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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7월 충청남도 공주에 있던 공주고등보통학교의 학생들이 일으킨 동맹 휴교 사건. 1922년 5월에 개교한 공주고등보통학교는 조선인과 일본인 학생들이 함께 다닌 학교였다. 교장을 비롯한 대다수의 교사가 일본인으로 조선을 무시하고 조선인을 폄하하는 말과 행동이 잦았다. 조선인 학생들은 이러한 민족 차별의 식민지 현실 속에서 민족의식을 키워 나갔다. 학생들의 민족의식은 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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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12월에 충청남도 공주에 있던 공주고등보통학교의 학생들이 일으킨 동맹 휴교 사건. 1929년에 발생한 공주고등보통학교동맹휴교사건은 두 가지 원인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1929년 11월 3일 발생한 광주학생운동이다. 광주학생운동의 영향으로 당시 전국 곳곳에서는 학생들이 조선인 본위의 교육 제도 확립, 식민지적 노예 교육의 철폐, 언론·출판·집회·결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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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최초로 결성된 기자 단체. 일제강점기 조선어 신문 삼사인 『조선일보』·『동아일보』·『매일신보』는 지방의 기사 수합과 신문 판매를 목적으로 전국 각지에 경쟁적으로 지국을 설치·운영하고자 하였다. 또한 지방의 유지나 혁신 청년들도 유지정치(有志政治: 로비와 진정, 향응과 뇌물이 오가는 뒷거래 정치)나 사회 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지방 지국을 인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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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후반 공주 지역농민의 항일 저항 운동 단체. 공주노농협성회와 지부의 설립은 소작인과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단체를 조직하고 저항하여 생존권 확보를 위해 투쟁하였던 민족운동이다. 1920년대 농민조합운동이 합법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소작상조, 노동공제, 무산교육, 애경상문’ 등의 목적으로 농민들을 중심으로 노동협성회가 조직되었다. 1925년 8월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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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후반 공주 지역의 청년운동과 민중계몽운동을 전개한 청년단체. 일제 식민 지배 체제하에서 공주청년회의 ‘형제단체’로 민중계몽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공주소년동맹은 1928년 3월 집행위원장 윤홍중과 유연용·김진철·한덕근 등이 창립하였다. 공주소년동맹은 지역별 반조직, 회원의 자체 교양, 회보 발행, 반동단체 규제, 어린이날 행사, 조혼 폐지 등의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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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6·25전쟁 당시 피난민을 구호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 공주 지역의 유지들이 공주 지역으로 피난하는 사람과 후퇴하는 군인, 관리들에게 음식과 숙소를 알선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6·25전쟁 직후인 6월 말 7월 초에 결성되어 공주 지역이 북한군에 점령되기 직전인 7월 12일까지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6·25전쟁 초기 관리와 군경, 그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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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0년경부터 약 160년간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개설된 약령시. 약령시는 원래 감영 소재지로 모이는 약재 중에서 국가가 구입한 뒤 일반인에게 판매를 하는 장터로서 처음에는 각종 약재의 채집과 집산 등의 사정으로 월령(月令)에 따라 몇 차례 개설하였으나 점차 봄과 가을 두 차례 개시로 정착되었다. 한 달 동안 열리는 장터에는 전국 각지의 약초 재배자와 심마니, 상인과 한의사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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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초반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계몽운동을 전개한 청년단체. 3·1운동 이후 일제가 문화정치를 표방하면서 청년수양단체들은 야학, 생활 개선과 같은 민중계몽 활동, 강연회·토론회·연극회·체육회와 같은 문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대 전반기 활성화된 민족개조운동, 농촌계몽운동, 물산장려운동, 민립대학설립운동 등은 청년수양운동과 그 흐름을 같이 하는 신문화운동이었다.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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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중반 공주 지역에서 혁신 운동을 전개한 청년 단체. 민중 본위의 합리적인 신 사회 건설의 역군이 될 만한 훈련과 교양에 노력하고, 조선 민중의 정치적·경제적 각성을 촉진하며, 단결을 공고히 하여 일체의 파벌주의를 근본적으로 배제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공주 지역의 청년회 혁신 운동은 1925년경부터 전개되었다. 1925년 11월 29일 결성된 공주청년회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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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 12일 충청남도 공주에서 미 8군 제24사단이 금강철교를 폭파한 사건. 금강철교(일명 금강교)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준공되었으며, 당시 한강 이남에서 가장 긴 다리였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침하자 6월 27일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중앙 정부를 대전으로 이전할 것을 결정하였다. 중앙 정부가 대전으로 이전하자 서울을 비롯한 각 지역의 피난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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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설립된 최초의 금융 기관. 각 지방의 금융조합은 1907년 ‘지방금융조합규칙’에 의해 설립되어 조합원을 상대로 농업 자금 저리 대부와 민간 저축 업무를 실시하는 일종의 지방은행이다. 금성금융조합은 1907년 11월에 설립되었다. 설립 시기의 업무 구역은 공주·회덕·정산·청양·노성·은진·석성·부여·연산·진잠 등이고, 조합장은 신태준, 이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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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김갑순은 1872년(고종 9) 5월 김현종(金顯宗)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김갑순은 그의 부친과 형님의 요절로 13살 때인 1884년(고종 21)에 호주가 되었다. 