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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아들을 달래거나 함께 놀아 줄 때 부르던 노래. 「아들 어르는 노래」는 해남군에서 칭얼대거나 보채는 아이를 어르거나 놀이를 행할 때 불러 주던 노래이다. “둥둥둥 내 아들아”를 반복함으로써 아들을 대상으로 하는 노래임을 표현하고 있다. 「아들 어르는 노래」는 1980년 해남군사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해남군사』 526쪽에 수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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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아들을 달래거나 함께 놀아 줄 때 부르던 노래. 「아들 어르는 노래」는 해남군에서 칭얼대거나 보채는 아이를 어르거나 놀이를 행할 때 불러 주던 노래이다. “둥둥둥 내 아들아”를 반복함으로써 아들을 대상으로 하는 노래임을 표현하고 있다. 「아들 어르는 노래」는 1980년 해남군사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해남군사』 526쪽에 수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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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전승되어 놀이판 등에서 부르던 유희요. 「우수영 아리랑타령」은 전라남도 해남 지역의 부녀자들이 놀이판 등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즐겨 부르던 노래이다. 흔히 「진도아리랑」이라고도 부른다. 일반적으로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라는 후렴구가 붙는다. 「우수영 아리랑타령」은 2013년 문내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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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7월 26일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마산리 운거산에 추락한 사건 1993년 7월 26일, 오후 2시 20분 탑승객 110명, 승무원 6명을 태운 아시아나항공 소속 보잉 737기가 김포국제공항을 출발하여 목포공항에 도착 예정이었다. 여객기는 오후 3시 24분 첫 번째 착륙 시도 실패에 이어 세 번째 착륙 시도를 하였지만 해남군 화원면 마산리 운거산(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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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출신의 체육인. 조오련(趙五連)[1952~2009]은 1952년 10월 5일 해남군 해남읍 학동리에서 태어났다. 제6회, 제7회 아시안게임 수영 남자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국위를 선양하였고, 대한해협을 헤엄쳐 건너 ‘아시아의 물개’로 불렸다. 조오련은 1968년 10월 10일 해남고등학교를 자퇴하였다. 1968년 11월 3일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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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아이의 생일 때 병과 액이 없기를 기원하며 행하는 주술적 행위. 해남 지역에서는 어린 아이의 생일에 백살경(百殺經)을 외우면 잔병치레를 막을 수 있고 백 가지 액신(厄神)의 침범 또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아이의 백일이나 돌 등의 생일 때 백살경을 외어 병과 액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기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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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 학동마을에서 마산면 장촌리로 넘어가는 고개. 조선시대 마산면 장촌리에는 해남을 좌지우지하는 토호세력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해남에 부임해온 현감들은 토호세력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하여 매일 아침 아침재를 넘어 문안인사를 다녔다고 한다. 현감들이 아침마다 문안 인사를 가기 위하여 넘어 다녔다고 하는 데서 아침재 이름이 유래되었다. 조치(朝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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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전염병 등의 재앙을 막고자 마을 어귀에 디딜방아를 거꾸로 세우는 주술적 풍속. 호남과 충청, 영남 일대에는 전염병이나 나쁜 액이 돌 때 다른 마을의 디딜방아를 훔쳐 와서 마을 어귀에 거꾸로 세운 후 생리혈이 묻은 여성 속옷을 씌워 액을 막는 풍속이 있었다. 디딜방아를 세워 놓으면 나쁜 액이 침법하지 못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렇게 디딜방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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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법정리. 『지명총람』에 의하면 수렁이 많으므로 수실, 또는 화곡이라 하며, 또는 안동부사 윤복이 살았으므로 안동태 또는 안동이라고 하였는데, 이 중 『지명총람』에서 말하는 안동부사는 해남윤씨 윤효정의 넷째 아들 행당 윤복을 말한다. 본래 해남군 군일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해남군 해남면 안동리로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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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장길(安長吉)[1888~1919]은 1888년 9월 9일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1일 해남읍 장날에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해남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6일 해남공립보통학교(海南公立普通學校)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어서 지역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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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창석(安昌錫)[1894~1970]은 1894년 10월 13일 해남군 해남읍 남동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1일 해남읍 장날에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해남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6일 해남공립보통학교(海南公立普通學校)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어서 지역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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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안호리(安湖里)라 하였다. 안호리에는 안정(安丁), 중정(中丁), 송계(松界) 마을이 있는데, 안정마을은 마을 형태가 정(丁) 자 모양이라 하여 안정(安丁)이라 하였다. 중정마을은 사구미, 또는 색금이라 불렸는데, 사구미나 색금은 삭금부사터가 있어 생긴 지명이다. 지금의 안호리 548번지가 색금현원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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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에서 일성산의 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애기바위와 엄마바위」는 가난한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가다가 일성산(日城山)[335m] 비탈길에 잠시 섰는데, 너무 배가 고파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돌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애기바위와 엄마바위」는 2016년 12월 11일 해남군 화원면 장춘리 이목마을에서 채록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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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 서상리, 동외리 일대의 호국혼이 담긴 우수영마을 이야기. 우수영의 지명은 조선시대에 설치된 수군진 ‘전라우수영’에서 유래하고, 문내면(門內面)의 지명은 전라우수영의 외성(外城)으로 원문(轅門)의 안쪽에 위치한 데서 유래한다. 우수영은 한반도의 서남단 모서리, 즉 남해와 서해가 만나는 지점, 화원반도의 중앙에 있다. 화원반도의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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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신이자 시조작가. 윤선도(尹善道)[1587~1671]는 해남윤씨(海南尹氏)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 여러 벼슬을 역임한 문신이자 국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문인이다. 윤선도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약이(約而), 호는 고산(孤山)·해옹(海翁),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아버지는 예빈시부정(禮賓寺副正) 윤유심(尹唯深)이고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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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 전라남도 해남군을 관할하던 통일신라의 지방 행정구역. 통일신라 9주 가운데 무주[무진주, 지금의 광주] 관할의 군현 수는 15군과 43현이었다. 당시 해남 지방은 양무군(陽武郡)과 영속관계에 있었다. 양무군은 백제 때 도무군(道武郡)이었는데, 통일신라 757년(경덕왕 16)에 이름이 바뀐 것이다. 주군현 간의 영속 체제를 강화하면서 행정구역명이 바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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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8년 6월 3일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에서 태어난 양성룡(梁成龍)[1888~1972]은 1920년 4월 23일 문내면에서 발생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전국 각지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되었고, 해남군의 경우 1919년 4월 6일 해남면에서 해남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주도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양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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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현감을 역임한 무신. 변협(邊協)[1528~1590]은 해남현감 재임 시 을묘왜변이 일어나자 군민들과 함께 해남읍성을 사수하였으며, 이후 전라우방어사(全羅右防禦使)로 있으면서 여러 차례 왜구를 격퇴하였다. 변협의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자는 화중(和中), 호는 남호(南湖)이다. 아버지는 중추부경력(中樞府經歷) 변계윤(邊季胤)이며, 어머니는 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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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에 있었던 전라우수영의 수사를 지낸 무신. 윤득홍(尹得洪)[1372~1448]의 본관은 무안(務安)이며, 시호는 양정(襄靖)이다. 아들은 윤건관(尹建官)이다. 윤득홍은 1372년(공민왕 21) 전라도 무안에서 천민으로 태어났다. 1419년(세종 1) 백령도(白翎島)에서 왜구를 물리친 공으로 우군첨총제(右軍僉摠制)가 되었고, 이듬해에 동지총제(同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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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양한묵(梁漢默)[1862~1919]은 1862년 4월 29일 해남군 옥천면 영신리에서 태어났다.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가하였으며 33인 중 유일하게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양한묵의 본관은 제주(濟州)이며 자는 길중(吉仲)·경조(景朝), 호는 지강(芝江)이다. 아버지는 양상태(梁相泰)이고 어머니는 낭주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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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있는 법정리. 어란리(於蘭里)는 지형이 바다쪽으로 길게 뻗어 나온 것이 마치 난(蘭)처럼 생겼다 하여 어란(於蘭)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수군만호진(水軍萬戶鎭)이 있어 어란진이라고도 부른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외장리, 동현리, 내장리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로 개설되었다. 1921년 완도군 군외면의 어불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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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어란만호 김성익, 최성륜, 김종희, 김종석 등을 기리기 위해 세운 5기의 비. 어란포진(於蘭浦鎭)은 조선시대 수군을 지휘하던 만호가 머물던 곳이며, 조선시대 전라도 지역에 출몰하던 왜구를 방어하기 위한 성곽으로 세워졌다. 어란포진의 위치는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 어란진항 일대이다. 송지면은 한반도 최남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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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 어란마을에서 정월 초하루에 마을의 풍어와 평안, 질병 방지 등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 어란마을은 매년 정월 초하룻날 밤에 마을의 풍어와 평안, 질병 방지, 가축의 무병 등을 기원하는 마을 제사로 어란리 어란 도제를 지낸다. 마을 회의를 통해 선출된 제주(祭主) 두 명이 초하룻날 아침에 미리 당집에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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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있는 해남군수산업협동조합 소속 어촌계. 어란어촌계는 「수산업협동조합법」에 따라 설립된 해남군수산업협동조합의 계통 조직으로,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있다. 어란어촌계는 마을 어장을 생활 근거지로 삼아 마을 공동 어장의 이용과 개발을 통하여 개별 어가와 어촌 마을 주민의 소득 증대에 이바지하고 하며 수산업협동조합의 일부 기능을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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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수군진. 어란진(於蘭鎭)은 조선 건국 초기에 해남반도 해진군의 방어를 위하여 삼촌포[지금의 해남군 화산면 연곡리]에 병선을 배치한 것이 시초이다. 그러나 삼촌포의 어란 병선은 남쪽 바다의 섬으로 이동하였다가 지금의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수군진성을 쌓고 수군진으로 정착하였다. 왜구의 침탈을 벗어나기 위한 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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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교육목표는 고운 인성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어린이, 남과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어린이, 기초·기본학력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어린이, 특기·적성을 찾아 진로를 개척하는 어린이이다. 1932년 10월 2일 어란진심상소학교 인가를 받았다. 1945년 9월 30일 어란진국민학교로 개칭하였다. 1963년 9월 20일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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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교육목표는 고운 인성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어린이, 남과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어린이, 기초·기본학력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어린이, 특기·적성을 찾아 진로를 개척하는 어린이이다. 1932년 10월 2일 어란진심상소학교 인가를 받았다. 1945년 9월 30일 어란진국민학교로 개칭하였다. 1963년 9월 20일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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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교육목표는 고운 인성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어린이, 남과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어린이, 기초·기본학력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어린이, 특기·적성을 찾아 진로를 개척하는 어린이이다. 1932년 10월 2일 어란진심상소학교 인가를 받았다. 1945년 9월 30일 어란진국민학교로 개칭하였다. 1963년 9월 20일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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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있었던 포구. 어란(於蘭) 지명은 2차례 이동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해진군의 남쪽 삼촌포에 어란이 있었으며, 어란에 배치된 병선이 어란도 섬을 거쳐 지금의 송지면 어란리에 수군만호진이 정착하면서 어란 지명도 현재로 고정되었다. 조선 전기 어란은 병선이 배치된 수군진이면서 제주를 오가는 입출항지이기도 하였다. 이에 제주도 관승의 자제를 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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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속하는 섬. 어불도(於佛島)는 섬의 모양이 부처와 비슷하다고 해서 ‘어불도(於佛島)’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18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영남호남연해형편도(嶺南湖南沿海形便圖)』에는 ‘어불도(棜佛島)’로 표기되어 있다. 다른 기록을 보면 『1872년 지방지도』 「영암」에는 물고기 어(魚)를 사용하여 ‘어불도(魚佛島)’로 표기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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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 서림공원 내에 있는 조선 후기 전라도 암행어사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3기의 비. 서림공원 내에 있는 17기의 비 중 어사 불망비는 3기가 있다. 심상학(沈相學), 이면상(李冕相), 이승욱(李承旭)은 조선 후기 전라도 암행어사로 활동한 인물들이다. 암행어사(暗行御史)는 조선시대 왕의 측근의 당하(堂下)[정3품 하계 통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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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 있었던 다리. 어성교 지명은 대둔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어성천에서 유래한다. 현재의 어성교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해남읍에서 화산면과 현산면을 왕래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해동지도(海東地圖)』 등을 보면 어성교가 그려져 있다. 당시의 어성교는 어성천의 하류에 석교로 건설되었으며, 현재 삼산면 원진리와 옹암마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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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 있었던 포구. 어성포는 어성천[지금의 삼산천]의 하류에 있었던 옛 포구이다. 1906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에는 진도에 속하였던 삼촌면의 경계에 있었다. 어성천의 하류이자 고천암 바다 동쪽에 있어 민물과 바닷물이 합류한 지점으로 어산물이 풍성한 곳이었다. 특히 민물장어가 많이 잡혔고, 어성교 인근은 장어식당으로 유명하였다.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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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인. 윤효정(尹孝貞)[1476~1543]은 해남윤씨 해남 입향조이자 어초은파(漁憔隱派) 파조이다. 해남윤씨가 지역의 명문 사족으로 성장하는 기틀을 닦았다. 윤효정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희삼(希參), 호는 어초은(漁憔隱)이다. 아버지는 윤경(尹耕)이며, 부인은 정귀영(鄭貴瑛)의 딸 해남정씨(海南鄭氏)이다. 윤구(尹衢), 윤행(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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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해남군수산업협동조합의 계통 조직으로 설립된 어업인 조직. 어촌계는 1962년 「수산업협동조합법」이 제정되어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어업조합이 수산업협동조합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자연마을별로 구성되었다. 수산업협동조합은 흔히 줄여서 수협으로 불리며, 지구별·업종별 수협과 수산물 가공 수협으로 구분된다. 전체 92개 수협 가운데 70개가 지구별 수협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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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의 출판 및 언론 매체를 총칭. 해남군에는 2019년 현재 유가지 세 개와 한 개의 인터넷 신문이 있고 해남군청에서 발행하는 홍보지가 있다. 방송은 해남방송이 있다. 해남군은 다른 군에 비해 일찍부터 지역 신문이 발행되었다. 1990년에 군민의 동참으로 『해남신문』이 주간지로 창간되었다. 『해남신문』은 편집권 독립뿐만 아니라 수입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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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사는 토박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통칭하는 말.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쓰는 언어는 서남 방언 중에서 전라남도 방언에 속한다. 전라남도 방언은 크게 동부 방언권과 서부 방언권으로 나눌 수 있는데, 서부와 동부 지역은 다시 남북으로 하위 구획된다. 이러한 하위 구획을 기준으로 본다면 해남 지역에서 쓰이는 언어는 무안, 신안, 진도, 완도, 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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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서 행하여지는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된 에너지 기술 산업. 해남군은 에너지 절약 운동과 더불어 소외계층을 위해 에너지 바우처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또한 신재생에너지 확대에도 적극적인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해남군의 2016년 현재 에너지 소비량은 8만 9306㎘로, 휘발유 1만 4630㎘, 등유 1만 5714㎘, 경유 5만 8962㎘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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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월 18일 전라남도 목포 허사도 앞바다에서 해남-목포 간 여객선이 침몰한 사건. 도로교통 시설이 충분하지 않던 1960년대에는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전라남도 목포시를 오가는 사람은 주로 정기 여객선을 이용하였다. 해남군 황산면 연호리와 목포 간 항로를 오가는 여객선 연호(燕號)는 해남 지역의 황산면·산이면·해남읍 지역 주민들이 겪는 교통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운항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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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여낭터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여낭터와 어란 여인」은 명량해전(鳴梁海戰)[1597]을 승리로 이끈 숨은 주역이 왜군 수군 대장의 애인인 어란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여낭터와 어란 여인」은 2016년 4월 28일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 1508-26에서 채록하였으며, 구술자는 김학채[남]이다. 2017년 해남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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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주로 여름철에 밀가루 반죽을 썰어 육수에 끓여 먹은 음식. 여름 밀가루죽은 해남 지역에서 밀가루를 이용해 만들어 주로 여름철에 별미로 먹던 음식이다. 보통 밀가루 칼국수라고 부르는 음식을 해남 지역에서는 밀가루죽이라고 불러 왔다. 밀가루 반죽을 채 썰어 끓는 육수에 넣고 각종 야채를 넣어 맛을 낸 뒤 먹는 것으로 국수와는 차이가 있다. 과거에는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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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여맹조(呂孟祚)[1894~1930]는 1894년 2월 20일 해남군 화산면 해창리에서 태어났다. 1920년 4월 만세 시위를 선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해남군 해창리에 거주하며 농사를 짓던 여맹조는 1919년 3월 이래 전국 각지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지만, 정작 자신의 마을에서는 만세 운동이 발생하지 않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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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에 있는 법정리. 여수리(麗水里)는 본래 마을 형태가 새가 남향으로 앉은 모양이라 하여 새냄(鳥南) 또는 조남이라 불렸다. 방춘저수지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물이 아름답다 하여 빛날 려(麗)를 써서 여수리(麗水里)로 불리다가 일제강점기 때 여수리(呂水里)로 바뀌어 불렸다. 2007년 군청에 마을 이름 개명을 요구하여 다시 여수리(麗水里)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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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에 있었던 전라우수영의 수사로 부임하여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무신. 이순신(李舜臣)[1545~1598]은 조선 역사에서 가장 큰 변란을 겪어야 했던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사로서 바다를 지켜 내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순신의 본관은 덕수(德水)이며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고려 때 중랑장을 지낸 이돈수(李敦守)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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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칭도를 시조로 하고 민중건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해남군의 세거 성씨. 여흥민씨(驪興閔氏)는 해남군의 세거 성씨 가운데 하나로, 마산면 지역에 주로 기반을 두고 있다. 여흥민씨는 고려시대 상의봉어(尙衣奉御)를 지낸 민칭도(閔稱道)를 시조로 한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자건(子騫) 민손(閔損)의 후손 민칭도가 고려 때 사신으로 우리나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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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칭도를 시조로 하고 민중건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해남군의 세거 성씨. 여흥민씨(驪興閔氏)는 해남군의 세거 성씨 가운데 하나로, 마산면 지역에 주로 기반을 두고 있다. 