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423
한자 烽燧
영어공식명칭 Beacon Fire Station
이칭/별칭 봉수대(烽燧臺),봉화대((烽火臺)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최성국

[정의]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 분포한 조선시대의 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 시설.

[개설]

봉수(烽燧)는 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외적의 침입 등 변방의 긴급한 상황을 중앙이나 인근 군사 지역에 알리기 위해 설치한 통신 시설이다. 봉수에서 봉(烽)은 낮에 연기를 올려 정보를 전달하며, 수(燧)는 밤에 횃불을 통해서 통신한다는 의미이다. 수십 리의 거리를 두고 서로를 살피기 좋은 요지의 산 정상에 봉수대(烽燧臺)를 설치하여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신호를 보냈다. 현재 청송 지역에 남아 있는 봉수지는 진보면 고현리에 있는 남각산 봉수지후평리에 있는 신법산 봉수지가 있다.

[조선시대 봉수의 종류]

조선시대의 봉수 체계는 기간 봉수인 직봉(直烽)과 보조 봉수인 간봉(間烽)으로 구분되며, 직봉은 서울과 변방 국경 지역을 연결하는 선로로서 팔도에 모두 5개의 노선이 있었다. 직봉은 함경도 경흥~서울 간의 봉수선을 제1거, 경상도 동래~서울 간을 제2거, 평안도 강계~서울 간을 제3거, 평안도 의주~서울 간을 제4거, 전라도 순천~서울 간을 제5거라 하였다. 간봉은 직봉을 보조하는 봉수를 말하며, 간봉에도 직봉 사이에 중간 지점을 연락하는 장거리의 간봉과 국경 지대의 전선에서 직봉으로 보고하는 단거리의 간봉이 있다.

또한 봉수대의 설치 지역과 기능에 따라 경봉수, 내지 봉수, 연변 봉수로 나눈다. 경봉수는 전국의 모든 봉수가 집결하는 중앙 봉수로서, 서울 목멱산[남산]에 있는 목멱산 봉수가 해당한다. 내지 봉수는 경봉수와 연변 봉수를 연결하는 중간 봉수로 수적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연변 봉수는 지방의 해안 및 변경 지역의 제일선에 설치하는 봉수로, 내지 봉수와 달리 통신 기능뿐만 아니라 적의 침략 시 자체적으로 응전하고 방어하는 요새적인 기능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청송 지역 봉수]

조선시대 청송 지역의 봉수는 진보현(眞寶縣)남각산(南角山) 봉수 1개소가 설치, 운영되었다. 남각산 봉수는 경상도에서 올라오는 제2거[경상도 동래~서울 간]에 해당하였다. 남각산 봉수와 관련해 조선 전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진보현 편에 따르면 “남각산 봉수 동쪽으로는 영해부(寧海府)의 광산(廣山) 봉수에 응하고, 서쪽으로는 안동부(安東府) 임하현(臨河縣)의 약산(藥山) 봉수에 응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남각산 봉수 대신에 약산 → 신법산(神法山) → 광산으로 이어지는 봉수가 나타나 있다. 그리고 신법산 주석에다가 “『여람(輿覽)』에는 남각산, 『비국등록(備局謄錄)』에는 각산(角山)으로 기재되어 있다”라고 기록해 놓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을 통해 진보현의 봉수대가 조선 전기에는 남각산에 있었으나, 그 후 어느 시점에 신법산으로 이전했음을 알 수 있다.

[봉수터 현황]

문헌 속에 등장하는 남각산 봉수는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고현리에 해당하며, 신법산 봉수는 청송군 진보면 후평리에 있었다. 현재 남각산 봉수신법산 봉수 시설은 훼손되어, 그 흔적만을 대략 확인할 수 있다. 2006년 안동대학교박물관의 문화유적분포지도 작성 당시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된 내용에 따르면, 고현리 남각산 봉수지는 연대와 기단부가 일부 확인되어 봉수대의 규모나 형태를 짐작할 수 있었으나, 후평리 신법산 봉수지는 시설의 대부분이 유실되고 봉수 터만 확인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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