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1579
한자 蔣漢倬
영어공식명칭 Jang Hantak
이칭/별칭 경장(景章),근재(芹齋)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52년 1월 1일연표보기 - 장한탁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96년 3월 - 장한탁 청송의진에서 활동
몰년 시기/일시 1930년 01월 11일연표보기 - 장한탁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7년연표보기 - 장한탁 건국포장 추서
출생지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활동지 청송의진 - 경상북도 청송군
성격 의병
성별

[정의]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개설]

장한탁(蔣漢倬)[1852~1930]은 1896년 3월 청송의진에 참여한 유생이다. 안동의진의 송천도회에 참가하여 안동의진을 비롯한 주변 의병진의 정세를 파악하여 보고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가계]

본관은 아산(牙山). 자는 경장(景章), 호는 근재(芹齋). 1852년 1월 1일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서 아버지 장발호(蔣發鎬)와 어머니 안동김씨(安東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려 후기의 문신 문익공(文翊公) 장성발(蔣成發)의 후예이다. 숙종(肅宗) 때 의성(義城) 출신인 귀래정(歸來亭) 장입국(蔣入國)의 증손 송와(松窩) 장원식(蔣元栻)이 덕천(德川)의 청송심씨(靑松沈氏) 문객이 된 뒤 그 후손들이 청송 지역에 세거하였다.

[활동 사항]

장한탁은 1896년 3월 16일 창의한 청송의진에 유생으로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청송의진은 창의 이래 안으로는 의병진의 진용을 갖추는 한편, 밖으로는 주변 의병진과 대응책을 논의하면서 진용을 정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청송의진은 4월 11일 신임 안동관찰사의 부임에 따른 대책을 세우기 위해 송천도회(松川都會)를 열기로 했으며, “귀영(貴營)에서도 유생(儒生)을 정해 기일에 맞춰 도회에 참가하여 상의해서 가부를 결정하자”는 안동의진(安東義陣)의 사통(私通)을 받았다.

이에 장한탁은 4월 12일 유생(儒生)의 신분으로 송천도회소(松川都會所)에 파송되었다. 4월 16일 청송으로 돌아온 장한탁은 “여러 고을에서 모두가 모여 새로 오는 관찰사를 혹 받아들이자, 혹 받아들이지 말자는 사이에 받아들이자는 의견이 많았다”는 보고를 하였으며, 그리고 “안동의진의 대장이 또 봉정사(鳳停寺)로 옮겨갔다”는 안동의진의 동향을 보고하는 등 유생으로서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1930년 1월 11일 79세로 서거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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