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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2월 7일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5·10총선거를 반대하여 발생한 구국투쟁. 모스크바 삼상회의 이후 우익들은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격렬하게 전개하였다. 이승만은 가능한 지역만이라도 총선을 실시하여 정부를 수립하자는 입장을 내세우며, 미국에서 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를 앞둔 시기였으므로 우익진영에서는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였다. 이에 좌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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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촌 출신인 노광두의 문집. 노광두(盧光斗)[1772~1859]의 자는 청지(淸之), 호는 감모재(感慕齋)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촌 출신이다. 아버지는 호조참판으로 추증된 노석규(盧錫奎), 어머니는 밀양박씨 박내오(朴來吾)[1713~1785]의 딸이다. 신성진(愼性眞)의 문인으로 1814년(순조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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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에 간행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정재기의 문집. 정재기(鄭在箕)[1811~1879]의 자는 오이(五而), 호는 개은(介隱)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헌릉참봉을 지낸 정환보(鄭煥輔)이다. 어머니는 청송심씨(靑松沈氏)로, 심능간(沈能簡)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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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중 1951년 2월 7일 지리산 공비 토벌을 위해 민간인 마을을 불태워 빨치산 보급처를 소개한 작전. 견벽청야란 중국 한나라 하승천이 그의 저서 『안변론(安邊論)』에서 변방을 방어하기 위해 ‘집단 주민 소개책(疏開策)’으로 언급한 것에서 유래한다. 이후 중국의 백승희 장군이 항일 전투에서 견벽청야 전법을 모방하여 게릴라지구의 모든 산림과 산간마을을 불살라 없앰으로써 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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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의 유학자 이육의 시문집. 이육(李㻙)[1827~1898]의 자는 진화(振和), 호는 곡은(谷隱)이다.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아버지는 부호군 이성일(李成一)이다. 어머니는 풍천노씨(豊川盧氏) 노광석(盧光碩)의 딸이다. 이육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 용전(龍田) 송내희(宋來熙)에게 수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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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에 세거한 광산김씨 집안의 유문을 모아 간행한 단행본. 김기율(金箕律)[1829~1892], 김재경(金在景)[1882~1935], 김정현(金定鉉) 등이다. 1981년에 김귀현(金貴鉉)이 선조의 유문을 모아 간행하였다. 『광산세고(光山世稿)』는 총 5권 1책의 석판본이다. 반곽은 16.0×20.0㎝이다. 사주쌍변이고, 행마다 경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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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서 개항기까지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노광무의 시문집. 노광무(盧光懋)[1808~1893]의 자는 순가(舜嘉), 호는 구암(懼菴)·송파(松坡)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노광리(盧光履)의 문인으로, 1828년(순조 28)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였다. 아버지가 병에 들자 치료하기 위하여 낙향하여서 구암서당(懼庵書堂)을 짓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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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에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국민보도연맹 함양군지부와 관련해 발생한 학살 사건. 남·북 분단 과정에서 좌우 이념 갈등은 1948년 단독정부 수립 이후에 더욱 악화되었다. 특히 좌익사상을 가졌거나 활동 경험이 있었던 자들에 대한 탄압이 매우 거셌다. 1949년 4월 20일 이승만 정권은 해방 후 남한 내에서 활동하였던 남로당 계열의 좌익분자나 좌익 계열 활동 경험자들을 적극 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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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출신 의병. 권석도(權錫燾)[1880~1946]는 1880년 9월 9일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에서 출생하였다. 이명으로 권명구(權命九), 윤일이(尹一二) 등을 사용하였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외아들 권영수(權寧洙), 손자 권오영(權五永)을 두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분노하여 김동신(金東臣)[1871~1933] 의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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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에서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김시한의 문집. 김시한(金時瀚)의 자는 태진(泰珍), 호는 수보(修甫)·규봉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아버지는 김영현(金瑛賢), 어머니는 광주김씨 김홍진(金洪震)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당시 문헌동(文獻洞)]에 거주하였다. 하겸진(河謙鎭)[1870~1946]에게 수학하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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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가을에 간행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강수형의 문집. 강수형(姜壽馨)[1862~1890]의 자는 백윤(伯潤), 호는 귤암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아버지는 무산(武山) 강용하(姜龍夏)[1840~1908]이다. 어머니는 진양하씨로, 하대련(河大連)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文正里)에서 태어났다. 문정리는 문헌공(文憲公) 정여창(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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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2월 10일,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금반리에서 빨치산 부대와 국군·경찰특공대 간에 벌어진 전투. 1951년 12월 무렵 지리산 공비 토벌 작전 가운데 지리산 외각인 법화산 고지에서 국군부대가 빨치산 제4지대[독립 부대]와의 교전으로 수백 명의 빨치산을 몰살시킨 전투가 있었다. 법화산 교전 이후에 함양군 휴천면 휴천지서를 작전본부로 한 토벌 경찰특공대는 총 병력 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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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동호(金東鎬)[1894~1970]는 1894년 3월 18일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남효리에서 출생하였다. 3·1운동 확산에 따라 함양 지역에서는 김병창(金炳昌), 임채상(林采尙), 정순완(鄭淳完), 전재식(全裁植), 조제헌(趙濟憲), 김채호(金采鎬), 최석룡(崔碩龍) 등이 안의읍 장날인 3월 31일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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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의병. 김순오(金順吾)[?~1908]는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 창촌 출신이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으로 군인들이 대거 의병에 참여하여 의병 투쟁이 전국으로 확산될 당시 경상남도 함양군의 지리산 일대에도 여러 의병부대가 항전하고 있었다. 이에 일본은 ‘지리산토벌대’를 편성하여 1908년 3월 5일까지 많은 의병을 해산시켰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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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서 현대까지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활동한 의학자. 김일훈(金一勳)[1909~1992]의 본관은 언양(彦陽)이다. 할아버지 김면섭(金冕燮)과 아버지 김경삼(金慶參)[1872~1952]은 유의(儒醫)로 의업(醫業)에 종사하였다. 김일훈은 7남 2녀 가운데 3남이다. 원래 아명은 운룡(雲龍), 본명은 철진(哲鎭)이었으나 해방 후에 ‘일훈’으로 개명하였다. ‘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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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의병. 김찬언(金贊彦)[?~1908]은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 창촌에서 태어났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으로 해산된 군인들이 대거 의병에 참여하면서 의병 투쟁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경상남도 함양군의 지리산 일대에도 여러 의병부대가 항전하고 있었다. 당시 의병 운동은 지리상의 이점과 함께 지역민이 의병으로 활약하거나 의병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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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한익(金漢益)[1890~1933]은 1890년 9월 13일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연덕리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전국에서 3·1만세운동이 전개되자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장날에 만세운동을 계획하던 가운데 이보다 앞서 3월 28일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주동하던 정순길(鄭淳吉), 윤보현(尹普鉉), 정순귀(鄭淳貴),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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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출신인 난곡 우석일의 문집. 3권 1책 목활자본의 『난곡집(蘭谷集)』 이본(異本)이 있다. 우석일(禹錫一)[1612~1666]의 자는 자행(子行), 호는 난곡(蘭谷), 본관은 단양(丹陽)이다.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인 눌계(訥溪) 우형(禹悙)에게 가학을 전수받고, 17세에 동계(桐溪) 정온(鄭蘊)[1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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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에 있는 남계서원의 사적과 연원 등을 기록한 서원지. 『남계서원지』는 남계서원과 관련한 제반 사항과 향사(鄕祠)[이름난 학자, 충신 등의 공적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집을 세우고 제사지내는 사당]된 인물들의 사실을 간략히 수록하고 있다. 남계서원은 1552년에 건립되었으며, 1566년에 사액(賜額)[왕조 시대 때 임금이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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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손곡리에 있던 근대 사립 보통학교.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손곡리에 교육기관이 없는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 지역 유지 김상○(金尙○), 이교선(李鉸善), 이은수(李殷秀) 등이 1922년 4월경 남일의숙을 설립하였다. 설립한 첫해 입학생 수는 60여 명이었다. 폐교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인근의 유림면 국계리에 1932년 유림공립보통학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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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의 계몽 운동가. 노영만(盧永萬)[1870~1925]은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운경(雲卿), 호는 소당(素堂)이다. 아버지는 지곡초등학교 초대교장인 참봉(參奉) 노정현(盧正鉉)[1852~1922]이다. 