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석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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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으로 전국 각처에서 일본의 조선 침략 야욕을 타도하기 위한 의병들의 창의가 일어났다. 청송 지역에서도 의진들이 결성되어 1896년 3월 결성된 청송의진과 진보의진, 그리고 을사늑약 이후 경상북도 영천에서 결성된 산남의진에 참여한 청송 출신의 의병 및 1908년 2월경부터 청송 지역에서 의병장 서종락(徐鍾洛)이 지휘하던 청송 동부진과 의병장 남석구(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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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남석광(南錫光)[1881~1952]은 1906년 3월 남석우, 남석인 등과 함께 산남의진에 참여하였다. 1908년 2월 의병장 최세윤이 소부대를 단위로 한 유격전을 전개하자 청송으로 귀향하여 서종락부대에 참여하였다. 1910년 고와실전투에서 패한 뒤, 각처를 전전하며 은신 생활을 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이박(而珀). 188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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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남석구(南錫球)[1875~1911]는 1906년 3월 창의한 산남의진에 참가하였다가 1908년 3월 산남의진의 3대 대장 최세윤 휘하의 청송 서부 지역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응서(應瑞). 1875년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도평리에서 아버지 남광하(南光夏)와 어머니 김해김씨(金海金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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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남석우(南錫祐)[1871~1933]는 1906년 3월 산남의진에 참여하였으며, 1908년 2월경 편성된 남석구부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덕여(德汝). 1871년 9월 9일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중기리 327번지에서 아버지 남성하(南成夏)와 어머니 전주유씨(全州柳氏) 사이에서 4남 3녀 중 삼남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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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남석태(南錫台)[1879~1961]는 1896년 경상북도 영천 신녕의 화산의진(華山義陣)과 1906년 3월 산남의진에 참여하였다. 1908년 2월 의병장 최세윤이 소부대를 단위로 한 유격전을 전개하자 청송으로 귀향하여 서종락부대에 참여하였다. 1910년 청송 고와실전투 패전 후 은신 생활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본관은 영양(英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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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영천, 청송, 영일, 경주 및 경상남도 울산, 밀양 일대에서 활동한 항일 의병부대. 산남의진(山南義陣)은 1906년 3월부터 1910년경까지 경상북도 영천, 청송, 영일 일대를 중심으로 정용기(鄭鏞基), 정환직(鄭煥直), 최세윤(崔世允) 의병장이 이끌던 의병부대였다. 의진은 처음부터 관동(關東)을 향한 북상을 목표로 정하고 활동하다 1907년 9월 입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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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서종락(徐鍾洛)[1874~1940]은 1906년 3월 산남의진(山南義陣)이 결성되는 과정에서 청송 지역의 소모(召募)를 담당하였으며, 창의(倡義) 이후에는 1차 산남의진의 후봉장(後鋒將)에 이어 선봉장(先鋒將)으로 추대되어 활동하였다. 그 후에는 청송 지역 유격대를 맡아 활동하였다. 특히 제3대 대장 최세윤(崔世允)이 지역 분대를 중심으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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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경상북도 청송군 동부 지역에서 편성된 의병 부대. 청송동부진 서종락부대(靑松東部陣徐鍾洛部隊)는 최세윤(崔世允)의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지대(支隊)로서 1908년 2월부터 1910년경까지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활동하다 고와실전투(高臥室戰鬪)에서 패하고 해산되었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이에 반대하는 의병 항쟁이 전국에서 일어났다. 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