여흥민씨는 고려시대 상의봉어(尙衣奉御)를 지낸 민칭도(閔稱道)를 시조로 한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자건(子騫) 민손(閔損)의 후손 민칭도가 고려 때 사신으로 우리나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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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에 해남 여흥민씨 부조묘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여흥민씨 부조묘」는 해남군 마산면에 있는 해남 여흥민씨 부조묘에 민신(閔伸)[?~1453], 민보창(閔甫昌)[?~1453] 등 여흥민씨(驪興閔氏) 4부자가 배향되어 있다는 이야기이다. 「여흥민씨 부조묘」는 2016년 8월 15일 해남군 마산면 남계리 432-2에서 채록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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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과 관련된 역사. 해남군의 역사는 구석기로 올라간다. 고대에는 고대 연안 해로와 관련하여 신미제국의 중심인 침미다례(忱彌多禮), 지미(止迷), 침명현(浸溟縣)으로 이어진다. 고려에 들어와 해남현(海南縣)이 등장하고 지금의 산이면 진산리 청자 가마터[사적 제310호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海南珍山里靑磁窯址)]와 화원면 신덕리 청자 가마터[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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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개성이나 한양을 연결하였던 교통 및 통신 제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벼슬아치가 이동하거나 공문을 전달할 때 마필(馬匹)이나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일을 보던 곳을 역(驛)이라 하고, 숙식 편의를 제공하던 공공 숙소를 원(院)이라 하였다. 이를 합하여 역원(驛院)이라 칭한다. 이칭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고려시대 해남군 지역에는 3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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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앞산 형태가 연꽃이 물에 떠 있는 것 같다 하여 연골이라 부르다가 한자 연곡(蓮谷)으로 바뀐 데서 연곡리(蓮谷里) 지명이 유래하였다. 본래 해남군 화이면 지역에 속하였다가, 1914년에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봉정리, 용덕리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화산면 연곡리로 개설되었다. 연곡마을과 봉저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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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에 있는 법정리. 연구리(燕邱里)는 마을 뒷산 형국이 제비가 집을 짓고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어서 ‘연구(燕邱)’라 부른 데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본래 해남군 마포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연구리, 당두리, 덕인리, 추당리, 지동리의 각 일부 지역을 합하여 해남군 마산면 연구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연구마을, 지동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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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배우가 무대에서 연기를 보이는 종합예술. 전라남도 해남 지역의 연극은 1952년 미암극단이 창단되면서 본격화되었고 1991년 한국연극협회 해남지부가 결성되어 안정된 여건 속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해남 연극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해남 출신인 이기홍, 손귀만 등이 연극계에서 활동한 것으로 전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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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에 연못이 있어 연못골이라 불렀고, 임진왜란 이후부터 마을 앞 저수지에 연꽃이 자생하여 연꽃 연(蓮)과 연못 당(塘)을 합해 연당(蓮塘)이라 불렀다고 한다. 본래 해남군 황원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연당리, 덕암리, 백동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황산면 연당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연당마을과 덕암마을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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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연당리 연당마을에서 정월대보름에 마을의 평안과 액운을 방지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해남군 황산면 연당리 연당마을에서는 매년 정월대보름날 ‘도지 잡순다.’라고 하여 마을 내에 건립된 도제각에서 총각귀신을 모시고 연당리 연당 도제를 지낸다. 마을 사람들을 해치고 마을에 화를 끼치던 총각귀신을 달래려고 제사를 모시게 된 것으로 전한고,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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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법정리. 『지명총람(地名總覽)』에 의하면 연못이 있어 연못골 또는 연동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송리와 연동의 이름을 따서 남연리라 하였다가, 1949년에 연동리로 고쳤다. 한편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지금의 연동리 지역에 현일면의 조막동·백련동·죽음리가 있고 1896년(고종 33) 『해남읍지』에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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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서 대흥사의 주관으로 석가탄생일을 축하하고 불교문화를 선양하기 위하여 매년 5월 열리는 축제. 해남군에서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의 주관으로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광명의 정신과 불교문화를 선양하기 위해 매년 5월 연등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연등문화축제에 쓰인 연등은 세상의 어두운 부분이 부처의 지혜처럼 밝아지고 따뜻한 마음이 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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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서 대흥사의 주관으로 석가탄생일을 축하하고 불교문화를 선양하기 위하여 매년 5월 열리는 축제. 해남군에서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의 주관으로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광명의 정신과 불교문화를 선양하기 위해 매년 5월 연등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연등문화축제에 쓰인 연등은 세상의 어두운 부분이 부처의 지혜처럼 밝아지고 따뜻한 마음이 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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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임구령(林九齡)[1501~1562]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자는 연수(年樹), 호는 월당(月堂)이다. 고조할아버지는 동복현감을 지낸 임간(林幹), 증조할아버지는 증 이조참의 임득무(林得茂), 할아버지는 진안현감을 지낸 임수(林秀)이다. 아버지는 임우형(林遇亨)이고 어머니는 참봉 박자회(朴子回)의 딸 음성박씨(陰城朴氏)이다. 임천령(林千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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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를 시조로 하고 이복길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해남군의 세거 성씨. 연안이씨는 해남군의 세거 성씨 가운데 하나로 해남 입향조는 이복길이다. 연안이씨(延安李氏)의 시조는 당(唐)나라 장군 이무(李茂)이다. 이무는 660년 소정방(蘇定方)이 신라의 동맹군으로 백제를 침공했을 때 중랑장으로 따라왔다가 신라에 귀화한 것으로 전한다. 연안이씨는 계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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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에서 활동한 문신. 최부의 본관은 탐진(耽津)이며 자는 연연(淵淵), 호는 금남(錦南)이다. 아버지는 최택(崔澤)이고 어머니는 여양진씨(驪陽陳氏)이다. 부인은 정귀감(鄭貴瑊)의 딸 해남정씨(海南鄭氏)이다. 최부는 1454년(단종 2) 나주 곡강면 성지촌[현 전라남도 나주시 동강면 인동리]에서 태어났다. 1470년(성종 1) 해남정씨와 혼인하여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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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인화가. 윤덕희(尹德熙)[1685~1766]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경백(敬伯), 호는 낙서(駱西)·연포(蓮圃)·연옹(蓮翁)·현옹(玄翁)이다. 아버지는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부인은 심채원의 딸 청송심씨(靑松沈氏)이며, 문인화가 윤용(尹愹)이 아들이다. 윤덕희는 1685년(숙종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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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연정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땅끝노회 소속 교회. 해남군 화산면과 연정리, 월호리 마을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30년 6월 14일 화산면 연정리에서 예배하며 연정교회(蓮井敎會)가 창립되었다. 1930년 8월 10일 제1차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1960년 5월 1일 제2차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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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에 있는 법정리. 연화(蓮花)와 석정(石井)의 이름을 따서 연정리(蓮井里)라고 하였다. 연정마을은 모래가 많고 내[川]가 흐른다 하여 마새내, 사천리라 부르다가 마을 앞에 연못이 있다 하여 연화동(蓮花洞)이라고 불렀다. 이후 행정구역 개편 때 연정이라 개칭하였다. 석정마을은 마을에 지석묘와 정자나무가 많아 석정(石丁)이라 하다가 행정구역 개편 때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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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에 있는 법정리. 연화(蓮花)와 석정(石井)의 이름을 따서 연정리(蓮井里)라고 하였다. 연정마을은 모래가 많고 내[川]가 흐른다 하여 마새내, 사천리라 부르다가 마을 앞에 연못이 있다 하여 연화동(蓮花洞)이라고 불렀다. 이후 행정구역 개편 때 연정이라 개칭하였다. 석정마을은 마을에 지석묘와 정자나무가 많아 석정(石丁)이라 하다가 행정구역 개편 때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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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인화가. 윤덕희(尹德熙)[1685~1766]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경백(敬伯), 호는 낙서(駱西)·연포(蓮圃)·연옹(蓮翁)·현옹(玄翁)이다. 아버지는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부인은 심채원의 딸 청송심씨(靑松沈氏)이며, 문인화가 윤용(尹愹)이 아들이다. 윤덕희는 1685년(숙종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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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법정리. 연호(燕湖)의 연원으로 여흥민씨 민이달이 마을에 입향한 후에 연기(燕妓)라는 기생과, 남경사신으로 간 선비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름에서 연(燕)을, 마을이 바다에 가깝다고 하여 호(湖)를 따와 연호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연호 지명은 1789년의 『호구총수(戶口總數)』 이전부터 있었다. 또 고문헌 여러 곳에 연호호수,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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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연호리에 있었던 나루. 연호진(燕湖津)은 해남군 황산면 인근에서 목포를 오가는 발동기선 나루였다. 1920년 무렵 운영이 되어 1963년 여객선연호침몰사고가 발생하면서 중단되었다. 연호진 바로 앞에는 연자도라는 바위섬이 있으며 여기에는 연자랑(燕子娘)설화가 전한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고려 때 중국 남경 가는 사신이 바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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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상등리에 있는 식품제조 영농조합법인. 다양한 해남의 친환경 농특산물 등으로 천연재료들을 활용하여 김치류와 음료, 쌀 등 건강식품을 제조·생산하고 있는 영농조합법인이다. 생태계를 보존하는 친환경적 생산으로 환경을 보호하고 사회에 공헌하며, 농촌지역의 생산과 소득을 강화하고자 한다. 또한 친환경제품의 생산으로 소비자들이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식품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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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상등리에 있는 식품제조 영농조합법인. 다양한 해남의 친환경 농특산물 등으로 천연재료들을 활용하여 김치류와 음료, 쌀 등 건강식품을 제조·생산하고 있는 영농조합법인이다. 생태계를 보존하는 친환경적 생산으로 환경을 보호하고 사회에 공헌하며, 농촌지역의 생산과 소득을 강화하고자 한다. 또한 친환경제품의 생산으로 소비자들이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식품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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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화내리에 있는 1732년 건립된 원주이씨 사우. 영산사(英山祠)는 1732년(영조 8)에 건립된 임진왜란 공신 이계정(李繼鄭)[1542~1595]을 비롯하여 원주이씨 충신 9위를 배향한 사우이다. 이계정의 자는 경윤(景胤),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무과에 급제하였고 임진왜란 때 곤양군수로 왜적을 격퇴하였고, 무주 조방장에 제수되어 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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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화내리에 있는 영산사 소장 고문서. 영산사(英山祠)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공신에 오른 이계정(李繼鄭)을 위시한 이숙형(李淑亨), 이황(李璜), 이대행(李大行), 이호(李琥), 이순(李珣), 이원해(李元海), 이준(李浚), 이성춘(李成春) 등 원주이씨(原州李氏) 문중 9명의 충신을 모시고 제사지내는 사우(祠宇)이다. 1732년(영조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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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용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해남현감 신림, 해남군수 홍건, 경리사 민영준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3기. 용암리 영세불망비군(龍岩里永世不忘碑群)는 해남군 문내면 용암리에 있다. 조선 후기 해남현감 신림(申林), 해남군수 홍건(洪建), 경리사 민영준(閔泳駿)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3기 영세불망비이다. 경리사(經理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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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법정리. 영암군 옥천시면의 지역으로 영신원(永信院)이라 부르다가, 영신으로 바뀌었다. 마을 이름에 원(院) 자가 붙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묵고 갔기 때문이다. 여기서 영신리(永信里) 명칭이 유래하였다. 본래 영암군 옥천시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영안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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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금호도에서 영암군 삼호읍까지를 잇는 방조제. 영암방조제는 영산강 유역 농업 종합 개발 제3단계 공사의 일환으로, 대규모 농경지와 수자원을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1996년 11월 7일에 건립되었다. 영산강유역 농업종합개발은 1978년 박정희 대통령이 구상한 ‘서남해안 간척 농지 개발 사업안’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영산강 1단계 사업은 영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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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금호도에서 영암군 삼호읍까지를 잇는 방조제. 영암방조제는 영산강 유역 농업 종합 개발 제3단계 공사의 일환으로, 대규모 농경지와 수자원을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1996년 11월 7일에 건립되었다. 영산강유역 농업종합개발은 1978년 박정희 대통령이 구상한 ‘서남해안 간척 농지 개발 사업안’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영산강 1단계 사업은 영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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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효자. 임달유(任達儒)[1829~1888]의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영유(永有), 호는 묵암(默巖)이다. 임달유는 1829년(순조 29) 해남군 계곡면 당산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친구들과 우애가 깊었고 커서는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지극정성으로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서리나 우박이 내리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피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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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영전리에 있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해남성당 소속의 공소. 이장용은 대구에서 천주교 세례를 받고, 고향 마을에 돌아와 동네 주민들에게 자신이 지닌 천주교의 진리와 종교적 활동을 목적으로 1966년 5월 영전공소를 설립하였다. 이장용이 대구에서 세례를 받고 1961년 귀향하면서 천주교 포교 활동을 하였다. 1966년 5월 영전공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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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영전리에 있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해남성당 소속의 공소. 이장용은 대구에서 천주교 세례를 받고, 고향 마을에 돌아와 동네 주민들에게 자신이 지닌 천주교의 진리와 종교적 활동을 목적으로 1966년 5월 영전공소를 설립하였다. 이장용이 대구에서 세례를 받고 1961년 귀향하면서 천주교 포교 활동을 하였다. 1966년 5월 영전공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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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에 있는 법정리, 오래전 마을에 살았던 덕망가가 외롭고 괴로운 일을 당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서 마을 사람들이 그 덕망을 사모하여 마을 이름을 전옹(田翁)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1913년 영숙이라는 사람이 자기 호의 영(永) 자와 밭이 많다고 하여 전(田) 자를 더하여 영전(永田)이라 하였다고 한다. 본래 영암군 북평종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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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법정리. 예전에는 만석동이라 불렀으나, 솔매등 또는 영춘(永春)이라고 부른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본래 영암군 옥천시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호산리, 송운리, 만석리, 학하리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옥천면 영춘리로 개설하였다. 현재 영춘1구마을, 영춘2구마을, 송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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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영호리로 법정명이 지어졌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동면의 장재리, 저상리, 고하리, 별암리와 관저면의 구지리·상리 일부를 통합하여 해남군 화원면 영호리로 개설되었다. 이 중 저상리는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나오는 장목면의 저동(苧洞)과 같다. 현재 구지마을, 장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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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예락리에 있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우수영성당 소속의 공소. 농어촌 마을에 천주교 복음을 전파하고자 1904년 예락공소(曳洛公所)가 설립되었다. 예락마을에 거주하는 김명범[베드로], 김보현[요셉], 박내국[요한] 세 사람이 목포 산정동에 있는 본당 성당에 다니면서 세례를 받은 뒤 1904년 예락공소를 열었다. 처음에는 목포 경동성당 관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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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예락리에 있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우수영성당 소속의 공소. 농어촌 마을에 천주교 복음을 전파하고자 1904년 예락공소(曳洛公所)가 설립되었다. 예락마을에 거주하는 김명범[베드로], 김보현[요셉], 박내국[요한] 세 사람이 목포 산정동에 있는 본당 성당에 다니면서 세례를 받은 뒤 1904년 예락공소를 열었다. 처음에는 목포 경동성당 관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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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예락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땅끝노회 소속 교회. 예수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된 교회로서 교회의 헌장에 따라 예배, 봉사와 친교 및 신도 간 화목을 도모하며 복음화와 제반 선교활동을 통한 영혼 구원을 목적으로 하여 설립하였다. 김인찬은 1902년 가을 목포에서 기독교 복음을 접하고 우수영교회에 출석하다가 같은 마을 주민 한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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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에 있는 법정리. 예락리(曳洛里)는 마을의 형국이 그물질하는 모습이라 하여 예락(曳洛)이라 하였다. 본래 해남군 문내면 지역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예송리, 서외리, 동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문내면 예락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예락마을, 동리마을, 양정마을, 임하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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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무신. 임발영(任發英)[1539~1593]은 1539년(중종 34) 해남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종묘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의주까지 선조를 호종하였다. 임발영의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시언(時彦), 호는 와헌(瓦軒)이다. 아버지는 임희성(任希聖)이다. 임발영은 1568년(선조 1)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그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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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덕정리에 있는 1789년 건립된 장흥임씨 사우. 예양사(汭陽祠)는 1789년(정조 13) 건립된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예양군(汭陽君) 임발영(任發英)[?~?] 등 장흥임씨 육현을 배향하는 사우이다. 예양군 임발영은 1568년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대가를 호종하여 안주목사 등을 제수받았으며 예양군에 추봉되었다. 임충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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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예동(禮洞)마을의 옛 이름인 예정에서 명칭을 취하였다. 예동마을은 깊이 들어간 갯가로 지푼개, 유효, 유정, 예정이라 부르다가, 예동으로 바꾸었다. 본래 산이면 지역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해남군 산이면 예정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예동마을, 동월(東月)마을, 중촌(中村)마을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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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예정리 예동마을에서 매년 음력 1월 1일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해남군 산이면 예정리 예동마을에서는 해마다 정월 초하룻날 밤이 되면 마을 뒷산인 옥수봉에 올라 마을의 안녕과 제액초복(除厄招福)[액을 물리치고 복을 기원함]을 기원하며 예정리 예동 당제를 지낸다. 먼저 하당(下堂)인 옥령당의 당할머니에게 마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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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오기택의 가요 정신을 살리기 위해 매년 10월 해남예술제 기념행사의 하나로 열리는 전국 가요제. 오기택전국가요제는 해남군 북일면 출신 가수 오기택의 가요 정신을 살리기 위해 2007년부터 매년 개최하고 있다. 해마다 수준 높은 참가자들이 경연을 펼치는 오기택전국가요제는 전국에서 몰려온 가수 지망생과 군민, 관광객들이 참석하는 가운데 성황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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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오기택의 가요 정신을 살리기 위해 매년 10월 해남예술제 기념행사의 하나로 열리는 전국 가요제. 오기택전국가요제는 해남군 북일면 출신 가수 오기택의 가요 정신을 살리기 위해 2007년부터 매년 개최하고 있다. 해마다 수준 높은 참가자들이 경연을 펼치는 오기택전국가요제는 전국에서 몰려온 가수 지망생과 군민, 관광객들이 참석하는 가운데 성황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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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신이자 실학자. 오달운(吳達運)[1700~1748]은 18세기 초에 진보적인 사상을 품고 사회개혁 사상을 제시한 실학의 선각자이다. 오달운의 자는 백통(伯通), 호는 해금(海錦), 본관은 동복(同福)이다. 