노영만은 친구 하석우(河錫禹)[1865-1930], 전재규(全在珪) 등과 함께 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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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출신의 의병장. 노응규(盧應奎)[1861~1907]는 1861년 3월 15일 함양군 안의면 당본리에서 출생하였다. 호는 신암(愼菴), 본관은 광주(光州)이다. 노응규는 어린 시절부터 영남 유림의 권위자로 알려진 성재(省齋) 허전(許傳)[1797~1886]의 문하에서 유학을 공부하였고, 30세 전후에는 면암(勉菴) 최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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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지리산 노장대 일대에서 국군 전투부대와 지리산 빨치산 부대 간에 벌어진 전투. 1951년 지리산 동북자락 노장대 일대는 울창한 산지형 사이로 천연동굴과 망바위·배바위·독바위로 이어지는 기암들을 따라 억새로 엮어 만든 빨치산들의 비밀 아지트[일명 비트]들이 많이 있었다. 비밀 아지트에는 이영애(李英愛) 부대와 이영상(李永祥) 부대 등 2개 대대 수백명이 은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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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설립된 농민 단체. 함양군 각지에서 농민들의 상호 친목, 미신 타파 등 계몽 활동을 위하여 설립되었다. 함양농우회는 농민 계몽 활동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조직은 위원제로 운영되었으며, 창립 당시 회원은 85명이었다. 함양농우회 회원은 임채상(林采尙)·정순용(鄭淳容) 등이 있었다. 활동 강령은 ‘모든 것을 우리의 힘으로 해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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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활동한 유학자 민치홍의 문집. 민치홍(閔致鴻)[1859~1919]의 초명(初名)은 치은(致殷), 자는 운거(雲擧)이다. 호는 농운(農雲)·화강(華岡),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아버지는 송암(松菴) 민동혁(閔東爀), 어머니는 해주정씨이다. 경상도 진주부 진주군 가곡[현재 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가선리]에서 태어났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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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에 경상남도 함양군에 결성된 대동청년단 함양군 지부. 1947년 9월 21일 상해임시정부의 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지청천(池靑天)[1888~1957]이 당시의 모든 청년 운동 단체를 통합하여 대동단결을 이룩한다는 명분으로 대동청년단을 설립하였다. 1947년 9월 서울운동장에서 수만 명의 단원들이 모인 가운데 대동청년단 결성대회를 개최하였다. 대동청년단은 막강한 조직을 갖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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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경상남도 함양군에 만들어진 반공 청년 단체. 이승만 주도의 독립촉성중앙협의회와 김구 중심의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중앙위원회가 해체되면서 1946년 2월 8일 대한독립촉성국민회로 통합되었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함양지부는 1946년 11월 23일 결성되었고, 산하에 대한독립촉성국민회청년단 함양지부를 두었다. 함양군 산하 12개면 1읍에 읍·면 단부를 조직하여 회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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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 결성된 우익 청년 단체. 대한청년단은 1948년 12월 19일 결성되었다. 우익 청년 단체 대표격인 대동청년단을 중심으로 청년조선총동맹(靑年朝鮮總同盟), 국민회청년단(國民會靑年團),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 서북청년회(西北靑年會) 이외 전국에 산재한 각 청년단체를 대동단결한다는 명분 아래 한 곳으로 흡수·통합하여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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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27일부터 28일까지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대황재 일대에서 발생한 민간인 집단 학살 사건. 한국전쟁 중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은 전세를 역전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9월 20일 유엔군의 주력부대가 한강을 넘어 26일 서울을 탈환함으로써 유엔군의 대대적인 반격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에 북한노동당은 9월 중순경 조선인민군 전선사령부에 후퇴 명령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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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서 대표자회의를 개최하고 창당한 아나키즘 성향의 정당. 노동자·농민이 중심 세력이 되어 근로 대중의 최대 복리를 추구하되 경제 운용의 주체로서 중·소 자산층을 활용한 자주계획경제, 민주입헌정치, 민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46년 4월 20일~4월 23일 전국 아나키스트 대표자 대회가 함양군 안의면 용추사에서 개최되었다. 회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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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일제강점기 일제의 식민 지배를 극복하여 민족의 독립을 회복하고자 전개되었던 항일 운동. 일제는 1910년부터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어 조선인의 민족의식과 저항을 막고 조선을 영구적으로 식민 지배하에 두기 위해 무단통치를 하였다. 일제는 조선 지역 전체를 수탈하고 착취하였으며 조선인들은 일제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항쟁하였다. 경상남도 함양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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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45년 해방 전까지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독립을 위해 항일 투쟁을 한 사람. 1895년 을미의병이 일어난 시기부터 1945년 해방 때까지 함양 지역 내에서 의병운동·독립만세운동 등에 참여하여 정부로부터 공훈을 받았던 사람은 총 29명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국가보훈처 공훈록에 의하면, 함양 지역에서 일어난 항일 투쟁은 의병 활동이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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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에 세워진 근대 사립 교육시설. 1909년 9월 청소년들에게 신식교육을 통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계몽하기 위하여 당시 사근면 유지들이 옛 사근역 건물에 설립하였다. 1910년과 1915년 신문 기사에 사립동명학교로 기재된 것으로 볼 때 1910년 경 학교명을 동명의숙에서 사립동명학교로 변경한 것으로 추측된다. 1920년 3월 3일 사립동명학교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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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정희운의 문집. 정희운(鄭熙運)[1678~1745]의 자는 태오(泰吾), 호는 동봉(東峯)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7대손이다. 아버지는 정세정(鄭世楨)이다. 어머니는 남원양씨로, 사재감 참봉 양지영(梁地英)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구라마을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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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2월 한국전쟁 중에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 동호고지를 점령한 빨치산 부대와 국군 토벌대 간에 벌어진 전투. 한국전쟁 전후 지리산에는 대규모의 빨치산[조선인민유격대]들이 조직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특히 1950년 9월 중앙당의 지시에 의해 서부경남 유격대가 함양군 문정리에서 조직되어 경상남도 지역 빨치산의 활동을 총지휘하였다. 동호마을 전투와 관련된 ‘백야전 전투사령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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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9월 2일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일대에서 발생한 마을 약탈 및 민간인 학살 사건. 함양군 마천면 삼정마을은 여순사건 이후 한국전쟁기[1950~1961]까지 지리산 일대를 근거지로 활동하던 빨치산들의 출몰로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한 군대와 경찰의 수색, 색출 작전에 의해 민간인들의 피해가 많았던 지역이다. 이 가운데 ‘마천면 민간인 학살 사건’은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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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서 개항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인 무산 강용하의 문집. 강용하(姜龍夏)[1840~1908]의 자는 덕일(德一), 호는 무산(武山)이다. 본관은 진양이며, 거주지는 경상남도 함양이다. 미산(薇山) 정환주(鄭煥周)[1833~1899]와 종유하며 영향을 많이 받았고, 고산(鼓山) 임헌회(任憲晦)[1811~1876]에게 나아가 수학하였다. 문망(文望)[학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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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출신 의병장. 문태서(文泰瑞)[1880~1913]는 현재 함양군 서상면 장구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남평이고, 고려시대 강성군(江城君) 문익점(文益漸)[1329~1398]의 23세손이다. 아버지는 문병헌(文炳憲), 어머니는 밀양박씨이다. 문태수(文泰洙)로도 불리었다. 본명은 문태현(文泰鉉), 별명은 문태진(文泰珍)·문봉진(文鳳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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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에 복원한 의병장 문태서의 생가. 문태서(文泰瑞)[1880~1913]는 1905년부터 덕유산을 근거지로 항일무장 운동을 했던 인물이다. 본명은 태진(泰鎭)이고, 자(字)는 태수(泰洙)이다. 문태서는 덕유산을 중심으로 경상남도, 전라북도, 충청북도, 경상북도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의병운동을 펼쳤다. 문태서는 혁혁한 활동으로 ‘덕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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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 문하마을에서 1949년에 발생한 여수·순천 반란군 토벌 전투. 1948년에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이 가시화되자, 이에 반대하는 투쟁이 전국으로 전개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48년 발생한 제주 4·3사건과 여수·순천 사건[여순사건] 등이다. 지리산 빨치산과 직접 관계된 1948년 10월 19일의 여순사건은 여수 주둔 국방경비대 제14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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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개평마을에서 태어난 물재 노광리의 문집. 노광리(盧光履)[1775~1856]의 호는 물재(勿齋),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개평마을 송재(松齋) 노숙동(盧叔仝)[1403~1463]의 후손이다. 경서와 사기에 통달하였고, 성리학에 더욱 깊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성학십도」를 모방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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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 간행된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출신 정환주의 문집. 정환주(鄭煥周)[1833~1899]의 자는 명신(命新), 호는 미산(薇山)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개평마을에서 태어났다. 