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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동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본래 몽대면의 소재지였으나 1914년 국도가 신설됨에 따라 동사무소가 적림리로 옮겨져 마지막 읍이라 하여 말읍(末邑)이라고 한다. 동곡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옛날에 질곡부곡(秩谷部曲)이 있었다. 우베틀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시루봉, 비재봉을 잇는 능선을 따라 북동쪽은 경사가 급한 반면 남서쪽은 경사가 완만한 구릉성 산지 지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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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구평동 대원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불. 한 돌에 광배(光背)와 좌상을 같이 조각하였다. 불두는 마멸이 심한 편으로 상단이 파괴된 것을 마을 주민들이 시멘트로 접합시켜 놓았다. 육계는 높고 두툼하며 상호는 원만하나 눈, 코, 입 등에 마멸과 파손이 심한 상태이다. 어깨 폭은 좁으며 상반신은 전체적인 비례가 길게 표현되어 있다. 법의는 우견편단(右肩偏袒)이며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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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가장 큰 사회조직은 새마을회인데 회원이 100여 명에 이른다. 새마을회는 1960~1970년대 새마을운동 시절 마을금고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그 기원이다. 당시 절미운동을 통해 자금을 모았으며, 후에 마을금고가 신용금고로 합병되고, 동리별로 있던 협동조합이 단위조합으로 합병될 때, 마을의 자금을 마을 이장 관할 아래 ‘새마을회’라는 명칭으로 바꾸고, 인력만 합병토록 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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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신에게 기원하는 신앙 행위. 마을신앙은 그 범주가 대체로 마을 단위로 이루어지는 공동체 의례들이라 할 수 있다. 마을 공동체 의례로서 가장 일반적인 신앙이 동제이고, 이외에 기우제도 마을신앙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구미 지역에서 기우제는 마을 단위에서부터 지역의 지방 수령까지 지냈다는 기록들이 보인다. 마을 단위의 기우제는 여러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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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의 장씨들이 문중 성원으로서 참여하는 문중행사는 다채롭다. 신동에 위치한 양양재에서 모시는 석채에서부터 시조제의 참여에 이르기까지 문중의 현조를 모시는 향사가 연중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각종 행사에 참여하여 인동장씨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랑스러운 조상의 후예라는 긍지를 갖게 된다. 특히 석채라는 형식의 조상 모시기가 눈길을 끈다. 통상 불천위로 모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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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생산은 해발 406m의 낮은 산이지만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다. 마주보는 금오산(976m)과 함께 지역 일대에서 예로부터 중요한 산으로 여겨왔다. 낙동강 쪽에서 산을 바라보면 산 정상이 일(一)자로 보여 ‘방티산’이라 불렸다고 한다. 비교적 작은 산이지만 구미시 인동, 장천면, 칠곡군 가산면에 걸쳐 있으며, 단애와 절벽이 둘러친 곳이 많아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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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 정남쪽에 위치한 자연마을. 남산이라는 이름이 생긴 것은 조선 세종 때로 추측되고 있다. 인의동은 조선시대 인동부, 인동현의 중심지였으며 유학의 용어인 오상(五常), 즉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남산은 옥산이라고도 하는데, 인동장씨 남산파조가 조선 전기에 종가에서 분가하여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전하며 인동장씨 종택이 있다. 임진왜란 때 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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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월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조선 고종 때 참봉을 지냈고 문장과 행실에 사표가 되어 크게 존경을 받던 소강 김후가 을사늑약 이후 일본에 항거하는 마음으로 이 곳에 와서 만력동이라 하고 뜻있는 선비와 함께 나라가 망함을 슬퍼하며 나라의 장래를 걱정했다고 한다. 만력은 중국의 연호로서 이 곳은 일본의 정치가 미치지 않는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만력동은 북으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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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월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조선 고종 때 참봉을 지냈고 문장과 행실에 사표가 되어 크게 존경을 받던 소강 김후가 을사늑약 이후 일본에 항거하는 마음으로 이 곳에 와서 만력동이라 하고 뜻있는 선비와 함께 나라가 망함을 슬퍼하며 나라의 장래를 걱정했다고 한다. 만력은 중국의 연호로서 이 곳은 일본의 정치가 미치지 않는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만력동은 북으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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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에 있는 초당. 조선시대 학자인 유익휘(1629~1698)가 학문을 연구하고 후진 양성을 위해 1680년대에 지었다. 원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마령리의 가르편마을에 있었는데 1987년 임하댐 수몰지역에 편입되어 현재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 크기의 팔작지붕집이다. 평면 구성을 보면 칸 중앙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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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一善). 자는 선장(善長), 호는 만성재(晩惺齋). 돈봉(遯峰) 김녕(金寧)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김용응(金龍應)이다. 김상원은 1800년(정조 24)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지평·정언 등을 지냈다.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 문하에 학문을 배웠으며, 평소에 의지가 굳고 덕을 많이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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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지화(至和), 호는 만오(晩悟). 할아버지는 김경(金澃)이고, 아버지는 김하량(金廈樑)이며, 장인은 권기(權愭)이다. 김원섭(金元燮, 1640~1710)은 1669년(현종 10) 생원이 되고, 1672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헌부에 들어갔다.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남인이 실세하자 관직에서 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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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공익(公益), 호는 만오(晩悟). 박수홍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박선호(朴善浩)이다. 박래겸(朴來謙, 1780~1842)은 1809년(순조 9) 증광문과에 병과 23등으로 급제하여 이후 벼슬이 호조참판과 예조참판에 이르렀다. 1829년 영의정 이상황(李相璜)이 심양정사(審陽正使)로 갈 때 서장관으로 임명되어 수행하였고,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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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백수(伯修), 호는 만하(晩霞). 윤의지(尹誼之)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윤연(尹堧), 아버지는 지평 윤세희(尹世喜), 어머니는 이동규(李同揆)의 딸이다. 윤유는 1718년(숙종 44) 문과에 급제하고 여러 언관직을 거쳐 경종 때 수찬, 부교리, 이조좌랑, 동래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영조 때 대사간에 승진한 후 부제학, 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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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태래(泰來), 호는 만회당(晩悔堂). 덕령부군 장안세(張安世)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극명당(克明堂) 장내범(張乃範), 어머니는 진위장군 이운배(李雲培)의 딸로 한산이씨(韓山李氏)이다. 장경우는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21년(광해군 13) 인목대비의 폐모론이 일어나자 영남 유생들과 상소하여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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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신평동에 있는 전통문화 예술단체. 구미놀이패말뚝이는 마당극에서 출발하여 풍물, 탈춤, 소리 등을 공연하고 있으며 기량 중심의 보여주기 전문 공연단체가 아니라 관객과 살아있는 놀이판을 열어가는 순수 전통문화 놀이패이다. 풍물, 탈춤, 소리 등 우리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놀이패 활동을 통해 우리문화의 저변을 넓히고 우리문화가 가진 장점을 계승 발전시킴과 동시에 소비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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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월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조선 고종 때 참봉을 지냈고 문장과 행실에 사표가 되어 크게 존경을 받던 소강 김후가 을사늑약 이후 일본에 항거하는 마음으로 이 곳에 와서 만력동이라 하고 뜻있는 선비와 함께 나라가 망함을 슬퍼하며 나라의 장래를 걱정했다고 한다. 만력은 중국의 연호로서 이 곳은 일본의 정치가 미치지 않는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만력동은 북으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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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송산리에 위치한 산. 말바우산은 일명 용솟음산이라고도 한다. 옛날 용이 솟은 흔적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나, 현재의 모습은 분화구 모양으로 깊이가 약 3m 정도 된다. 말바우라는 이름은 용솟음산 옆 봉우리의 바위가 말머리와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좌베틀산의 연봉이 북동쪽으로 이어져 송산리 뒷산을 이루고 있고, 그 맞은편 매봉에서 정실소유지의 동쪽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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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오가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봉촌(鳳村)은 풍수설에 봉황새가 앉은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임진왜란 당시 향토방위로 원통산에 성을 쌓고 이 곳에서 말을 길렀다 하여, 혹은 지나가는 행객들이 말을 먹이면서 쉬어 가던 곳이라 하여 말밭·말바티·말밭티라 하였다. 또한 1895년 김판식이라는 선비가 옹기를 굽고 옹기점을 차렸다 하여 점촌이라 하기도 하고,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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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오가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봉촌(鳳村)은 풍수설에 봉황새가 앉은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임진왜란 당시 향토방위로 원통산에 성을 쌓고 이 곳에서 말을 길렀다 하여, 혹은 지나가는 행객들이 말을 먹이면서 쉬어 가던 곳이라 하여 말밭·말바티·말밭티라 하였다. 또한 1895년 김판식이라는 선비가 옹기를 굽고 옹기점을 차렸다 하여 점촌이라 하기도 하고,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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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오가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봉촌(鳳村)은 풍수설에 봉황새가 앉은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임진왜란 당시 향토방위로 원통산에 성을 쌓고 이 곳에서 말을 길렀다 하여, 혹은 지나가는 행객들이 말을 먹이면서 쉬어 가던 곳이라 하여 말밭·말바티·말밭티라 하였다. 또한 1895년 김판식이라는 선비가 옹기를 굽고 옹기점을 차렸다 하여 점촌이라 하기도 하고,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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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동곡리는 새마(일명 곽골[冠谷]), 마상골[馬上谷], 오리골[일명 오리(梧里)], 지리실[際里, 일명 웃마] 네 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촌동과 질곡동의 이름을 따서 동곡동이라 하였다. 본래 선산군 몽대면 소재지였으나 1914년 국도가 건설되면서 면사무소가 적림리로 옮겨 가자 마지막 읍이라 하여 말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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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동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본래 몽대면의 소재지였으나 1914년 국도가 신설됨에 따라 동사무소가 적림리로 옮겨져 마지막 읍이라 하여 말읍(末邑)이라고 한다. 동곡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옛날에 질곡부곡(秩谷部曲)이 있었다. 우베틀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시루봉, 비재봉을 잇는 능선을 따라 북동쪽은 경사가 급한 반면 남서쪽은 경사가 완만한 구릉성 산지 지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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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말잇기 놀이를 하며 부르는 유희요. 「말이음 노래」는 제목 그대로 앞의 말을 받아 뒤의 내용으로 이어주는 노래이다. 끝말 잇기처럼 언어를 가지고 놀이를 하는 대표적인 유희요이다. 천혜숙·조형호가 1984년 7월 11일 구미시 고아읍 다식리 모산에서 김말임(여, 당시 59세)에게서 조사·채록하였다. 「말이음 노래」는 ‘영감영감 나무하로 가세’로 이야기를 시작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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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성인 남자가 상투를 틀 때 머리털을 위로 걷어 올리기 위해 이마에 두르는 건. 망건은 중국의 당나라에서 사용하던 것이 명나라 때 우리나라에 전파되었다. 처음에는 실을 엮어 만들었으나 나중에는 말총과 코끼리 꼬리털, 머리카락 따위로 만들기도 했다. 보통은 말총을 직사각형으로 엮어 만든다.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발견된 유물은 말총으로 만든 것이다. 망건의 윗부분인 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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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겸진이 구미 지역의 금오산을 바라보며 느낀 심회를 읊은 한시. 하겸진(河謙鎭, 1870~1946)은 한국의 유학자로 자는 숙형(叔亨), 호는 회봉(晦峯)·외재(畏齋)이다. 「망금오산유감」은 하겸진이 금오산을 바라보며, 세월의 흐름에 따라 야은 길재의 자취가 사라져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지은 칠언 율시로 『회봉집(晦峯集)』에 수록되어 있다. 비 온 뒤 금오산 빛은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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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구미 발갱이들 소리」 중에 부르는 노동요. 「망깨소리」는 「구미 발갱이들 소리」 10과장 중 하나로 ‘망깨’라고 하는 쇳덩이를 들어 올려 말뚝을 박으면서 하는 노래이다. 망깨에 여러 가닥의 줄을 달아서 4~5명이 그 줄을 당겼다가 놓는 일을 되풀이하면서 말뚝을 박는다. 