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1492
한자 七代-靑松韓紙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소희

[개설]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송강리에는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된 청송 한지장 이자성[1950년생]이 운영하는 청송한지 공장이 있다. 이 공장에서는 7대에 걸쳐 전통 방식 그대로 우수한 품질의 청송한지를 만들고 있는데, 한지의 품질은 전국에서도 유명하다.

[7대째 내려오는 청송한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한지장 이자성벽진이씨 판서공파로 그의 6대조인 이석일(李錫一) 대에 청송군 파천면 신기2리 감곡마을에 정착했다. 마을에 절이 있어 가람실마을이라고도 하며, 이 일대는 예로부터 참닥나무의 산지이자 마을 앞으로 흐르는 물이 깨끗하여 종이의 색이 변하지 않아 한지를 만드는 데 최적의 장소였다. 그래서 이 지역은 신라시대부터 제지마을로 전해 내려오고 있었으며, 6대조가 들어왔을 때에도 이미 이곳에는 지통[한지를 뜰 때에 그 재료를 물에 풀어 담는 큰 나무 통]이 있었다고 한다. 또 1920년대까지 20여 개의 제지 공장이 있어 한지의 고장으로도 이름이 나 있었다.

이렇게 6대조 이석일 대부터 마을의 일원으로 함께 한지를 만들어 온 것이 이원중(李元重)-이진두(李振斗)-이종진(李鍾震)-이성순(李聖淳)까지 내려왔으며, 부친인 이상룡을 거쳐 현재의 무형문화재 이자성까지 한지 제작 기술이 전수되었다. 2017년 12월 현재 이자성의 부인인 김화순이 전수 장학생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딸인 이규자는 전수자로 지정되어 전수 장학생이 되기 위한 과정을 밟고 있다. 여기에 동생 이병환까지 한지 공장 일을 하면서 일가 모두가 전통한지 제작을 위해 힘쓰고 있다.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만든 청송한지]

“가람실 어른들은 지통이 있으면 윗말[윗마을], 아랫말[아랫마을] 두 개가 있어 동네에서 어울려서 지통을 했다고 하더라구요.”

지금은 개인이 한지를 만들지만 7대조가 마을에 들어왔을 때에는 주민들이 공동으로 한지를 만들었다. 종이를 뜨는 사람도 있고 집집마다 닥나무를 마련해 오기도 하고, 집에 젊은 사람이 없으면 대신 종이를 떠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서로서로 상부상조하며 어울려서 종이를 만들었다.

닥나무는 주로 늦가을에 뿌리 위를 조금 남겨 놓고 베어 온다. 봄에 닥나무를 채취해도 되지만 그럴 경우 껍질이 질겨진다고 한다. 그래서 가을에 껍질을 다 벗기고 난 다음 겨울에 껍질을 말려 둔다. 닥껍질이 다 풀어지면 황촉규라는 풀을 이용해 한지를 만드는데, 이 풀 역시 여름철에 날이 더워지면 풀이 삭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겨울에만 작업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들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모내기 철부터 추수까지 농번기에는 농사일에 집중하고 추수가 끝난 뒤부터 다시 모내기 전까지 농한기에는 한지를 만들어 수입을 얻었다고 한다.

이렇게 조선시대부터 마을 사람들이 함께 한지를 만들어 온 전통은 현재에도 일부 그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어, 가람동네[안동네라고도 부른다]에 계신 어른들은 닥나무를 채취해 경운기로 실어다 주기도 하고, 멀리 있는 분들은 채취 후 연락을 주면 가지러 간다고 한다.

