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아기를 재우거나 어르면서 부르는 민요. 자장가는 아기를 재우려는 기능이 분명하고 아기에게 사설 내용을 들려주기 위해서 어른들이 부른다는 점에서 어린이들만이 부르는 다른 전승 동요와는 성격이 다르며, 따라서 민요로 다루어지기도 한다. 「아기 재우는 노래」와 같은 아이를 재울 때 부르는 노래는 전국적으로 분포하는데, 가창자에 따라 조금씩 가사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
삼국시대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 아도는 선산 사람 모례(毛禮)를 후견인으로 하여 신라 왕성에 불교를 전도한 승려로서 후에 신라 불교 초전자로 추모되었다. 별명은 아도(我道)·아두(阿頭). 아버지는 정시(正始) 년간에 고구려에 사신으로 왔던 조위인(曹魏人) 아굴마(我堀摩), 어머니는 고구려인 고도령(高道寧)이다. 『삼국유사』의 「아도본비(我道本碑)」에 의하면, 아도는 고구려에서...
-
삼국시대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 아도는 선산 사람 모례(毛禮)를 후견인으로 하여 신라 왕성에 불교를 전도한 승려로서 후에 신라 불교 초전자로 추모되었다. 별명은 아도(我道)·아두(阿頭). 아버지는 정시(正始) 년간에 고구려에 사신으로 왔던 조위인(曹魏人) 아굴마(我堀摩), 어머니는 고구려인 고도령(高道寧)이다. 『삼국유사』의 「아도본비(我道本碑)」에 의하면, 아도는 고구려에서...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적비 2기. 아도화상 사적비는 아도화상이 고구려에서 신라로 와서 불교를 포교한 내력을 자세히 적은 비석이며, 도리사 불량답시주질비는 비슷한 시대에 도리사 신도들이 논과 밭을 시주한 내역을 담고 있는 비석이다. 아도화상 사적비는 도리사(桃李寺) 남쪽 비탈진 송림(松林) 속의 평평한 대지에 도리사 불량답시주질비와 함께 남쪽을 향해 나란...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1392년(태조 1) 박씨 집안에 아홉 형제가 살았다고 하여 구제봉이라 하였고, 기암 문장 터에서 약관의 노용암이 주서에 급제하여 아동이라 명하였다. 이후 주아면 소재지였으므로 주아리라 하였다. 985년(성종 4) 처음 마을이 형성되었다. 조선시대 선산군 주아면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추동을 병합하여 주아리라 하고 옥성...
-
삼국시대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 아도는 선산 사람 모례(毛禮)를 후견인으로 하여 신라 왕성에 불교를 전도한 승려로서 후에 신라 불교 초전자로 추모되었다. 별명은 아도(我道)·아두(阿頭). 아버지는 정시(正始) 년간에 고구려에 사신으로 왔던 조위인(曹魏人) 아굴마(我堀摩), 어머니는 고구려인 고도령(高道寧)이다. 『삼국유사』의 「아도본비(我道本碑)」에 의하면, 아도는 고구려에서...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궁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도개면 소재지인 궁기1리 마을로 옛날에 보통장(甫通場)이라는 5일장(3일, 8일)이 섰는데 윗마을 장터를 웃장터, 아래마을 장터를 아래장터라 하여 편의상 마을을 세분하여 불렀다. 궁기리의 윗장터와 아래장터는 낙동강변의 평야지대에 형성된 마을이다. 마을 남쪽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윗장터와 아래장터는 도개면의 중심지로 면사무소,...
-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면 소재지인 상장리 아래쪽에 있어서 하장(下場)이라 하였다. 또 장천시장이 이곳에 있다가 상장리로 옮겨 갔으므로 구장터, 아래장터, 구장동, 하장이라 하였다. 자연마을로 큰곰실, 섶밭마, 중뜸, 아래장터 등이 있다. 큰곰실은 장천면이 북웅곡방이었을 때 면 소재지였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국도 위쪽에 있다 하여 상도동이라고도 한다. 섶밭마는...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어강골에 본래 나루터가 있었으나 통행에 불편함이 많아 아래쪽에 나루터가 하나 더 생겼으면 하고 바라던 참에 마침 여름에 호수로 인해 자연적으로 새로운 나루가 생겼다. 이에 연유하여 이 일대를 새도방이라 한다. 낙동강 도선장으로 새로 생겼다 하여 명칭하였으나 ‘장대’라고도 한다. 태조의 깃발을 꽂아둔 곳이다. 새도방의 남쪽에는 대망천이...
-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하장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예전에 장천시장이 있던 곳이라고 하여 구장(舊場)이라 부른다. 시장이 지금의 상장리로 옮겨 갔다고 해서 아랫장터라고도 부르고 있다. 장천시장은 1923년 상장동으로 옮겨 갔다. 구장이 언제 형성되었는지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으나 마을 앞을 흐르는 내의 길이가 길다 하여 장천이라고도 했다. 마을 뒤편 사마산이 산동면 임천리와 경계를...
-
경상북도 구미시 공단동에 있는 전자 악기 제조업체. (주)아리아는 1950년 로얄산업공사로 설립되어 오르간을 생산, 시판하면서 탄생하였다. 1960년 대구공장을 준공하였으며, 1962년 홍콩에 아리아 오르간을 수출하였다. 1976년에는 자유중국 대리점을 개설하였다. 1977년 아리아악기제조(주)로 상호를 변경하고 서울 지점을 설립하였으며, 1979년에 대지 21,157.12㎡의 구...
-
경상북도 구미시 지산동에 있는 사찰. 임진왜란을 예견한 수도승이 원래의 사찰을 전소시켜 밭으로 만들면서 훗날 어느 도인에 의해 도량이 될 것이라는 말에 따라 창건된 사원이다. 이곳에는 고려시대에 사원지였음을 보여주는 기와편, 맷돌, 돌확 등의 석물이 산재해 있다. 불교 포교를 위해 건립되었으며, 고려시대 이래 폐사된 곳에 1965년에 아미사란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현재 법당, 산신...
-
효자 장석규의 일대기를 엮은 『연미정실기(戀美亭實記)』가 있다. 연미정 실기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인동 사람 장석규의 호가 연미정이다. 자(字)는 사운(師雲)이며,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후손으로 장시고(張時白皐)의 차자(次子)로 옥중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시고는 성격이 곧고 정의로워 옳은 일이 아니면 상종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당시 인동부사...
-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5층 이상의 공동 주택. 아파트는 대부분 주거용으로 설계되지만 때로 상가나 그 밖의 비주거용 공간을 포함하기도 한다. 아파트의 주거 단위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배열되며 다양한 크기·설비·기능을 갖추고 있다. 이렇게 광범위한 편의 시설을 갖춘 아파트는 서로 다른 유형의 많은 가족과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아파트는 경제적으로 빈곤한 노동자들의 주택난...
-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정월 대보름에 9라는 숫자를 매개로 하여 모든 행위를 아홉 번씩 한다는 풍습. 아홉 번 행동하기는 음력 1월 15일에 밥 먹기, 나무하기, 글 읽기, 삼삼기, 명잣기, 마당 쓸기 등 모든 행위를 아홉 번씩 하면 좋다는 정월 대보름의 풍속이다. 나무 아홉 짐, 새끼 아홉 발을 꼬면 큰 부자가 된다고 하니 대보름에 모든 일을 아홉 번씩 하라는 것은 일 년간 부지...
-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에 위치한 산. 구곡산은 골짜기의 수가 아흔 아홉이라 하여 구곡 혹은 아홉산이라고도 부른다. 금오산 자연학습원 위쪽 골짜기와 그 남·북쪽에 있는 구릉을 포함한 곳이며, 북쪽으로 금오산의 능선과 만난다. 구곡 주변은 대부분 자갈이 많은 양토로 덮여 있으며, 금오산저수지 부근 토양은 양토로 이루어져 있다. 구곡으로 모여든 물은 금오산저수지로 흘러들어간다. 구곡산에...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에 속하는 법정리. 안곡리는 안실(安室), 저전(楮田), 도가(都家)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안실은 영남의 상인들이 부구 지방으로 오갈 때 이곳에서 말의 짐을 풀고 편안히 쉬어 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저전은 마을을 개척한 선비가 닥나무를 많이 재배하여 문종이를 만들어 생계를 이어 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닥박골이라고도 한다. 도가는 술도가가...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안곡리에 있는 수령 130년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 26m, 지름 3m까지 자란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며, 나무껍질은 회백색이고 늙은 나무에서는 나무껍질이 비늘처럼 떨어진다. 꽃은 5월에 취산꽃차례(聚繖꽃次例 : 먼저 꽃대 끝에 한 개의 꽃이 피고 그 주위의 가지 끝에 다시 꽃이 피고 거기서 다시 가지가 갈라져 꽃이 핌)...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안곡리에 있는 수령 130년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 26m, 지름 3m까지 자란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며, 나무껍질은 회백색이고 늙은 나무에서는 나무껍질이 비늘처럼 떨어진다. 꽃은 5월에 취산꽃차례(聚繖꽃次例 : 먼저 꽃대 끝에 한 개의 꽃이 피고 그 주위의 가지 끝에 다시 꽃이 피고 거기서 다시 가지가 갈라져 꽃이 핌)...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안곡리에 있는 수령 130년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 26m, 지름 3m까지 자란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며, 나무껍질은 회백색이고 늙은 나무에서는 나무껍질이 비늘처럼 떨어진다. 꽃은 5월에 취산꽃차례(聚繖꽃次例 : 먼저 꽃대 끝에 한 개의 꽃이 피고 그 주위의 가지 끝에 다시 꽃이 피고 거기서 다시 가지가 갈라져 꽃이 핌)...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안곡리에 있는 수령 230년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 26m, 지름 3m까지 자란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며, 나무껍질은 회백색이고 늙은 나무에서는 나무껍질이 비늘처럼 떨어진다. 꽃은 5월에 취산꽃차례(聚繖꽃次例 : 먼저 꽃대 끝에 한 개의 꽃이 피고 그 주위의 가지 끝에 다시 꽃이 피고 거기서 다시 가지가 갈라져 꽃이 핌)...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안곡리에 있는 수령 240년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 26m, 지름 3m까지 자란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며, 나무껍질은 회백색이고 늙은 나무에서는 나무껍질이 비늘처럼 떨어진다. 꽃은 5월에 취산꽃차례(聚繖꽃次例 : 먼저 꽃대 끝에 한 개의 꽃이 피고 그 주위의 가지 끝에 다시 꽃이 피고 거기서 다시 가지가 갈라져 꽃이 핌)...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안곡리에서 음력 1월 2일과 9월 14일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예전에 상인들이 영남 지방을 왕래할 때에 이곳에서 말[馬]의 짐을 풀고 편안히 쉬어 갔다는 데서 안실이라고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의 개편에 따라 지명을 안곡리로 변경하였다. 안곡리 동제는 매년 음력 1월 2일과 9월 14일에 마을에 아무 사고가 없이 복이 오도...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안곡리 안실마을에서 풍수지리상 지형지세를 보완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산. 우리의 전통마을에는 비보풍수의 일종으로 풍수지리상 국면이 허술하면 조산 혹은 조산숲, 입석을 조성하여 허술한 국면을 보완하는 풍속이 있었다. 조산은 돌을 쌓아 무덤처럼 만든 것으로 마을에 따라서는 2~3개의 조산을 둔 곳도 있다. 비보풍수가 민간신앙과 결합하여 마을에서는 동제를 지낼...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에 속하는 법정리. 안곡리는 안실(安室), 저전(楮田), 도가(都家)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안실은 영남의 상인들이 부구 지방으로 오갈 때 이곳에서 말의 짐을 풀고 편안히 쉬어 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저전은 마을을 개척한 선비가 닥나무를 많이 재배하여 문종이를 만들어 생계를 이어 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닥박골이라고도 한다. 도가는 술도가가...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경윤(景胤), 호는 송설헌(松雪軒). 직제학 장계(張桂)의 후손으로 장순효(張純孝)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장경원(張敬源), 아버지는 홍산현감 장안량(張安良), 어머니는 고승안(高承顔)의 딸이다. 장말손은 1459년(세조 4)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박사를 거쳐 사헌부감찰, 사간원정언 등을 지냈다. 1463년 함길도병마도사로...
-
경상북도 구미시 원평동에 속하는 자연마을. 이 마을의 일대가 온통 돌자갈밭이라 하여 암전이라고도 하고 각산 황소봉에서 굴러 내린 큰 바위 두 개 중 한 개는 경부선 철도 부설시 제거되고 나머지 한 개가 남아 있는데, 이로 인해 바위가 있는 밭이라 하여 암전이라고 한다. 바위가 마치 쇠죽통같이 생겨 죽바위라고 부르고 이 일대를 죽바위들이라고도 부른다. 돌밭이라는 의미이다. 남서쪽으로...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앞니가 빠진 어린아이들을 놀리면서 부르는 동요. 「앞니 빠진 갈가지」는 『고향 경북』에 채록되어 있으나 누가 언제 불렀는지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다. 「앞니 빠진 갈가지」는 여러 사람이 함께 부르는 4박자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앞니 빠진 갈가지」 노래는 이갈이를 하는 어린이의 빠진 이를 보고 놀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성장기에 있는 마을의 개구쟁이들은 도랑...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어린 쑥을 넣고 만든 완자를 장국에 끓인 국. 물이 끓을 때 쇠고기 양지머리나 사태를 덩어리째 삶아 육수를 만든다. 어린 쑥은 살짝 데쳐 찬물에 헹군 뒤 꼭 짜서 다져 놓는다. 완자용 쇠고기는 기름을 제거하고 곱게 다진다. 다진 쇠고기를 쑥과 합친 뒤 완자 양념을 하고 끈기 있게 충분히 치대어 한입 크기로 완자를 빚는다. 냄비에 육수를 부어서 끓인 다음 청장(진...
-
조선 전기 구미 지역에 정착한 문신. 본관은 야로(冶爐). 자(字)는 천장(天章), 호는 야계산옹(倻溪散翁). 송수겸(宋守謙)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송소(宋紹), 아버지는 부사직 송방현(宋邦賢)이며, 어머니는 황진(黃珍)의 딸이다. 장인은 선산 사람 증이조참판 김광좌(金匡佐)이다. 송희규는 1513년(중종 8) 향시에 합격하고 이어 1519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는데 이때...
-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의 금오산과 해평면 해평습지에서 겨울을 나는 오리과에 속하는 새. 오리는 생활 방식에 따라 크게 수면성 오리, 잠수성 바다오리, 원앙류 등 3개의 무리로 분류한다. 전형적인 수면성 오리류에 속하는 청둥오리는 인기 있는 사냥새이며, 대부분 집오리의 조상이다. 몸길이는 수컷 60㎝, 암컷 52㎝에 이른다. 날개길이는 23~30㎝이고, 꼬리길이는 7.4~9.9㎝이다...
-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의 금오산과 해평면 해평습지에서 겨울을 나는 오리과에 속하는 새. 오리는 생활 방식에 따라 크게 수면성 오리, 잠수성 바다오리, 원앙류 등 3개의 무리로 분류한다. 전형적인 수면성 오리류에 속하는 청둥오리는 인기 있는 사냥새이며, 대부분 집오리의 조상이다. 몸길이는 수컷 60㎝, 암컷 52㎝에 이른다. 날개길이는 23~30㎝이고, 꼬리길이는 7.4~9.9㎝이다...
-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의 금오산과 해평면 해평습지에서 겨울을 나는 오리과에 속하는 새. 오리는 생활 방식에 따라 크게 수면성 오리, 잠수성 바다오리, 원앙류 등 3개의 무리로 분류한다. 전형적인 수면성 오리류에 속하는 청둥오리는 인기 있는 사냥새이며, 대부분 집오리의 조상이다. 몸길이는 수컷 60㎝, 암컷 52㎝에 이른다. 날개길이는 23~30㎝이고, 꼬리길이는 7.4~9.9㎝이다...
-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고려 후기 학자 길재가 어린 시절에 자라를 놓아주면서 부른 노래. 야은(冶隱) 길재(吉再)는 외가에서 지내면서 8세 때 임지로 떠나는 아버지를 따라 간 어머니를 그리워하였다. 어느 날 어미를 잃은 채 자신의 손에 잡힌 자라새끼를 놓아주면서 부른 노래이다. 「방별가」는 길재의 행장(行狀)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자라야 자라야/너도 엄마 잃었니?/나도 엄...
-
고려 말 구미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길재는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이색, 정몽주, 권근 등에게 성리학을 배웠다. 조선 건국 후에는 친교가 있던 태종 이방원에 의하여 태상박사로 임명되었으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거절하고 고향인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으로 돌아가 후학을 가르쳤다. 특히 김숙자에게 성리학을 가르쳤으며, 그 학통은 김종직, 김굉필, 조광조 등에게로 계...
-
조선 말 곽종석이 구미 지역 출신인 길재를 추모하여 지은 한시. 곽종석(郭鍾錫, 1846~1919)은 구한말의 학자로 자는 명원(鳴遠), 호는 면우(俛宇)이다. 저서에 『면우선생문집(俛宇先生文集)』이 있다. 「야은굴」은 『면우선생문집』제3권에 전하는 한시로, 통일신라 말기의 승려 도선(道詵, 827~898)이 참선한 후 득도했다는 ‘대혈(大穴)’이라 불리는 곳을 배경으로 하여 야은...
-
경상북도 구미시 도량동에 있는 조선 전기 사당. 이 사당은 1403년 당시 경상도관찰사이던 남재(南在)가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소거지를 사당으로 건립한 데서 비롯되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맞배지붕집인데, 어간(御間)을 양협간(兩夾間)보다 넓게 잡았으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을 두었다. 초익공(初翼工)의 겹처마집이며, 목부(木部)에는 모로단청으로...
-
조선 전기 조식이 구미 출신의 길재의 충절과 학문을 사모하여 지은 전기. 조식(曺植, 1501~1572)은 조선 전기의 학자로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이다. 여러 차례 벼슬이 내려졌으나 성리학 연구와 후진 양성에만 전념하였다. 「야은선생전」은 『남명선생문집(南冥先生文集)』에 실려 있는 전(傳)으로 조식이 야은 길재의 충절과 학문을 기리며 지었다. 길재(吉再, 1353~...
-
경상북도 구미시 도량2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주인정신이 강한 어린이, 부지런하고 성실한 어린이,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어린이, 끈기 있게 탐구하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97년 12월 19일 야은초등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1999년 3월 1일 개교하였다. 2007년 3월 1일 22학급을 편성하였다. 2016년 2월 17일 제17...
-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약사봉 아래에 있는 신라시대 암자. 『일선지(一善志)』와 『범우고(梵宇攷)』 등 조선시대 사원 정리 기록에 의하면 금오산 정상 암석간에 약사암이 있다고 되어 있다. 이로 보아 조선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암자로 여겨진다.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암벽에는 신라시대의 마애보살입상이 있고, 법당 내에는 석조여래좌상 1구가 있는데 나말여초 때 것으로 추정된다....
-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약사암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조여래상. 약사암은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당시의 유적은 전하는 것이 없으며, 근래에 건축한 것으로 추정되는 2칸 기와집 법당과 요사채가 각 1동씩 있다. 「약사전중수기(藥師殿重修記)」에 의하면 지리산에 삼불(三佛)이 있어서 금산 삼성암(三省庵), 성주 수도암(修道庵)과 구미 약사암에 나누어 봉안했다 하는데, 도인 박유술...
-
경상북도 구미시 금전동에 위치한 약수터. 천생산에는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봉화로 교신하였다 하여 통신바위로 부르는 바위가 있다. 천생산의 통신바위로 가는 길목 골짜기에 약수터가 자리하고 있으므로 약샘골이라 한다. 이 약수는 물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위장병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또 다른 약샘골은 고아읍 송림리에 있다....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면여(勉餘), 호는 양계(陽溪). 아버지는 이상규(李尙規), 장인은 황준경(黃浚瓊)이다. 형은 이암(李馣)이다. 이하는 1654년(효종 5) 식년문과에 갑과 2위로 급제하여 동부승지, 장령, 형조참의, 강진현감, 동래부사 등을 역임했다....
-
조선 전기 선산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자화(子華), 호는 해은(海隱). 할아버지는 충선공(忠宣公) 문익점(文益漸)이다. 문영(文英)은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393년(태조 2)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교리를 지냈으며, 이후 선산부사를 거쳐 홍문관직제학을 역임하였다. 형 문래(文萊)가 목화에서 실을 뽑는 물레를 만...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안강(安康). 자는 군징(君澄), 호는 양실당(養失堂). 아버지는 노계정(盧啓禎)이다. 노철은 부모에게 효성스러웠고,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부부간에 예를 다하였다. 묘소는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옥관리에 있다.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 1738~1816)가 행장과 묘갈명을 지었다. 사후 호조참판겸의금부동지사 오위도총부부총관에 추증되...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일선. 자는 국보(國寶)·고경(高卿). 아버지는 일선부원군(一善府院君) 김시로(金時露)이다. 김교는 1444년(세종 26)에 진사가 되었으며, 학행으로 능참봉에 제수되었다가 영덕현령에 올랐다. 1452년(문종 2) 무과에 급제하여 평안절도사가 되었고, 1459년(세조 5) 동부승지를 거쳐 도승지에 올랐다. 1462년(세조 8) 강원도관찰사에 제...
-
경상북도 구미시 신동에 있는 조선 말 구미 지역의 학자 장현도의 재사. 1890년에 증이조참판(贈吏曹參判) 장현도(張顯道)를 모신 재사이다. 6칸 규모의 건물인데, 양양재의 현판은 흥선대원군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1924년에 중수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던 마을. 마을 앞으로 흐르던 시내가 이계천(飴溪川)인데 냇가에 수양버들이 줄지어 늘어져 있는 경관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항상 마르지 않고 맑게 흐르는 샘이 있다 하여 지은 이름이라 전한다. 조선시대까지 양원역(楊原驛)이 있던 자리였으나 1904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사라졌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와 『인동읍지(仁同邑誌)』의 역원조에 의하면 양...
-
조선시대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 설치되었던 교통 통신 기관. 양원역(楊原驛)은 현 구미시 진평동에 설치되었다. 양원역 이외에 구미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으로는 구며역(仇㫆驛, 현 구미시 선산읍 화조리), 상림역(上林驛, 현 구미시 장천면 상림리), 연향역(延香驛, 현 구미시 해평면 산양리), 안곡역(安谷驛, 현 구미시 무을면 안곡리) 등이 있었다. 왕래하는 관료나 사신들을 접...
-
조선 후기 인동도호부사를 역임한 무신. 양일한은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역임하다가 1661년(현종 2) 7월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부임하여 재임중에 인풍루(仁風樓)를 중건하고 찰미루(察眉樓)를 이건하였다. 1664년(현종 5) 2월 공주영장으로 승진하였으며 훗날 당상관을 역임하였다....
-
개항기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양제안은 남원양씨(南原梁氏)로서 호는 벽도(碧濤)이다. 양제안은 1876년(고종 13) 병인양요 때 격문을 만들어 척양(斥洋)과 척왜(斥倭)를 주장하였으며, 1894년 충청북도 진천에 의병 총본영을 설치하고 의병을 모집하여 훈련시켰다. 이듬해인 1895년 이기찬(李起燦) 의병진의 중대장으로 선산 출신의 허위(許蔿) 등과 청산·보은·괴산·...
-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 박항령(朴恒齡)의 처 양주조씨(楊州趙氏)의 정려편액. 열녀 양주조씨(1696~1724)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조태방(趙泰邦)의 딸로 밀양인(密陽人) 박항령(朴恒齡)의 아내이다. 박항령은 경주부윤 박수홍의 현손이며 박성원(朴成遠)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몸이 나약하고 폐질환에 시달렸다. 이에 양주조씨는 병약한 남편을 치유하여 소생시키...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북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신라시대, 이 마을에 천연두(일명 손님병)가 심하여 마을 전체가 뒤숭숭하였다. 때마침 마을을 지나가던 한 스님이, 마을 앞에 돌을 던져 한 개씩 쌓으면 손님병이 없어질 것이라고 하였다. 그 말을 믿고 마을 사람이나 마을을 지나가는 나그네들이 돌을 던졌더니 손님병이 사라졌다 하여, 그 후로 마을을 재상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재상골은...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 자는 여함(汝涵), 호는 양탄(瀁灘). 교위 김취연(金就硏)의 증손이며, 아들은 삼매당(三梅堂) 김하정(金廈梃)이다. 김양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과 한강(寒岡) 정구(鄭逑)를 스승으로 섬겼으며, 1605년(선조 38)에 진사가 되었다. 병자호란의 소식을 접한 이후 누차 벼슬을 내렸으나 응하지 않고 두문불출하면서 서사(書史)에 관심...
-
경상북도 구미시 옥계동에 있는 양포동 관할 행정기관. 경상북도 구미시를 구성하고 있는 2개 읍(선산읍·고아읍), 6개 면(무을면·옥성면·도개면·해평면·산동면·장천면), 19개 동(송정동·원평1동·원평2동·지산동·도량동·선주원남동·형곡1동·형곡2동·신평1동·신평2동·비산동·공단1동·공단2동·광평동·상모사곡동·임오동·인동동·진미동·양포동) 중 양포동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
경상북도 구미시 옥계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서로 돕고 예의 바른 어린이,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고 실천하는 어린이, 깊이 생각하고 탐구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구미시 옥계동 구미4공단 지역에 위치한 양포초등학교는 1995년 9월 1일 설립 인가를 받아 1997년 9월 1일 18학급으로 개교하였다. 1998년 3월 1일 병설 유치원을 개원하였...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안강(安康). 자는 양호(養皓), 호는 백송대인(白松大人). 아버지는 노계조(盧啓祚)이다. 노호(盧澔, 1765~1833)는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의 안강노씨 세거지에 세워진 문산서원(文山書院)이 서원으로 승격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평생 동안 학문에 전념하여 많은 유림으로부터 존경받았으며, 학문과 행실이 뛰어나 존노(尊老)라는...
-
경상북도 구미시에 속하는 법정동. 양호동은 양마(일명 양마), 시룻골[甑谷], 빈수골[濱水谷]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양마는 양씨(楊氏)가 처음 들어와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석양빛이 강물을 비추어 아름답게 빛나는 마을이어서 양마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시룻골은 뒷산이 마치 떡시루처럼 생겨 시루봉[甑峰]이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빈수골은 강가에 마을이 있어 예부...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서원마을 남쪽 감천 건너에 있는 마을로 고려 태조 왕건이 이 곳에 군영을 설치하고 견훤의 아들 신검과 접전을 벌여 그를 사로잡고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기여한 곳이라 한다. 과거 홍수로 인해 어강의 나루터가 소실되어 남쪽의 새도방에 새로운 나루터가 만들어지게 되어, 어강은 웃마라 불리고 새도방은 아랫마라 불리게 되었다. 어강은 북쪽의 감...
-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해평은 요즘 ‘서울 강남의 8학군’과 같은 곳으로 정신문화의 중심지인 영남사림의 본거지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전주최씨의 해평 입향조인 검재(儉齋) 최수지(崔水智)는 성종 때 처향인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하지만 조선시대 전후의 역사를 보면, 해평은 격전지의 역사를 갖고 있기도 하다. 이는 교통이 편리하고 지리적으로 요충지에 해당하는 조건 때문이다. 고대 삼국시...
-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의 금오산에서 여름을 나는 물총새과에 속하는 새. 우리나라에는 물총새과에 호반새, 청호반새, 뿔호반새, 물총새 4종의 물총새류가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봄에 동남아시아 아열대 지역에서 우리나라로 찾아와 여름 동안 저수지와 호수, 하천 유역에서 번식을 한다. 몸길이 17㎝에 이른다. 머리가 몸에 비해 크고 부리가 길다. 암컷과 수컷이 비슷하여 성을 구별하...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월호리에 위치한 지명. 어르개는 남평문씨가 개척한 마을로서 고려 공민왕 때 목화를 전래시킨 문익점의 손자이며, 베틀을 제작한 문영(文英)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속칭 어리게[月浦]라 칭하기도 한다. 고려 공민왕 때 문익점이 목화 씨앗을 붓두껍에 숨겨와 목화를 재배하였고, 손자인 문래는 목화로 실을 뽑는 기계를 만들어 ‘문래’라 하였다. 문래의 동생 문영은 베...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월호리에 위치한 지명. 어르개는 남평문씨가 개척한 마을로서 고려 공민왕 때 목화를 전래시킨 문익점의 손자이며, 베틀을 제작한 문영(文英)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속칭 어리게[月浦]라 칭하기도 한다. 고려 공민왕 때 문익점이 목화 씨앗을 붓두껍에 숨겨와 목화를 재배하였고, 손자인 문래는 목화로 실을 뽑는 기계를 만들어 ‘문래’라 하였다. 문래의 동생 문영은 베...
-
경상북도 구미시 송정동에 있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경상북도 지역 본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1948년 미국 기독교 아동복리회(CCF: Christian Children's Fund)의 지원으로 아동복지사업을 시작하였다. 1986년 미국 기독교 아동복리회의 지원이 종결된 이후에는 국내 순수 민간기관으로 독립하여 소외된 이웃을 위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경북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의 시화(市花). 구미시는 시화를 봄에 제일 먼저 피는 꽃인 개나리로 정하여 첨단 전자산업을 선도하는 구미의 무한한 힘을 표현하고 있다. 개나리는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생명력이 강하여 어느 곳에서나 잘 자란다. 높이 3m에 이른다. 가지 끝이 밑으로 처지며, 작은 가지는 녹색이나 점차 회갈색으로 되고 껍질눈[皮目]이 뚜렷하다. 잎은 길이 4~10㎝, 너비 1.7~3㎝이...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나무꾼이 산에 나무하러 가서 신세를 한탄하며 부른 민요. 「어사용」은 『구미시지』(구미시, 1991)에 수록되어 있다. 「어사용」은 남에게 말하기 어려운 처량한 신세를 홀로 부르기에 적당한 메나리조의 선율로 구성하였다.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대체로 신분이 낮은 하층민이다.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기 어려운 사람들은 깊은 산에서 나무를 하면서 자신의 속내를 드...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생곡리에 있는 고려 전기에 태조 왕건이 머물렀다고 전하는 유적. 선산의 진산인 비봉산의 동쪽 줄기에 해당하는 태조산에서 이어지는 선산읍 생곡리 앞 낙동강 변의 조그마한 구릉 위에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진을 치고 머물렀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선산부읍지』에 따르면 한 그루의 나무가 무성하여 멀리서 바라보면 수레의 일산(日傘)과 같아 사람들이 어성정(御城...
-
조선 후기 인동현감을 역임한 무신. 어수일은 무과에 급제하여 훗날 당상관을 역임하였다. 1686년(숙종 12) 11월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부임하여 1689년(숙종 15) 4월에 옮겨 갔다. 재임 중인 1687년 별당(別堂)을 건립하고 대동고(大同庫)를 중창하였다....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금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1493년(성종 24) 용암 박운이 태어난 곳이다. 옛날 마을 안에 소류지가 있었는데 그 안에서 물고기가 숨어 살았다 하여 어은곡이라 불려졌다. 일설로는 구름이 덮여 있는 아늑한 산속마을이라 하여 어운곡, 어은골이라 불려진다고도 한다. 마을 앞 입구까지 제방이 형성되어 있고, 주변 산세는 비교적 완만하다. 마을의 경지는 주로 논농사...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금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1493년(성종 24) 용암 박운이 태어난 곳이다. 옛날 마을 안에 소류지가 있었는데 그 안에서 물고기가 숨어 살았다 하여 어은곡이라 불려졌다. 일설로는 구름이 덮여 있는 아늑한 산속마을이라 하여 어운곡, 어은골이라 불려진다고도 한다. 마을 앞 입구까지 제방이 형성되어 있고, 주변 산세는 비교적 완만하다. 마을의 경지는 주로 논농사...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금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1493년(성종 24) 용암 박운이 태어난 곳이다. 옛날 마을 안에 소류지가 있었는데 그 안에서 물고기가 숨어 살았다 하여 어은곡이라 불려졌다. 일설로는 구름이 덮여 있는 아늑한 산속마을이라 하여 어운곡, 어은골이라 불려진다고도 한다. 마을 앞 입구까지 제방이 형성되어 있고, 주변 산세는 비교적 완만하다. 마을의 경지는 주로 논농사...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금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1493년(성종 24) 용암 박운이 태어난 곳이다. 옛날 마을 안에 소류지가 있었는데 그 안에서 물고기가 숨어 살았다 하여 어은곡이라 불려졌다. 일설로는 구름이 덮여 있는 아늑한 산속마을이라 하여 어운곡, 어은골이라 불려진다고도 한다. 마을 앞 입구까지 제방이 형성되어 있고, 주변 산세는 비교적 완만하다. 마을의 경지는 주로 논농사...
-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의 금오산에서 여름을 나는 물총새과에 속하는 새. 우리나라에는 물총새과에 호반새, 청호반새, 뿔호반새, 물총새 4종의 물총새류가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봄에 동남아시아 아열대 지역에서 우리나라로 찾아와 여름 동안 저수지와 호수, 하천 유역에서 번식을 한다. 몸길이 17㎝에 이른다. 머리가 몸에 비해 크고 부리가 길다. 암컷과 수컷이 비슷하여 성을 구별하...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언국(彦國), 호는 석유(石有). 아버지는 윤면동(尹冕東), 생부는 윤기동(尹紀東)이다. 윤명렬은 1795년(정조 19) 문과에 급제하였다. 감찰, 지평, 장령, 집의 등을 거쳐 우승지에 올랐다. 1805년(순조 5) 이래 동래부사, 광주목사, 형조참의, 대사간, 좌승지를 역임하였다. 1821년 호조참판으로 동지부사(冬至副使...
-
경상북도 구미시 관내에 소재하는 언론사의 활동. 언론은 본래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국가적·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안들에 관하여 국리민복의 차원에서 정론을 펼쳐 여론의 방향을 건전하게 이끌어가는 데 그 존재 의의가 있다. 언론은 직필(直筆)이란 사명으로 인하여 숙명적으로 그 시대의 권력과 부딪치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권력의 협박과 회유에 시달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강제로...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한글의 닿소리와 홀소리를 반복하여 리듬을 만들어 부른 유희요. 「언문 뒤풀이」는 국문으로 된 말을 재미있게 엮어나가는 곡조를 굿거리장단에 얹어서 부르는 유희요이다. 이러한 「언문 뒤풀이」는 「한글 뒤풀이」라고도 부른다. 「언문 뒤풀이」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첫 구절로 삼아 여기에 사랑 이야기를 엮어 음악적인 변화보다는 사설 전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한글을 배...
-
경상북도 구미시 일원에서 사용되는 토박이말. 특정 지역 사회의 언어 모습은 토박이말의 모습을 반영하는 지역 방언, 계층 간의 언어를 반영하는 사회 방언, 자연 부락의 지역적 특성과 유래 및 방언적 특성을 보여주는 지명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언어 유형들을 총체적으로 확인할 때, 지역어로서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 구미 지역의 언어는 경상북도 방언의 하위 방언권에 속하는 지...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말의 인물 엄세영 불망비. 엄세영은 동학 농민 전쟁 때, 수령들의 정사를 살피고 백성들의 고통을 돌보는 임무를 맡은 삼남염찰사, 선무사(宣撫使)로 임명되어 민심을 수습하고 안집하는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이 시기에 민폐를 많이 시정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엄세영의 선정에 보답하기 위하여 비가 세워졌다. 비석은 덮개돌과 비좌 없이 윗부분이 평평...
-
동제인 주산제사와는 달리 뒷개들 들머리 쪽의 해평김씨 재실이 있는 시중사(侍中祠)에 모신 석상에 대한 서낭제사가 있었다. 예전에 주민들은 석상을 모셔둔 이곳을 서낭당이라고 하여 특히 애 못 낳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정성을 드렸다. 이 석상을 서낭당으로 하여 모신 유래는 여전히 주민들 사이에 생생하게 전해져 오고 있다. 해평큰마와 해평들을 마주보고 있는 오상동(五相洞, 오늘...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전력 에너지를 생산하여 공급하는 산업. 전력산업은 전원 개발을 촉진하고 전기사업의 합리적인 운영을 통해 전력 수급의 안정을 도모하여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산업이다. 여기에는 전력 자원의 개발, 개발된 전력 자원의 송전·변전·배전, 전력산업에 대한 연구 및 기술 개발까지 포함한다. 한국의 전력산업은 1961년 36만 7,000㎞에 불과하였던 발전 설비를...
