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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지역에 있었던 삼한시대 마한의 소국. 『삼국지(三國志)』 동이전 한조에 의하면 오늘날의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마한이라는 연맹체가 형성되어 있었다. 마한은 54국으로 이루어졌는데 그중 하나로 ‘건마국’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건마’와 익산시 금마면의 ‘금마’가 서로 발음이 비슷한 점과, 익산 지역에서 발견되는 청동기나 초기 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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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와 충청남도 공주시·부여군에 분포하는 백제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지. ‘고고학의 보고, 지붕 없는 박물관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전라북도 익산시와 충청남도 공주시·부여군에 있는 백제 후기의 대표적인 유적지 8곳을 가리킨다. 그중 익산시는 익산 왕궁리 유적[사적 제408호]과 익산 미륵사지[사적 제150호] 등이 해당된다. 세계유산[Wo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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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조선 전기 문장가 이순인의 문집. 이순인(李純仁)[1533~1592]은 선조 때 ‘8문장(八文章)’의 한 사람으로 꼽힐 정도로 뛰어난 문장가였고, 많은 문장을 남겼다. 전란 등으로 대부분 유실되었지만, 후손 이진옥(李鎭玉)과 이진기(李鎭琦) 등이 수집해 1890년 한장석의 서문을 받아 5권 2책의 목활자본 『고담일고(孤潭逸稿)』를 간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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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가 통치했던 시기의 전라북도 익산 지역 역사. 고려 시대 익산 지역에는 금마군(金馬郡), 낭산현(朗山縣), 옥야현(沃野縣), 여양현(礪良縣), 함열현(咸悅縣), 풍제현(豐堤縣) 등의 군현들이 전주의 속현으로 존재하였다. 고려 시대의 속현은 수령이 파견되지 않았기에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고려사(高麗史)』 등 기록에 남아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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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에 있던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청동기 시대에 성행하여 초기 철기 시대까지 존속한 거석문화(巨石文化)의 일종이다. 고인돌은 지석묘(支石墓)라고도 부르며 고대 국가 발생 직전의 사회상을 잘 보여 주는 기념물이다.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는 근대까지 고인돌이 남아있던 것으로 전해지나, 현재는 단 1기의 고인돌도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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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출신인 조선 전기 문신 소세량의 문집. 『곤암집(困庵集)』은 조선 전기에 홍문관수찬, 사헌부지평, 홍문관응교 등을 역임한 소세량(蘇世良)[1476~1528]의 문집이다. 소세량의 본관은 진주소씨(晋州蘇氏)로, 소세량의 부친인 소자파(蘇自坡) 이후 대대로 전라도 익산 지역에 세거하였는데,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금마면 일대에 해당한다.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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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용동면 화실리 봉화산 정상에 있던 조선 시대 봉수대터. 광두원산봉수대(廣頭院山烽燧臺址)는 전라북도 익산시 용동면 화실리의 봉화산[광두산] 해발 53.7m 정상에 있는 봉수대터이다. ‘광두원산봉수대’라는 이름은 조선 시대 용안현 화실리에 광두원이라는 역원(驛院)이 있었던 데에서 유래한다. 광두원 북쪽에 있는 산이라 ‘광두산’으로 불렸으나 오늘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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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출신인 조선 전기 학자 한백겸의 문집. 『구암유고(久庵遺槁)』는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출신인 한백겸(韓百謙)[1552~1615]의 글들을 모은 문집이다. 한백겸은 화담 서경덕(徐敬德)의 학맥을 계승한 인물로서, 주역과 예학에 뛰어났고 실증적인 측면을 강조하여 많은 업적을 남겼다. 특히 역사와 지리를 연결하여 펴낸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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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국립익산박물관에 소장된 도가니와 유리가공품. 국립익산박물관 소장(國立益山博物館所藏) 도가니[土製坩堝]와 유리가공품(琉璃加工品)은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의 익산 미륵사지와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의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출토된 도가니와 유리 가공품이다. 도가니는 유리나 금속 원료를 담고 가열하여 녹일 때 쓰는 두꺼운 토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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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국립익산박물관에 소장된 삼국 시대 석제 바둑돌. 국립익산박물관에 소장된 바둑돌은 전라북도 익산시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석제 바둑돌이다. 우리나라에 바둑이 도입된 시기는 늦어도 삼국 시대로 추정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백제본기(百濟本記)」에는 개로왕[재위 455~475]이 고구려 승려 도림과 바둑 두기에 빠져 국력을 기울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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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국립익산박물관에 소장된 청동합. 국립익산박물관 소장 청동합(國立益山博物館所藏靑銅盒)은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 서탑에서 출토된 6점의 청동합과 군산시 미룡동 유적에서 출토된 3점의 청동합 등 총 9점의 청동합을 말한다. 그 중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청동합 6점은 모두 주물로 만들었으며 두께는 안팎 0.3㎜로 고른 편이다.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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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지역 출신인 조선 후기 학자 소시만의 문집. 『국헌집(菊軒集)』은 조선 후기 영조(英祖)[1694~1776]가 재위하던 시기에 짧게 살다 간 소시만(蘇時萬)[1734~1765]의 문집이다. 소시만은 1734년(영조 13)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지역에 있는 쌍봉(雙峯) 아래에서 태어났으며, 유학뿐만 아니라 천문, 지리, 의학, 점복, 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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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익산 출신의 문신. 권극지(權克智)[1538~1592]의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택중(擇仲),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공조참의 권령(權齡)이고, 할아버지는 개성유수를 지낸 권홍(權弘)이다. 아버지는 종묘서령 권덕유(權德裕)이고, 어머니는 우찬성 조계상(曺繼商)의 딸 창녕조씨(昌寧曺氏)이다. 부인은 경상도병마절도사 이이수(李頤壽)의 딸 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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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익산 지역으로 유배된 문신. 권근(權近)[1352~1409]의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가원(可遠) 또는 사숙(思叔), 호는 양촌(陽村)·소오자(小烏子)이다. 어릴 적 이름은 권진(權晉)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고려 후기 삼중대광을 지낸 권부(權溥), 할아버지는 검교시중 권고(權皐), 아버지는 검교정승 권희(權僖)이다. 부인은 장사감무 이존오(李存吾)의 딸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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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익산 지역에 거주한 판소리 명창. 권삼득(權三得)[1771~1841]은 1771년(영조 47) 지금의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면 구억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아버지는 유학자인 권내언(權來彦)이다. 어려서부터 글공부보다 소리 공부를 좋아해 문중에서 제명되었다. 이때 처가가 있는 여산[지금의 익산시 여산면]으로 거주지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 권삼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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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에 있는 백제 시대 토성. 