김갑순은 조선 말기에 내장원봉세관(內藏院捧稅官)을 거쳐, 1906년에는 공주군수, 1911년 아산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김갑순은 1914년 충청남도 참사(參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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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독립을 위해 투쟁한 활동가. 일제강점기 공주 지역에서는 만세 시위운동, 동맹 휴교 투쟁, 사회 운동 등 다양한 형태의 민족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였다. 1935년의 조선총독부 자료에도 이러한 사실이 잘 나타나 있다. 주로 3·1운동 연루자인 「보안법」 위반자가 80명, 「치안유지법」위반자가 15명, 소작 쟁의나 노동 쟁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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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민영선은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인물로 조선 말기 주사와 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조선 말기 명화학교에 기부금을 냈으며, 공주청년회 주관 자선행사에 후원금을 기부 하는 등 공주 지역사회 발전에 관심이 높았다. 민영선 1920년 6월 성보영 등과 함께 남선흥업주식회사(南鮮興業株式會社)에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남선흥업주식회사는 일제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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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박준식은 1884년(고종 21)에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조선 말기 궁내부주사(宮內府主事)와 승훈랑(承訓郞)을 역임하였다. 박준식의 축재과정은 명확하지 않으나 궁내부주사를 역임하면서 상당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20년에는 공주권업주식회사 사장, 우성수리조합 평의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1935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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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2월 28일 충청남도 공주에서 김순태, 노수남 등이 반제국주의의 내용이 담긴 격문을 살포한 사건. 1929년 대공황으로 자본주의 사회는 위기에 처하고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대중들의 생활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일제는 공황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식민지 지배를 강화하고 조선의 민족 운동과 사회 운동을 탄압하였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이후 전반적으로 학생 운동이 침체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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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충청남도 공주군 탄천면 삼각리에서 활동하였던 농촌 진흥 운동 단체. 1916년경부터 충청남도는 도내 마을 단위의 진흥회가 조직되어 풍기 개선, 산업 개선, 부업 장려, 저축 장려, 납세 장려, 교육 보급, 부인회 조직, 위생 개선, 도로 개수 등의 사업을 전개하였다. 일제에 의해 추진된 진흥회는 1930년 12월 말 충청남도 내 175개 면 2,356개 리에 2,13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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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서덕순은 1892년(고종 29) 2월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서덕순의 부친 서한보(徐漢輔)는 조선 말기 관리출신으로 1901년 중추원 의관, 1911년 공주군 참사를 지낸 인물로 1890년경부터 대지주로의 면모를 갖추었다. 서덕순은 조선 말기 명화학교(明化學校)를 다니다가 1910년 동경으로 유학을 떠났으며,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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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서범순은 1895년(고종 32)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부친 서한보(徐漢輔)는 조선 말기 관리출신으로 1901년(고종 38)에 중추원 의관, 1911년에 충청남도 공주군 참사를 지낸 인물로 1890년경부터 대지주로의 면모를 갖추었다. 서범순은 공주농업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30년 말 기준으로 205㏊의 토지를 소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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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경제인. 성보영(成普永)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을 전개한 경제인이다. 조선 말기 주사(主事) 출신인 성보영은 일제강점기 초기부터 남선흥업, 금성금융조합, 공주권농조합 등의 대표를 역임하였다. 또한, 성보영은 1921년 공주청년수양회(公州靑年修養會)의 부회장으로 당시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전조선청년당대회(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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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발행되는 뉴스·논설을 비롯하여 정보·지식·오락 등을 전달하는 정기 간행물. 신문은 통상적으로는 신문사라 불리는 전문 기업이 일간 또는 주간으로 뉴스 보도를 중심으로 하여 발행하는 일반지(一般紙)를 가리키며 매스커뮤니케이션 미디어[媒體]의 일종이다. 그러나 신문은 일반지 외에도 기사의 내용과 그 신문이 대상으로 삼는 독자 또는 발행 형태에 따라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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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야학을 통해 민족 실력 양성을 꾀했던 교육 운동. 야학은 3·1운동 이후 민족 실력 양성 운동이 전개되면서 교육열이 고조된 데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일제의 차별적인 식민지 교육 정책으로 인하여 교육 시설이 부족한 데다가 민족 교육이 온상지로 지목되어 사립 학교가 탄압을 받고 있어서 정규 사립 학교 설립이 어려웠다. 여기에다가 일제강점기에는 의무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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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양천손(梁千孫)은 1902년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1938년 36세의 늦은 나이에 공주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양천손은 1922년 20세부터 공주 읍내에서 도자기 상점을 경영하여 부를 축적하였으며, 주조업으로 사업영역을 넓혀 1935년에는 공주주조 조합장을 역임할 정도였다. 