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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의 3·1운동을 주도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태성(姜太成)[?~1919]은 1919년 4월 5일 향남면(鄕南面) 발안리(發安里) 장날에 안상용(安相容)·안진순(安珍淳)·안봉순(安鳳淳)·김덕용(金德用)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1919년 화성 지역은 3월 하순부터 4월 중순까지 송산면(松山面), 장안(長安)·우정면(雨汀面), 팔탄면(八灘面)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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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제암리사건 때 함께 순국한 강태성(姜太成)의 아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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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건릉과 관련된 개항기 전적. 『건릉지』는 1878년 남정철(南廷哲)이 성균관 진사로 건침랑(健寢郞)에 제수되어 건릉(健陵)에 대한 능지(陵誌)가 없음을 확인하고, 비부(祕府)와 예조, 봉상시(奉常寺) 등에서 해당 고실(故實)과 전적 등을 참고하여 능지를 작성하였다. 원래 건릉에 대한 기록으로 구지(舊誌)가 있었으나 1873년(고종 10) 재실의 화재로 선생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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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2월 23일부터 1951년 3월 11일까지 경기도 화성 출신 교사 유정수가 국민방위군에 대해 기록한 일기. 『국민방위군 일기』는 유정수(柳靘秀)가 국민방위군에 소집된 1950년 12월 23일부터, 귀향길에 오른 1951년 3월 10일 사이에 작성한 76편의 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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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김교창(金敎昌)[1889~1954]은 1889년에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강화군 선원면(仙源面) 창리(倉里) 648번지이다. 1919년 3월 26일 홍면옥(洪冕玉)이 주동한 송산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8일 일본인 순사부장 노구치 고조[野口廣三]가 시위를 주도하던 홍면옥을 체포하다 어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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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교철(金敎哲)[1880~1955]은 1880년 7월 27일에 태어났다. 1911년 배재학당, 1912년 피어슨 성경학원 등에서 수학하였다. 1914년에 공부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장진의숙을 설립하였으며, 남양교회 담임전도사로 활동하였다. 1919년 4월 3일 장안(長安)·우정면(雨汀面) 일대에 만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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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종교인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 조부는 동지성균관사·평안도관찰사를 역임한 김정집(金鼎集)이며, 부친은 고종대에 공조판서·사헌부 대사헌·한성부 좌윤을 역임한 김창희(金昌熙)이다. 모친 풍양 조씨(豊壤 趙氏)는 판관을 역임한 조희필(趙熙弼)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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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덕근(金德根)[1889~1958]은 1889년 5월 13일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장안(長安)·우정면(雨汀面) 일대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군중들과 함께 장안·우정면의 면사무소를 파괴하였으며, 인근의 쌍봉산(雙峯山)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화수리(花樹里) 경찰주재소를 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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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덕삼(金德三)[1876~1962]은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출신으로, 1919년 4월 3일 일어난 장안면(長安面)·우정면(雨汀面)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시작되었다. 시위 군중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안면사무소로 행진하였으며, 이때 김덕삼은 선두에서 장안면사무소를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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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3·1운동을 주동하고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김덕용(金德用)[1900~1919]은 1900년 1월 6일 태어났다. 1919년 3월 31일 향남면(鄕南面) 발안리(發安里) 장날에 안상용(安相容)·안진순(安珍淳)·안봉순(安鳳淳)·강태성(姜太成)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1919년의 화성 지역은 3월 하순부터 4월 중순까지 송산면(松山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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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도정(金度貞)[1889~1871]은 1889년 11월 10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 426번지이다. 1919년 3월 26일 송산면에서 홍면옥(洪冕玉)·왕광연(王光演)·홍명선(洪明善) 등이 계획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송산면의 독립만세운동은 송산면사무소 근처에서 1,000여 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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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명우(金明友)[1887~1951]는 1887년 1월 14일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장안(長安)·우정면(雨汀面) 일대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때 만세운동에 참여한 군중들과 함께 장안·우정면의 면사무소를 파괴하였으며, 인근의 쌍봉산(雙峯山)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화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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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마도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산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홍면옥(洪冕玉)[이명 홍면(洪冕)]의 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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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명호(金明鎬)[1887~1951]는 1887년 6월 16일 태어났다. 김여근(金汝根)이라고도 불렸다. 김명호는 1919년 4월 3일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長安面水村理)에서 발생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4월 3일의 시위는 수촌리 주민 100여 명이 아침에 밀양산에 모인 뒤, 독립만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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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성실(金成實)[1869~1931]은 1869년 4월 3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 496번지이다. 1919년 3월 26일과 28일 화성군 송산면 사강리에서 홍면옥(洪冕玉)이 주도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김성실은 시위 군중과 함께 송산면사무소 등지에서 태극기를 게양하고 독립만세를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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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제암리·고주리 학살 사건으로 순국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성열(金聖烈)[1871~1919]은 1871년 11월 3일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고주리에서 태어났다. 천도교 전도사로 활동하였으며, 1907년 충청남도에서 의병 활동을 하였던 홍원식(洪元植)이 1914년 제암리에 이주하여 구국동지회를 결성하자, 이에 동참하였다. 1919년 3월 31일 향남면(鄕南面) 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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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고주리 학살 사건으로 순국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제암리 학살 사건으로 순국한 김성열(金聖烈)의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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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연방(金然昉)[1881~1919]은 1881년 7월 21일 태어났다. 김연방은 대한제국의 시종원시어(侍從院侍御) 출신으로, 1919년 4월 3일에 화성시 장안면(長安面)과 우정면(雨汀面) 일대의 주민들이 만세시위를 일으키자, 이에 참여하였다. 만세시위에 참여한 군중들은 장안면사무소에 모여 장안면장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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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용준(金容俊)[1881~1936]은 1881년 2월 28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松山面) 사강리(沙江里) 686번지이다. 1919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송산면 사강리 일대에서 홍면옥(洪㻐玉) 등이 주동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8일의 만세시위에서는 일본인 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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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군 대부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윤규(金允圭)[1894~1962)는 1894년 12월 16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이고, 부천군(富川郡) 대부면(大阜面)에 거주하였다. 