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653
한자 李從允
영어공식명칭 Lee Jongyun
이칭/별칭 가정(可貞),송와(松窩)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31년연표보기 - 이종윤 출생
활동 시기/일시 1462년 - 이종윤 생원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462년 - 이종윤 진사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468년 - 이종윤 식년시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469년 - 이종윤 영창전참봉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71년 - 이종윤 경상도 장기 유배
활동 시기/일시 1472년 - 이종윤 내자시주부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75년 - 이종윤 예조좌랑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76년 - 이종윤 예조정랑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82년 - 이종윤 사간원헌납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84년 - 이종윤 사헌부장령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84년 - 이종윤 제용감첨정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85년 - 이종윤 봉상시부정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86년 - 이종윤 사옹원부정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87년 - 이종윤 시강원보덕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89년 - 이종윤 사헌부장령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89년 - 이종윤 사헌부집의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90년 - 이종윤 제주목사 부임
몰년 시기/일시 1495년연표보기 - 이종윤 사망
추모 시기/일시 1862년 - 이종윤 모현서당 배향
추모 시기/일시 1983년 - 이종윤 단구서원 배향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경주부 - 경상북도 경주시
외가|처가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지도보기
외가|처가 경주부 - 경상북도 경주시
부임|활동지 제주목 - 제주목사
유배|이배지 장기현 - 경상북도 포항시 장기면
묘소|단소 문거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문거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모현서당 -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단구리
사당|배향지 단구서원 -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단구리
사당|배향지 추모재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문거리 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경주
대표 관직 제주목사

[정의]

조선 전기 청송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가정(可貞), 호는 송와(松窩). 아버지는 함창현감(咸昌縣監)을 지낸 이형(李衡), 어머니는 직장동정(直長同正)을 지낸 권명리(權明利)의 딸 안동권씨, 할아버지는 첨서밀직사(簽書密直司)를 지낸 이정견(李廷堅), 증조할아버지는 장작감소감(將作監少監)을 지낸 이육(李毓), 부인은 김승우(金承友)의 딸 정부인(貞夫人) 경주김씨(慶州金氏)이다.

아버지 이형은 청송군의 속현(屬縣)인 안덕현(安德縣)[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에 정착한 권명리의 사위가 되면서, 청송 지역에 거주하게 되었다. 권명리는 손소(孫昭)의 아버지인 손사성(孫士晟)의 장인이다. 청송에서 성장한 이종윤은 김승우의 딸과 혼인함에 따라, 처가가 위치한 경주부(慶州府)[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시]로 이주하였다.

[활동 사항]

이종윤(李從允)[1431~1495]은 1462년(세조 8) 생원시·진사시 양시(兩試)에 모두 급제하였다. 1468년(세조 14) 식년시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고, 1469년(예종 1) 영창전참봉(永昌殿參奉)에 임명되었다. 1471년(성종 2) 예빈시경력(禮賓寺經歷)이 되었으나, 그해 임금에게 직언(直言)을 하다 장기현(長鬐縣)[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시 장기면]으로 귀양을 갔다. 1472년 귀양지에서 풀려나 내자시주부(內資寺主簿)에 올랐다.

1475년(성종 6) 예조좌랑, 1476년 예조정랑에 임명되었으며, 1482년(성종 13)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이 되었다. 이종윤은 사간원헌납으로 있으면서 부적합한 관리들의 임명을 반대하였고 내수사(內需司)의 장리(長利) 문제를 지적하였다. 또한 흉년에 회례연(會禮宴)을 거행하는 것과 정희왕후(貞熹王后) 초상 때 왕실에서의 불사(佛事) 거행을 반대하였다. 이후 이종윤은 1484년(성종 15)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과 제용감첨정(濟用監僉正), 1485년 봉상시부정(奉常寺副正), 1486년 사옹원부정(司饔院副正), 1487년(성종 18) 시강원보덕(侍講院輔德)을 차례로 지냈다. 1489년 사헌부장령과 사헌부집의에 임명되었는데, 이해 왜구들이 남쪽 해안을 침범하자 임금의 명을 받고 대마도주(對馬島主)를 통유(通諭)하였다.

1490년(성종 21) 제주목사로 부임하였다. 이종윤은 제주목사로 부임하면서 고을의 여러 폐단을 혁파하고 교화에 힘쓰는 등 많은 치적을 남겼다. 이에 임금이 여러 차례 하서(下書)하여 이종윤의 치적을 칭송하였다. 1492년(성종 23)에는 제주의 백성 양효손(梁孝孫) 등 3백여 명이 상언(上言)하여 제주목사 이종윤의 유임(留任)을 청원하였다. 이에 임금은 이종윤에게 당표리(唐表裏)를 하사하고 유임을 지시하였다. 이종윤은 1495년(연산군 1) 부임지에서 사망하였다. 당시 임금은 이종윤의 부인인 안동김씨의 청원에 따라, 이종윤의 의리를 우대하는 차원에서 정월분 녹봉을 지급해 상례(喪禮)를 치르라고 명을 내렸다.

[학문과 저술]

4권 2책의 문집인 『송와문집(松窩文集)』이 전한다.

[묘소]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문거리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1862년(철종 13)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단구리에 이종윤을 배향하는 모현서당(慕賢書堂)이 건립되었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철폐되었다. 1983년 모현서당은 이세기(李世基)·이천(李蒨)·이종윤을 배향하는 단구서원(丹邱書院)으로 중창되었다. 한편 묘소가 위치한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문거리에는 이종윤을 기리는 추모재(追慕齋)가 건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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