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쇠솥에 담긴 엽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1347
한자 -葉錢
분야 구비전승·언어·문학/구비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집필자 권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0년 - 「무쇠솥에 담긴 엽전」 『청송군지』에 수록
관련 지명 박형순 송덕비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전설
주요 등장 인물 박형순|노모
모티프 유형 효행|선행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에 세워진 박형순의 공덕비에 관련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박형순은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시각 장애인인 어머니를 정성껏 모셨다. 홍수로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 시신을 찾지 못했으나 무덤을 만들고 삼년상을 마쳤다. 그는 꿈속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따라 나섰다가 많은 재물을 얻었지만, 혼자 다 가지지 않고 동네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었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기려 송덕비를 세워 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0년 6월 30일 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집하고 청송군에서 발행한 『청송군지』의 705쪽에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채록 경위는 확인되지 않는다.

[내용]

약 300년 전 파천면 중평리 산꼭대기에 비(碑) 하나가 있었는데, 그 비의 주인공은 ‘박형순’이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거의 해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림을 겪어야 했던 보릿고개가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시각 장애인인 노모를 지극히 봉양했던 효자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이 박형순이었다. 그는 이른 새벽에 어머님께 아침밥을 해 드리고 날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해서 팔고 칡뿌리를 캐서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였다. 이렇게 부지런하고 알뜰하게 재물을 아껴 모은 돈으로 논과 밭까지 마련하고 착실하게 살았다.

비가 오는 어느 여름날, 그는 그날도 쉬지 않고 나무를 하기 위해 산에 가고 집에는 눈먼 노모만이 홀로 있었다. 비는 그치지 않고 점점 폭우로 변하여 삽시간에 그의 집 앞 개울이 넘쳤다. 앞이 보이지 않는 노모는 홍수가 범람하는 소리를 듣고 행여나 농토가 어떻게 될까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못하다가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 밖으로 나왔다.

비는 쉬지 않고 쏟아져서 그의 노모와 오막살이집까지 흔적도 없이 휩쓸어가고 말았다. 뒤늦게 산에서 돌아온 그는 어머니를 미친 듯이 부르짖으면서 밤낮으로 찾아 헤매었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는 시신도 없는 어머니의 무덤을 정성껏 마련하고 그 무덤 앞에다 움막을 짓고 삼년상을 치렀다.

어느 날 그의 꿈속에 그토록 그리던 어머니가 나타나서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어느 산꼭대기에다 데려다 놓고 말없이 한자리에서 계시더니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어머니의 환영이 사라지고 난 뒤 그는 어머니 곁에 영원히 같이 있으려면 오로지 죽음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자결을 하려고 큰 돌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돌 밑에서 육중한 쇳소리가 났다. 이상하게 생각한 그가 땅을 파 보니 땅속에 커다란 무쇠솥이 있었고, 그 속에는 엽전이 가득 차 있었다.

마음이 착한 그는 곧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사연을 설명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 엽전을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그 후 그는 효와 덕행을 근본으로 삼아 청렴한 생활을 하다가 98세의 고령으로 생애를 마쳤다. 이에 세상 사람들은 그의 효행을 기려서 송덕비를 세웠다. 그러나 지금은 조각난 비석의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모티프 분석]

「무쇠솥에 담긴 엽전」의 주요 모티프는 가난하지만 어머니를 정성껏 모신 아들의 효행과 그에 따른 보답이다. 아들은 재물을 혼자 다 가지지 않고 마을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고, 그 보답으로 마을 사람들은 송덕비를 세워 주었다는 박형순의 묘비에 대한 이야기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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