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춘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797
한자 閔春基
영어공식명칭 Min Chungi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근대/일제강점기
집필자 권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2년연표보기 - 민춘기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39년 - 민춘기 오사카 간사이중학교 수학
수학 시기/일시 1939년 - 민춘기 교토 성봉중학교 수학 및 교토한국인유민생회 가입
활동 시기/일시 1942년 - 민춘기 비밀 결사 조직 계획 중 일본 경찰에 체포
활동 시기/일시 1943년 - 민춘기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징역 3년 선고받고 투옥
몰년 시기/일시 1945년연표보기 - 민춘기 8.15광복 형집행정지 출옥
추모 시기/일시 1995년연표보기 - 민춘기 건국훈장 애족장 수여
출생지 경상북도 청송군
거주|이주지 일본 오사카시
활동지 일본 오사카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교토한국인유민생회 회원

[정의]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민춘기(閔春基)[1922~생존]는 1922년 경상북도 청송에서 태어났으나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大阪]와 교토[京都]에서 수학하였고, 학업 도중 교토한국인유민생회[京都韓國人留民生會]에 가입하여 민족의식을 키웠다. 민춘기는 1939년경부터 신문점 배달원으로 활동하면서 동지들과 회합하며 독립의식 고취와 비밀결사 조직에 노력하던 중 체포되어 1943년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경상북도 청송에서 태아난 민춘기는 1939년 4월 일본으로 건너 갔다. 이후 오사카 간사이공학교[關西工學校]와 교토성봉중학교[京都聖峰中學校]에 들어가 공부하면서 교토한국인유민생회에 가입하여 선배 유학생들의 영향을 받고 민족독립에 대한 꿈을 키웠다. 그 뒤 오사카에서 신문점 배달원으로 일하던 중, 1941년 8월 오사카공학교[大阪工學校] 학생 정규식(鄭圭植)을 만났다. 이들은 한국 독립을 위해 서로 노력할 것을 맹세하고 민족운동 관련 서적을 읽으며, 쑨원[孫文]의 삼민주의(三民主義)에 바탕을 둔 민족운동 방법에 관심을 기울였다.

민춘기는 1942년 8월 최문전(崔文典)이 신문 배달원으로 들어오자 정규식과 함께 최문전을 동지로 받아들여 독립의식 고취에 뜻을 함께 모으기로 하고, 앵궁공원에서 여러 차례 회합을 가졌다. 여기서 민춘기는 한국의 독립을 위해 의식 있는 청년들을 결집시켜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동안 한국 독립운동의 모체가 될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만주독립군을 비롯한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과 연계한 독립전쟁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민춘기는 1942년 9월 대구사범학교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잡힌 적 있는 서산옥제(西山玉濟)와 오사카에서 만나 독립운동의 중심 기구 역할을 할 수 있는 비밀결사를 조직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를 사전에 탐지한 일본 경찰에 의해 같은 해 10월 15일 잡히고 말았다.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8월 광복을 맞아 그해 10월 9일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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