-
경상북도 구미시 구포동에 있는 에어프로덕츠코리아의 산업용 가스 생산 공장. 에어프로덕트앤케미칼은 가스와 화학 제품을 복합 생산할 수 있는 회사로 60여 년 전에 설립되었으며, 본사는 미국 동부 펜실바니아의 레하이밸리에 있다. 연간 매출액이 55억 달러에 이르며, 한국을 비롯한 3개 대륙의 30여 개 나라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에어프로덕트는 전 세계 일렉트로닉스 및 화학 프로세스...
-
경상북도 구미시 공단동에 있었던 브라운관 제조 기업. 엘지·필립스 디스플레이(주)는 네덜란드의 로열필립스전자와 한국의 엘지전자가 각각의 CRT 사업부를 합병해 2001년 6월 11일에 설립되었다. 2001년 6월 30일 엘지이아이와 로열필립스전자로부터 CRT 사업 부문을 양수받았으며, 같은 해 12월에 32인치 플랫 CRT를 개발하였다. 2005년에는 29인치·32인치 수퍼 슬림...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字)는 여건(汝健). 경주부윤 박수홍(朴守弘)의 7세손이다. 아버지는 대사간 박춘보(朴春普)이다. 박천행은 1774년(영조 50) 45세의 만학으로 정시 문과에 급제하여 세자시강원의 문학·사서·필선, 사헌부의 지평·장령·집의, 홍문관의 부수찬·수찬·부교리·교리·부응교·응교, 승정원의 동부승지·좌부승지, 사간원의 대사간을 역임하...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여관(汝寬), 호는 근와(芹窩). 증조부는 박수홍(朴守弘)이고, 조부는 박진환(朴震焕)이며, 아버지는 박경휘(朴景輝)이다. 박성유(朴成裕)는 1711년(숙종 37) 무과에 급제하여 용양위부사과(龍讓衛副司果), 동호군(同護軍), 철산진관(鐵山鎭管), 장자둔별장(長者屯別將), 동여덕진관(同如德鎭管), 구산수군첨절제사(龜山水軍僉...
-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여남리는 여토실[汝吐谷], 평생들, 봇골[洑谷], 딱밭골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여남은 여토실 남쪽에 있는 마을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여토실은 여남리의 중심이 되는 마을로 예전에 망국(亡國)이라고 부르다가 여토실로 바꾸었다. 수자원이 풍부하고 농사가 잘되는 풍요한 마을이라 하여 지은 이름이다. 평생들은 여토실 앞에 있는 들판으로,...
-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오로리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미륵입상. 석조미륵입상은 돌로 만든 서 있는 모습의 미륵 부처라는 뜻으로 원래는 석가모니 부처인 여래불로 추정되는데, 주민들의 민간신앙에 따라 모셔지면서 미륵불이라 불리고 있고, 마을 이름도 ‘미륵댕이’라고 한다. 미륵당 석조미륵입상은 원래 장천면 오로리 고갯길에 있었으나 중앙고속도로 건설 공사로 인해 현 위치로 옮겼다. 높이 28...
-
신평2동에는 주민등록상 1,547세대가 살고 있다. 인구는 3,987명이다. 이 중에서 남성이 2,142명이고, 여성이 1,845명이다. 총인구를 세대별로 나누어보면, 평균 가구원수는 약 2.6명밖에 되지 않는다. 10세를 구간으로 한 연령 계층별 인구구성을 살펴보면, 취학연령층인 0~9세가 9%이고, 직장정년기인 50~59세가 9%이다. 10~19세, 20~29세, 3...
-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여남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마을 앞에 보가 있어서 붓골, 복골, 복곳이라 하였고, 그 보에 흐르는 물이 너무나 맑아서 려수라는 이름도 있다. 면소재지에서 동쪽에 위치하며 남쪽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대부분 주민들이 논농사와 특수작물로 생업을 이어가고 있다. 동쪽은 명곡리와 경계이고, 서북쪽은 하장리 큰곰실과 접경을 이룬다. 여남리의 자연마을인 여토실 남서...
-
조선 시대 구미 출신의 의병. 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여순(汝順), 호는 설강(雪岡). 백수화는 임진왜란 당시 전몽운(全夢雲), 이의정(李義貞), 장사진(張士珍)과 함께 형제의 의(義)를 맺고 금오산에 들어가 초막을 짓고 왜군을 섬멸하니, 왜군들은 그들을 백호(白虎), 전웅(全熊)으로 비유하며 두려워했다고 한다. 네 사람 모두 전장에서 순국하였고 사후에 사의사(四義士)로 칭해졌...
-
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여승(汝昇), 호는 죽창(竹窓). 윤돈은 1585년(선조 18) 문과에 급제하여 수찬, 교리, 헌납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를 호종하였다. 1594년 부제학에 오르고, 명(明)나라 도독(都督) 유정(劉綎)의 접반사관(接伴事官)으로 군량 보급에 노력했다. 이어 대사간, 이조참의, 강원도관찰사, 병조참판, 대사헌...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내고리에 있는 골짜기. 내고리에서 도로변 가는 길가에 위치한 곳으로 나무가 우거져 있다. 이 곳에 여우가 밤이면 나타나 밤 늦은 길손들이나 시장에서 늦게 오는 주민들을 괴롭혔다고 하여 여우골을 속칭 여시골이라 하였다. 선산읍 소재지에서 약 2.5㎞ 정도 김천 방면 국도 59호선에서 우회전 하면 골두매라는 자연마을이 있다. 거기서 서쪽으로 약 1㎞ 미만의 거리...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문성리에 위치한 연못. 고아읍 문성리 마을 앞에는 늪이 있었는데 조선 초기의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자고 일어나 보니 누군가가 그 늪 둘레를 짚으로 나란히 이어놓았다. 주민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간밤에 앞산에서 여우가 몹시 울었던 사실을 기억하며, 이는 반드시 여우의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짚이 놓였던 자리대로 둑을 쌓으라는 뜻인 줄 알고 그대로 둑을 막...
-
경상북도 구미시 형곡동에 있는 국악 연주 단체. 구미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연주회, 현장공연, 아트 인 구미 등을 통해 시민들이 우리음악을 자주 그리고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도록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고 있는 젊은 국악연주인들의 모임이다. 1999년 8월 구미 지역의 국악 연주인들이 체계적인 정기연주를 위하여 국미숙을 중심으로 국미숙가야금연주단을 조직하였다. 이후 제2회 정기연주...
-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시조는 당(唐)의 한림(翰林)을 역임한 어매(禦梅)로서 874년경 황소(黃巢)의 난을 피하여 신라로 왔다는 8학사(八學士) 중의 하나이다. 대광부군(大匡府君) 여양유(呂良裕)를 중시조로 한다. 여위현은 경상도 성주성(星州城) 북쪽의 야동(冶洞)에 살았는데,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잠저(潛邸)에 있을 때 친구로 지냈다. 이성계가 왜장 아...
-
조선 후기 인동도호부사를 역임한 무신. 여인길은 무과에 급제하여 훗날 당상관을 역임하였다. 1615년(광해군 7) 2월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부임하여 1617년 9월에 교체되어 옮겨 갔다. 재임 중 삼우당(三友堂)을 건립하였다....
-
조선 후기 구미지역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여임(汝任), 호는 강탄(江灘). 할아버지는 김석지(金錫址)이며, 아버지는 탄옹(灘翁) 김경(金澃)이다. 김하량(金廈樑)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630년(인조 8) 진사가 되고 1632년 식년문과에 병과 2등으로 급제하였다. 이후 안동부사·판결사(判決事)·한성부우윤 등을 역...
-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특정한 날에 여자가 남의 집을 일찍 방문하는 것을 꺼리는 풍습. ‘여자는 남의 집에 일찍 가지 않기’라는 금기는 설날인 정초나 새해 처음으로 맞는 토끼날[上卯日], 그리고 영등제사가 있는 이월 초하루 같은 날이면 더욱 강화되었다. 여성에 대한 금기는 대단히 보편적이어서 구미 지역 역시 예외적이지 않았다. 여성이 먼저 출입하면 가장이 구설수에 오른다거나, 닭이...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낙산리는 사기점, 대문동, 하도, 중리, 원촌, 칠창, 여진 등 일곱 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사기점은 숭신산성 아래에 있는 마을로 천주교도 박해 때 신도들이 이곳에 피신하여 사기를 만들어 붙여진 이름이다. 대문동은 조선 선조 때 홍문관교리를 지낸 경암 노경임(盧景任, 1569~1620)이 이곳에 대궐 같은 큰 집을 지었는데, 대문이...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여진(汝珍), 호는 호재(浩齋). 증조부는 허추(許錘), 할아버지는 허선(許譔), 아버지는 사정(司正) 허정(許禎)이다. 1519년(중종 14) 진사시를 거쳐 같은 해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사관(史官)과 주서가 되었다. 조선 중종 연간 기호사림파를 대표했던 정암 조광조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1524년(중종 19)...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 장학(張澩)의 강학 시설. 여차정은 남파 장학이 1659년 제자들과 공부하기 위해 건립한 곳으로, ‘여차정(如此亭)’이란 이름은 바깥 세상은 시끄럽지만 현재의 이곳은 맑다는 뜻으로 지었다. 마당에 있는 백일홍은 장학이 건립 당시에 심은 것이라 전한다. 1659년(효종 10)에 건립하였으며, 1959년 복원하였다. 정면 4칸, 측면 2칸 반...
-
조선시대 장학이 구미 지역에 건립한 여차정 주변의 아름다운 14경관을 읊은 한시. 여차정(如此亭)은 1659년(효종 10)에 장학(張學)이 건립한 정자로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다. 현재 「여차정십사경시일」의 원문은 전하지 않고 다만 그 내용만이 전해 올 뿐이다. 「여차정십사경시일」은 여차정 주변의 아름다운 14경관을 자연 현상 혹은 자연물과 특기 사항의 형식으로 제목을 설정한...
-
조선시대 장학이 구미 지역에 건립한 여차정 주변의 일곱 가지 아름다운 경치를 읊은 한시. 여차정(如此亭)은 1659년(효종 10)에 장학(張學)이 건립한 정자로 현재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다. 「여차정칠선승」은 총 일곱 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편은 승경과 위치 및 특기 사항 그리고 오언 율시의 본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모강(永慕岡)」 영모강은 여차정 서북쪽에...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 자는 여함(汝涵), 호는 양탄(瀁灘). 교위 김취연(金就硏)의 증손이며, 아들은 삼매당(三梅堂) 김하정(金廈梃)이다. 김양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과 한강(寒岡) 정구(鄭逑)를 스승으로 섬겼으며, 1605년(선조 38)에 진사가 되었다. 병자호란의 소식을 접한 이후 누차 벼슬을 내렸으나 응하지 않고 두문불출하면서 서사(書史)에 관심...
-
조선시대에는 어느 지역을 가거나지역 나름대로 공인된 양반가문들이 있었다. 지역마다 그 지역의 대표적 양반가문과 그들 가문의 서열을 말하여 주는 성씨 명단이 일종의 민간설화의 형태로 전해오고 있었다. 어떤 지역을 단위로 하여 그 지역 내의 양반가문을 품정하는 관습이 보편화되어 있었다. 무엇이 가문 품정의 기준이었던가. 대표적 양반가문을 선정할 때 그 선정기준이 되는 것 중에 가장 비...
-
조선 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장현광(張顯光)은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이기설에서 일본설(一本說)에 입각하면서도, 이이의 ‘기발이승’을 수용하는 등 독자적인 학문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일생을 학문과 교육에 힘을 기울였으며, 산림의 한 사람으로서 도덕정치의 구현을 강조하였다. 장현광의 강학 시설로 구미시 임수동에 부지암정사(不知巖精舍)가 있다. 본관은...
-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하장리에 있는 여호와의증인 소속 교회. 여호와의증인은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생겨난 기독교 종파의 하나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을 믿으며 현실적인 제도를 거부하는 생활로 유명하다. 뉴욕의 브루클린에 본부가 있으며 전세계 100여 개국에 선교사를 파견하고 있다. 한국에는 1912년 선교사 R.R. 홀리스터에 의하여 전파되기 시작했으며 현재 700개 회중(會...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 자는 여화(汝和), 호는 돈봉(遯峰). 오로재(吾老齋) 김성미(金成美)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습독(習讀) 김숭렬(金崇烈)이다. 김녕은 1610년(광해군 2)에 진사가 되었고, 1612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인목대비를 폐하자는 논의가 일어나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1623년 인조반정 뒤 임실현감으로 등...
-
조선 후기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여휴(汝休), 호는 용암(龍巖). 평정공(平靖公) 이약동(李約東)의 후손이며 승지 이유번(李有蕃)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군수 이석명(李碩明), 아버지는 현령 이민선(李敏善), 어머니는 김봉(金崶)의 딸이다. 이상일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광해군의 문란한 정사를...
-
조선시대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명중(明仲) 또는 이중(彛仲), 호는 역락당(亦樂堂). 할아버지는 노희식(盧希軾)이고, 아버지는 노수성(盧守誠)이며,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로 장열(張烈)의 딸이다. 노경륜(盧景倫, 1566~1655)은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학문이 뛰어나고 기상이 온화하여 당시 사우(師友)들의 모범이...
-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경상북도 구미시의 역사. 구미 지역은 전근대 사회에서는 선산과 인동이 중요한 행정구역이었다. 선산은 삼국시대부터 일선, 숭선, 선주로 불리다가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 개편 때 선산군으로 개명되었고 2년 뒤 선산도호부로 개칭되었다. 인동은 삼국시대에 사동화로 불렸고, 1604년(선조 37)에 인동도호부로 승격되었다. 그 뒤 1978년 인동면이 구미읍과 통...
-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 교통·통신기관으로 설치된 역(驛)과 원(院). 역은 전통시대 공공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설치된 교통·통신기관이다. 국가의 명령과 공문서의 전달, 변방의 긴급한 군사 정보 및 외국 사신 왕래에 따른 영송(迎送)과 접대, 그리고 공공 물자의 운송 등을 위하여 설치된 교통·통신기관이다. 흔히 우역(郵驛)·역관(驛館)이라고도 하였다. 원나라 참적(站赤) 제도의 영향...
-
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홍중(弘仲), 호는 경암(敬菴). 할아버지는 노희식(盧希軾)이고, 아버지는 노수성(盧守誠)이며,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로 장열(張烈)의 딸이다. 노경필(盧景泌, 1554~1595)은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573년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 능서랑(陵署郞)으로 천거되었으나 나아가...
-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정월 대보름까지 날리던 연을 날려 보내는 풍습. 연날리기는 정월 대보름 며칠 전에 성황을 이루고, 보름이 지나면 날리지 않는다. 연을 마지막 날리는 대보름이 되면 ‘액(厄)연 띄운다.’ 하여 연에다 ‘액(厄)’자 를 쓰거나 ‘송액(送厄)’·‘송액영복(送厄迎福)’이라 쓰기도 하며, 또는 이름을 연에다 적어 날려 버림으로써 액이 몸에서 없어지기를 바라기도 하였다...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이루어지는 연극 및 영화 활동. 연극은 배우가 무대 위에서 대본에 따라 동작과 대사를 통하여 표현하는 예술이고, 영화는 스크린 상에 움직이는 영상을 중심으로 하는 예술이다. 연극은 삶의 근원적·총체적 경험에 기원을 두고 있다. 따라서 다른 문화적 산물에 못지않게 역사적·지역적·민족적 소산이다. 그에 반하여, 영화는 제작 과정에 창조적 요소와 기계·기술적 요소,...
-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정초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바람을 이용하여 연을 하늘에 띄우며 즐기는 놀이. 연날리기는 오랜 옛날부터 전승되어 오는 민족전래 기예(技藝)의 하나로서, 음력 정초가 되면 해마다 장관을 이루었던 민속놀이이다. 연은 종이에 가는 댓가지[竹骨]를 붙여 실로 꿰어 공중에 날리는 놀이 용구로서 바람을 이용하여 하늘에 띄운다. 구미 지역에서 주로 날리던 연에는 ‘까불레기연...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산양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마을 뒷산에 아산장씨 묘소가 있는데 풍수설에 호구혈(虎口穴)로 자손이 참배하면 범(호랑이)의 밥이 되며 생명을 잃는다고 하여 자손이 먼 곳에서 망배(望拜)만 한다. 그 이유는 묘소 안산이 창산(槍山)이라 창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범을 겨누니 자손은 범의 밥이 된다고 한다. 마을 앞 안산은 마을에서는 창산(唱山)이라 하여 주점이 많다...
-
조선 시대의 문신이자 공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효언(孝彦), 호는 오봉(五峯). 연안군(延安君) 이숙기(李叔琦)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홍문관수찬 이세범(李世範), 아버지는 이천현감 이국주(李國柱), 어머니는 사직 박여(朴旅)의 딸로 정경부인 비안박씨(比安朴氏)이다. 이호민은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79년(선조 12) 진사에 합격하고 1584...
-
조선 시대의 문신이자 공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효언(孝彦), 호는 오봉(五峯). 연안군(延安君) 이숙기(李叔琦)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홍문관수찬 이세범(李世範), 아버지는 이천현감 이국주(李國柱), 어머니는 사직 박여(朴旅)의 딸로 정경부인 비안박씨(比安朴氏)이다. 이호민은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79년(선조 12) 진사에 합격하고 1584...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사운(師雲), 호는 연미정(戀美亭). 소매당(訴梅堂) 장영(張𨥭)의 후손이다. 아버지 장시호(張時皥), 어머니는 김해배씨(金海裵氏)이다. 장석규는 1800년(정조 24) 양친이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 이갑회(李甲會)의 무고(誣告)로 죄인이 되어 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옥중에서 태어났다. 그 후 어머니, 누이와 함께 전라...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경윤(景胤), 호는 송설헌(松雪軒). 직제학 장계(張桂)의 후손으로 장순효(張純孝)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장경원(張敬源), 아버지는 홍산현감 장안량(張安良), 어머니는 고승안(高承顔)의 딸이다. 장말손은 1459년(세조 4)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박사를 거쳐 사헌부감찰, 사간원정언 등을 지냈다. 1463년 함길도병마도사로...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읍성 서문 밖에 있는 마을로 읍으로 들어오는 입구이므로 이문(里門)이라 하였다. 마을을 개척할 당시 새와 연꽃이 많다고 하여 연봉(連鳳), 고려 숭선군(崇善郡) 때 뒷산의 모양이 날개를 편 큰새[大鳥]의 형상 같다 하여 황새골[大鳥谷]이라고도 불렀다. 약 1,500년 전에 김해김씨가 처음 정착하여 이루어진 마을로, 비봉산 오른쪽 날개 끝자락...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이문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마을을 개척할 때 새와 연꽃이 많다 하여 연봉(蓮鳳)이라 하였다. 비봉산의 봉을 맞이한다는 뜻으로 영봉(迎鳳)이라 하기도 했으며 조선 초기 전가식, 김숙자, 김치, 하담, 정초, 유면, 하위지, 정지담 등 많은 인물이 이 마을에 살면서 과거에 장원급제 또는 부장원을 하셨는데, 선산의 한 작은 마을 연봉리에서 장원급제를 가장 많이 했...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용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대구 팔공산의 지맥인 만경산에서 내려다 보면 낙동강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한송이 연꽃이 물위에 떠 있는 것 같아 연산(蓮山)이라고도 하고 만경산 지맥의 낮은 산이 가산리를 거쳐 낙동강까지 이어졌다고 연산(連山)이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의성군 단밀면에 속해 있었으나 1987년에 선산군으로 편입되었고 현재는 구미시 도개면 용산리이다. 낙...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용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대구 팔공산의 지맥인 만경산에서 내려다 보면 낙동강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한송이 연꽃이 물위에 떠 있는 것 같아 연산(蓮山)이라고도 하고 만경산 지맥의 낮은 산이 가산리를 거쳐 낙동강까지 이어졌다고 연산(連山)이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의성군 단밀면에 속해 있었으나 1987년에 선산군으로 편입되었고 현재는 구미시 도개면 용산리이다. 낙...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산양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마을 뒷산에 아산장씨 묘소가 있는데 풍수설에 호구혈(虎口穴)로 자손이 참배하면 범(호랑이)의 밥이 되며 생명을 잃는다고 하여 자손이 먼 곳에서 망배(望拜)만 한다. 그 이유는 묘소 안산이 창산(槍山)이라 창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범을 겨누니 자손은 범의 밥이 된다고 한다. 마을 앞 안산은 마을에서는 창산(唱山)이라 하여 주점이 많다...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한 해를 주기로 일정한 시기에 반복되는 관습적 생활 행위. 세시풍속의 세(歲)는 한 해를 의미하고 시(時)는 네 계절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세시풍속은 크게 보아 한 해의 네 계절, 즉 철따라 행해지는 풍속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네 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달의 변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으므로 음력으로 매월 행해지는 풍속이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세시풍속을...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금호리에 위치한 연못. 연지는 국도변에 위치한 못으로 연꽃이 못에 가득차는데, 신라에 불교를 처음으로 전한 아도화상(阿度和尙)이 심었다고 전한다. 아도화상이 이르기를 “이 못에 연꽃이 길이 피거든 나의 정신이 살아 있음을 알아달라.” 했다고 한다. 국운이 성하면 연꽃도 성하고 국운이 쇠하면 연꽃도 쇠한다고 한다. 금호 연지는 해평면소재지에서 상주 방면으로 금...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중우(仲又), 호는 연초재(燕超齋). 사용 윤희림(尹希琳)의 현손이자 국자감정 윤변(尹忭)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영의정 윤두수(尹斗壽), 아버지는 문익공(文翼公) 윤방(尹昉)이다. 윤신지는 선조와 인빈김씨(仁嬪金氏)의 소생인 정혜옹주(貞惠翁主)와 결혼하여 해숭위(海嵩尉)에 봉하여졌다. 선조가 때때로 시를 지어 바치게 할 정...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산양리에 위치한 산. 산봉우리의 모양이 연꽃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연화봉은 해발고도가 202m인 작은 산으로, 위로는 냉산 지맥인 향산이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서 방향으로는 74m 높이의 창산이 자리하고 있다. 남동쪽에는 송암지가 있고, 송암지 안에는 못 안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이름 붙여진 못안마을이 있다. 한편 연화봉 오른쪽으로는 영남의...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마을에 있던 큰 연못에 연꽃이 많이 피고 연뿌리가 많이 생산된다고 하여 연흥(蓮興)이라고도 한다. 문헌에 “신라와 고려 때에는 예능부곡(藝能部曲)이 부(府)의 남쪽 15리에 있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예능부곡이 있던 곳으로 여겨진다. 조선시대에 지금의 내예리와 외예리를 합한 지역에 재주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고 하여 예능촌이라 불렀고,...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내예리의 감천 위에 있는 다리. 길이는 30m, 폭은 8.8m, 유효 폭은 7.5m, 높이는 2.8m이다. 경간(徑間, 지주 교각) 수는 2개이고, 최대 경간 길이는 15m이다. 상행과 하행 각기 1차선 차도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상부 구조 형식은 강화 콘크리트 슬라브교(RCS)이며, 하부 구조 형식은 중력식 교각(GP)이다. 설계 하중은 2등급(DB 1...
-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켜 포상된 여자. 열녀란 위난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또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守節)한 부녀자를 가리킨다. 엄밀히 말하면 열녀는 혼인 전에 약혼자가 죽었을 경우 그 뒤를 따라 죽은 여자 및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강포자(强暴者)에 항거하는 미혼녀를 가리켰고, 열부는 기혼녀로서 남편의 뒤를 따라 죽은 부인 및...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열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길원득의 처 김씨는 산중에서 졸지에 만난 왜군이 욕을 보이려 하자 끝까지 저항하다가 피살당하였다. 조정에서 길원득의 처 김씨의 열행을 인정하여 정려를 내렸다....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열녀. 본관은 양성(陽城). 아버지는 이석배(李碩培)이며, 남편은 현풍곽씨(玄風郭氏) 곽태호(郭泰鎬)이다. 곽태호의 처 양성이씨는 16세에 시집온 후 시부모와 남편을 잘 모시고 부도(婦道)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남편이 중병으로 5년 동안 앓게 되자 그 병을 자기가 대신 앓기를 매일 같이 기도했지만, 남편은 끝내 1918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
조선시대 선산부사 조구상이 「향랑도(香娘圖)」 뒤에 쓴 기문(記文). 「열녀향랑도기」는 총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향랑도(香娘圖)」의 기문을 쓰게 된 배경을 소개하고 이어서 향랑의 일대기를 서술하는 가운데 향랑이 투신하기 전에 불렀다는 「산유화」를 삽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향랑의 정절에 대해 조정에 정려를 요청한 내용과 그 의의를 다시 되새기는 형식으로 마무리된다....
-
조선 후기 윤광소가 구미 지역 출신의 열녀(烈女) 향랑(香娘)에 대해 쓴 전기. 윤광소(尹光紹, 1708~1786)는 조선시대의 문신으로 자 치승(稚繩), 호는 소곡(素谷)이다. 1744년 수찬이 되어 이조판서 이종성과 같이 『속오례의』를 수찬하였다. 1776년(영조 52) 부사직(副司直)으로서 정후겸(鄭厚謙) 일파로 몰려 유배되었다. 유향(劉向)의 『열녀전(烈女傳)』에 언급되어...
-
조선시대 장류가 구미 지역 출신인 열녀(烈女) 향랑(香娘)에 대해 쓴 전기. 「열녀향랑전」(장류)은 열녀(烈女) 향랑(香娘)의 일대기와 장류(張瑠)의 찬(贊)으로 구성되어 있다. 형곡마을에 사는 향랑(香娘)은 일찍 어머니를 여의었다. 향랑은 미련하고 무정한 계모 밑에서 온갖 구박을 받으며 자랐지만 타고난 자태가 아름다웠고 길쌈과 바느질에 능하였다. 향랑은 성장하여 시집을 갔는데 남...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음식물을 소재로 입맛을 돋우기 위해 부르는 민요. 「열무김치」는 『고향 경북』에 실려 있지만, 누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불렀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 「열무김치」는 열무김치를 중심으로 하는 노래가 아니다. 배고프던 시절 일상생활에서 먹을 수 있는 다양한 먹을거리 중에서 노래의 첫 소절을 따서 부르는 노래이다. 구미 지역에서 채록된 「열무김치」 노래의 전...
-
조선 후기 김민택이 구미 지역의 열녀 상낭(尙娘)의 절개를 칭송하며 쓴 전기. 김민택(金民澤, 1678~1722)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치중(致中), 호는 죽헌(竹軒)이다. 경종이 즉위하자 소론 이진검·이진유 등이 김민택의 형 호조참판 김운택을 논핵하였다. 이때 형 김운택의 용서를 청하는 상소를 하였고, 뒤에 실록랑·지제교를 지냈다. 저서에 『죽헌집(竹軒集)』이 있다. 평민...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산·언덕을 넘어 다니는 비탈진 곳. 국어사전에 의하면, 재는 넘어 다니도록 길이 나 있는 높은 산의 고개로 정의되어 있다. 영어로는 패스라고 하는데, 그 어원은 패서블(passable) 즉 통과할 수 있다는 데서 비롯되었으며, 산등성이의 낮은 곳에 길이 통한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대체로 산등성이를 넘는 도로가 통하고 있는 곳을 말한다. 예로부터 고개는 산지의...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비안(比安). 자는 영가(寧可). 호는 율정(栗亭). 박서생(朴瑞生)은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음보(蔭補)로 성균학정이 되었다. 1401년(태종 1) 증광문과에 병과 3등으로 급제하고, 1407년(태종 7) 문과중시에서 을과 1등으로 급제하였으며, 이조참판과 사헌부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벼슬...
-
조선시대 구미 지역을 중심으로 성리학통을 전개한 유학자들. 해평길씨 길재가 정몽주의 학통을 이어 받아 고향 선산으로 돌아와 후학을 가르쳤고 선산김씨 김종직 부자가 그의 학통을 계승하면서 선산은 15세기 영남사림파 형성의 중심지가 되었다. 또한 고려 말에 성주·선산 등지 토성들의 상경종사(上京從仕)가 활발해지자 재경 관인이나 혹은 타읍 출신의 사족들이 대거 선산 지방으로 모여 들었다...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전해오는 아리랑 민요. 구미 지역에서 불리는 아리랑인데, 최근에는 「영남 아리랑」이라고도 한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불렀던 여러 가지 노래가 하나로 모여서 엮어졌기 때문에, 각 절마다 노래 부른 주체가 처녀·노인 혹은 아낙 등 다채롭다. 처녀·총각의 연애, 인생의 허무함, 좋은 땅은 신작로로, 괜찮은 처녀는 갈보가 되는 현실 비판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음력 2월 1일 영등할머니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날. 바람을 관장하는 영등할머니가 내려온다는 날로 비가 오면 풍년, 바람이 불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구미 지역에서는 2월 초하루를 ‘영등할매 오는 날’ 혹은 ‘영등할마이날’이라고도 한다. 민간에서는 영등할머니가 지상에 내려와 있는 기간 동안 한 해의 풍해를 방지하고자 영등할머니에게 제사를 올리는데, 이것을 ‘영...
-
2월 초하루에 지내는 영등할매모시기는 ‘2월 밥 한다’고 하였으며, 초하룻날 해가 뜨기 전에 콩나물, 배추나물, 도래(도라지), 고사리, 밥, 콩나물국을 만들어 부엌의 솥 옆에 놓고, 솥의 뚜껑을 열어 식구수대로 밥에 숟가락을 원형으로 꽂는다. 음식을 차리면 앞에서 비손을 하며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소원을 빈다. 소원은 ‘일 년 열두 달 재수있고, 아무 거슥없이 해 주십소’라고 한...
-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 있는 박교령(朴喬齡)을 추모하기 위한 일제강점기 재실.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집이다. 평면은 어간(御間)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인데, 대청과 온돌방 사이에는 4분합의 불발기문을 설치하였으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을 두었다. 무익공(無翼公)의 장혀수장집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농소리에 있는 조선시대 함녕군(諴寧君)과 부인 전주군부인(全州郡夫人) 최씨를 모신 사당. 함녕군은 신빈(信嬪) 영월신씨의 소생으로 1417년(태종 17) 공영군(恭寧君)으로 봉해졌다가 1430년(세종 12)에 함녕군으로 개봉되었다. 1429년(세종 11)에는 주청사(奏請使)로 명에 가서 명 황제를 설득하여 오랜 숙원이던 금은세공(金銀歲貢)을 폐지하는 데 공을...
-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 있는 한국전통무용단. 선조들의 전통춤을 계승 발전시키고 현대에 맞는 우리 문화의 전형을 창조 보급하여 건강한 지역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2001년 5월 5일 한국전통무용단 영산무가 창단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통춤 공연, 민속춤 공연, 무용 강습, 문화 행사 기획 등을 통해 그 활동 영역을 문화 활동 전분야로 폭을 넓혀 구미 지역에만 국한하지 않고 국·...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영서(永瑞). 박수홍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박문호(朴文浩)이다. 박래명(朴來命, 1797~1875)은 1824년(순조 24) 무과에 급제하여 이후 벼슬이 전라우도수군절도사와 경상좌도병마절도사에 이르렀다....
-
고려 후기 해평부원군에 봉해진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할아버지는 고려 후기에 판공부사를 역임한 해평윤씨(海平尹氏)의 시조 충간공(忠簡公) 윤군정(尹君正), 아버지는 충렬왕대 부지밀직사사를 역임한 윤만비(尹萬庇)이다. 윤석은 고려 충선왕 때 별장을 거쳐 충숙왕이 즉위하자 호군(護軍)에서 대언(代言)에 올랐다. 1320년(충숙왕 7) 총부전서(摠部典書)로서 천추사(千...
-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영화 상영 시설. 구미는 1995년 선산군과 구미시가 통합되어 그 명칭이 구미시가 되었다. 1970년대 이후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의 길로 나아간 대표적 도시인 구미시는 산업과 경제를 떠올리기는 쉽지만 문화를 생각하기는 어렵다. 1990년대부터 조금씩 문화적 여유를 찾게 됨으로써 구미 지역에 극장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대부분 활성화되지 못하고 20...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예강2리에 있는 수령 280년의 회나무. 회화나무는 콩과의 낙엽 관목으로 높이 25m에 이른다. 잎은 어긋나고 1회 깃꼴겹잎이다. 작은 잎은 7~17개씩 달리고 달걀 모양 또는 달걀 모양의 타원형이며 뒷면에 잎자루와 함께 누운 털이 있다. 꽃은 8월에 원추꽃차례를 이루며 연한 황색으로 피고, 열매는 협과(莢果: 콩처럼 꼬투리로 맺히는 열매)로 10월에 익는다...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에 속하는 법정리. 예강리는 예곡(禮谷), 강정(江亭)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예강은 예곡과 강정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예곡은 지금의 예강1리로, 조선 성종 때 심회(沈澮)가 양아버지 강거민(康巨敏)의 부인 전씨(全氏)의 시묘를 한 효행이 알려져 이를 본받고 후세에 전하고자 예곡이라 하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음운 변화를 겪어 이국(伊國)이라고...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예강리를 동서로 흐르는 하천. 예강리를 흐르는 하천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강천은 낙동강 서쪽에 위치한 예강리 위를 동서로 가로질러 흐르는 하천이다. 이 예강천 양안 중 위쪽이 예강1지구, 아래쪽 항곡리 쪽이 예강2지구이다. 마을 동쪽을 흘러가는 낙동강은 우리나라 2대 강의 하나로서, 예강리 마을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다. 선산읍 원리 쪽에서 흘러와서...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북산리에 있었던 공립 초등학교. 몸과 마음이 바른 어린이, 서로 도우며 예절 바른 어린이, 스스로 도우며 예절 바른 어린이, 소질과 특기를 살리는 어린이,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였다. 1935년 5월 13일 선산공립부설 간이학교로 개교하였다가 1944년 5월 14일 선산서부국민학교로 승격되었다. 1945년 12월 15일 예산국민학...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의 예술 활동과 예술 단체 및 시설. 예술은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심미적 대상과 환경·경험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기술과 상상력을 발휘하는 인간의 활동과 그 성과를 가리킨다. 또 예술이라는 용어는 사용된 매개물이나 제작물의 형태에 의해서 전통적으로 범주화된 몇 가지 표현 양식 중의 하나를 지칭하기도 한다. 따라서 여러 가지 미적 표현 양식들을 개별적으로 예술...
-
경상북도 구미시 원평동에 있는 한국사진작가협회 산하 구미 지역 지부. 구미 지역 사진 인구의 저변확대와 구미 사진의 발전을 위해 1996년 3월 23일 한국사진작가협회로부터 인준을 받아 초대 이홍화 지부장이 취임하였다. 2008년 제6대 원정대 지부장이 취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국사진작가협회 구미지부는 한국사진작가협회로부터 지부로 인준 받은 1996년 10월 제1회 한국사진...
-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한국연예협회 경북도지회 산하 구미 지역 지부. 1987년 12월 1일 한국연예협회로부터 인준을 받아 초대 지부장에 오인원이 취임하였다. 위문공연, 구미시민노래자랑, 청소년예술제 등 다양한 공연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008년 8월 14일에는 선산읍 복개천에서 아트 인 구미를 개최하여 선산읍민들에게 흥겨운 축제의 장을 마련하였고, 10월 24일에는 낙동강국화...