지금의 해남군 계곡면 용지리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는 오명승(吳名勝)이며, 할아버지는 오필주(吳弼周)이다. 어머니는 최남극(崔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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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문현(吳文鉉)[1911~1943]은 1911년 7월 21일 해남군 북평면 오산리에서 태어났다. 농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전남운동협의회(全南運動協議會) 활동을 통해 항일투쟁에 앞장섰다. 오문현은 광주공립농업학교를 다녔으나 학비 마련이 어려워 중퇴한 후 1929년 서울로 올라가 활동하면서 사회주의사상을 접하게 되었다. 이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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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은 시체 형상이고 앞동산은 까마귀 모습이어서, 까마귀가 시체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가막리(加幕里)가 나중에 오산(烏山)으로 개칭되었다고 전한다. 『호구총서(戶口總數)』에 가막리(加幕里)라는 지명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영암군 북평시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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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오산리에 있는 어촌체험마을. 오산어촌체험마을은 해남군 북평면 오산리에 위치한다. 오산리(烏山里)는 까마귀가 사는 산이라 가막산, 또는 까마귀 형국을 한 외딴 산이 있다고 하여 오산이라 하였다. 오산리는 2006년 어촌체험마을로 지정되었다. 2008년 3월 18일 갯벌체험관이 개소하였다. 갯벌체험관은 2개의 단체 숙박실과 체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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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상록(吳上祿)[1913~1960]은 1913년 1월 2일 해남군 산이면에서 태어났다. 광주학생항일운동에 동조하여 목포에서 시위를 벌이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출옥 후에도 일본에서 항일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학생항일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오자 목포에서도 이에 동참해야 한다는 결의가 확산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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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평활리와 옥천면 용동리에서 북일면 흥촌리로 넘어 가는 재 오소재(烏巢峙)[170m]는 오시미재, 오소재(烏所峙)라고도 한다. 오소재는 넓게 보아 두륜산과 주작산의 경계를 이루며, 오소재 정상은 두륜산과 주작산을 오르는 산행 들머리다. 오소재에서 두륜산도립공원 자락에 있는 북미륵암으로 넘어가는 재를 오심재(悟心峙)[쇄기재]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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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에 오소재 약수터 남근석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오소재 약수터에 남근석을 세우게 된 유래」는 마을에 음기가 강하고 양기가 부족하다는 도사의 말을 듣고 오소재에 남근석을 세웠다는 이야기이다. 「오소재 약수터에 남근석을 세우게 된 유래」는 2016년 7월 3일 해남군 북일면 흥촌리 1277에서 채록하였으며, 구술자는 이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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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에 오소재 약수터 남근석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오소재 약수터에 남근석을 세우게 된 유래」는 마을에 음기가 강하고 양기가 부족하다는 도사의 말을 듣고 오소재에 남근석을 세웠다는 이야기이다. 「오소재 약수터에 남근석을 세우게 된 유래」는 2016년 7월 3일 해남군 북일면 흥촌리 1277에서 채록하였으며, 구술자는 이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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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평활리와 옥천면 용동리에서 북일면 흥촌리로 넘어 가는 재 오소재(烏巢峙)[170m]는 오시미재, 오소재(烏所峙)라고도 한다. 오소재는 넓게 보아 두륜산과 주작산의 경계를 이루며, 오소재 정상은 두륜산과 주작산을 오르는 산행 들머리다. 오소재에서 두륜산도립공원 자락에 있는 북미륵암으로 넘어가는 재를 오심재(悟心峙)[쇄기재]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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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평활리와 옥천면 용동리에서 북일면 흥촌리로 넘어 가는 재 오소재(烏巢峙)[170m]는 오시미재, 오소재(烏所峙)라고도 한다. 오소재는 넓게 보아 두륜산과 주작산의 경계를 이루며, 오소재 정상은 두륜산과 주작산을 오르는 산행 들머리다. 오소재에서 두륜산도립공원 자락에 있는 북미륵암으로 넘어가는 재를 오심재(悟心峙)[쇄기재]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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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주광리에 있는 관광단지. 해남군 화원반도를 서남해 거점 관광단지로 조성하여 개발하기 위하여 1992년 오시아노관광단지를 지정하였다. 1992년 10월 관광단지로 지정되었고, 1994년 6월 조성 계획 승인 및 사업 시행 허가를 받았다. 사업 시행자는 한국관광공사이다. 2002년 12월부터 기반 조성 공사를 진행하다가 2006년 4월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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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임탁(吳琳鐸)[1908~1950]은 1908년 7월 15일 해남군 산이면 상공리에서 태어났다. 전남운동협의회에 가입하여 항일 활동을 펼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오임탁은 마산면에 있는 마산공립보통학교(馬山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한 후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1930년 여름 교사 박채민(朴采敏)으로부터 사회주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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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어린이들이 땅에 오징어 모양의 선을 그어 놓고 겨루는 놀이. 오징어통일놀이는 넓고 평평한 땅에 오징어 모양의 선을 그어 놓고 공격과 방어를 하는 놀이이다. 어린이들의 놀이이며 남녀 구분 없이 즐기는 놀이이다. 땅에 오징어를 그려 놓고 편을 나누어 겨루는 놀이는 전국 각지에서 행해지는 놀이이다.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오징어통일놀이를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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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용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사우. 해남 용정사(海南龍井祠)는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을 도와 용맹을 떨친 충경공(忠景公) 유형(柳珩)[1566~1615], 수사(水使) 이억기(李億祺)[1561~1597], 충의공(忠毅公) 이유길(李有吉)[?~?], 참의(參議) 이계년(李桂年)[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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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용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사우. 해남 용정사(海南龍井祠)는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을 도와 용맹을 떨친 충경공(忠景公) 유형(柳珩)[1566~1615], 수사(水使) 이억기(李億祺)[1561~1597], 충의공(忠毅公) 이유길(李有吉)[?~?], 참의(參議) 이계년(李桂年)[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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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에 있는 조선 후기 교육기관. 해촌서원(海村書院)은 최부(崔溥)[1454~1504], 임억령(林億齡)[1496~1568], 유희춘(柳希春)[1513~1577], 윤구(尹衢)[1495~?], 윤선도(尹善道)[1587~1671], 박백응(朴伯凝)[1525~?] 등 해남 출신 인물 6현을 배향하고 있다. 1868년 훼철되었다가 19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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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에 있는 조선 후기 교육기관. 해촌서원(海村書院)은 최부(崔溥)[1454~1504], 임억령(林億齡)[1496~1568], 유희춘(柳希春)[1513~1577], 윤구(尹衢)[1495~?], 윤선도(尹善道)[1587~1671], 박백응(朴伯凝)[1525~?] 등 해남 출신 인물 6현을 배향하고 있다. 1868년 훼철되었다가 19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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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홍탁(吳鉷鐸)[1913~1950]은 1913년 8월 29일 해남군 산이면 상공리에서 태어났다. 전남운동협의회에 가입하여 항일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광복 후 해남건국준비위원회에서 활동하였다. 오홍탁은 1931년 해남공립농업실수학교를 졸업한 후 독서회를 조직하여 농촌계몽 활동을 전개했으며, 농민들의 생존권 확보를 위한 소작쟁의 지도에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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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옥으로 장식품과 생활용품을 만드는 공예. 동양 문화권을 대표하는 보석으로 손꼽히는 옥(玉)은 아름다운 색채에 재질도 단단하여 예로부터 장신구·장식품 등의 귀중품이나 생활용품으로 가공되어 왔다. 그 색깔은 흰색, 노란색, 검은색, 녹색, 파란색, 적갈색 등으로 다양한데, 우리 민족이 특히 좋아하는 비취는 녹색의 투명한 옥을 말한다. 옥은 삼국시대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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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법정리. 옥동리(玉洞里)는 옥연이라고도 불렀는데, 마을이 옥매산 아래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옥연마을은 옥동마을과 한 마을이었기 때문에 옥동리의 옥과, 마을 중앙이 제비집을 닮았다 하여 제비 연(燕)을 붙여 옥연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황원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삼호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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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옥동리 옥연마을에서 정월대보름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해남군 황산면 옥동리 옥연마을에서는 매년 정월대보름에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무고, 풍년을 기원하며 옥동리 옥연 지신제를 지낸다. 정월대보름 오전에 마을회관 앞에서 간단히 제를 올리고 나서, 제관과 풍물패가 마을 주산[마을 동쪽 산]을 찾아가 불을 피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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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옥동리와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 간을 왕래하였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나루. 삼지원(三枝院) 나루는 진도와 해남 사이에 있는 명량해협의 동단을 가로지르는 나루이다. 해남 삼지원[나루]의 진도 쪽 상대 나루는 벽파진으로 고려 때에는 대진(大津)이라 칭하였다. 나룻가에 있는 원정(院亭)은 바람과 물때를 기다리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198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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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옥동리와 문내면 용암리 경계에 있는 산. 옥매산은 지질학적으로 진도의 해양판과 화원반도의 등줄맥이 갈라지는 분기점에 해당한다고 한다. 옥매산은 조선시대에 옥(玉)을 생산하고, 전라우수영의 관아나 군함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목재를 공급하는 국가 봉산(封山)이었다. 또 명량대첩의 승전지로 잘 알려진 울돌목의 입구에 있어 왜적의 동태를 감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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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옥매산의 광산노동자들이 1945년 8월 21일 제주에서 귀환하던 중 바다에 빠져 사망한 사건. 해남군 황산면 옥동리와 문내면 용암리 사이에 있는 옥매산(玉埋山)은 조선시대부터 옥으로 이름난 산이었다. 1910년 니시자키 쓰루타로[西崎鶴太郞]를 시작으로 일본인들이 옥매산 광산을 본격 경영하기 시작했으며, 1937년 7월부터는 아사다화학공업주식회사[淺田化學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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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인이자 시인. 백광훈(白光勳)[1537~1582]은 문장가이자 시인으로, 최경창(崔慶昌)[1539~1583]·이달(李達)[1539~1612]과 더불어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불리며 명성을 떨쳤다. 백광훈의 본관은 해미(海美)이며 자는 창경(彰卿), 호는 옥봉(玉峯)이다.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백세인(白世仁)이며, 어머니는 김광통(金廣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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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송산리에 있는 1712년 건립된 수원백씨 사우. 옥봉사(玉峰祠)는 옥봉 백광훈(白光勳)[1537~1582] 등 수원백씨 선현 4위를 모신 사우로 1712년(숙종 38)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백광훈을 주벽으로 아들인 송호 백진남(白振南)[1564~1618], 무안 백흥남, 백진남의 아들인 옥천 백상빈 4위를 배향하고 있다. 백광훈은 시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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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송산리에 있는 1712년 건립된 수원백씨 사우. 옥봉사(玉峰祠)는 옥봉 백광훈(白光勳)[1537~1582] 등 수원백씨 선현 4위를 모신 사우로 1712년(숙종 38)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백광훈을 주벽으로 아들인 송호 백진남(白振南)[1564~1618], 무안 백흥남, 백진남의 아들인 옥천 백상빈 4위를 배향하고 있다. 백광훈은 시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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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송산리에 있는 옥산서실 소장품. 옥산서실 소장품 일괄은 조선 전기의 문장가인 백광훈(白光勳)과 아들인 백진남(白振南) 관련 유물들이다. 백광훈의 본관은 수원(水源)이며 자는 창경(彰卿), 호는 옥봉(玉峯)이다. 1537년(중종 32) 장흥에서 백세인(白世仁)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인 백광안(白光顔)과 백광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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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과 삼산면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구역. 고려시대 옥산현(玉山縣)에 관한 기록은 전무하나 조선시대 기록을 통해 위치 및 변천 과정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기의 사라향(沙羅鄕)이 고려시대에 옥산현으로 승격한 것은 옥산현 지역이 고려 왕조에 일정한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고, 조선 초기에 해남현으로 편입된 것은 옥산현[세력]의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높지 않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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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초가을 무렵 옥수수 알갱이가 여문 정도에 따라 그해 농사의 풍흉을 예측하는 풍습. 농경민족이었던 우리 민족은 항시 생활의 안정과 풍요를 하늘에 빌었다. 그러면서 농사 풍흉의 결과를 미리 알고자 주로 정월에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쳐 보곤 했는데, 이러한 풍습을 농점(農占), 농사점이라 한다. 해남 지역에서 행한 ‘옥수수알보기’도 이러한 농점의 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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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성산리와 영춘리에 있는 5~6세기 고분군. 해남 옥천 고분군은 흔히 옥천 성산 만의총(萬義塚)으로 불린다. 본래 정유재란 때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의병들의 분묘로 알려졌다. 만의총이 있는 성산벌은 상당히 넓은 벌판으로 정유재란 때 남해로부터 상륙한 일본군에 맞서 윤륜(尹綸)·윤신(尹紳) 형제를 중심으로 참여한 의병이 치열한 공방을 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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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영신리에 있는 산업단지. 농공단지(農工團地)는 ‘농어촌지역공업개발촉진지구’의 약칭으로 지역 소득을 높이기 위해 일정 규모의 공업 지역을 조성하고 입주 업체에 대해 금융, 세제, 기술 지원을 하여 주겠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이 개발에 관한 법률 및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농공단지로 지정한다.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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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법정면.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옥천시면(玉泉始面), 옥천종면(玉泉終面)을 합하여 옥천면(玉泉面)이라 하였다. 옥천면 지역은 통일신라 때 냉천부곡(冷泉部曲)이 설치되었던 곳인데, 냉(冷)은 고대의 수(首)이고, 천(泉)은 몰[村]에 차용된 것이다. 곧 ‘우두머리가 있는 촌’이라는 의미이다. 고려 때는 옥산(玉山)으로 바뀌는데 옥은 거사(渠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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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영춘리에 있는 전통막걸리를 제조하는 주조장. 전라남도 해남군 지역의 농특산물을 활용하여 전통 방식의 전통 민속주인 막걸리와 발효 식품을 연구 개발 제조하는 주조장이다. 지역 농특산물을 활용하여 우리 전통 식품을 개발하여 지역 농업과 상생 발전하고 주민 소득 증대에 기여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옥천주조장은 1995년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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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영춘리에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전남노회 소속 교회. 마을 주민들에게 기독교 복음을 전하여 생명을 얻게 하려는 목적으로 교회를 설립하였다. 백호교회를 다니던 이정신 집사 외 8인이 모여 이정신 집사가 운영하던 방앗간에서 1950년 4월 첫 예배를 드렸다.1950년 4월 해남군 옥천면 영춘리 527-3에서 옥천중앙교회가 시작되었다.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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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백호리에서 발원하여 서해로 유입하는 하천. 옥천천은 해남군 옥천면 백호리에서 발원하여 대산천과 월평천 등과 합류한 후 서해로 유입하는 지방하천이다. 옥천면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옥천천 유역은 해남군 옥천면, 계곡면 성진리 등 성진리 일부, 마산면 맹진리, 송석리 등 마산면 일부와 강진군 도암면의 일부를 포함하고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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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영춘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교육 목표는 바른 인성을 지닌 착한 어린이, 창의적 문제 해결력을 지닌 슬기로운 어린이, 특기와 재능을 가꾸는 자랑스런 어린이, 건강한 몸과 마음을 지닌 튼튼한 어린이이다. 학교가 추구하는 기르고 싶은 어린이상은 ‘21세기를 주도할 도덕적·창의적 인재’ 육성이다. 1922년 4월 20일 옥천사립학술강습소가 설립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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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영춘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교육 목표는 바른 인성을 지닌 착한 어린이, 창의적 문제 해결력을 지닌 슬기로운 어린이, 특기와 재능을 가꾸는 자랑스런 어린이, 건강한 몸과 마음을 지닌 튼튼한 어린이이다. 학교가 추구하는 기르고 싶은 어린이상은 ‘21세기를 주도할 도덕적·창의적 인재’ 육성이다. 1922년 4월 20일 옥천사립학술강습소가 설립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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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영춘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교육 목표는 바른 인성을 지닌 착한 어린이, 창의적 문제 해결력을 지닌 슬기로운 어린이, 특기와 재능을 가꾸는 자랑스런 어린이, 건강한 몸과 마음을 지닌 튼튼한 어린이이다. 학교가 추구하는 기르고 싶은 어린이상은 ‘21세기를 주도할 도덕적·창의적 인재’ 육성이다. 1922년 4월 20일 옥천사립학술강습소가 설립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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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무신. 최산정(崔山靜)[1535~1593]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하였고, 이천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나 이때 입은 부상이 악화되어 사망하였다. 최산정의 본관은 통천(通川)이며 자는 국원(國垣), 호는 옥포(玉圃)이다. 할아버지는 최세진이며, 아버지는 최환성이다. 부인은 선산김씨(善山金氏)와 해남윤씨(海南尹氏)이며, 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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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와룡(臥龍)이라 하였는데 마을의 형상이 용이 누워 있는 모습이라고 한 데서 나온 지명이다. 본래 영암군 북평시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14년 북평시면의 대청리 일부와, 강진군 백도면의 항리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북평면 와룡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와룡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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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무신. 임발영(任發英)[1539~1593]은 1539년(중종 34) 해남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종묘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의주까지 선조를 호종하였다. 임발영의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시언(時彦), 호는 와헌(瓦軒)이다. 아버지는 임희성(任希聖)이다. 임발영은 1568년(선조 1)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그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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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현산면·화산면·삼산면·해남읍·옥천면·계곡면을 거쳐 전라남도 완도군과 충청남도 금산군을 연결하는 일반국도.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완도교차로부터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양전교차로까지 잇는 대한민국 국도 중 하나이다. 주요 경유지는 전라남도 완도군~해남군~강진군~영암군~나주시~광주광역시~전라남도 담양군~곡성군~남원시~순창군~임실군~장수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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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현산면·화산면·삼산면·해남읍·옥천면·계곡면을 거쳐 전라남도 완도군과 충청남도 금산군을 연결하는 일반국도.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완도교차로부터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양전교차로까지 잇는 대한민국 국도 중 하나이다. 주요 경유지는 전라남도 완도군~해남군~강진군~영암군~나주시~광주광역시~전라남도 담양군~곡성군~남원시~순창군~임실군~장수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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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에 있는 완도해양경찰서 산하 파출소. 해양경찰의 주요 임무는 해양주권 수호, 해양 재난 안전관리, 해양 교통질서 확립, 해양 범죄 수사, 해양오염 예방·방제에 있다. 완도해양경찰서의 지휘 아래 해남 관할 지역을 중심으로 해양경찰의 주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53년 12월 해양경찰대가 창설되고 해양경찰대장 소속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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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흥사를 중창한 해남 출신 승려. 완호(玩虎) 윤우(倫佑)[1758~1826]의 자는 삼여(三如)이다. 완호는 법호이고 윤우는 법명이다. 아버지는 김시택(金時澤)이다. 1758년(영조 34) 해남에서 태어나 13세에 대둔사(大芚寺)[대흥사의 옛 이름]에 출가하였고, 17세에 서일(瑞日)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백련법사(白蓮法師)에게 교학을 익히고, 연담(蓮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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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아이들이 땅에 고누판과 유사한 놀이판을 그려놓고 한 발로 돌을 차며 진행하는 놀이. 돌차기는 해남 지역에서 주로 여자아이들이 즐기던 놀이로, 땅에 여러 칸을 그려 놓고 규칙에 따라 깨금발로 돌을 차며 진행하다가 도착점에 도달하면 되돌아 나온다. 아이들의 평형감각을 키우는 데에 유익한 놀이이다. 해남 지역에서 돌차기가 언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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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월송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고분. 해남 월송리 조산 고분은 해남군 현산면 월송리 증산마을에 있는 삼국시대의 고분이다. 발굴 조사를 통해 많은 부장품이 수습되었으며 1986년 2월 17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86호로 지정되었다. 해남 월송리 조산 고분은 해남군 현산면 월송리 378-1에 있다. 해남 월송리 조산 고분은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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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뒷산에 갓을 씌운 모양의 바위가 있어 갓바우라 하였는데, 마을이 바위의 바깥에 해당한다고 하여 바깥갓바우 또는 외립(外笠)이라 불리게 된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내립암(內笠巖)에 해당되는 마을은 부곡마을과 춘정마을이다. 