금마도토성(金馬都土城)은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일원에 축조된 백제 시대 토성이다. 산성의 평면 형태는 원형으로 전형적인 테뫼식 산성이다. 산성의 구조는 성벽과 황의 이중적 구조로 축조된 판축 기법을 사용한 토성으로 확인되었다. 산성 내 유일한 정상부 평탄지는 규모가 가로 60m, 세로 4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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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6년 익산군수 남태보가 저술한 지리지. 『금마지(金馬誌)』는 1756년 익산군수 남태보(南泰普)[1694~1773]가 지은 지리지로서,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에 해당하는 당시의 전라도 익산군 지역에 관하여 서술하고 있다. 상하 2권, 총 77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반 행정에서부터 사회문화, 역사지리, 정치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정보를 전하고 있다. 서울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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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 있는 비석. 김육 불망비(金堉不忘碑)는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 조선 후기 영의정을 지낸 김육(金堉)[1580~1658]을 기리기 위하여 1659년 세운 비석이다. 김육은 조선 인조, 효종 때의 대표적인 실학자이다. 본관은 청풍, 자는 백후(白厚), 호는 잠곡(潛谷),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김상헌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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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용제동의 경주김씨 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는 산송 관련 문서. 김호 산송 관련 문서(金濠山訟關聯文書)는 전라북도 익산시 용제동의 경주김씨(慶州金氏) 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는 산송[묘지를 쓴 일로 생기는 송사(訟事)] 관련 문서이다. 1821년부터 1862년까지의 문서로, 주로 소지와 의송, 첩정, 서목, 다짐, 수표 등이 남아 있다. 전라도 전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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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성당면 갈산리에 있는 조선 전기 석상. 남궁찬묘 석상(南宮璨墓石像)은 조선 전기의 문신 남궁찬(南宮璨)의 묘소에 조성된 2기의 석상이다. 남궁찬의 본관은 함열, 자는 여헌(汝獻), 호는 호은(壺隱), 창랑(滄浪)이다. 개국공신 남궁계(南宮啓)의 증손이고, 이조참판 남궁순(南宮順)의 아들이다. 1472년 생원시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며, 1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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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익산 출신의 문신. 남궁침(南宮枕)[1513~1573]의 본관은 함열(咸悅)이고 자는 성중(誠仲)이다. 할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남궁찬(南宮璨)이고, 아버지는 동복현감 남궁익(南宮翼)이다. 어머니는 김인각(金麟角)의 딸 연안김씨(延安金氏)이다. 형은 사섬시첨정 남궁희(南宮憘)이고, 동생은 지평현감 남궁개(南宮愷)이다. 남궁침은 1513년(중종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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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 시대 익산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임을 당한 보덕국 왕 안승의 조카. 대문(大文)[?~684]은 신라에 의해 보덕국의 왕으로 봉하여졌던 고구려 왕족 안승(安勝)[?~?]의 조카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신라본기(新羅本紀)」 신문왕 4년 조에는 안승의 조카인 대문이 금마저[현 익산시]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기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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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지역에 있었던 삼한 시대 고대 정치 연맹체. 마한, 진한, 변한을 뜻하는 삼한(三韓)은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 경까지 한반도 중남부 지역의 정치 집단을 가리킨다. 마한의 성립이나 멸망 시기에 관하여서는 여러 견해가 있으나, 익산 지역의 경우에는 기원전 3세기 경에서 기원후 4세기 후반 단계까지를 마한으로 설정하는 견해가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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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에서 사망한 조선 전기 문신 서익의 한시집. 서익(徐益)[1542~1587]은 서천군수(舒川郡守)·안동부사(安東府使)·의주목사(義州牧使) 등을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문장과 도덕, 그리고 의기가 투철하여 많은 이의 칭송을 받았으며, 특히 이이(李珥)·정철(鄭澈)의 신임이 두터웠다고 한다. 1587년 마흔여섯의 나이로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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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조선후기 문신 소동도가 남긴 문집. 『면와집』은 조선 후기의 문신 관료인 소동도(蘇東道)[1592~1671]의 문집이다. 소동도의 후손들이 1935년에 간행하였다. 저자인 소동도는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 출신으로, 고향인 익산 지역에 많은 발자취를 남겼으며, 특히 지방관으로서 활동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면와집』은 현재 서울특별시 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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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익산 지역에 미륵사와 궁궐 등을 축조한 백제의 왕. 무왕(武王)[재위 600~641]은 백제의 제30대 왕으로, 전략적 요충지이자 성장 세력 기반인 익산 지역에 왕궁평성(王宮坪城)과 제석사(帝釋寺)를 창건하였다. 또한 미륵사(彌勒寺)를 창건하여 중생을 제도하려는 불교 정책을 펼쳤다. 무왕의 이름은 부여장(扶餘璋)이며 무강(武康)·헌병(獻丙)·일기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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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익산 출신의 문신. 박세무(朴世茂)[1487~1564]의 본관은 함양(咸陽)이고 자는 경번(景蕃), 호는 소요당(消遙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의손(朴義孫)이고, 할아버지는 박신장(朴信章)이다. 아버지는 성균관생원 박중검(朴仲儉)이며, 어머니는 담양부사 이관식(李寬植)의 딸 전의이씨(全義李氏)다. 부인은 부사과 권잉(權仍)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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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익산 지역에 은거한 문신. 백유함(白惟咸)[1546~1618]의 본관은 수원(水原)이고 자는 중열(仲悅)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승문원참교를 지낸 백사수(白思粹)이고, 할아버지는 왕자사부를 지낸 백익견(白益堅)이다. 아버지는 이조참의 백인걸(白仁傑)이며, 어머니는 만호 안찬(安璨)의 딸 순흥안씨(純興安氏)이다. 백유함은 1546년(명종 원년)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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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한반도 중서부에 있던 고대국가 백제가 통치하던 시기의 전라북도 익산의 역사.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백제(百濟)는 기원전 18년에 부여족(扶餘族) 계통인 온조(溫祚)에 의해 오늘날의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건국되었다. 4세기 중반에는 북으로 황해도에서부터 경기도·충청도·전라도 일대를 영역으로 하여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660년에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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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4년 고구려 유민들이 지금의 익산 지역인 금마저에 세운 나라. 전라북도 익산 지역은 고조선의 왕 기준(箕準)이 위만(衛滿)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와 ‘한왕(韓王)’을 칭하고 도읍하였고, 마한의 중심 세력인 목지국(目支國)이 있었다고 비정되는 곳이다, 또한 백제 시대에는 무왕이 백제 왕궁을 조성하였기도 하였다. 백제 멸망 이후로는 고구려 유민이 고구려 왕족인 안승(安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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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지역 출신의 조선 전기 문신 소순이 쓴 연행 일기. 