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복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1559
한자 權復奎
영어공식명칭 Kwon Bokgyu
이칭/별칭 경장(景章),송은(松隱)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 석정마을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50년 12월 27일연표보기 - 권복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96년 3월 - 권복규 청송의진 의병 활동
몰년 시기/일시 1925년 02월 15일연표보기 - 권복규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7년연표보기 - 권복규 건국포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86년 7월 20일 - 화전등전투
출생지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 석정마을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 석정마을
활동지 경상북도 청송군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청송의진 의병

[정의]

개항기 청송 출신으로 청송의진에서 활약한 의병.

[개설]

권복규(權復奎)[1850~1925]는 경상북도 청송 출신의 의병이다. 1896년 3월 청송향교의 향원으로 청송의진에 참여하여 진용을 편성하는 등 실무를 담당하였다.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장(景章), 호는 송은(松隱). 1850년 12월 27일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 석정마을에서 향림(香林) 권식(權湜)의 증손으로 태어났다. 권복규의 가문은 안동권씨 급사중공파 권윤형(權衡允)의 5대손 권명리(權明利)가 안동에서 청송으로 입향하여 안덕(安德)에서 강력한 재지적 기반을 갖추면서 명문으로 성장하였고, 그 후손들이 안덕 일원에 세거하고 있다.

[활동 사항]

1896년 1월 안동의진과 예안의진이 결성되었다는 소식이 청송 지역에 전해졌고, 곧이어 국왕 고종의 애통조(哀痛詔)[팔도에 의병을 일으키라는 고종의 거의(擧義) 밀지]와 주변 각 의병진에서 발하는 통문(通文)과 격문(檄文)이 날아들었다. 3월 9일 안동의진의 소모장(召募將) 유시연(柳時淵)이 청송관아의 무기고를 열고 병기를 탈취하는 한편, 격문을 발하여 창의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에 청송향교의 향원이었던 권복규는 3월 10일 청송향교의 향원 100여 명과 함께 향회(鄕會)를 개최하여 창의를 추진하였다. 이어서 3월 12일 청송유림 200여 명과 함께 향회를 개최하여 창의를 결의하였으며, 이날 오후 객사(客舍)에서 심성지(沈誠之)를 창의장으로 추대하였다. 권복규는 유생 조성규(趙誠奎)와 함께 실무를 담당하여 제장(諸將)을 임명하고, 참모와 서기를 뽑는 등 임파록(任爬錄)의 작성을 주도하였다. 1896년 7월 20일 화전등전투(花田燈戰鬪)에서 패전한 뒤 청송의진이 해산하자 은거하였다. 1925년 2월 15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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