두 동생을 데리고 화림사(花林寺)[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오봉리], 법화사(法華寺)[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 두류산(頭流山)[지금의 지리산], 백무동(白霧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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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 경상남도 함양군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 당시 활동한 의병들처럼 대부분의 자료가 일제 보고서 형식으로만 남아 있어 박노삼의 자세한 행적과 후손 관련 기록은 찾기 어렵다. 박노삼(朴盧三)[1874~1908]은 의병장 문태서(文泰瑞)[1880~1913]의 활약상을 듣고 스스로 의병 활동에 참여한 인물로 전하여진다. 순국 당시 35세라는 기록이 있어 1874년경에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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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창평리에 있는 박손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함양군 지곡면 창평리에 있는 창곡마을 뒤편에 있다. 박손(朴巽)의 자는 경실(景實)이고, 춘당(春塘) 박맹지(朴孟智)의 4대손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으고 군수물자를 조달하였다. 정유재란 때는 진주성 전투에서 왜적이 박손에게 항복하라고 협박하자, 그는 “의를 지켜 죽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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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독립운동가. 방한상(方漢相)은 1900년 8월 23일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572에서 출생하였다. 일본에 유학하고 있을 때 공부보다 조국 광복이 먼저라고 여겨서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을 중퇴하였다. 1923년에 귀국하여 대구청년회 간부로 활동하였다. 1925년에 무정부주의 비밀결사인 진우연맹(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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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유학자 정동의의 문집. 정동의(鄭東義)[1815~1883]의 자는 형지(亨之), 호는 백암(栢菴)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정덕화(鄭德和), 어머니는 신창표씨(新昌表氏)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학림(學林)에서 태어났다. 저포(樗圃) 노광주(盧光柱), 자애(紫崖) 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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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화과원을 기반으로 선농불교(禪農佛敎)를 주창하고 실천한 승려. 용성선사, 용성대종사로도 불리는 백용성의 본관은 수원(水原)이다. 아버지는 백남현(白南賢)이며, 어머니는 밀양손씨이다. 백용성은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 죽림리에서 태어났으며, 출가 전 이름은 백상규(白相奎)이다. 처음 출가하였을 때 법명으로 진종(震鍾), 법호로 용성(龍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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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영원사 출신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백초월(白初月)[1878~1944]의 본명은 백인영(白寅榮), 아명은 백학명(白學明), 족보상에는 백도수(白道洙)이다. 백초월은 출가 승려로서 법호는 초월(初月), 법명(法名)은 동조(東照)이다. 백최승(白最勝)·백의수(白義洙)로 불리기도 하였다. 백초월은 13세에 함양군 마천면에 있는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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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에서 태어난 백초 노형하의 시문집. 노형하(盧亨夏)[1620~1654]의 자는 장경(長卿), 호는 백초(白草)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문효공(文孝公)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이다. 7세 때 부친상을 당하고 어머니의 고향 전라북도 남원으로 이거하였다. 1646년(인조 24)에 진사에 합격하고 1648년(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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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조경덕의 문집. 조경덕(曺敬德)[1556~1643]의 자는 득이(得而), 호는 보계(葆溪)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아버지는 매암(梅菴) 조식(曺湜)[1526~1572]이다. 어머니는 함양박씨(咸陽朴氏)로, 박숙현(朴叔賢)의 딸이다. 경상남도 함양에 거주하였다. 당시 삼고선생(三古先生)으로 불리었다. 사호(思湖) 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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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의 대봉산에서 1945년 3월에 만들어진 항일 결사체. 일제의 전쟁 수행을 방해하고 연합군이 조선에 상륙할 경우 호응하는 등 항일 투쟁을 전개하기 위하여 결사체인 보광당을 설립하였다. 보광당이 설립될 당시 지리산에는 징병과 징용을 피하기 위하여 청년 약 300명이 숨어 있었으며, 청년들 가운데 일명 남도부(南道富)라고 불리던 하준수(河準洙)[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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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유학자 노광리가 편집한 소아과 전문 의서. 노광리(盧光履)[1775~1856]의 호는 물재(勿齋), 본관은 풍천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개평마을 송재(松齋) 노숙동(盧叔仝)[1403~1463]의 후손이다. 경서와 사기에 통달하였고, 성리학에 더욱더 깊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성학십도(聖學十圖)」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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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출신인 전병순의 문집. 전병순(田秉淳)[1816~1890]의 자는 이숙(彛叔), 호는 부계(扶溪)·겸와(謙窩)이다. 본관은 담양(潭陽)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추천(楸川)[지금의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 일대]에서 태어났으며, 전석채(田錫采)의 아들이다. 홍직필(洪直弼)[1776~1852]의 문인으로, 조병덕(趙秉德)·전우(田愚)[18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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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에 세워진 근대 사립 보통학교.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의 유지 박두희, 김의락 외 3명이 신학문을 받아들여 1908년 2월 1일 설립하였으며, 1909년 2월 1일 개교하였다. 마을 유지들에 의해 세워졌다는 기록 이외에 당시 설립 규모, 설립 목적 등에 대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당시 상황을 보면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의 중심지인 자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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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 세워진 근대 사립 보통학교. 1908년 10월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정태균(鄭泰均)이 사립의명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이 되었다. 『함양군사』에 의하면 1910년 양재기, 임종석 등을 중심으로 광풍루(光風樓)에 의명의숙을 설립하였는데 이를 사립의명학교라고 하였다. 의명학교는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인수되어 1912년 4월 4일 안의공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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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세워진 근대 사립 보통학교. 1906년 11월 17일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의 송종문(宋鍾文), 노종한(盧鍾漢), 정순영(鄭淳永) 등이 동산재(東山齋)에 모여 청년들의 신교육을 위한 학교가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고 뜻을 모았다. 당시 참가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일제강점기 관료를 지낸 정순현(鄭淳賢)[1874~1947]도 포함되어 있었다.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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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에 세운 근대 사립 보통학교. 1902년 2월 당시 군수 박정규(朴晶奎)와 노두현(盧斗鉉) 등 유지들이 학생들을 모아 경상도 함양군 북천면 외교동[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교산리]에 있는 함양향교의 흥학재(興學齊)에서 신식교육을 실시하면서 시작되었다. 1908년 3월 군내 유지 노두현, 노주현, 정민현, 박환수, 전재규, 김정환 등이 모여 흥학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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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역에서 한국전쟁 발발 이후 빨치산 토벌을 위해 지리산의 사찰·암자 등을 방화·소개한 작전. 지리산 일대의 함양 지역에는 신라 시대 이후 고려 시대까지 융성했던 불교문화의 영향으로 많은 사찰과 누각, 암자, 불상 등이 세워졌으며 현재에도 일부 남아 전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신라 시대 사찰로 함양군 휴천면의 엄천사 터[현재 법화암(法華庵)]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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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빨치산의 거점과 식량보급 차단을 위해 실시한 군경의 빨치산 토벌작전. 1948년 말부터 여순사건으로 인해 지리산으로 입산한 빨치산들이 함양군의 관공서를 공격하는 등 본격적인 빨치산 활동을 전개했다. 군과 경찰은 빨치산과 직접 전투를 벌이고, 빨치산의 거점과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해 지리산 산간마을 소개 작전을 펼쳤다. 군과 경찰은 작전지역이던 산간마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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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유학자 권명희의 시문집. 권명희(權命熙)[1865~1923]의 자는 공립(公立), 호는 삼외재(三畏齋)·율산(栗山)이다. 본관은 안동이다. 아버지는 권병직(權秉直)이고 어머니는 하동신(河東藎)이다. 함양군 갈천리에서 태어났다. 18세에 송병선(宋秉璿)[1836~1905]을 찾아가 집지(執贄)[제자가 스승을 처음으로 뵐 때 예폐를 가지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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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서 개항기까지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군 정취동 출신 허원식의 시문집. 1915년에 간행된 4권 2책의 『삼원당문집(三元堂文集)』 이본(異本)이 있다. 이 문집의 서문은 심재(深齋) 조긍섭(曺兢燮)[1873~1933]이 지었다. 허원식(許元栻)[1828~1891]의 자는 순필(舜弼), 호는 삼원당(三元堂), 본관은 하양(河陽)이다. 21세에 사미헌(四未軒) 장복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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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에 경상남도 함양군에 서북청년회 회원들이 설립한 우익 청년 단체. 서북청년회는 북한에서 월남한 청년들이 조직한 함북청년회, 평안청년회 등을 대공 투쟁에 효율 높게 활용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서북청년회는 1946년 11월 30일 서울 YMCA강당에서 북한 각 지역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던 대한혁신청년회, 북선(北鮮)청년회, 함북청년회, 황해회 청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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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출신 의병. 서재기(徐再起)[?~1896]는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태어났으며, 서관성(徐寬成)을 이명으로 사용하였다. 안의 장수사 승려 출신이며, 직계 후손은 없다. 1896년 2월 19일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거사를 계획하던 안의 출신 노응규(盧應奎)[1861~1907]와 함께 경상남도 진주에서 의병진에 합류하게 되었다. 