동 남동 소방서 일대인 물우산(勿右山)을 받은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의정부 좌찬성(議政府左贊成) 계림군(鷄林君) 김균(金稛)의 후손이다. 초대 인천시 교육 위원을 지낸...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 출신의 어진 화가(御眞畵家). 김은호는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화가이다. 특히 김은호는 인물화의 대가로 불리며, 많은 후학을 양성하였다. 김은호(金殷鎬)[1892~1979]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에서 태어나, 인천 관립 일어 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집안이 몰락하자 자퇴 후 인천 사립 인흥 학교 측량과에 입학하여 1908년 졸업하였다. 1909년...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활동한 언론인. 슬하에 3남 4녀를 두었다. 김응태(金應泰)[1921~1995]는 1921년 7월 23일에 태어나 인천 영화 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형편으로 상급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였다. 그 후 2년이 지나서야 인천 공립 상업 보습 학교[현 인천 남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졸업 후 1937년부터 1944년까지 인천 우체국에서 우편 서기보로 근무했으며, 해방...
-
해방 후 인천광역시에서 활약한 시인으로, 사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안치된 인물. 배인철은 흑인 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배인철의 시는 ‘흑인시’라 명명되어 연구되고 있다. 배인철(裵仁哲)[1920~1947]은 인천 제일 공립 보통학교[현 창영 초등학교]를 거쳐, 1940년에 서울 중앙 고등 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 2년간 니혼[日本] 대학 영문과에서 공부했...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연극배우. 서일성[1906~1950]은 20세기 초중반 당대 최정상의 연극배우이다. 서일성에 대한 기록은 상세하게 남아 있지 않고, 남아 있는 기록조차도 정확하다고 할 수 없다. 하물며 한문 이름도 徐一成, 徐一星, 徐日星이라는 기록이 혼재하고 있고, 출생은 1906년이라 하거나 미상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서일성이 지금...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서 위치한 송암 미술관의 설립자 겸 OCI 그룹의 창업자. 본관이 전주(全州)이며, 박화실과 결혼하여 OCI[옛 동양 제철 화학] 대표 이사 이수영, 삼광 유리 대표 이사 이복영, 유니드 대표 이사 이화영을 비롯하여, 3남 3녀를 두었다. 이회림(李會林)[1917~2007]은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나 1937년 건복 상회를 설립하였고, 1951년 개풍 상사...
-
2009년 경인 일보 특별 취재팀이 엮은 인천 지역의 인물에 관한 단행본. 『인천 인물 100인』은 인천의 역사와 문화가 역동적으로 전환되고 있는 시점에서 인천의 인물을 재조명하며 소중한 정신을 승계하여 새로운 인천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아가고자 출간되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비롯한 인천 출신 또는 인천에서 살았던 인물 중에서 한국과 인천의 근·현대사를 빛낸 100인을 선정하여...
-
인천광역시의 상공업계나 정치계, 사회계에서 활약한 인물. 내리 교회 창설 요원인 아버지 하운기와 어머니 배 씨 슬하에서 태어났다. 김동자와 결혼하여 3남 4녀를 두었는데, 그 행방을 알 수 없다. 3남 하예용이 6·25 전쟁 때 실종되었는데 하예용의 아들 하달웅이 20여 년 동안 하상훈 슬하에서 자랐다고 한다. 하상훈(河相勳)[1881~1964]은 영화 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