본래 해남군 황원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초월리, 연당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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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에 있는 법정리. 외호리(外湖里)는 산막리 바깥 쪽에 있기에 ‘밖산막’, ‘밖몰’, 또는 앞에 개가 있기에 ‘밖개’라고 하였는데, 이를 의미대로 한자화하여 외호(外湖)가 되었다. 본래 해남군 마포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포면의 당거리, 외호리, 북창·봉서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마산면 외호리로 개설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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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 운전리에 있는 용굴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용굴과 용둠벙」은 용굴에서 용이 나와 승천하려는 모습을 본 장수가 용에게 화살을 쏘아 승천하지 못하고 용둠벙으로 들어가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용굴과 용둠벙」은 2016년 7월 17일 북일면 운전리에서 채록하였으며, 구술자는 김운태[남]이다. 2017년 해남군에서 펴낸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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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 운전리에 있는 용굴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용굴과 용둠벙」은 용굴에서 용이 나와 승천하려는 모습을 본 장수가 용에게 화살을 쏘아 승천하지 못하고 용둠벙으로 들어가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용굴과 용둠벙」은 2016년 7월 17일 북일면 운전리에서 채록하였으며, 구술자는 김운태[남]이다. 2017년 해남군에서 펴낸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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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관동리 관두산 자락에 있는 바람 구멍. 풍혈(風穴)[air-hole]은 산림 내 분포하는 애추, 암괴원, 암괴류 등 사면에서 여름철에는 찬공기가 나오고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구멍이나 바위틈[바람구멍 또는 바람굴]을 말하며, 국지적인 특이 기후환경을 형성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남명리 ‘밀양 얼음골’을 비롯하여 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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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법정리. 용동(龍洞)마을은 용이 승천하는 형국으로 생겼는데, 용둠벙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비룡골, 비룡동, 비렁골로 부르다가 용동이라 하였다. 본래 영암군 옥천종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도림리, 이목리, 자경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옥천면 용동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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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법정리. 용태산 아래에 있어서 용산(龍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구전에 의하면, 마을 형국이 용의 분비물 같아 땅이 비옥하고, 가뭄도 타지 않아 해마다 풍년을 누렸다고 한다. 영암군 옥천시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암리, 문촌리, 용정리, 야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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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뒤 대덕산에 용바위가 있어 ‘용바우’라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한자화하여 용암(龍岩)이라 하였다. 본래 해남군 문내면 지역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원문리, 원동리, 용암리와 석교리, 사교리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문내면에 편입되었다. 현재 용암마을, 원동마을, 신흥마을, 사교마을,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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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용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해남현감 신림, 해남군수 홍건, 경리사 민영준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3기. 용암리 영세불망비군(龍岩里永世不忘碑群)는 해남군 문내면 용암리에 있다. 조선 후기 해남현감 신림(申林), 해남군수 홍건(洪建), 경리사 민영준(閔泳駿)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3기 영세불망비이다. 경리사(經理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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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용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해남현감 신림, 해남군수 홍건, 경리사 민영준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3기. 용암리 영세불망비군(龍岩里永世不忘碑群)는 해남군 문내면 용암리에 있다. 조선 후기 해남현감 신림(申林), 해남군수 홍건(洪建), 경리사 민영준(閔泳駿)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3기 영세불망비이다. 경리사(經理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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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용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해남현감 신림, 해남군수 홍건, 경리사 민영준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3기. 용암리 영세불망비군(龍岩里永世不忘碑群)는 해남군 문내면 용암리에 있다. 조선 후기 해남현감 신림(申林), 해남군수 홍건(洪建), 경리사 민영준(閔泳駿)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3기 영세불망비이다. 경리사(經理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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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용암리 용암마을에서 정월 초하룻날에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해남군 문내면 용암리 용암마을에서는 해마다 정월 초하루가 되면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며 용암리 용암 산제를 모신다. 제사는 마을 뒤편에 있는 대덕산(大德山) 제각에서 대덕산 신령에게 지낸다. 용암리 용암 산제는 언제부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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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용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순찰사 김성근과 수상국 민경호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2기의 비. 용암리 휼민송덕비군(龍岩里恤民頌德碑群)은 전라도순찰사 및 수사로 조선 후기 해남에서 활동한 김성근(金聲根), 민경호(閔敬鎬)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1883년(고종 20) 1월 11일[계사]조에 “김성근(金聲根)을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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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여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순천김씨 사우. 용연사(龍淵祠)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막하에서 명량대첩에 참전하여 공을 세운 김정언, 김정윤 형제를 배향한 사우이다.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김정언(金廷彦)의 자는 국보(國甫), 본관은 순천이다. 동생 김정윤과 함께 효성과 절의로 이름이 높았다. 임진왜란 때 전라우수사 유형(柳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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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에 있는 법정리 예전에는 ‘해가 돋는 땅’이라 하여 좌일리(佐日里)로 불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용운’과 ‘좌일’에서 한 글자씩 따서 용일리(龍日里)라 부르게 되었다.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따르면 영암군 북평시면과 강진군 백도면 상좌일리, 하좌일리 지역이었으나,1906년(광무 10) 해남군에 편입되었다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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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에 있는 법정리. 용전리(龍田里)는 지형이 용처럼 생기고, 마을에 밭이 많아 ‘용전’이라 한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본래 해남군 산일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일면의 고암리, 용반리, 신기리, 용소리, ·용전리, 마포면의 신흥리 각 일부를 합쳐서 해남군 마산면 용전리로 개설되었다. 용전마을, 신기마을, 용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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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법정리. 금새미[龍井]가 있으므로 금새미 또는 용정, 정머리라고 하였다. 본래 해남군 군이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송용리를 병합하여 용정리라 하여 해남군 해남면 용정리로 개설되었다. 1955년 해남면이 해남읍으로 승격하여 해남군 해남읍 용정리로 개편되었다. 현재 용정마을, 송정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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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법정리. 금새미[龍井]가 있으므로 금새미 또는 용정, 정머리라고 하였다. 본래 해남군 군이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송용리를 병합하여 용정리라 하여 해남군 해남면 용정리로 개설되었다. 1955년 해남면이 해남읍으로 승격하여 해남군 해남읍 용정리로 개편되었다. 현재 용정마을, 송정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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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사정리 용지마을에 있는 1948년 건립된 동복오씨 사우. 용지사(龍池祠)는 해남군 계곡면 사정리 용지마을에 있다. 1948년 건립하여 참의 단재(丹齋) 오극신(吳克信)[1554~1597], 아들인 장령 오계적, 조카인 용호 오홍적, 그리고 해금(海錦) 오달운(吳達運)[1700~1748] 등 4위를 배향하고 있다. 단재 오극신은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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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사정리 용지마을에 있는 1948년 건립된 동복오씨 사우. 용지사(龍池祠)는 해남군 계곡면 사정리 용지마을에 있다. 1948년 건립하여 참의 단재(丹齋) 오극신(吳克信)[1554~1597], 아들인 장령 오계적, 조카인 용호 오홍적, 그리고 해금(海錦) 오달운(吳達運)[1700~1748] 등 4위를 배향하고 있다. 단재 오극신은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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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청신리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 해남 탑동 오층석탑(海南塔洞五層石塔)은 해남군 옥천면 청신리에 있다. 945년경 고려시대 석탑으로 2006년 1월 1일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14호로 지정되었다. 해남 탑동 오층석탑은 평박한 옥개석과 기단부의 결구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전통을 이어받아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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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청신리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 해남 탑동 오층석탑(海南塔洞五層石塔)은 해남군 옥천면 청신리에 있다. 945년경 고려시대 석탑으로 2006년 1월 1일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14호로 지정되었다. 해남 탑동 오층석탑은 평박한 옥개석과 기단부의 결구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전통을 이어받아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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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있는 법정리. 우근리는 일제강점기에 간척 공사를 담당하였던 일본인의 성(姓)이 ‘우근’인 데서 비롯되었다. 마을 주민과 인근 사람들은 새 제방을 막아 마을이 생겼다는 뜻에서 새언머리 혹은 새언동으로 불렀다. 본래 해남군 은소면에 속하여 있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도가리와 미야리, 미학리의 각 일부와 송지종면의 내장리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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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출신의 문인. 김봉호(金鳳皓)[1924~2003]는 1924년 2월 26일 해남군 해남읍 학동리에서 아버지 김치준과 어머니 최영숙 사이에 7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해남지부 초대 회장을 역임하며 해남 지역의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였으며, 한국 전통 차 문화 복원과 대중화에도 앞장섰다. 호는 우록(友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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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의 초기 청자 생산지로 유명한 화원면과 산이면에 대한 이야기. 한국은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청자와 백자 등의 자기를 생산한 곳이다.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에는 중국 월주 지역에서 새롭게 들어온 청자 제조 기술과 전통적인 영암 구림리 도기 제작 기술을 더하여 초기 청자를 생산하였다. 이어 대규모의 집단 가마터는 산이면으로 건너가 일상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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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에서 시어머니에게서 비법을 전수받아 한식 된장의 명인이 된 한안자의 동국장 이야기. 우리나라 장(醬)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지』의 「위지동이전」에 고구려 사람들이 발효식품을 잘 만든다는 뜻으로 선장양(善醬釀)이라고 하였고, 고구려 안악3호분 고분벽화 등에는 장을 보관한 듯한 옹기독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데에서 유래가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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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지역에서 밭에서 김을 매면서 부르던 노동요. 「우수영 들소리」는 밭에서 김을 맬 때 여성들이 부르던 농업 노동요이다. 노래를 부르면 속도가 일정해지고 손놀림을 맞출 수 있어 일의 능률을 높일 수 있다. 주로 여성들의 고된 생활과 삶의 희로애락에 관한 내용으로 사설이 구성되어 있다. 「우수영 들소리」는 1980년 해남군사편찬위원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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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지역에서 밭에서 김을 매면서 부르던 노동요. 「우수영 들소리」는 밭에서 김을 맬 때 여성들이 부르던 농업 노동요이다. 노래를 부르면 속도가 일정해지고 손놀림을 맞출 수 있어 일의 능률을 높일 수 있다. 주로 여성들의 고된 생활과 삶의 희로애락에 관한 내용으로 사설이 구성되어 있다. 「우수영 들소리」는 1980년 해남군사편찬위원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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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에 우수영 성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우수영 성과 우수영 사람들」은 해남군 문내면에 있는 우수영(右水營) 성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명량대첩(鳴梁大捷)[1597]을 승리로 이끈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인 우수영을 지역 주민들이 충(忠)과 효(孝)의 정신으로 지켜 내었다는 내용이다. 「우수영 성과 우수영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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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전승되어 놀이판 등에서 부르던 유희요. 「우수영 아리랑타령」은 전라남도 해남 지역의 부녀자들이 놀이판 등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즐겨 부르던 노래이다. 흔히 「진도아리랑」이라고도 부른다. 일반적으로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라는 후렴구가 붙는다. 「우수영 아리랑타령」은 2013년 문내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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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에 있는 전통시장. 우수영5일시장은 4일과 9일에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으며, 인근 해역에서 잡은 신선한 해산물과 황토에서 자란 양파, 고구마 등 지역 특산 농수산물과 지역 주민들의 생필품까지 판매하는 장옥형 공설시장이다. 1995년 편찬된 『해남군사』에 따르면 해남 우수영5일시장의 형성 시기는 1945년 광복 직후이다. 우수영5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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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에 있는 전문 예술단체. 우수영강강술래·부녀농요진흥보존회는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 강강술래와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20호 우수영부녀농요를 보존하고자 2003년에 우수영강강술래진흥보존회로 설립된 예술단체이다. 전라남도 해남군과 진도군을 중심으로 서남해안에서 성행하던 강강술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속놀이로, 집단적인 군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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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우수영교회(右水營敎會)는 해남 최초의 개신교 교회이다. 수영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894년 4월 19일 이눌러 선교사 일행이 해남 목장을 지나 우수영에 도착하여 밀렸던 빨래도 하면서 우수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1894년 4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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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우수영 예하 해남 여러 면의 군관 명부. 관안(官案)은 조선시대 중앙과 지방의 각 기관과 관청에 소속된 관리들의 명단이다. 관원의 관직명·성명·생년·본관 등을 간략하게 적어 놓았다. 전라우수영은 고려 말인 1377년(우왕 3) 무안 당곶포에 수군처치사영(水軍處置使營)이 설치된 뒤 1465년(세조 11) 이후에 해남으로 옮겨져 1907년까지 존속된 수영(水營)이다.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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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 일원인 서상리, 동외리, 선두리에 조성된 문화마을. 우수영마을은 조선시대 전라우도 수순의 본영으로 서해와 남해 바다를 지켜온 성지였다. 또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전선으로 133척의 일본군을 대파한 명량대첩의 현장이기도 하다. 우수영마을은 조선시대 구국의 성지로서 자부심이 대단하였고, 마을은 활기가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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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의 부녀자들이 농사일을 하면서 부르던 노래. 우수영부녀농요는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의 부녀자들이 농사일을 하면서 부르던 민요이다. 1972년 대전에서 열린 제13회 한국민속예술축제 경선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고, 1987년 8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었다. 우수영부녀농요는 1980년 해남군사편찬위원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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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서상리에 위치한 조선시대 전라우수영의 역대 우수사와 우후 등의 이력을 기록한 명부. 선생안은 조선시대 중앙과 지방의 각 기관과 관서에서 전임(前任) 관원의 성명·관직명·생년·본관 등을 적어 놓은 책을 의미한다. 전라우수영은 고려 말인 1377년(우왕 3) 무안 당곶포에 수군처치사영(水軍處置使營)이 설치된 뒤 1465년(세조 11) 이후에 해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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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에 있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소속의 성당. 1955년 공소 모임을 시작하여, 1999년 해남성당에서 분리하여 형성된 해남 우수영 지역의 성당이다.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은 조선시대부터 수군 기지가 있어 마을이 큰 지역이었다. 기독교, 개신교에서도 일찍부터 선교사가 들어와 복음이 빨리 전하여졌다. 지역의 규모와 특성상 우수영 지역에도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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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에 있는 공립중학교. 우수영중학교의 교육목표는 더불어 배우며 미래를 일구는 인간 육성에 있다. 교육목표는 첫째는 남을 배려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도덕인], 둘째는 소질을 계발하고 미래를 열어 가는 실력 있는 사람[실력인], 셋째는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창의적 능력을 신장하는 사람[창의인], 넷째는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고 외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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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에 있는 공립중학교. 우수영중학교의 교육목표는 더불어 배우며 미래를 일구는 인간 육성에 있다. 교육목표는 첫째는 남을 배려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도덕인], 둘째는 소질을 계발하고 미래를 열어 가는 실력 있는 사람[실력인], 셋째는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창의적 능력을 신장하는 사람[창의인], 넷째는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고 외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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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난대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교육목표는 밝은 심성을 가진 어린이, 미래의 핵심 역량을 갖춘 어린이이다. 밝은 심성[明]을 기르고 미래의 핵심 역량[量]을 키우는 우수영 명량(明量) 교육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1918년 7월 1일 명량의숙으로 개설되었다. 1919년 12월 12일 우수영사립보통학교로 인가를 받았고, 1920년 8월 29일 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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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난대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교육목표는 밝은 심성을 가진 어린이, 미래의 핵심 역량을 갖춘 어린이이다. 밝은 심성[明]을 기르고 미래의 핵심 역량[量]을 키우는 우수영 명량(明量) 교육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1918년 7월 1일 명량의숙으로 개설되었다. 1919년 12월 12일 우수영사립보통학교로 인가를 받았고, 1920년 8월 29일 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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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난대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교육목표는 밝은 심성을 가진 어린이, 미래의 핵심 역량을 갖춘 어린이이다. 밝은 심성[明]을 기르고 미래의 핵심 역량[量]을 키우는 우수영 명량(明量) 교육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1918년 7월 1일 명량의숙으로 개설되었다. 1919년 12월 12일 우수영사립보통학교로 인가를 받았고, 1920년 8월 29일 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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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읍 해리와 옥천면 영춘리 경계에 있는 고개. 우슬재는 해남읍 해리와 옥천면 영춘리 경계에 있는 고개이다. 우슬재[牛膝峙]에 대한 기록은 1925년 편찬 『해남군지』에 “군의 동쪽 10리[약 3.93㎞]에 있다. 즉 금강의 중맥으로 금강 즉 군의 진산인 미암의 상맥이다. 옛날의 관로는 군의 경계인 가치현(加峙峴)[지금의 삼산면 상가리 구렁목재]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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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비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우슬재 비바위전설」은 해남군 해남읍 해리의 비바위에서 만난 여인과 부부의 연을 맺은 소금 장수가 금기를 어겨 부인과 아이를 잃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우슬재 비바위전설」은 2016년 12월 1일 해남군 해남읍 해남종합사회복지관에서 채록하였으며, 구술자는 황연명[남]이다. 2017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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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송산리와 해남읍 신안리를 연결하는 터널. 2017년 현재 우리나라 터널 갯수는 2,382개이며, 연장길이는 1,811㎞이다. 일반국도는 668개[28.0%], 특별시도와 광역시도는 187개[7.9%], 국가지원지방도는 91개[3.8%], 지방도는 199개[5.0%]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슬재를 관통하고 있어서 우슬터널로 부르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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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에 있는 복합 공공 체육시설. 