사설 앞부분에는 망깨를 어떤 방식으로 하면 말뚝이 제대로 박히는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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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구미 발갱이들 소리」 중에 부르는 노동요. 「망깨소리」는 「구미 발갱이들 소리」 10과장 중 하나로 ‘망깨’라고 하는 쇳덩이를 들어 올려 말뚝을 박으면서 하는 노래이다. 망깨에 여러 가닥의 줄을 달아서 4~5명이 그 줄을 당겼다가 놓는 일을 되풀이하면서 말뚝을 박는다. 사설 앞부분에는 망깨를 어떤 방식으로 하면 말뚝이 제대로 박히는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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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 때 구미지역에서 활약한 의병장.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는 경상남도 의령 출신으로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금오산성 과 천생산성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다.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계수(季綬), 호는 망우당(忘憂堂). 아버지는 황해도관찰사 곽월(郭越)이고, 부인의 외할아버지는 조식(曺植)이며, 동서는 동강 김우옹(金宇顒)이다. 곽재우는 1585년(선조 18) 별시에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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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선산군 망장면에 속한 지역으로, 망장이란 비봉산의 봉황새가 날아가지 못하도록 그물을 쳐서 못 가게 한다는 뜻에서 그물 망(網)자와 베풀 장(張)을 써서 지은 이름이다. 1400년경(정종 2) 신천강씨, 15세기 초에 울산오씨, 15세기 말에 덕산황씨가 입향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대망리는 15세기 초 망장방 지역으로 상망장동리, 중망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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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신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1775년(영조 51) 김규진(金圭鎭)이 경상북도 안동군 임동면 망천리에 건립하였다. 1964년 이재천이 매입하였고 1986년 다시 현 소유자가 매입하여 단포고택(丹浦古宅)이라 부른다. 안동시 임동면 망천리가 임하댐 수몰지역에 편입되어 1987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정침은 정면 4칸, 측면 5칸 크기의 ㅁ자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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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2동 이주민마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활성화된 비공식적 조직은 ‘신부·낙계 망향보전회’이다(이하 망향보전회라고 함). 망향보전회는 2004년에 발족하였다. 이주민들이 망향에 대한 사회문화적, 경제적 상실감을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2004년 5월 1일에 결성한 ‘망향정건립추진위원회’가 직접적인 모태가 되었다.‘망향정건립추진위원회’는 망향정과 망향비를 건립하고 해체되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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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예강리에 있던 조선 후기 서원. 고아읍 예강리 강정 매학정 부근에 있었다. 1843년(헌종 9)에 중건하여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아우인 옥산(玉山) 이우(李瑀)를 향사하였다. 1868년(고종 5) 훼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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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매그나칩 반도체의 비메모리 제조 공장. 매그나칩 반도체는 소비 가전 제품과 통신 장비에 사용되는 혼성 신호 및 디지털 멀티미디어 반도체를 전문으로 하는 종합 반도체 회사로, 크게 3가지 제품 분야와 수탁 생산(Foundry) 사업을 하고 있다. CMOS 이미지 센서(CIS) 제품과 디스플레이 구동 IC 제품, 그리고 다양한 전자 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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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일선. 자는 창중(昌中), 호는 매돈(梅墩). 검교위대장군 김창서(金昌緖)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인의(引儀) 김몽정(金夢丁)이다. 김번은 1558년(명종 13) 진사가 되었으며, 간신들이 국정을 농단하는 것을 보고 진정사(陳情辭)를 짓고 스스로 관직을 버렸다. 이후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면서 후진 양성에 힘쓰다가 임진왜란을 당하여 청송(靑松)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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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오로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가좌골은 영남의 거유로 유명한 직제학 김성미가 낙향하여 임진왜란 때인 1582년 소실된 오로재를 지어 제자들을 기른 곳이다. 당시 김성미의 문하생이 되기 위해 학생들이 구름같이 모여 들었는데, 이 학생들이 오로재를 가리켜 “즐거움을 더해 주는 영광스러운 자리”라고 말하므로, 이에 오로재가 있는 마을을 한자로 가좌골[佳座谷]이라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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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백현리에 위치한 산. 매봉은 산이 소리개(매)가 앉아 있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는 응봉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매봉은 베틀산과 동서로 마주보고 있다. 해발고도 180m에서 발원하여 곰재 소류지에 모였다가 곰재·봇들 등을 지나 백현천·토골천 등 여러 작은 하천들과 합류하여 북으로 흐르는 산간 하천인 곡정천을 사이에 두고 베틀산과 동서로 마주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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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다식리에 위치한 산. 매가 앉아 있는 형국이라 하여 매봉산이라 부른다. 고아읍 다식리 마을 뒷산인 매봉산은 남쪽으로 완만하고 북쪽으로 급한 경사를 가진 해발고도 221m의 구릉이다. 동쪽은 낙동강에 의해 형성된 침식애가 발달하여 경사가 급하며, 낙동강 좌측 문량들과의 사이에 하중도가 형성되어 있어 습지가 발달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가진다. 산의 남쪽에는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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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선산읍 내고리와 이문리를 잇는 다리. 이곳의 법정동명은 내고리이나 바로 인근에 매화가 많이 나는 마을인 매실골의 이름을 따서 매실교라고 하였다. 길이는 72m, 폭은 10m, 높이는 3.5m이다. 경간(徑間, 지주 교각) 수는 6개이다. 상행과 하행선 각기 1차선 차도와 보도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상부 구조 형식은 강화 콘크리트 슬라브교(RCS)이고, 하부 구조 형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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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동석(金東錫)은 호가 매암(梅巖)이며, 순충공(順忠公) 김선궁(金宣弓)의 32세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장사랑 김지복(金志複)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호조참판 김기열(金基烈)이다. 할아버지는 숭인전참봉 김진규(金鎭奎)이며, 아버지는 농산중추원참의관 김희수(金熙洙)이며, 어머니는 단양장씨(丹陽張氏) 장옥선(張玉善)이다. 김동석은 대구협성학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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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인. 본관은 덕산(德山). 자는 태수(鮐叟), 호는 고산(孤山) 또는 매학(梅鶴). 할아버지는 경주부윤 황필이고, 아버지는 진사 황옥(黃沃)이다. 1521년(중종 16)에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대망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진사가 되어 여러 번 벼슬에 천거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학문과 서도에만 정진하여 서예의 대가가 되었으며 특히 초서에 능했다. 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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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1년(선조 4) 이우가 구미 지역의 매학정을 돌아보고 지은 한시. 조선 전기의 서화가인 이우(李瑀, 1542~1609)의 자는 계헌(季獻), 호는 옥산(玉山)·죽와(竹窩)·기와(寄窩)이다. 신사임당의 넷째 아들로 이이(李珥, 1536~1584)의 동생이다. 거문고, 시(詩), 서(書), 화(畫)에 능하여 사절(四絶)이라 불렸다. 이우는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 지역으로 장가를 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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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예강리에 있는 조선 전기 황기로의 유적지. 황기로(黃耆老)는 조선의 명필가로 진사에 합격하여 별좌라는 벼슬을 지냈다. 필법이 뛰어나 필성(筆聖)이라 불렸다. 이 지역은 본래 황기로의 조부 상정공 황필의 만년 휴양지이었으며, 황기로가 조부의 뜻을 받들어 정자를 짓고 매화를 심고 학을 길러 매학정이라 이름 붙였다고 전한다. 뒤에 공의 사위인 옥산(玉山) 이우(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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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곤양(昆陽). 자는 경운(景雲), 호는 매헌(梅軒). 경상남도 하동 출신이다. 할아버지는 증호조판서 정의걸(鄭義傑)이고, 아버지는 좌찬성(左贊成) 정성호(鄭成浩)이다. 1586년(선조 19) 무과에 급제하였다. 왕명에 따라 정무수(鄭茂壽)를 정기룡(鄭起龍)으로 개명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방어사 조경을 따라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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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공단동에 있던 자연마을. 금오산이 매화나무의 원줄기라면 이 마을은 끝가지에 속하여 매호꽃이 핀 형태 같다 하여 매화동이라고 불렀다 전한다. 낙동서원에서 여헌 장현광이 제자들에게 강습 중 강 건너편 밭(매호동)을 가리키며 저 곳에 마을을 이루고 살면 부촌이 되겠다고 하여 그로부터 차츰 모여들어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실제 쌀 천석 하는 일선(一善) 김씨의 거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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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공단동에 있던 자연마을. 금오산이 매화나무의 원줄기라면 이 마을은 끝가지에 속하여 매호꽃이 핀 형태 같다 하여 매화동이라고 불렀다 전한다. 낙동서원에서 여헌 장현광이 제자들에게 강습 중 강 건너편 밭(매호동)을 가리키며 저 곳에 마을을 이루고 살면 부촌이 되겠다고 하여 그로부터 차츰 모여들어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실제 쌀 천석 하는 일선(一善) 김씨의 거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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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 불천위 사당이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응지(應之), 호는 휴휴당(休休堂).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세종조부터 성종조까지 살았던 문인으로 문장과 글씨에 능했으며, 이름난 재상이었다. 1471년(성종 2) 익성 부원군(益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증조할아버지는 홍유용(洪有龍), 할아버지는 증 영 중추부사 홍덕보(洪德輔)이고, 아버지는 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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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등2리와 원리에 위치한 산. 머무산은 무을면 무등2리(머무골)와 원리의 뒷산으로, 낮은 해발고도로 아무 쓸모없이 머물러 있는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 아래 머무골은 1580년 선산태동에서 황경헌(黃景憲)이라는 사람이 이주하여 개척하였으며, 당시 주위 환경이 좋고 산세가 수려하여 무동이라 하였으며, 그 후 무등리라 개칭하였다. 원리는 약 50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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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향랑이라는 아낙이 강물에 몸을 던지며 불렀다는 노래. 「산유화」는 조선 숙종 때 상형곡에 사는 향랑이라는 아낙네가 시집에서 버림받고 친정으로도 가지 못해 수절하다가 강물에 몸을 던지기 전에 남겼다는 노래이다. 일반적으로 「산유화」라고 하면 농부들이 김매며 부르는 경상도 지역을 본원지로 한 노동요이다. 구미에서 채록된 것은 독특한 것이다. 「산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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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메밀을 농사하여 음식을 만들기까지를 표현한 민요. 「메밀노래」는 메밀을 많이 재배하던 과거에 부녀자들이 메밀을 심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거두어들여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과정을 읊은 부녀요(婦女謠)이다. 구미시에서는 두 곡의 「미물 노래」가 채록되었다. 첫 번째는 천혜숙·조형호가 1984년 7월 11일 구미시 고아읍 다식리 모산에서 김말임(여, 당시 59세)에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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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면여(勉餘), 호는 양계(陽溪). 아버지는 이상규(李尙規), 장인은 황준경(黃浚瓊)이다. 형은 이암(李馣)이다. 이하는 1654년(효종 5) 식년문과에 갑과 2위로 급제하여 동부승지, 장령, 형조참의, 강진현감, 동래부사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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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초명은 대진(大進), 자는 면재(勉哉)·학안(學顔), 호는 춘간(春磵)·한사(寒沙)·정와(靜窩). 증조할아버지는 강인수(姜仁壽)이고, 할아버지는 강세탁(姜世倬)이다. 아버지는 사간 강익문(姜翼文)이며, 어머니는 합천이씨(陜川李氏)로 이후신(李後臣)의 딸이다. 강대수는 1610년(광해군 2)에 진사가 되고, 1612년(광해군 4) 증광문과에 을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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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괴곡리에 있는 조선시대 시인들이 즐겨 찾던 명소. 밀양 사람 용암(龍巖) 박운(朴雲)이 즐겨 머물던 곳이다. 그밖에 송당 박영(朴英), 회재 이언적(李彦迪), 진락당 김취성(金就成), 퇴계 이황(李滉), 두곡 고응척(高應陟), 기촌 송순(宋純), 여헌 장현광(張顯光) 등 여러 사람들이 시를 읊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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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곡리는 가마실(일명 가매실, 부곡동), 서당뜸, 솔방재, 수명동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명곡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수명동과 부곡동의 끝 음절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가마실은 명곡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모양이 가마솥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가마실의 한자 표기인 부곡(釜谷)으로도 불린다. 서당뜸은 가마실 동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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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명곡리 가마실마을에서 음력 1월 9일 또는 14일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명곡리 가마실마을 동제를 지내는 날짜는 동네에서 날을 잘 받는 사람에게 물어서 결정한다. 제삿날은 주로 정월 9일이나 14일로 정하고, 그 날 12시 전에 골맥이 산신령님이 깃든 ‘박골’의 당목에서 마을 공동으로 제사를 지냈다. 