『보진당연행일기(葆眞堂燕行日記)』는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 출신인 소순(蘇巡)[1499~?]의 연행 일기이다. 소순이 1533년 12월 명나라 세종(世宗)의 황태자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소세양(蘇世讓)이 연경[북경의 옛 이름]에 진하사(進賀使)로 파견되었는데, 이 때 소순은 자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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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출토된 백제 시대 토기. 부뚜막 모양 토기는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출토된 백제 시대 토기이며, 현재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아궁이를 작게 만들어 휴대할 수 있도록 한 부뚜막형 토기로 이동식 화로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덕모양토기 또는 주형토기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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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출신인 조선 전기 유학자 소건의 시집. 『사물재유고(四勿齋遺稿)』는 조선 전기의 유학자인 소건(蘇建)[1518~1582]의 한시를 모은 시집이다. 소건의 진주소씨(晋州蘇氏) 집안은 대대로 전라도 익산 땅에 세거하였는데,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금마면 일대에 해당한다. 『사물재유고』 역시 익산 지역 후손인 소진호(蘇鎭浩)·소상영(蘇祥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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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창건된 익산 미륵사지와 관련이 있는 백제의 귀족. 사택적덕(沙宅積德)[?~?]은 백제 무왕[재위 600~641]의 장인이며 좌평을 지냈다. 사택적덕의 성으로 추정되는 ‘사택’과 관련하여 다른 기록에서는 ‘사탁(沙矺)’이나 ‘사(沙)’로도 적고 있다. 중국 기록인 『수서(隋書)』에는 백제의 유력 가문을 ‘대성팔족(大姓八族)’이라고 표현하였는데 그중에 사씨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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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출신인 조선 후기 한학자 소상열의 한시집. 『삼성재유고(三省齋遺稿)』는 조선 후기의 한학자인 소상열(蘇祥說)[1652~1694]의 문집이다. 소상열의 진주소씨(晋州蘇氏) 집안은 대대로 전라도 익산 땅에 세거하였는데,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금마면 일대에 해당한다. 『삼성재유고』는 소상열이 지은 한시와 상소문, 서간문 등을 엮어 193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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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에 있는 백제 무왕 관련 유적지. 서동은 백제 무왕의 어린 시절 이름으로 『삼국유사』 무왕조에 의하면, “무왕의 이름은 장(璋)이다. 무왕의 어머니는 과부로, 서울의 남쪽 연못가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연못 속의 용과 통하여 장을 낳았다. 무왕의 어린 시절 이름은 서동이라고 한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고려사(高麗史)』 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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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에서 전개된 역사 이전의 시대. 익산은 해발 20~50m 내외의 구릉지와 곡간지, 해안 평탄지를 이루고 있으며, 서북쪽은 금강, 남쪽은 만경강이 위치하고 있어서 수로를 통하여 주변 지역과 활발한 문화교류를 실시하여 일찍부터 사람이 거주하였다. 따라서 익산은 구석기 시대부터 인간의 활동이 확인되며 특히 한반도 청동기문화 교류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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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신라 제26대 진평왕의 셋째 공주로 백제 「서동설화」의 여자 주인공. 선화공주(善花公主)[?~?]는 신라 제26대 왕인 진평왕[재위 579~632]의 딸이며, 백제 무왕(武王)[재위 600~641]의 왕비이다. ‘선화공주(善化公主)’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백제의 왕족이었으나 집안이 몰락한 서동(薯童)은 선화공주가 절세미인이라는 소문을 듣고 혼인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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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지역에 남아 있는 도시나 마을을 지키기 위한 전통 시대 방어 시설. 성곽(城廓)은 전라북도 익산군 지역에 남아 있는 도시나 마을을 지키기 위한 방어 시설이다. 익산 지역에서는 왕궁리 유적을 방어하기 위한 성곽인 익산 토성[오금산성]을 비롯하여 모두 13곳에서 성곽이 확인되었으며, 주로 백제 시대 성곽이 많다. 금강 연안의 함라산 일대와 미륵산과 용화산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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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소광진의 묘비. 소광진(蘇光震)[1566~1611]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금마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주, 자는 자실(子實), 호는 후천(后泉)으로 대제학 소세양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소우이고, 아버지는 소성선이다. 1589년 진사가 되었고, 1597년 정시 문과에 병과 급제하였다. 1599년 승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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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익산 출신의 문신. 소두산(蘇斗山)[1627~1693]의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망여(望汝), 호는 월주(月州) 또는 사구당(四九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소건(蘇建)이고, 할아버지는 소억선(蘇億善)이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소동명(蘇東鳴)이다. 부인은 권식(權植)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소두산은 1627년(인조 5) 익산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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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소방산 정상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대 터. 소방산봉수대(所方山烽燧臺)는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소방산[일명 봉수산]에 있었으며 조선 시대에 운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소방산봉수대에서는 서쪽으로 금강이 흐르고 동쪽으로는 함라면 일대와 미륵산을 포함한 익산 전역이 한눈에 보인다. 소방산봉수대는 해발 220m의 봉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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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익산 출신의 문신. 소세량(蘇世良)[1476~1528]의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원우(元佑), 호는 곤암(困菴) 또는 병암(屛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중군사정을 지낸 소희(蘇禧)이고, 할아버지는 한성부판윤 소효식(蘇效軾)이다. 아버지는 의빈부도사 소자파(蘇自坡)이며, 어머니는 왕석주(碩珠)의 딸 개성왕씨(開城王氏)이다. 부인은 양배(楊培)의 딸 남원양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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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익산 출신의 문신. 소세양(蘇世讓)[1486~1562]의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언겸(彦謙), 호는 양곡(陽谷)·퇴재(退齋)·퇴휴당(退休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중군사정 소희(蘇禧)이고, 할아버지는 한성부판관 소효식(蘇效軾)이다. 아버지는 의빈도사를 지낸 소자파(蘇自坡)이며, 어머니는 왕석주(王碩珠)의 딸 개성왕씨(開城王氏)이다. 형은 남원부사 소세량(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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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에 있는 조선 전기 비석. 소세양(蘇世讓)[1486~1562]은 조선 전기의 문인이다.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언겸(彦謙), 호는 양곡(陽谷)·퇴재(退齋)·퇴휴당(退休堂),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아버지는 의빈부도사 소자파(蘇自坡)이고, 어머니는 개성왕씨(開城王氏) 왕석주(王碩珠)의 딸이다. 1504년 진사시에 급제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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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익산 출신의 학자. 