1919년 4월 1일 노병상(盧秉相)·홍원표(洪元杓)와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부천군 대부면 자신의 집에서 천으로 태극기를 만들었다. 이어 군중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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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응식(金應植)[1879~1944]은 1879년 12월 4일 태어났다. 1919년 2월부터 동지들을 모아 독립운동을 하다가, 4월 3일 장안면(長安面)·우정면(雨汀面)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시작되었다. 시위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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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응오(金應五)[1885~1949]는 1885년 11월 23일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長安面)·우정면(雨汀面) 일대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시작되었다. 시위 군중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안면 사무소로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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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김정헌(金正憲)[1876~1919]은 1876년 2월 7일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에서 태어났다. 『화성시사』4권에 따르면, 직업은 대장장이였다고 전해진다. 1919년의 화성 지역은 3월 하순부터 4월 중순까지 송산면(松山面), 장안(長安)·우정면(雨汀面), 팔탄면(八灘面) 등 전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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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종학(金鍾學)[1885~1925]은 1885년 6월 5일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에 일어난 장안·우정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시작되었다. 시위 군중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안면사무소로 행진하였고, 면장 김현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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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고주리 학살 사건으로 순국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제암리사건 당시 순국한 김세열(金世烈)이 부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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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고주리 학살 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제암리사건 당시 순국한 김세열(金世烈)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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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고주리 학살 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김흥렬(金興烈)[?~1919]은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고주리에서 태어났다. 1884년에 동학에 입교하였다. 1894년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수원 접주 고석주의 휘하에서 전투에 참여하였다. 이후 고향인 팔탄면에 돌아와 천도교 전도사가 되었다. 1910년에는 수원교구 순회교사가 되었으며, 1918년에 천도교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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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고주리 학살 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김흥복(金興福)[?~1919]은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고주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31일 향남면(鄕南面) 발안리(發安里) 장날에 안상용(安相容)·안진순(安珍淳)·안봉순(安鳳淳)·김덕용(金德用)·강태성(姜太成) 등이 주도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의 화성 지역은 3월 하순부터 4월 중순까지 송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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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김흥삼(金興三)[1882~1938]은 1882년 2월 18일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長安面)·우정면(雨汀面) 일대에 발생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시작되었다. 시위 군중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안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이때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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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김흥식(金興植)[1893~?]은 1883년 12월 22일 태어났다. 김치덕(金致德)으로도 불렸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長安面)·우정면(雨汀面) 일대에 발생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시작되었다. 김흥식은 시위대와 함께 우정면사무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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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960년대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이루어진 6·25전쟁 피난민 이주·정착 사업. 6·25전쟁이 진행 중이던 1951~1953년, 경기도 지역에 계속해서 피난민이 늘어났다. 휴전 직전인 1953년 6월 말이 되면, 경기도는 피난을 떠났다가 돌아온 주민들과 서울, 북한으로 돌아가려는 피난민이 모여들면서 전국에서 가장 피난민이 많은 곳이 되었다. 정부는 제한된 수용소 조건 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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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편찬된 경기도 남양부의 읍지. 『남양부읍지』는 남양도호부의 군정을 관할하던 친군총어영(親軍摠禦營)과 경리청(經理廳)이 존속하던 시기인 1891년에서 1894년 사이에 편찬된 지리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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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군 대부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노병상(盧秉相)[1891~1982]은 1891년 9월 27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신남리이고, 부천군(富川郡) 대부면(大阜面)에 거주하였다. 1919년 4월 1일 김윤규(金允圭)·홍원표(洪元杓)와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부천군 대부면의 김윤규의 집에서 천으로 태극기를 만들었다. 이어 군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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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일제의 탄압과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개한 민족 해방 운동.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는 한말 일제의 국권 침탈에 대응하기 위해 의병 활동이 일어났다. 1896년 김하락(金河洛)이 일으킨 이천의병에 수원·남양 지역 출신 인물들이 참여하였다. 1907년에는 농민군을 기본으로 하여 경기도 서남 지역의 동학농민운동 잔존 세력, 남양만 일대의 활빈당 세력, 해산 군인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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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문상익(文相翊)[1893~1960]은 1893년 7월 3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사강리 510번지이다. 남양의 사립 보홍학교에서 1년여 동안 신학문을 배운 뒤, 1911년 8월부터 1916년 11월까지 경성토지조사국의 기사로 근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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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민용운(閔用云)[1876~1929]은 1876년 6월 25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사강리 591번지이다. 1919년 3월 26일 홍면옥(洪冕玉)이 주동한 송산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8일 만세시위 도중 일본인 순사부장 노구치 고조[野口廣三]가 시위를 주도하던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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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서울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광남(朴光男)[1896~?]은 1896년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에서 태어났다. 배재학당 3학년으로 재학중이던 1919년 3월 1일, 서울 중구 서소문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박광남 등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소공동을 거쳐 충무로 방면으로 행진하여 조선총독부까지 이르렀다. 조선총독부는 군대를 동원하여 무력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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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군 반월면 장날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석진(朴錫鎭)[1896~1934]은 1896년 12월 13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반월면 14-1번지[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이다. 1919년 4월 1일 경기도 수원군 반월면 장날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반월면은 일제 강점기에 수원군에 속하였는데, 1949년 수원읍이 수원시로 승격되자,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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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문학가. 