노응규 의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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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도천리에 있는 서준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 때 세워진 정려. 서준(徐儁)은 어려서부터 효행이 뛰어났다. 7세 때 어머니가 병 중에 꿩고기가 드시고 싶다 하여 산에 올라 구했으나 구하지 못하였고, 통곡을 하자 꿩이 뜰에 떨어졌다. 그 꿩을 어머니께 요리해 드리자 효험이 있었다고 한다. 13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간 시묘(侍墓)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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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석상룡(石祥龍)[1870~1920]은 해주석씨이며, 중국 명나라 병부상서 석성(石星)[1538~1599]의 13세손이다. 1870년 10월 29일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용견(龍見)이다. 세칭 비호장군으로 불렸다. 1907년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 항쟁이 치열해져 갔다. 석상룡은 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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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에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세동마을에서 발생했던 빨치산과 국군토벌 간의 전투. 한국전쟁 때인 1951년 2월 7일에 지리산 일대 공비 토벌작전을 전개하던 중, 육군 11사단장 최덕신의 명령으로 빨치산 게릴라지구 내에 모든 산림을 비롯해 산간마을을 소개하는 견벽청야작전을 전개하였다. 빨치산의 보급로와 숙식을 차단함으로써 빨치산 세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어떠한 장애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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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에 경상남도 함양군 개평에 거주한 노긍수의 시문집. 노긍수(盧兢壽)[1823~1899]의 자는 시용(時用), 호는 소은(小隱), 본관은 풍천이다. 아버지는 노광직(盧光稷)으로, 효성으로 사헌부 감찰에 증직(贈職)[사망한 자에게 승급되는 품계]하였다. 진주(晉州)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경상남도 함양군 개평(介坪)으로 이주하였다. 1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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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전후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강문필의 문집. 강문필(姜文弼)의 자는 희로(姬老), 호는 송정(松亭)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아버지는 강여중(姜汝仲)다. 생몰연도는 알 수 없다. 다만 노진(盧禛)[1518~1578]과 임훈(林薰)[1500~1584)에게 수학한 것으로 보아 16세기 후반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매암(梅庵) 조식(曺湜), 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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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에 세워진 공립 보통학교. 일제는 조선의 완전한 식민지화를 이루기 위해,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는 사립 학교들을 폐교하고 공립 보통학교를 확대하였다. 그 일환으로 경상남도 함양 지역 학교들도 흡수되었다. 1909년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에 설립된 사립 학교 동명의숙을 폐교하고 1920년 3월 1일에 허가를 받아 4월 1일에 수동공립보통학교로 강제 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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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9월 21일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에서 빨치산 토벌 과정 중 군경에 의해 발생한 민간인 학살 사건. 여순사건 이후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군대와 경찰이 군사작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들이 희생당했다. 함양군 수동면 도북마을의 뒤편 산 너머에 있는 덕갈산[668m]은 한국전쟁 이전부터 빨치산들이 활동하던, 지리산·감악산과 연결되는 주요 통로였다. 이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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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서 1927년에 조직된 신간회의 지회. 신간회(新幹會)는 1927년 2월부터 1931년 전반기까지 이어져 온 비타협적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이 연합하여 설립한 전국 단위의 대규모 민족협동전선 항일운동단체이다. 신간회 함양지회는 1927년 10월 23일, 신간회의 경상남도 20개 시·군 지회 가운데 12번째로 설립되었다. 창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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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교육자이자 장로교 목사. 심문태(沈文泰)[1895~1978]는 1895년 9월 4일, 함양군 안의면 봉산리에서 심춘화(沈春和)와 김태월(金泰月)의 아들로 태어났다. 심문태는 거창교회에서 신학문을 배운 뒤 대구 사립계성학교[지금의 계성중학교·계성고등학교 전신]에 입학하여 근대학문을 공부하였다. 계성학교에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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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에 간행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서상두의 문집. 서상두(徐相斗)[1854~1907]의 자는 순거(舜擧), 호는 심정(心亭)이다. 본관은 대구(大邱)이다. 아버지는 음직(蔭職)으로 감역(監役)을 지낸 서인순(徐璘淳)이다. 어머니는 부안김씨(扶安金氏)로, 김희감(金希鑑)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웅평리에서 태어났으며, 1891년 진사시에 합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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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4월 20일부터 23일까지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해방 후 최초로 전국 아나키스트들의 대표자들이 모여 무정부주의를 결의한 대회. 1920년대 해외 독립운동 진영에는 국가 또는 정부를 지배계급이 국민 또는 민중을 억압하기 위해 만들어낸 권력기구로 이해하는 아나키즘[무정부주의] 사상을 토대로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흐름이 존재하였다. 아나키스트들은 강자에 의해 다수의 민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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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출신 유학자 정문섭의 문집. 정문섭(鄭文燮)[1859~1929]의 자는 주성(周聖), 호는 아석(我石)이다.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아버지는 정수대(鄭秀大)이다. 어머니는 거창신씨(居昌慎氏)로, 신성선(愼性宣)의 딸이다. 친아버지는 정수갑(鄭秀甲), 친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 권계성(權桂成)의 딸이다.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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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 세워진 근대 공립 보통학교. 일제는 조선의 완전한 식민지화를 이루기 위해,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는 사립 학교들을 폐교하고 공립 보통학교를 확대하였다. 그 일환으로 1912년 3월 4일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 세워진 의명의숙이 폐교되고, 안의공립보통학교가 인가받아 4월 4일 4년제 보통학교로 정식로 개교하여 초등 교육을 실시하였다. 학생 수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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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 24일부터 7월 29일까지 한국전쟁 중에 미 24사단 및 국군 공동작전으로 전개된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지역 방어전투. 한국전쟁 발발 후 조선인민군은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점령하고 7월 25일경 육십령 고개를 넘어 함양군으로 진격해 왔다. 서남부 지역으로 진격한 북한군 4사단[사단장 이권무]이 안의와 하동 지역에 도달하자 미 8군 사령관[W.H. 워커 중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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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경상남도 안의군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여서 편찬한 향토지. 안의군은 지금의 함양군 안의면·서하면·서상면과 거창군 마리면·위천면·북상면에 해당한다.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교북리 일대에 읍지가 있었다. 안의군은 본래 신라의 마리현(馬利縣)이었다. 경덕왕 때 이안현(利安縣)으로 고쳐 천령군(天嶺郡)의 속현이 되었다. 조선 태종 때 안음으로 개칭되었다가 영조대에 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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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에 편찬된 『안의읍지』에 수록되어 있는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과 함양군 일부 지역 지도. 읍지 상송령에 따라 경상남도 안의군에서 편찬한 읍지에 수록된 필사본 지도로, 1장 2면의 채색지도이다. 서쪽을 위로 그렸고, 남북으로 길게 배치한 회화식 지도이다. 기존의 「안의현지도」와 달리 입체적이지 않고 평면적으로 대략적인 산계와 수계를 나타낸 지도다. 산계는 흑색, 수계는 연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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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31일에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석천리 안의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1918년 1차대전 종결 이후 미국 대통령 윌슨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와 갑작스러운 고종 황제의 붕어 등을 계기로 조선 민중들이 전국적으로 만세 운동을 일으키게 된다. 3.1만세운동의 영향은 경상남도 함양군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전병창(全炳昌)·임채상(林采尙)·정순완(鄭淳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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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부터 1910년까지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일어난 국권 회복 운동. 일제에 의해 보통학교가 설립되기 전부터 함양 지역에서는 뜻있는 지역 유지들의 노력으로 사립 학원들이 세워져 근대 교육을 진행하였다. 1902년에는 함명학교, 1906년에는 지곡의 함덕학교, 1908년에는 백전 열신학교, 1910년에는 안의의 의명의숙과 수동의 동명의숙 등이 설립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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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에서 현대까지 경상남도 함양에 거주한 여암 정도현의 문집. 정도현(鄭道鉉)[1895~1977]의 자는 경부(敬夫), 호는 여암(厲菴)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며, 함양에서 거주하였다. 정도현이 지은 시문을 정선하여 5책으로 편집하고 보관해 오다가 문하생 박인서(朴仁緖), 배승혁(裵承赫) 등이 시문을 천재지변으로 잃게 되거나 좀이나 쥐로 인하여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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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부터 근대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함양군 지역의 역대 소과 및 대과 합격자 명단. 연계(蓮桂)는 연방(蓮榜)과 계방(桂榜)을 합하여서 일컫는 말이다. 소과인 생원과 진사에 급제한 것을 연방, 대과에 급제한 것을 계방이라고 한다. 연계안은 소과와 대과에 급제한 인물들의 명단을 기록한 것이다. 