우슬체육공원은 지역사회 화합 및 지역민의 건강 증진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며 주민들의 건전한 여가 선용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차별화된 스포츠마케팅으로 사계절 전지훈련팀 유치 및 각종 체육대회 유치를 이끌어 내며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하는 종합 체육공원이다. 우슬체육공원은 체육시설 확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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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읍 해리와 옥천면 영춘리 경계에 있는 고개. 우슬재는 해남읍 해리와 옥천면 영춘리 경계에 있는 고개이다. 우슬재[牛膝峙]에 대한 기록은 1925년 편찬 『해남군지』에 “군의 동쪽 10리[약 3.93㎞]에 있다. 즉 금강의 중맥으로 금강 즉 군의 진산인 미암의 상맥이다. 옛날의 관로는 군의 경계인 가치현(加峙峴)[지금의 삼산면 상가리 구렁목재]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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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법정리.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우항이라는 명칭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마을의 형세가 소가 누워 휴식을 취하는 와우형(臥牛形)이라 하고, ‘소의 목’ 부위에 해당되는 위치에 이재량이 집터를 잡은 까닭에 ‘소목’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로 보아 이재량의 선대에서 땅의 형국에 따라 ‘우항’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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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금평리·영호리·후산리에 경계에 있는 산. 운거산(雲居山)은 항상 산이 구름 속에 잠겨 있다 하여 붙여졌다. 땅끝에서 뻗어 내린 화원지맥에 속한다. 청룡천과 후산천의 발원지이다. 산자락에 수백 년 묵은 울창한 비자나무 숲이 장관을 이룬다. 2011년 8월 26일 해남 서동사 동백나무·비자나무 숲(海南瑞洞寺冬柏나무·榧子나무숲)은 천연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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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에 있는 법정리. 운전마을은 1850년 쯤에 평산신씨가 이주하여 정착하면서 신기(新基)라 하였다가, 마을 산세와 지형이 구름처럼 넓다 하여 운곡리(雲谷里)라 부르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운곡리와 장전리에서 한 글자씩 따서 운전리(雲田里)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영암군 북평시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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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와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사이에 있는 해협. 해남 우수영의 명량(鳴梁)은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왜군의 선단과 싸워 승전한 명량대첩(鳴梁大捷)의 격전지이다. 명량해협(鳴梁海峽)은 조선시대에 해남의 우수영(右水營)과 진도의 녹진(鹿津)이 연결되었고, 해남의 삼지원(三枝院)은 진도의 벽파진(碧波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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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에 울돌목 처녀골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울돌목 처녀골 이야기」는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화원반도 앞에 있는 해협인 울돌목의 처녀골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이다. 울돌목에 빠져 죽은 처녀가 귀신이 되어 동생들도 물속으로 데려가려고 할 때 동생들이 귀신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쑥대를 잡아 겨우 살아났다는 내용이다. 「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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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윤복(尹復)[1512~1577]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원례(元禮), 호는 행당(杏堂) 또는 석문(石門)이다. 해남윤씨의 파시조인 어초은(漁樵隱) 윤효정(尹孝貞)과 정귀영(鄭貴瑛)의 딸 해남정씨(海南鄭氏)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인 윤구(尹衢)·윤행(尹行)과 함께 과거에 합격하여 해남윤씨 집안의 기틀을 다졌다. 윤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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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에 있는 원불교 교당. 원불교는 1916년 4월 소태산 박중빈(朴重彬)[1891~1943] 대종사가 창시한 종교이다. 원불교는 연원을 불법에 두고 있으나 신앙 대상의 상징이 다르며, 불교와의 역사적 교섭 관계가 전혀 없다. 교단의 운영 방식과 제도면에서도 종래의 사찰 제도와는 다르게 운영된다. 즉 근본적 진리는 서로 상통하나 교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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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에 있는 원불교 교당. 원불교는 1916년 4월 소태산 박중빈(朴重彬)[1891~1943] 대종사가 창시한 종교이다. 원불교는 연원을 불법에 두고 있으나 신앙 대상의 상징이 다르며, 불교와의 역사적 교섭 관계가 전혀 없다. 교단의 운영 방식과 제도면에서도 종래의 사찰 제도와는 다르게 운영된다. 즉 근본적 진리는 서로 상통하나 교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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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신우를 시조로 하고 이영화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해남군의 세거 성씨. 원주이씨(原州李氏)는 해남군의 세거 성씨 가운데 하나로, 입향지인 마산면을 중심으로 해남 각지에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원주 이씨의 시조 이신우(李申佑)는 신라 때 양산 촌장을 지낸 표암공 이알평(李謁平)의 원손이며, 고려 문종 때 병부상서를 지내고 경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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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에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 목포노회 소속 교회. 마을 사람들에게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목적으로 원진교회가 설립되었다. 1907년 변요한 선교사와 임성옥 조사의 전도를 받은 진인범, 이치도에 의해 원진리에서 교회가 시작되었다. 이후에 이웃마을인 동창리로 교회 처소를 옮겼다. 1920년 예배당을 동창리에서 다시 원진리로 옮겼으며, 맹현리 선교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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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에 있는 법정리. 원진리(院津里)는 원(院)[고려시대·조선 시대에 출장한 관원들을 위해 각 요로와 인가가 드문 곳에 둔 국영 숙식시설]이 있는 나루였다고 하여 원나루라고 부른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본래 진도군 삼촌면의 지역으로 1906년(광무 10) 해남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목신리, 옹암리 일부와 녹산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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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원진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마을에 기독교 복음 전파를 목적으로 교회가 설립되었다. 1907년 목포선교부에 있던 변요한 선교사와 임성옥 조사의 전도를 받은 진인범, 이치도 신자에 의해 원진마을에서 교회가 시작되었으며, 후에 이웃마을인 동창리로 교회 처소를 옮겼다. 1920년 예배당을 동창리에서 다시 원진리로 옮겼으며, 맹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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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원진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마을에 기독교 복음 전파를 목적으로 교회가 설립되었다. 1907년 목포선교부에 있던 변요한 선교사와 임성옥 조사의 전도를 받은 진인범, 이치도 신자에 의해 원진마을에서 교회가 시작되었으며, 후에 이웃마을인 동창리로 교회 처소를 옮겼다. 1920년 예배당을 동창리에서 다시 원진리로 옮겼으며, 맹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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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법정리. 원님이나 사또들이 유숙하였던 곳으로 원터라 불리어 원호(院湖)라는 명칭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본래 산일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원호리, 학동리, 교동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황산면 원호리로 개설하였다. 현재 원호마을, 교동마을, 학동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원호마을은 약 400년 전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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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원호리 원호마을에서 음력 2월 초하루에 마을의 안녕과 액운 방지를 목적으로 지내는 마을 제사. 해남군 황산면 원호리 원호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2월 초하루에 짐대[솟대] 앞에서 제사를 지낸다. 짐대는 장승이나 입석처럼 마을을 수호하고 액운을 방지하는 신앙물로, 긴 장대 위에 오리 모양의 나무를 깎아 올려놓은 것이다. 원호마을은 풍수지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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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신계리에 월곡마을 우대미샘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월곡리 우대미샘과 구렁이」는 해남군 옥천면 신계리의 자연마을인 월곡리에 있는 오래된 샘에 구렁이가 들어간 후부터 물이 적게 나온다는 이야기이다. 「월곡리 우대미샘과 구렁이」는 2016년 12월 16일 해남군 마산면 화내리 263-2 마산면사무소에서 채록하였으며, 구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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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임구령(林九齡)[1501~1562]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자는 연수(年樹), 호는 월당(月堂)이다. 고조할아버지는 동복현감을 지낸 임간(林幹), 증조할아버지는 증 이조참의 임득무(林得茂), 할아버지는 진안현감을 지낸 임수(林秀)이다. 아버지는 임우형(林遇亨)이고 어머니는 참봉 박자회(朴子回)의 딸 음성박씨(陰城朴氏)이다. 임천령(林千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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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지역에서 겨울철에 재배되는 배추. 따뜻한 해양성 기후인 해남군은 한겨울에도 배추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재배 환경을 지니고 있다. 해남군은 겨울철에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배추밭이 장관을 이루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전국 최대 배추 생산지인 해남군에서 자란 겨울배추는 미네랄이 풍부한 황토에서 해풍을 맞고 자라 맛과 영양이 뛰어나다. 또한 해남겨울배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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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월송리에 있는 전통시장. 4일과 9일에 해남 현산면 월송리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작은 규모의 시장이며, 장옥형 공설시장이다. 월송5일시장은 송지면 월송리에서 1964년에 처음 개설되었다. 1964년 개설 당시는 송지면 월송리에 있어 송지장으로 불렸다. 1973년에 월송리가 현산면에 편입되면서 현재는 월송장 또는 송지장으로 혼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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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월송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주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신도들이 자기가 거주하는 동네에 예배당의 필요성을 느껴서 시작되었다. 월송교회(月松敎會)[현산면(縣山面)]는 1949년 11월 28일 주변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하던 신자들이 김광석 자택에 모여 예배를 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교인이 증가하면서 개인 집에서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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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에 있는 법정리. 조선 명종 때 마을이 소나무 숲으로 우거져 있고, 소나무 위로 달이 뜨면 노송 아래 모여 마을 일을 의논하였다 하여 월송(月松)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또는 마을 모양이 앞산에서 보면 반달처럼 생겼다 하여 월송이라 한다는 설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영암군 송지시면에 속한 지역이었다가, 1906년(광무 10) 해남군에 편입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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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월송리에 있는 전통시장. 4일과 9일에 해남 현산면 월송리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작은 규모의 시장이며, 장옥형 공설시장이다. 월송5일시장은 송지면 월송리에서 1964년에 처음 개설되었다. 1964년 개설 당시는 송지면 월송리에 있어 송지장으로 불렸다. 1973년에 월송리가 현산면에 편입되면서 현재는 월송장 또는 송지장으로 혼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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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월송리에 있는 전통시장. 4일과 9일에 해남 현산면 월송리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작은 규모의 시장이며, 장옥형 공설시장이다. 월송5일시장은 송지면 월송리에서 1964년에 처음 개설되었다. 1964년 개설 당시는 송지면 월송리에 있어 송지장으로 불렸다. 1973년에 월송리가 현산면에 편입되면서 현재는 월송장 또는 송지장으로 혼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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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법정리. 누리, 누리동이라 불렸다가, 마을 형태가 달처럼 생겨서 월평(月坪)으로 바뀌었다. 영암군 옥천시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다산리, 해석리, 기평리, 덕산리, 팔산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옥천면 월평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월평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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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에 있는 법정리. 월호마을은 ‘노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노하(路下)라는 이름이 나타나고, 월호(月湖)라는 지명도 나온다. 마을 입향조가 월채산에 떠오르는 달이 연못에 비추는 것을 보고 시를 짓다 마을 이름을 ‘월호(月湖)’라 지었다고 전해진다. 본래 해남군 화이면 지역이었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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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에 있는 법정리. 월호리(月湖里)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월하리(月下里)의 첫 글자와 당호리(唐湖里)의 가운데 글자를 취하여 지은 이름이다. 본래 해남군 장동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동면의 월하리, 화동리, 당호리, 그리고 억수리 일부를 합하여 해남군 화원면 월호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당포마을, 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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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에서 활동한 학자. 유계린(柳桂鄰)[1478~1528]은 해남에 은거하면서 학문 연마와 자녀 교육에 힘써 선산유씨(善山柳氏) 가문이 사림(士林)의 명문으로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유계린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호는 성은(城隱)이다. 할아버지는 유양수(柳陽秀), 아버지는 유공준(柳公濬)이다. 동생은 유계근(柳桂近)이며, 호남삼걸(湖南三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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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이루어지는 공자의 사상과 관련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전반. 유교(儒敎)는 중국 춘추시대 말기에 공자가 체계화한 사상인 유학(儒學)을 종교적 관점에서 이르는 말이다. 유교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전래되고 활용된 것은 삼국시대이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숭상되었지만 정치의 이념과 운영은 유교에서 구하였다. 고려 말에는 유학의 한 파인 성리학이 전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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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향교, 서원, 사우, 누각, 정자, 정려각 등 유교 건축. 전라남도 해남 지역은 유교 건축(儒敎建築)은 향교, 서원, 사우, 누각, 정자, 정려각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향교는 지방 교육 기관으로 제사와 교육이 주된 기능이며 관아와 비교되는 건조물이다. 서원과 사우는 제사 기능에서는 동일하지만 서원은 교육 기능이 있다. 그런데 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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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향교, 서원, 사우, 누각, 정자, 정려각 등 유교 건축. 전라남도 해남 지역은 유교 건축(儒敎建築)은 향교, 서원, 사우, 누각, 정자, 정려각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향교는 지방 교육 기관으로 제사와 교육이 주된 기능이며 관아와 비교되는 건조물이다. 서원과 사우는 제사 기능에서는 동일하지만 서원은 교육 기능이 있다. 그런데 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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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음력 유월 보름에 행하는 풍속. 유두(流頭)는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의 약자로,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한다.’라는 의미이다. 해남 지역에서는 이날 하루를 쉬면서, 주로 제를 모시기도 하고 시절 음식을 장만해 먹는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보면 “이달 15일을 우리나라 풍속에서는 유둣날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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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음력 유월 보름에 행하는 풍속. 유두(流頭)는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의 약자로,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한다.’라는 의미이다. 해남 지역에서는 이날 하루를 쉬면서, 주로 제를 모시기도 하고 시절 음식을 장만해 먹는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보면 “이달 15일을 우리나라 풍속에서는 유둣날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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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에 있는 식용유 제조 판매 중소기업. 주식회사 유맥은 옥수수유, 대두유, 올리브유, 카놀라유, 포도씨유를 제조하여 판매하는 식물성 유지 제조 전문기업이다. 소비자가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최고 품질의 식용유를 제조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72년 해남제유공업사를 설립함으로써 출발하였다. 1984년 해남유지공업사로 상호를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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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에 있는 대흥사 입구에 건립된 전통 한옥 여관. 유선관(遊仙館)은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대흥사 입구에 있다. 대흥사는 6세기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지방 고찰로 201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유선관은 본래 대흥사를 찾는 수도승이나 방문객의 숙소로 지어진 건물이었으나 1970년대부터 일반 여관으로 사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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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유성춘(柳成春)[?~?]은 해남 출신의 문신으로 윤구(尹衢)·최산두(崔山斗)와 함께 호남삼걸(湖南三傑)로 일컬어졌다. 유성춘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자는 천장(天章), 호는 나옹(懶翁)·성은(城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유양수(柳陽秀), 할아버지는 유공준(柳公濬), 아버지는 유계린(柳桂隣)이다. 어머니는 최부(崔溥)[145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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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에 있는 전문 증권사의 해남 지점. 유안타증권은 대만 유안타금융그룹 계열사인 증권회사로 한국 현지법인이다. 유안타증권 해남지점은 1995년 개점하여 현재까지 증권업의 영업을 영위하고 있다. 유안타증권 해남지점은 1995년 1월 개점하였다. 해남 지역의 유일한 전문 증권사로서 지역경제에 이바지하기 위해 개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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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영홍(兪榮洪)[1905~1943]은 1905년 11월 11일 해남군 해남읍 용정리에서 태어났다. 해남군청에서 조선어 사용을 역설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유영홍은 1926년 9월부터 1936년까지 전라남도 각 지역에서 공립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42년 6월 17일 오전 11시 해남군청을 방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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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무신. 이유길(李有吉)[?~?]은 임진왜란 당시 명량해전에서 공을 세웠으며, 1619년 평안도 영유(永柔)현감으로 있을 때 후금 토벌을 위해 명나라가 조선에 출병을 요청하자 강홍립(姜弘立)[1560~1627]의 부장으로 참전하였다. 이유길의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는 유지(有之), 시호는 충의(忠義)이다. 할아버지는 광국공신(光國功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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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에서 활동했던 문인화가. 윤용(尹愹)[1708~1740]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군열(君悅), 호는 청고(靑皐)·유헌(萸軒)·소선(蕭仙)이다. 할아버지는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이며 아버지는 윤덕희(尹德熙), 어머니는 심채원의 딸 청송심씨(靑松沈氏)이다. 부인은 이명우(李明遇)의 딸 성산이씨(星山李氏)이다. 윤용은 1708년(숙종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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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일원에 있는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가 큰 문화유산과 고고 자료. 해남군 일원에 있는 유형유산 가운데 국가 지정 문화재는 국보 2점, 보물 19점이 있다. 전라남도 지정문화재는 유형문화재 13점, 문화재자료는 7점이 있다. 향토문화유산은 12점이 있다. 비지정 문화재는 해남윤씨 녹우당 고문서와 고문헌, 사찰문화재 등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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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일원에 있는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가 큰 문화유산과 고고 자료. 해남군 일원에 있는 유형유산 가운데 국가 지정 문화재는 국보 2점, 보물 19점이 있다. 전라남도 지정문화재는 유형문화재 13점, 문화재자료는 7점이 있다. 향토문화유산은 12점이 있다. 비지정 문화재는 해남윤씨 녹우당 고문서와 고문헌, 사찰문화재 등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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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일원에 있는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가 큰 문화유산과 고고 자료. 해남군 일원에 있는 유형유산 가운데 국가 지정 문화재는 국보 2점, 보물 19점이 있다. 전라남도 지정문화재는 유형문화재 13점, 문화재자료는 7점이 있다. 향토문화유산은 12점이 있다. 비지정 문화재는 해남윤씨 녹우당 고문서와 고문헌, 사찰문화재 등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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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일원에 있는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가 큰 문화유산과 고고 자료. 해남군 일원에 있는 유형유산 가운데 국가 지정 문화재는 국보 2점, 보물 19점이 있다. 전라남도 지정문화재는 유형문화재 13점, 문화재자료는 7점이 있다. 향토문화유산은 12점이 있다. 비지정 문화재는 해남윤씨 녹우당 고문서와 고문헌, 사찰문화재 등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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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유희춘(柳希春)[1513~1577]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자는 인중(仁仲), 호는 미암(眉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유양수(柳陽秀)이고 할아버지는 유공담(柳公澹)이다. 아버지는 유계린(柳桂鄰)이며, 어머니는 금남(錦南) 최부(崔溥)의 딸 탐진최씨(耽津崔氏)이다. 형은 유성춘(柳成春)이다. 유희춘은 해남에서 태어나 아버지 유계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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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일평리와 송지면 통호리에 있는 수령 약 120~300년의 소나무 2그루. 한반도를 비롯하여 일본, 중국 등 주로 해발 1300m 이하에서 자란다. 솔나무·적송·육송이라고도 한다. 해송, 곰솔과 매우 유사한 수형을 가지고 있다. 