박승극(朴勝極)[1909~?]은 1909년 11월 2일 경기도 수원군 양감면 정문리[현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정문리] 348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28년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수료하였다. 1926년 12월 19일 창립한 반도청년회(半島靑年會)는 1927년 8월 3일 회장제에서 집행위원제로 체제를 개정하였는데, 이때 반도청년회 신임위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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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호(朴永鎬)[1899~1994]는 1899년 1월 1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사강리 588번지이다. 1919년 3월 26일 홍면옥(洪冕玉)이 주동한 송산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8일 일본인 순사부장 노구치 고조[野口廣三]가 시위를 주도하던 홍면옥을 체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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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백낙열(白樂烈)[1865~1937]은 1865년 12월 20일 수원군 장안면[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에서 태어났다. 1884년 동학에 입교하였으며, 1894년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수원 접주 고석주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1910년에 천도교 남양교구 금융원이 되었으며, 남양교구 강습소를 설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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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백명흠(白明欽)[1909~1936]은 1909년 2월 16일 경기도 수원군 안룡면 안녕리[현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화산동]에서 출생하였다. 김학광(金學光)·홍원표(洪元杓)·이학근(李學根)·홍종학(洪鍾學) 등 이명(異名)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동생 백봉흠(白奉欽) 등 4명과 함께 반일단체를 조직하기 위한 유인물을 제작하였고, 공장이 밀집되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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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백순익(白順益)[1882~1963]은 1882년 9월 16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長安面)·우정면(雨汀面) 일대에 발생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시작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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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있었던 봉담공립청년훈련소의 설립인가문서. 청년훈련소는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한국인 청년의 사상을 통제하고 동원을 쉽게 하고자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청년훈련소는 1926년 제16호 청년훈련규정에 따라 일본 퇴역군인단체 재향군인회에 의해 설치되기 시작했다. 이후 1929년 조선총독부는 청소년훈련소규정을 발포(發布)하여 재향군인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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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에서 4월 사이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 운동. 1919년 3월 1일의 만세 운동은 등불처럼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중에는 평화적인 시위도 있었지만, 사전 계획에 의해 조직적이고 격렬하게 전개된 만세 운동도 있었다. 화성 지역의 3·1운동은 공세적인 만세 시위 운동의 대표적인 사례로, 3·1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시위 운동이다. 시위 과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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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경기도 화성 지역을 포함한 수원군에 대한 지지. 『생활상태조사 1 수원군』의 저자인 젠쇼 에이스케[善生永助]는 1910년 와세다대학 정치경제과를 졸업하고 졸업 후에는 신문잡지 기자로 근무하면서중국 관계 논문이나 기사를 주로 잡지에 게재하였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일본의 척식단체인 동양협회에 드나들며중국경제관계 저서를 발표하여 호평을 받았다. 19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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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 있었던 송산공립청년훈련소의 설립인가문서. 청년훈련소는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한국인 청년의 사상을 통제하고 동원을 쉽게 하고자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청년훈련소는 1926년 제16호 청년훈련규정에 따라 일본 퇴역군인단체 재향군인회에 의해 설치되기 시작했다. 이후 1929년 조선총독부는 청소년훈련소규정을 발포(發布)하여 재향군인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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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성호(宋聲浩)[1856~1919]는 1856년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현 화성시 우정읍] 화수리에서 태어났다. 송세진(宋世振)으로도 불렸다. 1919년 4월 3일에 일어난 장안면(長安面)·우정면(雨汀面)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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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종혁(宋鍾赫)[1868~1919]은 1868년 8월 16일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현 화성시 우정읍] 화수리에서 태어났다. 송노인(宋老人)으로도 불렸다. 1919년 4월 3일에 일어난 장안면(長安面)·우정면(雨汀面)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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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6월 발간한 경기도 화성 지역 관련 자료. 『수원군지지』는 수원공립보통학교 교원인 후지요시[藤好], 다케다[武田], 아리사카[有坂] 등 3명이 공동으로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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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간행된 화성 지역에 대한 지리지. 화성 지역의 지리지로 사례적(事例的)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주기(注記)된 내용은 정조시기, 대한제국으로 변모되던 근대 시기의 화성 지역 변화상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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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상완(申尙玩)[1898~1951]은 1891년 5월 6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용주사(龍珠寺)로 알려져 있다. 신장균(申章均)·전장춘(田章春) 등으로도 불렸다. 1917년 봄 용주사의 법계 시험에서 중덕(中德)으로 선발되었고, 불교계 최고 교육기관 중앙학림(中央學林)에 진학하여 학생대표, 유심회(維心會) 회장 등의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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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6월 30일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발생한 청소년 수련 시설 화재 사건. 씨랜드청소년수련원화재사고는 1999년 6월 30일 경기도 화성군[지금의 화성시] 서신면 백미리의 씨랜드청소년수련의집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이다. 유치원생 19명과 인솔 교사 4명 등 총 23명이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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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제암리사건 당시 순국한 안상용(安相鎔)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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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제암리사건 당시 순국한 안종엽(安鍾燁)의 둘째 아들이자, 안명순(安命淳)의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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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안종엽(安鍾燁)의 첫째 아들이자, 안관순(安官淳)의 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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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제암리사건 당시 순국한 안종린(安鍾麟)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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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안봉순(安鳳淳)[1894~1919]은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5일 향남면(鄕南面) 발안리(發安里) 장날에 안상용(安相容)·안진순(安珍淳)·김덕용(金德用) 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1919년의 화성 지역은 3월 하순부터 4월 중순까지 송산면(松山面), 장안(長安)·우정면(雨汀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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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제암리 학살 사건 당시 순국한 안경순(安慶淳)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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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순원(安順元)[1886~1950]은 1886년 3월 17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 681번지이다. 1919년 3월 26일 홍면옥(洪冕玉)이 주동한 송산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8일 일본인 순사부장 노구치 고조[野口廣三]가 시위를 주도하던 홍면옥을 체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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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안유순(安有淳)[?