인물 명단에는 본관, 과거 합격 연대, 관직, 거주지 등을 아울러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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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에 편찬된 『영남읍지』 4책에 수록된 경상남도 함양군 사근역의 지도. 제목은 ‘동치10년10월일 사근도역지여선생안급지도(同治十年十月日 沙斤道驛誌與先生案及地圖)’로 되어 있다. 맨 앞에 「사근역지도(沙斤驛地圖)」와 「사근십오역도(沙斤十五驛圖)」의 지도 2장이 첨부되어 있다. 「사근역지도」는 사근도(沙斤道)의 본역인 사근역을 그린 지도이다. 사근역은 현재의 경상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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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안의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여 1871년에 편찬된 『영남읍지』 8책에 수록된 안의현 향토지. 『영남읍지(嶺南邑誌)』는 전국 읍지 편찬 사업에 의하여 편찬·상송된 경상도의 각 읍지(邑誌)를 합철한 경상도도지(慶尙道道誌)이다. 『영남읍지』 8책의 안의현읍지는 먼저 1장 2면의 안의현 지도가 있고, 내제에 이어 안의현의 옛 이름인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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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여 1871년에 편찬된 『영남읍지』 11책에 수록된 향토지. 『영남읍지(嶺南邑誌)』는 1871년(고종 3) 전국 읍지 편찬 사업에 의하여 편찬·상송된 경상도의 각 읍지를 합철한 경상도도지(慶尙道道誌)이다. 「함양부읍지」는 『영남읍지』 11책에 수록되어 있다. 1871년에는 함양군이었음에도 읍지 제목은 「함양부읍지」로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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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에 편찬된 『영남읍지』에 수록된 경상남도 함양군 지도. 1871년 『영남읍지(嶺南邑誌)』 11책의 「함양부읍지」에 수록된 지도로, 1장 2면의 흑백지도이다. 당시 함양부는 지금의 안의면·서상면·서하면을 제외한 현재의 경상남도 함양군에 걸쳐 있었다. 지도에서는 현재의 남강 본류가 오른쪽 위의 남계(濫溪) 방향에서 흘러 들어와 도현(桃峴) 방향으로 빠져나간다. 읍성 아래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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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오연 김면운의 문집. 김면운(金冕運)[1775~1839]의 자는 천찬(天贊)이고 호는 오연(梧淵)이다. 본관은 의성이다. 덕천서원(德川書院), 임천서원(臨川書院), 정강서원(鼎岡書院), 청곡서원(淸谷書院) 등의 원장을 지냈다. 만년에 용봉리(龍鳳里)에 ‘오연(梧淵)’이라는 집을 지어 우거하였다. 김면운의 종현손 김황(金榥)[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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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경상남도 함양에서 거주한 위고 노근수의 시문집. 노근수(盧近壽)[1845~1912]의 자는 순오(舜午), 호는 위고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일찍이 허전(許傳)[1797~1886]과 유주목(柳疇睦)[1813~1872]을 스승으로 섬겨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닦는 방법을 배웠다. 이건창(李建昌)[1852~1898], 이남규(李南珪)[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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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유학자 허용두의 문집. 허용두(許容斗)[1851~1934]의 자는 군백(君伯), 호는 위암(渭巖), 본관은 하양(河陽)이다.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보산리 정취마을에서 태어났다.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을 지낸 삼원당(三元堂) 허원식(許元栻)[1828~1892]의 아들이다. 19세에 아버지를 따라 가 성재(性齋) 허전(許傳)[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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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독립운동가. 윤영하(尹榮夏)는 1892년 7월 16일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에서 태어나 1969년 12월 8일 사망하였다. 1919년 4월 2일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장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에 앞서 3월 28일 만세운동을 주동한 정순길(鄭淳吉)[1896~1962]·윤보현(尹普鉉)·정순귀(鄭淳貴)·노경식(盧璟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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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3년 4월 5일 경상남도 함양군 석복면 백연리에서 태어났다. 1920년 음력 3월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주남수(朱南守)[1892~?], 오형선(吳亨善)[1875~1944]과 함께 대한민국임시헌법과 『신한별보(新韓別報)』를 극비리에 출판하고 배포하였다. 이후 이들과 함께 동지를 규합하였다. 1920년 음력 4·5월께 경상남도 함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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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도림리에 있는 개항기에 이민복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려. 함양군 안의면 도림리에 있는 관동마을 도로변에 있다. 이민복(李敏馥)은 단종 때 충신인 고은(孤隱) 이지활(智活)의 13대손이며 나졸옹(懶拙翁) 사엽(師燁)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였다. 아버지가 병을 앓으면서 꿩 고기를 먹고 싶어 하여 그가 하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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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송평리 출신 유학자. 이병헌(李炳憲)[1870~1940]의 자는 자명(子明), 호는 추연(秋淵)·진암(眞菴)·백운산인(白雲山人)이다. 본관은 합천(陜川)이다. 이병헌은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에 거주한 청향당(淸香堂) 이원(李源)[1501~1568]의 13세손이고, 10대조인 이전(李銓) 때 함양으로 이거하였다. 면우(俛宇) 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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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의병.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되자, 해산 군인들이 대거 의병에 참여함에 따라 의병 투쟁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경상남도 함양군의 지리산 일대에서도 지리상의 이점과 지역민 협조로 여러 의병부대가 항전하고 있었다. 일본은 지리산토벌대를 편성하여 1908년 3월 5일까지 많은 의병을 해산시켰다. 1907년 후반부터 지리산이 의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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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독립운동가. 이정돌(李正乭)[1907~1981]은 1907년 12월 9일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도촌리에서 태어났다. 1923년에 조직된 경상남도 진주공립농업학교 내 ‘동무사’라는 사회과학 연구 목적의 비밀결사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8년 7월 6일 교장의 불평등한 처사, 일제강점기에 자질을 갖추지 못한 일본인 교사의 한국 민족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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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의 개항기 의병. 이창학(李昌鶴)의 아들은 항일 투쟁 의병으로 활동한 이봉두(李鳳斗)[1884~1908]이다. 이창학은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항촌 출신이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으로 인해 해산 군인들이 대거 의병에 참여하여 무장 항일 투쟁이 전국으로 확산됐다. 경상남도 함양군의 지리산 일대에는 여러 의병부대가 항일 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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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역사. 1910년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국권 피탈 이후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35년 동안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도 일제의 탄압과 수탈이 이루어졌으며, 조선의 정신과 문화가 빠르게 말살되었다. 하지만 경상남도 함양 지역민들은 일본에 저항하고 각종 조직들을 만들어 조선의 정신과 함양을 지켜나갔다. 1914년 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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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1910년부터 1945년 사이에 일어난 농민운동. 일제는 1910년대의 토지조사사업과 1920년대의 산미증식계획을 통해서 조선의 농촌을 일본의 식량 원료 공급지로 재편성하였다. 그 결과 한국의 소작농들은 50~60%의 높은 소작료를 낼 뿐만 아니라 소작 계약도 매년 갱신해야만 하는 불안정한 조건에 놓여 있었다. 자작농도 각종 지세와 수리조합비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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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일제강점기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고 민족운동을 고취시키기 위해 진행한 일련의 운동. 사회운동이 일정한 이념을 갖춘 항구적인 조직운동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것은 산업사회가 성립된 이후부터이다. 산업사회에서 야기된 제반 모순에 저항하여 사회를 개량하거나 사회개조를 도모하려는 근대적 사회운동은 서구에서 19세기 중엽 이후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내재적 모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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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일제강점기 정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사회 교육. 우리나라를 강제 병합한 일제는 전통적인 조선의 교육 제도를 공립화하는 데 매진하였고, 이로 인해 서당 등 향촌 자치적인 교육기관이 모두 철폐되면서 배우고자 하는 학생 수에 비해 학교 수가 턱없이 부족해졌다. 그러나 3·1운동 이후 민족실력양성운동이 전개되면서 전국 각 지역의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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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시기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활동한 안광진의 문집. 안광진(安光鎭)[1860~1935]의 자는 치형(致亨), 호는 임천(瀶川)이다. 본관은 순흥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장항리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는 안택륜(安宅倫), 할아버지는 안극행(安克行), 아버지는 안재삼(安在三)이다. 외할아버지는 하상린(河尙鱗)이다. 사촌형 지산(芝山) 안효진(安孝鎭)과 학문을 연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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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황산리 동호정마을에 있는 장만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扈從)한 장만리(章萬里)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내려진 정려이다. 정식 명칭은 ‘유명조선국 충신 통훈대부 행정릉영 증승정원좌승지 겸경연참찬관 장만리지려(有名朝鮮國忠臣通訓大夫行定陵令贈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章萬里之閭)’이다. 함양군 서하면 육십령로 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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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남도 함양군 지리산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전백현(全伯鉉)[1863~1922]의 본관은 정선이다. 본적은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 논곡리 114[성암길 541-4]이며, 이후 경상남도 진주에서 거주하다가 함양으로 이주하였다. 전백현의 후손이 함양군 함양읍 삼산리 삼휴마을에 살고 있다. 