명곡리의 중심마을인 가마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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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에 자리한 대혜곡의 폭포. 금오산 정상 근처 산성 안에는 1595년경 임진왜란 당시 만들어진 아홉 개의 우물[九井]과 일곱 개의 못[七澤]이 있어 거기서 비롯된 큰 계곡을 대혜계곡이라 하였고, 그 곳에서 형성된 폭포를 대혜폭포라고 하였다. 또 그 물이 여울을 이루어 구미 지방의 용수 공급에 큰 혜택을 주었다는 의미에서 대혜폭포라 불렸다는 설도 있다.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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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옥관리 대둔사에 있는 조선시대 불전.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옥관리 1090번지[산촌옥관로 691-78] 복우산 동쪽 중턱에 있는 대둔사 경내, 대웅전 북측에 위치한다. 대둔사는 446년(눌지왕 30)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설이 있으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1231년(고종 18) 몽고족의 침략으로 소실된 후 충렬왕 때 왕자 왕소군(王小君)이 출가하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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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송산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옛날 장구 소리를 상징하는 동구당이라 하였으나, 그 후 말이 변하여 중구당으로 되었다. 혹은 명산(明山)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선지도사가 이 곳 산세가 깨끗하다고 한 데서 연유한 것이라고 하며 중구당 놀이터가 이름한 것이다. 마을 앞에 송산천이 흐르고 북쪽에 명산이 위치한다. 군위군 소보면과의 경계지역에 위치한다. 현재는 송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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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명서(命瑞). 박수홍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박문호(朴文浩)이다. 박래영(朴來永, 1793~1846)은 1823년(순조 23) 무과에 급제하여 이후 벼슬이 충청도수군절도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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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명세(鳴世), 호는 소매당(訴梅堂).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아버지는 청천당(聽天堂) 장응일(張應一), 어머니는 목사 송광정(宋光廷)의 딸로서 야로송씨(冶爐宋氏)이다. 장영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으며 할아버지 여헌 장현광에게서 학문을 이어받았다. 1662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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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구미 출신의 유생이자 의병장.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명술(明述), 호는 와유당(臥遊堂)·소암(巢巖). 용암(龍巖) 박운(朴雲)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건재(健齋) 박수일(朴遂一)이며 어머니는 평양조씨(平壤趙氏) 인의(引儀) 조인복(趙仁復)의 딸이며, 장인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이다. 박진경은 1596년(선조 29) 16세에 장인 장현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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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 수다사에 있는 고려시대 삼층석탑. 연악산(淵岳山)에는 골짜기마다 중암(中庵), 굴암(窟庵), 전강대(全剛臺) 등 많은 암자 터가 유존하며, 그중에서도 명월당 사지가 제일 큰 절터라고 하는데, 구한말에 폐사되었다. 석탑의 현 상태가 기단이 없고, 탑신 부재도 결실되었으며, 잔존하는 부재도 심하게 파손된 점으로 보아 지금의 이곳이 원래 위치가 아닌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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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4년~1597년 구미 지역 출신의 최현이 우국연주(憂國戀主)를 노래한 가사. 최현(崔晛, 1563~1640)은 조선시대의 문신으로 자는 계승(季昇), 호는 인재(訒齋)이다. 임진왜란 때 구국책을 올려 원릉참봉이 되고, 광해군 때 천도론에 반대하여 계획을 중단하게 하였다. 「명월음」은 최현의 문집 사본인 『인재속집(訒齋續集)』제8권에 「용사음」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명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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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고유의 명절에 만들어 먹는 음식. 명절음식은 절식(節食)이라고도 한다. 명절은 생산 주기에 따라 생산을 미리 예측하거나 생산을 축원하고, 수확에 감사하기 위하여 신에게 의례를 행하거나 점을 치며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뒷풀이 형식으로 음식을 바치고 노는 기간이다. 농경 사회에서는 농업 생산의 주기에 따라 마디마디에 명절을 삽입하여 왔고, 어로 사회에서는 어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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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명중(明仲) 또는 이중(彛仲), 호는 역락당(亦樂堂). 할아버지는 노희식(盧希軾)이고, 아버지는 노수성(盧守誠)이며,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로 장열(張烈)의 딸이다. 노경륜(盧景倫, 1566~1655)은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학문이 뛰어나고 기상이 온화하여 당시 사우(師友)들의 모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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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신천. 자는 명지(明之), 호는 죽간(竹磵). 증조할아버지는 강중진(康仲珍)이고, 아버지는 강유선(康惟善)이다. 강복성은 1579년(선조 12) 사마시에 합격하고, 참봉·직장·찰방 등을 지냈다. 1595년(선조 28) 유성룡(柳成龍)의 천거로 장수현감이 되었다가 김제군수로 옮겼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명나라 군사와 합세하여 남원에 주둔한 왜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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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세계를 올곧고 비옥하게 가꾸며 사는 것은 아름답다. 더구나 남들이 근접하기 어려운, 가치 있는 것을 위해 한평생을 바치는 일은 아름답다 못해 숭고하다. 판소리 명창 가운데 이런 삶을 살았던 명창이 적지 않지만 근래의 명창 중에서 박록주만큼 그렇게 산 이도 흔치 않다. 수많은 소리꾼 중에서 어떤 소리꾼을 명창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다음과 같은 조건을 두루 갖추어야 명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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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명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명곡리 가마실마을에 있으며,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앞에 명호정을 두고 뒤로 명천재와 영모사를 나란히 배치하였다. 명호정은 정면 4칸, 측면 1칸 크기의 팔작지붕집이다. 평면은 중앙의 우물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1칸과 2칸의 온돌방을 두었으며, 좌측 온돌방 앞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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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 속하는 법정동. 사곡동은 사곡(砂谷), 갓골, 운막골, 골안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사곡은 원래 모입곡(謀立谷)과 한 마을로, 비가 오면 낙동강이 범람하여 모래밭이 되자 모래와 결부시켜 모입곡을 모래실이라 불렀다. 이후 법정동으로 분리될 때 모래실을 한자로 표기하여 사곡(沙谷)이라 하였다. 갓골은 마을 가에 한 집, 두 집 모여 새로 형성된 마을이란 뜻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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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반복적인 손동작을 하며 모래집 짓기 놀이를 할 때 부르는 전래 동요. 「두꺼비 노래」는 모래집을 지으면서 부르는 노래로서, 전래 동요 중 대표적인 노래이다. 1993년 7월 21일에 구미시 산동면 성수2리 수부창에서 구순태(여, 1928년생)가 가창한 것을 채록하였다. 「두꺼비 노래」는 전국적으로 알려진 노래지만, 지역에 따라 혹은 가창자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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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신라 최초의 불교신자. 모례(毛禮)는 눌지왕 때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신라로 온 고구려의 승려 묵호자(墨胡子)를 집안에 굴을 파서 3년 동안 숨겨주었다. 소지왕 때에는 고구려의 승려 아도(阿道)가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신라로 오자 자신의 집에 머무르게 하고, 모례(毛禮)는 신라 최초의 불교신자가 되었다. 그때 모례의 누이 사씨(史氏)도 아도에게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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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신라 최초의 불교신자. 모례(毛禮)는 눌지왕 때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신라로 온 고구려의 승려 묵호자(墨胡子)를 집안에 굴을 파서 3년 동안 숨겨주었다. 소지왕 때에는 고구려의 승려 아도(阿道)가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신라로 오자 자신의 집에 머무르게 하고, 모례(毛禮)는 신라 최초의 불교신자가 되었다. 그때 모례의 누이 사씨(史氏)도 아도에게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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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구미 발갱이들 소리」 중에 부르는 노동요. 「모심기 노래」는 「구미 발갱이들 소리」 10과장 중 하나로 1993년 7월 23일 MBC ‘한국민요대전’ 제작팀에서 구미시 지산2동 어낙에서 백남진(남, 1924년생)과 박대복(남, 1918년생) 외 몇 명에게 채록한 것이다. 「모심기 노래」는 모내기가 시작되면 동네 사람들이 두 패로 나뉘어 소리를 한 대목씩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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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에 있는 장현광이 살던 조선 후기 가옥. 모원당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의 가옥이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거처할 곳이 없자, 문인 장경우를 비롯한 문도와 친척들이 협력하여 1606년에 건립하였다. 1607년에 건립한 청천당은 장현광의 아들인 청천당 장응일(1599~1676)이 건립한 당우로서 학문을 닦고 교유의 장으로 삼았던 곳이다.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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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공이 살림 난 집은 5대를 이어오다가 임진왜란 때에 완전히 소실되었다. 그래서 여헌선생은 1592년 4월에 피란을 나가서 난리가 평정되어도 고향에 돌아올 수가 없어서 15년 동안이나 유랑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1606년에 만회당(晩悔堂)공이 주동이 되어 모원당(慕遠堂)이 준공되자 비로소 옛터에 안주하게 되었다. 이때 선생의 식구는 선생 내외분과 7세된 아들 응일(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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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풍년을 기원하는 모의농경(模擬農耕) 풍습. 모의 추수는 한 해의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에서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행하는 모의적인 수확 행위를 일컫는다. 이를 모의수확(模擬收穫)·가농작(假農作)·내농작(內農作)·볏가릿대 세우기·보리깃대 세우기·보리타작 등으로도 부른다. 정월 14일 혹은 15일에 잿간이나 두엄더미 위에 수수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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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풍년을 기원하는 모의농경(模擬農耕) 풍습. 모의 추수는 한 해의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에서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행하는 모의적인 수확 행위를 일컫는다. 이를 모의수확(模擬收穫)·가농작(假農作)·내농작(內農作)·볏가릿대 세우기·보리깃대 세우기·보리타작 등으로도 부른다. 정월 14일 혹은 15일에 잿간이나 두엄더미 위에 수수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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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 속하는 법정동. 사곡동은 사곡(砂谷), 갓골, 운막골, 골안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사곡은 원래 모입곡(謀立谷)과 한 마을로, 비가 오면 낙동강이 범람하여 모래밭이 되자 모래와 결부시켜 모입곡을 모래실이라 불렀다. 이후 법정동으로 분리될 때 모래실을 한자로 표기하여 사곡(沙谷)이라 하였다. 갓골은 마을 가에 한 집, 두 집 모여 새로 형성된 마을이란 뜻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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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원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모흥 또는 모종골은 박씨가 제일 먼저 지금의 모종골로 이사를 와서 터를 잡았으며 박을 모종하듯 박씨가 먼저 왔다고 모종골이라 한다. 그 외에 초마골, 못골, 탑골이 있는데 초마골은 풀이 많은 골짜기이며, 못골은 못과 물이 많은 곳이고, 탑골은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머무산을 등지고 남쪽은 김천시 감문면과 이웃하여 동으로는 백자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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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수다사에서 내려오는 개울물이 많았으나 들이 넓어서 전답에 물을 대었으나 언제나 이틀이 되어야 돌아오므로 물이 모자란다는 뜻으로 모지래기라 하였다. 동으로 오가리와 접하고 서로는 안곡리와 접하며 남에는 마을 앞 안곡저수지가 있으며 낚시터로 유명하다. 북에는 연악산 아래 99개의 깊은 골짜기가 뻗어내린 곳에 신라 고찰 수다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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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모내기를 하기 전에 못자리에서 모를 찌면서 부르는 노동요. 모찌는 일은 적당히 자라난 모를 논에 옮겨 심기 위하여 뽑아내는 작업인데, 모를 모숨모숨 뽑아내는 것을 ‘모찐다’라고 한다. 「모찌는 소리」 사설에도 “모를 찌세 모를 찌세 이 모판에 모를 찌세”라고 하여 일의 형태가 그대로 노래로 불린다. 1993년 7월 23일 MBC ‘한국민요대전’ 제작팀에서 구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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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모내기를 하기 전에 못자리에서 모를 찌면서 부르는 노동요. 모찌는 일은 적당히 자라난 모를 논에 옮겨 심기 위하여 뽑아내는 작업인데, 모를 모숨모숨 뽑아내는 것을 ‘모찐다’라고 한다. 「모찌는 소리」 사설에도 “모를 찌세 모를 찌세 이 모판에 모를 찌세”라고 하여 일의 형태가 그대로 노래로 불린다. 1993년 7월 23일 MBC ‘한국민요대전’ 제작팀에서 구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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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일선. 자는 계명(季明), 호는 모화재(慕華齋). 대장군 김창서(金昌緖)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완수재(玩睡齋) 김배(金培)이며, 아버지는 사우당(四友堂) 김구성(金九成)이다. 