소영복(蘇永福)[1555~1615]의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수중(綏重), 호는 사은(四隱) 또는 반구당(返求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의빈도사를 지낸 소자파(蘇自坡)이고, 할아버지는 남원부사 소세량(蘇世良)이다. 아버지는 감찰 소민선(蘇敏善)이며, 어머니는 현령 신언숙(申彦淑)의 딸 평산신씨(平山申氏)이다. 큰삼촌인 한성서윤 소응선(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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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익산 출신의 문인 소응천(蘇凝天)[1704~1760]의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일혼(一渾), 호는 춘암(春菴)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소이인(蘇爾寅)이고, 할아버지는 소경의(蘇景誼)이다. 아버지는 소태겸(蘇泰謙)이며 어머니는 통덕랑(通德郞) 윤우한(尹遇漢)의 딸 칠원윤씨(漆原尹氏)이다. 부인은 고만구(高萬九)의 딸 장택고씨(長澤高氏)이다. 소응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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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에 있는 조선 전기 문인 소자파의 묘소에 세운 신도비. 소자파 묘비(蘇自坡墓碑)는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에 있는 소자파(蘇自坡)[1451~1524]의 묘소에 1526년 건립된 신도비이다. 소자파는 조선 전기의 문인으로 본관은 진주이고, 자는 미수(眉叟)이다. 한성부윤을 역임하고 병조참판에 추증된 소효식(蘇效軾)의 아들이다. 1483년 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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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익산 출신의 의병장. 소행진(蘇行震)[?~1592]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소세득(蘇世得), 아버지는 소종선(蘇宗善)이다. 아들은 소계(蘇繼)와 소동(蘇同)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소행진은 같은 금마면 출신인 이보(李寶)와 함께 의병 400여 명을 모집하고 가산(家資)을 정리하여 군량과 병기를 마련한 후 금산(錦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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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익산 출신의 문신. 송영구(宋英耈)[1556~1620]의 본관은 진천(鎭川)이고 자는 인수(仁叟), 호는 표옹(瓢翁)·일호(一瓠)·백련거사(白蓮居士)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송세웅(宋世雄), 할아버지는 송억수(宋億壽), 아버지는 송영(宋翎)이다. 부인은 종부시정 윤승경(尹承慶)의 딸 해평윤씨(海平尹氏)이다. 송영구는 1556년(명종 11) 익산에서 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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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익산 출신의 문신. 송천희(宋千喜)[?~1520]의 본관은 여산(礪山)이고 자는 신보(愼甫) 또는 구부(懼夫), 호는 이허정(二虛亭)이다. 할아버지는 송윤(宋倫)이고, 아버지는 경기도사(京畿都事)를 지낸 송극창(宋克昌)이다. 어머니는 정극종(鄭克從)의 딸 나주정씨(羅州鄭氏)이다. 송천희는 지금의 익산시 여산면 출신으로, 1483년(성종 14) 식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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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도 익산과 관련한 작품을 남긴 문신. 신광수(申光洙)[1712~1775]의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성연(聖淵), 호는 석북(石北) 또는 오악산인(五嶽山人)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행성현도찰방(行省峴道察訪)을 지낸 신흡(申潝)이고, 할아버지는 신태제(申泰濟)이다.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신호(申澔)이며, 어머니는 통덕랑 이휘(李徽)의 딸 전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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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익산 출신의 판소리 명창. 신만엽(申萬葉)[?~?]은 지금의 익산시 여산면에서 태어나 고창에서 거주하였다. 순조·헌종·철종 대에 활동한 8명창 중 한 사람이다. 송흥록·모흥갑·염계달·고수관의 후배이고, 김제철·박유전과는 동년배이다. 신재효(申在孝)[1812~1884]는 「광대가」에서 신만엽의 소리를 “신선달(申先達) 만엽(萬葉)이는 구천은하(九天銀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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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조선 전기 문신 소세검의 문집. 『쌍봉유고(雙峰遺稿)』는 조선 전기의 문신인 소세검(蘇世儉)[1483~1573]의 문집이다. 소세검은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 출신으로,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 동지중추부사와 여러 고을의 수령을 역임하였다. 소세검이 지은 글들은 대부분 전해지지 않는다. 현재 188수만 전해지지만, 시의 품격이 높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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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 시대 익산 지역에 있던 보덕국의 왕. 안승(安勝)[?~?]은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에는 왕의 서자라고 기록되어 있고, 「신라본기」에는 연개소문(淵蓋蘇文)의 동생인 연정토(淵淨土)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등 정확한 가계는 알 수 없다. 안승은 고구려의 귀족으로, 고구려 부흥운동을 일으킨 검모잠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다. 670년(문무왕 10)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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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출신인 조선 전기 문장가 소세양의 시문집. 『양곡집(陽谷集)』은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 도천마을 출신으로, 조선 전기에 활동한 문신이자 문장가였던 소세양(蘇世讓)[1486~1562]의 시문집이다. 소세양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와 벼슬을 그만두고 은퇴한 이후 지은 시가 많다. 비문과 제문, 기문과 서문, 발문, 사직을 청한 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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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전라도 익산 지역의 지배계층. 양반은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의 지배층을 통칭하는 용어였으나,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양반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 초기부터였다. 처음에는 문반(文班)인 동반(東班)과 무반(武班)인 서반(西班)을 지칭하였다. 하지만 고려 말부터 점차 지배층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리고 조선 시대에 오면서부터 양반은 지배층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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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입점리와 군산시 나포면 나포리에 걸쳐 있는 삼국 시대 산성. 어래산성(御來山城)은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입점리와 군산시 나포면 나포리 경계 어래산 정상에 있는 삼국 시대 석축 산성이다. 현재 어래산성은 정상부와 성벽을 따라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정상부 평탄지에는 몇 기의 민묘가 있다. 석축 성벽 대부분이 붕괴되었으나 북벽·서벽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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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명칭의 유래와 익산의 황등호에 얽힌 이야기. 우리나라 전통 역사 및 지리 관련 기록에 나타난 광역 공간에 대한 표현은 삼국 시대 거점 중심의 성(城)을 지역의 명칭으로 사용하던 전통을 신라가 삼국 통일 이후 전국을 9주(州) 체제로 바꾸면서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즉, 신라는 고구려·백제를 통합한 후 685년(신문왕 5) 전국의 행정 구역을 9주·5소경으로 재조직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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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동헌 건물. 여산은 조선 초기 여량과 낭산을 합쳐 여산현이 되었다. 1436년(세종 18) 태종의 왕비 원경왕후의 고향이라 하여 군(郡)으로 승격되어 충청도에 속하였다가, 1444년(세종 26) 다시 전라도로 복귀되었다. 