-
신평2동 이주민마을 주민들은 아직도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옛 마을을 그리워하고 있다. 나이 70세가 넘은 이주민 1세대는 더욱 그렇다. 그들은 대대로 살아 온 자연촌락에서의 모듬살이가 지금까지도 몸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구미산업단지 조성으로 고향을 잃어버린 신평2동 이주민들은 유난히도 비공식적 친목조직을 많이 만들어 왔다. 여러 세대를 걸친 농경정착생활과...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가리는 수자곡(修子谷), 신촌(新村, 일명 새마), 점촌(店村)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오가리는 임진왜란 때에 조문옥(曺文玉)이라는 선비가 경기도 광주에서 피난처를 찾아 남으로 내려왔다가 이곳의 다섯 가지 아름다움에 도취하여 정착하고 서당을 열어 개척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수자곡은 원래 구평(龜坪)이라 하였다가 1567년경 무...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오가리에서 음력 정월 초사흗날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오가리 마을 서쪽으로 2㎞ 지점의 저전동(楮田洞) 뒷산에 옥녀봉이 있다. 옥녀가 다섯 손가락으로 거문고를 타는 모습과 같다 하여, 또는 처녀가 거문고를 타는 산세에는 다섯 가지의 아름다움[佳]을 지녔다고 하여 오가리라고 했다고 한다. 오가리 동제는 산제장과 마을 입구의 골맥이 당목 앞...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찹쌀·차조·붉은팥·찰수수·검은콩 등 5가지 곡식으로 지은 밥. 오곡밥은 음력 정월대보름의 전통 절식(節食)으로 지방에 따라 재료가 조금씩 다르다. 조선시대 음식조리서인 『정조지(鼎俎志)』와 『규합총서(閨閤叢書)』에 오곡밥의 재료와 조리법이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정월대보름 절식으로 약밥이 소개되어 있어, 오곡밥이 대보름 절식이 된...
-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정월 대보름에 먹는 절식 풍습. 정월 대보름이 되면 다섯 가지의 곡식을 섞은 오곡밥과, 복을 싸서 먹는다는 의미로 김이나 나물에 밥을 싸서 먹는 복쌈 먹기가 있다. 오곡밥에는 찹쌀(혹은 찰서숙)이 들어가므로 찰밥이라고도 하는데, 찬으로 각종 묵은 나물들을 함께 장만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상원조에는 “오곡으로 잡곡밥을 지어 먹는다. 또 이것을 나누어...
-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오로2리 불당에서 초파일, 유두, 칠석, 백중, 동지 등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5번의 마을 제사. 오로2리 동제는 오로실 사람들이 옛날 미륵불이 있었다는 ‘불당’ 또는 ‘미륵당’이라는 곳에 있는 석조여래입상(미륵당 석조미륵입상) 앞에서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마을 제사이다. 주민들은 이 불상을 ‘미륵님’이라고 부르며 음력 4월 8일·6월 6일·7월...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오로1리에 속하는 정보화마을. 옛 지명은 오을고개(五乙古介)이다.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르자 직제학 오로재(吾老齋) 김성미가 사위 이맹전과 함께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낙향한 뒤, ‘단종을 사모하며 나는 이곳에서 늙는다’는 말에서 오로(吾老)라 칭했다고 한다. 원래 낙동강 주변 넓은 모래밭에서 재배하는 무공해 찰쌀보리를 다량으로 재배하며 살아가는...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오로리에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감천의 동안에 위치한 고아읍 오로리 함안마을 오른쪽의 동쪽으로 뻗은 능선 말단부에 100여 기의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다. 노출된 내부 상태로 보아 구덩식 돌덧널로 판단된다. 고분군 주변에는 경질토기, 연질토기편들이 관찰된다. 오로리 고분군은 동쪽으로는 감천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면서 형성된 충적대지를 바라보는 해발 135m의...
-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오로리에 있는 수령 200년의 버드나무. 버드나무는 낙엽 활엽 교목으로 버들 또는 뚝버들이라고도 한다. 들이나 냇가에서 흔히 자란다. 습지에서도 잘 자라 수원(水源)의 지표식물이다. 버드나무 뿌리는 물을 깨끗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높이 20m에 이르고, 우리나라 각지의 표고 50~1,300m에 자생하며 일본과 만주 등지에도 분포한다. 오로리 버드나무는 높...
-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오로리에 있는 시대 미상의 절터. 1968년 조사 기록에 의하면 오로리 사지 남쪽 산록 평평한 계곡 변에 탑재 2석이 남아 있다고 하며, 인근 주민들도 탑재가 있었다고 하였으나 누가 가져갔는지, 아니면 토사에 묻혔는지, 얼마 전부터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탑재가 있었던 곳은 사찰이 경영될 만한 곳이 못 되므로 사지로 추정할 수 없으며, 이 부재는 위쪽 중복...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에 속하는 법정리. 오로리의 옛 이름은 오을고개로, 외부에서 마을로 들어가려면 모두 고개를 넘어야 했기 때문에 올라가는 고개, 즉 오을고개가 되었다고 한다. 다른 유래에 따르면, 태종이 세종의 장인인 심온(沈溫)을 숙청할 때 그 아들 심회(沈澮)가 유모의 헌신으로 오로리 가좌골로 와서 강거민(康居敏)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뒷날 심온의 결백이 밝혀지고 벼슬이...
-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로리는 중화(中和), 뚱절, 설곡(雪谷, 薛谷), 미륵당, 장구목, 오로실(五老室)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중화는 설곡·오로실·장구목에서 내려오는 개울이 서로 합쳐져 내려가는 중간 지점에 있는 마을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중평(中坪)으로 불리기도 한다. 뚱절은 마을이 커다란 밭둑에 자리 잡고 있고, 뒷산이 절벽처럼 깎아지른 산이라...
-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로리는 중화(中和), 뚱절, 설곡(雪谷, 薛谷), 미륵당, 장구목, 오로실(五老室)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중화는 설곡·오로실·장구목에서 내려오는 개울이 서로 합쳐져 내려가는 중간 지점에 있는 마을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중평(中坪)으로 불리기도 한다. 뚱절은 마을이 커다란 밭둑에 자리 잡고 있고, 뒷산이 절벽처럼 깎아지른 산이라...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 자는 옥여(玉汝), 호는 오로재(吾老齋). 할아버지는 삼사우윤 김득자(金得資)이며, 아버지는 삼사좌윤 김천부(金天富)이며, 사위는 생육신 이맹전(李孟專)이다. 김성미는 조선 태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예문관직제학 겸 군기시판사를 지냈다. 세조의 왕위 찬탈을 보고 사위 이맹전(李孟專)과 함께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 이름을...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에 속하는 법정리. 오로리의 옛 이름은 오을고개로, 외부에서 마을로 들어가려면 모두 고개를 넘어야 했기 때문에 올라가는 고개, 즉 오을고개가 되었다고 한다. 다른 유래에 따르면, 태종이 세종의 장인인 심온(沈溫)을 숙청할 때 그 아들 심회(沈澮)가 유모의 헌신으로 오로리 가좌골로 와서 강거민(康居敏)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뒷날 심온의 결백이 밝혀지고 벼슬이...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송림리에 있는 골짜기. 옛날 큰비가 올 때 용 다섯 마리가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여 오룡곡(五龍谷)이라 부른다. 오룡골이라고도 한다. 인서봉 지맥과 동미산이 마을 앞까지 뻗어 솔진까지 연결되어 있는 지금의 농지가 옛날은 분지였다고 한다. 오룡곡이 있는 송림리는 접성산의 지맥이 동남쪽으로 줄기차게 뻗어 내려와 거대한 봉을 이룬 매봉산이 있는데, 금오산과 마주하여...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송림리에 있는 골짜기. 옛날 큰비가 올 때 용 다섯 마리가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여 오룡곡(五龍谷)이라 부른다. 오룡골이라고도 한다. 인서봉 지맥과 동미산이 마을 앞까지 뻗어 솔진까지 연결되어 있는 지금의 농지가 옛날은 분지였다고 한다. 오룡곡이 있는 송림리는 접성산의 지맥이 동남쪽으로 줄기차게 뻗어 내려와 거대한 봉을 이룬 매봉산이 있는데, 금오산과 마주하여...
-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로리는 중화(中和), 뚱절, 설곡(雪谷, 薛谷), 미륵당, 장구목, 오로실(五老室)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중화는 설곡·오로실·장구목에서 내려오는 개울이 서로 합쳐져 내려가는 중간 지점에 있는 마을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중평(中坪)으로 불리기도 한다. 뚱절은 마을이 커다란 밭둑에 자리 잡고 있고, 뒷산이 절벽처럼 깎아지른 산이라...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에 속하는 법정리. 오로리의 옛 이름은 오을고개로, 외부에서 마을로 들어가려면 모두 고개를 넘어야 했기 때문에 올라가는 고개, 즉 오을고개가 되었다고 한다. 다른 유래에 따르면, 태종이 세종의 장인인 심온(沈溫)을 숙청할 때 그 아들 심회(沈澮)가 유모의 헌신으로 오로리 가좌골로 와서 강거민(康居敏)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뒷날 심온의 결백이 밝혀지고 벼슬이...
-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동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예전에 이 마을에 오동나무가 많아서 오리(梧里)·오리곡(吾里谷)·오리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려 말 벼슬이 높은 자리에까지 올랐고 효행이 뛰어났던 후주당 박영미가 살던 곳이다. 경상북도 선산군 산동면 동곡동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95년 1월 1일 구미시와 선산군 통합으로 구미시 산동면 동곡리에 속하게 되었다. 동남쪽의 재넘어들,...
-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동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예전에 이 마을에 오동나무가 많아서 오리(梧里)·오리곡(吾里谷)·오리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려 말 벼슬이 높은 자리에까지 올랐고 효행이 뛰어났던 후주당 박영미가 살던 곳이다. 경상북도 선산군 산동면 동곡동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95년 1월 1일 구미시와 선산군 통합으로 구미시 산동면 동곡리에 속하게 되었다. 동남쪽의 재넘어들,...
-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동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예전에 이 마을에 오동나무가 많아서 오리(梧里)·오리곡(吾里谷)·오리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려 말 벼슬이 높은 자리에까지 올랐고 효행이 뛰어났던 후주당 박영미가 살던 곳이다. 경상북도 선산군 산동면 동곡동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95년 1월 1일 구미시와 선산군 통합으로 구미시 산동면 동곡리에 속하게 되었다. 동남쪽의 재넘어들,...
-
경상북도 구미시 공단동에 있는 OLED 디스플레이 제조 기업. 오리온 오엘이디(주)의 모체인 오리온전기(주)는 1995년 평판표시연구소 개소를 시작으로 2000년 OLED(Organic Light Emitting Diode)의 연구 개발을 시작하여 2004년 OLED 상업 생산과 견본품 공급을 개시하였다. 2005년 5월 4일 오리온전기(주)로부터 오리온 오엘이디(주)가 분리되었다...
-
경상북도 구미시 공단동에 있는 PDP 디스플레이 제조 기업. 오리온 피디피(주)는 원조 기업인 오리온전기(주)로부터 산업용 대형 PDP(Plasma Display Panel) 사업을 분리하여 2002년 12월 13일에 설립되었다. 2003년 84인치 멀티 PDP를 개발하였고 2004년에는 PDP TV 양산을 시작하였으며, 2005년에 무한확장형 멀티 PDP 개발에 성공하였다. 20...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일선. 자는 국보(國寶)·고경(高卿). 아버지는 일선부원군(一善府院君) 김시로(金時露)이다. 김교는 1444년(세종 26)에 진사가 되었으며, 학행으로 능참봉에 제수되었다가 영덕현령에 올랐다. 1452년(문종 2) 무과에 급제하여 평안절도사가 되었고, 1459년(세조 5) 동부승지를 거쳐 도승지에 올랐다. 1462년(세조 8) 강원도관찰사에 제...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소재리는 오미기(일명 오목이)라고도 하며 소재, 초장골, 대밭골, 장터, 사창, 장원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오미기는 고려시대에 강씨(姜氏)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는데, 마을에 다섯 그루의 큰 나무 아래 오목정(五木井)이라는 공동 우물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지형이 오목하게 생겼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초장골...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소재리는 오미기(일명 오목이)라고도 하며 소재, 초장골, 대밭골, 장터, 사창, 장원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오미기는 고려시대에 강씨(姜氏)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는데, 마을에 다섯 그루의 큰 나무 아래 오목정(五木井)이라는 공동 우물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지형이 오목하게 생겼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초장골...
-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송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마을 모습이 소가 엎드려 누운 모양과 닮았다고 하여 우복동(牛伏洞)이라 하였다. 현재 마을의 대나무 밭이 소의 배꼽 위치로서 마을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이 자리가 명당자리라고 한다. 또 마을에서 추운 섣달 어느 날 소가 푸른 풀을 물고 누워 죽었다 하여 우복동(牛伏洞)이라 하였다고 한다. 오복동(五福洞)은 한자 표기로 인해 오기된...
-
조선 시대의 문신이자 공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효언(孝彦), 호는 오봉(五峯). 연안군(延安君) 이숙기(李叔琦)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홍문관수찬 이세범(李世範), 아버지는 이천현감 이국주(李國柱), 어머니는 사직 박여(朴旅)의 딸로 정경부인 비안박씨(比安朴氏)이다. 이호민은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79년(선조 12) 진사에 합격하고 1584...
-
경상북도 구미시 원남동에 속하는 자연마을. 오산천변(烏山川邊)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터[新基]라고도 불렸다. 오산은 산 전체가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기암절벽과 급경사가 많은 금오산도립공원 입구의 첫 마을로, 대성저수지가 인접해 있다. 과거 구미는 선산군 중심의 농업이 산업의 주축이었으나, 1970년대 초 정부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힘입...
-
경상북도 구미시 도량동에 있는 조선 전기 길재를 모신 서원. 1529년(중종 24) 현감 조천계(趙天啓)가 화동산(花洞山) 아래에 서원 건립을 시도하였으나 중단되었다. 1585(선조 18) 현감 유운룡(柳雲龍)이 유림들과 상의하여 야은 길재의 묘 앞 산기슭 나월봉(蘿月峰) 아래에 다시 서원 건립을 추진하여 3년의 공사 끝에 완공하여 오산서원이라 하였다. 길재를 주향으로 배향하였다....
-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 교명에서도 나타나듯이 오상고등학교의 교육목표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며, 교훈 역시 인의예지신이다. ‘인’은 인간 평등과 기회 균등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깊이 인식하고 박애정신으로 서로 깊고 넓게 사랑한다는 뜻이고, ‘의’는 내가 학교나 사회, 국가에 대하여 무엇을 기대하기에 앞서 내 학교, 내 고장, 내 민족, 내 국가를 위해...
-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상장리에 있는 오상고등학교의 풍물 동아리. 오상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우리 전통 가락을 접하고 익힐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줌과 동시에 우리 것에 대한 소중함과 애향심과 애교심을 심어주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2년 교사풍물패를 결성하여 남원 필봉굿을 전수 받고 웃다리 남사당 풍물을 전수 받아 활동하기 시작하였으며 1997년도 청소년 어울마당 참여를 계기로 집중...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상리는 본오상, 두대, 다사말[多士洞], 흰터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본오상은 다섯 재상이 태어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두대는 부자가 많아 곡식을 되는 말[斗]이 많은 데서 유래하였다. 지형이 말과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다사말은 많은 선비가 배출되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흰터는 매년 섣달 그믐날이 되면 밤중...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오상리에 있는 수령 180년의 느릅나무. 느릅나무는 낙엽 활엽 교목으로 춘유(春楡) 또는 가유(家楡)라고도 한다. 높이 20m에 달한다. 나무껍질은 회갈색이고, 작은 가지에 적갈색의 짧은 털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라남도 대둔산으로부터 함경북도 증산에 이르기까지 표고100~1,200m에 분포한다. 오상리 느릅나무는 높이 12m, 가슴높이 둘레 3.5m, 나...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오상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경상북도 구미에서 국도 25호선을 따라 해평면 소재지로 가다보면 면 소재지 못 미쳐서 가망못을 오른쪽에 끼고 작은 수계를 따라 동쪽으로 들어가면 오상리 다시말이 왼쪽에 있다. 산포지는 이 다시말 뒤쪽의 능선에 위치하고 있다. 다시말 뒤쪽의 서남으로 뻗은 해발 75~45m의 능선은 현재 논과 밭으로 개간되어 경작...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오상리에 있는 수령 220년의 회화나무. 회화나무는 콩과의 낙엽 관목으로 높이 25m에 이른다. 잎은 어긋나고 1회 깃꼴겹잎이다. 작은 잎은 7~17개씩 달리고 달걀 모양 또는 달걀 모양의 타원형이며 뒷면에 잎자루와 함께 누운 털이 있다. 꽃은 8월에 원추꽃차례를 이루며 연한 황색으로 피고, 열매는 협과(莢果: 콩처럼 꼬투리로 맺히는 열매)로 10월에 익는다...
-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상장리에 있는 사립 중학교. 나라 사랑에 앞장서는 사람(애국인), 자율적인 학습 능력을 가진 사람(창조인), 규칙과 질서를 존중하는 정직한 사람(사회인), 마음이 고우며 몸이 건강한 사람(건강인)의 육성을 교육목표로 한다. 교훈은 널리 사랑하자(仁), 바르게 살자(義), 서로 돕자(禮), 분명하게 배우자(智), 다같이 성공하자(信)이다. 1946년 3월 11...
-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의 금오산에 서식하는 다람쥐과에 속하는 포유류. 하늘다람쥐는 백두산과 경기도, 강원도 그리고 경상북도 가지산과 금오산에 이르기까지 전역에 분포하나 중부 이남 지역에서는 희귀한 종이다. 우리나라 특산아종으로, 1982년 11월 4일 천연기념물 제328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몸길이는 15~20㎝이다. 머리는 둥글고 귀는 작으며 눈이 매우 크다. 크기는 일본...
-
경상북도 구미시 원평동에 있는 지역 금융 기관. 오성상호저축은행은 1982년 11월 재무부장관의 내인가를 받은 후 주식회사 오성상호신용금고를 설립 등기하고 문대식이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하였으며, 그 해 12월 재무부장관의 본인가를 받았다. 1983년 1월 18일 영업을 개시하였고 1987년 8월에 영업장을 확장하였으며 1989년 4월에는 전자 계산 조직을 설치 운영하였다. 199...
-
경상북도 구미시 공단동에 있는 전자 제품 제조 기업. 1975년 4월 5일 오성사 구미공장이 준공되었고 1983년 1월 4일 (주)오성전자로 전환하였다. 1984년 5월 리모컨 생산을 개시하였으며, 1994년 9월에 ‘하나로 리모컨’을 출시하였고 1995년 11월에 5,000만 대 생산을 달성하였다. 1998년 12월 전자관사업부는 브라운관용 쉴링케이지 밴드 및 스프링을 생산하여...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揚). 자는 공서(公瑞), 호는 오송헌(五松軒). 고조부는 박수홍(朴守弘)이고, 할아버지는 박증휘(朴增輝)이며, 아버지는 박성익(朴成翼)이다. 박봉령(朴鳳齡, 1671~1718)은 1699년(숙종25) 식년문과에 병과 14등으로 급제하여 이후 벼슬이 병조참판과 예조참판에 이르렀으며, 인현왕후(仁顯王后)의 국상(國喪) 때에는 빈궁도감(殯宮...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위숙(渭叔), 호는 임계(臨溪). 오식은 1400년(정종 2) 진사에 합격하고, 1402년(태종 2) 문과에 급제하였다. 연산목사·남원목사·청주목사를 역임하였다. 그 후 제주목사·인령부윤·중군동지총제·좌군총제를 거쳐 경주부윤으로 재직하다가 죽자 세종이 부의(賻儀)를 내렸다. 1409년(태종 9) 남원부사로 재직 시 “속공노비...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에 속하는 법정리. 오로리의 옛 이름은 오을고개로, 외부에서 마을로 들어가려면 모두 고개를 넘어야 했기 때문에 올라가는 고개, 즉 오을고개가 되었다고 한다. 다른 유래에 따르면, 태종이 세종의 장인인 심온(沈溫)을 숙청할 때 그 아들 심회(沈澮)가 유모의 헌신으로 오로리 가좌골로 와서 강거민(康居敏)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뒷날 심온의 결백이 밝혀지고 벼슬이...
-
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자앙(子仰), 호는 오음(梧陰). 장원(掌苑) 윤계정(尹繼丁)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사용 윤희림(尹希林), 아버지는 군자감정 윤변(尹忭), 어머니는 부사직 현윤명(玄允明)의 딸이다. 동생이 윤근수(尹根壽)이다. 윤두수는 이중호(李仲虎),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58년(명종 13) 문과에 급제한 후 승문원정자·...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말기 인물 오일영의 선정비. 오일영(吳鎰泳)은 1887년(고종 24) 5월에 선산부사로 부임하여 그 해 12월에 관아에서 죽었던 인물로서, 백성들이 그를 기려서 일명 ‘타루비(墮淚碑)’라 하는 선정비를 세웠다.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영남유교문화진흥원 안으로 150m 정도 올라가면 십이지신상 앞에 세워져 있다. 높이 144㎝, 너비...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사호(士浩)·자활(子活), 호는 오재(悟齋)·송암(松庵). 장순효(張純孝)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장경원(張敬源), 아버지는 군수 장중지(張重智), 어머니는 고승안(高承顔)의 딸이다. 장순손은 현재의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태어났다. 1480년(성종 1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85년(성종 16) 문과에 급제한 뒤 사간원정언,...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송삼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선산군수 오재순의 선정비. 군수는 도(道)의 관할에 속하는 하급 지방자치단체인 군(郡)을 대표하고, 그 행정을 책임지는 장(長)으로서, 오재순은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선산군수로 부임하여 군수의 직임을 수행하였다. 군수로서 선산군의 행정을 책임지던 오재순이 6년간 재임한 후 영덕군수로 이임하자 주민들이 그의 공로를 기려 비를 세...
-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상림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관골에서 북서쪽으로 약 2㎞ 떨어져 있는 마을인데 230여 년 전에 손씨가 살기 시작했고, 마을 안에 까마귀 모양의 못이 하나 있어서 오지동(烏池洞)으로 부르다가 못을 수리하고 나서 못골로 불렀다. 매봉산(350.5m)을 비롯해 주변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마을 아래 남쪽 방향으로 목곡천이 흐르고 있다. 목곡천의 하천 양안을 따라...
-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상림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관골에서 북서쪽으로 약 2㎞ 떨어져 있는 마을인데 230여 년 전에 손씨가 살기 시작했고, 마을 안에 까마귀 모양의 못이 하나 있어서 오지동(烏池洞)으로 부르다가 못을 수리하고 나서 못골로 불렀다. 매봉산(350.5m)을 비롯해 주변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마을 아래 남쪽 방향으로 목곡천이 흐르고 있다. 목곡천의 하천 양안을 따라...
-
조선 후기 인동현감을 역임한 무신. 오진영은 무과에 급제했으며 1850년(철종 1) 1월 29일 인동현감(仁同縣監)으로 부임하여 1851년(철종 2) 6월 이조에서 폄파(貶罷)하였다. 인동현감 재임 중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1852년(철종 3) 3월 인동현민이 현재의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복성동에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를 세웠다....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오초(烏樵). 박수홍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박도호(朴道浩)이다. 박래면(朴來冕, 1823~1879)은 1858년(철종 9) 식년문과에 을과 6등으로 급제하여 이후 벼슬이 공조참의에 이르렀다....
-
경상북도 구미시에 속하는 법정동. 오태동은 오산(烏山), 묘곡(妙谷), 구봉곡(龜峰谷)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오산은 금오산의 가장 주된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산서원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묘곡은 금오산 줄기가 뻗어 내린 좌청룡·우백호의 모양이 묘하게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구봉곡은 금오산 줄기가 길게 뻗어 내린 마을 뒷산이 마치 거북과 같은...
-
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바른 품성을 심어 주는 인성 교육을 충실히 하고, 개성을 존중하는 기초·기본 교육을 강화하며, 창의력을 지닌 글로벌 인재로 육성하여 미래를 위한 지식·정보화 사회의 적응력을 신장시킬 것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정직하며 꿈을 지닌 건강한 사람이다. 2004년 10월 2일 학교 설립 인가를 받았다. 2006년 9월 26일 오태중학...
-
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정직하고 예의 바른 어린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스스로 실천하는 어린이, 깊이 생각하고 탐구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98년 11월 9일 오태초등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2000년 9월 1일 상모초등학교에서 27학급,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인평리 북삼초등학교에서 6학급을 분리하여 총 33학급으로 개교하였...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옥성동, 송암동, 관동, 신기동 등을 병합하면서 옥성과 관동의 이름을 따 옥관동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문정동·구평동·죽전동·옥성동·송암동·신기동·중리·이곡동·관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옥성과 관동의 이름을 따서 옥관동이라 하고 옥성면에 편입하였다. 서쪽에 복우산이 있고, 동서로 흐르는 옥관천 변 남쪽으로 우리목·문정자·송...
-
경상북도 구미시 옥계동의 한내천 위에 있는 다리. 구미시 장천면을 지나온 한천 물줄기인 한내천은 구미시를 동서 방향으로 흐르면서 제2 구미국가산업지와 옥계동 사이를 지나 필봉산(160m) 모퉁이를 감돌아 낙동강에 합류한다. 옥계동에 세워진 다리라는 의미에서 옥계교라는 이름이 붙었다. 길이는 110m, 폭은 12.5m, 유효 폭은 11.5m, 높이는 5m이다. 경간(徑間, 지주 교각...
-
경상북도 구미시에 속하는 법정동. 한천의 물이 맑고 조약돌이 구슬처럼 깨끗하고 아름답다 하여 옥계(玉溪)라고 하였다. 조선 후기 인동군(仁同郡) 북면에 속한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문법동(文法洞)과 온수동(溫水洞)을 통합하여 옥계리라 하고 칠곡군(漆谷郡) 인동면에 편입하였다. 1978년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이 구미시로 통합됨에 따라 구미시 옥계동이 되었다....
-
경상북도 구미시 옥계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옥계동부초등학교는 큰 꿈을 키우는 학교, 미래를 여는 어린이라는 교훈 아래, 학생에게 큰 꿈을 키워가는 활기찬 교육 실천, 가르치는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는 선생님, 지역민과 연계한 평생교육 이라는 3가지 목표아래에 학생들을 인재 양성의 전당으로 만들고자 한다. 옥계동부초등학교는 2009년 6월 1일에 개교하였으며 일반 학급 24학급,...
-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에 있는 송은(松隱) 장안세(張安世)를 향사하기 위해 세운 서원. 1774년 (영조 50)에 창건하였으며, 1819년(순조 19)에 중수하였다. 고종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1893년 사당이 있던 자리에 신당과 단비(壇碑)를 세우고 장안세만을 독향으로 하여 향사를 이어왔으며, 1984년 묘우과 강당을 중건하고 비각과 동재와 서재를 증축하여 1987년 완공...
-
경상북도 구미시 거의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꿈과 재능을 살리는 창의력 계발과 개성을 살리는 기초·기본 교육의 충실을 통해 도덕적 품성을 지닌 인간, 건강한 심신을 지닌 조화로운 인간의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한다. 교훈은 생각하며 행동하는 사람이다. 2000년 2월 28일 설립 인가를 받아 2001년 3월 1일 개교하였다. 2000년 3월 12일 신축 교사를 기공하고, 2001년 2...
-
경상북도 구미시 옥계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참되고 슬기로운 옥계 어린이, 꿈과 희망을 창조하는 옥계 어린이, 세계로 도약하는 옥계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34년 6월 1일 옥계간이학교로 개교한 뒤, 1943년 4월 인동서부국민학교로 승격되었다. 1979년 3월 옥계국민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가, 1996년 3월 1일 옥계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97년...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옥성동, 송암동, 관동, 신기동 등을 병합하면서 옥성과 관동의 이름을 따 옥관동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문정동·구평동·죽전동·옥성동·송암동·신기동·중리·이곡동·관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옥성과 관동의 이름을 따서 옥관동이라 하고 옥성면에 편입하였다. 서쪽에 복우산이 있고, 동서로 흐르는 옥관천 변 남쪽으로 우리목·문정자·송...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옥관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옥관리 고분군은 옥성면 옥관1리 우리목마을 뒷산 일대에 길게 분포하며, 낙동강 서쪽의 상주-선산 간 도로변에 접하여 위치한다. 구미옥성화훼단지 서쪽에 해당된다. 『문화유적분포지도』(구미시)에는 옥관리 고분군Ⅰ로 기록되어 있다. 지표조사로 고분군의 전체 규모가 확인되었으며, 정식 발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지표조사 이전에...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옥관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치는 유물산포지.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에서 상주 방면으로 통하는 국도 33호선을 따라가다 낙동강의 소지류를 건너는 제2구봉교에서 서쪽으로 통하는 지방도 912호선으로 들어서서 서쪽으로 조금 가면 하천이 남쪽으로 크게 만곡하는 지점의 북쪽에 옥관1리 윗죽전마을이 나타난다. 유적은 이 마을 서쪽에 있는 남동으로 뻗은 얕은...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산촌리 어구산 자락에 위치한 산. 옥녀봉이란 명칭은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구미 지역도 예외는 아니어서 옥성면 산촌리 어구산(436.2m) 자락과 선산읍 소재리에서도 옥녀봉이란 지명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이름은 똑같지만 각각 전해 오는 이야기는 다른데,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옥녀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먼저 선산읍 소재리에 위치한 옥녀봉은...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평양 기생 옥단춘의 미모를 소재로 부른 민요. 「옥단춘 노래」는 고전소설 『옥단춘전』에 등장하는 기생 옥단춘의 미모를 노래한 민요이다. 옥단춘은 평양 기생으로 선비 이혈룡을 도와 과거에 급제하도록 하는 순정과 절의가 있는 여인이다. 『옥단춘전』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 소설이다. 조선 숙종 때 두 재상이 각각 김진희와 이혈룡이라는 같은 나이의 아들을 두었는데,...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천개(天開), 호는 옥란헌(玉蘭軒). 할아버지는 장현광(張顯光), 아버지는 부제학 장응일(張應一), 장인은 송석윤(宋錫胤)이다. 장건은 효종 3년(1652) 증광문과에 병과 20위로 급제하여 사헌부지평, 장령, 전라도사를 거쳐 진주목사를 역임하였다....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보름날 여성들이 집단을 이루어 놀면서 부르는 유희요. 구미 지역에서는 여성들이 달밤에 집단으로 모여서 놀이를 하였다. 두 사람의 술래가 서로 마주보고 손을 깍지 끼고 서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줄을 지어 그 아래를 통과하는 것이다. 노래가 끝날 때 붙잡힌 사람이 술래가 되는 놀이다. 보름날 밝은 달밤에 논다고 하여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노물리 일대에서는 「월월이...
-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 지역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지명. 인동은 외부의 문물을 손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낙동강 연안에 위치한 교통 요지에 있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문명이 발전하였으며, 풍부한 물산과 군사적 요충지로 인해 조선 후기까지 도호부 관할 하에 있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와 철도가 약목을 통과하게 되고 운하 교역이 감소하면서 칠곡과 선산에 편입되었다. 이 지역을 지칭하는 명칭...
-
조선 시대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이자 서화가. 본관은 덕수(德水). 초명은 이위(李瑋)·이후(李珝), 자는 계헌(季獻), 호는 옥산(玉山)·죽와(竹窩)·기와(奇窩). 아버지는 감찰 이원수(李元秀), 어머니는 사임당(師任堂) 신씨(申氏), 장인은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이다. 형이 율곡(栗谷) 이이(李珥)이다. 이우는 1565년(명종 20) 진사에 입격하여 비안현감, 괴산군수...
-
고려 후기 인동장씨 직제학계의 시조. 본관은 인동(仁同). 인동장씨의 시조 장정필(張貞弼)의 14세손이다. 옥산군(玉山君, 옥산은 인동의 별호)에 봉해져 현재의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면 중리와 송곡리 일대의 발영전(拔英田)에 터를 잡은 이래로 후손들이 세거하게 되어 장계를 시조로 하는 인동장씨 장계계가 형성되었다. 장계는 1305년(충렬왕 31) 문과에 급제한 후 집현전직제학을 거쳐...
-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에 있는 장금용을 향사하기 위해 세운 사당. 고려 전기에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을 역임한 장금용(張金用)을 향사하기 위해 1969년 세운 사당이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정면 6칸, 측면 3칸 반 규모의 강당이 있다. 오른쪽에는 사당인 숭의묘(崇義廟)가 배치되어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맞배기와집이다. 평면은 앞면에 반 칸 규모의 툇간을...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대원리에 있는 다리. 장대 교량인 옥성대교(L=690m, 31Seg)는 주변 여건과 각종 장애물 간섭, 환경 보존 등을 감안해 계곡 하천 등 장애물 통과 지역에 적합한 특수 교량 공법인 연속압출공법(ILM, Incremental Launching Method)으로 시공하였다. 연속압출공법이란 교량의 상부 구조물을 교대 후방에 미리 설치한 제작장에서 1세그먼트...
-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행정구역. 본래 주아방과 신당방으로 나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옥성면으로 개칭하였다. 1983년 2월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봉곡리, 포상리가 선산읍으로 편입되었고, 1995년 1월 구미시와 선산군이 통합됨에 따라 구미시 옥성면이 되었다. 북쪽으로 삼봉산(447m), 남쪽으로 형제봉과 원통산(436m)이 둘러싼 산간 지역이다. 여름과 겨울의 기...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주아리에 있는 옥성면 관할 행정기관. 경상북도 구미시를 구성하고 있는 2개 읍(선산읍·고아읍), 6개 면(무을면·옥성면·도개면·해평면·산동면·장천면), 19개 동(송정동·원평1동·원평2동·지산동·도량동·선주원남동·형곡1동·형곡2동·신평1동·신평2동·비산동·공단1동·공단2동·광평동·상모사곡동·임오동·인동동·진미동·양포동) 중 옥성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주아1리에 있는 선산보건소 산하 지소. 구미보건소와 함께 구미 지역 보건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선산보건소 산하 7개(고아보건지소·무을보건지소·옥성보건지소·도개보건지소·해평보건지소·신동보건지소·장천보건지소) 보건지소 중의 하나이다. 보건 사업, 예방 접종, 진료 및 검사, 각종 건강 정보 등을 제공함으로써 지역 주민의 삶의 질 향상 및 건강한 지역 사회 조성을...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호고(好古), 호는 낙서(洛西). 증이조판서 장철견(張哲堅)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사인(舍人) 장계문(張季文), 아버지는 군수 장기정(張麒禎), 어머니는 조광침(趙光琛)의 딸로 백천조씨(白川趙氏)이다. 장만은 1591년(선조 24)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에 있다가 예문관검열, 전생주부, 형조좌랑, 예조좌랑, 지평 등을 거쳐...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주아리에 있는 우편, 체신, 금융 기관. 우체국은 국장의 지위에 따라서 4급(서기관국), 5급(사무관국), 6급(주사국), 7급(주사보국)으로 분류되거나 기능에 따라서 체신청, 우편집중국, 집배국, 무집배국으로도 분류된다. 또한 설립 주체에 따라 일반우체국, 별정우체국, 우편취급소 등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4급과 5급우체국은 총괄국으로서 기초자치 단체 단위로...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주아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몸과 마음이 튼튼한 학생, 스스로 공부하는 학생, 새롭게 탐구하는 학생, 예절 바른 학생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24년 5월 6일 옥성공립보통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같은 해 9월 4일 개교하였다. 1941년 3월 31일 옥성국민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83년 3월 3일 병설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95년 3월...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 자는 옥여(玉汝), 호는 오로재(吾老齋). 할아버지는 삼사우윤 김득자(金得資)이며, 아버지는 삼사좌윤 김천부(金天富)이며, 사위는 생육신 이맹전(李孟專)이다. 김성미는 조선 태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예문관직제학 겸 군기시판사를 지냈다. 세조의 왕위 찬탈을 보고 사위 이맹전(李孟專)과 함께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 이름을...
-
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경서노회 소속 교회. 1991년 3월 31일 구미시 비산동 76번지에서 설립예배를 드렸으며, 1992년 5월 14일 제1대 당회장으로 박희재 목사가 취임하였다. 1993년 3월 23일에는 구미시 원평동 1072번지[송원서로8길 66]로 이사하였으며, 1997년 9월 23일 구미시 오태동 640번지[금오대로9길 18]에 신축부지...