사철 푸르름을 잃지 않고 ,수형이 아름다워 조경수 등으로 인기가 많은 나무이다. 높이 35m, 지름 1.8m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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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사는 토박이가 전통적으로 사용하였던 육아에 관련된 말. 해남 지역에서 사용한 육아 관련 어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육아 관련 어휘] 1. 갓난아이와 어린아이 ‘갓난아이’는 해남에서 ‘깟나이’, ‘깟난애기’라고 한다. ‘갓난아이’에서 조금 더 크면 ‘갓난-’이 생략되고 ‘애기’가 된다. 그래서 ‘어린아이’를 해남 지역어에서는 ‘애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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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서 6박 진양조장단에 맞추어 부르던 향토민요. 「육자백이」는 서도소리 「수심가」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 민요이다. 「육자백이」라는 명칭은 6박 진양조장단에 맞기 때문에 지어진 듯하다. 진양조는 박자가 매우 느려 한스럽고 서정적인 가락을 지니나, 억양이 강하고 구성지다. 임정순이 부른 「육자백이」는 1997년 남도민속학회에서 발간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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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서 6박 진양조장단에 맞추어 부르던 향토민요. 「육자백이」는 서도소리 「수심가」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 민요이다. 「육자백이」라는 명칭은 6박 진양조장단에 맞기 때문에 지어진 듯하다. 진양조는 박자가 매우 느려 한스럽고 서정적인 가락을 지니나, 억양이 강하고 구성지다. 임정순이 부른 「육자백이」는 1997년 남도민속학회에서 발간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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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윤광계(尹光啓)[1559~?]는 많은 시문을 남겨 해남윤씨(海南尹氏) 집안 문인학풍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해남의 귤정(橘亭) 윤구(尹衢), 귤주(橘洲) 민여안(閔與顔)과 함께 3귤로도 불리고 있다. 윤광계의 자는 경열(景說), 호는 귤옥(橘屋)이며, 본관은 해남(海南)이다. 해남윤씨 득관조인 윤효정(尹孝貞)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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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윤구(尹衢)[1495~?]는 해남윤씨(海南尹氏) 문중에서 가장 먼저 중앙 관계에 진출한 인물이다. 문장이 뛰어나 광양 최산두(崔山斗)[1483~1536], 해남의 유성춘(柳成春)[?~?]과 더불어 호남삼걸로 불렸다. 또한 기묘사화 때 화를 입은 을묘명현(乙卯名賢) 중 한 사람이다. 윤구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형중(亨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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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윤구(尹衢)[1495~?]는 해남윤씨(海南尹氏) 문중에서 가장 먼저 중앙 관계에 진출한 인물이다. 문장이 뛰어나 광양 최산두(崔山斗)[1483~1536], 해남의 유성춘(柳成春)[?~?]과 더불어 호남삼걸로 불렸다. 또한 기묘사화 때 화를 입은 을묘명현(乙卯名賢) 중 한 사람이다. 윤구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형중(亨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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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해남 출신 윤광전이 아들 윤단학에게 노비를 상속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문서. 윤광전(尹光琠)은 해남윤씨(海南尹氏) 중시조로 영동정공(令同正公)이라고 불린다. 고려 공민왕 때 사온직장영동정(四醞直長令同正)을 지냈으며, 부인은 대호군(大護軍) 박환(朴環)의 딸 함양박씨(咸陽朴氏)이다. 윤광전의 아들인 윤단학(尹丹鶴)은 고려 우왕(禑王) 때 군기소윤(軍器少尹)을 지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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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해남 출신 윤광전이 아들 윤단학에게 노비를 상속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문서. 윤광전(尹光琠)은 해남윤씨(海南尹氏) 중시조로 영동정공(令同正公)이라고 불린다. 고려 공민왕 때 사온직장영동정(四醞直長令同正)을 지냈으며, 부인은 대호군(大護軍) 박환(朴環)의 딸 함양박씨(咸陽朴氏)이다. 윤광전의 아들인 윤단학(尹丹鶴)은 고려 우왕(禑王) 때 군기소윤(軍器少尹)을 지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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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1년 열두 달 외에 더 있는 달에 행해지는 풍속. 지구가 태양을 한 번 공전하는 데에 365일 5시간 48분 46초가량 걸린다. 365일을 1년으로 삼는 태양력에서는 나머지 시간을 모아 4년마다 한 번 2월을 하루 늘리며 이 하루 늘어난 해를 윤년이라 한다. 태음력에서는 1년이 354일이므로 달력의 계절과 실제 계절과의 차이를 조절하기 위하여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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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인화가. 윤덕희(尹德熙)[1685~1766]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경백(敬伯), 호는 낙서(駱西)·연포(蓮圃)·연옹(蓮翁)·현옹(玄翁)이다. 아버지는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부인은 심채원의 딸 청송심씨(靑松沈氏)이며, 문인화가 윤용(尹愹)이 아들이다. 윤덕희는 1685년(숙종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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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통호리와 북평면 영전리에서 윤선도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해남군 송지면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윤도산(崙道山)[284m]이라 불리는 산이 있다. 「윤도산 샘물과 윤선도」는 조선 후기의 문인 윤선도(尹善道)[1587~1671]가 산 정상에 있는 샘물을 마신 후 말라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윤도산 샘물과 윤선도」는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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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인이자 화가. 윤두서(尹斗緖)[1668~1715]는 정선(鄭敾), 심사정(沈師正)과 함께 조선 후기 삼재로 손꼽힌 문인화가이다. 당시 중국의 영향 속에 있던 회화의 굴레에서 벗어나 사실주의와 풍속화라는 새로운 화풍을 개척하였다. 윤두서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효언(孝彦), 호는 공재(恭齋) 또는 종애(種涯)이다. 고산(孤山)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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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연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화가 공재 윤두서가 자신의 모습을 그린 회화 작품. 「윤두서자화상(尹斗緖自畵像)」은 조선 후기 선비 화가 공재 윤두서(尹斗緖)[1668~1715]가 그린 자화상으로 1987년 12월 26일 국보 제240호로 지정되었다. 윤두서는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증손으로 자는 효언(孝彦), 호는 공재(恭齋)이다. 1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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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에 있었던 전라우수영의 수사를 지낸 무신. 윤득홍(尹得洪)[1372~1448]의 본관은 무안(務安)이며, 시호는 양정(襄靖)이다. 아들은 윤건관(尹建官)이다. 윤득홍은 1372년(공민왕 21) 전라도 무안에서 천민으로 태어났다. 1419년(세종 1) 백령도(白翎島)에서 왜구를 물리친 공으로 우군첨총제(右軍僉摠制)가 되었고, 이듬해에 동지총제(同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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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윤씨 가문의 천주교인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 윤지충[1759~1791]의 본관은 해남이며, 세례명은 바오로이다. 해남윤씨 출신으로 증조부가 윤두서(尹斗緖)이다. 아버지는 윤경(尹憬)이며, 어머니는 권기징(權沂徵)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부인은 이종연(李宗延)의 딸 연안이씨(延安李氏)이다. 정약용(丁若鏞)과는 외사촌간이며, 1801년 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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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옥하(尹玉夏)[1901~1929]는 1901년 12월 7일 해남군 화산면에서 태어났다. 해남공립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4월 6일 해남 지역 최초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윤병하(尹秉夏)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해남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은 해남읍에 있던 해남공립보통학교 생도들에 의해 처음 전개되었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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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윤복(尹復)[1512~1577]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원례(元禮), 호는 행당(杏堂) 또는 석문(石門)이다. 해남윤씨의 파시조인 어초은(漁樵隱) 윤효정(尹孝貞)과 정귀영(鄭貴瑛)의 딸 해남정씨(海南鄭氏)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인 윤구(尹衢)·윤행(尹行)과 함께 과거에 합격하여 해남윤씨 집안의 기틀을 다졌다. 윤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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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봉현(尹奉鉉)[1922~1944]은 1922년 3월 9일 해남군 현산면 백포리에서 태어났다. 광주서중 동맹휴학 사건으로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윤봉현은 광주서중 재학 시절인 1941년 3월에 기환도(奇桓度)·기영도(奇英度)·신균우(申均雨) 등 무등회(無等會) 회원들과 함께 광주 금동(錦洞)에서 모임을 갖고 무등회의 조직을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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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봉현(尹奉鉉)[1922~1944]은 1922년 3월 9일 해남군 현산면 백포리에서 태어났다. 광주서중 동맹휴학 사건으로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윤봉현은 광주서중 재학 시절인 1941년 3월에 기환도(奇桓度)·기영도(奇英度)·신균우(申均雨) 등 무등회(無等會) 회원들과 함께 광주 금동(錦洞)에서 모임을 갖고 무등회의 조직을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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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신이자 시조작가. 윤선도(尹善道)[1587~1671]는 해남윤씨(海南尹氏)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 여러 벼슬을 역임한 문신이자 국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문인이다. 윤선도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약이(約而), 호는 고산(孤山)·해옹(海翁),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아버지는 예빈시부정(禮賓寺副正) 윤유심(尹唯深)이고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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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에 있는 조선 중기 고산 윤선도가 남긴 수적 및 관계 문서. 윤선도 종가 문적(尹善道宗家文籍)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국문학사의 최고 시문학인으로 평가받는 고산 윤선도(尹善道)[1587~1671] 가 직접 손으로 쓰거나, 엮어 펴낸 수적들과 관계된 여러 문헌들을 일괄하여 1968년 12월 19일 보물 제482호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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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성하(尹晟夏)[1911~1949]는 1911년 6월 5일 해남군 삼산면 상가리에서 태어났다. 광주공립농업학교 재학 중 광주학생항일운동을 이끌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윤성하는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난 1929년 11월 당시 광주공립농업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1929년 11월 3일 광주고등보통학교의 한국인 학생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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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옥하(尹玉夏)[1901~1929]는 1901년 12월 7일 해남군 화산면에서 태어났다. 해남공립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4월 6일 해남 지역 최초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윤병하(尹秉夏)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해남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은 해남읍에 있던 해남공립보통학교 생도들에 의해 처음 전개되었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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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에서 활동했던 문인화가. 윤용(尹愹)[1708~1740]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군열(君悅), 호는 청고(靑皐)·유헌(萸軒)·소선(蕭仙)이다. 할아버지는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이며 아버지는 윤덕희(尹德熙), 어머니는 심채원의 딸 청송심씨(靑松沈氏)이다. 부인은 이명우(李明遇)의 딸 성산이씨(星山李氏)이다. 윤용은 1708년(숙종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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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윤의중(尹毅中)[1524~1590]은 중앙의 여러 요직을 거치고 경제적 부를 축적하여 해남윤씨 가문이 16세기 명문 사족으로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윤의중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치원(致遠), 호는 낙천(駱川) 또는 태천(駘川)이다. 할아버지는 해남윤씨 득관조인 윤효정(尹孝貞)이며, 아버지는 윤구(尹衢)이다. 고산(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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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이신(尹二申)[1896~1964]은 1896년 5월 11일 해남군 문내면 석교리에서 태어났다. 1944년 목포에 거주하면서 일제가 패망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파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윤이신은 1944년 당시 목포시 죽교동에 있던 왕산한약국(旺山韓藥局)에서 점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일제는 중일전쟁을 일으킨 이후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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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인. 윤이후(尹爾厚)[1636~1699]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재경(載卿), 호는 지암(支菴)이다. 할아버지는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이고, 아버지는 윤의미(尹義美), 어머니는 동래정씨(東萊鄭氏)이다. 윤이후가 태어나기 열흘 전 아버지 윤의미가 스물네 살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어머니 동래정씨도 남편을 따라 죽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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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윤인미(尹仁美)[1607~1674]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자수(子壽), 호는 치헌(癡軒)이다. 아버지는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이며, 어머니는 윤돈(尹暾)의 딸 남원윤씨(南原尹氏)이다. 부인은 구봉(九峯) 유항(柳恒)[1574~1647]의 딸 전주유씨(全州柳氏)이다. 형제로는 윤의미(尹義美)와 윤예미(尹禮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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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0년 10월 9일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152에서 태어난 윤인섭(尹仁燮)[1900~1967]은 1920년 문내면에서 발생한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전국 각지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되었고, 해남군의 경우 1919년 4월 6일 해남면에서 해남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주도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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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주연(尹柱淵)[1916~2010]은 1916년 4월 21일 해남군 삼산면 창리에서 태어났다.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에 조선학생동지회(朝鮮學生同志會)를 조직하여 항일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윤주연은 연희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9년 12월 서울 사직동에 있던 자신의 집에서 동교생 김상흠(金相欽)·서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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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윤씨 가문의 천주교인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 윤지충[1759~1791]의 본관은 해남이며, 세례명은 바오로이다. 해남윤씨 출신으로 증조부가 윤두서(尹斗緖)이다. 아버지는 윤경(尹憬)이며, 어머니는 권기징(權沂徵)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부인은 이종연(李宗延)의 딸 연안이씨(延安李氏)이다. 정약용(丁若鏞)과는 외사촌간이며, 1801년 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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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창하(尹敞夏)[1908~1984]는 1908년 4월 9일 해남군 화산면 율동리에서 태어났다. 광주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에 학생 항일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윤창하는 광주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1928년 6월, 같은 학교 이경채(李景采)의 퇴학 처분에 대항하여 일으킨 동맹휴학에 참가하였다. 동맹휴학 참가 건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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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윤행(尹行)[?~?]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대용(大用), 호는 졸재(拙齋)이다. 할아버지는 윤경(尹耕)이고, 아버지는 어초은(漁樵隱) 윤효정(尹孝貞)[1476~1543]이다. 형은 윤구(尹衢)·윤항(尹衖)이며 동생은 윤복(尹復)·윤종(尹從)·윤후(尹後)이다, 형제들 중 윤구·윤복도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다. 윤행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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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인. 윤효정(尹孝貞)[1476~1543]은 해남윤씨 해남 입향조이자 어초은파(漁憔隱派) 파조이다. 해남윤씨가 지역의 명문 사족으로 성장하는 기틀을 닦았다. 윤효정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희삼(希參), 호는 어초은(漁憔隱)이다. 아버지는 윤경(尹耕)이며, 부인은 정귀영(鄭貴瑛)의 딸 해남정씨(海南鄭氏)이다. 윤구(尹衢), 윤행(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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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에 있는 법정리. 율동마을은 밤나무가 많아 밤나무골, 밤골이라고 불리다가 한자로 율동(栗洞)으로 부르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덕리(龍德里)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화산면 율동리가 개설되었다. 율동리에는 율동마을과 용덕마을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율동마을은 1540년 무렵 송산리 시목마을에서 해남윤씨 윤후강(尹厚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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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부곡과 갑길의 이름을 따서 부길리(富吉里)라 하였다. 해남군 화일면 지역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부곡리, 칠암리, 갑길리, 봉황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화산면 부길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부길마을, 갑길마을, 은산마을, 경도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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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장촌리 금강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의 말사. 은적사가 있는 이곳은 본래 다보사(多寶寺)라는 절이 있었고, 부속 암자로 은적암(隱寂庵)이 있었다. 19세기 중반 무렵에 다보사가 폐허가 된 뒤, 은적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다보사는 신라 때인 560년(진흥왕 21)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지만 문헌 기록이 없어 뒷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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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금강산 은적사에 있는 고려 초기에 조성된 철로 만든 비로자나불. 은적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隱蹟寺鐵造毘盧舍那佛坐像)은 해남군 해남읍 금강산 은적사에 있다. 고려 초기에 조성된 철로 만든 비로자나불이다. 1981년 10월 20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6호로 지정되었다. 은적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의 총 높이는 1.06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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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수령 약 150~500년의 은행나무 9그루. 은행나무는 낙엽침엽수로 높이 60m, 지름 4m까지 자란다. 성장 속도가 빠르며, 나무껍질은 회백색, 아래로 깊이 갈라지고 가지가 잘 발달한다. 우리나라 전국에 식재되어 자라고 있으며, 중국에도 서식하고 있다. 은행나무는 햇볕을 좋아하는 양수이며 뿌리가 깊게 들어가 습기 있는 땅을 좋아하나 건조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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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3년·1552년·1555년 세 차례에 걸쳐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 달량진에 왜구가 상륙하여 침탈하였던 사건. 달량진은 현재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의 수군진이다. 1406년(태종 6)에 이미 기록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이른 시기에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달량의 원래 지명은 달도였는데 완도의 달도와 구분하려고 고달도(古達島)라 칭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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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전해지는 여성의 음부를 표현한 노래. 「음부타령」은 해남군에 전해 내려오는 민요인데, 여성의 음부(陰部)를 표현한 노래이다. 「음부타령」은 1980년 해남군사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해남군사』 531쪽에 「음경타령」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채록 시기와 장소는 별도로 표기되어 있지 않다. 「변강쇠가」에는 변강쇠가 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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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전해지는 여성의 음부를 표현한 노래. 「음부타령」은 해남군에 전해 내려오는 민요인데, 여성의 음부(陰部)를 표현한 노래이다. 「음부타령」은 1980년 해남군사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해남군사』 531쪽에 「음경타령」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채록 시기와 장소는 별도로 표기되어 있지 않다. 「변강쇠가」에는 변강쇠가 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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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사는 토박이가 전통적으로 사용하였던 음식에 관련한 어휘. 음식 어휘는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사용하는 음식과 관련한 어휘인데, 주식과 부식, 반찬과 별식, 부엌과 그릇으로 나누어 기술한다. ‘[ ]’ 안의 표기는 표준어, ‘[ ]’ 왼쪽에는 해남 지역어를 한글 맞춤법 방식으로 적는다. 1. 주식 관련 어휘 너른 평야가 있는 해남 지역에서는 가을걷이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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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사람들에게 음식을 판매하거나 제공하는 서비스 및 시설. 해남의 땅끝마을에서는 계절별로 다양한 수산물을 즐길 수 있는데, 청정해역에서 건져 올린 신선한 생선의 회 정식과 디톡스 음식은 단연 전국 으뜸으로 알려져 있다. 땅끝마을에는 해남군에서 지정한 14개의 활어회촌과 5개의 디톡스 바다요리 판매업소가 운영되고 있는데, 각종 활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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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소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시간예술. 전라남도 해남군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강강술래를 비롯하여 우수영부녀농요, 육자배기 등 유서 깊은 음악 전통을 간직한 고장이다. 특히 현대에 와서는 국악 분야에서 뛰어난 판소리 고수(鼓手)와 명창을 많이 배출하였다. 