[청송한지 만드는 법]

한지는 닥나무 껍질을 원료로 만든다. 청송한지도 참닥나무를 채취하는 데서 시작한다. 참닥나무 중에도 3년생 미만의 토종 참닥나무로 몸체에 생채기가 없는 것이 섬유질이 부드러워 품질이 좋은 한지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늦가을 닥나무를 채취하면 큰 가마솥에 넣고 물을 부어 6~7시간 푹 삶는다. 껍질이 물렁물렁해질 정도가 되면 꺼내어 식힌 뒤 껍질을 벗겨 낸다. 이 과정을 ‘탈피’라고도 하는데, 이 껍질은 겨울철부터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말려 보관한다. 건조된 껍질은 창고에 보관했다가 한지를 만들 때마다 꺼내어 쓴다. 이때 건조된 껍질은 물에 불려 닥칼을 이용하여 한 번 더 표면의 껍질을 벗겨 낸다. 이렇게 나온 것을 ‘백닥’이라 한다. 백닥은 오로지 수작업으로 만들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백닥은 잿물을 넣고 같이 고아 낸다. 요즘은 양잿물을 사용하는 데가 많은데, 청송한지 공장은 천연 잿물을 사용한다. 천연 잿물을 만들려면 우선 콩깍지, 수숫대 등을 태워 재를 만들어 하루 정도 물에 우려낸다. 그러면 재는 밑으로 가라앉고 위에는 맑은 물만 남는다. 이 맑은 물만 건져 내어 백닥에 붓는다. 잿물을 넣은 백닥은 7시간 정도 고아 낸다. 이렇게 장시간 고아야 백닥이 부드러워지고 나무 방망이로 두드릴 수 있다. 짓이겨진 닥죽은 지통에 깨끗한 물을 넣고 함께 섞이도록 저어 준다. 그리고 황촉규라 불리는 뿌리를 물에 담가 불린 뒤 두드려 점액[닥풀이라고도 한다]을 채취한다. 이렇게 채취한 닥풀은 물에 풀린 닥죽에 넣어 다시 잘 섞이도록 저어 준다. 닥풀의 양에 따라 한지의 내구성이 달라진다. 닥풀을 많이 넣으면 종이가 얇아지고 조금 넣으면 종이가 두꺼워진다. 따라서 닥풀의 양을 적당히 넣는 것이 중요한데, 그래야 종이가 질기고 오래갈 수 있다.

이 과정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한지 뜨기에 들어간다. 보통 작은 종이는 전통식 외발에, 큰 종이는 쌍발을 사용한다. 전통적인 외발뜨기 기법은 질기고 튼튼한 한지를 만들어 준다. 이 과정은 먼저 앞물을 떠서 초지를 받아들이고 옆물을 켜서 한지의 두께를 조절한다. 이 작업이 교차, 반복되면서 견고한 섬유조직이 생기는데, 한 장의 한지는 두 번 이상 발뜨기를 해서 합치게 된다. 외발뜨기는 발 위에 다른 발틀이 없어 물이 사방으로 흘러갈 수 있다. 어떤 방향으로 물을 흘려보내느냐에 따라 섬유가 그 방향으로 배열되는데, 이렇게 초질하는 방법은 세계에서 유일하다. 발로 건진 종이는 차례로 쌓아 올려놓고 그 위에 무거운 것을 올려 압착시키면서 천천히 물이 빠지도록 한다. 어느 정도 물이 빠지면 종이를 한 장씩 떼어내 열판에 붙여 건조한 뒤 완성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도침’이라고 하여 종이의 밀도와 섬유질을 높이기 위해 말린 한지를 수백 번 두드리기도 한다.

[개량 한지, 수입 펄프지와 전통한지의 차이]

청송한지 공장에서는 전통한지와 개량 한지를 함께 만들고 있는데, 각각 제작 방법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전통한지를 만들 때는 백피를 사용하는 데 반해, 개량 한지를 만들 때는 닥나무의 검은 껍질이 붙어 있는 흑피를 사용한다. 흑피는 가성소다로 된 잿물을 넣고 5일 정도 우려내고 표백제를 넣어 표백 과정을 거친다. 이후 전통한지는 방망이로 두드리지만 개량 한지는 기계를 이용하여 두드려 낸다. 그리고 전통한지는 닥풀이라 하여 황촉규의 점액을 이용하지만, 개량한지는 일반 풀을 물에 넣어 섞은 뒤 종이가 서로 잘 어우러지게 한다. 이 풀을 넣지 않으면 종이가 뭉칠 염려가 있다. 그러고 나서 발을 이용하여 개량 한지를 뜬다.