전백현은 1908년 지리산(智異山)[높이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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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봉전마을에 있는 개항기에 전세량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비.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봉전마을의 거연정과 군자정 사이에 있다. 전세량의 호는 일송(一松)이고, 본관은 정선이다. 매학재(梅鶴齋) 윤석(胤錫)의 손자다. 전세량은 일찍이 어머니가 병에 걸리자 단을 세우고 하늘에 빌었더니 그의 효행에 호랑이가 감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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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규환(鄭圭桓)[1900~1921]은 1900년 9월 11일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상백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독립운동 투신을 결심하고, 고재경(高載景), 정재원(鄭在元) 등을 동지로 규합하였다. 해외 독립운동 세력을 지원하기 위하여 독립운동자금 모집 활동을 결의하고 경상남도 함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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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독립운동가. 정순길(鄭淳吉)[1986~1962]은 1896년 9월 26일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된 가운데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는 정순길(鄭淳吉)[1896~1962]을 비롯하여 윤보현(尹普鉉), 정순귀(鄭淳貴), 노경식(盧璟植)이 논의한 끝에 1919년 3월 28일 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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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정영필(鄭永弼)[1888~1908]의 자는 창신(彰信)이고, 본관은 초계이다. 동계(桐溪) 정온(鄭蘊)[1569~1541]의 증조할아버지인 확계(蠖溪) 정옥견(鄭玉堅)의 후손이며, 거창 위천면에서 3.1 만세운동을 주도한 정대필(鄭大弼)[1880~1938]의 둘째 동생이다. 정영필은 1908년에 함양 지역을 거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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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독립운동가. 정재원(鄭在元)[1884~1926]은 1984년 2월 10일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상백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독립운동 투신을 결심하여 온 고재경(高載景)·정규환(鄭圭桓)[1900~1921]과 함께 독립운동자금 모집 활동을 결의하고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내백리에 사는 부호 차우진(車佑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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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의병. 정재호(鄭在鎬)[1863~1944]의 본관은 하동이다. 함양군 수동면에서 산 몽천(夢泉) 정광한(鄭光漢)[1588~1648]의 후손이며, 도곡서원에 제향된 만강재(晩康齋) 정덕하(鄭德河)[1782~1854)의 증손이다. 정재호는 1894년(고종 31) 무과에 급제하였다. 1906년 봄에 민종식(閔宗植)[18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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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문인. 정태현(鄭泰鉉)[1858~1919]의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여칠(汝七), 호는 죽헌(竹軒)이다. 문헌공(文獻公)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현감 정재범(鄭在範), 어머니는 나주임씨(羅州林氏) 임병조(林炳祖)의 딸이다. 백부인 감역(監役) 정재행(鄭在行)에게 입양되었다. 1858년 경상남도 함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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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광복 직후에 조직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경상남도 지부 함양 지역 위원회.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치안, 행정, 교육 등을 맡아 운영할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광복 직후인 1945년 8월 16일 여운형(呂運亨)[1886~1947], 안재홍(安在鴻)[1891~1965] 등 중도우파·온건좌파 인사들이 결집하여 일제강점기 말에 조직된 ‘조선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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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일대에서 1945년 8월 광복 직후에 조직된 군사 조직. 1945년 8월 해방 직후 경상남도 함양 지역 치안 질서 유지 및 행정·자치 활동 등을 전개할 목적으로 조직된 군사 조직이다. 1945년 8월 광복 직후 항일운동을 전개한 사회주의자 하준수(河準洙)[1921~1955]를 중심으로 ‘조선건군준비위원회’가 설립되었으나 1946년 1월 사설 군사 단체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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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간행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서대순의 문집. 서대순(徐玳淳)[1810~1889]의 자는 윤백(允伯), 호는 졸암(拙菴)이다. 본관은 대구(大邱)이다. 아버지는 병조참판에 추증된 서기보(徐麒輔)이다. 어머니는 김녕김씨로, 김세태(金世泰)의 딸이다. 저포(樗圃) 노광주(盧光柱) 등과 교유하였다. 1864년(고종 1)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공부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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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학자 임만희의 문집. 임만희(林晩熙)[1872~1933]의 자는 백여(栢汝), 호는 종와(鍾窩)이다.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아버지는 임수명(林秀明)이다. 어머니는 풍천노씨 송재(松齋) 노숙동(盧叔仝)[1403~1463]의 후손인 노한수(盧漢壽)의 딸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 갈계리[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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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서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이규한의 문집. 이규한(李圭翰)[1866~1927]의 자는 붕거(鵬擧), 호는 죽헌(竹軒)이다. 본관은 월성(月城)이다. 아버지는 이시영(李始榮)이다. 어머니는 풍천노씨(豊川盧氏)로, 노광중(盧光中)의 딸이다. 외가인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서 태어났다.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1846~1919]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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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에 세워진 공립 보통학교. 일제가 식민지화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에서 신식교육을 하던 사립학교들을 강제로 폐교하고 공립학교로 흡수해 식민지 교육 체제로 바꾸었다. 식민지 교육 체제로 바뀌는 과정에서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에 있던 사립함덕학교가 1920년 7월 30일 폐교되고 1921년 7월 28일 조선총독부의 인가를 받아 같은 해 9월 1일 4학급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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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발발 이후 1951년 11월 25일부터 1952년 3월 15일에 걸쳐 지리산과 덕유산 일대에서 벌인 공비 진압 작전. 1948년 10월 19일 여순사건 이후 한국전쟁기까지 지리산·덕유산·소백산·태백산 등 산악지대에는 월북하지 않은 채 남한에 잔류한 공비(共匪)[공산당 유격대]들이 많았다. 공비들의 정식 명칭은 ‘조선인민유격대’ 또는 잔당의 의미인 ‘빨치산’이다. 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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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0월 여순사건 이후부터 한국전쟁 휴전 이후까지 지리산 등 산악 지대에서 활동한 빨치산과 대한민국 군경에 의한 교전 및 토벌 작전. 지리산은 사람 몸에 비유할 때 우리나라 척추에 해당하는 태백산맥이 남쪽으로 뻗어 내려가다, 다시 서남쪽으로 갈라져 간 끝에 자리 잡은 거대한 산악집단이다. 1967년 우리나라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된 지리산은 높이 1,915m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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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에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지리산 일대 진관고지에서 전개된 빨치산과 국군 전투. 한국전쟁 중인 1950년 8월~9월에 낙동강 전투에서 패하고 후퇴하면서 퇴로가 막히자, 지리산으로 대거 입산한 인민군들은 빨치산들과 합류하여 유격활동을 전개하였다. 1950년 10월 함양군 지리산 일대 엄천계곡에서 넘어온 빨치산들은 인민군의 직사포를 무제봉 진관고지에 설치해 놓고 휴천면 목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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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에 있는 청계서원의 사적과 연원 등을 기록한 서원지. 『청계서원지(靑溪書院誌)』는 청계서원과 관련한 제반 사항과 주향자(主享者)[사우(祠宇)나 서원(書院) 등에서 위패를 주벽(主壁)으로 모시어 제향하는 일을 맡은 책임자]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1464~1498]의 연보가 수록되어 있다. 청계서원은 김일손이 공부하던 청계정사가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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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하원순의 문집. 하원순(河元淳)[1858~1924]의 자는 치경(致敬), 호는 청봉(晴峯)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아버지는 하석간(河錫幹)이다. 어머니는 재취부인 풍천노씨(豊川盧氏)로, 노광우(盧光禹)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마을[당시 우동(愚洞)]에서 태어났다. 전라남도 남원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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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부터 현대까지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출신 유학자 권도용의 문집. 권도용(權道溶)[1877~1963]의 자는 호중(浩仲), 호는 추범·오은졸부(吳隱拙夫)·창남학인(滄南學人)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및 산청군 단성면 등지에서 거주하였다.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1846~1919]에게 수학하였다. 『경남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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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유학자 박용근의 문집. 박용근(朴容根)[1857~1915]의 자는 여회(汝晦), 호는 춘사(春史), 본관은 함양이다. 7대조 지지당(止止堂) 박승뢰(朴承賚) 때부터 운봉현(雲峯縣)[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의 통일신라 이래 행정 구역]에 거주하였으며, 현재의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갈포(葛圃) 박문식(朴文植)은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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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도천리 출신 유학자 권정용의 문집. 권정용(權正容)[1874~1899]의 자는 문중(文中), 호는 춘파(春坡)이다. 본관은 안동이다. 할아버지는 권헌진(權憲鎭), 아버지는 권재모(權在模), 어머니는 진산하씨(晉山河氏)이다. 경상도 함양군 우항(愚衖)[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도천리]의 외가에서 태어났다. 추범(秋帆) 권도용(權道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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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평촌리 주곡마을의 풍천노씨 집안 54명이 남긴 유문을 모아 간행한 단행본. 