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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을 시조로 하고 김전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강릉김씨(江陵金氏)의 시조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은 무열왕(武烈王)의 5대손으로 785년 선덕왕(宣德王)이 죽고 후사가 없자 군신회의에서 왕으로 추대되었으나 입궐을 사양하고 강릉으로 낙향하였다. 원성왕(元聖王)은 김주원을 명주군왕으로 봉하고 명주·익령(翼嶺)·평해(平海) 세 고을을 식읍으로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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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신천(信川). 자는 구부(懼夫), 호는 장봉(莊峰). 전라남도 영광에 정착한 강유(康旒)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강응성(康應星)이다. 강흔(康訢)은 4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16세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이후 성장하여 상례와 여묘(廬墓)를 다시 갖추는 효행을 지켜 냈다. 학덕이 높은 수은(睡隱) 강항(姜沆)과 사귀면서 널리 배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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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윤해를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파조인 수은공(樹隱公) 김충한(金沖漢)의 현손 김윤해(金潤海)가 연산군 대에 사회가 혼란스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남원으로 내려왔다가 고창군 대산면 매산리 세장마을로 입향하였다. 파조의 7대손으로 당시 전라북도 남원군 송동면 만골마을에서 태어난 김영량(金榮亮)[1650~1712]이 1692년(숙종 18)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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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광을 시조로 하고 김인우를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신라 신무왕의 셋째 아들 김흥광(金興光)이 장차 있을 국난을 예감하고 전라도 광산[지금의 광주광역시] 서일동에 자리를 잡고 은거하면서 후손들이 광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의 12대손 김인우(金仁雨)는 양간공 김연(金璉)의 현손으로 1329년(충숙왕 16) 송도에서 태어나 공민왕 대에 홍건적을 물리쳐 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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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군언(君言), 호는 의촌(義村). 종종 조의 명필로 알려진 김경희(金景熹)가 증조할아버지로, 아버지는 정묘호란에 의병으로 참여한 김여성(金汝聲)이다. 김남식(金南式)은 어려서 가학(家學)으로 공부를 하다가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29세 때인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전라도호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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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흥을 시조로 하고 김세웅을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김알지(金閼智)의 39대손 김시흥(金時興)이 고려시대에 공을 세워 김녕군(金寧君)으로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김해(金海)를 본관으로 하여 김수로왕계를 섬기고 김시흥계를 후김(後金)으로 여겨 오다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혼돈이 초래되어 조선 현종 대에 이르러 시조는 달리하면서 본관은 같이하게 되었다. 조선 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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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이헌(以憲), 호는 청계(淸溪). 판도판서공파(判圖判書公派)[일명 삼현파(三賢派)])의 파조 김관(金管)의 10세손으로,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김헌(金軒)이다. 김두남(金斗南)은 1570년(선조 3)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김헌이 행재소로 달려가 근왕(勤王)의 대열에 참여하고 돌아오는 길에 직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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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고창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매산(梅山). 증조할아버지는 판서를 역임한 김인우(金仁雨)이고, 아버지는 매은(梅隱) 김오행(金五行)이다. 김석원(金錫元)은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였다. 1469년(예종 1) 문과에 급제하여 녹사(錄事)와 통사랑(通仕郞)이 되었다. 계공랑(啓功郞)에 올랐을 때 예종이 승하하자 정희왕후의 명으로 익대순성명량훈(翼戴純誠明亮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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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도(淸道)이며, 자는 경덕(敬德), 호는 하석(霞石)이다. 1840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검산리에서 태어났다. 청도김씨 고창 입향조 김여의(金麗義)의 14세손이다. 김수형(金秀馨)은 1877년(고종 14)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로 임명되었다. 이후 성균관전적, 사간원정언을 거쳐 헌납 직에 오르고, 사헌부장령과 지평을 지내던 중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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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를 시조로 하고 김축을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김유신(金庾信)을 중시조로 하는 김해김씨(金海金氏)는 김녕군파를 비롯하여 142개 파로 분파하였다. 그중 김목경(金牧卿)을 중시조로 하는 경파(京派), 김목경의 아우 김익경(金益卿)을 중시조로 하는 사군파(四君派), 김관(金管)을 중시조로 하는 삼현파가 주류를 이룬다. 이 세 파는 김유신의 직계로서 특히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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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다성을 시조로 하고 문윤국을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남평문씨(南平文氏) 시조 문다성(文多省)은 472년(자비왕 15) 남평현 동쪽 큰 바위에 놓여 있던 서기 어린 함 속에서 발견되었는데, 함 뚜껑에 ‘문(文)’자가 쓰여 있어 성을 문씨로 하였다고 한다. 그 후 대아찬국사(大阿湌國師)가 되어 남평백(南平伯)에 봉해지고 삼중대광 벽상공신 대사마대장군 태사 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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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을 시조로 하고 김자진을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무장김씨(茂長金氏) 시조인 김선(金璇)[1343~1414]은 김해김씨의 시조인 가락국 김수로왕(金首露王)의 56세손으로, 고려 공민왕 때 공을 세워 장사군(長沙君)에 봉해졌고, 1375년 공민왕이 서거한 뒤 벼슬을 버리고 장사현으로 낙향하여 정착하였다.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김해김씨에서 분관하여 김선을 장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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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를 시조로 하고 김추를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상산김씨(商山金氏) 시조 김수(金需)는 신라 제56대 경순왕의 후손인데 선계(先系)를 알 수 없어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았다. 