~1919]은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발안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5일 향남면(鄕南面) 발안리(發安里) 장날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화성 지역은 3월 하순부터 4월 중순까지 송산면(松山面), 장안(長安)·우정면(雨汀面), 팔탄면(八灘面) 등 전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안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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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제암리사건 당시 순국한 안종엽(安鍾燁)·안종환(安鍾煥)의 부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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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안종락(安鍾樂)[1871~1919]은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발생하자, 안종린(安鍾麟)·안종환(安鍾煥)·안정옥(安政玉)·안종엽(安鍾燁)·안종후(安鍾厚)·안진순(安珍淳)·안필순(安弼淳) 등과 함께 3월 25일 향남면 발안리에서 봉화를 올리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4월 5일 향남면 발안리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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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제암리사건 당시 순국한 안무순(安武淳)의 부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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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제암리사건 당시 순국한 안정옥(安政玉)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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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제암리사건 당시 순국한 안정옥(安政玉)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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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안종후(安鍾厚)[1889~1919]는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옛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에서 태어났다. 기독교인으로, 제암리교회 권사이다. 1911년 제암리교회 설립에 기여하였으며 홍원식과 구국동지회를 조직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19년 3월 25일 안종린(安鍾麟)·안종환(安鍾煥)·안정옥(安政玉)·안종락(安鍾樂)·안종엽(安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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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제암리사건의 진상을 전한 전동례의 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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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제암리사건 당시 순국한 안종락(安鍾樂)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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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양순서(梁順西)[?~1919]는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장안리 출신이다. 1919년 4월 3일 일어난 장안면(長安面)·우정면(雨汀面)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시작되었다. 양순서 또한 2천여 명의 군중 가운데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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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여대현(呂大鉉)[1918~1991]은 1918년 4월 4일 태어났다. 1941년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재학 당시, 일본에서 항일 비밀결사 효민회(曉民會)를 이끌고 활동하던 최홍준(崔弘俊)과 만나게 되었다. 최홍준은 여대현에게 일본에서의 민족 차별의 실상에 대해 전해들었고, 식민통치의 부당성에 항거하기로 결심하였다. 여대현과 최홍준은 독립을 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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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오광득(吳光得)[1879~1947]은 1897년 12월 23일 경성부(京城府)[현 서울특별시]에서 출생하여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에 거주하였다. '광득'이라는 이름 이외에 '경운(京雲)', '경원(景源)'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3월 28일 오후 2시경 송산면사무소 뒷산과 그 부근에서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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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개항기 의병. 오병훈(吳炳訓)[1884~1910]은 1884년 3월 13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현 화성시 향남읍] 행정리이다. 1908년 6월 1일 박영진(朴永眞)과 함께 경기도 수원군 안중면[현 평택시 안중읍] 안중리 출신인 정헌진(鄭憲鎭)으로 부터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6월 10일 수원군 매곡면(梅谷面)의 조병철(曺秉喆)에게도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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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왕광연(王光演)[1872~1951]은 1872년 10월 26일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523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왕국신(王國臣)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3월 26일 오후 5시 경 홍면옥(洪冕玉)·홍명선(洪明善)·홍복룡(洪福龍)·김교창(金敎昌)·김용준(金容俊) 등과 함께 송산면사무소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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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활동한 개항기 의병장.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에서 의병을 일으킨 우용안(禹龍安)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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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화성 지역에서 활동한 개항기 의병. 유성구(劉成九)[1881~?]는 1907년 11월 30일 경기도 수원군 향남읍 발안장(發安場)[현 화성시 향남읍 발안리]에서 홍순래(洪順來)의 권유에 따라 진희서(陳希西)·김선여(金先汝) 등과 함께 궐기하였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을사늑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였다. 1907년에는 헤이그 특사 사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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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수산(柳秀山)[1891~1951]은 1891년 11월 20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사곡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사곡리] 442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과 우정면에서는 차희식(車喜植)·차병혁(車炳赫)·차병한(車炳漢)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유수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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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개항기 의병장. 유현서(柳鉉西)[1882~1909]는 1882년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현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에서 태어났다. 유순만(柳順萬)으로도 불렸다. 1907년 음력 8월 김형직(金衡直) 의진에 가담하였다. 동료 의병 7~80여 명과 함께 총기를 들고 1907년 음력 10월까지 충청북도 보은·연풍·문의 등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4월 의병 1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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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휴전 성립까지 경기도 화성 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난 남한과 북한의 전쟁. 1945년 8월 15일 한국인들은 해방을 맞이하였지만, 한반도에는 38선을 경계로 체제를 달리하는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좌우합작 등 통일된 민족 국가를 수립하려는 노력이 있었으나, 1947년 이후 미·소 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실패로 끝났다.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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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병소(尹秉召)[1887~1919]는 1887년 10월 12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안석리 184번지이다. 윤병소(尹秉昭)라고도 불렸다. 1919년 3월 30일 일어난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 윤병소는 당시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 능곡리 182번지에 거주하였고, 1919년 3월 29일 이봉구(李鳳求)로부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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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영배(尹永配)[1905~1966]는 1905년 1월 7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사곡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사곡리] 771번지이다. 1934년 만주로 망명하여중국 길림성 집안현에서 조선혁명당에 가입하여 정무원 비서 및 비서과장에 선임되어 군자금 3,000원을 모집하였다. 