-
경상북도 구미시 원평동에 있는 체육관 등의 다양한 종합 체육시설.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은 제24회 88서울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기념하고 올림픽 정신의 전승과 평소 시민 체력증진을 위해 전국 광역시, 도 단위로 1개소씩 건립하였다. 경상북도에서는 구미시에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을 건립하였다. 구미시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은 1991년 12월 7일에 금오산 아래 구미시 원평동 964-451번지...
-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송산리에 있는 샘. 예전부터 옷샘의 물로 옻 오른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완치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옷샘은 송산리의 자연마을인 정실(井室)마을에 있는데, 명주실 한 타래가 다 들어갈 만큼 깊은데다 피부병에 약효가 뛰어나다고 한다. 옷샘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옷샘의 효능이 뛰어나다는 소문이 퍼지자 전국에서 피부병 환자가 모여들었는데, 이 때문...
-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송산리에 있는 샘. 예전부터 옷샘의 물로 옻 오른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완치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옷샘은 송산리의 자연마을인 정실(井室)마을에 있는데, 명주실 한 타래가 다 들어갈 만큼 깊은데다 피부병에 약효가 뛰어나다고 한다. 옷샘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옷샘의 효능이 뛰어나다는 소문이 퍼지자 전국에서 피부병 환자가 모여들었는데, 이 때문...
-
조선 후기 구미 지역 출신의 장현광이 와유당(臥遊堂) 주변의 경물을 읊은 한시.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자는 덕회(德晦), 호는 여헌(旅軒)이다. 여러 차례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학문 연구에만 전심하였다. 「와유당 십일영」은 장현광이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괴곡리에 있는 와유당(臥遊堂) 주변의 반석(磐石)·괴석(怪石)·반송(盤松)·노송(老松...
-
조선 시대 구미 출신의 유생이자 의병장.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명술(明述), 호는 와유당(臥遊堂)·소암(巢巖). 용암(龍巖) 박운(朴雲)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건재(健齋) 박수일(朴遂一)이며 어머니는 평양조씨(平壤趙氏) 인의(引儀) 조인복(趙仁復)의 딸이며, 장인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이다. 박진경은 1596년(선조 29) 16세에 장인 장현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왕골을 많이 재배하였다고 하여 골밭이라 하였다. 완전(莞田)은 골밭의 한자 표기이다. 조선시대 서내방(西內坊)에 속한 지역이었다. 1914년 사촌·골안·연봉리·연당을 병합하여 완전동이라 하고 선산면에 편입하였다. 1979년 5월 선산면이 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선산읍 완전동이 되었고, 1988년 동이 이(里)로 바뀌면서 선산읍 완전리가 되었다...
-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의 회중(교회)이 신앙 활동의 중심지로 사용하는 건물. 왕국회관이란 특정 지역에 거주하는 여호와의 증인의 회중(교회)이 신앙 활동의 중심지로 사용하는 건물을 지칭한다. 필요에 따라 두 개 이상의 회중이 하나의 왕국회관을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회중이란 교회와 같은 의미로 건물 혹은 장소가 아닌 그 지역의 여호와의 증인 신도의 전체 모임을 의미한다...
-
경상북도 구미시 구평동 먹방산에 위치한 바위. 천생산 남쪽으로는 봉두암산을 비롯한 연봉에 의해 경상북도 칠곡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먹방산의 왕바위는 왕암(王巖)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곳에 묘를 쓰면 가뭄이 온다는 전설이 있어서 지금도 주민들은 이곳에 묘를 쓰는 것을 서로 말린다고 한다. 왕바위 주변으로는 봉두암산 마루에 있던 바위가 벼락을 맞아 두 동강이 난 것으로 전해지는...
-
한말의 대표적 의병장 허위는 경상북도 구미시 임은동 출신이다. 한말과 일제강점기를 통해 허위 가문은 수많은 항일운동가를 배출하였다. 허위의 맏형 허훈은 진보의진의 창의장이었고, 셋째 형 허겸은 형과 아우를 도와 의병 투쟁에 참여하였다. 1910년 국권 상실 이후에는 허겸·허형·허필은 그 일가를 이끌고 만주와 노령으로 망명하여 항일 투쟁을 계속하였다. 허위는 한말에 거유(巨儒)로 명...
-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허위(許蔿)가 활동하던 시기는 조선 왕조 말기로, 1895년 명성왕후 시해사건, 1905년 11월 을사보호조약과 그에 따른 을사의병(乙巳義兵), 1907년 해이그밀사사건과 고종의 강제 퇴위, 군대해산으로 이어지면서 조선은 국가로서의 주권을 서서히 상실해가고 있었다. 허위는 이러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막대한 재산을 내어 의병을 결성하여 일제...
-
경상북도 구미시 구평동 먹방산에 위치한 바위. 천생산 남쪽으로는 봉두암산을 비롯한 연봉에 의해 경상북도 칠곡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먹방산의 왕바위는 왕암(王巖)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곳에 묘를 쓰면 가뭄이 온다는 전설이 있어서 지금도 주민들은 이곳에 묘를 쓰는 것을 서로 말린다고 한다. 왕바위 주변으로는 봉두암산 마루에 있던 바위가 벼락을 맞아 두 동강이 난 것으로 전해지는...
-
고려 전기의 승려. 본관은 개성. 본명은 왕후(王煦), 호는 우세(祐世). 별명은 석구(釋煦, 석은 출가 승려의 일반적 성)이다. 아버지는 고려 제11대 왕 문종이며, 어머니는 인예왕후(仁睿王后) 이씨이다. 문종의 넷째 아들이며 형이 고려 숙종이다. 의천은 11세에 문종이 왕자들을 불러 “누가 출가하여 복전(福田)이 되겠느냐?”고 물었을 때 출가를 자원하였다. 1065년(문종 19...
-
경상북도 구미시 임오동와 칠곡군 석적면 남율리를 잇는 다리. 왜관낙동강교는 왜관이라는 지명과 낙동강의 하천 이름에서 명칭이 비롯되었다. 상행의 길이는 800m, 폭은 21m, 유효 폭은 19m, 높이는 9.9m이다. 경간(徑間, 지주 교각) 수는 16이고, 최대 경간 길이는 50m이다. 다리의 상부 구조 형식은 SPG이며, 하부 구조 형식은 TP이다. 설계 하중은 1등급(DB 24...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금호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신라시대 파징현 때 관아가 있던 곳이라 해서 아동(衙洞)이라 불렀는데 시대의 흐름에 따 아동을 외동(外洞)으로 부르게 되었다. 서쪽에 낮은 미석산이 있으며, 북동쪽에 연못지가 있다. 금호2리에 속한 자연마을로 서남으로 낙성1동 압골과 경계하고, 서북은 금호1리와 경계하고 동북으로는 연못안과 경계를 한다. 주민은 13가구에 39명[남...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참외를 제재로 하여 부르는 민요. 「외따기 노래」는 천혜숙·강진옥·정현숙·조형호가 1984년 8월 16일 장천면 상림리에서 김인분(여, 당시 51세)에게서 조사·채록하였다. 「외따기 노래」는 할머니와 화자와의 대화체 사설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설의 마지막에 화자가 할머니에게 길을 가다가 목이 마르면 참외를 하나 따먹자는 내용이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할마이 할...
-
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순천. 자는 사수(士秀), 호는 피구자(披裘子)·외암(畏菴). 아버지는 찰방 김훈(金壎)이고, 아들은 영의정을 지낸 김류(金瑬)이다. 선산 연봉리에서 태어났다. 김여물은 1577년(선조 10) 문과에 장원으로 등제하였으며, 충주도사를 거쳐 담양부사를 지냈다. 1591년에는 의주목사로 있을 때, 서인 정철(鄭澈)의 당으로 몰려 파직되고 의금부에 투...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에 속하는 법정리. 외예리는 연흥(蓮興), 새낭골, 가마골[釜谷], 바깥연흥, 도장골[道藏谷], 새터[新基]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외예리는 고아면 소재지로부터 바깥쪽에 있다 하여 "외(外)"자를 쓰고, 나쁜 것은 모두 베어 내고 좋은 것만 있어 편안한다는 뜻으로 "예(乂)"자를 써서 지은 이름이다. 연흥은 연지(蓮池)의 연(蓮)이 마을을 흥하게 한다...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외예리 연흥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의 서당. 성와(省窩) 윤중방(尹重邦)을 추앙하고 후학의 강학지소로 사용하기 위해 1917년에 중창한 서당이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형 건물이다. 평면은 중당 협실형(中堂夾室形)인데, 양측 온돌방의 앞면에는 한 칸씩의 마루가 돌출되어 전체적으로 ⊓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강당의 뒤에는 사당인 연봉사(蓮...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선산. 자는 자량(子亮), 호는 욕담(浴潭). 할아버지는 문간공(文簡公) 구암(久庵) 김취문(金就文)이며, 아버지는 창의사(倡義士) 증이조판서 김종무(金宗武)이다. 김공은 12살 때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아버지 김종무(金宗武)가 경상북도 상주 북천전장에 의병을 일으켜 떠나게 되자, 할머니와 어머니를 따라 금오산(金烏山) 도선굴(道詵窟)에 피난하였...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강(安康). 자는 용겸(用謙), 호는 서산와(西山窩)이다. 노상추(盧尙樞, 1746~1829)는 1780년(정조 4) 무과에 급제하여 1784년 선전관(宣傳官)에 제수되었다. 1787년 진동만호(鎭東萬戶)를 역임하였으며, 1792년 선전관을 거쳐 1793년 삭주부사에 임명되었다. 1800년 홍주영장(洪州營將)을 거쳐 1805년(순조 5) 강화...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교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조선 중기 선산김씨(善山金氏, 일선김씨(一善金氏)라고도 함) 내외가 이주를 하려고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던 중 이곳 용동골까지 왔는데, 갑자기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비 속에 한 쌍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이곳에 정착한 뒤 마을 이름을 용동골이라 하였다. 용동곡(龍動谷)이라고도 한다. 북쪽으로...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구봉리 낙동강 변에 위치한 바위. 바위 모양이 용과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뭄이 심하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올리는데, 기우제를 지내면 사흘 안에 비가 온다는 전설이 있다. 낙동강을 따라 구봉 앞들이 펼쳐져 있으며, 구봉리에서 백이하천과 합류한 구봉천이 봉촌을 지나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구봉리 서북방에는 삼봉산(447.6m)과 그 연봉인 노봉산(老鳳山)이...
-
1594년~1597년 구미 지역 출신의 최현이 임진왜란의 참상을 읊은 가사. 최현(崔晛, 1563~1640)은 조선시대의 문신으로 자는 계승(季昇), 호는 인재(訒齋)이다. 임진왜란 때 구국책을 올려 원릉참봉이 되고, 광해군(光海君, 1575~1641) 때 천도론에 반대하여 계획을 중단하게 하였다. 「용사음」은 최현의 문집 사본인 『인재속집(訒齋續集)』제8권에 「명월음」과 함께 수...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로 이어지는 팔공산 지맥이 용트림하는 것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의성군에 속하였고, 1987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구미시 도개면 용산리가 되었다. 낮은 산이 낙동강 연안까지 이어진 산수가 수려한 마을이다. 2009년 1월 31일 현재 총 104가구에 236명[남 118명, 여 11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용산1리와 용산...
-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송산리에 위치한 산. 말바우산은 일명 용솟음산이라고도 한다. 옛날 용이 솟은 흔적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나, 현재의 모습은 분화구 모양으로 깊이가 약 3m 정도 된다. 말바우라는 이름은 용솟음산 옆 봉우리의 바위가 말머리와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좌베틀산의 연봉이 북동쪽으로 이어져 송산리 뒷산을 이루고 있고, 그 맞은편 매봉에서 정실소유지의 동쪽 능선...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용수(用水)골, 일명 용소(龍沼)골이라도 한다. 옛날 이곳에 깊은 못이 있었는데 용(龍)이 살다가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에서 생긴 이름이다. 북쪽에 냉산이 있고 그 산자락에 마을이 있다. 도리사 가는 길목에 있으며 남쪽에 용수골못이 있다. 주민은 8가구에 18명[남 8명, 여 10명]이 살고 있다. 조선시대 도사 벼슬을 지낸 정지원...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용수(用水)골, 일명 용소(龍沼)골이라도 한다. 옛날 이곳에 깊은 못이 있었는데 용(龍)이 살다가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에서 생긴 이름이다. 북쪽에 냉산이 있고 그 산자락에 마을이 있다. 도리사 가는 길목에 있으며 남쪽에 용수골못이 있다. 주민은 8가구에 18명[남 8명, 여 10명]이 살고 있다. 조선시대 도사 벼슬을 지낸 정지원...
-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6월 15일에 논밭에서 풍농을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 유두날에 지내는 제사는 유두 제사와 유두 천신이 있다. 유두 제사는 민간에서 농신이라고 믿는 용에게 풍농을 기원하며 지내는 민속신앙의 한 형태이다. 유두 천신은 제철음식을 장만하여 조상에게 바치고 유교식 제의절차에 따라 지내는 유교식 명절 제사이다. 유두 제사는 6월 15일 유두날 해질 무렵에 논두렁에서...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택지(澤之), 호는 용암(龍巖). 박운은 효심이 남달라 40년간 어머니를 봉양하면서 항상 곁에 모시어 손수 시중을 들었고, 늙은 어머니를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 노력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애절한 마음이 하늘에 사무쳐 3년 동안 묘 옆에 띠 풀을 이은 집을 짓고 나물죽만으로 연명하여 시묘의 정성을 다 하였다. 또한 시묘가...
-
조선 후기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여휴(汝休), 호는 용암(龍巖). 평정공(平靖公) 이약동(李約東)의 후손이며 승지 이유번(李有蕃)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군수 이석명(李碩明), 아버지는 현령 이민선(李敏善), 어머니는 김봉(金崶)의 딸이다. 이상일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광해군의 문란한 정사를...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유승현의 종택과 강학당. 본래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에 있었으나 임하댐 수몰 지역에 편입되면서 1987년 현재의 장소로 옮겨 지었다. 용와종택은 사랑채와 안채, 광채가 튼 ㄷ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는데, 안마당 오른쪽 트인 곳에 사주문을 설치하여 전체적으로 튼 ㅁ자형을 이룬다. 정침은 정면 6칸, 측면 1.5칸 규모의 ㅡ...
-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인덕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마을이 용의 굴(龍穴)이 되는 지점이며,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어질다고 하여 용인동(龍仁洞)이라고 한다. 지금은 주로 용지골이라 불린다. 경상북도 선산군 산동면 인덕동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95년 1월 1일 구미시와 선산군 통합으로 구미시 산동면 인덕리에 이속되었다. 생골 동쪽에 있는 마을로 남쪽으로 야산이 둘러 있다....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순천. 자는 용재(龍在), 호는 서강(西岡). 좌의정을 지낸 김승주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김순정(金順挺)이다. 김수담은 1684년(숙종 10)에 진사가 되었고, 1687년(숙종 13)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좌랑을 거쳐 고령현감을 지냈다. 1694년(숙종 20)에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인동 땅에 은거하였으며, 경서(經書)와 사서(史書)를 보면서...
-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6월 15일에 논밭에서 풍농을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 유두날에 지내는 제사는 유두 제사와 유두 천신이 있다. 유두 제사는 민간에서 농신이라고 믿는 용에게 풍농을 기원하며 지내는 민속신앙의 한 형태이다. 유두 천신은 제철음식을 장만하여 조상에게 바치고 유교식 제의절차에 따라 지내는 유교식 명절 제사이다. 유두 제사는 6월 15일 유두날 해질 무렵에 논두렁에서...
-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절기상 유두나 삼복·칠석에 음식을 장만하여 논밭에서 풍농을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 용제는 벼를 심은 논의 물꼬나 논둑에서 유두부터 칠석까지 농번기이자 농작물이 성장하는 시기에 물을 관장하는 용신에게 지내는 제사이다. 이를 논고사·논고지라고도 부른다. 구미 지역의 용제는 유두 제사와 중복되기도 한다. 용제는 용이 농사를 관장하는 신이라는 민간신앙에 바탕을 두고...
-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인덕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마을이 용의 굴(龍穴)이 되는 지점이며,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어질다고 하여 용인동(龍仁洞)이라고 한다. 지금은 주로 용지골이라 불린다. 경상북도 선산군 산동면 인덕동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95년 1월 1일 구미시와 선산군 통합으로 구미시 산동면 인덕리에 이속되었다. 생골 동쪽에 있는 마을로 남쪽으로 야산이 둘러 있다....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우경(羽卿). 할아버지는 김봉선(金奉先)이고, 아버지는 김집(金㙫)이며, 형은 김수장(金壽長)이다. 외할아버지는 구완(具浣)이며, 장인은 정홍보(鄭弘輔)이다. 김운장(金雲長, 1610~1687)은 1633년(인조 11) 진사가 되고, 1639년 식년문과에서 갑과 1등으로 급제하여 벼슬이 병조참의에 이르렀다. 1662년(현종 3) 양남어...
-
경상북도 구미시에 속하는 법정동. 낙동강 변에 형성된 마을이므로 임수동이라 하였다. 소가 누워 있는 혈(穴)이라 하여 우담동(牛譚洞)이라고도 한다. 조선 후기 인동군 읍내면(邑內面)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우담동을 통합하여 임수리라 하고 칠곡군 인동면에 편입하였다. 1978년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이 구미시로 통합됨에 따라 구미시 임수동이 되었다. 진평동, 시...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옥관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옛날 어느 장수가 싸움에서 패하고 군위 관아에 머물러 있다가 서울로 가던 중 밤을 새워 이 곳에 당도하여 크게 통곡하니 그로 인해 울음고개란 뜻으로 우리목 또는 곡현(哭峴)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서쪽으로 복우산(508.7m)이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동서로 가로 놓인 옥관천이 장골천, 이실천과 합류한 후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며...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옥관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옛날 어느 장수가 싸움에서 패하고 군위 관아에 머물러 있다가 서울로 가던 중 밤을 새워 이 곳에 당도하여 크게 통곡하니 그로 인해 울음고개란 뜻으로 우리목 또는 곡현(哭峴)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서쪽으로 복우산(508.7m)이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동서로 가로 놓인 옥관천이 장골천, 이실천과 합류한 후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며...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비가 올 때 갓 위에 덮어 쓰는 모자. 금오민속박물관에 소장된 갈모는 어느 지역 것인지 분명하게 알 수 없다. 갈모의 원래 이름은 갓모[笠帽]이며, 우모(雨帽)라고도 한다. 언제부터 썼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전기 이제신(李濟臣, 1536~1584)이 쓴 『청강선생후청쇄어(淸江先生鯸鯖瑣語)』에 기록이 남아 있다. 갈모는 펼치면 위는 뾰족하여 고깔 모양이 되고...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우문(遇文), 호는 성와(省窩). 심곡 장제원(張悌元)의 후손이며 장점(張點)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장재옥(張在玉), 아버지는 장진구(張鎭九)이다. 재종숙 장진오(張鎭五)에게 입양되었다. 1810년(순조 10)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간원정언, 이조좌랑, 김천도찰방, 사헌부지평을 역임하였다....
-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음력 1월 14일 밤 우물에 불을 밝혀 나쁜 액을 막는 풍습. 우물에 불 켜놓기는 정월 열나흗날 밤, 집안의 우물가에 불을 밝히고 액을 막아 샘에서 물이 많이 나기를 기원하는 풍습이다. 이렇게 하면 샘물이 많이 솟아난다고 하는데, 이를 ‘우물 밝히기’·‘불 밝히기’라고도 부른다. 옥성면 농소2리에서는 종지에 참기름으로 심지 불을 켜서 바가지에 담아 샘에 띄워...
-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음력 1월 14일 밤 우물에 불을 밝혀 나쁜 액을 막는 풍습. 우물에 불 켜놓기는 정월 열나흗날 밤, 집안의 우물가에 불을 밝히고 액을 막아 샘에서 물이 많이 나기를 기원하는 풍습이다. 이렇게 하면 샘물이 많이 솟아난다고 하는데, 이를 ‘우물 밝히기’·‘불 밝히기’라고도 부른다. 옥성면 농소2리에서는 종지에 참기름으로 심지 불을 켜서 바가지에 담아 샘에 띄워...
-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송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마을 모습이 소가 엎드려 누운 모양과 닮았다고 하여 우복동(牛伏洞)이라 하였다. 현재 마을의 대나무 밭이 소의 배꼽 위치로서 마을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이 자리가 명당자리라고 한다. 또 마을에서 추운 섣달 어느 날 소가 푸른 풀을 물고 누워 죽었다 하여 우복동(牛伏洞)이라 하였다고 한다. 오복동(五福洞)은 한자 표기로 인해 오기된...
-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송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마을 모습이 소가 엎드려 누운 모양과 닮았다고 하여 우복동(牛伏洞)이라 하였다. 현재 마을의 대나무 밭이 소의 배꼽 위치로서 마을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이 자리가 명당자리라고 한다. 또 마을에서 추운 섣달 어느 날 소가 푸른 풀을 물고 누워 죽었다 하여 우복동(牛伏洞)이라 하였다고 한다. 오복동(五福洞)은 한자 표기로 인해 오기된...
-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송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마을 모습이 소가 엎드려 누운 모양과 닮았다고 하여 우복동(牛伏洞)이라 하였다. 현재 마을의 대나무 밭이 소의 배꼽 위치로서 마을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이 자리가 명당자리라고 한다. 또 마을에서 추운 섣달 어느 날 소가 푸른 풀을 물고 누워 죽었다 하여 우복동(牛伏洞)이라 하였다고 한다. 오복동(五福洞)은 한자 표기로 인해 오기된...
-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화가이자 학자. 1904년 구미시 선산 지역에서 태어났다. 호는 근원, 선부, 검려, 우산, 노시산방주인 등이다. 김용준은 1925년 경성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31년 일본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학창 시절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는 등 재능을 나타내었고, 동경미술학교에 유학하여 서양화를 공부하고 돌아온 1933년부터 1938년까지 보...
-
고려 전기의 승려. 본관은 개성. 본명은 왕후(王煦), 호는 우세(祐世). 별명은 석구(釋煦, 석은 출가 승려의 일반적 성)이다. 아버지는 고려 제11대 왕 문종이며, 어머니는 인예왕후(仁睿王后) 이씨이다. 문종의 넷째 아들이며 형이 고려 숙종이다. 의천은 11세에 문종이 왕자들을 불러 “누가 출가하여 복전(福田)이 되겠느냐?”고 물었을 때 출가를 자원하였다. 1065년(문종 19...
-
조선 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입지(立之), 호는 우암(愚庵). 증조부는 최치운(崔致雲), 할아버지는 최해(崔海), 아버지는 최노(崔魯)이다. 부인은 선산김씨(善山金氏) 참봉 잠(箴)의 딸이다. 1591년(선조 24) 식년 문과에 갑과 2등으로 급제하였다. 예조좌랑(禮曹佐郞)을 역입하였다. 진보현감으로 있을 때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이 추앙하였다....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고부(叩夫), 호는 운수당(雲水堂). 아버지는 현령 하계문(河繼文)이며, 경질공(景質公) 김지경(金之慶)의 사위로, 신곡(新谷)에 내거(來居)하였다. 1477년(성종 8) 생원시·진사시 양시에 합격하고 1483년(성종 14)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을 지냈다. 1489년(성종 20) 예조좌랑으로서 민정을...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공헌(公獻), 호는 이우정(二友亭) 또는 운엄(雲广). 부제학·강원감사를 역임한 인재 최현(崔晛)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최체건(崔體乾), 할아버지는 최두추(崔斗樞), 아버지는 증호조참판 최수인(崔壽仁)이다. 1754년(영조 30)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759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승정원가주서(承政院假注書)·세...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초명은 장용규(張龍逵), 자는 진백(震伯), 호는 유헌(遊軒)·운전(雲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산음현감 장옥(張鈺)의 7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장호(張濠), 아버지는 사호옹(四好翁) 장학추(張學樞), 어머니는 김구운(金龜雲)의 딸로 선산김씨(善山金氏), 처는 허참(許傪)의 딸로 김해허씨(金海許氏)이다. 장학덕(張學㯖)에게...
-
개항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공유(公裕), 호는 운정(雲庭). 장금용(張金用)계로서 산음현감 장옥(張鈺)의 8대손이다. 할아버지는 사호옹(四好翁) 장학추(張學樞), 아버지는 장석구(張錫龜)이다. 14세 때 중부인 장석용(張錫龍)에게 입양되었다. 백부는 장석봉(張錫鳳)이다. 장승원은 1885년(고종 22) 증광 문과에 급제한 후 승정원주서를 시작으로 홍문관,...
-
조선시대 문신. 본관은 해주. 자는 운정(雲程), 호는 신당(新堂). 증조부는 정희언(鄭希彦)이고, 할아버지는 정유(鄭由), 아버지는 현감 정철견(鄭鐵堅)이다. 1467년(세조 12)에 출생하여 1485년(성종 16) 진사시에 입격하고 1492년(성종 23)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가 되었다. 정자·지평·정언을 거쳐 1504년(연산군 10) 교리로 있으면서 갑자사화에...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 자는 공무(公武), 호는 운초(雲樵).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후손으로 사이당(四而堂) 장지덕(張趾德)의 5세손이며 장윤문(張胤文)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증이조참의 장위(張瑋), 아버지는 증이조참판 장석이(張錫頤)이다. 장인원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1839년(헌종 5) 별시에 급제한 후 1840년 승문원...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소재리에 있는 고개. 선산읍 소재리에서 습례리로 가는 길목에 언덕이 하나 있는데 이곳이 울고개이다. 울고개로 불리는 유래는 여러 가지이다. 옛날 어떤 장군이 이 고개를 향해서 활을 쏜 뒤 얼른 자신의 말을 타고 화살과 누가 더 빠른가 경기를 했는데, 화살보다 늦게 도착하여 비통한 나머지 자살을 해서 울고개라 불린다는 이야기(제보자 : 이영록, 남, 76세)가...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봉남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산세가 좋고 황새가 많이 서식하여 봉덕산(鳳德山)이라 부르며, 두루미(황새)가 해마다 찾아와 서식하므로 황새골 또는 대조리(大鳥里)라 하였다. 울고개, 울곡이라고도 하며 조선 초기 김천 구읍 오진사댁 규수가 신당게 정진사댁 도령과 혼인하였지만 신랑이 곧 죽게 되자 오진사댁 규수는 신랑없는 시집살이를 살면서 친정으로 넘어가면서 울고...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봉남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산세가 좋고 황새가 많이 서식하여 봉덕산(鳳德山)이라 부르며, 두루미(황새)가 해마다 찾아와 서식하므로 황새골 또는 대조리(大鳥里)라 하였다. 울고개, 울곡이라고도 하며 조선 초기 김천 구읍 오진사댁 규수가 신당게 정진사댁 도령과 혼인하였지만 신랑이 곧 죽게 되자 오진사댁 규수는 신랑없는 시집살이를 살면서 친정으로 넘어가면서 울고...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봉남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산세가 좋고 황새가 많이 서식하여 봉덕산(鳳德山)이라 부르며, 두루미(황새)가 해마다 찾아와 서식하므로 황새골 또는 대조리(大鳥里)라 하였다. 울고개, 울곡이라고도 하며 조선 초기 김천 구읍 오진사댁 규수가 신당게 정진사댁 도령과 혼인하였지만 신랑이 곧 죽게 되자 오진사댁 규수는 신랑없는 시집살이를 살면서 친정으로 넘어가면서 울고...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북산리는 판산(板山, 일명 널뫼), 뒷뜸[北屯], 양지마, 삼박골[三朴谷]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판산은 마을 뒷산에서 판목이 많이 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뒷뜸은 판산 북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고, 양지마는 양지바른 곳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삼박골은 밀양박씨 성을 가진 삼형제가 양지바른 곳에 집 세 채를 지어 의좋게 살았...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서원마을 남쪽 감천 건너에 있는 마을로 고려 태조 왕건이 이 곳에 군영을 설치하고 견훤의 아들 신검과 접전을 벌여 그를 사로잡고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기여한 곳이라 한다. 과거 홍수로 인해 어강의 나루터가 소실되어 남쪽의 새도방에 새로운 나루터가 만들어지게 되어, 어강은 웃마라 불리고 새도방은 아랫마라 불리게 되었다. 어강은 북쪽의 감...
-
해평큰마를 구성하는 여러 지형지물의 이름들을 살펴보면 어느 것 하나 뜻없이 붙여진 것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현재 보천사(寶泉寺)가 있는 보천, 이곳은 낙동강에 바로 접하여 있기 때문에 보천탄(寶泉灘)이라고 부르던 나루가 있던 곳이다. 예로부터 소금배를 비롯해 많은 물산들이 강을 통해 드나들던 곳이다. 보천탄의 위치는 오늘날 청소년 야영장 앞의 솔숲 근처로 추정된다....
-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묵어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최인제가 이곳에 잠시 기거하면서 이 동네 앞들을 묵야라고 불렀다. 이후 이 들의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을 머들이라 하였다. 또한 묵야에 동네가 둘 생겼는데 이를 구분하기 위해 위쪽에 있는 마을을 웃머들, 상평(上坪)이라고 하고 아랫마을을 아랫머들이라 부른다. 마을의 형성연도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유래에 따...
-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장리는 웃장터(일명 상장), 곰실(일명 웅곡), 덕수징이, 바지미(일명 선교동), 새곰실, 시민골(일명 심은골·화은), 신장동, 장내(장터)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웃장터는 장내장터 위쪽이 되므로 붙여진 이름인데 후에 상장리가 되었다. 곰실은 북쪽 골짜기를 북곰실이라고 하고 동쪽 골짜기를 새곰실이라고 하는데 그 안에 있는 마을이다...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웅곡리의 웅곡천 위에 있는 다리. 웅곡천은 연장 2.6㎞로 웅곡리를 지나 대천으로 흘러 들어간다. 하천의 너비는 10~15m로 상류와 중류는 사행이 심하며 하천 바닥의 경사가 급하다. 또 상류와 중류는 잡풀과 관목이 무성한 데 비해, 하류는 잡풀이 무성하고 토사가 퇴적되어 있다. 주변 환경은 상류와 중류는 산지와 연결된 계단식 농경지가 발달되어 있고, 하류로...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지형이 곰처럼 생겼다 하여 웅곡(熊谷) 또는 곰실이라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을면 웅곡동이 되었고, 1988년 동이 이(里)로 바뀜에 따라 무을면 웅곡리가 되었다. 연악산(淵岳山) 지맥인 원통산이 마을 뒤에 솟아 있다. 남쪽으로 작은 평야를 경계로 무이리, 서쪽으로 송삼리와 접한다. 2007년 8월 1일 현재 총 86...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웅곡리 곰실마을에서 음력 1월 7일 자정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마을의 지형이 곰과 같이 생겼다하여 곰실이라 하며, 오래전부터 마을을 형성한 자연마을이다. 웅곡리 곰실마을 동제는 마을 뒷산의 산제장과 마을 입구 당목에서 음력 1월 7일 자정에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언제부터 동제를 지냈는지 알 수 없지만, 20년 전 제관...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웅곡리에 있는 저수지. 웅곡리는 마을의 지형이 곰과 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웅곡리 앞에 있는 저수지가 웅곡지(熊谷池)이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웅곡지(熊谷池)는 옥씨(玉氏) 8형제가 살던 집이었는데, 집터를 보니 장래 옥씨들 중 나라를 뒤엎을 인물이 난다고 하여 나라에서 이들을 이주시키고 못을 파서 지세를 끊었다고 한다. 웅곡리는 북...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웅곡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의 도감(都監) 김수령의 송덕비. 김봉수는 농경지에 물을 대기 위한 저수 시설인 웅곡지의 도감으로서, 못의 축조에 기여한 공로와 혜택을 입은 몽리자(蒙利者)들의 발의로 비석을 건립하게 되었다. 구미시 무을면 웅곡리 지방도 920호선 변 경사면에 세워져 있다. 높이 80㎝, 너비 34㎝, 두께 9.5㎝의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팔작...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원1리 웃마마을에서 음력 1월 14일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원1리 웃마마을은 원골의 위쪽에 있는 자연마을이다. 원1리 웃마마을 동제는 마을 뒷산의 산제장에서 매년 음력 정월 열 나흗날에 주민 공동으로 지내던 마을 제사이다. 이를 ‘산제’라고도 부른다. 원1리 웃마마을은 약 500년 전 안동권씨가 처음으로 마을에 정착하였다고 전하...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노상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사찰. 1931년 2월 도리사 주지 하정광이 심씨(沈氏) 재실을 개축하여 포교당으로 삼았다. 불상은 수다사의 것을 옮겨 봉안한 것인데, 발견된 복장의 조성기에 따르면 1649년(인조 27)에 조성된 아미타삼존불, 즉 아미타불,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중의 관음보살상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1931년 원각사가 성립되었고, 지금은 직지...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노상리 원각사에 있는 조선시대 목조보살상. 원래 무을면에 위치한 수다사에 안치되었던 것을 해방 이후 원각사로 옮겨와 원통전의 주불로 봉안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미타불은 지금도 수다사에 있으나, 관음보살은 행방을 알 수 없다. 원각사는 원통전 1동과 요사채 2동으로 구성되어 있는 소규모 사찰이다. 일제강점기 때 심씨 문중의 재실이었다가 사찰로 개조했다고 한다....
-
경상북도 구미시 선주원남동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원남동 고분군은 금오초등학교와 비둘기아파트 뒤편의 동쪽과 남쪽으로 뻗은 능선에 분포하고 있다. 현재 수십 기 정도만 확인되고 있으며 도굴과 민묘 조성, 등산로 설치 등으로 인해 파괴가 심하다. 능선을 따라 파괴된 고분의 덮개돌과 벽석들이 군데군데 드러나 있다. 금오산저수지에서 발원하는 금오천변의 구릉지대에 형성된 소규모 집단...