노윤(盧昀) 등 54명이다. 1904년 10월에 후손 노정현(盧正鉉)이 족종형(族從兄)[항렬이 같은 겨레붙이 사이에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 노탁현(盧卓鉉)과 함께 졸존재(拙存齋) 노분(盧昐)[1437~1478] 이하 7세까지의 유문을 수집하고 편차하여 2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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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독립운동가. 하승현(河升鉉)[1895~1919]은 1895년 7월 21일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양이다. 부친은 독립운동가 하재연(河在衍)[1866~1940], 숙부는 하재익(河在翼)[1883~1922]이다. 1919년 4월 2일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장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보다 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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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의 문인. 하재구(河在九)[1832~1911]는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 우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치백(致伯), 호는 위수(渭叟)이다. 고조부는 하한윤(河漢潤), 증조부는 하성원(河聖源), 조부는 하필명(河必明)[1783~1841], 부친은 진사(進士) 하석문(河錫文)이다. 어머니는 동래정씨(東萊鄭氏) 정효맹(鄭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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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독립운동가. 하재연(河在衍)[1866~1940]의 본관은 진양이다. 아들은 독립운동가 하승현(河升鉉)[1895~1919], 동생은 하재익(河在翼)[1883~1922]이다. 1866년 11월 29일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에서 태어났다. 하재연은 1919년 4월 2일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장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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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독립운동가. 하재익(河在翼)[1883~1922]은 1883년 9월 15일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 79번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양이다. 형은 독립운동가 하재연(河在衍)[1866~1940], 조카는 하승현(河升鉉)[1895~1919]이다. 1919년 3월 28일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장날에 만세운동을 주동한 정순길(鄭淳吉)[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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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독립운동가. 하종진(河鍾璡)[1905~1981]은 1905년 7월 18일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독립만세 시위가 일어나자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태극기를 군중에게 나누어 주며 참여하였다. 1922년 10월 대구고등보통학교의 동맹휴업을 주동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다. 19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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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 혁명가 및 정치가. 하준수(河準洙)[1921~1955]는 1921년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에서 대지주 하종택(河鍾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6.25전쟁 때, 사회주의 혁명가 별칭인 ‘남도부(南道部)’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하준수의 본관은 함양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에서 오랫동안 면장을 지낸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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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의 유학자 정재경의 문집. 정재경(鄭在璟)[1881~1959]의 자는 내훈(乃薰), 호는 학강(學岡), 본관은 하동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효리마을에서 태어났다. 고조할아버지 정진망(鄭鎭望)은 도암(陶庵) 이재(李縡)[1680~1746]의 문인이다. 아버지 정환식(鄭煥植)은 호가 일송(一松)이며, 어머니는 죽산박씨 박필희(朴必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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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1945년 해방 이후부터 빨치산 토벌이 마무리될 때까지 일어난 민간인 학살 사건. 함양 지역에서는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50년 한국전쟁을 거쳐, 1954년 빨치산 토벌이 거의 마무리되는 시점까지 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함양군은 남쪽의 지리산과 북쪽의 덕유산 사이에 있어 한국전쟁 이전부터 빨치산의 거점이 되어온 지역이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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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7월 27일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개최된 임시정부 수립촉진을 위한 인민대회. 해방 이후 좌익·우익 갈등이 계속되었고, 이는 함양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47년 3·1절 기념행사에서 좌익과 우익이 충돌했다. 함양읍의 함양시장에서 3·1절 행사를 끝낸 좌익계 군중들이 해산하면서 우익의 국민회와 광복청년회관을 습격하여 파괴한 것이다. 1947년 5월 15일 반탁시위 과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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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연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교토제국대학의 부속 연습림 관리 사무실.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연리 74번지에 있는 목조 건물이다. 함양 구 임업시험장 하동·함양지장은 1917년 일본 교토제국대학 부속연습림을 관리하는 사무실로 건립되었다. 1945년에는 조선임업시험장 남선지장[함양]이 설치되었으며, 1949년에 중앙임업시험장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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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후 빨치산 토벌과정에서 대한민국 국군 제3연대 제3대대, 함양경찰서, 특공대 등이 함양군 민간인들을 집단 학살한 사건. 함양군은 지리적으로 북쪽의 덕유산과 남쪽의 지리산 사이에 있어 한국전쟁 이전부터 빨치산의 활동 거점이 되어 온 지역이다. 1949년 5월 이후부터 1950년 3월까지 지리산을 거점으로 활동해 온 빨치산들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빨치산과 내통·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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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에 있는 최치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신도비. 최치원(崔致遠)[857~?]은 경주최씨의 시조로 문장에 뛰어났고, 진성여왕에게 시무책(時務策) 10여 조(條)를 올려 국정을 바로 잡고자 하였다. 고려 현종 때 내사령(內史令)에 추증되었고 문묘(文廟)에 배향되며 문창후(文昌侯)에 추봉되었다. 9세기 말 신라 진성여왕[재위 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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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에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에서 하준수에 의해 발생한 함양경찰서 습격 사건. 일제 강점기 말기에 학병이나 징병을 거부하고 산으로 숨어들어 간 청년들이 있었다. 함양군에서는 하준수가 지리산에서 징병 및 징용을 거부한 청년들을 모아 무장대인 보광당을 조직했다. 보광당은 무기 매입, 주재소 습격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해방이 되자 무장대에서 활동했던 청년·학생들이 주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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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에 세워진 농업기술 교육을 위한 고등보통학교. 함양공립농업실수학교는 1933년 4월 1일 함양면 교산리에 설립된 함양군 최초의 고등보통학교이다. 함양군 내에 중등교육기관이 없던 시기에 세워진 학교로 새로운 농업기술 교육을 위한 농업전문학교이다. 일제 강점기 농업학교는 보통 5년제였으나 1943년에 제4차 조선교육령을 실시하면서 실업학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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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에 세워진 함양군 최초의 공립 보통학교. 일제는 조선의 완전한 식민지화를 이루기 위해,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는 사립학교들을 폐교하고 공립 보통학교를 확대하였다. 그 일환으로 1911년 5월 6일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에 세워진 사립함명학교를 강제 폐지하고 함양공립보통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 1911년 6월 1일 4년제 보통학교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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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 있는 농민과 농사 활동을 위하여 만들어진 농민 단체. 함양군의 농민들과 농사 활동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함양군농회의 설립 시기는 남겨진 기록이 많지 않아 정확하지 않다. 다만 『동아일보』 1922년 9월 26일자 기사에 함양군농회의 직물조합에 관한 기록이 있어 1922년 이전에 함양군농회가 설립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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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의 역사와 현황을 기록하여 2012년에 발간한 향토지. 함양군의 역사와 문화유산, 정치와 행정, 경제와 산업 등 모든 정보를 망라하여 각 분야의 발전상 및 각종 사료와 문화재 자료를 발굴 수집하는 등 새로운 각도에서 2012년 11월에 함양군에서 발행하였다. 함양군의 역사 자료는 춘수당(春睡堂) 정수민(鄭秀民)[1577~1658]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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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여 1899년에 편찬된 향토지. 19세기 후반에는 지리지를 많이 편찬하였다. 1871년에 편찬된 지리지가 군사 목적이 강조되었다면 1895년에 제작된 지리지는 각지의 재정을 파악할 수 있는 항목들이 강조되어 제작되었다. 특히 1896년 전국의 23부 체제가 13도 체제로 바뀌었는데 이러한 지방제도 개혁 후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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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경에 제작된 『함양군읍지』에 수록되어 있는 경상남도 함양군의 지도. 『함양군읍지(咸陽郡邑誌)』에 수록되어 있다. 1장 2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군내 각 면의 위치 및 산계 등을 간략하게 표시하였다. 본 지도는 북쪽을 위로 그렸고, 동서로 길게 배치한 회화식 지도이다. 지도의 중앙에 읍기(邑基)를 표현하였으며, 백암산(白巖山)·천왕봉(天王峰)·지리산(智異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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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5월 함양향교 명륜당에서 경상남도 함양군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여 간행한 향토지. 순조 31년(1831)에 간행한 『함양군읍지(咸陽郡邑誌)』를 1956년 함양향교 명륜당(明倫堂)에서 중간한 책이다. 122장 1책이다. 크기는 28.4×19.5㎝이며, 상하향흑어미(上下向黑魚尾)이다. 책은 목차(目次), 지도(地圖), 범례(凡例), 위치(位置), 연혁(沿革), 칭호(稱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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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의 역사와 문화를 집대성하여서 1981년에 간행된 향토지. 1981년 함양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하였으며, 최초 간행일로부터 10년 뒤인 1992년에 증보판이 발행되었다. 