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872
한자 金在洙
영어공식명칭 Kim Jaesu
이칭/별칭 문수(文秀),두암(斗巖)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권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6년 3월 1일연표보기 - 김재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6년 - 김재수 정용기의 산남의진에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07년 10월 - 김재수 박연백 의진에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09년 3월 - 김재수 대심원 교수형 확정 선고
몰년 시기/일시 1909년 04월 08일연표보기 - 김재수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1년연표보기 - 김재수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추모 시기/일시 2008년 - 항일의사 두암김재수선생순국기념비 건립
출생지 경상도 청송도호부 월정리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월정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월정리 지도보기
활동지 경상북도 청송군
활동지 경상북도 영천군 - 경상북도 영천시
활동지 경상북도 경주군 죽장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
활동지 경상북도 의성군
묘소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월정리 지도보기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종사|소모장

[정의]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개설]

김재수(金在洙)[1876~1909]는 1906년 3월 경상북도 영천에서 일어난 산남의진(山南義陣)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10월 포항 죽장면 입암전투(立巖戰鬪)에서 일본군에게 크게 패하자 의성의 박연백(朴淵伯) 의진에 들어가 소모장(召募將)으로 영천, 안동, 신녕 등 여러 지역에서 군자금 확보에 주력하다 체포되어 1909년 4월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가계]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문수(文秀), 호는 두암(斗巖).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아들 의성군(義城君)의 후예로 청송군 현서면 월정리에서 1876년 3월 1일 아버지 김항희(金恒熙)와 어머니 함안조씨(咸安趙氏)의 2남 5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활동 사항]

김재수는 1906년 3월 경상북도 영천에서 정용기(鄭鏞基)가 산남의진을 일으키자 이에 입진하여 활동하였다. 그 뒤 의진 본영이 1907년 10월 8일 입암전투에서 일본군에게 크게 패하자, 10월 13일 경상북도 의성의 박연백 의진에 들어가 종사(從事)와 소모장으로 활동하였다.

김재수는 그해 10월 15일부터 12월 5일 사이 의병 30여 명과 함께 경상북도 영천, 안동, 청송 등지에서 다량의 군수금과 군수품을 징수하였다. 이어서 같은 해 12월 박연백의 지휘 아래 의병에 비협조적인 의성군 금곡면 노매동의 민가에 방화하고, 이어서 춘산면 금동, 공수동, 유동 등 여러 곳에서 일본군과 접전하는 활동을 펼쳤다. 또 1908년 1월에는 의성군 사무소와 분견소(分遣所)를 습격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전개하던 중 잡혀 1909년 1월 18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강도죄로 종신 징역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그해 3월 4일 대구공소원에서 교수형으로 형이 변경되었다. 다시 대심원에 상고하였으나 1909년 4월 8일 상고 기각 판정으로 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묘소]

김재수의 묘소는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월정리 산231[화전곡]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후손은 2008년 청송군 현서면 월정리 만수농원에 항일의사 두암김재수선생순국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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