-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스스로 공부하는 어린이, 고운 심성으로 행동하는 어린이, 끈기 있게 탐구하는 어린,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더불어 살아가는 정직하고 창의적인 사람이 되자’이다. 1999년 1월 13일 원남초등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고 2000년 9월 1일 금오초등학교에서 22학급 881명을 분리하여 개교하였다....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원리에서 원동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4년 8월 24일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원1리 주민 지양식(남, 80)이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1987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 구미시·선산군 편과 1999년 구미문화원에서 출간한 『구미마을사』에 수록하였다.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원리 원동은 북쪽으로는 머무산을 등지고 남쪽으로...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선산읍에서 감천의 지류인 단계천을 따라 만들어진 군도 1호선을 따라 가다 보면 원리 장아질마을(1군), 강창마을(2군), 서원마을(3군)이 나오는데 고분군은 이들 자연마을을 하나씩 끼고 3개 군으로 나누어져 분포하고 있다. 3개 군 가운데서 장아질마을 고분군은 봉토 직경 10~15m의 주영분 10여 기가 확인되며, 서원마을...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 있는 조선 전기 남산 봉수의 터. 원리 남산 봉수는 조선 세종 때 정한 5간선(幹線)의 하나로, 제2선인 동래선에 속하며, 약목의 박집산, 인동의 건대산, 해평의 석현 봉수 신호를 개령의 감문산, 김천의 소산, 상주의 회룡산으로 전달하는 직봉(直烽)이다. 원리 남산 봉수는 산정에 띠를 두른 모양을 하고 있으며, 가운데 봉돈 1거(炬)가 남아 있다. 봉...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원1리에 있는 수령 330년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 26m, 지름 3m까지 자란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며, 나무껍질은 회백색이고 늙은 나무에서는 나무껍질이 비늘처럼 떨어진다. 꽃은 5월에 취산꽃차례(聚繖꽃次例 : 먼저 꽃대 끝에 한 개의 꽃이 피고 그 주위의 가지 끝에 다시 꽃이 피고 거기서 다시 가지가 갈라져 꽃이 핌)...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원2리에 있는 수령 130년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 26m, 지름 3m까지 자란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며, 나무껍질은 회백색이고 늙은 나무에서는 나무껍질이 비늘처럼 떨어진다. 꽃은 5월에 취산꽃차례(聚繖꽃次例 : 먼저 꽃대 끝에 한 개의 꽃이 피고 그 주위의 가지 끝에 다시 꽃이 피고 거기서 다시 가지가 갈라져 꽃이 핌)...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원리에서 음력 1월 14일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원리는 옛날에 상주와 개령원님이 서로 왕래하면서 이곳에서 휴식하고 갔다 하여 원(元)골이라 불렀는데, 그 후에 원리(院里)로 지명이 바뀌었다. 원리 동제는 마을 뒷산의 산제장에서 매년 음력 1월 14일에 정기적으로 올리는 마을 공동의 제사이다. 원리는 평평한 들판 가운데로 개천이...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 있는 통일신라 때의 절터. 선산 읍내에서 동남쪽으로 약 6㎞ 떨어진 원리(院里)에서 낙동강안을 따라 북쪽으로 1㎞쯤 보행하면 강창(江倉)마을에 이르는데, 이 마을 남쪽 산록에 옛 절터가 있다. 강창은 지금까지도 불리는 이 마을의 통칭인데 강창이라는 지명 자체가 역사, 지리적인 유래를 지니고 있다. 30년 전에도 해평면 일대에서 도보로 선산 읍내로 들어...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에 속하는 법정리. 안동권씨가 입향한 뒤 상주와 개령의 원(元)이 서로 왕래하면서 이곳에서 쉬어 갔다 하여 원골이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자연마을로 모종골, 초마골, 못골 등이 있다. 모종골은 박을 모종하듯 박씨가 먼저 와 터를 잡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초마골은 풀이 많은 골짜기 또는 풀로 지은 막이 있었으므로 유래한 이름이다. 못골은 못이 있는 마을이므...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 동내방에 속한 마을로 서원, 강창, 웃마(일명 어강), 아랫마(일명 새도방), 연수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서원은 마을의 명당자리에 금오서원을 이건한 뒤 많은 선비들이 모여 글공부를 하였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강창은 낙동강을 따라 각종 곡물과 소금을 운송하면서 창고가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웃마는 서원 위쪽에 있는 마을이...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원리의 대천 위에 있는 다리. 원리라는 마을에 세워졌다는 의미에서 원리교라고 이름 붙었다. 길이는 48m, 폭은 9m, 유효 폭은 8m, 높이는 3m이다. 경간(徑間, 지주 교각) 수는 3개이고, 최대 경간 길이는 16m이다. 상행과 하행 각기 1차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보도는 따로 없다. 다리의 상부 구조 형식은 강화 콘크리트 슬라브교(RCS)이며, 하부...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신천(信川). 자는 원보(遠甫). 증조할아버지는 강유선(康惟善)이고, 할아버지는 강복성(康復誠)이다. 아버지는 강권(康錈)이며, 어머니는 전의이씨(全義李氏)로 이정란(李廷鸞)의 딸이며, 부인은 한숭인(韓崇仁)의 딸이다. 강수학(康邃學)은 1665년(현종 6)에 실시된 온양별시에 급제하였고, 같은 해에 금부도사에 임명되었다. 1666년(현종 7)에 사헌부감...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재상은 본관이 인동(仁同)이고 호는 원봉(園峰)이며 아버지는 장병희(張炳熙)이다. 장재성은 엄격한 가정 환경에서 성장하였으며 선산보통학교(현 선산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배재학당을 거쳐 청운의 뜻을 품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일본 고수중학을 졸업하고 동경의 일본대학(日本大學) 법과에서 공부하던 중 민족 해방과 독립 운동에 헌신할...
-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 있는 원불교 구미 교당. 원불교는 1916년 전라남도 영광에서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이 개창한 불교 계통의 신흥 종교이다. 우주의 근본 원리인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는 종교로, 진리적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통하여 낙원 세계를 실현시키려는 이상을 내세우고 있다. 1977년 성정재 교무가 구미에 거주하며 법회...
-
조선 후기 인동도호부사를 역임한 무신. 원세정은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855년(철종 6) 7월 27일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부임하였다. 1859년(철종 10) 6월 충주영장으로 승진되었다. 1859년(철종 9) 7월 선정비가 세워져 현재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 인동향교 내에 있으며, 1859년(철종 10) 세워진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경상북도 구미시 옥계동의 도로변에...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원세정의 선정비. 원세정은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 1855년(철종 6)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59년(철종 10) 이임하였다. 그는 4년 동안 인동부사로 있으면서 도목정(都目政)에 따라 승진하였으며, 백성들이 인동부사로서 베푼 선정을 기려 비를 세웠다. 원세정 거사비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공직자 상을...
-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원세정의 불망비. 원세정은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 1855년(철종 6)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59년(철종 10) 이임하였다. 그는 4년 동안 인동부사로 있으면서 도목정(都目政)에 따라 승진하였으며, 백성들이 인동부사로 베푼 선정을 기려 비를 세웠다. 높이 116㎝, 너비 54㎝, 두께 27㎝의 비신을 세우고 그...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신천(信川). 자는 원숙(元叔), 호는 주천(舟川). 아버지는 창원도호부사 강의(康顗)이며, 어머니는 동래정씨로 헌납 정사걸(鄭士傑)의 딸이다. 강유선은 1537년(중종 32)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성균관의 유생이 되어 당시 좨주[祭酒] 송인수(宋麟壽)에게 아낌을 받았다. 1545년 인종이 즉위하자 성균관 유생들과 함께 상소하여 조광조(趙光祖...
-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음력 1월 1일에 지내는 한 해의 첫 명절. ‘설’은 새해의 첫날, 곧 정월 초하룻날이고, ‘설’은 새해의 첫머리이다. 이런 뜻에서 설날·원일(元日)이라고도 부른다. 원래 설이란 ‘삼가한다’는 뜻으로, 동지에서 정월 대보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이 기간 동안 몸과 마음가짐을 삼가고 집안을 정갈하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새해의 첫날을 일컬을 때에는 설날...
-
고려 전기의 왕후. 본관은 일선(一善). 본명은 김국(金國). 외할아버지는 시중(侍中)에 추증된 김원숭(金元崇), 외할머니는 화의군대부인(和義郡大夫人)에 봉하여진 왕씨(王氏)이다. 아버지는 고려 성종, 어머니는 성종의 제2비 문화왕후(文和王后) 김씨(金氏)이다. 모후의 성을 따라 김씨로 하였다. 목종이 폐위되고 현종이 즉위하여 왕비로 삼고 현덕왕후(玄德王后)라 하였다. 1010년(...
-
고려 후기 구미 지역에서 우거한 문신.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원질(元質). 평택임씨(平澤林氏)의 중시조 임세춘(林世春)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 충정공(忠貞公) 임언수(林彦修), 아버지는 평원부원군(平原府院君) 임견미(林堅味)이다. 대대로 평성(平城, 현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원호리)에 우거하였다. 임박은 1360년(공민왕 9)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개성...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대원1리 대원마을에서 음력 9월 8일 자정에 지내는 원처사 추모 의례. 대원마을 근처 암자에 살던 원처사 또는 원태사라는 스님이 자신이 소유했던 토지를 마을에 기부하였다. 원처사 제례는 스님의 기부에 감사하여 원처사비 앞에서 매년 음력 9월 8일 자정에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추모 제사이다. 대원마을에 땅을 기부한 원처사를 위하여 마을에서는 정성껏 제사를 지낸...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이리에 있는 산.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 성을 쌓고 싸울 준비를 갖추었으나 원통하게도 한번 싸워 보지도 못하고 패하였다 하여 원통산(怨通山)이라고 하였으며, 현재도 성의 옛 모습이 조금 남아 있다. 중앙봉 아래 약수터가 있는데, 속병을 고치는 약수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약수를 마시려면 하루 전에 목욕을 하고 몸을 청결히 하여 기도를 드려야만 마실...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이리에 있는 산.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 성을 쌓고 싸울 준비를 갖추었으나 원통하게도 한번 싸워 보지도 못하고 패하였다 하여 원통산(怨通山)이라고 하였으며, 현재도 성의 옛 모습이 조금 남아 있다. 중앙봉 아래 약수터가 있는데, 속병을 고치는 약수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약수를 마시려면 하루 전에 목욕을 하고 몸을 청결히 하여 기도를 드려야만 마실...
-
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고조부는 신라 문성왕(文聖王)의 직계로 경순왕(敬順王)을 따라 고려 태조에게 귀순하여 공신이 된 김유렴(金庾廉)이며, 아버지는 김행공(金行恭)이다. 김한충(金漢忠, 1043~1120)은 문과에 급제한 뒤 1087년(선종 4) 합문인진사(閤門引進使)가 되어 요나라에 다녀왔으며, 이어서 형부시랑·예부상서 등을 거쳐 추밀원사와 상서좌복야를 역임하...
-
경상북도 구미시 원평동에 있는 원평1동 관할 행정기관. 경상북도 구미시를 구성하고 있는 2개 읍(선산읍·고아읍), 6개 면(무을면·옥성면·도개면·해평면·산동면·장천면), 19개 동(송정동·원평1동·원평2동·지산동·도량동·선주원남동·형곡1동·형곡2동·신평1동·신평2동·비산동·공단1동·공단2동·광평동·상모사곡동·임오동·인동동·진미동·양포동) 중 원평1동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
경상북도 구미시 원평동에 있는 원평2동 관할 행정기관. 경상북도 구미시를 구성하고 있는 2개 읍(선산읍·고아읍), 6개 면(무을면·옥성면·도개면·해평면·산동면·장천면), 19개 동(송정동·원평1동·원평2동·지산동·도량동·선주원남동·형곡1동·형곡2동·신평1동·신평2동·비산동·공단1동·공단2동·광평동·상모사곡동·임오동·인동동·진미동·양포동) 중 원평2동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
경상북도 구미시에 속하는 법정동. 평평하고 넓은 들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 하여 원평이라고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산동(月山洞), 암전동(岩田洞), 각산동(角山洞), 장기동(場基洞) 각 일부를 병합하여 원평동이라고 하고 구미면에 편입하였다. 1963년 구미면이 읍으로 승격하여 구미읍 원평동이 되면서 6개 동으로 나뉘었다. 1978년 구미읍이 시로 승격하...
-
경상북도 구미시 원평동에 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 성당.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천주교 신자들이 전국의 산골로 숨어들었는데, 이들이 모여서 살게 된 신자촌이 영남 지역에만 일곱 곳이 있었다고 한다. 1827년에는 대구 지역을 포함하여, 모두 68개의 신자촌이 영남 지역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때 상주 지역에서 대구 지역 사이의 길목에 터를 잡은 곳이 여진공소이다. 1...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안에 둥근 못이 있어 원호(元湖)라고 하였다. 들판이 산으로 둘러싸인 모습이 마치 성(城)과 같다 하여 들성, 야성(野城)으로도 불리었다. 자연마을로 웃골[上谷], 점터[店峴], 중동(中洞), 원당골[元堂谷] 등이 있다. 웃골은 거정동(居正洞)과 석천동(石泉洞)이 합하여 된 마을로, 거정동은 여러 어진 사람들이 많이 나서 살았다 하여...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원호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국도 38호선을 따라 가다 문성교를 건너서 좌회전하여 계속 가면 원호리 보원사가 나오고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도로 오른쪽에 민가가 있는데 고인돌은 민가 입구에 있다. 민가의 대문을 만들기 위하여 원래 위치에서 10m 정도 이동된 상태이며, 덮개돌의 크기는 210×120×110m이다. 덮개돌 아래는 현재 시멘트 파편과 잡석들...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원호리 보원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불좌상. 앙련의 연화 대좌 위에 조성되어 있는 석불좌상이다. 육계는 높지 않은 편이며 상호는 둥글고 단아하다. 양쪽 귀는 길게 늘어져 있으며, 목에는 삼도가 있다. 법의는 통견(通肩)이며, 결가부좌한 좌상으로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에 자연스레 놓았으며, 왼손은 배꼽 아래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석불 전체에 호분을 칠하여 고졸한...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원호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국도 38호선을 따라 가다 문성교를 건너서 좌회전하여 계속 가면 원호리 보원사가 나오고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도로 오른쪽에 민가가 있는데 고인돌은 민가 입구에 있다. 민가의 대문을 만들기 위하여 원래 위치에서 10m 정도 이동된 상태이며, 덮개돌의 크기는 210×120×110m이다. 덮개돌 아래는 현재 시멘트 파편과 잡석들...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대원리 대원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처사 원호식의 송덕비. 구미시 옥성면 대원리 대원마을 지방도 916호선 도로변 숲속에 세워져 있다. 비석은 덮개돌과 비좌가 없고, 비석의 윗부분이 둥글게 되어 있는 원수(圓首) 형태의 비신만 남아 있다. 비신은 높이 74㎝, 너비 43㎝, 두께 12㎝이다. 비의 앞면에는 ‘처사원주원공호식만세불망지비(處士原州元公浩植萬世不忘之碑...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원호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더불어 살아가는 어린이, 스스로 학습하는 어린이, 소질을 키우는 어린이, 바른 심성을 가진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지혜로운 어린이’이다. 1997년 9월 1일 도산초등학교에서 26학급을 분리하여 원호초등학교로 개교하였다. 1998년 3월 1일 원호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1학급을 개원하였다. 2004년 3월...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가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고려 때 이 곳에 원흥사란 절이 있었는데 빈대가 너무 많아 폐사가 되었고, 그 곳에 생긴 마을인데 절의 이름을 따서 원흥이라 하였다. 가산리 서쪽 낙동강의 연안 비옥한 평야지대에 위치하며, 마을 동쪽은 낮은 구릉지를 이룬다. 낙동강의 연안 비옥한 평야지에 수도작을 비롯하여 각종 원예작물 특히 수박, 방울토마토를 재배하여 비교적 농가...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가산리에 있는 연대 미상의 절터. 마을 입구에는 가산리 원흥사지에서 출토된 팔각의 부도 받침돌이 있었으나 몇 년 전에 도난당하였다. 도개면 가산리 원흥마을에 최근에 건립한 원흥사가 위치하고 있는데, 이 일대가 절터[寺址]로 추정된다. 이 지역 동장에 의하면 밭 가운데에 주초석으로 보이는 자연석 다섯 개를 땅속 깊이 묻었다고 하며, 일대에 와편이 산재하고 있다...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가산리에 있는 연대 미상의 절터. 마을 입구에는 가산리 원흥사지에서 출토된 팔각의 부도 받침돌이 있었으나 몇 년 전에 도난당하였다. 도개면 가산리 원흥마을에 최근에 건립한 원흥사가 위치하고 있는데, 이 일대가 절터[寺址]로 추정된다. 이 지역 동장에 의하면 밭 가운데에 주초석으로 보이는 자연석 다섯 개를 땅속 깊이 묻었다고 하며, 일대에 와편이 산재하고 있다...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수원[水月, 무들]과 박곡(朴谷, 박실)의 이름을 따서 월곡이라 하였다. 마을 지형이 월(月) 자와 같이 생겨서, 흡사 마을 앞을 흐르는 낙동강 물에 달이 떠 있는 것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자연마을로 박곡, 말리골 등이 있다. 박곡은 마을 뒷산 줄기가 박을 심어서 덩굴이 뻗어 가는 모양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말리골은 한일병합...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월곡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월곡리 고분군은 해평면 소재지에서 상주 방향으로 6㎞ 정도 떨어진 국도 25호선의 북쪽에 위치하는 능선에 분포한다. 낙동강을 향해 뻗어 내린 능선의 좌우 비탈과 아래 부분에 위치하는 고분군은 월곡리 고분군Ⅰ,Ⅱ,Ⅲ으로 나누어진다. 이 중 월곡리 고분군Ⅰ은 『문화유적분포지도』(구미시)에서 낙산리 고분군Ⅳ로 부르고 있으나 경...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한 해를 주기로 일정한 시기에 반복되는 관습적 생활 행위. 세시풍속의 세(歲)는 한 해를 의미하고 시(時)는 네 계절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세시풍속은 크게 보아 한 해의 네 계절, 즉 철따라 행해지는 풍속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네 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달의 변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으므로 음력으로 매월 행해지는 풍속이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세시풍속을...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봉남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예부터 마을 뒷산이 선산부의 서쪽에 위치하며 새벽에 서산에 밝은 달이 마치 산위를 맑은 물이 흐르듯이 사라지는 듯하여 월류산(月流山)이라 이름했는데, 월류산 아래 마을이라 월유골이라 했으며, 변음되어 월이골이라 부른다. 월류산에서 내려오는 개울이 습례리와 경계를 이룬다. 옛날에는 선산군과 금릉군의 경계가 될 때도 있었다. 마을 안에...
-
경상북도 도개면 월림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주위가 산림(山林)으로 둘러싸여 있고 뒤에는 소류지가 있으며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월림리는 월림1리와 월림2리로 나누어지는데, 월림1리, 곧 임호에는 월곡마을이 있다. 월곡마을은 달이 뜨면 마을을 환하게 비추어 마을 뒤에 있는 계곡이 맑게 보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월곡마을은 또 아래위로 나누어서 아랫...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월림2리 한실마을에서 8월 15일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고 광복을 경축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월림은 달이 동네를 비추니 뒤에 있는 우거진 숲에 의하여 더욱 아름다운 마을로 보인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한실은 큰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붙인 명칭이다. 월림2리 한실마을 동제는 정월 보름날 대신 8월 15일 광복절로 옮겨서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에 속하는 법정리. 팔공산 끝자락 뒷산의 계곡이 월(月) 자와 비슷하여 월동·월골이라 하였고, 월동과 임호(林湖)의 이름을 따서 월림이라 하였다. 2009년 1월 현재 총 153가구에 373명[남 177명, 여 196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팔공산 지맥 끝자락 산 밑에 형성된 마을로 낙동강과 접하여 자연 경관이 아름답다. 월림1리와 월림2리 두 개 행정리로...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월림리에 있는 고려시대 고분군. 도개면 면소재지에서 상주 방면으로 국도 25호선을 따라 가면 신곡교가 나오고, 이를 지나면 월림2리 임호마을이 나타난다. 월림리 고분군은 이 마을의 뒤편 남서쪽으로 뻗은 능선 상에 위치하고 있다. 2002년 지표조사로 고분군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으며, 정식 발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지표조사에서 확인된 유물은 없다. 국도...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월림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에서 국도 25호선을 따라가다가 월림리 신곡교를 건너기 직전 오른쪽으로 난 도로로 들어와서 조금 가다보면 왼쪽에 한실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산포지는 이 한실마을의 왼쪽 능선의 남사면 말단부에 위치한다. 현재 민가 앞의 밭 주위와 민묘 등에서 토기편과 자기편 등이 확인된다....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월림2리에 있는 수령 280년의 회화나무. 회화나무는 콩과의 낙엽 관목으로 높이 25m에 이른다. 잎은 어긋나고 1회 깃꼴겹잎이다. 작은 잎은 7~17개씩 달리고 달걀 모양 또는 달걀 모양 타원형이며 뒷면에 잎자루와 함께 누운 털이 있다. 꽃은 8월에 원추꽃차례를 이루며 연한 황색으로 피고, 열매는 협과(莢果: 콩처럼 꼬투리로 맺히는 열매)로 10월에 익는다...
-
경상북도 구미시 원평동에 위치한 자연마을. 금오산 줄기인 황소봉[黃牛峰] 머리 뿔 아래에 있어 각산이라고 하였다. 각산을 각실, 혹은 저녁달이 황우봉에 걸려 아름답다 하여 월산(月山)이라고도 한다. 신라 소지왕 9년부터 관청의 물건이나 문서를 전달하던 제도가 있어 말 6필과 역사(驛使) 20명을 둔 역이 있던 곳이다. 북쪽으로 구미천이 흐르고, 금오산의 북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월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1630년(인조 8)에 이 지역 출신으로 절의를 지킨 하위지(河緯地), 이맹전(李孟專) 및 고려말의 충신 김주(金澍), 명종 때의 학자 박운(朴雲) 등을 기리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694년(숙종 20)에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2010년 복원되었다....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월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 월암서원에 속해 있던 정자. 1630년(인조 8) 농암(籠巖) 김주(金澍),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 경은(耕隱) 이맹전(李孟專)을 모시는 사당인 삼인사(三仁祠)가 세워졌으며, 1694년(숙종 20)에 월암서원으로 사액되었다. 그 후 1868년(고종 5)에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월암정만 남게 되었다. 월암서원은 2010년...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보름날 여성들이 집단을 이루어 놀면서 부르는 유희요. 구미 지역에서는 여성들이 달밤에 집단으로 모여서 놀이를 하였다. 두 사람의 술래가 서로 마주보고 손을 깍지 끼고 서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줄을 지어 그 아래를 통과하는 것이다. 노래가 끝날 때 붙잡힌 사람이 술래가 되는 놀이다. 보름날 밝은 달밤에 논다고 하여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노물리 일대에서는 「월월이...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봉남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예부터 마을 뒷산이 선산부의 서쪽에 위치하며 새벽에 서산에 밝은 달이 마치 산위를 맑은 물이 흐르듯이 사라지는 듯하여 월류산(月流山)이라 이름했는데, 월류산 아래 마을이라 월유골이라 했으며, 변음되어 월이골이라 부른다. 월류산에서 내려오는 개울이 습례리와 경계를 이룬다. 옛날에는 선산군과 금릉군의 경계가 될 때도 있었다. 마을 안에...
-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평해. 자는 국서(國瑞), 호는 월정(月庭). 1888년 4월 17일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성수리에서 황봉수(黃鳳秀)의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황진박은 1910년 조선이 일본에 합병되자 책장을 박차고 일어나 약장사로 변장하여 뜻있는 동지를 찾아 각처를 두루 다녔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 서울로 가서 구국 투쟁을 벌였다. 고향으로...
-
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자고(子固), 호는 월정(月汀). 장원(掌苑) 윤계정(尹繼丁)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사용 윤희림(尹希林), 아버지는 군자감정 윤변(尹忭), 어머니는 부사직 현윤명(玄允明)의 딸이다. 형이 해원부원군(海原府院君) 윤두수(尹斗壽)이다. 윤근수는 김덕수(金德秀),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558년(명종 13) 문과에 급...
-
1401년(태종 1) 권근이 구미 지역의 월파정 재건 때 민제(閔霽)의 부탁을 받아 쓴 기문(記文). 권근(權近, 1352~1409)은 여말선초의 문신이자 학자로 초명은 진(晉), 자는 가원(可遠), 호는 양촌(陽村)이다. 성리학자이면서 문장에도 뛰어났으며, 왕명으로 하륜(河崙, 1347~1416) 등과 함께 『동국사략(東國史略)』을 편찬하였다. 저서에 『양촌집(陽村集)』 등이 있...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월호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낙동강 유역의 개펄 가까이까지 배가 드나들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 말 목화를 보급한 문익점의 손자인 문영이 여기서 베틀을 처음 만들어 의생활에 공헌했는데 그 유적이 아직도 있다. 또한 문영의 후손으로 선조 때 성불했다는 지경대사가 태어난 곳이다. 지경대사의 사리 7과와 영정이 해인사에 봉안되어 있다. 남평문씨가 개척한 마...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임용의 자는 종식(鍾植), 호는 월호(月湖)이다. 아버지는 이희원(李希元)이다. 이임용은 대구 계성학교를 졸업하고 칠곡공립보통학교에서 3년간 교직 생활을 하다가 대구 동산병원으로 직장을 옮겨 4년간 근무하였다.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장날을 기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고, 김수길·이영식·이영옥·김삼도 등과 함께 시장...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속하는 법정리. 태인경씨, 영양오씨 몇 가구가 살다가 임진왜란 이후에 번창한 마을로 대창걸, 어리게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대창걸은 해평현 때에 관가의 큰 창고가 60여 채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창고는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었다. 어리게는 남평문씨가 개척한 마을이다. 2009년 1월 현재 면적은 2.83㎢이며, 총 189가구에 467명[남 23...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월호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해평초등학교에서 국도 25호선을 따라 상주 방면으로 1㎞ 정도 가면 도로 우측의 구릉 상에 고분군이 위치한다. 창림저수지의 남쪽에 해당되며 능선의 맞은편 구릉에도 구덩식 돌덧널이 수 기 분포한다. 정식 발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지만, 지표조사에서 굽다리접시, 긴목항아리편, 짧은목항아리편 등이 확인되었다. 봉토분은 직경 10...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월호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해평면 면소재지에서 국도 25호선을 따라 북으로 약 500m 가면 해평초등학교에 이른다. 여기서 북으로 400m 정도를 지나면 오른쪽에 해평농공단지가 나타나고, 이곳에 있는 동방섬유공장의 오른쪽 능선 상에 위치한다. 고인돌이 있는 주변은 현재 과수원과 논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원래는 2기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1기뿐이다. 덮개...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월호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해평면 면소재지에서 국도 25호선을 따라 북으로 약 500m 가면 해평초등학교에 이른다. 여기서 북으로 400m 정도를 지나면 오른쪽에 해평농공단지가 나타나고, 이곳에 있는 동방섬유공장의 오른쪽 능선 상에 위치한다. 고인돌이 있는 주변은 현재 과수원과 논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원래는 2기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1기뿐이다. 덮개...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의경(金義景)은 권오환(權五煥)·이원길(李元吉)·박희목(朴喜穆)·전용신(田容信)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펼칠 것을 계획하였다. 1919년 4월 12일 선산읍 장터에서 군중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독립 만세 운동을 이끌었다. 이로 인해 체포되어 1919년 5월 2일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해주. 자는 위로(渭老). 정붕(鄭鵬)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병사(兵使) 정루(鄭縷)이다. 1592년(선조 25)에 출생하였다. 당시 임진왜란 영향으로 나라가 편안치 못한지라 스스로 무(武)를 택하여 1618년(광해 10) 무과에 등제하였다. 많은 도적패가 조령에 웅거하여 백성을 괴롭히자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서 평정에 나섰고, 공주에 토포사(討...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신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신곡리는 큰 마을이라서 위치를 세분하기 위해서 중간에 흐르는 하천을 경계로 위쪽을 상리 또는 위마라 불렀다. 위마마을은 팔공산 지맥인 장자봉 아래 좌청룡 우백호가 뚜렷한 분지로 형성된 마을이다. 고려 충신 농암 김주의 후손 중 좌의정을 비롯한 많은 문과급제자와 임진왜란 의병장 정방준의 처 열녀 변씨의 정려각 그리고 혜봉선사(慧峰禪師...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위숙(渭叔), 호는 임계(臨溪). 오식은 1400년(정종 2) 진사에 합격하고, 1402년(태종 2) 문과에 급제하였다. 연산목사·남원목사·청주목사를 역임하였다. 그 후 제주목사·인령부윤·중군동지총제·좌군총제를 거쳐 경주부윤으로 재직하다가 죽자 세종이 부의(賻儀)를 내렸다. 1409년(태종 9) 남원부사로 재직 시 “속공노비...
-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에 경상북도 구미에서 활동한 언론인이자 학자. 장지연은 1864년(고종 1) 경상도 상주목 목내면 동곽리에서 출생하였다. 처음 이름은 장지윤(張志尹)이고 호는 위암(韋庵) 또는 숭양산인(崇陽山人)이다. 소매당 장영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운소(雲沼) 장용상(張龍相)이고, 장석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4세 때 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으로 이거했다가 20세 때 구미...
-
1866년(고종 3) 송병선이 구미 지역의 금오산을 비롯해 천마산·추풍령 일대를 유람하고 쓴 기행문.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은 조선 고종(高宗, 1852~1919) 때의 문신으로 자는 화옥(華玉), 호는 연재(淵齋)이다. 벼슬이 좨주를 거쳐 대사헌에 이르렀으며,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일본을 경계할 것을 상소하고 고향에 가서 자살하였다. 「유금오산기」(송병선)는 송병선이...
-
1867년(고종 4) 경상북도 구미 지역 출신의 허훈이 금오산 일대를 유람한 후 쓴 기행문. 허훈(許薰, 1836~1907)은 한말의 의병장으로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 지역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방산(舫山)이며 의병장 왕산(旺山) 허위(許蔿)의 맏형이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의 공포를 계기로 항일 운동에 나섰다. 1990년 건국 훈장 애국장이 추...
-
1706년(숙종 32) 김하천이 구미 지역의 금오산을 유람하고 쓴 기행문. 「유금오산록」은 김하천(金廈梴)이 1706년 9월 11일부터 9월 13일까지 영남의 진산인 금오산(金烏山) 일대를 아버지 및 교우들과 유람한 후 쓴 기행문이다. 9월 11일 대혈사(大穴寺)를 출발하여 대혜문(大惠門)·화암(華巖)·용각폭포(龍角瀑布)·도선굴(道仙屈)·흘송대(屹松臺)를 지나 만승사(萬勝寺)·건성...
-
경상북도 구미시 일대에서 유금이들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7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 구미시·선산군 편과 1999년 임재해의 『설화작품의 현장론적 분석』에 수록되어 있다. 유금이들에 관한 이야기는 경상북도 경주 지역에서 다수 채록되었는데,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채록된 것은 왕의 이름이 없다. 경상북도 경주 지역에서 채록된 것은 왕의 이름이...
-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음력 6월 15일에 지내는 명절. 유두(流頭)란 말은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뜻으로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이란 말의 약어이다. 음력 6월 15일은 흔히 유월명절이라고 한다. 유두는 연중 가장 바쁜 시기로, ‘미끈유월’이라는 말처럼 이때가 되면 두레의 김매기로 인하여 쉴 틈이 없다. 밭농사도 마무리 손길로 매우 분주한 때이다. 유두의 유래는 정확하지...
-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6월 15일에 논밭에서 풍농을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 유두날에 지내는 제사는 유두 제사와 유두 천신이 있다. 유두 제사는 민간에서 농신이라고 믿는 용에게 풍농을 기원하며 지내는 민속신앙의 한 형태이다. 유두 천신은 제철음식을 장만하여 조상에게 바치고 유교식 제의절차에 따라 지내는 유교식 명절 제사이다. 유두 제사는 6월 15일 유두날 해질 무렵에 논두렁에서...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유두에 먹는 밀가루로 만든 국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유두에 유두면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소맥(小麥)으로 구슬 모양을 만들어 유두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구미 지역의 밀국수는 긴 실 같은 밀국수를 삶아서 건진 뒤, 멸치국물에 담고, 양념장을 얹어 만든다. 또 유두국수라고 하여 콩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구미 지역에는 6월 유두에 밀국수...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유두에 먹는 밀가루로 만든 국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유두에 유두면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소맥(小麥)으로 구슬 모양을 만들어 유두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구미 지역의 밀국수는 긴 실 같은 밀국수를 삶아서 건진 뒤, 멸치국물에 담고, 양념장을 얹어 만든다. 또 유두국수라고 하여 콩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구미 지역에는 6월 유두에 밀국수...
-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6월 15일에 논밭에서 풍농을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 유두날에 지내는 제사는 유두 제사와 유두 천신이 있다. 유두 제사는 민간에서 농신이라고 믿는 용에게 풍농을 기원하며 지내는 민속신앙의 한 형태이다. 유두 천신은 제철음식을 장만하여 조상에게 바치고 유교식 제의절차에 따라 지내는 유교식 명절 제사이다. 유두 제사는 6월 15일 유두날 해질 무렵에 논두렁에서...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유면은 기계유씨(杞溪兪氏)로서 당시 경상도 인동현에서 태어났다. 1405년(태종 5) 진사에 입격한 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사헌부지평을 역임하고 흥해군수 재직시에 병사하였다....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무덤, 집터 등과 같이 사람이 살았다는 분명한 흔적은 알 수 없지만 유물이 흩어져 있는 곳. 유물산포지는 발굴 조사의 결과에 따른 명칭은 아니다. 사전 조사인 지표 조사에서 뚜렷한 유구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땅 위의 일정한 장소에 유물이 흩어져 있는 곳을 말한다. 이러한 현상은 지하의 어떤 유구가 파괴되면서 유구 안에 있던 유물이 밖으로 노출되면서 나타나는 현상...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등2리와 원리에 위치한 산. 머무산은 무을면 무등2리(머무골)와 원리의 뒷산으로, 낮은 해발고도로 아무 쓸모없이 머물러 있는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 아래 머무골은 1580년 선산태동에서 황경헌(黃景憲)이라는 사람이 이주하여 개척하였으며, 당시 주위 환경이 좋고 산세가 수려하여 무동이라 하였으며, 그 후 무등리라 개칭하였다. 원리는 약 500년 전...
-
조선 전기 권우가 구미 지역 출신인 길재의 유상(遺像)에 붙인 찬(贊). 찬(贊)이란 원래는 신명(神明)에게 바치는 글이었지만 점차 변하여 인물·서화(書畵)·문장 등에 대한 잡찬(雜贊)과 남의 죽음을 애도하고 고인의 덕을 찬양하는 글인 애찬(哀贊), 그리고 『사기(史記)』·『한서(漢書)』 등을 비롯한 역대 사서의 책 끝에 그 책에 수록된 인물에 대한 포폄(褒貶)을 적은 사찬(史贊)...
-
조선 후기 인동도호부사를 역임한 무신. 유성채는 무과에 급제하여 당하관을 역임하였다. 1685년(숙종 11) 12월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부임하여 1686년(숙종 12) 9월 부친상을 당하여 교체되어 떠났다. 재임 중 인동부의 관아인 사무당(使無堂, 외동헌)을 건립하였다....
-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홍수 때에 하천의 수량을 조절하는 천연 또는 인공의 저수지. 과거에는 무제방(無堤防) 또는 임시제방 등에 의하여 홍수를 하천에서 유수지로 끌어들였으나, 현재는 토지이용의 입장에서 하천을 완전히 제방으로 둘러싸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제방 일부를 낮춰서 월류제(越流堤)를 설치하여 이용하는 곳이 많다. 저수한 물은 하천의 물이 감수함에 따라서 배수문(排水門) 또는...
-
고려 후기 문신이자 인동유씨 시조. 인동유씨(仁同兪氏)는 인동백(仁同伯)에 봉해진 유승단의 후손들이 인동에 세거함에 따라 후대에 유승단을 시조로 하고 세거지 인동을 관향으로 삼으면서 생겨났다. 본관은 인동(仁同). 초명은 유원순(兪元淳). 인동유씨는 유승단 이후 세계가 끊어졌으며, 고려조에서 예부시랑을 지낸 1세손 유승석을 중시조로 대를 잇고 있다. 유승석의 동생인 유성렬의 증손...
-
조선 후기 인동도호부사를 역임한 무신. 유승서는 현재의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에 살았으며 후에 현재의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으로 이사했다. 무관으로서 1604년(선조 37) 12월 부산첨사가 되고 이듬해 초대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제수되어 곽재우(郭再祐)가 축조했다는 천생산성(天生山城, 현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 소재)의 조방장을 겸임하였으며 1607년(선조 40)...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성화(聖和), 호는 유암(悠庵). 심구현(沈龜賢)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심찬(沈鑽), 아버지는 심석지(沈䄷之)이다. 심능섭은 1790년(정조 14) 춘당대시(春塘臺試)에 을과 1위로 급제하였고 벼슬은 동부승지에 이르렀다....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유언(裕彦), 호는 봉곡(蓬谷). 아버지는 박정실(朴鼎實)이며, 어머니는 벽진이씨(碧珍李氏)로 북봉(北峰) 이민선(李敏善)의 딸이다. 박수홍(朴守弘, 1588~1644)은 매돈(梅墩) 김번(金蕃)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618년(광해군 10) 증광문과에 을과 2등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承文院權知副正字)에 임명되었다...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오가리 구평마을에 있는 전윤무(田胤武)의 재실. 전가식의 후손이며 전좌명의 증손인 가정 전윤무(1511~1560)를 추모하기 위한 재실이다. 1878년(고종 15)에 건립하였으며, 1960년 중건하였다.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 1층 기와집이다. 평면은 중앙에 어칸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1칸의 온돌방을 둔 중당 협실형(中堂 挾室形)...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항일운동가. 김영득은 호는 유영(幽影)이며, 아버지는 김현묵(金賢默)이다. 김영득은 구미보통학교를 거쳐 대구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대구고등보통학교에서 이갑기 등 학우들과 독서회를 조직하여 항일운동에 앞장섰다가 퇴학을 당하였다. 다시 보성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여 1925년 3월 졸업하였으며, 이후 문예 활동을 통한 민중 계몽 운동에 전념하였다. 김기...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시대 인물 유운용의 선정비. 유운용의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응견(應見), 호는 겸암(謙菴)이다. 임진왜란 때 영의정으로 국난 극복에 공을 세운 유성룡(柳成龍)의 형으로 퇴계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모든 경사(經史)를 통독함으로써 사문의 촉망을 받았다. 1572년(선조 5) 친명(親命)으로 음사(蔭仕)를...
