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10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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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道里追遠堂 |
영어공식명칭 | Dori Chuwondang |
이칭/별칭 | 추원당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재동길 30-36[도리 41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소희 |
이전 시기/일시 | 1851년 - 도리추원당 율리로 이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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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철|철거 시기/일시 | 1871년 - 도리추원당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08년 - 도리추원당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9년 - 도리추원당 중수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2년 11월 26일![]()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도리추원당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재지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재동길 30-36[도리 419]![]() |
성격 | 재실 |
양식 | 익공 형식 |
정면 칸수 | 5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의성김씨 청송도동 문중 |
관리자 | 의성김씨 청송도동 문중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도리에 있는 조선시대 재실.
도리추원당(道里追遠堂)은 의성김씨 청송 입향조인 도곡(道谷) 김한경(金漢卿)을 기리기 위해 김한경의 묘 밑에 세운 재실이다. 김한경은 1456년(세조 2)에 경기도 풍덕군에서 출생하여 1506년(중종 원년)에 정국원종공신으로 책록되었다가 사화를 피해 청송으로 입향하였다. 후학을 기르는 데 전념하였다가 1552년(명종 7)에 9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김한경의 묘소는 서산(西山) 유좌원(酉坐原)에 있는데, 묘소 아래에 도리추원당이 세워져 있다.
어봉산(漁鳳山)과 고모산(顧母山) 사이에 나 있는 청송로를 따라 북쪽으로 가다 보면 도리추원당이 좌측 편에 있다. 의성김씨 세거지 추원당 입구라 적혀 있는 표지석을 따라 들어오면 도리길과 재동길 갈림길이 나오는데, 재동길을 따라 들어오면 마을 가장 안쪽 산 아래에 도리추원당이 자리 잡고 있다.
도리추원당의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도리추원당은 당시 선조들이 해마다 묘제를 지낼 때 제숙(齊宿)하는 곳이었다. 이후 사당을 당의 북쪽 언덕에 세워 1822년(순조 22)~1851년(철종 2)까지 약 30년간 관리해 오다가 율리로 이건하였다. 이후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사당은 훼철되었다. 「추원당중건기(追遠堂重建記)」에 따르면, 세월이 오래되고 풍우로 인해 1908년[戊申年] 가을에 중수하였고 30여 년 뒤에 다시 한 번 보수하였다고 한다. 이어 1979년도에도 재차 중수가 이루어졌는데, 당시 상량문이 발견되었으나 사본(寫本)을 하지 않은 채 재장치(再藏置)하여 그 내용은 알 수 없다.
도리추원당의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익공계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3*2칸의 마루방을 중심으로 좌우에 2칸 통의 온돌방이 있다. 정면을 기준으로 어칸을 제외한 양측 협칸과 퇴칸에는 쪽마루에 헌함을 돌렸다. 마루방 정면에는 각 칸에 4분합으로 궁창널을 끼운 세살문을 달았다. 우물마루를 깐 마루방의 상부 가구는 오량가(五樑架)로 대량 위에 동자주를 포작으로 짜서 종량을 놓았다. 그리고 중도리 안쪽에 우물반자를 후설하여 마루대공은 감추었다. 마루방 3칸 뒤 벽면에는 각 칸 널벽의 머름 중방 위에 양개 울거미널 창문을 내었다. 오른쪽 온돌방에는 사성재(思成齋)라는 현판이 있으며, 좌측방에는 학습재(學習齋)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1992년 11월 26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어 보호 및 관리되고 있다.
도리추원당의 사성재 마루 쪽에서 보이는 기교는 없으나 고졸(古拙)한 창문 양식과 대청 뒤쪽 벽에 있는 풍소란형 영쌍창(靈雙窓)의 유구 등은 창호 변천사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