1936년 10월 경 노동자·농민과 지식인들의 세력 규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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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윤영선(尹永善)[1895~1967]은 1895년 3월 16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석포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석포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사무소에 가서 독립만세를 불렀고, 장안면사무소 부근의 쌍봉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우정면사무소로 이동하여 건물을 부수고 서류를 불태웠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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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화성 지역 일대에서 일제의 만행에 맞서 전개한 무력 항쟁.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 침략을 본격화하였다. 한국인의 자립권과 생존권이 위협에 놓인 상황에서, 한국인들은 자발적으로 무장하여 외세를 쫒고 나라의 자립성을 되찾고자 하였다. 한말 영국 기자 매캔지[Frederic Arthur Mckenzie]는 『자유를 위한 투쟁[The Fight For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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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이경백(李敬伯)[?~1919]은 1919년 4월 3일에 일어난 우정면(雨汀面)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시작되었다. 시위 군중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고, 우정면사무소의 집기 및 문서를 파괴하였다. 이어 시위대는 화수리(花樹里) 경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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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서 일어난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이경집(李敬集)[1883~1943]은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530번지에서 태어났다. 이정집(李正執)으로도 불렸다. 1919년 3월 28일 송산면사무소 앞에서 홍면옥(洪冕玉) 등이 주동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여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순사 가와바타 도요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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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규선(李奎善)[1885~1941]은 1885년 5월 5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중송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중송리] 365번지이다. 이귀선(李貴善)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3월 28일 홍면옥(洪冕玉)·홍효선(洪孝善)·예종구(芮鍾九) 등과 함께 송산면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3월 28일은 송산면 사강리(沙江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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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3·1운동을 주동한 독립운동가. 이봉구(李鳳九)[1897~?]는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수촌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 735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에서 다수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장안면사무소와 우정면사무소 부근에서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으며, 오후 3시 경 우정면사무소에 가서 몽둥이로 면사무소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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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이순모(李順模)[1893~1975]는 1893년 2월 25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수촌리[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 69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이봉구(李鳳九)와 함께 몽둥이로 장안면사무소 현관 입구 유리창을 때려 부수고 면사무소의 집기를 가지고 나와 불태웠다. 우정면사무소를 습격하고 군중 2,000여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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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 이영쇠(李永釗)[1901~?]는 1901년 3월 4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석포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석포리] 100번지이다. 1919년 4월 3일 솔선하여 2,000여 명의 군중들과 함께 장안면사무소를 향하여 돌을 던지고 몽둥이로 면사무소의 문을 파괴하였다. 또한 우정면사무소로 몰려가 군중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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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이윤식(李潤植)[1879~1955]은 1879년 3월 3일 경기도 수원군 수원면 남창리에서 태어나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607번지에 거주하였다. 이석춘(李惜春)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3월 28일 홍면옥(洪冕玉) 등의 주도로 송산면사무소 부근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이를 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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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발안 장터에서 일어난 3·1운동을 주도한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 이정근(李正根)[1856~1919]은 1856년 2월 10일 경기도 수원군 팔탄면 가재리[현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가재리] 350번지에서 이연규의 2남으로 태어났다. 33세 되던 해인 1905년 대한제국 궁내부에서 근무하였으나,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청년들을 가르치고 독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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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慶州). 부친 이명현(李明賢)과 모친 홍미시다(洪美是多)의 장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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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철림(李喆林)[1901~1959]은 1901년 1월 28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팔탄면 덕우리[현 화성시 팔탄면 덕천리]이다. 1919년 4월 7일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화계리 앞 산에서 약 300명이 독립만세를 외치고, 이어 도산리 응봉산으로 이동하여 만세를 불렀다. 4월 8일 밤, 도산리 면사무소에 군중이 모여 면사무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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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부터 1994년까지 경기도 화성·수원 지역과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이춘재가 저지른 14건의 살인 사건. 이춘재연쇄살인사건은 1986년부터 1994년까지 이춘재가 경기도 화성군[지금의 경기도 화성시]과 수원시, 충청북도 청주시 일대에서 저지른 살인 사건이다. 2019년 9월 18일 범인 이춘재가 특정되기 전까지는 화성연쇄살인사건으로 불렸다. 1986년 9월 15일부터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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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이학서(李鶴西)[1882~1932]는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수촌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 1050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기 위하여 장안면사무소로 갔으나, 군중들이 쌍봉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그들을 따라갔다. 쌍봉산에서 독립만세를 부른 뒤 우정면사무소로 가서 면사무소를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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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인세봉(印世鳳)[1892~1965]은 1892년 8월 3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금의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금의리]에서 태어났다. 인시봉(印時鳳)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3월 29일 충청남도 천안군 천안시장의 장날, 이문현(李文鉉)·허병(許炳)·최오득(崔五得) 등과 함께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벌였다. 3월 29일 오후 2시 경 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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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인수만(印壽萬)[1895~1945]은 1895년 5월 5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석포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석포리] 417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사무소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난 것을 알고 운동에 참여하기 위하여 갔으나, 면사무소는 이미 불타고 있었다. 