김선초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셨는데, 아침저녁으로 문안하고 보살핌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음식을 몸소 지어 올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묘 옆에 여막을 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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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원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모흥 또는 모종골은 박씨가 제일 먼저 지금의 모종골로 이사를 와서 터를 잡았으며 박을 모종하듯 박씨가 먼저 왔다고 모종골이라 한다. 그 외에 초마골, 못골, 탑골이 있는데 초마골은 풀이 많은 골짜기이며, 못골은 못과 물이 많은 곳이고, 탑골은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머무산을 등지고 남쪽은 김천시 감문면과 이웃하여 동으로는 백자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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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목화동냥길에 나서는 이의 행색을 주제로 하여 부르는 민요. 「목화동냥 노래」는 목화동냥 가는 사람의 행색이 초라하나, 마음은 별로 궁하지 않음을 여유롭게 표현한 노래이다. 1984년 8월 24일 최정여·박종섭·임갑랑이 구미시 무을면에서 김금순(여, 당시 66세)에게서 채록하였다. 「목화동냥 노래」는 개령 진산 넓은 들에 인생을 달관한 무명의 나그네처럼 허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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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목화를 따며 부르는 노동요이자 유희요. 「목화 따는 처녀」는 목화를 따는 처녀와 주치를 캐는 총각이 문답식으로 정분을 주고 받는 형태의 사설을 지녔는데, 이른바 ‘남녀상열지사’에 해당하는 노래이다. 1984년 7월 10일 최정여·임갑랑·박육규가 구미시 고아읍 오로리의 김분이(여, 당시 82세)에게서 채록하였다. 「목화 따는 처녀」의 지리적 배경은 황해도 구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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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유수(流水)를 저장하여 물의 과다 또는 과소를 조절하는 인공 시설. 저수지는 하천 다음으로 중요한 지표수 용수원(用水源)이다. 특히 하천에서 충분한 용수를 확보할 수 없을 때 중요한 지표수 용수원이 된다. 시설비가 비싸고 수질이 떨어지는 결점은 있으나, 풍부한 수량을 확보할 수 있고 수온도 흐르는 물보다는 높은 경우가 많아 농업 용수로 유리하다. 또한 관광 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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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상림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관골에서 북서쪽으로 약 2㎞ 떨어져 있는 마을인데 230여 년 전에 손씨가 살기 시작했고, 마을 안에 까마귀 모양의 못이 하나 있어서 오지동(烏池洞)으로 부르다가 못을 수리하고 나서 못골로 불렀다. 매봉산(350.5m)을 비롯해 주변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마을 아래 남쪽 방향으로 목곡천이 흐르고 있다. 목곡천의 하천 양안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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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임천리에 있는 저수지. 조선 초기에는 구미시 산동면 지역에 성산배씨가 주로 거주하였는데, 성종 때에 일선김씨가 고아읍 오로리(吾老里)에서 산동면 임천리로 이주하였다. 임진왜란 후인 1615년(광해군 7) 병조참지를 지낸 김녕(金寧)이 광해군의 폭정으로 벼슬을 버리고 산동면 임천리 고향에 돌아와 후학을 가르치니 김녕을 따르는 이 즉 몽도(夢徒)가 많아서 산동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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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의 금오산에 서식하고 있는 쌍떡잎식물 산형목 산형과의 여러해살이풀. 시호는 환경부 특정식물종 5등급에 해당한다. 뿌리에 사포닌과 지방유 등이 함유되어 옛부터 중요한 약제로 취급되어 왔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중국·몽골·시베리아·유럽 등지에 분포한다. 높이 40~70㎝에 이른다. 가늘고 긴 줄기 위에서 가지가 갈라진다. 뿌리줄기는 굵고 짧다. 경생엽(莖生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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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한식에 무덤을 손질하기 위하여 흙을 더 덮거나 얹어 주는 일. 한식이면 절기로 보아 완연한 봄으로, 겨우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면서 푸석푸석해진 산소의 흙을 다져 주거나 덧보태주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한식에는 묘를 손질하고 가토(加土)를 많이 행하기도 했다. 예전에 성묘와 산소 돌보기의 풍속이 유지된 데에는 한식이 식목일과 겹치며, 식목일이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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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6월 최재화가 주동이 되어 경상북도 청년들을 만주 신흥무관학교로 보낸 사건. 3·1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각지의 뜻있는 인사들은 새로운 투쟁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해평 산양리의 최재화(崔載華, 1892~1962)는 1919년 4월 2일 밤 동민들을 이끌고 고향인 해평경찰서(海平警察署) 주재소(駐在所)를 습격하였다. 또한 대구로 나가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김수길(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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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6월 최재화가 주동이 되어 경상북도 청년들을 만주 신흥무관학교로 보낸 사건. 3·1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각지의 뜻있는 인사들은 새로운 투쟁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해평 산양리의 최재화(崔載華, 1892~1962)는 1919년 4월 2일 밤 동민들을 이끌고 고향인 해평경찰서(海平警察署) 주재소(駐在所)를 습격하였다. 또한 대구로 나가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김수길(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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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경기민요 「노랫가락」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민요. 「노랫가락」은 원래 경기민요의 하나로 「무녀유가(巫女遊歌)」라고도 한다. 서울 지방 무가(巫歌)가 속요로 변한 노래 중 하나이다. 수집된 「노랫가락」은 두 사람의 가창자에 의해 불렸다. 첫 번째 「노랫가락」은 천혜숙·조형호가 1984년 7월 11일 고아읍 다식리 모산에서 홍헌악(여, 당시 64세)에게서 조사·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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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음악에 맞추어 율동적인 동작으로 감정과 의지를 표현하는 예술. 무용은 무도(舞蹈)라고도 한다. 시와 음악이 시간 속에 존재하고, 무용은 시간과 공간 속에 동시에 존재한다. 발레처럼 공간의 패턴이 주가 되는 경우도 있으며, 탭댄스처럼 시간적 리듬이 중시되는 것도 있다. 한편 발레는 음악·팬터마임·의상·장치 등을 갖추어서, 이야기나 어떤 주제를 종합적으로 표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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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등2리에 있는 수령 130년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 26m, 지름 3m까지 자란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며, 나무껍질은 회백색이고 늙은 나무에서는 나무껍질이 비늘처럼 떨어진다. 꽃은 5월에 취산꽃차례(聚繖꽃次例 : 먼저 꽃대 끝에 한 개의 꽃이 피고 그 주위의 가지 끝에 다시 꽃이 피고 거기서 다시 가지가 갈라져 꽃이 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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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에 속하는 법정리. 무등리는 무등, 가정, 유동(일명 머무골)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무등은 주위 경관이 좋고 산세가 수려하여 무동(茂洞), 마을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무동(無洞)이라 하였고, 후에 무등리로 개칭하였다. 가정은 연안전씨인 가정 전윤무(田胤武)가 태어난 곳으로 그의 호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현재 연안전씨는 없고 의령남씨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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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등리에서 음력 1월 16일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무등리 앞은 안곡천과 농경지로 형성되었고 뒤에는 산으로 이루어졌는데, 마을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무동(無洞)이라고도 한다. 무등리 동제는 음력 1월 16일에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당목에서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무등리 동제는 1970년대 후반 새마을운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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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내고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무래라는 지명유래는 마을 앞 들판의 남동쪽에 감천이라는 맑은 강물이 흐르며 옛날 이 골에 놀던 학이 마을의 북서쪽 숲에 서식처를 찾아 춤을 추며 날아왔다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무래의 남동쪽에는 감천이 흐르고, 북쪽은 쌀개산(224m)과 다른 봉우리들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마을 앞에는 내고소류지가 있고, 마을 북편의 산은 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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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계동에 있던 자연마을. 반월당 김종효가 이주하여 반월당 서당을 열어 젊은 선비들이 모여 들어와 문사가 숲을 이루었다고 하여 문림(文林)이라 불렀다고 한다. 문림동의 옛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구포동에서 옥계교를 건너 옥계동으로 들어가면 국도 67호선을 따라서 주유소와 차량정비소들이 있고, 주변엔 신축 중인 상가건물들이 많다. 단지 문림길이라는 도로명으로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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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자온(子韞), 호는 무명재(無名齋)·효량(孝良). 증조할아버지는 함양군수 강윤리(康允釐)이고, 할아버지는 영덕현감 강거례(康居禮)이다. 아버지는 용양위부사과 강척(康惕)이며, 어머니는 김숙자(金淑滋)의 딸이며, 동생은 강중진(康仲珍)이다. 강백진은 김종직의 문인으로 1472년(성종 3) 생원이 되었으며, 1477년(성종 8) 문과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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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음력 2월 9일을 가리키며, 어떤 일을 해도 해(害)가 없는 날. 우리의 전통 민간신앙에는 날수에 따라 여기저기 다니면서 사람을 방해하는 손[害; 귀신]이 있다고 믿었다. 손은 열흘 단위로 옮겨 다니는데, 음력 1~2일은 동쪽, 3~4일은 남쪽, 5~6일은 서쪽, 7~8일은 북쪽에 있고, 9~10일에는 하늘로 가서 인간 세상에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이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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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수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1680년 경 경주이씨가 마을을 개척하여 무쇠(鑛)를 녹여 주물을 만들었다는 곳이라 하여 무쇠골이라 하며 또한 임진왜란 때 피난처로서 전화(戰禍)가 없는 동네라 불렀다. 이 때 무쇠골이 어감이 좋지 않고 근심이 없는 동네라는 말에서 무수곡이라 하였다 한다. 무수골마을은 2007년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되어 농촌체험장으로 활용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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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수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1680년 경 경주이씨가 마을을 개척하여 무쇠(鑛)를 녹여 주물을 만들었다는 곳이라 하여 무쇠골이라 하며 또한 임진왜란 때 피난처로서 전화(戰禍)가 없는 동네라 불렀다. 이 때 무쇠골이 어감이 좋지 않고 근심이 없는 동네라는 말에서 무수곡이라 하였다 한다. 무수골마을은 2007년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되어 농촌체험장으로 활용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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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에 속하는 법정리. 무쇠를 녹여 주물을 만들었던 곳이어서 무쇠골이라 하였다가, 무쇠골이 어감이 좋지 않고 근심이 없는 동네라는 뜻에서 무수곡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안곡동, 원성동, 사창동을 병합하여 무수동이 되었다. 동북쪽으로 서동산, 서북쪽으로 두암산, 북쪽으로 상주시 낙동면과 접한다. 마을 양쪽으로 작은 산을 끼고 있으며, 5㎞의 긴 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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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수리 무수골에서 음력 1월 15일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무수골은 약 330년 전에 경주이씨가 무쇠[鑛]를 녹여 주물을 만들었던 곳이라 하여 무쇠골이라 했다. 또한 임진왜란 때 피난처로서 전화(戰禍)가 없는 동네였다고 한다. 그런데 무쇠골이 어감이 좋지 않고, 근심이 없는 동네라는 말에서 ‘무수곡(無愁谷)’·‘무수골’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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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 속하는 법정동. 수점동은 무수점[水店], 소바탕(쇠바탕, 쇠바태이)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무수점은 금오산 계곡 물이 급히 흐르다가 잠시 쉬어 가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물이 많은 곳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소바탕은 소들에게 풀을 먹이는 풀밭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200여 년 전 당시 개령군 아포면 대성동에 살던 주민들이 이주하여 형성된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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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비봉산 아래에 있어 봉곡이라 하였다. 물이 많고 봉황새가 춤추며 놀다가 날아간 곳이라 하여 무실(舞實)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 신당포방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신곡(新谷)과 병합하여 봉곡(鳳谷)이라 하고 옥성면에 편입하였다. 1983년 2월 15일 선산읍 봉곡리가 되었다. 북쪽으로 산을 등지고 동서로 길게 형성된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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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봉곡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물이 많고 봉황새가 춤추며 놀다 날아간 곳이라 하여 무실이라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곡과 병합하여 봉곡이라 하였다. 무실과 봉곡은 각기 다른 마을로서 무실은 지방도 68호선 변에 위치한 저평한 평지에 위치하나, 봉곡은 무실에서 북동쪽으로 올라간 골짜기에 위치한다. 이러한 지형적 특징으로 무실은 논농사를, 봉곡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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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에서 무실유씨 종중이 지내는 추모 의례. 