전통한지와 개량 한지의 차이점은 바로 백피와 흑피의 차이이다. 백피는 천연 잿물을 사용하는데 반해, 흑피는 화공약품인 가성소다로 된 잿물을 사용한다. 이 잿물의 차이는 전통한지와 개량 한지의 보존 기간에도 상당한 차이가 나게 한다. 그 다음으로 백피는 표백을 할 필요가 없는 반면, 흑피는 표백제를 넣어야 하얗게 색이 나온다. 표백제가 들어가면 어느 정도 원료도 손상을 입게 된다. 그래서 당장 눈 앞에서는 똑같은 한지로 보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종이 자체가 그만큼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표백제를 쓴 개량 한지는 기계로 두드려 나온 뒤 일반 풀을 섞은 물에 넣지만, 전통한지는 손수 방망이로 두드려 내고 황촉규에서 나오는 점액을 풀로 사용한다. 자연에서 얻은 전통 방식 그대로 만드는 것이다.

수입 펄프지는 닥 자체를 태국 등 더운 지방에서 수입해 온다. 외국에서 수입한 닥의 섬유질은 국산 닥보다 떨어지는데, 이미 표백 과정까지 다 완료된 상태에서 들어오기 때문에 고아 내거나 삶아 내거나 표백 등의 과정은 생략된다. 이렇게 수입해 온 닥은 바로 기계로 두드려 종이로 뜨기 때문에 제작 공정이 단순해지고 공정 시간도 짧아진다. 하지만 이미 표백제가 많이 들어가 원료가 손상된 상태에 들어오게 되므로 종이 자체가 거칠고 보존 기간 역시 오래 가지 못한다.

[현대화로 인한 한지 수요층의 변화]

“1990년대부터 집의 문도 바뀌기 시작하고 장례도 전부 화장으로 바뀌어 버리고 종이가 촌에서 필요하질 않아요.”

옛날부터 마을 사람들이 닥나무를 채취해서 가져다 주면 그 값은 주로 종이로 대신했다고 한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장례도 매장 형식이었기 때문에 입관할 때를 비롯하여 한지가 많이 사용되었고, 각 집집마다 문 역시 한지를 사용했기 때문에 우리 주변에서 종이가 늘 필요했다. 그런데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우리의 전통문화는 급변하기 시작했다. 매장 형식의 장례 문화는 화장으로 바뀌어 가고, 각각의 집들도 양옥으로 개량되어 유리문을 사용했다. 그렇게 되면서 1990년대 이후 한지 산업은 하향세를 걸었고 한지 공장은 줄줄이 폐업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청송한지 공장의 수요층은 대부분 화가, 서예가, 대학교수, 서예나 동양화를 취미로 하는 동호회 사람들이다. 특히 서예가들 사이에서는 청송한지의 뛰어난 품질은 정평이 나 있을 정도다. 사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서예, 그림에 이용되는 화선지는 펄프지로 만들었는데, 이 종이에 그림을 그리면 표면이 일어나는 단점이 있어 점차 펄프지에 한지를 섞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전부 한지로 바뀌었다. 현재도 수입산으로 된 펄프지 종이가 전통한지의 절반 가격에 판매되기도 하지만 그 품질은 청송한지를 따라가지 못한다.

[가람공방에서 즐기는 체험활동]

청송한지 공장에는 작업실 외에도 가람공방이라는 청송한지 체험관이 있다. 가람공방 이름은 옛 한지마을인 가람실마을에서 따왔다. 이곳에서는 한지 만들기와 공예품 만들기를 체험할 수 있고, 다양한 공예품을 전시하는 공간도 별도로 있다. 청송군 지역을 비롯한 타 지역의 초·중등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며 한지 제작 과정 설명, 닥나무 껍질 벗기기, 한지를 뜨는 방법을 설명하고 직접 한지를 뜨는 체험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나온 한지를 활용하여 한지 공예품을 만드는 체험도 있어 지역 내 청소년을 비롯하여 외국인들과 타지인들까지 체험을 즐기러 온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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