1699년(숙종 25) 단종 비 정순왕후의 관향(貫鄕)이라 하여 여산도호부로 승격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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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전라북도 익산의 역사. 익산은 백제 때 금마저(金馬渚)로 불렸으며, 무왕 대에는 왕궁과 미륵사가 건립되었다. 백제 멸망 후 보덕국(報德國)이 잠시 설치되었고, 통일신라 경덕왕 때는 금마군(金馬郡)으로 바뀌어 고려 시대까지 지속되었다. 금마군은 1344년(충혜왕 복위 5) 원나라 순제 황후 기씨(奇氏)의 외향(外鄕)이라 하여 ‘익주(益州)’로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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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영등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와 원삼국 시대의 유적. 영등동 유적(永登洞遺蹟)은 전라북도 익산시 영등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와 원삼국 시대의 유적이다. 영등동 유적이 있는 지역은 비교적 낮은 구릉으로 청동기 시대부터 원삼국 시대까지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자연환경이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1996년 조사에서 청동기 시대 장방형 주거지 1기와 원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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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익산 출신의 무신. 오방언(吳邦彦)[1588~1637]의 본관은 해주(海州)이고 자는 길보(吉甫), 호는 순풍정(順風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오하몽(吳下蒙)이고, 할아버지는 정유재란 때 남원성전투에서 전사한 오응정(吳應鼎)이다. 아버지는 명의 후금 정벌에 원병으로 출진하였다가 전사한 오직(吳稷)이다. 부인은 오방언의 장례를 치른 뒤 자결하여 정렬부인에 책봉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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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익산 출신의 무신. 오응정(吳應鼎)[1559~1597]의 본관은 해주(海州)이고 자는 문중(文仲), 호는 완원당(翫元堂)이다.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오하몽(吳下蒙)이다. 아들은 오욱(吳稶), 오직(吳稷), 오동량(吳東亮)이다. 손자는 오방언(吳邦彦)이다. 오응정은 1559년(명종 14) 지금의 익산시 용안면에서 태어났다. 1574년(선조 7) 무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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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익산 출신의 무신. 오직(吳稷)[1575~1619]의 본관은 해주(海州)이고 자는 사형(士馨), 호는 삼송정(三松亭)이다. 할아버지는 오하몽(吳下蒙)이고, 아버지는 순천부사 재임 시 남원성전투에서 전사한 오응정(吳應鼎)이다. 형인 오욱(吳稶)과 동생인 오동량(吳東亮)도 남원성에서 아버지 오응정과 함께 전사하였다. 아들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싸우다 인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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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에 있는 삼국 시대 산성. 용화산성(龍華山城)은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과 왕궁면, 여산면의 경계 지점에 해당하는 용화산에 주성과 부성으로 지어진 석축 산성이다. 해발 342m인 성태봉을 감싸는 부성과 부성에서 북쪽으로 400m 정도 떨어진 능선부와 동사면을 포함하여 축조된 주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부성은 일명 성태봉산성(城胎峰山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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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웅포리 일원에 있는 백제 시대 고분군.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웅포리 일대에서 총 3차례 발굴 조사를 실시한 결과 신석기 시대 주거지 1기, 청동기 시대 석관묘 3기, 원삼국 시대 주거지 7기, 삼국 시대 무덤 71기, 통일신라 시대 토기가마 1기, 고려 시대 무덤 4기 등 총 91기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삼국 시대 무덤의 형식은 굴식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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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0년 8월 전라북도 웅포에서 덕성창의 미곡을 탈취하려는 왜군과 고려군이 벌인 해상 전투. 드넓은 호남평야가 펼쳐지고 금강과 만경강으로 둘러싸인 익산에는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 시기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사람이 많고 곡식이 많으니 자연히 익산을 거쳐 가는 배와 말과 수레도 많았다. 하지만 반갑지 않은 이들도 찾았들었다. 바로 호남평야에서 생산되는 곡식을 노리고 금강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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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신동 원광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옹기류. 원광대학교 박물관 소장 옹기(圓光大學校博物館所藏甕器)는 전라북도 익산시 신동에 있는 원광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583점의 옹기를 말한다. 대부분 익산 지역에서 사용되었던 옹기와 전라도 지역에서 생산된 옹기들이며, 조선 시대부터 일제 강점기, 광복 이후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1968년 1월 1일 박물관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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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지역 출신인 조선 후기 유학자 소두산의 문집. 『월주집(月州集)』은 조선 후기의 유학자인 소두산(蘇斗山)[1627~1693]이 남긴 글들을 모아 펴낸 문집이다. 소두산은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 지역 출신으로,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당색(黨色)은 노론(老論)이며, 강직한 성격에 직언을 아끼지 않았다. 후손인 소수헌(蘇洙憲), 소휘면(蘇輝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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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출신인 조선 전기 문신 정수강의 시문집. 『월헌집(月軒集)』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정수강(丁壽崗)[1454~1527]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542년에 처음 간행한 시문집이다. 정수강은 전라도 익산군 출신이며, 한문소설 「포절군전(捕節君傳)」을 지었다. 정수강이 타계하자 후손들이 글을 모아 문집 『월헌집』을 네 차례 간행하였는데,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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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성당면 와초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유계의 신도비와 며느리 남원윤씨의 절행정려판. 유계 신도비는 조선 후기 문인 유계(劉啓)[1607~1664]의 묘에 세운 석비이다. 유계는 기계유씨(紀溪兪氏)이며, 자는 무중(武仲), 호는 시남(市南),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김장생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수학하여 예학과 사학에 정통하였고, 송시열·송준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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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 강후진이 1738년 전라도 익산의 금마 지역을 답사한 뒤 쓴 글. 「유금마성기(遊金馬城記)」는 1738년(영조 14)에 학자 강후진(康侯晉)[1685~1756]이 기록한 금마성(金馬城) 일대의 답사기이다. 금마성은 마한(馬韓)의 도성으로,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 해당한다. 「유금마성기」는 강후진의 저서 중 『와유록(臥遊錄)』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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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황등면 율촌리에 있는 마한 시대의 분구묘. 율촌리 고분군(栗村里古墳群)은 전라북도 익산시 황등면 율촌리에 있는 마한 시대의 분구묘이다. 모두 5기의 분구묘(墳丘墓)가 낮은 구릉에 남북 방향을 따라 일렬로 분포하고 있으며, 1호분은 다른 4기의 분구묘와 따로 떨어져 독립적으로 있다. 율촌리 고분군은 2000년 6월 23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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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도 함열현의 수령 조희백이 쓴 조운 관련 기록. 『을해조행록(乙亥漕行錄)』은 1875년(고종 12)에 조희백(趙熙百)[1825~1900]이 지은 조운 일기(漕運日記)이다. 『을해조행록』에 따르면 조희백은 1874년 말 함열현감 겸 성당창 조세영운관(咸悅縣監兼聖堂倉漕稅領運官)으로 제수되었다. 