무실유씨 제례는 안동시 임동면 수곡동에 살다가 임하댐에 수몰되면서 무실·박실·한들 등의 자연부락에 흩어져 살던 무실유씨들이 해평면 일선리로 집단이주하여 예전의 방식대로 지내는 조상에 대한 추모 의례이다. 현재 일선리에는 모두 8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이중 타성은 5가구이고, 나머지는 모두 유씨이다. 이들은 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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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외국을 상대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거래하는 활동. 구미시의 무역 실적은 2007년 9월을 기준으로 구미세관 수출통관이 30억 2810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5.2% 증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수출 증가의 원인은 지역 수출 비중 77%인 전자 제품(휴대폰 및 휴대폰 부품 등)의 수출이 8% 증가한 데에 있다. 구미시의 2007년 9월 무역수지 흑자는 20억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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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음악에 맞추어 율동적인 동작으로 감정과 의지를 표현하는 예술. 무용은 무도(舞蹈)라고도 한다. 시와 음악이 시간 속에 존재하고, 무용은 시간과 공간 속에 동시에 존재한다. 발레처럼 공간의 패턴이 주가 되는 경우도 있으며, 탭댄스처럼 시간적 리듬이 중시되는 것도 있다. 한편 발레는 음악·팬터마임·의상·장치 등을 갖추어서, 이야기나 어떤 주제를 종합적으로 표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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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에 있는 무을풍물 관련 단체. 무을풍물(舞乙風物)은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의 무이리, 상송리, 오가리 일원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오고 있는 전통 풍물놀이다. 무을풍물의 우수성을 전국에 알리고 무을풍물을 온전하게 보전하고 발전시킬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1996년 제37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농악부문 최우수상인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무을풍물 보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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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행정구역. 지형이 새가 춤추는 형상과 같으며, 모든 면에서 앞서 간다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121년경 신라시대에 무을동방(舞乙洞坊)이었고, 676년경 풍헌(風憲)으로 개칭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10개리를 관할하는 무을면이 되었다. 동서로 트여 있는 산간 분지로 마을 한가운데로 대천이 흐른다. 북쪽으로 연악산, 남쪽으로 복우산(머무산)과 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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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송삼리에 있는 무을면 관할 행정기관. 경상북도 구미시를 구성하고 있는 2개 읍(선산읍·고아읍), 6개 면(무을면·옥성면·도개면·해평면·산동면·장천면), 19개 동(송정동·원평1동·원평2동·지산동·도량동·선주원남동·형곡1동·형곡2동·신평1동·신평2동·비산동·공단1동·공단2동·광평동·상모사곡동·임오동·인동동·진미동·양포동) 중 무을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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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송삼리에 있는 우편, 체신, 금융 기관. 우체국은 국장의 지위에 따라서 4급(서기관국), 5급(사무관국), 6급(주사국), 7급(주사보국)으로 분류되거나 기능에 따라서 체신청, 우편집중국, 집배국, 무집배국으로도 분류된다. 또한 설립 주체에 따라 일반우체국, 별정우체국, 우편취급소 등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4급과 5급우체국은 총괄국으로서 기초자치 단체 단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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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등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실천 위주의 인성교육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 심신을 조화롭게 발달시켜 민주적이고 건강한 사람, ICT교육 체제를 강화하여 정보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모르면 배우고, 알면 행하자’이다. 1969년 3월 1일 선산중학교 무을분교로 설립 인가를 받고 같은 해 3월 28일 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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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등리의 무을중학교에 있는 풍물단. 구미 지역 전통문화의 하나인 무을풍물을 계승·보존·전수하기 위해 무을중학교에서 설립되어 활동하고 있는 단체이다. 무을풍물의 계승·보존·전수함과 동시에 무을풍물의 체득을 통하여 학생들이 향토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1년 창단되었으며 이후로 무을풍물보존회와 지역의 전문 예능단체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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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송삼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고 나를 아는 어린이, 질서를 존중하고 자율적이며 예절 바른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고 사고하며 창조하는 어린이, 몸이 건강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29년 9월 7일 무을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다가 1941년 4월 무을공립국민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81년 3월 5일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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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일대에 전승되고 있는 풍물. 무을풍물은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에 있는 수다사에서 도를 닦았던 승려 정재진이 마을 사람들에게 풍물을 가르치면서 시작되었다. 정재진의 쇠가락은 무을면 오가리에 살았던 이군선이 이어받아 나름대로 새롭게 하였다. 이군선의 쇠가락은 무을면 오가리의 이남문과 윤필선, 그리고 무을면 무이리의 최일영 등이 이어받았다. 이남문은 6·25전쟁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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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에 있는 무을풍물 관련 단체. 무을풍물(舞乙風物)은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의 무이리, 상송리, 오가리 일원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오고 있는 전통 풍물놀이다. 무을풍물의 우수성을 전국에 알리고 무을풍물을 온전하게 보전하고 발전시킬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1996년 제37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농악부문 최우수상인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무을풍물 보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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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을풍물보존회에서 해마다 열고 있는 순수예술 축제. 무을풍물은 300여 년 전인 조선 영조시대 구미 수다사(水多寺)에서 탄생했으며 시대를 거치는 동안 영남뿐만 아니라 전국 풍물의 중요한 행사 중 하나가 되었다. 법명이 전해지지 않는 정재진이란 승려가 꿈에서 도깨비들과 놀고 장난쳤던 일들과 구전돼 오던 내용을 소재로 풍물가락을 만들어 마을로 전파해 무을풍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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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에 속하는 법정리. 1400년(정종 2) 경에 연안전씨(延安田氏)가 개척한 마을로, 원통산(怨痛山) 약수터가 있어 해마다 일정한 양의 물이 흘러내리므로 수동(水洞, 일명 물골)이라 하였다. 그 후 마을의 경치가 너무 좋아 중국 푸젠성[福建省]에 있는 무이구곡(武夷九曲)과 견줄 만하다 하여 무이리(武夷里)라 하였다. 뒤로 원통산이 솟아 있고 마을 앞에 펼쳐진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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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이리 무이마을에서 음력 1월 14일 자정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무이리(武夷里)는 600여 년 전에 원통산(怨痛山)의 약수터에서 매년 동일한 수량이 흘러내리기 때문에 수동(水洞, 물골)이라 하였고, 그 후 마을의 경치가 너무 좋아 중국 복건성(福建省)에 있는 무이구곡(武夷九谷)에 비유된다고 하여 지어진 마을명이다. 무이리 무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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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이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구미시 무을면에서 선산 방면으로 통하는 지방도 68호선을 따라가다가 무이리를 조금 지나면 오른쪽에 무이농산물간이집하장이 나타난다. 산포지는 이 집하장 뒤편의 남쪽으로 뻗은 능선 말단부의 동에서 서로 완만하게 펼쳐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밭으로 경작되고 있는 곳에서 토기편과 자기편 등이 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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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계동에 있던 자연마을. 반월당 김종효가 이주하여 반월당 서당을 열어 젊은 선비들이 모여 들어와 문사가 숲을 이루었다고 하여 문림(文林)이라 불렀다고 한다. 문림동의 옛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구포동에서 옥계교를 건너 옥계동으로 들어가면 국도 67호선을 따라서 주유소와 차량정비소들이 있고, 주변엔 신축 중인 상가건물들이 많다. 단지 문림길이라는 도로명으로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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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6월에 날이 가물면 비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 기우제는 가뭄이 계속되어 농작물의 파종이나 성장에 해가 있을 때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의(祭儀)이다. 가뭄이 심하면 농사짓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기우제를 지내 비가 오기를 비는 것은 전국적인 현상이다. 구미 지역에도 마을 단위로 지역의 지방 수령이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들이 보인다. 현지 조사에 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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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6월에 날이 가물면 비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 기우제는 가뭄이 계속되어 농작물의 파종이나 성장에 해가 있을 때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의(祭儀)이다. 가뭄이 심하면 농사짓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기우제를 지내 비가 오기를 비는 것은 전국적인 현상이다. 구미 지역에도 마을 단위로 지역의 지방 수령이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들이 보인다. 현지 조사에 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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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구평동에 있는 자연마을. 마을이 무지개 모양으로 생겼기 때문이라는 설과 천생산 아래 약수터에 무지개가 생기면 이 마을까지 뻗치므로 무지개라고 불렸다는 설이 있다. 북쪽으로 천생산의 능선이 뻗어 내려와 있고, 마을 입구 쪽으로 학서지라는 못이 있다. 학서지는 낚시터로 이용된다. 천생산산림욕장으로 가는 입구로 관광객 대상으로 길 양쪽으로 대규모 식당가가 발달되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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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묵어리는 먹들, 웃머들, 삼산(三山), 강성동(綱城洞)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먹들은 마을 앞 논밭의 흙 빛깔이 검고 기름져 붙여진 이름이다. 묵들, 묵야(墨野), 묵평(墨坪), 머들로도 불린다. 머들은 말썽 없이 조용히 사는 순박한 사람들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웃머들은 머들 위쪽에 있는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상평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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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묵어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소재지에서 국도 25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가다가 동쪽으로 묵어2리로 가는 소로를 따라가면 윗머들마을과 치박골 사이에 형성된 비교적 완만한 구릉이 있는데, 산포지는 이 구릉 말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앞쪽에는 묵어천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있다. 현재는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서 자기편과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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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정월 대보름에 전해에 말려 두었던 나물로 만들어 먹는 향토음식.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경도잡기(京都雜記)』를 보면 대보름날에 묵은 나물을 먹으면 여름철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하여 묵은 나물을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외고지, 가지고지, 시래기 등의 묵은 나물을 소개하고 있다. 구미 지역에서는 정월 대보름 아침 찰밥이나 오곡밥과 함께 아주까리나물,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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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 양온공(良醞公) 김균(金均)의 후손이다. 김완은 고려 때 판밀직사사, 상호군, 양광도도순무사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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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문지(文之), 호는 구암(久庵). 아버지는 김광좌(金匡佐)이다. 김취문(金就文, 1509~1570)은 1537년(중종 32) 별시에 병과 2등으로 급제하여 형조좌랑과 예조좌랑을 역임하였다. 이후 늙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외직으로 나가 비안현감(比安縣監)을 지냈다. 1544년 강원도도사를 거쳐 이듬해 홍문관수찬을 지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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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 자는 도원(道原), 호는 동명(東溟). 할아버지는 성암(省庵) 김효원(金孝元)이며, 아버지는 통천군수 김극건(金克鍵)이다. 김세렴은 1616년(광해군 8)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호당(湖堂)에 들어갔으며, 수찬과 지제교를 거쳐 정언이 되었다. 1617년(광해군 9) 폐모를 주장하는 자를 탄핵하여 곽산에 유배되었다가 강릉에 이배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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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 자는 자배(子培), 호는 강호(江湖). 순충공 김선궁(金宣弓)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진사 김관(金琯)이다. 김숙자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으며, 총명하고 용모 또한 단정하였다. 