-
고려 후기 문신이자 인동유씨 시조. 인동유씨(仁同兪氏)는 인동백(仁同伯)에 봉해진 유승단의 후손들이 인동에 세거함에 따라 후대에 유승단을 시조로 하고 세거지 인동을 관향으로 삼으면서 생겨났다. 본관은 인동(仁同). 초명은 유원순(兪元淳). 인동유씨는 유승단 이후 세계가 끊어졌으며, 고려조에서 예부시랑을 지낸 1세손 유승석을 중시조로 대를 잇고 있다. 유승석의 동생인 유성렬의 증손...
-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다카키 쇼오지[高木昌治]의 칭송비. 다카키 쇼우지는 일본인으로서 인동우체국 근처에서 살았다. 인동 지방에서 최초로 자전거를 탄 사람으로 잘 알려진 그는 곡물상을 운영하였는데, 특히 함경도까지 왕래하면서 조를 많이 취급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26년부터 흉년이 계속 들어 기근이 심했을 때, 곳간을 열어 빈민들을 구제해 주었다. 인...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유지(攸之).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부제학 장응일(張應一), 아버지는 진주목사 장건(張鍵)이다. 장만춘은 무과에 급제하여 영덕현령을 역임하였다....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 자는 유진(幼進), 호는 농은(農隱). 교위 김취연(金就硏)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김구(金銶)이다. 김성진은 1801년(순조 1)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이 되었고, 천거에 의해 경상도도사가 되었다....
-
1818년(순조 18) 이만운이 구미 지역의 천생산성 일대를 유람하고 쓴 기행문. 이만운(李萬運, 1736~?)은 조선 정조(正祖, 1752~1800) 때의 학자로 자는 원춘(元春), 호는 묵헌(默軒)이다. 박학하여 천문·역산(曆算)·지리·명물(名物) 등에 능하였다. 「유천생산기」는 이만운이 박여(朴汝)·엄익치(嚴益稚)와 더불어 정월 보름날 신동·황상동·금전동·장천면에 걸쳐 있는...
-
경상북도 구미시 구평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장돈상의 송덕비. 지역민을 위해 여러모로 노력을 기울인 장돈상의 공을 기려 1922년에 건립하였다. 구미시 구평동의 학서지 제방에 장극상 불망비와 함께 세워져 있다. 비석은 높이 126㎝, 너비 41㎝이고, 팔작지붕의 덮개돌은 높이 29㎝, 너비 57㎝, 두께 42㎝이며, 비좌는 높이 5㎝, 너비 90㎝, 두께 65㎝이다. 비문은 건립 시기...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초명은 장용규(張龍逵), 자는 진백(震伯), 호는 유헌(遊軒)·운전(雲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산음현감 장옥(張鈺)의 7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장호(張濠), 아버지는 사호옹(四好翁) 장학추(張學樞), 어머니는 김구운(金龜雲)의 딸로 선산김씨(善山金氏), 처는 허참(許傪)의 딸로 김해허씨(金海許氏)이다. 장학덕(張學㯖)에게...
-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의 금오산에 서식하는 뱀과에 속하는 파충류. 현재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뱀류는 뱀아목의 뱀과·바다뱀과·살모사과 등 3과로 분류되어 있다. 뱀과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하며, 우리나라에는 유혈목이속·능구렁이속·실뱀속·뱀속 등 4속 7종으로 분류되어 있다. 유혈목이속에는 대륙유혈목이와 유혈목이 2종이 서식한다. 몸길이는 평균 70~80㎝이나 남쪽으로 갈수록 길어진...
-
조선 후기 인동도호부사를 역임한 무신. 유호원은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826년(순조 26) 1월 24일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부임하여 1830(순조 30) 2월 24일 암행어사의 계청(啓請)에 의하여 파직되었다. 인동읍민에 의해 유호원을 기리는 흥학선정비(興學善政碑)가 세워졌으며 현재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 인동향교 내에 있다....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유호원의 선정비. 유호원은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 1826년(순조 26)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30년(순조 30) 암행어사의 서계(書啓)에 의하여 파직되었다. 그는 4년 동안 인동부사로 있었으며, 재직 중에 백성들이 선정을 베푼 것을 기려 비를 세웠다. 윗부분이 둥글게 생긴 원수(圓首) 형태의 비신만이 남아 있...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一善). 자는 유후(裕後). 증조부는 농암(籠巖) 김주(金澍)이며, 아버지는 김지(金地)이다. 김지경(金之慶, 1419~1485)은 1439년(세종 21)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이후 감찰좌랑(監察佐郞)·직제학·대사성·대사간·평안도관찰사·전라도관찰사·충청도관찰사·강원도관찰사·개성유수 등을 역임하였다. 당시 김종직(金宗直, 1431~1492)...
-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에 있는 조선시대 유학자 남파(南坡) 장학(張澩)이 살던 집의 당호(堂號). 당호인 육약(六若)이란 작게 지은 누추한 집에 살면서 고루(高樓)같이 여기고, 해진 옷을 입고도 수놓은 비단같이 여기고, 식물의 뿌리를 씹으면서 고량진미(膏粱珍味)같이 여기고, 무덤을 갈면서도 논밭같이 여기고, 자제를 부리면서도 사령(使令)같이 여기고, 훈화를 공부하면서 정사(政事)같...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육여(六如), 호는 간암(艮庵). 이동명(李東溟)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정화(李鼎華), 아버지는 이광의(李廣義), 장인은 황유목(黃有牧)과 조창유(趙昌裕)이다. 형이 대간 이수해(李壽海)이다. 이덕해는 1726년(영조 2) 진사에 합격하여 장녕참봉을 역임했으며 1745년(영조 21) 정시 문과에 병과 1위로 급제하여 예문...
-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에 있는 조선시대 육의당(六宜堂) 장대림(張大臨)이 건립한 전통 가옥. 정침(正寢) 6칸, 사랑채 4칸 규모이다. 장대림은 육의당에서 경사(經史)를 쌓아두고 금서(琴書)를 모아 날마다 스스로 즐기면서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가르쳤다. 당호인 ‘육의(六宜)’는 돌을 다듬어 단을 쌓고 꽃을 심어 사시와 조석으로 알맞게 즐긴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여러 번의 중수를...
-
조선 말 장윤상이 구미 지역의 육의당(六宜堂)을 소재로 지은 한시. 육의당은 인동장씨 장대림(張大臨)의 당호이다. 조선 숙종(肅宗) 때 건립하였으나 현재는 유지만 남아 있으며, 유지는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 601번지에 있다. 「육의당 십육영」은 야촌(野村) 장윤상(張允相, 1868~1946)이 육의당 주위의 빼어난 경치를 십육 수로 읊은 한시이다. 「육의당 십육영」은 전체 십육...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육홍균의 본관은 옥천(沃川)으로 아버지 육병형(陸炳亨)과 어머니 예천임씨(醴泉林氏) 사이의 독자이다. 선산 옥성 주아리에서 태어났다. 슬하에 육철(育轍), 육종서(育鍾瑞), 육종국(育鍾局) 3형제를 두었다. 육홍균은 수원고등농림학교(현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대학(日本大學) 문과에 재학 중이던...
-
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해평(海平).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 윤석(尹碩)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지문하성사 윤지표(尹之彪), 아버지는 대호군 윤보(尹寶)이다. 윤가관은 공민왕의 총애를 받아 가까이서 보필했는데 1373년(공민왕 22) 공민왕이 한안(韓安)·홍륜(洪倫) 등으로 하여금 모든 비빈들을 욕보이게 하면서 익비(益妃)를 범하도록 하였으나 끝내 거절하였다. 이 때...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 자는 태승(泰升), 호는 하곡(霞谷). 영의정 윤두수(尹斗壽)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장익공(章翼公) 윤휘(尹暉), 아버지는 윤면지(尹勉之), 어머니는 참판 경섬(慶暹)의 딸이다. 윤계는 1650년(효종 1) 사마시에 합격해 진사가 되었다. 그 뒤 3인을 선발하기로 한 알성문과에 급제했으나, 4등을 한 김석주(金錫胄)를 참방(參榜)시키려...
-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해평윤씨의 시조. 본관은 해평(海平). 아들이 충렬왕대 부지밀직사사를 역임한 윤만비(尹萬庇)이며, 손자가 충숙왕대 판전리사사(判典理司事)를 역임한 윤석(尹碩)이다. 손자 윤석이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에 봉해짐에 따라 그의 후손들이 소급하여 윤군정을 해평윤씨의 시조로 삼았다. 윤군정은 1257년(고종 44) 원주에서 안열(安悅) 등이 고성(古城)에서 반란을 일으...
-
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자고(子固), 호는 월정(月汀). 장원(掌苑) 윤계정(尹繼丁)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사용 윤희림(尹希林), 아버지는 군자감정 윤변(尹忭), 어머니는 부사직 현윤명(玄允明)의 딸이다. 형이 해원부원군(海原府院君) 윤두수(尹斗壽)이다. 윤근수는 김덕수(金德秀),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558년(명종 13) 문과에 급...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경유(景孺), 호는 근암(近菴). 영의정 윤두수(尹斗壽)의 5대손이며, 윤면지(尹勉之)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윤계(尹堦), 아버지는 황해도관찰사 윤세수(尹世綏), 어머니는 이하(李夏)의 딸이다. 윤급은 1725년(영조 1) 문과에 급제한 후 이조좌랑·집의·부응교를 역임하였다. 1737년 문과중시에 다시 등제한 후 이조참의를...
-
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여승(汝昇), 호는 죽창(竹窓). 윤돈은 1585년(선조 18) 문과에 급제하여 수찬, 교리, 헌납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를 호종하였다. 1594년 부제학에 오르고, 명(明)나라 도독(都督) 유정(劉綎)의 접반사관(接伴事官)으로 군량 보급에 노력했다. 이어 대사간, 이조참의, 강원도관찰사, 병조참판, 대사헌...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백상(伯常), 호는 방간(方間). 아버지는 윤득민(尹得敏)이다. 윤동은 1754년(영조 30) 문과에 급제하여 다음해 설서(說書)를 거쳐 정언, 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제주목사를 거쳐 좌부승지, 대사헌 등을 역임했다. 그 후 정조 때에 경기도관찰사, 개성부유수,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면서 탕평책(蕩平策)에 순응하지 않고 당론을...
-
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자앙(子仰), 호는 오음(梧陰). 장원(掌苑) 윤계정(尹繼丁)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사용 윤희림(尹希林), 아버지는 군자감정 윤변(尹忭), 어머니는 부사직 현윤명(玄允明)의 딸이다. 동생이 윤근수(尹根壽)이다. 윤두수는 이중호(李仲虎),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58년(명종 13) 문과에 급제한 후 승문원정자·...
-
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아버지는 고려 후기에 판공부사를 역임한 충간공(忠簡公) 윤군정(尹君正)으로 해평윤씨(海平尹氏)의 시조이다. 아들이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 윤석(尹碩)이다. 사위는 판밀직사사 이천(李梴)이다. 윤만비는 충렬왕을 섬겨 1269년(원종 10) 일등공신이 되었다. 1277년(충렬왕 3) 낭장으로서 국자좨주 김서(金㥠)를 따라 하정사(賀正...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언국(彦國), 호는 석유(石有). 아버지는 윤면동(尹冕東), 생부는 윤기동(尹紀東)이다. 윤명렬은 1795년(정조 19) 문과에 급제하였다. 감찰, 지평, 장령, 집의 등을 거쳐 우승지에 올랐다. 1805년(순조 5) 이래 동래부사, 광주목사, 형조참의, 대사간, 좌승지를 역임하였다. 1821년 호조참판으로 동지부사(冬至副使...
-
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가회(可晦), 호는 치천(稚川). 사용 윤희림(尹希琳)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국자감정 윤변(尹忭), 아버지는 영의정 윤두수(尹斗壽), 어머니는 관찰사 황기(黃琦)의 손녀이자 참봉 황대용(黃大用)의 딸이다. 동생이 정민공(靖敏公) 윤흔(尹昕), 장익공(章翼公) 윤휘(尹暉)이다. 윤방은 이이(李珥)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58...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의 수리계장 윤배억의 선정비. 구장은 일제강점기 동이나 리의 사무를 관장하던 직이며, 수리계장은 수리계의 대표로서 주로 저수지 관리 역할을 했던 사람으로서, 윤배억은 일제강점기에 원리의 구장 및 수리계장으로서 많은 공을 세웠는데, 이를 기려서 1945년에 비석을 세웠다. 구미시 선산읍 원리 장아질마을 초입의 도로변에 윤병호 불망비와...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인물 윤병호의 선정비. 윤병호는 지역에 거주하면서 주민들을 위한 학문 장려와 수리 사업을 주도하여 이익되는 혜택을 주는 등 많은 공을 세웠는데, 이를 기려 지역 주민들이 발의하여 1932년에 비석을 세웠다.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 장아질마을 초입의 도로변에 윤배억 송덕비와 함께 서 있다. 비석은 높이 87㎝, 너비 30.5㎝, 두...
-
조선 초 문신. 전주최씨의 입향조. 본관은 전주. 자는 윤보(潤甫). 증조부는 최택(崔澤), 할아버지는 최사비(崔斯泌), 아버지는 최자경(崔自涇)이고, 해평김씨 김영발(金英發)의 손자사위이다. 1447년(세종 29) 진사시에 합격한 후 1453년(단종 1) 문과에 급제하였다. 홍문관응교(弘文館應敎)를 역임하고 현풍·비안에서 선정을 폈으며, 성종 때 좌리원종공신(佐理原從功臣)이 되었...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산부사를 역임한 윤봉소의 선정비. 윤봉소(尹鳳韶)는 1726년(영조 2) 12월에 선산부사로 부임하여 1727년(영조 3) 8월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 인물로서, 선산부사로서 베푼 선정을 기려 백성들이 비석을 세웠다.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영남유교문화진흥원 안으로 150m 정도 올라가면 십이지신상 앞에 세워져 있다. 윗부...
-
고려 후기 해평부원군에 봉해진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할아버지는 고려 후기에 판공부사를 역임한 해평윤씨(海平尹氏)의 시조 충간공(忠簡公) 윤군정(尹君正), 아버지는 충렬왕대 부지밀직사사를 역임한 윤만비(尹萬庇)이다. 윤석은 고려 충선왕 때 별장을 거쳐 충숙왕이 즉위하자 호군(護軍)에서 대언(代言)에 올랐다. 1320년(충숙왕 7) 총부전서(摠部典書)로서 천추사(千...
-
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字)는 자일(子一), 호는 남악(南岳). 군기시첨정 윤훤(尹萱)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윤은필(尹殷弼), 아버지는 사헌부감찰 윤홍언(尹弘彦), 어머니는 장림수(長臨守) 이순민(李舜民)의 딸로서 전주이씨이다. 동생이 문숙공(文肅公) 윤승훈(尹承勳)이다. 윤승길은 1564년(명종 19)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장령 등...
-
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자술(子述), 호는 청봉(晴峰). 군기시첨정 윤훤(尹萱)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윤은필(尹殷弼), 아버지는 사헌부감찰 윤홍언(尹弘彦), 어머니는 장림수(長臨壽) 이순민(李舜民)의 딸로서 전주이씨이다. 형이 숙간공(肅簡公) 윤승길(尹承吉)이다. 윤승훈은 1573년(선조 6) 문과에 급제되어 정언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
고려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윤신준은 본관은 해평(海平)이며 해평윤씨의 원조(遠祖)가 되는 인물로, 고려 인종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오르고 해징부원군(海澄府院君)에 봉해졌다....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중우(仲又), 호는 연초재(燕超齋). 사용 윤희림(尹希琳)의 현손이자 국자감정 윤변(尹忭)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영의정 윤두수(尹斗壽), 아버지는 문익공(文翼公) 윤방(尹昉)이다. 윤신지는 선조와 인빈김씨(仁嬪金氏)의 소생인 정혜옹주(貞惠翁主)와 결혼하여 해숭위(海嵩尉)에 봉하여졌다. 선조가 때때로 시를 지어 바치게 할 정...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아버지는 현감 윤달성(尹達城)이다. 형이 해평위(海平尉) 윤연명(尹延命)이다. 윤연년은 조선 태종 때 창원대도호부사를 역임하였다....
-
개항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경규(景圭), 호는 자유재(自有齋). 아버지는 문헌공(文獻公) 윤치희(尹致羲)이다. 윤용선은 1885년(고종 22) 증광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96년 아관파천 직후 성립된 친러 정부에 보수 세력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탁지부대신(度支部大臣)으로 있다가, 4월 22일 내각 총리대신으로 임명되었다. 같은 해 9월 관제를 개...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백수(伯修), 호는 만하(晩霞). 윤의지(尹誼之)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윤연(尹堧), 아버지는 지평 윤세희(尹世喜), 어머니는 이동규(李同揆)의 딸이다. 윤유는 1718년(숙종 44) 문과에 급제하고 여러 언관직을 거쳐 경종 때 수찬, 부교리, 이조좌랑, 동래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영조 때 대사간에 승진한 후 부제학, 승지...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상경(商卿). 수원부사 윤처성(尹處誠)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승문원참교 윤면(尹沔), 아버지는 첨정 윤훤(尹萱), 어머니는 현감 김모(金模)의 딸이다. 동생이 헌간공(憲簡公) 윤은필(尹殷弼)이다. 윤은보는 1494(성종 25)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관을 거쳐 교검(校檢)으로 춘추관기사관을 겸직하면서 『성종실록(成宗實錄)』...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상로(商老). 수원부사 윤처성(尹處誠)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승문원참교 윤면(尹沔), 아버지는 첨정 윤훤(尹萱), 어머니는 현감 김모(金模)의 딸이다. 형이 정성공(靖成公) 윤은보(尹殷輔)이다. 윤은필은 1504년(연산군 10)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부교리, 장령, 부응교 등을 거쳐 1530년(중종 25) 도승지, 부제...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중소(仲素), 호는 추봉(秋峰). 국자감정 윤변(尹忭)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영의정 윤두수(尹斗壽), 아버지는 문익공(文翼公) 윤방(尹昉), 어머니는 판관 한의(韓漪)의 딸이다. 윤이지는 1600년(선조 33) 문음(門蔭)으로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가 된 뒤 양구현감·은산현감·적성현감·통진현감·용안현감을 역임하였다....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임경(任卿), 호는 성와(省窩). 훈재(塤齋) 윤홍선(尹弘宣)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돈재(遯齋) 윤상로(尹商老)이다. 윤중방은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 등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당시 선산부사(善山府使)였던 박필건(朴弼鍵), 중군장(中軍將) 김여건(金汝鍵)과 함께 출정하여 그의 지략으로 금릉(金陵, 현 경상북도...
-
조선 후기 인동도호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숙린(叔麟), 호는 동산(東山). 윤엄(尹儼)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윤민헌(尹民獻), 아버지는 판서 윤강(尹絳), 어머니는 정광성(鄭廣成)의 딸이다. 형이 좌의정 윤지선(尹趾善)이다. 윤지완은 1662년(현종 3) 문과에 급제하였다. 1675년(숙종 1) 10월 수찬에서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부임하여 많은...
-
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고려 후기에 판공부사를 역임한 해평윤씨(海平尹氏)의 시조 충간공(忠簡公) 윤군정(尹君正)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충렬왕대 부지밀직사사를 역임한 윤만비(尹萬庇), 아버지는 영의공(英毅公) 윤석(尹碩)이다. 형이 문영공(文英公) 윤지현(尹之賢)이며, 아들이 대호군 윤보(尹寶)이다. 영의정 윤두수(尹斗壽)와 좌찬성 윤근수(尹根壽)가 8...
-
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고려 후기에 판공부사를 역임한 해평윤씨(海平尹氏)의 시조 충간공(忠簡公) 윤군정(尹君正)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충렬왕대 부지밀직사사를 역임한 윤만비(尹萬庇), 아버지는 영의공(英毅公) 윤석(尹碩)이다. 동생이 해평군(海平君) 윤지표(尹之彪)이다. 고려 후기에 정당문학집현전대제학지춘추관사상호군사(政堂文學集賢殿大提學知春秋館事上護軍事...
-
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고려 후기에 판공부사를 역임한 해평윤씨(海平尹氏)의 시조 충간공(忠簡公) 윤군정(尹君正)의 현손이며 충렬왕대 부지밀직사사를 역임한 윤만비(尹萬庇)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영의공(英毅公) 윤석(尹碩), 아버지는 해평군(海平君) 윤지표(尹之彪)이다. 윤진은 1382년(우왕 8) 판후덕부사(判厚德府事) 재임 시 동지공거(同知貢擧)로서...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초명은 윤치수(尹致秀), 자는 성여(成汝), 호는 금범(錦帆). 윤득녕(尹得寧)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윤백동(尹百東), 아버지는 참판 윤명열(尹命烈), 어머니는 정태화(鄭泰華)의 딸이다. 후에 윤경열(尹敬烈)에게 입양되었다. 윤치희는 1827년(순조 27) 문과에 급제하고 사관(史官)을 거쳐 홍문관(弘文館)에 뽑혔다. 1842년...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사능(士能), 호는 석취(石醉). 아버지는 윤경렬(尹慶烈)이다. 윤치정은 1829년(순조 29) 문과에 급제하고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거쳐 1843년(헌종 9) 홍문관에 들어갔다. 1847년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청(淸)에 다녀왔다. 1850년(철종 1) 이조참판이 되었고, 다음해 대사성에 이어 형조판서, 한성부판윤, 대사...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초명은 윤치수(尹致秀), 자는 성여(成汝), 호는 금범(錦帆). 윤득녕(尹得寧)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윤백동(尹百東), 아버지는 참판 윤명열(尹命烈), 어머니는 정태화(鄭泰華)의 딸이다. 후에 윤경열(尹敬烈)에게 입양되었다. 윤치희는 1827년(순조 27) 문과에 급제하고 사관(史官)을 거쳐 홍문관(弘文館)에 뽑혔다. 1842년...
-
조선 시대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백임(伯任), 호는 훈재(塤齋). 형조판서 윤상저(尹尙著)의 후손이며 묵헌(黙軒) 윤희빙(尹希聘)의 증손이다. 윤홍선은 8세에 『소학(小學)』의 대의에 통달하고 오직 학문을 탐구하는 데 뜻을 두었으며 한강(寒岡) 정구(鄭逑),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현재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 금오산(金烏山...
-
조선 후기 선산도호부사를 역임한 문신. 윤황동은 1556년(영조 32) 정시문과에 급제하였다. 1776년 1월에 선산도호부사(善山都護府使)로 부임하여 같은 해 5월에 모친상을 당하여 교체되어 떠났다. 1778년(정조 2) 사직으로 있을 때 칠곡의 가산산성(架山山城), 선산의 천생산성(天生山城, 현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 소재), 상주의 화산성(華山城), 성주의 독용산성(禿用...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정춘(靜春), 호는 장주(長州). 증찬성 윤희림(尹希琳)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군자감정 윤변(尹忭), 아버지는 영의정 윤두수(尹斗壽), 어머니는 참봉 황대용(黃大用)의 딸이다. 형이 문익공(文翼公) 윤방(尹昉), 정민공(靖敏公) 윤흔(尹昕)이다. 윤휘는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1594년(선조 27) 문과에 급제하...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시회(時晦), 호는 도재(陶齋). 증찬성 윤희림(尹希琳)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군자감정 윤변(尹忭), 아버지는 영의정 윤두수(尹斗壽), 어머니는 참봉 황대용(黃大用)의 딸이다. 형이 문익공(文翼公) 윤방(尹昉), 동생이 장익공(章翼公) 윤휘(尹暉)이다. 윤흔은 1595년(선조 28) 문과에 급제하여 정자, 전적 등을 두루...
-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의 금오산에 서식하는 뱀과에 속하는 파충류. 현재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뱀류는 뱀아목의 뱀과·바다뱀과·살모사과 등 3과로 분류되어 있다. 뱀과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하며, 우리나라에는 유혈목이속·능구렁이속·실뱀속·뱀속 등 4속 7종으로 분류되어 있다. 유혈목이속에는 대륙유혈목이와 유혈목이 2종이 서식한다. 몸길이는 평균 70~80㎝이나 남쪽으로 갈수록 길어진...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비안(比安). 자는 영가(寧可). 호는 율정(栗亭). 박서생(朴瑞生)은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음보(蔭補)로 성균학정이 되었다. 1401년(태종 1) 증광문과에 병과 3등으로 급제하고, 1407년(태종 7) 문과중시에서 을과 1등으로 급제하였으며, 이조참판과 사헌부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벼슬...
-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정월 초부터 대보름까지 편을 갈라 윷으로 승부를 겨루는 놀이. 윷놀이는 네 개의 윷가락을 던져 그것이 나타내는 형상을 통해 일정한 행로를 통과하도록 말[馬]을 놓아 승부를 겨루는 놀이이다. 이를 사희(柶戱) 또는 척사희(擲柶戱)라고도 한다. 윷놀이는 전통적으로 정초에서 정월 대보름까지 하다가 거의 예외 없이 그만 두었다. 윷놀이는 아무 때나 하는 놀이가 아니...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이옥(而玉), 호는 은곡(隱谷). 김진구(金振久, 1744~1786)는 1774년(영조 50) 식년문과에 갑과 1등으로 급제하였으며, 이후 벼슬이 통훈대부와 병조좌랑에 이르렀다. 병조좌랑으로 재직하던 중 동명이인의 관원이 법을 어겨 방(榜)이 붙자 선비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이후 두문불...
-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예금을 받고 대출을 해주는 금융기관. 은행은 예금의 수입(受入), 유가증권 또는 기타 채무증서의 발행에 의하여 일반 대중으로부터 채무를 부담함으로써 획득한 자금을 규칙적·조직적으로 대출하는 업무를 하는 기업을 말한다. 한국의 금융기관은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일반은행(commercial bank)과 특별법에 의하여 설립된 은행인 특수은행 등 은행금융기...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소리를 소재로 하여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 활동. 음악에 사용되는 소리 소재는 모든 음이 해당된다. 서양 음악에서는 맑은 음을 추구하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민속 음악에서는 소음이 주가 된다. 소리 소재는 그대로 음악이 되는 것은 아니며, 어떠한 형식과 법칙에 의해서 조합해서 사용된다. 음악은 시대나 민족에 따라 다양한데, 그것은 각기 그 시대나 민...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오로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가좌골은 영남의 거유로 유명한 직제학 김성미가 낙향하여 임진왜란 때인 1582년 소실된 오로재를 지어 제자들을 기른 곳이다. 당시 김성미의 문하생이 되기 위해 학생들이 구름같이 모여 들었는데, 이 학생들이 오로재를 가리켜 “즐거움을 더해 주는 영광스러운 자리”라고 말하므로, 이에 오로재가 있는 마을을 한자로 가좌골[佳座谷]이라 이름...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일선. 자는 응종(應鐘)이고, 호는 동은(東隱). 찰방 김취련(金就鍊)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김재돈(金載敦)이다. 김수호는 동지들과 신간회(新幹會)를 만들어 항일운동을 주도하였고, 일본 경찰의 주요 감시 대상 인물로 지목되었다. 광복 후에는 분열된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
경상북도 구미시에 불천위 사당이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응지(應之), 호는 휴휴당(休休堂).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세종조부터 성종조까지 살았던 문인으로 문장과 글씨에 능했으며, 이름난 재상이었다. 1471년(성종 2) 익성 부원군(益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증조할아버지는 홍유용(洪有龍), 할아버지는 증 영 중추부사 홍덕보(洪德輔)이고, 아버지는 한성...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개 무덤. 연향(延香)에 사는 우리(郵吏) 노성원(盧聲遠)은 영리한 개를 기르고 있었다. 하루는 노성원이 술에 취해 돌아오다가 말에서 떨어져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그때 들불이 나서 주인이 타죽을 위험에 처하자 개가 꼬리에 물을 적셔와 불을 꺼 주인을 살리고는 기진하여 죽었다. 그 뒤 깨어난 노성원이 감동하여 장사를 지내주었다. 후세...
-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국가와 향토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어나 싸운 민병. 1592년 4월 13일 일본군이 부산진을 침략하면서 북상하자 구미 선산에서는 노경임(盧景任)을 대장으로 하는 선산향병(善山鄕兵)이 조직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군이 들이닥치면서 곧 무너졌다. 그리고 해평 출신 부안현감 고한운(高澣雲)이 군졸과 흩어진 의사들을 모아 금오산성에서 진을 치고 일...
-
1. 낙산리 의구총 일선교에서 대구로 오다가 일선리를 지나자마자 국도변인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 148번지에는 잘 정비된 의구총(義狗塚)이 있어 사람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이 의구총에는 다음과 같이 주인을 살리고 죽은 의로운 개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연향(延香, 현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에 노성원(盧聲遠)이라는 우리(郵吏, 지금의 우체부)가 살고 있었...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의백(毅伯). 김종무(金宗武, 1548~1592)는 1591년(선조 24) 학덕으로 천거되어 남원의 오수도찰방(獒樹道察訪)을 지냈으며, 이어서 함양의 사근도찰방(沙斤道察訪)에 제수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상주로 가서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의 진에 들어가 상주판관(尙州判官) 권길(權吉)과 함께 의병을 모았다....
-
조선 후기 인동도호부사를 역임한 무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의백(宜伯).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한양군(韓陽君) 이흥준(李興俊), 아버지는 장령 이흡(李洽), 어머니는 예조판서 이우직(李友直)의 딸로서 여흥이씨(驪興李氏)이다. 이의배는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벼슬이 당상관에 이르렀다. 1626년(인조 4) 3월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부임하여 이듬해 1월 노적(奴賊)의 난...
-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국가와 향토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어나 싸운 민병. 1592년 4월 13일 일본군이 부산진을 침략하면서 북상하자 구미 선산에서는 노경임(盧景任)을 대장으로 하는 선산향병(善山鄕兵)이 조직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군이 들이닥치면서 곧 무너졌다. 그리고 해평 출신 부안현감 고한운(高澣雲)이 군졸과 흩어진 의사들을 모아 금오산성에서 진을 치고 일...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강(安康). 자는 사국(士國), 호는 의산(義山). 아버지는 노원엽(盧元燁)이며, 부인은 선산김씨(善山金氏)로 김철묵(金哲黙)의 딸이다. 노명일(盧明一)은 대구공업학교를 졸업한 뒤 인천 조선기계제작소에 취직하였다. 일제의 식민통치가 도를 더해가자 임상빈(任相彬)·박태일(朴泰一)·이도열(李道烈) 등과 함께 조선독립궐기를 내용으로...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옷과 장신구에 관련되는 생활 풍속. 민족마다 고유한 복식이 있다. 우리 민족의 고유 복식을 한복이라고 한다. 한복은 시대에 따라 많은 변화를 거듭하였다. 조선시대 복식의 역사를 보면 길이가 짧아지거나 길어지고, 품이 넓어지거나 좁아지는 등의 세부적인 변화를 거듭하다가 1884년 갑신정변 때 법령으로 복식을 규제하면서 다양하던 포(袍)가 두루마기 하나로 통일되고,...
-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의식의 일부로 불려진 민요. 민요를 기능에 따라 분류할 때 의식의 기능을 가지는 민요를 의식요라 한다. 의식요는 의식의 일부로 주술적 목적이나 기타 의식 진행상의 목적 실현을 위하여 불려진다. 민요에서의 의식요는 세시의식요와 장례의식요가 있다. 세시의식요는 지신밟기나 서낭굿을 할 때 부르는 노래로 ‘지신밟기’·‘고사요’ 등의 이칭이 있다. 장례의식요에는 「상...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의연(毅然), 호는 가정(價亭). 증조부는 성암(性庵) 전좌명(田佐命)이며 아버지는 찰방(察訪) 전계경(田季耕)이다. 예빈시참봉(禮賓寺參奉)을 거쳐 귀후서(歸厚署)의 별좌(別坐) 및 직장(直長), 산음현감(山陰縣監)을 역임하였다....
-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인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소 무덤. 문수점(文殊店)에 사는 김기년(金起年)이 암소와 함께 밭을 갈고 있는데 호랑이가 소에게 달려들었다. 김기년이 호랑이에게 달려들자 호랑이는 소를 버리고 김기년에게 달려들어 김기년이 위험에 빠지게 되자 소가 호랑이를 떠받아 목숨은 구했다. 김기년은 상처가 깊어져 며칠 뒤 숨을 거두면서 소를 팔지 말고 수명이 다해 죽으면 자기...
-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 있는 조선 말 의우총(義牛塚) 비. 의우총은 짐승으로서 의행(義行)을 한 소의 무덤이다. 조선 말기 봉곡 지역에 거주한 여양인(驪陽人) 진숙발의 처 밀양박씨는 빈곤한 처지에 일찍이 과부가 되었다. 이러한 형편에 암소 한 마리를 길러오던 중 송아지를 낳은 지 불과 사흘 만에 불행히 어미 소가 죽고 말았다. 밀양박씨는 어미를 잃은 송아지를 불쌍히 여겨 그대로...
-
고려 전기의 승려. 본관은 개성. 본명은 왕후(王煦), 호는 우세(祐世). 별명은 석구(釋煦, 석은 출가 승려의 일반적 성)이다. 아버지는 고려 제11대 왕 문종이며, 어머니는 인예왕후(仁睿王后) 이씨이다. 문종의 넷째 아들이며 형이 고려 숙종이다. 의천은 11세에 문종이 왕자들을 불러 “누가 출가하여 복전(福田)이 되겠느냐?”고 물었을 때 출가를 자원하였다. 1065년(문종 19...
-
고려 전기의 왕후. 본관은 일선(一善). 본명은 김국(金國). 외할아버지는 시중(侍中)에 추증된 김원숭(金元崇), 외할머니는 화의군대부인(和義郡大夫人)에 봉하여진 왕씨(王氏)이다. 아버지는 고려 성종, 어머니는 성종의 제2비 문화왕후(文和王后) 김씨(金氏)이다. 모후의 성을 따라 김씨로 하였다. 목종이 폐위되고 현종이 즉위하여 왕비로 삼고 현덕왕후(玄德王后)라 하였다. 1010년(...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다른 사람의 머리에 생긴 이를 잡으면서 부르는 노래. 「이 노래」는 『한국민요대전』에 채록되어 있다. 채록일은 1993년 7월 21일이며, 가창자는 구미 산동면 성수2리 수부창에 사는 김인분(여, 1926년생)이다. 「이 노래」는 처음에는 이를 부르고, 다음은 이의 모양을 빗대어 사설을 엮어가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흔히 이를 잡으면서 부르기도 하고, 같이 모여...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치삼(穉三). 이정유(李挺儒)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문보(李文普), 외할아버지는 김록화(金祿和), 아버지는 이극문(李克問)이다. 1829년(순조 29) 정시문과에 병과 6위로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승지에 이르렀다....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다리빼기 놀이를 하며 부르는 동요. 어린이들 대여섯 명이 모여 다리빼기 놀이를 하며 부르는 유희요이다. 「이거리 저거리」는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전래 동요이다. 그 중심은 중부 지방이다. 구미에서도 이 노래가 채록되었다. 「이거리 저거리」는 2음보 율격의 자진모리 장단으로 부른다. “이거리 저거리 각거리”로 시작하며, 지역에 따라 노랫말은 일정하지 않고 후렴이 없...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길보(吉甫). 증참찬 이천(李薦)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감찰 이원수(李元秀)이고, 아버지는 옥산(玉山) 이우(李瑀)이며, 어머니는 진사 황기로(黃耆老)의 딸로 덕산황씨(德山黃氏)이다. 삼촌이 율곡(栗谷) 이이(李珥)이다. 이경절은 1606년(선조 39) 진사가 되고, 1615년(광해군 7) 문과 회시에 통과했다. 광해군의...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경지(敬止). 이군상(李君常)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희경(李希慶), 아버지는 이심지(李審之), 어머니는 여극회(呂克誨)의 딸이다. 형이 생육신 이경은(李耕隱)이다. 형곡 사창리에서 태어났다. 1447년(세종 2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직학·사헌부감찰·예조정랑·승정원좌부승지·경기관찰사 등을 거쳐 이조참판에 이르러...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농소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조선 순조 때부터 마을에 낙동강 도선장(渡船場)이 있었으며 도방모리라는 곳이 있었다. 낙동강을 이용한 상주~선산 간의 수상교통 중심지로서 상인들이 소금 및 해산물 등을 배로 운반하여 이 곳에 적재해 놓았다가 팔고 대신 각지에서 소와 말을 사가던 교역장이었다. 사람이 붐비게 되자 주점이 많아지고 시장이 형성되어 장터라는 별명이 붙었고...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결보(絜甫). 아버지는 통덕랑 이진화(李晋華)이다. 이광구는 1705년(숙종 31) 증광시에서 생원 3등 44위로 합격하였으며 현감을 역임하였다....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신지(新之), 호는 신암(愼庵). 할아버지는 이동명(李東溟), 아버지는 이정화(李鼎華)이다. 아들로 대간 이수해(李壽海)와 우승지 이덕해(李德海)가 있다. 이광구는 숙종조에 도정을 역임하였다. 사후에 예조참판에 추증되었다....
