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욱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765
한자 金致郁
영어공식명칭 Kim Chiuk
이칭/별칭 세영(世榮),암은(岩隱)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홍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사당|배향지 홍원리 창효각 -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송전길 69-14[홍원리 605]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본관 해평

[정의]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세영(世榮), 호는 암은(岩隱). 정5품 이조정랑(吏曹正郞)을 역임한 지지당(止止堂) 김맹성(金孟性)[1437~1487]의 17대손이다.

[활동 사항]

김치욱(金致郁)[?~?]은 성품이 본래 지극히 효성스러워 어려서부터 남다른 효심을 보였다. 김치욱이 다섯 살 때 젖을 먹는데 어머니의 왼쪽 유방에 부종(浮腫)이 생겼다. 그러자 어머니가 유통(乳痛) 때문에 괴로워하실 것을 염려하여 그 이후로는 젖을 빨지 않았다.

김치욱이 열두 살이 되던 해에 서당으로 글공부를 다니던 어느 날이었다. 글방에서 읽던 책을 걷어들고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께 말씀드리기를 “집안이 가난하여 부모님께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가 고생스러우니, 자식된 도리로 공부를 해서 훗날의 성공을 기약하기보다는 아버님의 고생을 덜어 드리는 것이 가장 큰 효도일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글방에 다니는 것을 그만두고 농사를 지으면서 부모님의 뜻을 받들고 맛난 음식으로 극진히 봉양하였다.

무더운 여름 어느 날 가래가 끓어서 숨이 차는 병을 앓던 아버지가 갑자기 얼음을 먹고 싶다고 하였다. 김치욱이 백방으로 돌아다니며 구하려 하였으나 얼음을 얻을 수 없었다. 김치욱은 하는 수 없이 목욕재계를 하고 얼음을 구하게 해달라고 하늘에 축원하였다. 기도가 영험이 있었는지 과연 사는 곳 근처의 바위동굴에서 얼음덩어리를 구하여 아버지께 드렸더니 병세에 차도가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김치욱은 산신령께 치성을 드리고 만병통치약이라 불리는 산삼을 캐러 떠났다. 정말로 치성의 효험을 본 것인지 산행을 시작한 지 며칠 만에 능선 옆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산삼 여러 뿌리를 캐다가 탕제로 달여 아버지께 드렸더니 더욱 오래도록 장수를 누렸다. 당시의 사람들은 김치욱의 효성이 하늘에 뻗친 때문이라고 입을 모아 칭송하였다.

김치욱이 내상(內喪)과 외상(外喪)을 당해서는 한결같이 예에 의거해 장례를 치르고, 6년 동안 비가 오거나 눈이 오더라도 언제나 한결같이 성묘를 하니 고을 사람들이 하늘이 낸 효자라고 평하였다.

[상훈과 추모]

김치욱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홍원리에 창효각(彰孝閣)이 건립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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