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후반에 편찬된 경상도 진보현의 읍지. 『진보현읍지(眞寶縣邑誌)』의 간행 경위는 알 수 없으나, 편찬 시기는 다음과 같이 두 시기로 추정하고 있다. 첫 번째로 환적조(宦蹟條)에 보이는 이수(李琇)의 체직 연도이다. 이수는 1783년(정조 7) 영남어사의 서계(書啓)로 인해 진보현감으로 임명되는 기록이 『정조실록(正祖實錄)』에 나온다. 그러므로 1783년 이후 읍지...
경상북도 청송 지역과 관련된 1945년 이전 편찬된 기록 자료와 서적. 오늘날 청송 지역은 조선시대에는 청송과 진보로 나뉘어 있었다. 청송은 고려 성종대에 청부현(靑鳧縣)으로 고친 이래, 1394년 청보현(靑寶縣)으로 개칭되었다. 1418년 세종이 즉위하자 소헌왕후의 친정 고향인 청보현을 인근 진보현과 합쳐서 청보군으로 승격시켰다. 이후 1424년(세종 5)에 다시 행정...
1602년 경상도 진보현에 건립되었던 사설 교육기관. 봉람서원(鳳覽書院)은 이황(李滉)[1501~1570]을 배향하기 위하여 1602년 경상도 진보현(眞寶縣) 옥동(玉洞)[지금의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병옥리]에 건립되었다. 봉람서원은 창건 당시 경상도 진보현의 관내에 있었다. 1602년(선조 35) 정탁(鄭琢)[1526~1605]이 쓴 「옥동서원기(玉洞書院記...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여러 대에 걸쳐 계속 살아오고 있는 성씨. 성관(姓貫)의 연원은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한 다음 전국의 군·현의 이름을 개정하고 개국공신을 책봉했던 940년(태조 23)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이전 고대국가에서 성씨는 왕족과 극히 일부 중앙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후삼국시대 성주(城主)·장군(將軍)·촌주(村主) 등의 신분을 지니면서...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 설치·운영되었던 조선시대 교통·통신 기관. 역원(驛院)에서의 ‘역(驛)’은 전통 시대에 중앙 정부와 지방 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설치한 교통·통신 조직의 일종이다. ‘원(院)’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출장하는 관원들을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人家)가 드문 곳에 둔 국영(國營) 숙식시설이다. 역과 관련되어 원...
1392년 조선 건국부터 1895년 갑오개혁까지 경상북도 청송 지역의 역사. 청송 지역은 고려 전기 이후 조선 전기까지 독자적인 군현(郡縣)을 구축하지 못하고 지역의 이합(離合)이 빈번한 상태에 있었다. 1423년(세종 5) 청부현(靑鳧縣)과 송생현(松生縣)을 합쳐 새로이 청송군(靑松郡)이 되면서 이로부터 진보현(眞寶縣)과 함께 두 고을로 나뉘어 별개의 지방행정단위로 조...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에 있는 조선시대 지방 국립 교육기관. 진보향교(眞寶鄕校)는 조선시대 진보현(眞寶縣) 유생들이 머물며 수학한 교육의 공간이자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를 지내는 제향의 공간이었다. 향교를 출입한 집단은 진보현의 재지세력(在地勢力)이었다. 그들은 교육과 제사를 위해 향교를 출입하면서 향론을 형성하는 등 향촌 자치 기구...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후평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봉수터. 후평리 신법산 봉수지(後坪里神法山烽燧址)는 봉수제가 운용되던 조선시대에 경상도에서 올라오는 제2거[경상도 동래~서울 간]에 해당하는 내지 봉수의 하나였다. 원래 진보면 고현리에 있는 남각산 봉수대[고현리 남각산 봉수지]가 1740년(영조 16)에 이곳으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봉수 체계는 기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