특히 양천손의 특별한 양조방법은 애주가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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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있는 매체를 통하여 사실을 알리거나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언론은 넓게는 말이나 글로 자기의 생각을 발표하는 일 또는 말이나 글 그 자체를 의미하며 좁게는 매체를 통하여 어떤 사실을 밝혀 알리거나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또는 그 관련 기관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언론이라는 용어는 주로 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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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오지영(吳智永)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군 신상면(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아흔아홉 칸짜리 저택을 소유할 정도로 공주 지역의 대표적인 대지주였다. 오지영은 조선 말기 광산의 경영을 통해 부를 축적한 것으로 보이며, 1930년대 말 기준으로 212㏊ 전(田)과 92㏊의 답(畓) 등 392㏊의 토지를 소유한 대주지였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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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일제의 수리 시설 확충에 반대하여 공주 지역 우성면에서 일어난 농민운동. 우성면민들은 일제에 의한 우성수리조합의 설립을 반대하여 조합 설립의 부당성을 진정하고 도지사·군수와의 면담을 요청하는 시위를 전개하는 한편 공사 저지 투쟁까지 전개하였다.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식민지 경제 정책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우성수리조합 설립 반대 투쟁은 농민민족운동의 한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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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일제가 설치한 친일적 회의체와 이에 대항한 유림 단체. 일제강점기에 충청남도는 도령으로 장의회의를 설치하여 각 군 향교의 재산을 관리하고 유생들을 통제하고자 하였다. 각 군의 장의회의는 10명 내외의 유림들로 구성되고, 의장은 군수였다. 이와 같이 일제가 장의회의를 조직하여 지방의 향교 재산을 관리하고 유림들을 통제하여 지방 세력을 장악하려고 시도하자, 유림들은 유림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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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3월 충청남도 공주에서 이수준, 이용하 등의 청년들이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을 고취하기 위하여 독서회를 결성한 사건.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영향을 받아 조선의 농민과 노동자를 비롯한 대중의 생활은 더욱 악화되었다. 일제는 식민지 지배 체제를 강화하고 민족 운동과 사회 운동을 탄압하였다. 사회 운동 세력은 일제의 탄압으로 많은 활동가들이 체포되자, 소수 지식인과 학생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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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충청남도 공주에서 청년들이 비밀 결사를 조직하여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을 고취하고 대중 운동을 지원한 사건.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영향을 받아 조선의 농민과 노동자를 비롯한 대중의 생활은 더욱 악화되었다. 일제는 식민지 지배 체제를 강화하고 민족 운동과 사회운동을 탄압하였다. 사회 운동 세력은 일제의 탄압으로 많은 활동가들이 체포되고, 소수 지식인과 학생 중심의 활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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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정한명(鄭漢明) 1892년(고종 29)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선대로부터 많은 토지를 물려받은 일제강점기 공주 지역의 대표적인 대지주이다. 정한명은 1930년 말 기준으로 76㏊의 전(田), 39㏊의 답(畓) 등 166㏊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정한명은 다른 공주 지역의 대지주들과 함께 남선제사에 자본을 투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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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중동에 있는 공원. 중앙공원은 공주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으로 건립 과정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일제강점기부터 있던 공원으로 1924년 4월 공원에 가로등이 설치되어 밤마다 벚꽃 놀이를 즐겼을 정도로 벚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구 국립공주박물관을 포함했던 상당한 규모의 공원이었다. 현재 중앙공원으로 그 규모가 상당히 축소되어 공주영명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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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청년층에 의하여 조직되고 운영되었던 단체. 청년운동이란 청년들에 의해 수행되는 운동으로, 청년의 공통적인 세대적 특성에 기초해서 사회적 처지로 인해 고통 받는 각계각층 청년들이 자주성을 옹호하고 실현하기 위하여 전개하는 운동이다. 이러한 사회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각계각층의 청년층들이 조직하고 운영해온 단체를 청년단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의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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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충청남도 도청을 대전 지역으로 이전하는 것에 반대한 운동. 공주 지역은 조선시대에 충청감영이 있던 곳으로 호서 지역과 호남 지역의 교통과 상업 교류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경부선과 호남선 철도가 대전 지역을 통과하면서, 대전 지역이 삼남 교통의 요충지이며 물산 집산지로 변모하면서 신흥 상공업 도시로 부상하게 되었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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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홍원표(洪元杓)는 1904년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1930년 26세의 나이로 할아버지 홍종협(洪鍾夾)의 사망으로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았다. 홍원표는 1930년 상속 당시 소작인 2천 명의 소작료 1천 석과 채권 3만 원을 탕감해 주는 자선사업으로 공주 지역 사회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홍원표는 27㏊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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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교육자. 황인식(黃寅植) 1889년(고종 26) 12월 23일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1909년 영명학교(永明學校)를 제1회로 졸업하고, 평양 숭실학교에 입학하여 1912년에 졸업하였다. 1912년 6월 모교인 영명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1921년에는 영명학교 교사직을 사임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