1419년(세종 1) 문과에 급제한 후 사관이 되었으나, 시기하는 무리가 많음을 알고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부모 봉양과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1431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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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장현광(張顯光)은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이기설에서 일본설(一本說)에 입각하면서도, 이이의 ‘기발이승’을 수용하는 등 독자적인 학문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일생을 학문과 교육에 힘을 기울였으며, 산림의 한 사람으로서 도덕정치의 구현을 강조하였다. 장현광의 강학 시설로 구미시 임수동에 부지암정사(不知巖精舍)가 있다. 본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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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하동. 증조부는 정승경(鄭承慶), 할아버지는 정태보(鄭台輔), 아버지는 정희(鄭熙)이다. 1405년(태종 5) 문과에 을과 2등으로 급제하였으며 이조판서·예문관대제학에 이르렀다. 세종 초의 과학 사업에 중요한 소임을 맡아 대통통궤(大統通軌)를 연구하고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을 편찬하였으며, 간의대(簡儀臺)를 제작하여 설치하는 일을 관장하였다. 그밖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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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무신 문관도(文貫道)는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하양현감과 경주판관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들 문희성(文希聖)·문희현(文希賢)·문희철(文希哲)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경상도순찰사로 재직하던 중 별세하였다. 묘소는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독용산(禿用山)에 있다. 사후 호조참찬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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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一善). 자는 백춘(伯春), 호는 병암(屛庵). 아버지는 경질공(景質公) 김지경(金之慶)이다. 김응기(金應箕)는 1477년(성종 8)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이후 교리·전교·직제학을 거쳐 좌부승지를 지냈다. 1499년(연산 5) 동지중추부사로 천추사(千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500년 한성부판윤에 임명되었으며,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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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문량2리 기리골에서 음력 1월 14일 자정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기리골은 원래 글골이던 것이 속음화해서 변했다는 설과, 기러기가 많이 날아와 서식했기 때문에 기릿골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기리골과 황새골 2개의 자연마을에서 따로 지내던 것을 1995년부터 합쳐서 지내는 문량2리 기리골 동제는 매년 음력 1월 14일 자정에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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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문량리는 기리골, 염막, 황새골, 새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기리골은 원래 글을 읽던 곳이라는 뜻의 글골이 음운 변화를 겪어 기리골이 되었다. 기러기가 많이 날아 와서 기러기골이라 불렀는데 음운 변화를 겪어 기리골이 되었다고도 한다. 염막은 마을 앞을 흐르는 낙동강에 소금 배가 닿아 소금을 팔았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황새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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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문량2리에 있는 수령 230년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 26m, 지름 3m까지 자란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며, 나무껍질은 회백색이고 늙은 나무에서는 나무껍질이 비늘처럼 떨어진다. 꽃은 5월에 취산꽃차례(聚繖꽃次例 : 먼저 꽃대 끝에 한 개의 꽃이 피고 그 주위의 가지 끝에 다시 꽃이 피고 거기서 다시 가지가 갈라져 꽃이 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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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계동에 있던 자연마을. 반월당 김종효가 이주하여 반월당 서당을 열어 젊은 선비들이 모여 들어와 문사가 숲을 이루었다고 하여 문림(文林)이라 불렀다고 한다. 문림동의 옛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구포동에서 옥계교를 건너 옥계동으로 들어가면 국도 67호선을 따라서 주유소와 차량정비소들이 있고, 주변엔 신축 중인 상가건물들이 많다. 단지 문림길이라는 도로명으로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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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덕승(德承), 호는 구암(龜岩)·문림처사(文林處士). 좌의정 김승주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반월당(伴月堂) 김종효(金宗孝)이다. 김경장은 여헌 장현광의 문인으로, 향리에 은거하면서 예학을 강구하였다. 문림처사라고 자호하였으며, 한성우윤이었던 학사(鶴沙) 김응조(金應祖)가 효성 및 학행을 조정에 천거하여 황산찰방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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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자실(子實), 호는 송당(松堂). 좌찬성 박호문(朴好問)의 증손이다. 외할아버지는 양녕대군(讓寧大君), 아버지는 이조참판 박수종(朴壽宗)이다. 박영은 어릴 때부터 활 쏘기와 말 달리기를 연마하여 무예가 특출하였다. 1492년(성종 23) 22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거쳐 조방장·황간현감·동부승지·김해부사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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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중우(仲又), 호는 연초재(燕超齋). 사용 윤희림(尹希琳)의 현손이자 국자감정 윤변(尹忭)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영의정 윤두수(尹斗壽), 아버지는 문익공(文翼公) 윤방(尹昉)이다. 윤신지는 선조와 인빈김씨(仁嬪金氏)의 소생인 정혜옹주(貞惠翁主)와 결혼하여 해숭위(海嵩尉)에 봉하여졌다. 선조가 때때로 시를 지어 바치게 할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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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경숙(經叔), 호는 청천당(聽天堂).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증이조참판 장계증(張繼曾)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장열(張烈), 아버지는 월포(月浦) 장현도(張顯道), 어머니는 이부춘(李富春)의 딸이다. 종숙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에게 입양되었다. 장응일은 7세 때 장현광에게 입양되어 가학을 이었다. 1629년(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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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계동에 있던 자연마을. 반월당 김종효가 이주하여 반월당 서당을 열어 젊은 선비들이 모여 들어와 문사가 숲을 이루었다고 하여 문림(文林)이라 불렀다고 한다. 문림동의 옛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구포동에서 옥계교를 건너 옥계동으로 들어가면 국도 67호선을 따라서 주유소와 차량정비소들이 있고, 주변엔 신축 중인 상가건물들이 많다. 단지 문림길이라는 도로명으로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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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문성리의 인노천 위에 있는 다리. 들에 성이 있다고 하여 들성 또는 문성이라고 불리는 문성리에 있다는 의미에서 문성교라고 이름 붙었다. 길이는 25m, 폭은 18m, 높이는 3m이다. 경간(徑間, 지주 교각) 수는 2개이다. 상행과 하행 각기 2차선 차도와 보도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상부 구조 형식은 강화 콘크리트 슬라브교(RCS)이고, 하부 구조 형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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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초기부터 아홉 개의 독립된 자연마을이 있었는데 그중 한 마을이 이름 높은 선비들이 많이 나와서 문성동리(文星洞里)라고 하였다. 이를 자랑으로 여겨 1914년 마을을 통합하면서 마을 이름을 문성리로 통일하였다고 한다. 아홉 개 자연마을의 지명 유래는 다음과 같다. 문성(일명 들성, 평성)은 개미산이 들을 둘러싸고 있어 마치 성을 이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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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문성리 문성마을에서 음력 1월 14일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문성리는 산이 들을 둘러싸고 있어 마치 성을 이루는 것과 같다고 하여 일컬어진 이름이다. 또는 들에 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문성리 문성마을 못제는 매년 음력 1월 14일 오후 8시경에 문성지(文星池)로 가서 한 해 농사의 풍년을 빌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던 제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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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신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혜봉선사(慧峰禪師)가 사명을 정하고 중건한 사찰. 문수사는 사찰 안에 전래하는 탑재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때 사원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일선지(一善志)』 불우(佛宇) 「납석사(納石寺)조」에 기록된 위치가 이곳과 일치하므로 문수사라 이름 붙이기 전에는 납석사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전래하는 연혁으로는, 1865년(고종 2)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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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인덕리에 있는 저수지. 문수저수지는 1945년 1월 1일 저수지 조성 공사에 들어가 1945년 12월 31일에 조성 공사를 완료하였다. 문수저수지는 2종 저수지로 인가 면적은 4,265,000㎡이며, 수혜 면적은 490,000㎡이다. 문수저수지는 낚시터로 많이 이용되고 있으며, 문수저수지 주변으로 산림 1,000,000㎡ 정도를 산림 생태계 연구와 산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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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인덕리에 있는 저수지. 문수저수지는 1945년 1월 1일 저수지 조성 공사에 들어가 1945년 12월 31일에 조성 공사를 완료하였다. 문수저수지는 2종 저수지로 인가 면적은 4,265,000㎡이며, 수혜 면적은 490,000㎡이다. 문수저수지는 낚시터로 많이 이용되고 있으며, 문수저수지 주변으로 산림 1,000,000㎡ 정도를 산림 생태계 연구와 산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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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사호(士浩)·자활(子活), 호는 오재(悟齋)·송암(松庵). 장순효(張純孝)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장경원(張敬源), 아버지는 군수 장중지(張重智), 어머니는 고승안(高承顔)의 딸이다. 장순손은 현재의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태어났다. 1480년(성종 1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85년(성종 16) 문과에 급제한 뒤 사간원정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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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자술(子述), 호는 청봉(晴峰). 군기시첨정 윤훤(尹萱)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윤은필(尹殷弼), 아버지는 사헌부감찰 윤홍언(尹弘彦), 어머니는 장림수(長臨壽) 이순민(李舜民)의 딸로서 전주이씨이다. 형이 숙간공(肅簡公) 윤승길(尹承吉)이다. 윤승훈은 1573년(선조 6) 문과에 급제되어 정언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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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여승(汝昇), 호는 죽창(竹窓). 윤돈은 1585년(선조 18) 문과에 급제하여 수찬, 교리, 헌납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를 호종하였다. 1594년 부제학에 오르고, 명(明)나라 도독(都督) 유정(劉綎)의 접반사관(接伴事官)으로 군량 보급에 노력했다. 이어 대사간, 이조참의, 강원도관찰사, 병조참판, 대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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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문신이자 인동유씨 시조. 인동유씨(仁同兪氏)는 인동백(仁同伯)에 봉해진 유승단의 후손들이 인동에 세거함에 따라 후대에 유승단을 시조로 하고 세거지 인동을 관향으로 삼으면서 생겨났다. 본관은 인동(仁同). 초명은 유원순(兪元淳). 인동유씨는 유승단 이후 세계가 끊어졌으며, 고려조에서 예부시랑을 지낸 1세손 유승석을 중시조로 대를 잇고 있다. 유승석의 동생인 유성렬의 증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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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신곡리 동쪽에 위치한 산. 문암산과 관련하여 두 가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하나는 1592년 임진왜란 때 당진현감 정방준(鄭邦俊)이 의병을 모아 출전한 후 왜병이 쳐들어오니 정방준의 처 변씨(卞氏)가 문암산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왜적이 숨은 곳을 알고 뒤쫓아와 변씨는 치마폭에 혈서를 써서 던지고 절벽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정절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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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희목은 밀양박씨(密陽朴氏)로서 자는 문여(文如)이다. 경주부윤을 역임한 박수홍(朴守弘)의 11세손으로서 아버지는 박동하(朴東夏), 어머니는 황한태(黃漢泰)의 딸로서 장수황씨(長水黃氏)이다. 박희목은 유학자의 지조와 절개를 숭상해 온 집안에서 자랐으며 조부의 슬하에서 학문에 전념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권오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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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선산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자화(子華), 호는 해은(海隱). 할아버지는 충선공(忠宣公) 문익점(文益漸)이다. 문영(文英)은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393년(태조 2)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교리를 지냈으며, 이후 선산부사를 거쳐 홍문관직제학을 역임하였다. 형 문래(文萊)가 목화에서 실을 뽑는 물레를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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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고려 후기에 판공부사를 역임한 해평윤씨(海平尹氏)의 시조 충간공(忠簡公) 윤군정(尹君正)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충렬왕대 부지밀직사사를 역임한 윤만비(尹萬庇), 아버지는 영의공(英毅公) 윤석(尹碩)이다. 동생이 해평군(海平君) 윤지표(尹之彪)이다. 