다수의 사람들이 쌍봉산으로 올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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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임팔룡(林八龍)[1888~1921)은 1888년 12월 2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647번지이며, 이명은 임용보(林龍甫)이다. 1919년 3월 26일 송산면사무소 부근에서 태극기를 게양하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틀 뒤인 3월 28일에도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송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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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장소진(張韶鎭)[1886~1924]은 1886년 9월 26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석포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석포리]에서 태어났다. 장봉래(張鳳來)라고도 불렸다. 장소진은 1919년 4월 3일 차희식(車喜植)·장제덕(張濟悳)과 함께 이영쇠(李永釗) 등에게 ‘오늘 조선의 독립을 목적으로 독립만세를 외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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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장제덕(張濟德)[1882~1937]은 1882년 4월 8일 경기도 수원군 양감면 정문리[현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정문리]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 주곡리[현 경기도 화성시 우정면 주곡리] 53번지이며, 장순명(張順命), 혹은 장순명(張順明)으로도 불렸다. 1919년 4월 3일 차희식(車喜植),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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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주문(張柱文)[1906~?]은 1906년 1월 13일 경기도 수원군 양감면 용소리[현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용소리] 579번지에서 태어났다. 조선청년동맹은 조직 원칙에 의하여 군마다 단일의 청년동맹을 두기로 하였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1929년 6월 9일 오산청년동맹 임시총회에서 조직체를 변경하기로 하고 수원청년동맹으로 개칭하였다. 장주문은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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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희순(張喜順)[1921~2009]은 1921년 8월 7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 조암리[현 경기도 화성시 우정면 조암리] 270번지이다. 장문웅(張文雄)으로도 불렸다. 1939년 인천상업학교를 중심으로 오륜조(五倫組)를 조직하여 창씨개명에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오륜조'라는 명칭은 삼강오륜의 덕목처럼 나라에 충성하자는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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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서 일어난 3·1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전도선(全道善)[1892~?]은 1892년 12월 4일 태어났다. 전도산(田道山)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3월 26일 홍면옥(洪冕玉)이 주동한 송산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3월 28일에는 시위를 주도하던 홍면옥이 일제 경찰에 제압당하는 중 순사부장 노구치 고조[野口廣三]가 쏜 총에 어깨를 맞는 일이 발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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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정군필(鄭君弼)[1883~1973]은 1883년 12월 25일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686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6일부터 3월 28일까지 송산면 일대에서는 대규모의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정군필은 1919년 3월 28일 오후 2시 경 홍면옥(洪冕玉)·왕광연(王光演)·홍복용(洪福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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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정서송(鄭庶松)[1897~1966]은 1897년 1월 3일에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사랑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사랑리] 175번지이다. 정서성(鄭瑞聖), 혹은 정서성(鄭瑞成)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과 우정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군중이 화수리 경찰관주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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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정순영(鄭淳榮)[1868~1944]은 1868년 2월 2일 태어났다. 거주지는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수촌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 681번지이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 석포리의 구장직에 있으면서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조암 장터에 모인 2,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였고, 장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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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15일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일어난 일제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 1919년 4월 15일 일본군 79연대 소속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중위와 11명의 보병 및 경관이 함께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의 마을 주민들을 기독교회당에 소집하여 총을 쏘았고, 교회당과 마을에 불을 질렀다. 제암리사건은 기독교 선교사와 미국·영국 총영사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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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조경칠(趙敬七)[1873~1919]은 1873년 11월 1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현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 323번지이다. 조경칠은 1919년 3월 25일 향남면 발안리에서 봉화를 올리고 독립만세를 외쳤으며, 4월 5일 향남면 발안 장날에는 천여 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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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문기(趙文紀)[1927~2008]는 1927년 5월 19일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야목리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 매송보통학교를 다녔으나, 학비를 내기 어려워 용인군 양지면에 있는 외가에서 살았다. 1942년 10월, 일본 도쿄[東京] 근교에 있는 일본강관주식회사(日本鋼管株式會社)의 훈련공으로 입소하였으나, 그곳에서 민족적 차별과 모욕, 학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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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춘성(趙春成)[1910~1968]은 1910년 3월 15일 경기도 수원군 안룡면 오목천리[1949년~1962년간 경기도 화성군 안룡면 오목천리] 524번지에서 태어났다. 17세에 도기 제조 직공으로 강원도(江原道) 원주군(原州郡) 귀래면(貴來面) 운계리(雲溪里)로 이주하여 일을 하게 되었다. 1944년 12월 하순 경성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열차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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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활동한 개항기 의병. 진희서(陳希西)[1883~?]는 1883년에 태어났다. 1907년 7월 24일, 일제는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삼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다. 7월 31일에는 군대해산 조칙을 순종을 통해 내렸는데, 나라의 무장력이 해체된 상황에서 대한제국 군인들은 항일 의병투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진희서는 1907년 음력 11월 30일 유성구(劉成九)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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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차경현(車敬炫)[1882~1939]은 1882년 5월 15일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679번지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차만택(車萬澤)이다. 1919년 3월 26일 홍면옥(洪冕玉) 등이 주도한 송산면사무소 부근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틀 뒤인 1919년 3월 28일 송산면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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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차병한(車炳漢)[1885~1933]은 1885년 11월 12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석포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석포리] 522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이후 전국적인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석포리의 구장으로서 차희식(車喜植)·차병혁(車炳赫)과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19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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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차병혁(車炳赫)[1889~1967]은 1889년 12월 11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석포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석포리] 537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이후 전국적인 만세시위운동이 확산되자, 차희식(車喜植)·차병한(車炳漢)과 함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1919년 4월 2일 장안면과 우정면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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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차인범(車仁範)[1901~1922]은 1901년 2월 7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수촌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 694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이순모(李順模)·이영쇠(李永釗)·김흥삼(金興三) 등과 장안면사무소와 우정면사무소를 파괴하였다. 