-
개항기 인동도호부사와 선산군수를 역임한 무신. 이교준은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871년(고종 8) 3월 26일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부임하여 1875년 7월 24일 도정(都政)에 의하여 대흥중군(大興中軍)으로 옮겼다. 1895년 3월 충청도병마절도사에 제수되었으며 같은 해 6월 18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선산군이 신설되자 7월 21일 초대 선산군수(善山郡守)로 부임하였고, 18...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말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이교준의 선정비. 이교준은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 1871년(고종 8)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75년(고종 12)에 이임하였다. 그는 4년 동안 인동부사로 있으면서 도목정(都目政)에 따라 이배되었으며, 백성들이 인동부사로서 베푼 선정을 기려 2기의 영세불망비를 세웠다. 비석의 윗부분이 평평하고 모서리에 각이 있는...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좌찬성 이계린(李季璘)이다. 이규는 벼슬이 부안현감에 이르렀다....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덕수(德水). 다른 이름은 이균희(李均憙)·이해봉(李海奉), 자는 덕경(德卿), 호는 도촌(桃村). 아버지는 이종매(李種邁)이다. 도개면 도개리에서 출생하였다. 이원길은 성품이 강직하였으며 가풍에 따라 유가의 규범을 익히며 청운의 뜻을 품고 학문에 전념하여 입신양명을 도모하였으나,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나라 잃은 한을 품고 전...
-
조선 전기 구미 지역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방형(邦衡). 이집(李集)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지직(李之直), 아버지는 우의정 이인손(李仁孫), 어머니는 노신(盧信)의 딸이다. 이극균의 형제 이극배(李克培), 이극감(李克堪), 이극증(李克增), 이극돈(李克墩)은 모두 세종 및 세조 때 문과에 급제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극배와 이극균은 정승이 되었고 4형제가 공...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자범(子範). 북봉공(北峰公) 이민선(李敏善)의 후손이며 이상질(李尙質)의 8세손이며 이정룡(李挺龍)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길보(李吉普), 외할아버지는 박래경(朴來慶), 아버지는 이극례(李克禮)이다. 이기준은 1805년(순조 5) 별시 문과에서 병과 1위로 급제하였다. 훗날 정언, 헌납 등을 역임하였다....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내성은 경주이씨(慶州李氏)로서 이만우(李晩雨)로도 불렸다. 1892년 4월 l일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 543번지에서 이성률(李成律)의 5남으로 태어났다. 이만우는 17세 때 계성학교를 중퇴하고 동향 동지인 장진홍(張鎭弘)과 함께 조선보병대(朝鮮步兵隊)에 입대하여 훈련을 받았고 제대 후 광복회(光復會)에 가입하여 독립 투쟁을 시...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육여(六如), 호는 간암(艮庵). 이동명(李東溟)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정화(李鼎華), 아버지는 이광의(李廣義), 장인은 황유목(黃有牧)과 조창유(趙昌裕)이다. 형이 대간 이수해(李壽海)이다. 이덕해는 1726년(영조 2) 진사에 합격하여 장녕참봉을 역임했으며 1745년(영조 21) 정시 문과에 병과 1위로 급제하여 예문...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백종(白宗), 호는 학정(鶴汀). 옥산(玉山) 이우(李瑀)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경절(李景節), 아버지는 군수 이즙(李楫), 어머니는 심광세(沈光世)의 딸이다. 이동명은 1652년(효종 3) 진사에 합격하고 10월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예조좌랑, 병조좌랑, 사간원정언, 안주목사, 강릉부사, 상의원정, 사간, 안동부사, 동부...
-
고려 후기 지선주사를 역임한 문신. 이득진은 1383년(우왕 9) 지선주사(知善州事)로 재임 중 관심평(觀心坪)에서 왜구의 침입을 격퇴하고 읍성을 구축하여 방비하여 왜구의 침공이 없게 하였다. 선주읍민이 이득진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화상(畵像)을 만들고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
조선 전기 인동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대재(大才). 이유강(李惟康)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인손(李麟孫), 아버지는 이운(李運), 장인은 성윤(成允)과 최호(崔湖)이다. 아들로 이언영(李彦英)이 있다. 이등림은 1564년(명종 19) 생원시에 합격하고 1573년(선조 6) 식년 문과에서 병과 16위로 급제하였다. 1584년에 인동현감(仁同縣監)으로 부임하...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시대에 지방의 응방(鷹房)에 딸린 촌락인 이리간(伊里干)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여겨진다. 또한 조선 중기의 기록에 이례촌 또는 이례원이라는 지명이 나타나는데, 이는 예곡리 옆 마을이라는 뜻이다. 실제로는 이례보다는 이리라는 지명이 더 자주 사용된다. 이리는 마을 앞으로 일리천(一利川)이 흘러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자연마을로 건내, 소전걸,...
-
개항기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1879년(고종 18) 경상좌도암행어사로서 인동부(仁同府)의 민폐를 시정하고 조세를 감면하여 부민의 고통을 덜어주었다. 이후 1884년 성균관대사성, 1885년 이조참의를 역임하였다. 1879년(고종 16) 5월 인동읍민에 의해 수의이공만식영세불망비(繡衣李公萬植永世不忘碑)가 세워졌으며 현재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 409-3번지[수출대로...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말의 암행어사 이만식 송덕비. 암행어사는 조선시대 왕명을 받고 비밀리에 지방을 순행하면서 악정(惡政)을 규명하고 민정을 살핀 임시 관직으로서, 이만식은 1879년(고종 16)에 경상좌도암행어사가 되어 인동부에 와서 민폐를 시정하고, 조세를 감면하는 등 백성들의 애로 사항을 덜어주는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이 이를 기려 비석을 세웠다. 윗부분이 평...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내성은 경주이씨(慶州李氏)로서 이만우(李晩雨)로도 불렸다. 1892년 4월 l일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 543번지에서 이성률(李成律)의 5남으로 태어났다. 이만우는 17세 때 계성학교를 중퇴하고 동향 동지인 장진홍(張鎭弘)과 함께 조선보병대(朝鮮步兵隊)에 입대하여 훈련을 받았고 제대 후 광복회(光復會)에 가입하여 독립 투쟁을 시...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이맹전은 조려(趙旅), 원호(元昊), 김시습(金時習), 성담수(成聃壽), 남효온(南孝溫)과 함께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백순(伯純), 호는 경은(耕隱). 지밀직사 이견간(李堅幹)의 후손이며 이군상(李君常)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희경(李希慶), 아버지는 이심지(李審之), 어머니는 공부전서 여극승(呂克勝)이다. 선대...
-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이명준(李命峻)의 정려편액. 이명준은 벽진인(碧珍人)으로, 자는 성중(性中), 호는 성괴재(省愧齋)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효행이 탁이하여 부모를 지성으로 봉양했다. 부친이 별세하자 묘소를 하루도 빠짐없이 3년 시묘하여 무릎 닿는 곳이 구덩이가 되고, 절한 곳에 풀이 말라 죽었다고 한다. 부친 별세 후 34년간 노모를 위해 약탕관...
-
경상북도 구미시에 속하는 법정동. 옛날에 낙동강으로 소금 배가 드나들 때 수풀에 가리어 잘 보이지 않아 숲 속에 숨어 있는 곳 같다 하여 임은(林隱)이라 하였다. 사투리로 이무이라고도 한다. 또한 웃마와 아랫마로 구분하여 부르기도 하였다. 주요 지명으로 지형이 묘한 명당이며 허씨 가문의 사랑방 터가 있어 붙여진 오양곡(五養谷), 마을 위에 있는 골짜기라서 붙여진 웃곡[上谷] 등이...
-
택호가 이문댁이다. 구미시 상모동에 있는 이문동이라는 마을에서 시집와서 그렇게 부른다. 택호는 마을 어른들이 지어주었다. 동네에 시집오면 친정 동네 이름에 따라 택호를 지어준다. 새댁일 때는 내 택호를 부르지 않고 시어머니 택호를 불렀다. 사람들이 날 ‘사남댁이 새댁’이라고 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 내 택호를 불렀다. 엄마 얼굴도 모르고, 언제 돌아가셨는지도 모른 채...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읍성 서문 밖에 있는 마을로 읍으로 들어오는 입구이므로 이문(里門)이라 하였다. 마을을 개척할 당시 새와 연꽃이 많다고 하여 연봉(連鳳), 고려 숭선군(崇善郡) 때 뒷산의 모양이 날개를 편 큰새[大鳥]의 형상 같다 하여 황새골[大鳥谷]이라고도 불렀다. 약 1,500년 전에 김해김씨가 처음 정착하여 이루어진 마을로, 비봉산 오른쪽 날개 끝자락...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이문리에 있는 수령 270년의 회화나무. 회화나무는 콩과의 낙엽 관목으로 높이 25m에 이른다. 잎은 어긋나고 1회 깃꼴겹잎이다. 작은 잎은 7~17개씩 달리고 달걀 모양 또는 달걀 모양 타원형이며 뒷면에 잎자루와 함께 누운 털이 있다. 꽃은 8월에 원추꽃차례를 이루며 연한 황색으로 피고, 열매는 협과(莢果: 콩처럼 꼬투리로 맺히는 열매)로 10월에 익는다....
-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한산(韓山).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8세손이다. 이민무는 평소 무예가 뛰어났으며 병자호란 때인 1637년(인조 15) 어가를 호종하여 강화도에 무사히 모신 공으로 호종공신(扈從功臣)에 책훈되었다. 또 그 충절을 높이 평가하여 곽산군수에 제수하였다....
-
조선 후기 인동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경임(景任), 호는 남계(南溪). 오봉(五峯) 이호민(李好閔)이 당숙이며 형은 성리학자 이진(李軫)이다. 이보는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595년 친구인 영남좌도의병대장 김해(金垓)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의병 부대의 모의사로서 군위 지역의 정제장(整齊...
-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조선 중기 인동현감 이보의 송덕비. 이보(李輔)의 자는 경임(景任), 호는 남계(南溪)이며,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군위 소보 출신으로 유성룡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0년(선조 23)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김해(金垓)의 종사관(從事官)으로 활약하면서, 1594년 인동현에서 둔전관겸가수(屯田官兼假守)로 근무하...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면여(勉餘), 호는 양계(陽溪). 아버지는 이상규(李尙規), 장인은 황준경(黃浚瓊)이다. 형은 이암(李馣)이다. 이하는 1654년(효종 5) 식년문과에 갑과 2위로 급제하여 동부승지, 장령, 형조참의, 강진현감, 동래부사 등을 역임했다....
-
조선 후기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이상(而相).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아버지는 청천당(聽天堂) 장응일(張應一), 어머니는 목사 송광정(宋光廷)의 딸로 야로송씨(冶爐宋氏)이다. 형이 소매당(訴梅堂) 장영(張𨥭)이다. 장옥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음직(蔭職)으로 산음현감을 지냈다. 묘소는 경...
-
일제강점기의 경상북도 구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상백(李相栢)은 1919년 3월 12일 인동면(仁同面) 진평동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동하였다. 당시 인동교회의 목사로서 대구 서문외(西門外) 시장의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고 3월 7일 이곳에 온 대구 계성학교 학생 이영식(李永植)과 만나 독립선언서 20매를 전해받고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동하기로 결심하였다. 이상백은 자기의...
-
조선 후기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여휴(汝休), 호는 용암(龍巖). 평정공(平靖公) 이약동(李約東)의 후손이며 승지 이유번(李有蕃)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군수 이석명(李碩明), 아버지는 현령 이민선(李敏善), 어머니는 김봉(金崶)의 딸이다. 이상일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광해군의 문란한 정사를...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이선달네 맏딸아기를 주인공으로 해서 부르는 서사적 성격의 노동요. 이선달네 맏딸아기와 과거 보러 가던 선비의 이야기를 다룬 서사적 성격의 길쌈 노동요이다. 노래 부르는 주체가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의 가치관이 잘 반영되어 있다. 경상북도 지방에서 주로 전승, 채록되었다. 채록본에 따른 편차는 크지 않다.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실린 구미 채록본에는 이선달네 맏딸아기...
-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의 금오산에 서식하는 다람쥐과에 속하는 포유류. 하늘다람쥐는 백두산과 경기도, 강원도 그리고 경상북도 가지산과 금오산에 이르기까지 전역에 분포하나 중부 이남 지역에서는 희귀한 종이다. 우리나라 특산아종으로, 1982년 11월 4일 천연기념물 제328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몸길이는 15~20㎝이다. 머리는 둥글고 귀는 작으며 눈이 매우 크다. 크기는 일본...
-
조선 후기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한산(韓山).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7대손이다. 이선기는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에 있는 금오산성(金烏山城) 축성에 군관으로 참여하였으며 임진왜란시에는 의병을 모아 적병을 무수히 물리치고 장태곡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이후 내금위장에 제수되었다. 임진왜란 때의 공으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이선달네 맏딸아기를 주인공으로 해서 부르는 서사적 성격의 노동요. 이선달네 맏딸아기와 과거 보러 가던 선비의 이야기를 다룬 서사적 성격의 길쌈 노동요이다. 노래 부르는 주체가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의 가치관이 잘 반영되어 있다. 경상북도 지방에서 주로 전승, 채록되었다. 채록본에 따른 편차는 크지 않다.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실린 구미 채록본에는 이선달네 맏딸아기...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강(安康). 별칭은 이성(利城) 또는 이성백(利城伯)이다. 노종선(盧從善)은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세조 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이원현감(利原縣監)을 지냈으며, 이후 벼슬이 조봉대부와 군기시첨정에 이르렀다. 만년에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금오산 아래에 은거하며 야은(冶隱) 길재(吉再,...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강(安康). 별칭은 이성(利城) 또는 이성백(利城伯)이다. 노종선(盧從善)은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세조 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이원현감(利原縣監)을 지냈으며, 이후 벼슬이 조봉대부와 군기시첨정에 이르렀다. 만년에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금오산 아래에 은거하며 야은(冶隱) 길재(吉再,...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말의 군수 이소영 선정비. 이소영은 문과 출신으로 1896년(고종 33) 선산군수로 부임하여 1899년(고종 36) 예천군수로 이배되어 떠났다. 거사비(去思碑)는 수령이 갈릴 때 전임자의 선정(善政)을 기리어 고을의 백성들이 세우는 비이지만 이소영의 재임 기간 동안 선정에 대한 별다른 기록은 없으며, 객사 남쪽에 있던 찰미루(察眉樓)를 수...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지밀직사 이견간(李堅幹)의 5세손이며 이군상(李君常)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경상병마도원수 이희경(李希慶), 아버지는 이심지(李審之), 어머니는 공부전서 여극승(呂克勝)의 딸이다. 형은 생육신의 한 명인 이맹전(李孟專)이고, 동생은 병조참판 이계전(李季專), 현감 이말전(李末專)이다. 형곡 사창리에서 태어났다. 이숙전은 일찍이 문...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농소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조선 순조 때부터 마을에 낙동강 도선장(渡船場)이 있었으며 도방모리라는 곳이 있었다. 낙동강을 이용한 상주~선산 간의 수상교통 중심지로서 상인들이 소금 및 해산물 등을 배로 운반하여 이 곳에 적재해 놓았다가 팔고 대신 각지에서 소와 말을 사가던 교역장이었다. 사람이 붐비게 되자 주점이 많아지고 시장이 형성되어 장터라는 별명이 붙었고...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지밀직사 이견간(李堅幹)의 4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이군상(李君常), 아버지는 경상병마도원수 이희경(李希慶), 처는 공부전서 여극회(呂克誨)의 딸이다. 혼인 뒤 처가 고을인 형곡동에 와서 살았다. 아들로 생육신 이맹전(李孟專), 상호군 이숙전(李叔專), 병조참판 이계전(李季專), 현감 이말전(李末專)이 있다. 이심지는 조선 전기에...
-
조선 전기 인동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강(驪江). 초명은 이적(李迪), 자는 복고(復古), 호는 회재(晦齋)·자계옹(紫溪翁). 할어버지는 참군 이수회(李壽會), 아버지는 이번(李蕃), 어머니는 계천군(鷄川君) 손소(孫昭)의 딸로 경주손씨(慶州孫氏)이다. 경주손씨 가문은 일찍이 경주 양동에 자리 잡은 세력으로, 손소 손중돈(孫仲暾) 등 현달한 관료를 배출하였다. 이언적은 경상...
-
고려 후기 구미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아버지는 평양소윤 이문광(李文廣)이다. 이여량은 1380년(우왕 6) 문과에 급제하여 예부좌랑에 제수되었다. 1386년 사간원좌정언에 올랐다. 이 무렵 우왕이 놀이에만 여념이 없었고 폐신(嬖臣) 노영수(盧英壽) 집에 자주 행차하여 정사를 소홀히 하는 일이 허다했다. 이에 이여량은 다른 신하와 더불어 배종했다가 간관으로서 충...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대구 계성학교 학생이던 이영식은 「기미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인동면 진평동에 있는 이상백의 집을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고 이범성, 이내성(李乃成) 등과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여기에 동리 유지들이 동참하여 3월 12일에 거사하기로 하고 「기미독립선언서」를 필사하고 태극기를 만든 뒤 거사 당일 오후 8...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이옥(而玉), 호는 은곡(隱谷). 김진구(金振久, 1744~1786)는 1774년(영조 50) 식년문과에 갑과 1등으로 급제하였으며, 이후 벼슬이 통훈대부와 병조좌랑에 이르렀다. 병조좌랑으로 재직하던 중 동명이인의 관원이 법을 어겨 방(榜)이 붙자 선비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이후 두문불...
-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대원리에 있는 조선 말 이용직의 선정비. 암행어사는 조선시대에 왕명을 받고 비밀리에 지방을 순행하면서 악정(惡政)을 규명하고 민정을 살핀 임시 관직으로서, 이용직은 1868년(고종 5)에 경상도암행어사가 되어 현재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휴게소 부근에 있었던 역원인 죽현원의 폐단을 시정하여 백성들이 편안히 살도록 해주었는데, 이를 기려서 비석을 세웠다. 구미시...
-
조선 시대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이자 서화가. 본관은 덕수(德水). 초명은 이위(李瑋)·이후(李珝), 자는 계헌(季獻), 호는 옥산(玉山)·죽와(竹窩)·기와(奇窩). 아버지는 감찰 이원수(李元秀), 어머니는 사임당(師任堂) 신씨(申氏), 장인은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이다. 형이 율곡(栗谷) 이이(李珥)이다. 이우는 1565년(명종 20) 진사에 입격하여 비안현감, 괴산군수...
-
조선 전기 경상북도 구미 지역으로 이주한 옥산 이우의 예술 세계. 이우(李瑀, 1542-1609)는 조선시대의 서화가로, 호는 옥산(玉山)·죽와(竹窩)·기와(寄窩)이다. 신사임당의 넷째 아들이자 율곡 이이의 동생인 이우는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 지역으로 장가를 들었는데, 이로 인해 선산의 명현 중 한 사람으로 이름이 나 지역민의 자랑이 되고 있다. 이우는 어머니 신사임당의 천...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공헌(公獻), 호는 이우정(二友亭) 또는 운엄(雲广). 부제학·강원감사를 역임한 인재 최현(崔晛)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최체건(崔體乾), 할아버지는 최두추(崔斗樞), 아버지는 증호조참판 최수인(崔壽仁)이다. 1754년(영조 30)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759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승정원가주서(承政院假注書)·세...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덕수(德水). 다른 이름은 이균희(李均憙)·이해봉(李海奉), 자는 덕경(德卿), 호는 도촌(桃村). 아버지는 이종매(李種邁)이다. 도개면 도개리에서 출생하였다. 이원길은 성품이 강직하였으며 가풍에 따라 유가의 규범을 익히며 청운의 뜻을 품고 학문에 전념하여 입신양명을 도모하였으나,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나라 잃은 한을 품고 전...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신오(愼五). 근곡(芹谷) 이관징(李觀徵)의 현손이며 이협(李浹)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만용(李萬容), 아버지는 현감 이지수(李之受)이다. 1813년(순조 13) 증광 문과에 을과 7위로 급제하였으며 벼슬이 교리에 이르렀다....
-
조선 시대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이자 서화가. 본관은 덕수(德水). 초명은 이위(李瑋)·이후(李珝), 자는 계헌(季獻), 호는 옥산(玉山)·죽와(竹窩)·기와(奇窩). 아버지는 감찰 이원수(李元秀), 어머니는 사임당(師任堂) 신씨(申氏), 장인은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이다. 형이 율곡(栗谷) 이이(李珥)이다. 이우는 1565년(명종 20) 진사에 입격하여 비안현감, 괴산군수...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3·1운동이 일어나자 진평동의 애국지사들은 만세 시위를 결의하는데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대구 계성학교 학생이던 이영식이 「기미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이상백의 집을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고 이범성, 이내성(李乃成) 등과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여기에 마을 유지들이 동참하여 3월 12일에 거사하기로 하고 「기미독립선언서」를 필사하고...
-
조선 후기 인동도호부사를 역임한 무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의백(宜伯).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한양군(韓陽君) 이흥준(李興俊), 아버지는 장령 이흡(李洽), 어머니는 예조판서 이우직(李友直)의 딸로서 여흥이씨(驪興李氏)이다. 이의배는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벼슬이 당상관에 이르렀다. 1626년(인조 4) 3월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부임하여 이듬해 1월 노적(奴賊)의 난...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이의배의 선정비. 이의배는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한 무신으로서, 인조반정에 참가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에 녹훈되었고, 1626년(인조 4)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627년(인조 5) 1월에 신병으로 체임(遞任)하였다. 그는 인동부사로 있으면서 많은 선정을 베풀었으며, 백성들이 이를 기려 선정비를 세웠다. 높이...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중섭(仲涉), 호는 풍뢰당(風雷堂). 할아버지는 현감 이증화(李增華)이다. 이익수는 1773년(영조 49) 생원시에 합격하고 동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벼슬이 형조참의에 이르렀다. 저서로 『풍뢰당유고(風雷堂遺稿)』가 전한다....
-
조선 후기 인동도호부사를 역임한 무신. 본관은 한산(韓山). 아버지는 이수억(李秀億)이다. 형으로 이문해(李文海), 이관해(李觀海), 이득해(李得海)가 있다. 이익해는 1704년(숙종 30) 춘당대정시(春塘臺庭試) 무과에 병과(丙科) 6위로 급제하여 당상관을 역임하였다. 1716년(숙종 42) 10월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부임하여 이듬해 6월에 어사(御史)의 서계(書啓)에...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임용의 자는 종식(鍾植), 호는 월호(月湖)이다. 아버지는 이희원(李希元)이다. 이임용은 대구 계성학교를 졸업하고 칠곡공립보통학교에서 3년간 교직 생활을 하다가 대구 동산병원으로 직장을 옮겨 4년간 근무하였다.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장날을 기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고, 김수길·이영식·이영옥·김삼도 등과 함께 시장...
-
조선 전기 인동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강(驪江). 초명은 이적(李迪), 자는 복고(復古), 호는 회재(晦齋)·자계옹(紫溪翁). 할어버지는 참군 이수회(李壽會), 아버지는 이번(李蕃), 어머니는 계천군(鷄川君) 손소(孫昭)의 딸로 경주손씨(慶州孫氏)이다. 경주손씨 가문은 일찍이 경주 양동에 자리 잡은 세력으로, 손소 손중돈(孫仲暾) 등 현달한 관료를 배출하였다. 이언적은 경상...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이정(而靜), 호는 동리(東籬). 할아버지는 김자순(金自順)이며, 아버지는 김박(金博)이다. 외할아버지는 이의(李漪)이며, 장인은 구봉령(具鳳齡)이다. 김윤안(金允安, 1562~1620)은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588년(선조 21) 생원시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김윤명(金允明)과...
-
오늘날 해평 마을은 겉으로 보기에는 전형적인 농촌이고, 넓은 들판이 사방에 널려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과거 마을규모는 170호가 넘는 대촌이었으나 2007년 현재는 전업농이 50여 명 내외에 불과하다. 젊은 인구도 적고, 이곳에 살지만 사람들의 실질적인 삶은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웬만한 젊은이들은 모두 구미 쪽 도시로 출퇴근하거나 아예 도시에...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송삼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선산군수를 지낸 이종수와 무을면장을 지낸 김영진의 선정비. 군수는 도(道)의 관할에 속하는 하급 지방자치단체인 군(郡)을 대표하고 그 행정을 책임지는 장(長)으로서, 이종수는 일제강점기인 1922년에 선산군수로 부임하여 군수의 직임을 수행하였고, 김영진은 이 시기에 무을면장이었다. 군수로서 선산군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던 이종수가 그의...
-
조선시대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명중(明仲) 또는 이중(彛仲), 호는 역락당(亦樂堂). 할아버지는 노희식(盧希軾)이고, 아버지는 노수성(盧守誠)이며,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로 장열(張烈)의 딸이다. 노경륜(盧景倫, 1566~1655)은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학문이 뛰어나고 기상이 온화하여 당시 사우(師友)들의 모범이...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예강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이진화(李晉華)의 효자정려비. 이진화는 덕수인(德水人)으로 자는 명진(明進)이다.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아우 옥산(玉山) 이우(李瑀)의 후손으로 참의(參議) 이동로(李東魯)의 아들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를 지성으로 봉양하다가 모친이 사망하자 묘 옆에 여막(廬幕)을 지어 3년 동안 시묘를 하루같이 하자 향리(鄕里)에서 추...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예강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이진화(李晉華)의 정려편액. 이진화는 덕수인(德水人)으로 자는 명진(明進)이다. 율곡 이이의 아우 옥산(玉山) 이우(李瑀)의 후손으로 참의(參議) 이동로(李東魯)의 아들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를 지극 정성으로 봉양하다가 모친이 사망하자 묘 옆에 여막(廬幕)을 지어 3년 동안 시묘를 하였고, 향리(鄕里)에서 추천을 하여 정려가...
-
조선 후기 인동도호부사를 역임한 무신. 이진회는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811년(순조 11) 8월 24일에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부임하여 1814년 6월 24일 도정(都政)에 의하여 충청도 홍양영장(洪陽營將)으로 승진되었다. 1814년(순조 14) 인동부민이 세운 선정비(善政碑)가 현재의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복성리에 있다....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말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했던 이탄의 선정비. 이탄은 1892년(고종 29)에 경상도관찰사에 임명되어 도정에 진력하였는데, 1894년(고종 31)에 순력 중 인동부에 와서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이 이를 기려 비석을 세웠다. 윗부분이 평평하고 모서리가 각이 있는 직수(直首) 형태의 비신만이 남아 있으며, 비신은 높이 146㎝, 너비 53㎝, 두께 1...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선산군수를 지낸 이한귀의 선정비. 군수는 도(道)의 관할에 속하는 하급 지방자치단체인 군(郡)을 대표하고, 그 행정을 책임지는 장(長)으로서, 이한귀는 선산군수로 부임하여 지금의 선산읍 독동들의 관개, 수리 시설을 확충하여 당시 주민들이 농사를 짓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이를 기려 1939년 비석이 세워졌다. 비석은 높이 109...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이문리에 있는 조선 말 상주군수 이한응의 송덕비. 이한응은 관립 영어 학교를 졸업하고 외교관으로서 주로 활약하였는데, 제1차 한일 협약이 맺어져 나라의 형세가 위축되고 대외적으로는 영일 동맹으로 정부의 지위가 떨어지자 이를 개탄하여 1905년 5월 12일 음독 자결한 인물이다. 이한응이 상주군수로 도임하여 있던 중 1902년(고종 39) 12월에 선산군수 정...
-
조선 후기 인동도호부사를 역임한 문신. 이항은 문과에 급제하여 당상관을 역임하였다. 1656(효종 7) 3월 15일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부임하였으며 이듬해 9월에 벼슬을 그만두면서 물러났다....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덕수(德水). 다른 이름은 이균희(李均憙)·이해봉(李海奉), 자는 덕경(德卿), 호는 도촌(桃村). 아버지는 이종매(李種邁)이다. 도개면 도개리에서 출생하였다. 이원길은 성품이 강직하였으며 가풍에 따라 유가의 규범을 익히며 청운의 뜻을 품고 학문에 전념하여 입신양명을 도모하였으나,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나라 잃은 한을 품고 전...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성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전통 가옥. 마당을 사이에 두고 一자형 안채와 사랑채가 튼 ㄱ자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안채는 정면 4칸 반, 측면 2칸 크기의 팔작지붕집이다. 평면구성을 보면 대청을 중심으로 왼편에는 안방과 부엌을 설치하였고, 오른편에는 건넌방과 퇴칸을 두었다. 부엌을 제외한 각 칸의 전면에는 퇴를 빼내 마루를 설치하였다. 사랑채에는 방과 외양...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이문리에 있는 조선 말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이헌영의 선정비. 이헌영은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신사유람단에 포함되는 등 개화파 관료로서 성장하였다. 벼슬이 경효전제조(景孝殿提調)에 이르렀다. 1902년(고종 39)에 경상도관찰사에 임명되어 도내를 순력하였으며, 당시의 선산군에도 들러 백성들을 보살피는 등 경상도관찰사로서...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산부사 이형회의 선정비. 이형회(李亨會)는 음사로서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1824년(순조 24) 선산부사로 부임하여 1827년(순조 27)까지 3년여 동안 재임하다가 죽었다. 재임 기간에 그는 빙허각(憑虛閣)을 건립하였고, 화재로 인하여 소실된 선산향교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청아루(菁莪樓)를 다시 지...
-
조선 시대의 문신이자 공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효언(孝彦), 호는 오봉(五峯). 연안군(延安君) 이숙기(李叔琦)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홍문관수찬 이세범(李世範), 아버지는 이천현감 이국주(李國柱), 어머니는 사직 박여(朴旅)의 딸로 정경부인 비안박씨(比安朴氏)이다. 이호민은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79년(선조 12) 진사에 합격하고 1584...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말기 선산부사 이호숙의 선정비. 이호숙(李鎬肅)은 음사로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거친 후 문경현감(聞慶縣監)으로 있다가 1874년(고종 11)에 선산부사로 부임하였으며, 암행어사가 민정을 살핀 후 상을 줄 것을 청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1876년(고종 13)에 선산부사에서 이임하였는데, 청주목사(淸州牧使)로 승진하였던 것으로 보아...
-
조선 전기 구미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영광. 자는 이회(而晦), 호는 반곡(盤谷). 아버지는 정몽응(丁夢鷹)이다. 정경달(丁景達)은 1570년(선조 3) 문과에 급제하였다. 1591년(선조 24) 선산부사로 도임하였다. 1592년(선조 25) 4월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군과 군민을 독려하여 왜적 방어에 공을 세웠다. 4월 28일 상주가 함락되자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은...
-
조선 시대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이자 서화가. 본관은 덕수(德水). 초명은 이위(李瑋)·이후(李珝), 자는 계헌(季獻), 호는 옥산(玉山)·죽와(竹窩)·기와(奇窩). 아버지는 감찰 이원수(李元秀), 어머니는 사임당(師任堂) 신씨(申氏), 장인은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이다. 형이 율곡(栗谷) 이이(李珥)이다. 이우는 1565년(명종 20) 진사에 입격하여 비안현감, 괴산군수...
-
경상북도 구미시 옥계동에 있는 조선시대 인동부사 이희면(李熙冕)의 선정비. 비신의 앞면이 훼손되어 있어 영세불망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뒷면의 1840년(헌종 6) 즈음에 부임한 인동부사로는 1838년(헌종 4)에 부임하여 1842년(헌종 8)에 이임한 이희면(李凞冕)이 유일하므로 인동부사 이모는 이희면으로 추정된다. 인동부사 이희면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백...
-
조선 후기의 무신. 이희원은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834년(순조 34) 7월 26일 인동도호부사로 부임하여 1837년(헌종 3) 12월 도정(都政)에 의하여 훈련원정으로 승진되어 이임하였다. 1838년(헌종 4) 1월에 인동부민이 세운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현재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 새마을회관 앞에 있다....
-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이희원의 선정비. 이희원(李熙遠)은 무과로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1834년(순조 34)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37년(헌종 3) 도목정(都目政)에 따라 승진하여 이임하였다. 그가 재임 기간 동안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이 이를 기려 선정비를 세웠다. 높이 98㎝, 너비 42㎝, 두께 12㎝의 비신을...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 자는 태승(泰升), 호는 하곡(霞谷). 영의정 윤두수(尹斗壽)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장익공(章翼公) 윤휘(尹暉), 아버지는 윤면지(尹勉之), 어머니는 참판 경섬(慶暹)의 딸이다. 윤계는 1650년(효종 1) 사마시에 합격해 진사가 되었다. 그 뒤 3인을 선발하기로 한 알성문과에 급제했으나, 4등을 한 김석주(金錫胄)를 참방(參榜)시키려...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백수(伯修), 호는 만하(晩霞). 윤의지(尹誼之)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윤연(尹堧), 아버지는 지평 윤세희(尹世喜), 어머니는 이동규(李同揆)의 딸이다. 윤유는 1718년(숙종 44) 문과에 급제하고 여러 언관직을 거쳐 경종 때 수찬, 부교리, 이조좌랑, 동래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영조 때 대사간에 승진한 후 부제학, 승지...
-
경상북도 구미시에 거주하는 인구 집단의 계수. 인구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있는 전체 혹은 특정 인간의 집단을 지칭한다. 인구는 몇 가지 특성에 의해 구분되는데, 경험적 또는 객관적으로 집단을 구분하는 특성으로는 지리적, 인종적, 국가적, 자연적, 사회적 특성 등이 있다. 2011년 9월 30일 현재 구미시의 총 인구는 411,772명이며, 이 중 남자는 209,836명, 여자는...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인구(仁九), 호는 동석(東石). 경주부윤 박수홍(朴守弘)의 10세손이다. 아버지는 호조참판 박래겸(朴來謙)이다. 박인하는 1849년(헌종 15) 사마시에 급제하고, 같은 해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옥당(玉堂, 홍문관)에 들어갔다. 이후 홍문관의 박사·부수찬·수찬·부교리·교리, 사간원의 정언·헌납, 사헌부의 지평·집의 등 삼사(...
-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교동(舊校洞, 일명 생골·행교골), 용인동(龍仁洞, 일명 용지골), 기복동(起卜洞), 문수동(文殊洞), 헌덕동(獻德洞, 일명 헌디기) 각 일부를 병합하고 용인과 헌덕의 이름을 따서 인덕동이라 하였다. 구교동은 옛날 향교가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생원들이 많이 살아서 생골이라고도 하였다. 용인동은 마...