해남은 기후가 온후하고 토질이 비옥하여 예로부터 전형적인 농업 고을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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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소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시간예술. 전라남도 해남군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강강술래를 비롯하여 우수영부녀농요, 육자배기 등 유서 깊은 음악 전통을 간직한 고장이다. 특히 현대에 와서는 국악 분야에서 뛰어난 판소리 고수(鼓手)와 명창을 많이 배출하였다. 해남은 기후가 온후하고 토질이 비옥하여 예로부터 전형적인 농업 고을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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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의 13개 읍면에서 읍·면민의 화합과 결속을 위해 개최되는 행사. 해남군의 13개 읍면에서 읍·면민들의 화합과 우의를 다지기 위해 각 읍면별로 특정한 날을 정하여 ‘읍민의 날’과 ‘면민의 날’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1982년 12월 30일 제정된 「해남군민의 날에 관한 조례」 이후 군민의 날 행사가 매년 5월 1일에 이루어졌다. 「해남군민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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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법정리. 일제강점기에 본정(本町)이라 불렸으나, 1949년 일본식 이름을 정비하면서 해남골의 골안이라고 하여 읍내리(邑內里)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해남군 군일면에 속한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천변리·남문리의 각 일부를 합하여 본정(本町)이라 하여 해남군 해남면 본정으로 개설되었다. 해방 이후 1949년 일본식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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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속한 각 읍면의 행정사무를 맡아보는 기관. 해남군은 14개 읍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읍면사무소는 해남군의 일선 행정기관으로서 대민 행정서비스를 수행하고 있다. 해남읍사무소에는 총무팀, 주민복지팀, 희망돌봄팀, 재무팀, 산업팀, 개발환경팀, 민원봉사팀 등 6개 팀을 두고 있고, 각 면사무소에는 총무팀, 희망돌봄팀, 산업팀, 민원복지팀 등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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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에 있는 법정리. 소금을 저장하는 염창(鹽倉)이 있었으므로 염창이라 불리었으나, 조선 고종 대에 이재양이 정착하여 읍호정(挹湖亭)이라는 정자를 지어 마을 이름을 읍호정, 읍호(挹湖)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계리, 백포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현산면 읍호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읍호마을, 고담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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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대흥사에 있는 9세기 후반에 건립된 석탑. 해남 대흥사 삼층석탑(海南大興寺三層石塔)은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에 있다. 9세기 후반에 건립되었으며 석가여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이라고 한다. 응진전 앞 삼층석탑이라고도 부른다. 해남 대흥사 삼층석탑은 신라 하대 건립 당시의 역사적인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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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대흥사에 있는 9세기 후반에 건립된 석탑. 해남 대흥사 삼층석탑(海南大興寺三層石塔)은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대흥사에 있다. 9세기 후반에 건립되었으며 석가여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이라고 한다. 응진전 앞 삼층석탑이라고도 부른다. 해남 대흥사 삼층석탑은 신라 하대 건립 당시의 역사적인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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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각종 의례 때에 특별히 갖추어 입는 옷. 해남 지역에서는 관혼상제 시에 예를 갖추고자 할 때 의례복을 입는다. 전통적인 의례복은 한복을 위주로 하면서 관복과 도복을 착용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현대에는 점차 의례복도 서양복의 영향을 받거나 전통 복식과 서양 복식이 뒤섞여 있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상례 때 망자가 입는 수의, 혼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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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용정사에 배향된 무신. 이억기(李億祺)[1561~1597]는 임진왜란 당시 전라우수사로서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 경상우수사 원균(元均) 등과 합세하여 왜적을 격파하였다. 이억기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경수(景受), 시호는 의민(毅愍)이다. 심주군 이연손(李連孫)의 아들이다. 이억기는 1577년(선조 10) 무과에 급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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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에서 1910년 사이 해남 지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의병 항쟁. 해남 지역은 비옥한 토지와 연안 지역의 어업에 대한 경제적 침탈이 많은 곳으로 타 지역에 비해 일제의 경제적 침탈이 심하였다. 내륙에서 활동한 의병들이 해남 지역까지 내려와 의병 활동을 하였으며, 지역 주민들도 적극 의병 활동에 가담하였다. 대표적인 의병은 정석진(鄭錫振), 심남일(沈南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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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사는 토박이가 전통적으로 사용하였던 의복과 관련된 말.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사용하는 의복 어휘를 복식과 장식, 천의 종류와 세탁, 바느질과 관련된 어휘로 나누어 기술한다. ‘[ ]’ 안의 표기는 표준어이고, ‘[ ]’ 왼쪽에는 해남 지역에서 사용하는 어휘를 한글 맞춤법 방식으로 적는다. 1. 여자 옷과 장식 해남 지역에서 전통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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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 주민들이 입어 왔던 의복과 이와 관련한 생활 문화. 의생활은 지역의 자연적 환경이나 생업 환경, 문화적 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해남 지역에서는 우리나라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나일론이 나오고 화학섬유가 개발되기 전인 1960년대까지는 명주, 모시, 삼베, 무명을 직접 짜서 가정에서 손수 옷을 만들어 입었다. 여러 직물 중에서도 해남 지역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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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 주민들이 입어 왔던 의복과 이와 관련한 생활 문화. 의생활은 지역의 자연적 환경이나 생업 환경, 문화적 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해남 지역에서는 우리나라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나일론이 나오고 화학섬유가 개발되기 전인 1960년대까지는 명주, 모시, 삼베, 무명을 직접 짜서 가정에서 손수 옷을 만들어 입었다. 여러 직물 중에서도 해남 지역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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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대흥사에서 활동하며 대흥사 13대 종사를 지낸 승려.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의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속명은 장의순(張意恂), 자는 중부(中孚), 법호는 초의, 법명은 의순(意恂)이다. 조선 후기 해남 대흥사에서 활동한 대흥사 13대 종사이며 다성(茶聖)으로도 불린다. 초의선사는 1800년(정조 24) 나주 운흥사(雲興寺)로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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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대흥사에서 활동하며 대흥사 13대 종사를 지낸 승려.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의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속명은 장의순(張意恂), 자는 중부(中孚), 법호는 초의, 법명은 의순(意恂)이다. 조선 후기 해남 대흥사에서 활동한 대흥사 13대 종사이며 다성(茶聖)으로도 불린다. 초의선사는 1800년(정조 24) 나주 운흥사(雲興寺)로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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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무신. 이계년(李桂年)[1541~1593]의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형로(馨老)이다. 탐라백(耽羅伯) 이운(李芸)의 후손이며 사정(司正) 이곤(李鯤)의 아들이다. 이계년은 1541년 해남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용맹이 뛰어났고 지모가 출중하였다. 1591년(선조 24) 무과에 급제하여 남원판관(南原判官), 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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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무신. 이계정(李繼鄭)[1542~1595]은 임진왜란 때 곤양군수(昆陽郡守)와 충청도 수군절도사를 역임하며 왜군을 맞아 싸우다 전사하였다. 이계정의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자는 경윤(景胤)이다. 할아버지는 강릉대도호부사(江陵大都護府使) 이영화(李英華)이며 아버지는 현령(縣令)을 지낸 이장(李樟)이다. 이계정은 1542년(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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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이극인(李克仁)[1602~1641]의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는 사안(士安), 호는 송정(松汀)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국형(李國衡), 할아버지는 호조판서 이후백(李後白)[1520~1578]이다. 아버지는 별좌(別坐)를 지낸 이복길(李復吉)이다. 이극인의 형제는 이영인(李榮仁)·이우인(李友仁)·이호인(李好仁)이다. 종형(從兄) 이수인(李壽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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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출신의 시인이자 소설가. 이동주(李東柱)[1920~1979]는 1920년 2월 28일 해남군 현산면 읍호리에서 아버지 이해영(李海瑛)과 어머니 이현숙(李賢淑)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달산학교[현 현산초등학교]를 다닐 무렵 오천 석 거부였던 집안이 몰락하여 공주(公州)의 외가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공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공주고등보통학교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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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출신의 시인이자 소설가. 이동주(李東柱)[1920~1979]는 1920년 2월 28일 해남군 현산면 읍호리에서 아버지 이해영(李海瑛)과 어머니 이현숙(李賢淑)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달산학교[현 현산초등학교]를 다닐 무렵 오천 석 거부였던 집안이 몰락하여 공주(公州)의 외가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공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공주고등보통학교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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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예락리에 속하는 섬. 임하도(林下島)는 1930년대부터 섬에 삼림이 울창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는 섬의 형태가 말과 닮았다 고해서 이마도(二馬島)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임하도는 1800년경 하동정씨와 김해김씨가 배를 타고 가던 중 풍랑을 만나서 임하도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마을이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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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효자. 이문길(李文吉)[1551~?]의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강릉부사를 지낸 이영화[1430~1517]의 손자이다. 아들은 이광일(李光一)이며, 손자 이신신(李愼信) 또한 효행으로 유명하다. 이문길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소학(小學)』의 가르침대로 부모를 섬겼다. 아버지가 병에 걸려 멧돼지고기를 먹고 싶어 하여 멧돼지고기를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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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옛 충무사 입구에 있는 조선 후기 관찰사 정건조, 이호준, 이병문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3기의 비. 학동리 관찰사공적비군(鶴洞里觀察使功績碑群)은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옛 충무사 입구에 있다. 조선 후기 관찰사(觀察使) 정건조(鄭健朝), 이호준(李鎬俊), 이병문(李秉文)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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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상순(李尙順)[1888~1967]은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에 거주하며 잡화상을 운영하고 있다가 1920년 문내면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전국 각지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되었고, 해남군의 경우 1919년 4월 6일 해남면에서 해남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주도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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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에 있었던 전라우수영의 수사로 부임하여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무신. 이순신(李舜臣)[1545~1598]은 조선 역사에서 가장 큰 변란을 겪어야 했던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사로서 바다를 지켜 내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순신의 본관은 덕수(德水)이며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고려 때 중랑장을 지낸 이돈수(李敦守)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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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과 항일운동의 역사가 담긴 해남군의 전통 마을인 이진마을 이야기. 이진마을은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속하는 해안가 포구 마을이다. 바닷길의 중요한 요충지에 해당하는 곳으로 고대부터 해상교류의 거점으로 활발하게 이용되었고, 포구가 있는 해안가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마을이 형성되었다. 해남(海南)이라는 지역명과 가장 잘 어울리는 대표적인 포구 마을로서,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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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용정사에 배향된 무신. 이억기(李億祺)[1561~1597]는 임진왜란 당시 전라우수사로서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 경상우수사 원균(元均) 등과 합세하여 왜적을 격파하였다. 이억기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경수(景受), 시호는 의민(毅愍)이다. 심주군 이연손(李連孫)의 아들이다. 이억기는 1577년(선조 10) 무과에 급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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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지역에 정착한 문신이자 원주이씨 해남 입향조. 이영화(李英華)[1430~1517]는 원주이씨(原州李氏) 해남 입향조이자 강릉공파(江陵公派) 파조이다. 강릉도호부사(江陵都護府使)를 역임하다 해남 지역으로 내려와 정착하였다. 이영화의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경원군(慶原君) 이을계(李乙桂)의 후손이다. 부인 청주김씨(淸州金氏)와의 사이에 아들 이맹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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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무신. 이유길(李有吉)[?~?]은 임진왜란 당시 명량해전에서 공을 세웠으며, 1619년 평안도 영유(永柔)현감으로 있을 때 후금 토벌을 위해 명나라가 조선에 출병을 요청하자 강홍립(姜弘立)[1560~1627]의 부장으로 참전하였다. 이유길의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는 유지(有之), 시호는 충의(忠義)이다. 할아버지는 광국공신(光國功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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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충리에 있는 해남 이유길 유허비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이유길 충신비」는 충의공(忠毅公) 이유길(李有吉)[?~?]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이유길은 명량대첩(鳴梁大捷)[1597]과 건주(建州)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다. 명량대첩과 건주 전투에서 세운 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유길의 고향인 해남군 삼산면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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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풍수가. 이의신(李懿信)[?~?]은 17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당대 최고의 풍수가였다. 해남군 마산면 맹진리 태생으로 관련 설화가 많이 전한다. 선조 때부터 왕가의 묏자리를 잡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선조는 이의신에게 벼슬을 내려 자신의 옆에 붙잡아 두었다. 광해군 때는 교하 천도설로 조정을 발칵 뒤집기도 하였다. 이의신의 본관은 원주(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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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윤선도의 묘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이의신에게 빼앗은 고산의 묘」는 해남군 현산면에 있는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의 묏자리가 이의신(李懿信)에게 빼앗은 명당이라는 이야기이다. 「이의신에게 빼앗은 고산의 묘」는 2016년 1월 24일 해남군 해남읍 수성리에서 채록하였으며, 구술자는 천병국[남]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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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재실(李在實)[1898~1958]는 1898년 3월 27일 해남군 송지면 소죽리에서 태어났다. 해남공립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4월 6일 해남 지역 최초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해남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은 해남읍에 있던 해남공립보통학교 생도들에 의해 처음 전개되었다. 해남공립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이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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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1년 7월 10일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에서 태어난 이준섭(李俊燮)[1901~1956]은 1920년 문내면에서 발생한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전국 각지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되었고, 해남군의 경우 1919년 4월 6일 해남면에서 해남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주도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조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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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준탁(李準鐸)[1896~1953]는 1896년 4월 4일 해남군 삼산면에서 태어났다. 해남공립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4월 6일 해남 지역 최초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호익(李浩瀷) 또는 이준탁(李駿鐸)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해남 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은 해남읍에 있던 해남공립보통학교 생도들에 의해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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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준탁(李準鐸)[1896~1953]는 1896년 4월 4일 해남군 삼산면에서 태어났다. 해남공립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4월 6일 해남 지역 최초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호익(李浩瀷) 또는 이준탁(李駿鐸)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해남 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은 해남읍에 있던 해남공립보통학교 생도들에 의해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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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제주의 돌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이진과 제주돌」은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남아 있는 현무암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해남군 북평면의 이진포구(梨津浦口)는 제주도와 육지를 이어 주는 포구이다. 제주도에서 배에 말을 실을 때 균형을 맞추기 위해 돌을 싣고 왔다가 돌아갈 때 이진포구에 돌을 내리고 대신 곡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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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땅끝노회 소속 교회.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복음과 능력을 주민들에게 전하여 생명을 얻고 소망의 삶을 갖게 하려는 목적으로 교회를 설립하였다. 이진교회(梨鎭敎會)는 1917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맥칼리(Rev. H. D. McCallie)[맹현리] 목사가 이진리에 들어와 의료 진료를 하고 복음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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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땅끝노회 소속 교회.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복음과 능력을 주민들에게 전하여 생명을 얻고 소망의 삶을 갖게 하려는 목적으로 교회를 설립하였다. 이진교회(梨鎭敎會)는 1917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맥칼리(Rev. H. D. McCallie)[맹현리] 목사가 이진리에 들어와 의료 진료를 하고 복음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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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의 생김새가 배 같이 생긴 나루라 하여 배진 또는 이진(梨津)이라 부른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본래 영암군 북평종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진리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이진마을, 산마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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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진진성 만호들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4기의 비. 이진리 만호비군(梨津里萬戶碑群)은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있다. 조선 후기 이진진성 만호 박경환(朴慶煥), 최상규(崔祥奎), 김관길(金寬吉)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4기의 영세불망비이다. 이진리 만호비군은 박경환, 최상규, 김관길이 수군진성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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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석축성. 이진성지(梨津城址)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석축성으로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있다. 1598년 이진진이 설치되면서 성을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진성지는 1988년 12월 21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20호로 지정되었다. 이진진은 1598년(선조 31) 설진하여 1627년(인조 5) 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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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수군진. 조선시대에는 제주를 왕래하는 관리들이 배를 타고 내리는 포구였다. 전라우수영에 속한 수군진으로 달량진왜변 직후에 종9품 권관진이었다가 1627년(인조 5) 만호진으로 승격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두 차례 머문 곳으로 동학농민전쟁 이후 1895년에 폐진되었다. 이진리는 지형이 배 모양의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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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석축성. 이진성지(梨津城址)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석축성으로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있다. 1598년 이진진이 설치되면서 성을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진성지는 1988년 12월 21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20호로 지정되었다. 