고려 후기에 정당문학집현전대제학지춘추관사상호군사(政堂文學集賢殿大提學知春秋館事上護軍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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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활동하는 전문 문화예술인의 모임. 구미 지역의 문화예술단체로는 먼저 1989년에 개관한 구미시 문화예술회관 소속의 구미시립무용단, 구미시립합창단, 구미시립소년소녀합창단을 들 수 있다. 또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구미지회에 소속된 8개의 산하 단체는 전문적인 문화예술인들의 단체이다. 이외에도 수십 개의 문화예술단체가 구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구미시립무용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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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인동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강(驪江). 초명은 이적(李迪), 자는 복고(復古), 호는 회재(晦齋)·자계옹(紫溪翁). 할어버지는 참군 이수회(李壽會), 아버지는 이번(李蕃), 어머니는 계천군(鷄川君) 손소(孫昭)의 딸로 경주손씨(慶州孫氏)이다. 경주손씨 가문은 일찍이 경주 양동에 자리 잡은 세력으로, 손소 손중돈(孫仲暾) 등 현달한 관료를 배출하였다. 이언적은 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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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백상(伯常), 호는 방간(方間). 아버지는 윤득민(尹得敏)이다. 윤동은 1754년(영조 30) 문과에 급제하여 다음해 설서(說書)를 거쳐 정언, 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제주목사를 거쳐 좌부승지, 대사헌 등을 역임했다. 그 후 정조 때에 경기도관찰사, 개성부유수,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면서 탕평책(蕩平策)에 순응하지 않고 당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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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가회(可晦), 호는 치천(稚川). 사용 윤희림(尹希琳)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국자감정 윤변(尹忭), 아버지는 영의정 윤두수(尹斗壽), 어머니는 관찰사 황기(黃琦)의 손녀이자 참봉 황대용(黃大用)의 딸이다. 동생이 정민공(靖敏公) 윤흔(尹昕), 장익공(章翼公) 윤휘(尹暉)이다. 윤방은 이이(李珥)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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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야은 길재(吉再, 1353~1419)와 관련하여 도(道)를 가르쳐 널리 깨우친다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또는 도랑가에 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도량댕이[道村, 文章谷]이라고도 한다. 본래 경상북도 선산군 상고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상률동, 하율동, 송동, 관동, 고기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도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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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도량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른 생활을 실천하는 어린이, 기초와 기본을 다져가는 어린이, 아름다운 심성을 키워가는 어린이, 튼튼한 체력을 가꾸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2003년 3월 21일 원호남부초등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2004년 3월 1일 문장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여 개교하였다. 2006년 3월 1일 병설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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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구미 출신 의 문신. 길당은 중국 당나라에서 열경의 벼슬을 지내다가 8학사의 한 사람으로 고려에 와서 해평백에 봉해졌으며, 문종 때 은청광록대부 참여정당문학에 올랐다. 길당의 후손들이 해평을 관향으로 삼았으나, 이후의 전승 기록이 없을 뿐 아니라 보첩마저 전쟁 등으로 소실되어 사실과 세대의 내용은 알 수 없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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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자고(子固), 호는 월정(月汀). 장원(掌苑) 윤계정(尹繼丁)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사용 윤희림(尹希林), 아버지는 군자감정 윤변(尹忭), 어머니는 부사직 현윤명(玄允明)의 딸이다. 형이 해원부원군(海原府院君) 윤두수(尹斗壽)이다. 윤근수는 김덕수(金德秀),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558년(명종 13) 문과에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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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경유(景孺), 호는 근암(近菴). 영의정 윤두수(尹斗壽)의 5대손이며, 윤면지(尹勉之)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윤계(尹堦), 아버지는 황해도관찰사 윤세수(尹世綏), 어머니는 이하(李夏)의 딸이다. 윤급은 1725년(영조 1) 문과에 급제한 후 이조좌랑·집의·부응교를 역임하였다. 1737년 문과중시에 다시 등제한 후 이조참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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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사능(士能), 호는 석취(石醉). 아버지는 윤경렬(尹慶烈)이다. 윤치정은 1829년(순조 29) 문과에 급제하고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거쳐 1843년(헌종 9) 홍문관에 들어갔다. 1847년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청(淸)에 다녀왔다. 1850년(철종 1) 이조참판이 되었고, 다음해 대사성에 이어 형조판서, 한성부판윤,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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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一善). 자는 경부(敬夫), 호는 주촌(注村). 할아버지는 백암(白巖) 김제(金濟)이며, 아버지는 김자연(金自淵)이다. 김효정(金孝貞)은 1399년(정종 1) 진사가 되고 1402년(태종 2)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 등을 지냈다. 1427년(세종 9) 중시(重試)에 을과 2등으로 급제하였으며, 이후 추밀원(樞密院)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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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자앙(子仰), 호는 오음(梧陰). 장원(掌苑) 윤계정(尹繼丁)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사용 윤희림(尹希林), 아버지는 군자감정 윤변(尹忭), 어머니는 부사직 현윤명(玄允明)의 딸이다. 동생이 윤근수(尹根壽)이다. 윤두수는 이중호(李仲虎),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58년(명종 13) 문과에 급제한 후 승문원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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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호리의 선산김씨는 조선시대 문과(文科) 16명, 무과(武科) 14명, 생원진사과를 포함한 연방과(蓮榜科)에 65명, 음사(蔭仕) 등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문집을 발간한 사람도 65명이 될 정도로 인물이 많이 난 곳이다. 후손들은 대대로 마을에 터 잡고 살기도 하고, 다른 지역으로 나가 살기도 한다. 현재 마을에서 가장 큰 종친회는 충신 김종무의 판서공파이다. 판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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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문지(文之), 호는 구암(久庵). 아버지는 김광좌(金匡佐)이다. 김취문(金就文, 1509~1570)은 1537년(중종 32) 별시에 병과 2등으로 급제하여 형조좌랑과 예조좌랑을 역임하였다. 이후 늙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외직으로 나가 비안현감(比安縣監)을 지냈다. 1544년 강원도도사를 거쳐 이듬해 홍문관수찬을 지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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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부사를 지낸 조선 전기의 문신.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은 정몽주(鄭夢周, 1337~1392)―길재(吉再, 1353~1419)―김숙자(金叔滋, 1389~1456)로 이어지는 한국 유학의 정통을 계승한 영남 사림파의 종장(宗匠)이다. 생전에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이 사후에 문제가 되어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나 부관참시(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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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경규(景圭), 호는 자유재(自有齋). 아버지는 문헌공(文獻公) 윤치희(尹致羲)이다. 윤용선은 1885년(고종 22) 증광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96년 아관파천 직후 성립된 친러 정부에 보수 세력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탁지부대신(度支部大臣)으로 있다가, 4월 22일 내각 총리대신으로 임명되었다. 같은 해 9월 관제를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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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고려 후기에 판공부사를 역임한 해평윤씨(海平尹氏)의 시조 충간공(忠簡公) 윤군정(尹君正)의 현손이며 충렬왕대 부지밀직사사를 역임한 윤만비(尹萬庇)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영의공(英毅公) 윤석(尹碩), 아버지는 해평군(海平君) 윤지표(尹之彪)이다. 윤진은 1382년(우왕 8) 판후덕부사(判厚德府事) 재임 시 동지공거(同知貢擧)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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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및 작품. 구미는 1995년 선산군과 구미시가 통합되어 오늘날의 구미시가 되었으며, 1970년대 이후 급격한 도시화·산업화의 길로 나아간 한국 사회의 변화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대표적 도시이다. 따라서 구미라고 하면 산업과 경제를 떠올리기는 쉽지만 문화나 문학을 연상하기는 어렵다. 이런 연유로 인근의 경주, 포항,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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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초명은 장용규(張龍逵), 자는 진백(震伯), 호는 유헌(遊軒)·운전(雲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산음현감 장옥(張鈺)의 7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장호(張濠), 아버지는 사호옹(四好翁) 장학추(張學樞), 어머니는 김구운(金龜雲)의 딸로 선산김씨(善山金氏), 처는 허참(許傪)의 딸로 김해허씨(金海許氏)이다. 장학덕(張學㯖)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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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초명은 윤치수(尹致秀), 자는 성여(成汝), 호는 금범(錦帆). 윤득녕(尹得寧)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윤백동(尹百東), 아버지는 참판 윤명열(尹命烈), 어머니는 정태화(鄭泰華)의 딸이다. 후에 윤경열(尹敬烈)에게 입양되었다. 윤치희는 1827년(순조 27) 문과에 급제하고 사관(史官)을 거쳐 홍문관(弘文館)에 뽑혔다. 18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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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문화예술을 공연하고 전시할 수 있는 시설. 구미의 문화시설은 공연시설과 전시시설로 나눌 수 있다. 공연시설로는 구미시 문화예술회관의 대공연장·소공연장, 구미시설공단(구 올림픽기념관)의 소공연장, 선산문화회관 등이 있으며, 이외 극단 구미레퍼토리의 소극장 공터_다가 있다. 야외공연장으로는 2007년 개관한 송정야외공연장이 있다. 전시시설로는 구미시 문화예술회관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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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활동하는 전문 문화예술인의 모임. 구미 지역의 문화예술단체로는 먼저 1989년에 개관한 구미시 문화예술회관 소속의 구미시립무용단, 구미시립합창단, 구미시립소년소녀합창단을 들 수 있다. 또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구미지회에 소속된 8개의 산하 단체는 전문적인 문화예술인들의 단체이다. 이외에도 수십 개의 문화예술단체가 구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구미시립무용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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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열리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의 음악회. 문화예술인음악회는 예술인의 창작 의욕을 높이고 구미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예술인에 대한 시상식과 더불어 축하 공연으로 2001년 12월 28일 구미시립중앙도서관 강당에서 개최되었다. 한국연예협회 경북도지회와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구미지회에서 주최 및 주관하였다. 행사는 1부 시상식과 2부 축하 공연, 3부 화합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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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왕비. 본관은 일선(一善). 아버지는 시중(侍中)에 추증된 김원숭(金元崇)이며, 어머니는 화의군대부인(和義郡大夫人)에 봉해진 왕씨(王氏)이다. 문화왕후(文和王后)는 고려 성종(成宗)의 두 번째 왕비로 연흥궁주(延興宮主)·현덕궁주(玄德宮主)로 불리다가 원정왕후(元貞王后: 현종의 왕비)를 출산한 후 1029년(현종 20) 대비(大妃)로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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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문신이자 공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효언(孝彦), 호는 오봉(五峯). 연안군(延安君) 이숙기(李叔琦)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홍문관수찬 이세범(李世範), 아버지는 이천현감 이국주(李國柱), 어머니는 사직 박여(朴旅)의 딸로 정경부인 비안박씨(比安朴氏)이다. 이호민은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79년(선조 12) 진사에 합격하고 1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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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경수(敬修), 호는 지헌(止軒). 아버지는 문관도(文貫道)이며, 동생은 문희현(文希賢)이다. 문희성(文希聖)은 1594년(선조 27)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 공을 세웠다. 이후 서생포첨사와 고령첨사를 거쳐 수원부사에 임명되었으나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1614년(광해군 6) 역모를 꾀하였다는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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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평(南平). 아버지는 문관도(文貫道)이며, 형은 문희성(文希聖)이다. 문희현(文希賢)은 1611년(광해군 3) 제주판관으로 있을 때 명나라·일본·유구(琉球) 사람들이 탄 상선이 제주도에 표류해오자 제주목사 이기빈(李箕賓)과 함께 선원을 모두 죽이고 화물을 탈취하였다. 이후 왜구의 배를 공략하여 침몰시켰다고 보고하였다가 왜적선이 아니었음이 밝혀져 경성(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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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솜이나 털을 자아서 실을 만드는 틀. 