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범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1574
한자 申範熙
영어공식명칭 Shin Beomhui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근대/일제강점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2년 3월 13일연표보기 - 신범희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0년 음력 7월 - 신범희 흠치교에 가입
몰년 시기/일시 1929년 01월 01일연표보기 - 신범희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9년연표보기 - 신범희 대통령 표창
출생지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 395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 395
활동지 경상북도 청송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신범희(申範熙)[1892~1929]는 1920년 음력 7월경 차경석을 교주로 하는 흠치교에 가입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신범희는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1892년 3월 13일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에서 태어났다. 1920년 음력 7월경 차경석(車京錫)을 교주로 하는 흠치교(吁哆敎)에 가입하여, 겉으로 종교 활동을 표방하며 국권회복운동에 진력하기로 결의하였다. 1901년 강일순(姜一淳)이 세운 흠치교는 민족적 색채를 띤 민족종교로서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측면이 강하여 일제의 탄압을 받았다. 흠치교는 교주 차경석을 중심으로 그 밑에 60인의 고문을 두고, 각 고문 밑에 6인조, 6인조 밑에 각 12인조, 12인조 밑에 각 8인조, 8인조 밑에 각 15인조 등을 두는 조직 체계를 구성하였다.

신범희는 8인조에 가입하여 1924년에 흠치교에 의하여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독립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교도를 모으고 군자금을 모집하여 교세의 확장을 도모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1년 4월 22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대정 8년 제령 제7호(정치범처벌령)’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공소를 제기하였으나, 11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안동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9년 1월 1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9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판결문」(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 1921. 4. 22.)
  • 「판결문」(대구복심법원, 1921. 11. 26.)
  • 「형사사건부」(대구지방검찰청 안동지청, 1921.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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