-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인덕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산동면 면소재지에서 국도 25호선을 따라 성수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발원지인 인덕지가 나오고 이 인덕지의 동쪽에 서쪽으로 뻗은 완만한 구릉의 말단부에 수십 기의 고분이 분포하고 있다. 형태는 구덩식 돌덧널로 추정되며, 40~50여 기가 분포하고 있는데 봉분은 거의 삭평되어 버렸지만 지름 5~8m이고, 돌덧널의 크기는 길이...
-
경상북도 구미시 구평동 대원사에 있는 통일신라 때의 석불좌상. 사질이 많은 화강암으로 조성되었고, 두부는 없으나 결과부좌의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으며, 통견 법의(通肩法衣)는 양팔에 걸쳐 두 무릎을 덮었고, 배꼽 앞으로부터 흘러내린 앞자락이 오른쪽 무릎 밑으로 접혔는데 전체의 의문은 유려하다. 가슴 앞에는 태조(太條)의 의대가 있고, 그 밑으로 군의의 결...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 지역에서 일어난 전투.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의 군위현조에 이보의 약전에 의하면 “임진왜란 이후 인동현감으로 재임하면서 당시 인동은 왜구의 중요 통로가 되어 왜구의 피해가 특별히 심하여 전야(田野)가 비었고 사는 사람이 없는지라 관찰사가 논계하여 읍을 혁신하고 공으로써 임시 현감을 차임하고 또 과곡관을 겸임하니 추절을 당하여 득곡함이...
-
경상북도 구미시 구평동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교육의 방향은 ‘올바른 인성과 창의력을 지닌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다. 이에 교육의 목표는 바른 인성 함양, 개성존중교육, 창의력계발, 쾌적한 교육환경의 네 가지를 잡고 있다. 즉 바른 삶을 실천하는 인성교육의 내실화로 도덕적 품성을 지닌 사람을 기른다, 기본에 충실하고 개성을 존중하는 교육과정 운영으로 개성적이고 실력 있는 사람을 기...
-
김정을 시조로 하는 경상북도 구미지역의 세거 성씨. 인동은 신라시대에 사동화현(斯洞火縣)이라 하였고, 그 후에 수동현으로 개칭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지금의 이름인 인동으로 고쳤다. 1018년(현종 9)에 경산부(京山府; 지금의 성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 경산에서 분리되면서 처음으로 지방 수령인 감무(監務)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 개편으로...
-
인동을 본관으로 하여 경상북도 구미에 살았던 성씨. 인동은 신라시대에 사동화현(斯洞火縣)이라 하였고, 그 후에 수동현으로 개칭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지금의 이름인 인동으로 고쳤다. 1018년(현종 9)에 경산부(京山府; 지금의 성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 경산에서 분리되면서 처음으로 지방 수령인 감무(監務)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 개편으로...
-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에 있는 인동동 관할 행정기관. 경상북도 구미시를 구성하고 있는 2개 읍(선산읍·고아읍), 6개 면(무을면·옥성면·도개면·해평면·산동면·장천면), 19개 동(송정동·원평1동·원평2동·지산동·도량동·선주원남동·형곡1동·형곡2동·신평1동·신평2동·비산동·공단1동·공단2동·광평동·상모사곡동·임오동·인동동·진미동·양포동) 중 인동동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
고려 후기 문신이자 인동유씨 시조. 인동유씨(仁同兪氏)는 인동백(仁同伯)에 봉해진 유승단의 후손들이 인동에 세거함에 따라 후대에 유승단을 시조로 하고 세거지 인동을 관향으로 삼으면서 생겨났다. 본관은 인동(仁同). 초명은 유원순(兪元淳). 인동유씨는 유승단 이후 세계가 끊어졌으며, 고려조에서 예부시랑을 지낸 1세손 유승석을 중시조로 대를 잇고 있다. 유승석의 동생인 유성렬의 증손...
-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구미보건소 산하 지소. 보건 사업, 예방 접종, 진료 및 검사, 각종 건강 정보 등을 제공함으로써 지역 주민의 삶의 질 향상 및 건강한 지역 사회 조성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6년 6월 인동보건상담소로 운영되다가 2003년 1월 9일 구미보건소 인동보건지소로 설치되었다. 2005년 10월에는 도시보건지소 시범 보건지소로 선정되었다. 보건의료...
-
조선 후기 유성룡이 구미 지역에 있는 인동서헌 주변의 서경과 그에 따른 심회를 읊은 한시.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은 조선 선조(宣祖) 때의 재상으로 자는 이견(而見), 호는 서애(西厓)이다. 대사헌·경상도 관찰사 등을 거쳐 영의정을 지냈으며, 도학·문장·덕행·서예로 이름을 떨쳤다. 「인동서헌십절」은 인동서헌 주변의 금오산(金烏山)·낙동강·천생성(天生城)·야은대(冶隱臺)...
-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에 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 성당. 1905년경 인동 지역의 가실방씨 중 한 사람인 방우영(다두)이 서병조의 권유로 대구 계산성당에서 영세를 받게 되었으며, 영세를 받은 후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 방세종(아가비도)과 할아버지 방사권(베드로) 등 가족들을 권면하여 방씨 일가 10여 가구가 당시 왜관의 가실성당에서 영세를 받게 되었다. 그 후 할아버지 방사권이...
-
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에 있는 재래시장. 인동시장은 오일장으로 황상동 지역에 상가가 들어서기 이전부터 장이 활성화되었으며, 1987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989년 3월에 현대식으로 시장 건물을 완공하고 상설시장을 개장하였다. 인동시장은 부지 면적 3,541㎡에 건축 면적 5,932㎡로 이루어져 있으며, 4개 동의 상가와 268개의 점포로 구성된 상설시장이다. 매월 2·7·12·1...
-
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에 있는 우편, 체신, 금융 기관. 우체국은 국장의 지위에 따라서 4급(서기관국), 5급(사무관국), 6급(주사국), 7급(주사보국)으로 분류되거나 기능에 따라서 체신청, 우편집중국, 집배국, 무집배국으로도 분류된다. 또한 설립 주체에 따라 일반우체국, 별정우체국, 우편취급소 등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4급과 5급우체국은 총괄국으로서 기초자치 단체 단위로 1국씩...
-
유승단을 시조로 하고 유승석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구미시 세거 성씨. 인동은 신라시대에 사동화현(斯洞火縣)이라 하였고, 그 후에 수동현으로 개칭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지금의 이름인 인동으로 고쳤다. 1018년(현종 9)에 경산부(京山府; 지금의 성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 경산에서 분리되면서 처음으로 지방 수령인 감무(監務)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
-
인동을 본관으로 하여 경상북도 구미지역에 살았던 토성의 하나. 인동은 신라시대에 사동화현(斯洞火縣)이라 하였고, 그 후에 수동현으로 개칭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지금의 이름인 인동으로 고쳤다. 1018년(현종 9)에 경산부(京山府; 지금의 성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 경산에서 분리되면서 처음으로 지방 수령인 감무(監務)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
-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세워져 있는 2기의 입석. 입석은 바위를 길게 다듬어 세워 두는 것으로 선돌이라고 하는데, 고인돌과 같은 큰돌 문화의 일종이다. 선사시대에는 고인돌 주변에 세워 묘의 영역을 나타내었으며, 역사시대에 와서는 마을 입구에 세워 귀신을 막거나 경계를 표시하도록 하였고, 토착신앙과 합쳐져 장수를 비는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인동입석은 원래 3기가 있었다고 하나 현...
-
장계와 장금용을 시조이자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구미시 세거 성씨. 인동장씨(仁同張氏) 직제학계는 고려의 개국원훈(開國元勳)인 태사공(太師公) 장정필(張貞弼)을 도시조(都始祖)로 하며, 장계(張桂)를 시조로 한다. 인동장씨 상장군계는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한다. 인동장씨는 이 두 갈래로 나뉜다. 직제학계의 시조 장계는 장정필의 14세손이며, 1305년(충렬왕 31)에 국학진사(...
-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품격 있고 정의로운 사람, 자율적 사고와 행동력을 갖춘 실력 있는 사람, 꿈과 재능을 키워 나가는 창의적인 사람 육성과 함께 교단 지원 중심의 선진 행정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열심히 배우고 바르게 행하자’이다. 1952년 7월 12일 인동고등공민학교로부터 공립 중학교로 승격 인가를 받고 같은 해 12월 31일 인동중학교로 개...
-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나라 사랑에 앞장서는 어린이,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어린이, 타고난 소질을 키워가는 어린이, 자기 스스로 실천하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12년 4월 1일 인동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다가, 1938년 4월 1일 인동공립심상소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41년 4월 1일 인동공립국민학교로 다...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시대 공자와 선현을 향사하고 후학들에게 교육을 실시한 향교. 인동향교는 정확하게 어느 시기에 건립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전기의 어느 시점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인동의 북쪽 2리 지점인 황상동의 어운산 자락에 향교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1592년(선조 25) 임진...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 인동향교에 있는 조선시대 공자를 모신 사당. 인동향교는 여말선초(麗末鮮初)에 건립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임진왜란 직후인 1601년(선조 34)에 안태동의 옥산 북쪽으로 이건하였다. 그러나 지형이 좋지 않다 하여 1634년(인조 12)에 옥산 서쪽인 인의동으로 재이건하였다. 1988년에 구미 도심의 확장으로 말미암아 현 위치로 이건하게...
-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 지역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지명. 인동은 외부의 문물을 손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낙동강 연안에 위치한 교통 요지에 있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문명이 발전하였으며, 풍부한 물산과 군사적 요충지로 인해 조선 후기까지 도호부 관할 하에 있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와 철도가 약목을 통과하게 되고 운하 교역이 감소하면서 칠곡과 선산에 편입되었다. 이 지역을 지칭하는 명칭...
-
경상북도 구미 지역의 지표와 연계되어 나타나는 인문적 사상(事象)들. 구미시는 경상북도의 중앙부로부터 서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이다. 극동은 장천면 명곡리 산 54번지이며 극남은 오태동 산 59번지이며 극서는 무을면 안곡리 산 57번지이며 극북은 옥성면 구봉리 산 13번지이다. 동서 간의 연장 거리는 38.8㎞이고 남서 간의 연장 거리는 33.4㎞이다. 구미시는 동남쪽으로는 칠곡...
-
경상북도 구미 지역 출신 명창 박록주가 지은 가사에 박송희가 곡을 붙여 부른 단가. 박록주 명창은 운명을 앞두고 제자 박송희 명창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회한에 가득 찬 가사 한 편을 남겼고, 박송희 명창이 여기에 곡을 붙여 단가로 불렀다. 「인생백년」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인생백년 꿈과 같네 사람이 백년을 산다고 하였지만 어찌하여 백년이랴 죽고 사는 것이 백년이랴 날 적에도...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인생무상을 주제로 부르는 타령조의 유희요. 구미시 옥성면 초곡리에서 1984에 7월 26일 최정여·박종섭·임갑랑이 조사·채록하였으며, 가창자는 육종수(남, 당시 64세)이다. 「인생가」는 「창부 타령」의 곡조에 인생무상을 노래한 것으로, 가창자마다 다른 가사를 부른다. 어허~ 아니놀지도 못하겠네 아니쓰지도 못하겠어/이세상에 나온사람들 어느덕으로 나왔으며/서해서산...
-
1797년(정조 21)에서 1854년(철종 5) 사이에 선산부사의 요청으로 중앙에서 관인을 주조하여 내려 보낸 기록. 『인신등록』은 조선시대에 관인(官印)을 관장하는 예조와 인신(印信)을 만드는 공조에서 각 중앙 관서와 지방관의 요청으로 인신을 주조하여 내려 보냈을 때의 기록을 모은 책이다. 『인신등록』권1, 1797년(정조 21)에서 1817년(순조 17)에는 선산부사(善山府使)...
-
경상북도 구미시에 속하는 법정동.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전해 오고 있다. 자연마을로 교동(校洞), 중리(中里), 남산(南山), 마차골[馬車谷] 등이 있다. 교동은 옛 향교가 있었다는 연유에서, 중리는 인동장씨 중리파의 유허지(遺墟地)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남산은 인동장씨 남산파가 세거한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고, 마차골은 임진왜란 당시 마차가 집결한 곳이라...
-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에 있는 수령 400년의 회화나무. 회화나무는 콩과의 낙엽 관목으로 높이 25m에 이른다. 잎은 어긋나고 1회 깃꼴겹잎이다. 작은 잎은 7~17개씩 달리고 달걀 모양 또는 달걀 모양의 타원형이며 뒷면에 잎자루와 함께 누운 털이 있다. 꽃은 8월에 원추꽃차례를 이루며 연한 황색으로 피고, 열매는 협과(莢果: 콩처럼 꼬투리로 맺히는 열매)로 10월에 익는다. 추위...
-
조선 후기 장현광이 구미 지역의 인의방(仁義坊)에 대해 쓴 설(說).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자는 덕회(德晦), 호는 여헌(旅軒)이다. 여러 차례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학문 연구에만 전심하였다. 「인의방설」은 장현광이 인의방의 유래에 대해 설명한 글이다. 한문 문체 가운데 설(說)은 ‘해석하다(解).’, ‘서술하다(述).’는 의미인데, 이것...
-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올바른 인성과 창의력을 지닌 인재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꿈, 건강, 슬기’이다. 1997년 8월 27일 인의초등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고 1999년 2월 23일 신축 교사를 준공하여 같은 해 4월 1일 12학급으로 개교하였다. 같은 해 9월 5일 교가 및 교표를 제정하고, 9월 28일 교기 및 우승기를 제작하였다. 20...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계승(季昇), 호는 인재(訒齋). 현감 최수지(崔水智)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좌찬성(左贊成) 최심(崔深)이고, 참판(參判) 최응룡(崔應龍)의 종손자이다. 1563년(명종 18) 해평에서 태어났다. 1588년(선조 21) 사마시에 합격했으며, 1606년(선조 39)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에 들어갔고 홍문관의 고관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
경상북도 구미시 원평동에 있는 전문 한방 병원. 인제한방병원은 구미 지역 주민들이 질병으로부터 해방되도록 지원하고, 한방의 우수성을 실천하며, 나아가서는 구미공단 근로자의 질병 치유를 통하여 구미공단의 경쟁력을 높이며, 구미 지역 사회통합에 이바지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인제한방병원은 1987년 9월 구미시 원평동 1072-8번지[송원동로 65]에 구미 지역 최초로 설립된 한방 전...
-
936년 고려와 후백제가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일리천을 사이에 두고 싸운 전투. 신라 하대에 들어오면서 골품제가 붕괴되고 중앙귀족이 왕위쟁탈전을 벌이자 주군현이 공부(貢賦)를 거두어들일 수 없게 되었다. 나라 창고는 고갈되고 왕은 조세의 납부를 독촉하는 사신을 파견하였다. 이에 곳곳에서 도적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 중 대표적인 도적이 상주의 원종·애노, 북원의 양길·궁예,...
-
삼국시대 신라의 일선주군주를 역임한 인물. 일부는 614년(진평왕 36) 2월 신라가 사벌주(沙伐州)를 폐지하고 일선주(一善州)를 설치하였을 때 일길찬(一吉湌)의 관등으로서 일선주의 군주(軍主)가 되었다....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신림리와 선산읍 생곡리를 잇는 다리. 길이는 505m, 폭은 11.3m, 유효 폭은 8.5m, 높이는 8.7m이다. 상행과 하행 각기 1차선 차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보도는 없다. 일선교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하나로 건설된 다리로, 국도 25호선과 33호선을 연결하고 있다. 1964년 6월 착공하여 1966년 12월 15일 완공하였다. 1967년...
-
고려 전기 선산김씨의 시조. 김추(金錘)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여덟 번째 아들로 경순왕과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장녀 낙랑공주(樂浪公主)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선군(一善君: 일선은 선산의 옛 이름)에 봉해졌으며, 그에 따라 후손들이 본관을 선산으로 하였다....
-
김선궁을 시조이자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구미시 세거 성씨. 일선(一善)은 선산의 옛 이름으로, 신라 눌지왕 때 일선군이라 칭하였고, 614년(진평왕 36) 주(州)로 승격되었지만 687년(신문왕 7)에 폐지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숭선군(崇善郡)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995년(성종 14)에 다시 선주(善州)로 고쳤고, 1018년(현종 9) 상주의 속주가 되었다. 1143년...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해평면 낙산3리와 도개면 신림리 경계 지역으로 1987년 안동군 임하댐 수몰 지역 주민이 이주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다. 1988년 7월 1일자로 「선산군 조례」제1042호에 따라 해평면 일선리로 행정구역이 개편되었다. 신산 앞 평지에 있으며,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작은 하천이 흘러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2009년 1월 현재 면적은...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대규모 고분군인 낙산리 고분군과 신림리 고분군 사이에 위치하는 소규모 고분군이다. 국도 25호선에 접해 있는 능선으로 일선리 문화마을의 남쪽에 인접하여 있다. 제2낙산교를 지나 도로 동쪽의 능선 서쪽 사면에 의구총이 위치하고 있으며, 고분군은 의구총이 위치한 능선 상에 10여 기가 분포하고 있다. 지표조사로 고분군의 존재...
-
조선 전기의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 문간공 김완(金琬)의 현손이며, 아버지는 연안부사 김겸(金兼)이다. 김시로는 태종 때 생원이 되었으며, 음사로 동래부사를 지냈다. 이후 나주목사를 거쳐 한성좌윤에 올랐다. 보조음극공신에 녹훈되어 일선부원군(一善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영의정에 증직되었다....
-
선산·해평·군위 일원을 관장하였던 신라시대 행정구역. 일종의 군관구로 설치된 일선주는 풍부한 물산을 바탕으로 삼국 통일의 중요한 보급 기지가 되었다. 통일 전쟁 과정에 총관이 직접 출전하기도 하였으며, 일선주 백성들은 전쟁에 사용된 병력과 물자를 제공하였다. 신라의 영토 확장과 함께 선산 지역은 신라에 편입되어 일선군(一善郡)이 설치되었다. 낙동강 동안의 낙산리 일대에 대형 고분군...
-
조선시대 중·후기 대표적인 해평 지역의 명현은 『일선지(一善志)』를 남긴 인재(訒齋) 최현(崔晛)이다. 인재(訒齋) 최현(崔晛)은 검재 최수지의 5세손이다. 좌찬성 심(深)의 아들로, 해평에서 1563년(명종 18)에 태어났다. 인재에 대한 전주최씨 족보의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소시(少時)에 학봉(鶴峰) 선생 문하에서 수학하고 후에 한강(寒岡) 선생에게 사사(師事)하여 유...
-
조선 후기 김용이 구미 지역의 청심정(淸心亭)에서 느낀 감회를 읊은 한시. 김용(金涌, 1557~1620)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도원(道源), 호는 운천(雲川)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규합하여 항쟁하였으며, 1598년(선조 31) 영의정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이 모함을 받아 삭탈관직당하자 함께 배척받았다. 「일선청심정팔경」은 김용이 경상북도 구미의 청심...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 자는 일지(一之). 할아버지는 정언복(鄭彦復)이고 아버지는 정홍(鄭泓)이다. 1771년(영조 47) 문과에 병과 57위로 급제하였다. 사변가주서(事變假注書)·숭릉별검(崇陵別檢)·전적(典籍)·병조좌랑(兵曹佐郞)·예조정랑(禮曹正郞)·지평(持平)·헌납(獻納)·경성판관(境城判官)·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
고려 후기의 무신. 본관은 평택(平澤). 할아버지는 평택임씨(平澤林氏)의 중시조 임세춘(林世春), 아버지는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 충정공(忠貞公) 임언수(林彦修)이다. 대대로 평성(平城, 현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원호리)에 우거하였으며 임견미는 훗날 평원부원군파(平原府院君派)의 시조가 되었다. 임박(林樸)이 아들이다. 임견미는 공민왕 초 중랑장(中郞將)에 등용되었으며 1361년(...
-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임경(任卿), 호는 성와(省窩). 훈재(塤齋) 윤홍선(尹弘宣)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돈재(遯齋) 윤상로(尹商老)이다. 윤중방은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 등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당시 선산부사(善山府使)였던 박필건(朴弼鍵), 중군장(中軍將) 김여건(金汝鍵)과 함께 출정하여 그의 지략으로 금릉(金陵, 현 경상북도...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신천(信川). 자는 자도(子鞱)·자일(子逸), 호는 임경당(臨鏡堂). 증조할아버지는 강윤리(康允釐)이고, 할아버지는 강거례(康居禮)이다. 아버지는 교위 강척(康惕)이고, 어머니는 김숙자(金叔滋)의 딸이며, 외숙부는 김종직이다. 형은 강백진(康伯珍)이며, 부인은 최정(崔淨)의 딸이다. 강중진(康仲珍)은 1480년(성종 11)에 진사가 되고, 14...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위숙(渭叔), 호는 임계(臨溪). 오식은 1400년(정종 2) 진사에 합격하고, 1402년(태종 2) 문과에 급제하였다. 연산목사·남원목사·청주목사를 역임하였다. 그 후 제주목사·인령부윤·중군동지총제·좌군총제를 거쳐 경주부윤으로 재직하다가 죽자 세종이 부의(賻儀)를 내렸다. 1409년(태종 9) 남원부사로 재직 시 “속공노비...
-
고려 후기 구미 지역에서 우거한 문신.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원질(元質). 평택임씨(平澤林氏)의 중시조 임세춘(林世春)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 충정공(忠貞公) 임언수(林彦修), 아버지는 평원부원군(平原府院君) 임견미(林堅味)이다. 대대로 평성(平城, 현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원호리)에 우거하였다. 임박은 1360년(공민왕 9)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개성...
-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에 있었던 공립 초등학교. 예절과 질서를 잘 지키는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고 탐구하는 어린이, 몸과 마음을 가꾸는 튼튼한 어린이, 아름다움을 즐기고 가꾸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였다. 1949년 9월 2일 임봉국민학교로 개교하였다. 1959년 10월 9일 정규교실 8실을 준공하였다. 1985년 3월 13일 병설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96년 3월...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3·1운동이 일어나자 진평동의 애국지사들은 만세 시위를 결의하는데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대구 계성학교 학생이던 이영식이 「기미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이상백의 집을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고 임삼선, 이범성, 이내성(李乃成) 등과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여기에 마을 유지들이 동참하여 3월 12일에 거사하기로 하고 「기미독립선언...
-
경상북도 구미시에 속하는 법정동. 낙동강 변에 형성된 마을이므로 임수동이라 하였다. 소가 누워 있는 혈(穴)이라 하여 우담동(牛譚洞)이라고도 한다. 조선 후기 인동군 읍내면(邑內面)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우담동을 통합하여 임수리라 하고 칠곡군 인동면에 편입하였다. 1978년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이 구미시로 통합됨에 따라 구미시 임수동이 되었다. 진평동, 시...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 동쪽의 남서로 향하여 길게 뻗어 내린 해발 80~50m의 능선에 고분군(임수동 고분군1)이 위치해 있으며, 여기서 구미대교 쪽으로 가다 보면 구미대교를 건너기 직전 북쪽의 해발 60m 능선에 고분군(임수동 고분군2)이 분포하고 있다. 임수동 고분군은 도굴, 민묘 조성, 공장 건설 등에 의해 파괴가 심하다. 노...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수령 400년의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중국 원산으로 암수딴그루이다. 학명 가운데 종명 ‘biloba’는 두 갈래로 갈라진 잎을 뜻한다. 은행나무의 수꽃가루는 유일하게 편모를 달고 있어서 스스로 몸을 이동시킬 수 있는데, 이를 ‘정충’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은행나무는 진화가 덜된 채 오래도록 살아남았다고 해서 화석식물이라고 부르고 있다. ‘열매가 살구[...
-
조선 후기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 여차정 서쪽 낙동강변 큰 바위인 장암에 새겨진 글자. 낙동강변 큰 바위에 새겨진 글자는 조선 후기 문신인 장학(張澩)의 친구 매은(梅隱) 전영(全榮)이 쓴 것으로 전한다. 임수동 장암 암각은 임수동 낙동강변의 여차정(如此亭) 서쪽에 있다. 임수동 낙동강변에 높이 약 5m, 넓이 약 3.5m가량의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 ‘장암(壯巖)’이란 큰...
-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 낙동강변의 동락서원 옆 2개의 바위에 새겨진 글자. 임수동 천연대 암각은 낙동강변의 동락서원 서편 바위에 있다. 동락서원 옆에는 2개의 바위가 포개져 있는데, 위에 얹혀 있는 큰 바위(높이 2m, 둘레 약2m)에 세로로 비스듬히 ‘천연대(天淵臺)’라고 새겨져 있다. 글씨 크기는 천(天)은 10×17㎝, 연(淵) 16×20㎝, 대(臺) 17×19cm이다....
-
고려 전기 구미 지역에 정착한 선산임씨의 시조. 임양저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손서(孫壻)로서 경순왕이 고려에 귀순하고자 했을 때 그 부당함을 극간(極諫)하다가 경순왕의 노여움을 사서 선산 지역으로 유배되었다. 이후 선산에서 여생을 보내면서 뿌리를 내림으로써 후손들이 임양저를 시조로 삼고 본관을 선산(善山)으로 하게 되었다....
-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대춘(大椿), 호는 석천(石川). 임득무(林得茂)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임수(林秀), 아버지는 임우형(林遇亨), 어머니는 박자회(朴子回)의 딸이다. 임억령은 박상(朴祥)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525년(중종 20) 문과에 급제하여 호당(湖堂)에 들어갔다. 1545년(인종 1) 을사사화 때 금산군수로 있었는데 동생 임백령(林...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산림을 유지·조성하고 임목을 보육하여 경제적으로 이용하는 생산업. 임업(林業)은 각종 임산물에서 얻는 경제적 이윤을 위하여 삼림을 경영하는 사업을 말하는데 삼림 속으로 들어가서 주로 나무를 벌채하고 목재를 생산하는 산업이다. 생산물은 목재 외에도 연료나 래커, 대나무, 표고버섯 등의 임산물 등도 포함한다. 제1차 산업의 하나이고 삼림 자원을 육성하거나 삼림이 가...
-
조선 후기 이광정이 구미 지역 출신의 열녀 향랑(薌娘)에 대해 쓴 전기. 이광정(李光庭, 1552~1627)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덕휘(德輝), 호는 해고(海皐)이다. 정언을 지낸 이주(李澍)의 아들이다. 1597년 명나라 사신 심유경(沈惟敬, ?~1597)의 접반사가 되어 일본과의 회담에 참여하였다. 호조판서·공조판서·한성부윤을 지냈고, 1601년 지중추부사로 청백리에 선...
-
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임영화는 공민왕 때 이방실(李芳實)을 따라 홍건적의 난을 평정할 때 큰 공을 세웠으나 폐신(嬖臣) 김용(金鏞)이 시기하여 축출되었고 이산영(伊山營)에서 별세했다....
-
경상북도 구미시 임은동에 있는 임오동 관할 행정기관. 경상북도 구미시를 구성하고 있는 2개 읍(선산읍·고아읍), 6개 면(무을면·옥성면·도개면·해평면·산동면·장천면), 19개 동(송정동·원평1동·원평2동·지산동·도량동·선주원남동·형곡1동·형곡2동·신평1동·신평2동·비산동·공단1동·공단2동·광평동·상모사곡동·임오동·인동동·진미동·양포동) 중 임오동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용섭은인동면(仁同面) 진평동에서 이상백, 이내성(李乃成) 그리고 대구(大邱)에서 온 이영식(李永植)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고 「기미독립선언서」를 필사하고 태극기를 만들어 동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1919년 3월 14일 마을 뒷산에 모인 시위 군중 200여 명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인동주재소로 행진하던 중...
-
경상북도 구미시 임은동의 광평천 위에 있는 다리. 임은동에 위치하여 임은교라고 이름 붙었다. 길이는 42.1m, 폭은 10m, 유효 폭은 8.6m, 높이는 5.8m이다. 경간(徑間, 지주 교각) 수는 4개이다. 상행과 하행 각기 1차선 차도와 보도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상부 구조 형식은 RCT식이며, 하부 구조 형식은 RAP이다. 임은교는 상모동의 위쪽 계곡에서 흘러 낙동강으로...
-
경상북도 구미시에 속하는 법정동. 옛날에 낙동강으로 소금 배가 드나들 때 수풀에 가리어 잘 보이지 않아 숲 속에 숨어 있는 곳 같다 하여 임은(林隱)이라 하였다. 사투리로 이무이라고도 한다. 또한 웃마와 아랫마로 구분하여 부르기도 하였다. 주요 지명으로 지형이 묘한 명당이며 허씨 가문의 사랑방 터가 있어 붙여진 오양곡(五養谷), 마을 위에 있는 골짜기라서 붙여진 웃곡[上谷] 등이...
-
1919년 4월 8일 경상북도 구미시 임은동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3·1운동은 일제하 최대의 항일 민족항쟁으로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났다. 한말 의병장 허위(許蔿)의 출신지인 구미시 임은동은 항일의 기풍이 강한 곳으로, 1919년 4월 8일 강용준(姜龍俊)·유시동(劉時東)을 중심으로 독립만세운동을 벌였다.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3월 8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의...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동부리에 있는 조선 전기 효자 임재의 정표비(旌表碑). 임재는 문과(文科)에 등제(登第)하여 황간감무(黃澗監務)를 역임하였으며, 부모가 병환으로 눕게 되자 조석으로 극진히 약을 달였고, 사망하자 슬픔이 극에 달했다. 여막을 지어 시묘살이를 하면서 6년 동안 한 번도 집에 들른 적이 없었으며, 1472년(성종 3)에 조정으로부터 정려가 내려졌다. 장방형의 자연...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동부리에 있는 조선 전기 효자 임재의 정표비(旌表碑). 임재는 문과(文科)에 등제(登第)하여 황간감무(黃澗監務)를 역임하였으며, 부모가 병환으로 눕게 되자 조석으로 극진히 약을 달였고, 사망하자 슬픔이 극에 달했다. 여막을 지어 시묘살이를 하면서 6년 동안 한 번도 집에 들른 적이 없었으며, 1472년(성종 3)에 조정으로부터 정려가 내려졌다. 장방형의 자연...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점석은 진평동 독립 만세 운동의 주동자로 진평동의 만세 시위를 결의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대구 계성학교 학생이던 이영식이 「기미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이상백의 집을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고 이범성, 이내성(李乃成) 등과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여기에 마을 유지들이 동참하여 3월 12일에 거사하기로 하고 「기미독립선언서」를 필사...
-
조선 후기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두경(斗卿), 호는 임졸재(任拙齋).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극명당(克明堂) 장내범(張乃範)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 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郞) 장원(張厡)이다. 형으로 장우주(張宇柱), 장우상(張宇相)이 있다. 장우추는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1679년(숙종...
-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임천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임천리 앞 임천평야에는 경지정리 전에 몽대보라고 부르던 보(洑)가 있었다. 이 몽대보는 임진왜란 후에 농토가 메마르고 물이 부족하여 농사가 힘들어지자 마을 사람 김녕(金寧)이 사재를 털어서 수로를 개설하여 장천면 묵어리 계곡물과 한천물을 끌어들여 만든 것이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김영의 후손에게는 수세를 부과하지 않았으며, 지금도...
-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많은 군자가 벼슬을 버리고 한거임천(閑居林泉)하였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본래 선산군 몽대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계동, 본리, 승지동, 모산동, 학사동을 병합하여 임천리라 하고 산동면에 편입하였다. 삼원산에서 이어진 천생산을 안산으로 하여 형성된 마을로 동남쪽으로 한천이 흐른다. 경지 정리가 된 평야가 있다. 산동...
-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임천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낙동강의 지류인 한천(漢川)의 북쪽에 형성된 들판과 높은 산지가 만나는 능선 말단부에 위치하는 소규모 고분군으로 삼국시대(신라) 구덩식 돌덧널무덤으로 추정된다. 국도 25호선을 따라 가다 장천면 면소재지를 지나 2㎞ 정도 가면 구미국가산업단지 제4단지로 진입하는 도로가 서쪽으로 이어지는데, 이 도로에서 임봉초등학교에 못...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에 있는 조선시대 성리학자 수재 유정호 부자가 마련한 살림집. 조선시대 유학자인 수재 유정호(1837~1938)가 집터를 마련하고, 아들 유연구(1861~1938)가 지은 집이다. 유정호의 호를 따서 일명 ‘수재고택’이라고 불리던 임하댁은 구한말 독립 지사인 유동환이 1939년에 고쳐지었다. 임하댁은 임하댐 수몰 지역에 편입되어 1987년에 현 위치로...
-
경상북도 도개면 월림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주위가 산림(山林)으로 둘러싸여 있고 뒤에는 소류지가 있으며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월림리는 월림1리와 월림2리로 나누어지는데, 월림1리, 곧 임호에는 월곡마을이 있다. 월곡마을은 달이 뜨면 마을을 환하게 비추어 마을 뒤에 있는 계곡이 맑게 보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월곡마을은 또 아래위로 나누어서 아랫...
-
조선 후기 인동도호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숙여(肅與). 임윤원(任胤元)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임수적(任守迪), 아버지는 임용(任瑢)이다. 임희우는 1762년(영조 38) 정시 문과에 병과 9위로 급제하였다. 1779년(정조 3) 2월 고성현령에 임명되고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부임하였다.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가 세운 지...
-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등리에 위치한 바위. 선바위는 무등리 남쪽의 불당산 섬발골에 있는 높이 2.7m, 폭 2.1m, 두께 1.2m의 암석을 말한다. 입암(立岩)이라고도 하며, 20㎡ 넓이의 반석 위에 있다. 이 바위는 정희량(鄭希亮) 난에 큰 공을 세운 황도희(黃道熙) 장군을 기리는 기념물이라고 전하나 아무런 표시가 없다. 선바위가 위치한 무등리는 약 350년 전 개척 당시...
-
조선 후기 구미 지역 출신 장현광이 입암(立巖) 주변의 열세 가지 경물을 연작하여 쓴 한시.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자는 덕회(德晦), 호는 여헌(旅軒)이다. 여러 차례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학문 연구에만 전심하였다. 연작시(聯作詩)란, 흔히 한 명의 작가가 하나의 주제 아래 내용상 관련 있는 시를 잇달아 쓴 것을 말하는데 「입암십삼영」 역...
-
조선 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입지(立之), 호는 우암(愚庵). 증조부는 최치운(崔致雲), 할아버지는 최해(崔海), 아버지는 최노(崔魯)이다. 부인은 선산김씨(善山金氏) 참봉 잠(箴)의 딸이다. 1591년(선조 24) 식년 문과에 갑과 2등으로 급제하였다. 예조좌랑(禮曹佐郞)을 역입하였다. 진보현감으로 있을 때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이 추앙하였다....
-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봄이 왔음을 알리는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 입춘은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로서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있으며, 새해를 상징한다. 보통 양력으로는 2월 4일이나 5일에 해당한다. 입춘은 새해 첫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이기 때문에 농경의례를 비롯한 다양한 민속행사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모든 행복을 나타내는 글귀를 적은 입춘첩(立春帖)을 대...
-
불천위(不遷位)는 말 그대로 옮기지 않는 위패를 말한다. 통상 4대봉사로 정착된 이후에는 5대조가 된 조상의 위패를 그 묘소에 가져가 묻는다. 이를 친진(親盡)이라고 한다. 하지만 유명한 인물의 경우 5대 이상이 되어도 그 위패를 봉안하고 후손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제사를 지내도록 하는 것이다. 이들 불천위의 자격을 획득하게 되는 인물들의 공적은 『예서』의 표현을 빌리면 공존사직(...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잉어에 여러 가지 부재료를 넣고 만든 찜. 『동의보감(東醫寶鑑)』에 의하면 잉어는 소변을 잘 나가게 하고 부은 것을 내리며 기를 내리고 태아를 안정시킨다. 또한 임산부의 몸이 붓는 것을 치료하는 데 쓰인다고 한다. 잉어를 『동의보감』과 『재물보(才物譜)』에서는 리어(鯉魚),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와 『전어지(佃漁志)』에서는 리어(鯉魚)라고 하였다. 기원전 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