이에 조창(漕倉)인 성당창에 가서 세곡미를 싣고 웅포를 출발하여 광흥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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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연안이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이계륜의 관직 임명장. 이계륜 교지(李繼倫敎旨)는 조선 전기에 활동한 문신 이계륜[?~?]이 관직에 임명되면서 받은 임명장들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상의원주부(尙衣院主簿) 교지[1531년(중종 26)], 대흥현감(大興縣監) 교지[1533년(중종 28)],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 우위솔(右衛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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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익산 출신의 문신. 이공수(李公遂)[1308~1366]의 본관은 익산(益山)이고 자는 남촌(南村),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인종 때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지낸 이주연(李周衍)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상서좌복야 이주(李湊)이고, 할아버지는 언부전서(讞部典書)를 지낸 이행검(李行儉)이다. 아버지는 감찰규정(監察糾正)을 지낸 이애(李崖)이다. 이공수의 고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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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익산에서 의병을 일으킨 의병장. 이보(李寶)[?~1592]의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자는 백거(伯居)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대호군(大護軍) 이수장(李壽長)이고,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이기(李巙)이다. 아버지는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이정화(李廷華)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동생은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묵재(黙齋) 이귀(李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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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연안이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이보정의 과거 급제증. 과거에 급제하면 급제증을 왕의 명령으로 발급하는데 이를 교지(敎旨)라고 하였다. 문과 급제증은 홍패(紅牌)라고도 불렀는데, 그것은 붉은색 바탕의 종이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문과 급제자에게는 홍패를 주었고, 소과(小科), 즉 생원시나 진사시의 합격자에게는 하얀색 종이로 되어 있는 백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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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익산 출신의 문신. 이순인(李純仁)[1543~1592]의 본관은 전의(全義)이고 자는 백생(伯生), 호는 고담(孤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석동(李碩童)이고, 할아버지는 이사겸(李思謙)이다. 아버지는 현감 이홍(李泓)이며, 어머니는 생원 박함(朴諴)의 딸 죽산박씨(竹山朴氏)이다. 부인은 우참찬 김개(金鎧)의 딸 광산김씨(光山金氏)이다. 이순인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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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연안이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전기 관직 임명장. 이숭원 교지 및 이백겸 교지(李崇元敎旨-李伯謙敎旨)는 문종(文宗)의 즉위년인 1450년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453년(단종 1)에 문과에 급제하였던 이숭원[1428~1491]이 관직에 임명되면서 1450년(문종 즉위)에서 1487년(성종 18) 사이에 받은 임명장 열 건과 그의 할아버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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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연안이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이숭원의 생원시 합격 증서. 이숭원 백패(李崇元白牌)는 1450년(문종 즉위) 9월 5일에 이숭원(李崇元)[1428~1491]에게 발급하여 준 생원시(生員試) 합격증이다. 생원시 합격증을 백패라고 부른 이유는 글씨를 쓴 종이가 하얀색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문과급제자에게는 홍패(紅牌)가 주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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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연안이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이숭원의 공신 임명 증서. 이숭원 좌리공신녹권은 보물 제651호로 지정된 연안이씨 종중 문적 중의 하나이다. 공신녹권은 조선 시대 때 나라에 공을 세운 인물을 공신으로 임명하는 증서이다. 좌리공신은 조선의 제9대 왕인 성종(成宗)[1457~1494]이 자신을 잘 보필하고 자신의 즉위에 공을 세운 신하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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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익산 출신의 문신. 이행검(李行儉)[1225~1310]의 본관은 익산(益山)이고, 아버지는 한림학사승지 이주(李湊)이다. 아들은 성균관대사성 이직(李稷)과 감찰규정 이애(李崖)이다. 딸은 기자오(奇子敖)에게 시집가서 원나라 순제(順帝)의 황후인 기황후를 낳은 영안왕부인(榮安王夫人)이다. 정당문학을 지내고 익산부원군으로 책봉된 이공수(李公遂)가 손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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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의 미륵사지 서탑에서 발견된 사리봉영기. 사리봉영기는 사리를 모시는 내력을 적은 글로, 사리 공양을 위하여 석탑을 조성하는 과정이나 사찰의 창건 배경을 기록하기도 한다. ‘사리봉안기’라는 명칭도 함께 사용되고 있다.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금제사리봉영기는 미륵사지 서탑을 해체하던 중 2009년 1월 14일 1층 첫 번째 심주석(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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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지의 동원 승방지에서 출토된 백제 시대 토제 치미. 치미(鴟尾)는 목조 건축물 용마루 양쪽 끝을 마감 장식한 특수기와로 망새라고도 불린다. 주로 벽사의 의미로 사용하지만 장식적 기능도 뛰어나다. 미륵사지에서는 1,000여 점이 넘는 치미편이 출토되어 수량과 출토 위치로 보았을 때 각 건물의 용마루마다 치미가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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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석왕동에 있는 백제 시대 고분. 익산 쌍릉(益山雙陵)은 전라북도 익산시 석왕동에 있는 2기의 백제 시대 고분이다. 백제 사비기에 속하는 2기의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으로 남북으로 무덤이 배치되어 ‘쌍릉’이라 부른다. 익산 쌍릉은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87호로 지정되었다. 익산 쌍릉은 전라북도 익산시 석왕동 산55번지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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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와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 일대에 있는 백제 시대 궁성 및 사찰 관련 유적. 익산 왕궁리 유적(益山王宮里遺蹟)은 ‘왕궁평성’, ‘왕검이’, ‘왕금성’, ‘왕궁리성지’, ‘모질메토성’, ‘모지밀산성’이라고도 부른다.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와 금마면 동고도리 일대는 일찍이 왕궁이 있었던 곳으로 주목을 받아 왔다. 발굴 조사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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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유적에서 발견된 궁성 및 사찰 관련 유구. 익산 왕궁리 유적 유구(益山王宮里遺蹟遺構)는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의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2019년까지 발굴 조사된 106개의 유구( 遺構)를 말한다. 익산 왕궁리 유적은 1976년부터 1977년까지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궁장과 건물터에 대한 부분 조사를 실시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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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입점리에 있는 백제 시대 무덤군. 