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1051
한자 靑松丙甫齋舍
영어공식명칭 Boungbojaesa
이칭/별칭 병보재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병부길 34[중평리 720]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소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30년연표보기 - 청송 병보재사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2005년 09월 20일연표보기 - 청송 병보재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88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청송 병보재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현 소재지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병부길 34[중평리 720]지도보기
성격 재사
양식 팔작기와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5칸
문화재 지정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중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재사.

[개설]

병보재사(丙甫齋舍)는 1830년에 건립된 조선 후기의 문신 김성탁(金聖鐸)과 그의 부인인 숙인(淑人) 무안박씨(務安朴氏)의 묘를 수호하는 재사이다. 김성탁은 1728년(영조 4)에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킨 공으로 안핵사(按覈使)의 추천을 받아 참봉에 임명되었다. 1735년(영조 11)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지평을 지냈으며, 사간원정언, 홍문관 수찬 등 요직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2년 뒤인 1737년(영조 13)에 이현일(李玄逸)의 신원소를 올렸다가 제주도 정의(旌義)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광양으로 다시 이배되어 용선암(龍仙庵)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1747년(영조 23)에 생을 마감했다.

김성탁은 ‘이현일-김성탁-유치명’으로 이어지는 퇴계학파로 유배지에서 『증정중용의의(證訂中庸疑義)』, 『계몽질의변(啓蒙質疑辨)』 등을 저술하고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현재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금양서원(錦陽書院)에 스승 이현일과 함께 배향되어 있다.

[위치]

청송 병보재사파천면 중평보건진료소를 기준으로 북서쪽에 있는 병부마을 내에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마을 입구 산허리의 경사진 대지 위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변천]

본래 김성탁의 묘소는 안동부 기령산에 있었는데, 1830년(순조 30)에 진보현 오향원[지금의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으로 이장하면서 묘소를 수호할 재사로 병보재사를 지었다. 청송부에서 발행한 완문(完文)에 따르면, 이 묘를 수호하는 자에게는 당시 전례에 따라 잡역을 면제해 주었음을 알 수 있다.

[형태]

청송 병보재사의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5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마루 중심형 겹집의 형태로, 전면 가운데 칸에 설치된 2짝 판장문(板藏門)을 들어서면 바로 봉당이 나오고, 봉당 뒤에는 대청을 두었다. 우측 칸에는 부엌과 온돌방을 앞뒤로 연접하였고, 좌측 칸에는 온돌방 2칸을 앞뒤로 배치하였는데 전면 온돌방 주위에는 쪽마루를 설치하였다. 다소 높게 설치한 자연석 기단 위에 덤벙주초[자연석을 가공하지 않고 주춧돌로 사용한 돌]를 놓은 후 기둥을 세웠고, 가구(架構)는 대량 위에 동자주를 세워 종량을 받게 하고, 종량 위에 동자대공을 세워 마룻대와 장혀를 받게 한 오량가(五樑架) 구조이다.

[현황]

청송 병보재사는 2005년 9월 20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8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어 보호 및 관리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에 건축된 병보재사는 마루 중심의 겹집 평면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겹집 구조는 경상북도 북부 지역에서 흔히 보이는 형태였으나, 지금은 많이 소멸되어 보존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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