도판이 포함된 세로 27㎝의 단행본이며, 총 844쪽이다. 한글과 한문 혼용체로 간행되었다. 『함양군지』는 제1장 총론, 제2장 정치행정, 제3장 독립운동과 전란사, 제4장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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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1926년에 설립된 노동단체. 함양노동회는 무산노동자 및 아동을 위한 신사상 운동 전파에 목적을 두고 설립되었다. 함양노동회는 1925년 12월 김종목·김정현·허사현·김주성 등 40여 명의 발기로 창립하였다. 창립총회는 1926년 1월 15일 임시의장 김정현의 사회로 개최되었으나 일본 경찰 당국이 집회를 금지하고 선전문까지 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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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1월 경상남도 함양군에 결성된 민간인 경찰 보조 단체. 민보단은 경찰의 치안유지 지원을 명분으로 경찰의 하부·지원조직으로 활동하였다. 민보단 이전에는 1948년 5.10총선거에 대비하기 위하여 경찰의 협조 기관 성격으로 향보단(鄕保團)을 조직해 선거 때 치안대 역할을 담당하였다. 하지만 선거 당시 부정 행위를 저지르고 선거 이후의 야경 활동에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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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농장 터. 백용성[1864~1940]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가이며, 불교에서는 반농반선(半農半禪)의 선농불교(禪農佛敎)를 주창·실천하였다.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에 산림과 황무지를 개간하여 과수를 심고 화과원(華果院)이라는 농장을 설립하였다. 화과원은 일제 강점기 독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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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1925년에 설립된 종교 단체. 1919년 3.1운동 이후 1920년부터 전국에 걸쳐 여러 청년회가 설립되었다. 함양불교청년회도 이 같은 흐름 속에 1925년 1월에 설립되었다. 1920년대 함양 지역을 비롯하여 한반도 전역에 청년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청년단체가 항일운동 성격이 있다고 판단한 일제는 1920년대 후반 들어와 청년단체 집회를 금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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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2월 7일 경상남도 함양군 일대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 사건.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후 1950년 9월 25일 빨치산 토벌을 목적으로 육군 제11사단(사단장 최덕신 중장)이 창설되고, 9연대장에 오익경 대령, 3대대장에 한동석 소령이 임명되었다. 사단 사령부 및 9연대·13연대·20연대 등은 미 9군단장의 작전 지휘를 받게 되어 있었다. 1950년 11월 29일 남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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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소년·소녀운동의 단일화를 위하여 설립된 단체. 함양 지역 소년·소녀운동 단일화를 위하여 기존에 함양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삼우회와 어린이회 두 단체를 해체하고 설립되었다. 함양소년회 설립 준비위원은 10여 명으로, 이름이 확인된 인물은 다음과 같다. 서무재정부 박문영(朴文映)·박병두(朴炳斗)·장기옥(張基玉), 조직선부 박홍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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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 개원한 아동 교육기관. 함양유치원은 당시 불교포교소를 원사로 정하고 1928년 11월 1일 개원하였다. 함양유치원 설립에 필요한 경비가 부족하자 지역에서 ‘소인극단’을 조직하고 여러 지역을 순회하며 공연하는 방법으로 자금을 모으는 등 함양군 내 유지 및 지역민들의 많은 노력이 있었다. 함양유치원 관련 자료를 살펴보면 함양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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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직후 경상남도 함양군에 만들어진 민간 행정기구. 1945년 해방 직후인 9월 6일 건국준비위원회가 조선인민공화국으로 개편됨에 따라 건국준비위원회의 지방조직들도 인민위원회로 재편되었다. 경상남도 인민위원회는 10월 5일 부산에서 결성되었다. 이에 따라 경상남도 각 지역에서도 인민위원회가 결성되었고, 함양군도 인민위원회가 결성되어 행정을 장악하였다. 하지만 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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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8일에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용평리 함양장터에서 일본제국주의 지배에 항거하여 일어난 만세운동. 1918년 제1차 대전 종전 후에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민족자결의 원칙으로 조선의 독립운동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또한, 고종 황제의 갑작스러운 붕어는 민심을 크게 동요치게 하였다. 전국적인 단위로 만세운동이 벌어진 배경이 되었고 경상남도 함양군도 만세운동에 가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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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벌어진 빨치산 활동. 함양 지역에서 활동한 빨치산들은 1948년 여순사건 이후 지리산으로 입산한 세력과 인민위원회 활동을 벌이다가 입산한 세력으로 나뉘어진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한 국군 제14연대 병사들이 제주4·3사건 진압명령을 거부하고,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여수와 순천 등 전라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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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조직된 청년 단체. 1919년 3.1운동의 영향을 받은 함양 지역 유지 양지환(梁址煥), 노준영(盧俊永), 박수영(朴洙濚), 권영근(權寧根) 등을 중심으로 10여 명이 뜻을 모아 ‘문화 촉진’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함양청년회는 실력양성운동의 일환으로 설립된 것으로 보인다. 함양청년회는 1920년 8월 1일 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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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백정들의 신분 해방을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 일제강점기 백정들이 신분 차별 철폐와 인권 평등을 위하여 1923년 4월 24일 진주 지역에서 조직한 형평사(衡平社)는 경상남도를 비롯한 영남과 호남 및 중부 지역에 지부가 창립되는 등 조직이 확산되었다. 함양 지역 백정의 신분 차별 철폐와 함께 인권 및 평등을 추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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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신분해방과 사회운동을 목적으로 설립된 청년 단체. 함양 지역에서는 1923년에 형평사가 설립되었고, 1927년에는 함양형평청년회가 설립되어 활동하였다. 함양형평청년회의 강령은 생활 향상의 최고 이익 획득, 형평청년의 교양, 합리적 사회 건설이다. 함양 인근 지역인 진주에서 처음 만들어진 형평청년회는 각지 지사·분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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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목적으로 진행된 의병의 활동. 경상남도의 의병 활동은 민족의 독립을 수호하려는 의도에서 주민·지식인·유생·농민 등이 합세하여 지리산을 중심으로 꾸준하고 지속적인 항일 투쟁을 진행한 점이 특기할 만한 것이다. 지리산과 덕유산을 왕래하며 전개된 서부경남의 의병은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한 경상남도의 대표적 의병전이었으며, 노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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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서상건의 문집. 서상건(徐相建)[1865~1911]의 자는 순오(舜五), 호는 해사(海史), 본관은 달성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웅평리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서기보(徐麒輔)는 첨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지냈고, 아버지 서인순(徐璘淳)은 호가 화헌(華軒)이다. 조상의 공훈(功勳)으로 감역(監役)을 지냈다. 모친은 밀양박씨 참의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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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역사.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면은 1957년에 석복면(席卜面)을 편입하여 함양읍으로 승격되었다. 1973년 7월 1일에는 함양군 안의면의 춘전리·진목리가 경상남도 거창군과 남상면으로 편입되었으며, 1976년 휴천면에 엄천(嚴川)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84년에는 함양군을 관통하는 88올림픽고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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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박인순이 편찬한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현의 행정 사례집. 『화림지(花林誌)』에서 ‘화림’은 안음과 함께 안의[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의 다른 이름이다. 조선 시대 안의현은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서하면·서상면, 거창군 마리면·위천면·북상면 일대를 포함한다. 『화림지』의 저자가 박인순(朴寅淳)이라는 것은 확인할 수 있으나 살펴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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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출신인 서상엽의 문집. 서상엽(徐相曄)[1862~1914]의 자는 순명(舜明), 호는 화하(華下)이다. 본관은 달성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웅평리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서기보(徐麒輔)[1804~?]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냈고, 아버지 서인순(徐璘淳)은 호가 화헌(華軒)이다. 조상의 공훈(功勳)으로 감역(監役)을 지냈다. 어머니는 밀양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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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장항리 출신 유학자 지산 안효진의 중국 여행기. 안효진(安孝鎭)[1855~1943]의 자는 경원(敬元), 호는 지산(芝山)이다. 본관은 순흥으로, 안향(安珦)[1243~1306]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안극문(安克文), 아버지는 안재일(安在一), 어머니는 임천조씨(林川趙氏)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장항리에서 태어났다. 도통사(道統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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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 거주한 화헌 서인순의 시문집. 서인순(徐璘淳)[1827~1898]의 자는 은경(殷卿), 호는 화헌(華軒)이다. 본관은 대구(大邱)이다.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 서인순의 13대조이다. 5살 때부터 서당에서 공부하였으며, 20살에 향당에 이름이 알려졌다. 번번이 향시에 낙방하자 과거에 뜻을 접고 위기지학(爲己之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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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인 황오의 문집. 황오(黃五)[1816~?]는 자가 사언(四彦), 초명은 이로(里老), 호는 녹차(綠此)·한안(漢案)·동해초이(東海樵夷)이다.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공배리에서 태어났다. 방촌(尨村) 황희(黃喜)[1363~1452]의 후손이다. 강신용(姜信鏞)과 가까운 족친(族親)들이 글을 수집하여 문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