이진진은 1598년(선조 31) 설진하여 1627년(인조 5) 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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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에 있는 개항기 상류층의 주택. 해남 정명식 가옥(海南鄭明植家屋)은 과거 마을에서 이참판댁으로 불렸던 가옥이다. 사랑채에 ‘숭정기원후오회갑신미(崇禎紀元後五回甲辛未)’라는 상량문이 있어 1871년(고종 8)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 소유자 정명식(鄭明植)이 1960년대에 구입하였다. 현재는 문간채와 사랑채[현 살림집] 만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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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수령 약 180~300년의 이팝나무 3그루. 이팝나무는 제주도, 전라남도, 전라북도를 비롯하여 중국, 대만, 일본 등지에서 서식하고 있다.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 25m, 흉고 직경 50㎝까지 자란다. 이팝나무의 나무껍질은 회갈색이고 어린 줄기 황갈색으로 벗겨진다. 잎은 대생(對生)[식물의 줄기에 잎이 붙는 형식의 하나. 잎이 마디마다 두 개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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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형춘(李亨春)[1887~1966]은 1887년 8월 24일 해남군 해남읍 안동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1일 해남읍 장날에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렀다. 해남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6일 해남공립보통학교(海南公立普通學校)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형춘 등은 해남공립보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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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준탁(李準鐸)[1896~1953]는 1896년 4월 4일 해남군 삼산면에서 태어났다. 해남공립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4월 6일 해남 지역 최초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호익(李浩瀷) 또는 이준탁(李駿鐸)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해남 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은 해남읍에 있던 해남공립보통학교 생도들에 의해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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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옛 충무사 입구에 있는 조선 후기 관찰사 정건조, 이호준, 이병문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3기의 비. 학동리 관찰사공적비군(鶴洞里觀察使功績碑群)은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옛 충무사 입구에 있다. 조선 후기 관찰사(觀察使) 정건조(鄭健朝), 이호준(李鎬俊), 이병문(李秉文)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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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홍장(李洪章)[1926~1945]은 1926년 6월 10일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서 태어났다. 일본 유학 시절 항일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이홍장은 화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유학해 동경 정칙학원(正則學園)을 다녔다. 1942년 정칙학원 중학교 3학년에 재학하던 중 동료들과 함께 독립운동 방안을 협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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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출신의 기업인. 이훈동(李勳東)[1917~2010]은 1917년 10월 11일 해남군 황산면 외입리에서 태어났다. 조선내화주식회사 대표이사와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전남일보사를 설립한 기업인이다. 이훈동의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호는 성옥(聲玉)이다. 할아버지는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한 이종흠(李宗欽)이며, 아버지 이영률(李泳律),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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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거주하는 주민의 수 또는 구성 집단의 계수. 인구는 특정 지역의 자연적·사회적·경제적 여러 조건을 반영하며, 지역 사회 파악을 위한 중요한 지표가 된다. 특히 인구는 정적인 것이 아닌 동적인 것으로 인구수나 구조, 분포 등이 계속 변화한다. 1995년부터 2016년까지 과거 20년 동안의 인구 추이를 보면 해남군 행정구역 전체 인구는 매년 감소하는 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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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의 위치와 면적, 인구 변화, 경제, 사회, 교통 문화 등 인문 지리적 요소. 해남군은 군 단위 지방자치단체 중 전라남도 최대의 군역을 자랑한다. 한반도의 서남단에 있어 기후가 온화하여 온대성 작물이 재배되고 있다. 군 단위 지자체 중 전국 최대 면적의 농토와 리아스식 해안을 보유하고 있어 1차 산업이 발달하였다. 쌀, 겨울배추, 고구마, 물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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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결성된 사회주의 계열의 주민자치단체. 1945년 9월 6일 조선건국준비위원회는 전국인민대표자회의를 열고 국내외 좌우익 정치세력을 망라한 조선인민공화국의 설립을 선포하였다. 인민공화국 선포 이후 각 지방에서 지방인민위원회 조직이 진행되었으며, 이 흐름 속에서 인민위원회 해남지부도 결성되었다. 1945년 10월 중순 인민위원회 해남지부가 결성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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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임백령(林百齡)[1498~1546]은 전라남도 해남 출신의 문신으로, 을사사화(乙巳士禍)의 주역 중 한 사람이다. 임백령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자는 인순(仁順)이며 호는 괴마(槐馬)이다. 고조할아버지는 동복현감을 지낸 임간(林幹), 증조할아버지는 증 이조참의 임득무(林得茂), 할아버지는 진안현감을 지낸 임수(林秀)이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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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유희춘(柳希春)[1513~1577]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자는 인중(仁仲), 호는 미암(眉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유양수(柳陽秀)이고 할아버지는 유공담(柳公澹)이다. 아버지는 유계린(柳桂鄰)이며, 어머니는 금남(錦南) 최부(崔溥)의 딸 탐진최씨(耽津崔氏)이다. 형은 유성춘(柳成春)이다. 유희춘은 해남에서 태어나 아버지 유계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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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에 있는 법정리. 인지마을은 본래 장수마을과 한 마을이었다가 분리되었다. 정직하고 지혜롭게 살라는 의미에서 인지(仁智)라 하였다고 한다. 본래 장서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서면의 인지리, 장수리, 예의리를 합하여 해남군 화원면 인지리로 개설되었다. 예전에 인지리와 장수리는 ‘공수개’라 부르는 한 마을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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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에 사는 토박이가 전통적으로 사용하였던 인체와 관련된 말.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사용한 인체 어휘를 얼굴과 머리, 상체, 하체, 질병과 생리로 나누어 기술하기로 한다. ‘[ ]’ 안의 표기는 표준어이고, ‘[ ]’ 왼쪽에는 해남 지역에서 사용하는 어휘를 한글 맞춤법 방식으로 적는다. 1. ‘눈’ 관련 어휘 해남 지역에서 ‘검은자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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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의 대흥사 천불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일본 갔다 온 천불」은 해남 대흥사 천불전(海南大興寺千佛殿)[보물 제1807호]의 천불(千佛) 중 일부가 경상도에서 뱃길을 따라 해남으로 오던 중 풍랑을 만나 일본으로 가게 되었는데, 꿈을 꾼 일본인이 대흥사에 돌려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일본 갔다 온 천불」은 2017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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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일생을 거치면서 인생의 중요한 단계마다 행하는 의례. 평생 의례는 인간이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을 사는 동안 중요한 단계마다 행하거나 경험하는 여러 가지 의식이다. 모든 사회의 중요하고 보편적인 의식들은 출생·성장·생식·죽음 등의 단계와 결부되는데, 서구에서는 이를 ‘통과의례(通過儀禮)’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관례, 혼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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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고당리와 화원면 장춘리, 청룡리, 성산리에 걸쳐 있는 산. 일성산(日星山)[335m]은 호남정맥(湖南正脈)에서 분기한 땅끝기맥[土末岐脈]에서 뻗어내린 화원지맥(花源枝脈)에 속하며, 문내면 고당리와 화원면 장춘리, 성산리의 진산이다. 일성산이 높아서 해가 뜰 때 산 뒤에서 솟아오르는 것 같고, 별이 뜨면 별이 산 봉우리에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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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장춘리 일성산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 황원 봉수(黃原烽燧)는 조선 초기에 개설되어 1894년 폐지되었다. 고려 시기 황원군의 진산인 일성산(日星山) 정상에 있어 일성산 봉수라고도 하였다. 황원 봉수를 감싸고 서쪽으로 테뫼식 석축성[산 정상부를 둘러가며 바깥쪽만 성돌을 쌓고 안쪽은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성]이 조성되었으며, 남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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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에 일성산 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일성산 애기 업은 바위」는 해남군 문내면에 있는 일성산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이다. 아이를 못 낳던 여인이 일성산(日城山)[335m] 산신령에게 치성을 드린 후 아이를 얻었는데, 산신령에게 감사드리기 위해 아기를 업고 일성산에 올랐다가 바위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일성산 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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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일신리(日新里)라 칭하였다. 본래 산일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성산리, 금곡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황산면 일신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일신마을, 이목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일신마을의 입향조는 1987년의 『마을유래지』에는 김동현이라 하였으나, 단종애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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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8월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국권 강탈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까지 식민통치 시기 전라남도 해남 지역의 역사. 일제강점기 해남군의 인구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1912년 처음 조사되었으며, 당시 해남의 인구는 8만 5663명[남자 4만 3791명, 여자 4만 1872명]이다. 일제강점기 인구 변화를 1915년부터 5년 단위로 살펴보면 1915년 9만 1903명[남자 4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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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신안리에 세운 항일운동 추모비. 해남 항일운동 추모비(海南抗日運動追慕碑)는 해남군 해남읍 신안리에 있다.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3년 7월 9일 해남항일독립운동희생자추모사업회가 건립하였다. 해남항일독립운동희생자추모사업회는 광복 72주년을 앞두고 2013년 해남 항일운동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193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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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매광산 노동자들이 제주도로 강제 동원이 되었다가 해방 후 고향으로 귀향하던 중 바다에서 수몰된 사건. 1945년 8월 20일 새벽,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옥매광산 광부 255명은 일제강점기에 강제 동원으로 제주도에 끌려갔다가 해방을 맞아 드디어 배를 타고 귀향길에 올랐다. 광부들을 실은 배가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도 앞바다에 다다랐을 오전 여덟 시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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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평화로운 마을이라는 뜻의 일평(日坪)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일평마을은 본래 당구[혹은 당뫼]라 불렸다. 당구는 해남의 옛 이름으로 고려시대 해남현의 치소가 있었던 곳임을 반영하는 지명이다. 당구는 치소가 옥산현으로 옮겨갈 때 같이 옮겨져 해남의 옛 이름을 대변하게 되었다. 1914년에는 행정구역 개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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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일평리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이자 해남현의 치성이었던 산성. 일평리 산성(日坪里山城)은 삼국시대 토기편이 수습된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축조된 성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해남 지역은 백제에 병합된 이후 백제식 행정 구역인 현산면 부근에는 새금현(塞琴縣)이 설치되었다. 이후 통일신라시대 침명현(浸溟縣)이 되었으며, 고려 때 해남현(海南縣)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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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일평리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이자 해남현의 치성이었던 산성. 일평리 산성(日坪里山城)은 삼국시대 토기편이 수습된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축조된 성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해남 지역은 백제에 병합된 이후 백제식 행정 구역인 현산면 부근에는 새금현(塞琴縣)이 설치되었다. 이후 통일신라시대 침명현(浸溟縣)이 되었으며, 고려 때 해남현(海南縣)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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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임구령(林九齡)[1501~1562]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자는 연수(年樹), 호는 월당(月堂)이다. 고조할아버지는 동복현감을 지낸 임간(林幹), 증조할아버지는 증 이조참의 임득무(林得茂), 할아버지는 진안현감을 지낸 임수(林秀)이다. 아버지는 임우형(林遇亨)이고 어머니는 참봉 박자회(朴子回)의 딸 음성박씨(陰城朴氏)이다. 임천령(林千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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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효자. 임근(任謹)[1494~1549]의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호는 백헌(伯軒)이다. 고려 전기의 문신인 정경공(貞敬公) 임의(任懿)의 후손으로, 성균관 생원이었던 참봉 임서규(任瑞珪)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임희진(任希璡)이 아들이다. 임근은 벼슬에 뜻이 없어 일찍이 과거 응시를 포기하고 오로지 위기학(爲己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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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당산리에 있는 조선 전기 효자 임근의 조선 후기 묘갈명비. 효자 임근 묘갈명비(孝子任謹墓碣銘碑)는 효자 임근(任謹)[1494~1549]의 묘소에 1799년(정조 23) 세운 묘갈명비이다. 묘갈(墓碣)은 무덤 앞에 세우는 둥그스름한 작은 비석으로, 죽은 사람의 행적과 인적 사항을 적은 것을 묘갈명비라고 한다. 효자 임근의 묘갈명비에는 효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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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기열(林基烈)[1924~2011]은 1924년 2월 11일 해남군 문내면 고평리에서 태어났다. 일제 말 강제 징병되어 중국 전선에 배치되었으나 탈영한 뒤 광복군의 일원으로 항일 활동을 수행하였다. 1944년 말을 전후하여 중국 각 전선의 일본군에 배치된 한국인들 중 100여 명의 애국 청년들이 부대를 탈출하여 중국군에 합류하였다.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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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효자. 임달유(任達儒)[1829~1888]의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영유(永有), 호는 묵암(默巖)이다. 임달유는 1829년(순조 29) 해남군 계곡면 당산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친구들과 우애가 깊었고 커서는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지극정성으로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서리나 우박이 내리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피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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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3년 1월 4일 해남군 문내면 서상리에서 태어난 임동수(林東秀)[1903~1933]는 1920년 문내면에서 발생한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전국 각지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었고, 해남군의 경우 1919년 4월 6일 해남면에서 해남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주도로 독립 만세 운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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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무신. 임발영(任發英)[1539~1593]은 1539년(중종 34) 해남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종묘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의주까지 선조를 호종하였다. 임발영의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시언(時彦), 호는 와헌(瓦軒)이다. 아버지는 임희성(任希聖)이다. 임발영은 1568년(선조 1)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그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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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임백령(林百齡)[1498~1546]은 전라남도 해남 출신의 문신으로, 을사사화(乙巳士禍)의 주역 중 한 사람이다. 임백령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자는 인순(仁順)이며 호는 괴마(槐馬)이다. 고조할아버지는 동복현감을 지낸 임간(林幹), 증조할아버지는 증 이조참의 임득무(林得茂), 할아버지는 진안현감을 지낸 임수(林秀)이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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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수성리에 임제와 백광훈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임백호와 백옥봉」은 백호(白湖) 임제(林悌)[1549~1587]와 옥봉(玉峯) 백광훈(白光勳)[1537~1582]이 함께 유람하는 과정에서 생긴 이야기이다. 임제와 관련된 설화는 다른 지역에서도 여러 형태로 전해 오지만 백광훈에 관한 설화는 해남군에서만 발견된다. 백광훈은 해남을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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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무신. 임수(林秀)[1454~?]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자는 희암(希巖)이다. 이조판서를 지낸 임득무(林得茂)의 아들이다. 임수는 임우원(林遇元)·임우형(林遇亨)·임우리(林遇利)·임우정의 4형제를 두었다. 이들 중 임우형의 가계가 가장 번성하였는데, 임천령(林千齡)·임만령(林萬齡)·임억령(林億齡)·임백령(林百齡)·임구령(林九齡) 등 임우형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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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임신부나 그 가족이 가리는 음식이나 행위. 사회가 유지되려면 사회 구성원의 재생산이 기본적으로 계속 이루어져야 하기에 임신과 출산은 사회적으로 필수 불가결한 중대한 일이었다. 임신 중 금기는 임신을 하고 출산에 이르는 동안에 지키고 조심해야 할 사항들이 금기의 형태로 관습화되어 온 것이다. 임신부는 임신 사실을 안 순간부터, 옷이나 음식을 일상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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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신. 임억령(林億齡)[1496~1568]은 호남 시학(詩學)의 스승이라 불리는 인물로, 최부(崔溥)·유희춘(柳希春)·윤구(尹衢)·윤선도(尹善道)·박백응(朴伯凝)과 함께 해남읍 해촌서원(海村書院)에 모셔져 있다. 임억령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자는 대수(大樹), 호는 석천(石川)이다. 고조할아버지는 동복현감을 지낸 임간(林幹), 증조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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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지역의 산업 분야 중 산림을 유지하고 조성하여 경제적으로 이용하는 산업. 2017년 해남군 임업 현황은 4만 4797㏊, 국유림 4,110㏊, 도유림 1,394㏊, 군유림 2,132㏊, 사유림 3만 7161㏊이다. 임산물 생산량은 수실 15만 2882㎏, 버섯 9만 5682㎏, 산나물 10만 3930㎏ 등이다. 임상별 산림 면적을 살펴보면, 2017년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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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서 조선에 침입한 왜군과의 전쟁. 임진왜란(壬辰倭亂)은 2차례에 걸쳐 일어나는데 1차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 부르며, 2차 침입이 정유년에 있었으므로 ‘정유재란’이라 한다.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 5월 23일부터 1598년(선조 31) 12월 16일까지 7년간 조선과 명나라, 일본 사이에서 일어난 국제 전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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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서 조선에 침입한 왜군과의 전쟁. 임진왜란(壬辰倭亂)은 2차례에 걸쳐 일어나는데 1차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 부르며, 2차 침입이 정유년에 있었으므로 ‘정유재란’이라 한다.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 5월 23일부터 1598년(선조 31) 12월 16일까지 7년간 조선과 명나라, 일본 사이에서 일어난 국제 전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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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예락리에 속하는 섬. 임하도(林下島)는 1930년대부터 섬에 삼림이 울창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는 섬의 형태가 말과 닮았다 고해서 이마도(二馬島)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임하도는 1800년경 하동정씨와 김해김씨가 배를 타고 가던 중 풍랑을 만나서 임하도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마을이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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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홍우(任洪宇)[1906~1945]는 1906년 11월 29일 해남군 계곡면 당산리에서 태어났다. 전라남도 목포시에 이주하여 살면서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활동을 하였다. 목포는 1897년 국내에서 네 번째로 개항장이 된 이후 전라남도의 대표적인 상업도시로 성장했고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하고 있던 곳이었다. 임홍우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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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부곡리 입암마을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포구. 조선시대 입암포(笠巖浦)는 제주도를 왕래하는 배들이 물때를 기다리거나 항해 중 바람을 피하는 정박처로 이용되었다. 일제강점기 1930년대부터 성산광산이 본격적으로 개발되자 입암포의 서쪽 포구는 광물을 선적하여 일본으로 운반하는 선적항이 되었다. 입암포의 지명은 해변의 삿갓바위에서 유래하며 조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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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봄이 왔음을 알리는 첫 번째 절기. 입춘은 농사의 기준이 되는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이다.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있으며, 보통 양력으로 2월 4일에 든다. 이날부터 봄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좋은 글귀를 적은 입춘첩(立春帖)을 붙이는 풍습이 행해진다. 입춘첩은 춘축(春祝), 혹은 입춘축(立春祝)이라고 하는데, 각 가정의 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