또한 화수리 경찰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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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차희식(車喜植)[1884~1938]은 1884년 12월 17일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 주곡리[현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주곡리] 81번지에서 태어났으며, 차봉습(車鳳習), 혹은 차봉습(車奉習)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3월 1일 이후 전국적으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차희식은 석포리의 구장이었던 차병한(車炳漢), 차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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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동탄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만성(崔萬成)[1877~1930]은 1877년 2월 14일 경기도 수원군 동탄면 영천리[현 경기도 화성시 동탄동] 49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1일 동탄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고, 3월 29일 경기도 수원군 성호면 오산리[현 경기도 오산시]에 있는 오산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도 참여하였다. 3월 29일은 장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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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최장섭(崔長燮)[1892~1970]은 1892년 12월 5일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 화수리[현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화수리] 103번지에서 태어났다. 최장관(崔長官)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4월 3일 화수리 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하여 투석전을 벌였고 일본 순사 가와바타 도요타로[川端豊太郞]를 처단하였다. 이 사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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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화성독립운동아카이브에는 음덕[마도] 출신이라고 되어 있으나, 판결문에는 안성시 원곡면 거주라고만 언급되어 화성과의 연관성이 명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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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최춘보(崔春甫)[1867~1936]는 1867년 12월 10일 충청남도 음죽군[현 경기도 이천시]에서 태어났다. 거주지는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648번지이다. 1919년 3월 26일 홍면옥(洪冕玉)·왕광연(王光演)·홍명선(洪明善) 등과 함께 송산면사무소 부근에서 태극기를 게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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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태장공립보통학교에서 간행한 경기도 수원군 태장면 향토지. 『태장향토사』는 1932년 태장공립보통학교에서 간행한 향토지이다. 태장면은 1914년 장주면과 태촌면을 합병하면서 만들어졌고, 1920년에는 망포, 기산, 진안, 병점, 릉(陵), 반월, 신(莘), 영통, 매탄, 원천, 지(池), 인계, 권선 등 13개 마을로 개편하였다. 지금의 경기도 수원시 일부와 화성시 병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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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우정읍에 있던 쿠니사격장을 폐쇄하고 매향리평화생태공원을 설립하기 위해 노력한 매향리 주민들의 투쟁. 매향리(梅香里). 한반도 중서부 경기도 서남해안에 자리한 서해안의 작은 농어촌 마을이다. 화성시 우정읍 관할 행정 구역이며, 서남쪽으로 아산만에 접하고 있고, 북쪽으로는 남양만과 접하고 있다. 매향리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농지를 일궈 쌀을 생산하였고, 염전을 조성하여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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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3일 만세 시위꾼들이 대열을 정비하기 위해 모인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에 있는 광장 터.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경기도 화성 우정·장안 지역에서도 만세 시위가 거세게 일어났다. 4월 3일, 주곡리와 석포리, 그리고 수촌리 주민 약 200여 명 정도가 1차 목표지인 어은리 장안면사무소로 향하였다. 시위대는 장안면사무소 건물과 집기류를 파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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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할아버지는 홍승하(洪承河), 아버지는 홍형준(洪亨俊), 어머니는 김애서덕(金愛西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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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개항기 의병. 홍건(洪建)[1838~?]은 1838년에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이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이 공포되자, 안창식(安昌植) 등은 이를 반역행위로 보고 일제와 개화파 관리를 처단하기 위하여 의병을 모아 봉기하였다. 안창식 등은 1896년월 1월 2일 지방 유생들과 함께 180명의 민병을 이끌고 홍주 관아에 집결하였다. 18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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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홍관후(洪寬厚)[1890~1971]는 1890년 11월 5일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삼존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삼존리] 235번지에서 홍근(洪瑾)의 3남으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28일 송산면사무소 뒷산과 그 부근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홍문선(洪文善)·홍남후(洪南厚)·홍승한(洪承漢) 등 1,00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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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홍익생(洪益生)의 15세손, 묵재(黙齋) 홍언필(洪彦弼)의 12세손, 인재(忍齋) 홍섬(洪暹)의 11세손이며, 아버지는 홍근(洪瑾)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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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서신면·마도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홍대우(洪大宇)[1847~1919]는 1847년 6월 2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서신면[현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 400번지이다. 1919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송산면·서신면·마도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1919년 3월 28일 송산면 만세시위를 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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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 운동가. 홍덕유(洪悳裕)[1887~1947]는 1887년 3월 6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서신면 전곡리[현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 55번지이다. 이명으로는 홍덕유(洪德裕)·홍덕우(洪悳祐)·소죽(笑竹)·소죽(蘇竹)이 있다. 홍덕유는 1916년 시베리아와 만주지역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하다가 1919년에 귀국하였다. 19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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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자. 홍면옥(洪冕玉)[1884~?]은 1884년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511번지에서 출생하였다. 홍면(洪冕)이라고도 불렸다. 1914년 9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횡령죄로 징역 8월을 선고받았고, 1917년 12월에는 인천지청에서 도박죄로 태형 30도에 처해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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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아버지는 홍우석, 어머니는 박일원, 홍문선(洪文善)은 이복형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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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아버지는 홍우석, 어머니는 서대현이고, 홍명선(洪明善)은 이복형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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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홍복용(洪福龍)[1903~1965]은 1903년 5월 10일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543번지에서 출생하였다. 