김수의 5세손인 김비궁(金非躬)이 상산부원군, 9세손 김일(金鎰)이 상락군(上洛君), 10세손 김록(金祿)이 상성군(商城君)에 잇달아 봉해져 상산에 여러 대에 걸쳐 살았으므로 후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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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궁을 시조로 하고 김순덕을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선산김씨(善山金氏) 시조 순충공(順忠公) 김선궁(金宣弓)은 김알지(金閼智)의 30세손, 문성왕(文聖王)의 8세손이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백제를 정벌하면서 선산 일선군(一善郡)에 이르러 모병할 때 김선궁이 종군하기를 원하자 왕건이 환영하고 친히 어궁(御弓)을 내리고 이름을 선궁이라 지어 주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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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경을 시조로 하고 김을만을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안동김씨(安東金氏)의 시조 충렬공(忠烈公) 김방경(金方慶)[1212~1300]은 경순왕의 후손이다. 고려 시대에 삼별초와 왜구를 섬멸한 공으로 정난정국공신(定難靖國功臣)이 되어 상락군(上洛君)에 봉해졌다. 파조 익원공 김사형(金士衡)의 현손인 김을만(金乙萬)[1458~1525]이 단종이 폐위된 뒤 남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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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천서를 시조로 하고 나순효를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안정나씨(安定羅氏) 시조 나천서(羅天瑞)는 나총례(羅聰禮)의 10세손인 나윤(羅允)의 둘째 아들로 1370년(공민왕 19)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올랐고 안정백(安定伯)에 봉해졌다. 후손들이 의성군 안정에 세거하면서 안정(安定)을 본관으로 하고 나천서를 1세조로 하여 대를 이어 오고 있다. 나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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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심언을 시조로 하고 김사손을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영광김씨(靈光金氏) 시조 문안공 김심언(金審言)[?~1018]은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대안군(大安君)의 현손이다. 고려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한 뒤 벼슬이 내사시랑평장사(內史侍郞平章事)에 이르렀고 오성군(筽城君)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영광을 본관으로 하고 시조로 삼았다. 이후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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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교육가이자 사회사업가. 본관은 함양(咸陽)이며, 자는 경안(敬安), 호는 남사(南沙)이다. 1895년 1월 13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남산리 흥룡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오병문(吳秉文)[1858~1915]으로 부호였다. 오자환(吳滋煥)은 다른 아이들이 한문 서당에 다니고 있을 때 신학문을 배웠다. 성장한 뒤 그는 식민지 치하에서 가장 시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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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고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동복(同福). 호는 감천(感泉). 한림원승지를 역임한 오자귀(吳自貴)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한 오팽년(吳彭年)이다. 오준(吳浚)은 어린 시절부터 학문을 깊이 연구하고 예절을 숭상하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28세 때인 1471년(성종 2) 어머니가 병환으로 위독하자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마시게 하여 3~4일을 연명케 하였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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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지를 시조로 하고 김질을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울산김씨(蔚山金氏) 시조 김덕지(金德摯)는 신라 경순왕의 둘째 아들로 고려 태조에게 신라를 양위할 때 힘을 다하여 말리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형인 마의태자와 함께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고 하나, 그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14세손인 김환(金環)은 고려 시대에 벼슬이 삼중대광 영도첨의사에 이르렀고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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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고흥(高興)이며, 자는 백명(伯明), 호는 경당(敬堂)이다. 아버지는 계은(溪隱) 유낙연(柳樂淵)이다. 1853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봉산리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유진룡(柳鎭龍)이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에서 살다가 봉산리로 이거했다고 전한다. 유상준(柳相浚)은 타고난 성품이 순박하고 인정이 많으며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여섯 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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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계오를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진주강씨(晉州姜氏) 시조 강이식(姜以式)은 고구려의 도원수로서 수나라 침략군을 여러 차례 토벌한 공을 세웠고, 후손 강진(姜縉)은 신라인으로 숭인전 사운과(崇仁殿四韻科)에 장원을 하여 판중의령(判中議令)을 지내고 진양후(晉陽侯)에 봉해졌다. 이에 후손들이 진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강학손(姜鶴孫)이 평양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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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촌락. 집성촌은 성(姓)과 본(本)이 같은 부계의 혈족들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을 의미한다. 마을을 주도하는 성씨가 상대적으로 결속하면서 토성과 세거성씨가 중심이 된 동족 마을이 발달하게 되었다. 1.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수록된 성씨 『세종실록지리지』에 실린 고창 지역의 세거성씨를 보면 고창현의 토성은 오(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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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대를 시조로 하고 김여의를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청도김씨(淸道金氏) 시조 영헌공(英憲公) 김지대(金之岱)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悅)의 8대손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경상도안찰사·정당문학(政堂文學)·이부상서를 거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를 지내고 오산군(鰲山君)[오산은 지금의 청도]에 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