익산 입점리 고분(益山笠店里古墳)은 삼국 시대의 굴식돌방무덤, 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1986년 봄 마을 주민이 우연히 무덤을 발견하였고, 1986년 문화재연구소, 1998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서 조사를 진행하였다. 1991년 2월 26일 사적 제347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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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지역을 배경으로 한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와 익산 천도설의 배경. 한국의 고대사 자료는 양적 측면에 그리 풍부하지 않다. 대부분의 연구가 김부식(金富軾)[1075~1151]의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일연(一然)[1206~1289]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부식은 중국 역사서에 기록된 삼국의 내용이 소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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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에 있는 백제 시대 석성. 익산 토성(益山土城)은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에 있는 백제 시대 성곽이다. 흙으로 축성되었다고 알려져 토성이라고 이름 붙여졌으나, 4차례의 발굴 조사 결과 석성으로 밝혀졌다. 오금산[해발 125m] 정상부와 남쪽 계곡을 두른 포곡식 산성으로 오금산에 있어 일명 ‘오금산성’ 혹은 ‘보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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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낭산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익산 낭산산성(益山郎山山城)은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낭산[해발 162m]의 정상부 정상과 8부 능선을 따라 축성된 산복식 산성이다. 마한성, 구성, 북성 등으로도 불리고 있다. 남쪽은 미륵산이 가로막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삼면을 모두 조망할 수 있다. 동쪽으로는 높지 않은 산악 지대를 형성하고 있고,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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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익산 미륵산성(益山彌勒山城)은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 미륵사지 뒤쪽 미륵산[해발 430m] 최정상부와 동쪽 사면을 감싼 포곡식 산성으로 기준성이라고도 부른다. 미륵산성의 북쪽은 논산·부여까지 조망되며, 낭산산성·선인봉산성 및 당치산성 등도 볼 수 있다. 동쪽으로 용화산성과 천호산성으로 연결되고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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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일어난 농민봉기. 1862년(철종 13) 2월 18일 진주민란에 이어 3월 27일 익산에서도 농민들의 항쟁이 일어났다. 익산민란은 도결의 폐단과 봉건 정부의 수탈, 그리고 향촌 내 양반의 횡포 등 19세기 전반적인 봉건 정부의 무능과 수탈에 맞선 항쟁이다. 익산민란은 타 지역과 같이 불법적인 도결에 대한 시정을 요구한 농민의 항쟁이었지만 다른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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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에 있는 백제 시대 토기 도요지. 익산 백제토기 도요지(益山百濟土器陶窯址)는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에 있는 백제 시대 토기 도요지이다. 미륵산 동쪽 해발 150m 지점의 사면에 2기가 나란히 있다. 제1호 가마는 길이 8.5m의 반지하식으로 아치식 천장은 일부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으며 평면 형태는 독사머리형이다. 제2호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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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지역 토착 성씨인 익산임씨와 관련이 있는 고려 후기의 무신. 임견미(林堅味)[?~1388]의 본관은 평택(平澤)이다. 현재 평택임씨의 가계는 나주임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당나라 문종[826~840] 때에 신라로 왔다는 임팔급(林八伋)을 도시조(都始祖)로 하는 동계 혈족으로 본다. 그러나 임팔급의 시조설은 기존 신라의 임씨가 중국식으로 바뀌는 과정을 나타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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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근대 유학자 이종림의 문집. 이종림(李鍾林)[1857~1925]은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 간촌리 원촌마을 출신이다. 문장이 뛰어난 인물로서, 개화기에는 선공관감역(繕工監監役), 한성부판사(漢城府判事), 법부참서관(法部參書官), 시종원부경(侍從院 副卿) 등을 역임하였다. 세상이 잘못 되어가는 것을 보고 1907년 1월 낙향하여 다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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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전라도 여산부 태성리에 거주하던 진주강씨 가문의 호적 문서. 전라도 여산부 진주강씨 호적문서(全羅道礪山府晋州姜氏戶籍文書)는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태성리에 해당하는 19세기 전라도 여산부 천동면 덕곡리와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군 양촌면에 속하는 충청도 연산현 모촌면 신흥리에 거주하였던 진주강씨 집안에서 작성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이 호구단자는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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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이 본관인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정비. 정순왕후(定順王后)[1440~1521]는 조선 제6대 임금 단종(端宗)[1441~1457]의 정비(正妃)이다. 정순왕후의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부사 송계성(宋繼性)이고, 할아버지는 지중추원사 송복원(宋復元)이다. 아버지는 여량부원군(礪良府院君) 송현수(宋玹壽)이며,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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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익산 지역에 거주한 판소리 명창. 정창업(丁昌業)[1847~1889]의 본관은 금성(錦城)이다. 아들은 명창 정학진(丁學珍)[1863~1912]이고, 손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예능보유자인 정광수(丁珖秀)[1909~2003]이다.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2호 수궁가 보유자 정의진(丁意珍)이 증손녀이다. 정창업은 1847년(헌종 13) 함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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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전라북도 익산 지역의 역사와 문화. 2019년 현재의 전라북도 익산시는 조선 시대의 4개 군현을 통합하여 1914년 성립되었다. 조선은 1413년(태종 13) 행정구역을 8도로 정비하였고 전라도는 1부[전주] 4목 7도호부 12군 31현을 두었다. 익산군은 12개 군 중의 하나로 고려 시대 익주를 익산군으로 개편하여 칭하였다. 이후 1895년(고종 32) 이웃 고을인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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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지역에 설치된 세미(稅米) 창고. 익산 지역의 조창은 조선 전기에 덕성창, 후기에 성당창이 설치되었다. 덕성창(德城倉, 德成倉)은 1428년(세종 10)부터 1487년(성종 18)까지 전라도 함열 피포(皮浦), 현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고창리에 설치되었다. 성당창은 현 전라북도 익산시 성당면 성당리 일대에 설치되었다. 전라도 전주와 그 주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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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국가 시대 익산 지역에 피신한 것으로 전해지는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 준왕(準王)[?~?]에 관한 기록은 기자조선(箕子朝鮮)의 마지막 왕 기준(箕準)이 고조선 멸망 후 바닷길로 도망쳤다는 후한(後漢) 학자 왕부(王符)의 『잠부론(潛夫論)』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삼국지(三國志)』와 『후한서(後漢書)』 등에 다음과 같은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었다. 기자조선의 준왕이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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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익산군수 송시도의 석각(石刻). 