물레의 원리는 물레바퀴와 가락을 물레줄로 연결하여 물레를 돌리면 가락과 물레바퀴의 회전방향이 서로 달라 솜이나 털이 뽑혀 나오면서 꼬여 실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물레의 기능은 한 가지지만 형태는 다양하다. 물레바퀴의 수에 차이가 있으며, 동줄을 걸어 물레바퀴 테를 만든 것이 있는가 하면 대나무로 테를 만든 것도 있다. 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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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여인들이 물레질을 하면서 부르던 노동요. 「물레질 노래」는 「삼삼기 노래」·「베틀 노래」와 더불어 「길쌈 노래」에 속한다. 한국의 중요한 노동요이자 부녀요(婦女謠)이다. 오랜 시간 밤잠을 자지 않으면서 무명실을 자아내는 물레질은 힘겨운 일은 아니지만, 혼자 지루하게 단조로운 일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비교적 가다듬어진 노래가 필수적이다. 천혜숙·강진옥·정현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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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여인들이 물레질을 하면서 부르던 노동요. 「물레질 노래」는 「삼삼기 노래」·「베틀 노래」와 더불어 「길쌈 노래」에 속한다. 한국의 중요한 노동요이자 부녀요(婦女謠)이다. 오랜 시간 밤잠을 자지 않으면서 무명실을 자아내는 물레질은 힘겨운 일은 아니지만, 혼자 지루하게 단조로운 일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비교적 가다듬어진 노래가 필수적이다. 천혜숙·강진옥·정현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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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에 속하는 법정리. 앞에 비봉산이 있어서 봉산(鳳山)이라 하였다가, 수놈인 봉(鳳)끼리 마주 보는 것은 좋지 않다 하여 황산(凰山)이라 하였다. 또 비봉산의 봉(鳳)과 황산동의 황(凰)이 앞들의 소나무 숲이 우거진 오봉산에서 알을 낳고 그 알을 서로 지켜보았다고 하여 유래한 이름이라고도 한다. 물항(勿項)·물목이라고도 부른다. 자연마을로 가운데골목, 큰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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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의 금오산에서 여름을 나는 물총새과에 속하는 새. 우리나라에는 물총새과에 호반새, 청호반새, 뿔호반새, 물총새 4종의 물총새류가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봄에 동남아시아 아열대 지역에서 우리나라로 찾아와 여름 동안 저수지와 호수, 하천 유역에서 번식을 한다. 몸길이 17㎝에 이른다. 머리가 몸에 비해 크고 부리가 길다. 암컷과 수컷이 비슷하여 성을 구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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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의 금오산과 해평면 해평습지에서 겨울을 나는 오리과에 속하는 새. 오리는 생활 방식에 따라 크게 수면성 오리, 잠수성 바다오리, 원앙류 등 3개의 무리로 분류한다. 전형적인 수면성 오리류에 속하는 청둥오리는 인기 있는 사냥새이며, 대부분 집오리의 조상이다. 몸길이는 수컷 60㎝, 암컷 52㎝에 이른다. 날개길이는 23~30㎝이고, 꼬리길이는 7.4~9.9㎝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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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의 금오산에서 여름을 나는 물총새과에 속하는 새. 우리나라에는 물총새과에 호반새, 청호반새, 뿔호반새, 물총새 4종의 물총새류가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봄에 동남아시아 아열대 지역에서 우리나라로 찾아와 여름 동안 저수지와 호수, 하천 유역에서 번식을 한다. 몸길이 17㎝에 이른다. 머리가 몸에 비해 크고 부리가 길다. 암컷과 수컷이 비슷하여 성을 구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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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의 금오산에서 여름을 나는 물총새과에 속하는 새. 우리나라에는 물총새과에 호반새, 청호반새, 뿔호반새, 물총새 4종의 물총새류가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봄에 동남아시아 아열대 지역에서 우리나라로 찾아와 여름 동안 저수지와 호수, 하천 유역에서 번식을 한다. 몸길이 17㎝에 이른다. 머리가 몸에 비해 크고 부리가 길다. 암컷과 수컷이 비슷하여 성을 구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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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에 속하는 법정리. 앞에 비봉산이 있어서 봉산(鳳山)이라 하였다가, 수놈인 봉(鳳)끼리 마주 보는 것은 좋지 않다 하여 황산(凰山)이라 하였다. 또 비봉산의 봉(鳳)과 황산동의 황(凰)이 앞들의 소나무 숲이 우거진 오봉산에서 알을 낳고 그 알을 서로 지켜보았다고 하여 유래한 이름이라고도 한다. 물항(勿項)·물목이라고도 부른다. 자연마을로 가운데골목, 큰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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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 천생산에 위치한 바위. 미덕암은 천생산성 서쪽에 불쑥 튀어나온 큰 바위를 말한다. 천생산성은 임진왜란 때 망우당 곽재우(郭再祐) 장군이 의병을 모아 왜적을 물리친 곳으로, 천생산 중에서도 천연으로 깎은 듯이 험준한 곳에 위치한다. 곽재우 장군의 신출귀몰한 전법으로 난공불락의 요새지였다. 이에 왜군은 인근 민가로 내려가서 촌로에게 이 산성에서 제일 귀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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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오로리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미륵입상. 석조미륵입상은 돌로 만든 서 있는 모습의 미륵 부처라는 뜻으로 원래는 석가모니 부처인 여래불로 추정되는데, 주민들의 민간신앙에 따라 모셔지면서 미륵불이라 불리고 있고, 마을 이름도 ‘미륵댕이’라고 한다. 미륵당 석조미륵입상은 원래 장천면 오로리 고갯길에 있었으나 중앙고속도로 건설 공사로 인해 현 위치로 옮겼다. 높이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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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오로리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미륵입상. 석조미륵입상은 돌로 만든 서 있는 모습의 미륵 부처라는 뜻으로 원래는 석가모니 부처인 여래불로 추정되는데, 주민들의 민간신앙에 따라 모셔지면서 미륵불이라 불리고 있고, 마을 이름도 ‘미륵댕이’라고 한다. 미륵당 석조미륵입상은 원래 장천면 오로리 고갯길에 있었으나 중앙고속도로 건설 공사로 인해 현 위치로 옮겼다. 높이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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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법성사에 있는 통일신라 때의 약사여래좌상. 법성사는 1970년대에 창건된 절로서 법성사 약사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약사여래 좌상에 대한 유래가 다음과 같이 전해온다. 1840년(헌종 6)경 구미시 송정동에 사는 영일정씨 정민기의 5대조 할아버지가 어느 날 꿈에 불상이 자신의 소유 전답인 원남동 781번지 일명 부처골에 나타나, 이튿날 아침 일찍이 그곳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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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메밀을 농사하여 음식을 만들기까지를 표현한 민요. 「메밀노래」는 메밀을 많이 재배하던 과거에 부녀자들이 메밀을 심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거두어들여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과정을 읊은 부녀요(婦女謠)이다. 구미시에서는 두 곡의 「미물 노래」가 채록되었다. 첫 번째는 천혜숙·조형호가 1984년 7월 11일 구미시 고아읍 다식리 모산에서 김말임(여, 당시 59세)에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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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공간 및 시각의 미를 표현하는 예술. 고대에 불교를 신라에 전한 고구려 승려 아도는 고구려와 신라의 경계 지역이었던 일선(현 구미시 도개면 일대) 지역에서 은신하여 포교 활동을 하였다. 따라서 이 지역에는 전 모례가정, 아도화상이 창건한 도리사, 석탑, 불상 등 많은 불교 유적들이 분포되어 있다. 또한 이 지역에서 통일신라시대의 금동여래입상(국보 제182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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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안강(安康). 자는 미언(美彦). 노경필(盧景泌)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노이원(盧以元)이며, 부인은 완산이씨(完山李氏) 이선(李繕)의 딸이다. 노성빈(盧聖賓, 1658~1718)은 부모의 상을 당하여 효성을 다하였고, 형제 사이의 우애를 돈독히 하였으며,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사후 호조판서·의금부동지사·오위도총부부총관에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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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미재(美哉), 호는 성암(省菴). 증조부는 문혜공(文惠公) 전귀생(田貴生), 할아버지는 전한(田漢), 아버지는 전무(田畝)이다. 1399년(정종 1)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정헌대부 예조판서를 역임했다. 태종의 세자 시절에 세자와 유일지사(遺逸之士)를 논하게 되었을 때 전가식은 “길재(吉再)가 강직하고 집에서는 효행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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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의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신앙. 민간신앙에는 무속신앙·가신신앙·마을신앙·속신 등을 포함시킬 수 있으나, 구미 지역에 나타나는 민간신앙은 가신신앙과 마을신앙으로 대표된다. 구미 지역의 가신신앙으로는 2월 영등, 10월 성주고사와 성주·조상신·삼신 등을 모시는 의례가 대표적이었다. 여성들이 중심이 되는 이러한 가신신앙은 현재 할머니 세대들이 며느리 세대로 바뀌면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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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국가와 향토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어나 싸운 민병. 1592년 4월 13일 일본군이 부산진을 침략하면서 북상하자 구미 선산에서는 노경임(盧景任)을 대장으로 하는 선산향병(善山鄕兵)이 조직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군이 들이닥치면서 곧 무너졌다. 그리고 해평 출신 부안현감 고한운(高澣雲)이 군졸과 흩어진 의사들을 모아 금오산성에서 진을 치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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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 전승되는 민간인의 생활풍속. 민속은 민간인 삶의 가장 기초를 이루는 문화의 총체이다. 여기에는 가족·친족 생활을 포함하여, 평생의례, 민속신앙, 세시풍속, 구비전승, 물질문화 등 등 우리 생활에서의 물질과 정신을 포괄한다. 구미 지역에서도 많은 민속 문화가 마을 단위로 또는 지역 단위로 전승하여 왔지만, 생활양식의 변화로 전통적인 민속 문화의 전승보다는 새로운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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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의 민간에 전승되어 오는 놀이. 민속놀이는 놀이 주체와 놀이자의 수, 놀이의 성격, 놀이의 시기, 놀이 방법 등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다. 놀이 주체에 따라 성인 놀이와 어린이 놀이, 남성 놀이와 여성 놀이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놀이자의 수에 따라 개인 놀이와 집단 놀이로, 놀이의 성격에 따라 의례적 놀이와 유희적 놀이, 놀이의 시기에 따라 세시 놀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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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의 민중들이 부른 소리. 민요는 민중들이 즐겨 부른 노래로, 민중 삶의 애환과 바람 등이 노래로 표현되고 구전으로 전승된 소리다. 민요는 각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특징을 지닌다. 그것은 지리적 환경 및 말투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그 음악적 특징을 별도로 ‘토리’라고 한다. 구미시는 시 한가운데로 낙동강이 흘러 평야가 발달한 까닭에 넓은 충적평야가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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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인물 민치서의 선정비. 민치서(閔致序)는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1862년(철종 13) 장흥부사(長興府使)에서 선산부사로 부임하였으며, 1864년(고종 1) 공주판관이 되어 이임한 인물로서 선산부사로서 베풀었던 선정을 기려 백성들이 비석을 세웠다.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영남유교문화진흥원 안으로 150m 정도 올라가면 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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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의 금오산에 서식하고 있는 쌍떡잎식물 갈매나무목 갈매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 헛개나무는 중부 이남의 표고 50~800m 강원도, 경상북도, 충청남도, 황해도 등에 분포하며 금오산을 비롯하여 주왕산, 오대산, 태백산, 월악산 등지에 자란다. 환경부 특정식물종 4등급에 해당한다. 높이 10m에 이른다. 나무껍질은 흑회색이며 작은 가지는 갈자색(褐紫色)으로 껍질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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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세자빈. 본관은 금천. 강감찬의 19세손이며, 아버지는 우의정 강석기(姜碩期)이다. 민회빈 강씨는 1627년(인조 15) 소현세자와 가례를 올렸으며, 1637년(인조 15) 소현세자와 함께 심양(瀋陽)에 볼모로 갔다가 1645년 귀국하였다.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갔던 소현세자는 심관(瀋館)에서 국왕의 대리자로서 많은 재량권을 행사하였고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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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유두에 먹는 밀가루로 만든 국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유두에 유두면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소맥(小麥)으로 구슬 모양을 만들어 유두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구미 지역의 밀국수는 긴 실 같은 밀국수를 삶아서 건진 뒤, 멸치국물에 담고, 양념장을 얹어 만든다. 또 유두국수라고 하여 콩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구미 지역에는 6월 유두에 밀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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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 천생산에 위치한 바위. 미덕암은 천생산성 서쪽에 불쑥 튀어나온 큰 바위를 말한다. 천생산성은 임진왜란 때 망우당 곽재우(郭再祐) 장군이 의병을 모아 왜적을 물리친 곳으로, 천생산 중에서도 천연으로 깎은 듯이 험준한 곳에 위치한다. 곽재우 장군의 신출귀몰한 전법으로 난공불락의 요새지였다. 이에 왜군은 인근 민가로 내려가서 촌로에게 이 산성에서 제일 귀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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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유두에 먹는 밀가루에 술을 넣어 만든 떡.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유두에 먹는 절식으로 상화병(霜花餠)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밀떡이다. 밀떡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체에 친 밀가루에 술을 붓고 물에 반죽하여 발효시킨 뒤 솥에 쪄서 만든다. 시루떡처럼 넓적하게 만들거나 둥글게 만든다. 반죽할 때 팥이나 콩을 섞기도 한다. 구미 지역에서는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