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852
한자 曺功谷
영어공식명칭 Cho Gonggo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권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07년 - 조공곡 산남의진 포술장·포군초장·부장으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07년 10월 - 조공곡 흥해순사주재소 및 우편취급소 습격
몰년 시기/일시 1908년 03월 16일연표보기 - 조공곡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10년연표보기 - 조공곡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청송군
활동지 경상북도 청송군
활동지 경상북도 영덕군
활동지 경상북도 흥해군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군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산남의진 포술장|부장

[정의]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개설]

조공곡(曺功谷)[?~1908]은 1907년 4월 정용기(鄭鏞基)의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입진하여 포술장(砲術將)으로 활동하였다. 정환직(鄭煥直) 대장 휘하에서는 포군초장(砲軍哨長) 및 부장(副將)으로 흥해·영덕 등지에서 순사주재소(巡査駐在所)를 습격하고 일본인 순사들을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펼치다 순국하였다.

[활동 사항]

조공곡은 1907년 4월 정용기가 산남의진을 다시 일으킬 때, 청송 지역 모병 담당자 남석인(南錫仁)을 따라 입진하여 포술장으로 활동하였다. 산남의진은 1906년 3월 경상북도 영천에서 일어났으나 그해 4월 정용기 대장이 경주진위대(慶州鎭衛隊)에게 잡혀 구속되었다가 풀려난 뒤 1907년 4월에 재기한 것이다.

의진은 1907년 10월 영일 죽장면 입암전투(笠巖戰鬪)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격전을 벌였으나 정용기 대장이 전사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조공곡은 정용기의 아버지 정환직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포군초장을 거쳐 부장으로 활동을 계속하였다. 의진은 전국의병연합부대의 서울진공작전에 참여하기 위하여 관동(關東)으로의 북상을 목표로 하여 진군하였다. 그 과정에서 1907년 10월 흥해읍을 공격하여 순사주재소와 우편취급소 등을 불태우고 일본인 순사 등 3명을 처단하였다.

1907년 12월 5일 영덕 유암전투(酉巖戰鬪)에서 남석술(南錫述)이 전사하자, 조공곡은 대장의 지휘 아래 군사 80여 명을 이끌고 영덕읍을 공격하였다. 하지만 탄약의 고갈과 일본군의 우세한 화기에 밀려 포위되었다가 간신히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었다. 정환직 대장은 12월 8일 포항시 청하 각전(角田)[뿔밭]에서 휘하 장병들에게 개별적으로 북상하여 강원도 오대산으로 집결할 것을 명령하고 의진을 해산하였다. 정환직은 포항시 청하 각전에서 병을 치료하다 영천 일본군수비대의 습격을 받고 1907년 12월 11일 붙잡혀 순국하였다. 이 무렵 조공곡도 귀가하여 은신하였으나 1908년 3월 16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7년 산남의진기념사업회에서 지금의 포항시 북구 흥해읍 영일민속박물관에 한말의병항왜혈전기념비를 세워 의진의 활동상을 기리고 있다.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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