김봉룡(金奉龍)으로도 불렸다. 1919년 3월 26일 홍면옥(洪冕玉)이 주도하여 일어난 송산면사무소 부근의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홍복용은 조선 독립과 국권 회복을 위한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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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사묵(洪思黙)[1924~1943]은 1924년 8월 20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팔탄면 하저리[현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하저리] 872번지이다. 1930년 3월 하저리에 있는 한문서당에 들어가, 6개월 간 천자문을 배웠고, 1932년 4월에는 팔탄공립보통학교[현 팔탄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938년 보통학교 졸업과 동시에 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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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사철(洪思哲)[1880~1941]은 1880년 3월 26일 태어났으며,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동탄면 중리[현 경기도 화성시 동탄4동] 66번지이다. 1919년 3월 21일 경 동탄면과 3월 29일 성호면 오산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 후 체포되어 1919년 4월 11일 용인헌병분대에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1941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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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홍순진(洪淳晋)[?~1919]은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현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5일 안상용(安相容)·안봉순(安鳳淳)·김덕용(金德用)·강태성(姜太成) 등과 함께 향남면 발안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일으켰다. 홍순진은 천여 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앞세우고 장터를 향하여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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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홍승한(洪承漢)[1894~1928]은 1894년 3월 8일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544번지에서 태어났다. 홍성한(洪聖漢), 홍성택으로도 불렸다. 1919년 3월 28일 오후 2시 경 송산면사무소 뒷산과 그 부근에서 홍남후(洪南厚)·홍문선(洪文善)·홍관후(洪寬厚)·문상익(文相翊)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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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기독교계 지도자. 부친은 구한말 개화파 관료 홍정후(洪正厚)이다. 모친은 한메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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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홍우선(洪宇善)[1866~1919]은 1866년 5월 5일 출생하였고,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543번지이다. 1919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송산면 사강리 일대에는 홍면옥(洪冕玉)·왕광연(王光演)·문상익(文相翊)·홍명선(洪明善)·김교창(金敎昌) 등이 주도한 만세시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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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홍원식(洪元植)[1877~1919]은 1877년 10월 13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현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이다. 홍원식은 군인으로서 1907년 군대해산에 반대하여 일본군과 대결하다가 부상을 당하여 귀향하였다. 이후 제암리에서 김성열(金聖烈)·안종후(安鍾厚) 등과 함께 구국동지회(救國同志會)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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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제암리사건 당시 순국한 홍원식(洪元植)의 아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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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군 대부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홍원표(洪元杓)[1875~1962]는 1875년 9월 29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음덕면 신남리[현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신남리]이다. 1919년 3월 31일 경기도 부천군 대부면의 영전(營田)이라는 사적장(射的場)에서 김윤규(金允圭)·노병상(盧秉相)과 만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그날 밤 11시 경기도 부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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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이버지는 홍태원(洪泰元)이며, 홍면옥(洪冕玉)이 친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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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홍태근(洪泰根)[1860~1935]은 1860년 7월 1일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498번지에서 태어났다. 홍태건(洪泰建)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송산면 일대에서는 대규모의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독립선언서의 취지에 동감한 홍면옥(洪冕玉)은 만세시위를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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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현주(洪顯周)[1883~1945]는 경기도 수원군 서신면 송교리[현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송교리] 출신이다. 1913년 풍기에서 조직된 광복단(光復團)과 1915년 대구에서 조직된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回復團)이 연합하여 조직된 대한광복회에 1916년에 가입하였다. 홍현주는 충청도 지방 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수행하였다. 19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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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홍효선(洪孝善)[1879~1919]은 1879년 9월 9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582번지이다. 홍효선은 홍면옥(洪冕玉)과 함께 1919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송산면사무소 부근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26일 오후 5시 경 송산면사무소에 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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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15일 일제에 의해 민간인이 집단으로 희생된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에 있는 학살지.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은 1919년 3·1운동 당시 제암리사건이 발생한 현장이다. 1919년 4월 15일, 일본군 중위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는 부하들과 함께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의 15세 이상 남자 주민을 마을 앞 교회당에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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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1919년 일어난 3·1운동과 일제의 제암리·고주리 민간인 학살 사건. 1919년 3월 1일의 만세 운동은 들불처럼 전국으로 퍼져 갔다. 그중에는 평화적인 시위도 있었지만, 조직적이고 격렬하게 진행된 시위도 있었다. 화성 지역에서 일어난 3·1운동은 전국에서 몇 안 되는 대표적인 공세적 만세 시위 운동으로, 3·1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례이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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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에 묘소가 있는 독립운동가. 부친은 황윤조이며 자작 및 소작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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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황칠성(黃七星)[1894~?]은 1894년에 태어났다. 황칠성(黃七成)으로도 불렸다. 1919년 3월 28일 홍면옥(洪冕玉)이 주동한 송산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송산면 사강리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6일 부터 시작되었는데, 황칠성은 이태순(李泰順)의 권유를 받고 3월 28일 독립만세운동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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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대한적십자회에서 간행한 3·1운동 영문 화보집. 『The Korean Independent Movement』는 상하이 임시 정부에서 조직한 대한적십자회가 3·1운동 때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1920년 간행하였다. 식민지 조선에는 한국 적십자회를 흡수한 일본 적십자회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적십자회는 1919년 4월 15일 경기도 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