징벽지 석각(澄碧池石刻)은 1668년 익산군수였던 송시도(宋時燾)[1613~1689]가 징벽지 훈호당 옆 돌에 ‘징벽지(澄碧池)’라는 글을 쓰고 새긴 것이다. 송시도는 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동생이다. 훈호당(壎箎堂)은 송시도가 선정을 베푼 명관 이시담(李時聃)[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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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활동한 관료 출신 화가. 채용신(蔡龍臣)[1850-1941]의 본관은 평강(平康)이고 자는 대유(大有), 호는 석지(石芝)·석강(石江)·정산(定山)이다. 어릴 적 이름은 채동근(蔡東根)이다. 아버지는 통정대부 채권영(蔡權永)이다. 채용신은 1850년(헌종 14)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에서 태어났다. 1886년(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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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호산리와 완주군 비봉면 대치리 일원에 걸쳐 있는 삼국 시대 산성. 천호산성(天壺山城)은 전라북도 익산에서 가장 높은 천호산[해발 500m]의 주봉을 감싸며 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대성(臺城)’, ‘농성(農城)’, ‘태성(台城)’이라고도 부른다. 산성의 축조와 연관하여 관련된 문헌 자료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천호산의 현상에 대해 단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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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익산 출신의 무신. 최경(崔警)[1608~?]의 본관은 강화(江華)이고 자는 신중(愼中)이다. 판서(判書) 최귀(崔貴)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최봉기(崔鳳起)이다. 형은 최은(崔訔)이다. 최경은 1608년(선조 41) 익산에서 태어났다. 1636년(인조 14)에 별시무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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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익산 출신의 문신. 최경지(崔敬止)[?~1479]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화보(和甫)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최홍재(崔弘載)이고, 할아버지는 최호(崔灝)이다. 아버지는 세자시강원필선을 역임한 최유종(崔有悰)이며, 어머니는 허조(許稠)의 딸 하양허씨(河陽許氏)이다. 부인은 채담(蔡潭)의 딸 평강채씨(平康蔡氏)이다. 최경지는 지금의 익산시 황등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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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조선 후기 학자 소응천의 문집. 『춘암유고(春庵遺稿)』는 조선 후기 영조(英祖)[1694~1776] 때의 학자인 소응천(蘇凝天)[1704~1760]의 문집이다. 소응천은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 출신으로, 시문을 비롯한 문장과 다방면에 뛰어난 재주를 갖춘 인물이다. 윤증과 윤동수, 윤동원으로 이어지는 소론 학맥을 계승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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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부터 고려 건국 이전까지 전라북도 익산 지역의 역사. 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자 다양한 백제부흥운동이 벌어졌다. 신라는 익산 지역의 백제부흥운동을 막기 위하여 670년 안승을 금마저로 옮겨 보덕국을 세우게 하였다. 백제부흥운동이 진압되고 나당전쟁도 마무리되자 보덕국마저 684년 해체되고 익산 지역은 점차 신라 사회에 편입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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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출신인 조선 후기 문인 송영구의 문집. 『표옹유고(瓢翁遺稿)』는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 출신으로 조선 후기에 활동한 문인 송영구(宋英耉)[1556~1620]의 문집이다. 송영구는 성혼(成渾)의 제자이고 이항복(李恒福), 황신(黃愼), 이정귀(李廷龜) 등과 교유하였다. 『표옹유고』는 송영구의 7대손인 송문술(宋文述)이 편찬하였으며, 간행 연도는 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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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조선 후기 문신 홍서봉의 시문집. 『학곡집』은 조선 후기인 선조, 광해군, 인조 대에 활동한 문신이자 학자인 홍서봉(洪瑞鳳)[1572~1645]의 시문집이다. 전라도 익산군 출신인 홍서봉은 광해군 때의 무옥(誣獄)[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을 죄가 있는 것으로 꾸며 가두거나 징벌함] 사건과 관련하여 파직된 이후 한때 은거하였으나, 인조반정(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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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동용리에 있는 삼국 시대 산성. 학현산성(鶴峴山城)은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동용리와 완주군 봉동읍 제내리 사이 경계면에 있는 산성이다. 학현산[해발 214m]을 주봉으로 하여 능선과 계곡부를 따라 축조된 산복식 석축산성으로 문헌 자료는 없으나 삼국 시대에 축성하였다고 전한다. 학현산성 내부에서는 삼국 시대에서 조선 시대까지의 유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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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익산 지역에 거주하였던 문신. 한백겸(韓百謙)[1552~1615]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명길(鳴吉), 호는 구암(久菴)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선군수 한승원(韓承元)이고, 할아버지는 문천군수 한여필(韓汝弼)이다. 아버지는 경성부판관 한효윤(韓孝胤)이며, 어머니는 예빈시정 신건(申健)의 딸 평산신씨(平山申氏)이다. 부인은 구사중(具思仲)의 딸 능성구씨(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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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익산 지역에 유배되었던 문신. 허균(許筠)[1569~1618]의 본관은 양천(陽川)이고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학산(鶴山)·성소(惺所)·백월거사(白月居士)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허담(許聃)이고, 할아버지는 허한(許澣)이다. 아버지는 경상감사 허엽(許曄)이며, 어머니는 참판 김광철(金光轍)의 딸 강릉김씨(江陵金氏)이다. 형은 허성(許筬)과 허봉(許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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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 허균의 유배 생활 추정터. 허균 유배지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문인인 허균(許筠)[1569~1618]이 과거 부정 사건에 연루되어 1611년(광해군 3)에 유배 생활을 한 곳이다. 허균이 전라북도 익산의 함열로 유배를 자원한 까닭은 함열 지역이 또 다른 생활의 근거지였던 부안과 인접한 곳이고, 당시 함열현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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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황등면 황등리에 있는 1780년경 황등제호 수리 내역을 적은 비. 황등제호(黃登堤湖)는 요교호(腰橋湖)라고도 불리었다. 정읍 눌제, 김제 벽골제와 함께 호남의 3대 제호로 불렸다. ‘호남’이라는 지명이 황등제의 남쪽을 일컫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황등제호는 호남의 관문 역할을 하던 호수였다. 하지만 1925년대부터 호수를 메워 농지로 만들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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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익산 지역에서 태어난 조선 제24대 왕 헌종의 계비. 효정왕후(孝定王后)[1831년~1904]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홍병채(洪秉寀)이고, 할아버지는 함열현감을 지낸 홍기섭(洪耆燮)이다. 아버지는 익풍부원군 홍재룡(洪在龍)이며,어머니는 예조판서 안광직(安光直)의 딸 연창부부인 죽산안씨(竹山安氏)이다. 효정왕후는 1831년(순조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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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년에서 936년까지 후백제 시기의 전라북도 익산 지역의 역사. 익산은 후백제의 도읍인 전주에 속한 지역으로 백제 부흥의 상징적인 곳이었으며, 후백제 멸망 시기 고려군이 진격한 최전방 마성(馬城)이 있던 곳이다. 또한 견훤은 후백제의 상징으로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제289호]을 조성하였다. 신라 말 사회가 혼란한 시기 서남해로 진출하여 세력을 키운 견훤은 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