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1570
한자 朴春植
영어공식명칭 Park Chunsi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근대/일제강점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8년 01월 06일연표보기 - 박춘식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44년 10월 - 박춘식 조선회복연구단 활동
몰년 시기/일시 1987년 04월 14일연표보기 - 박춘식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4년연표보기 - 박춘식 대통령표창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45년 - 안동농림학교 조선회복연구단과 명성회 사건
출생지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진안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진안리
학교|수학지 안동공립농림학교 - 경상북도 안동시
활동지 안동공립농림학교 조선회복연구단 - 경상북도 안동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조선회복연구단 가입 활동

[정의]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박춘식(朴春植)[1928~1987]은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출신으로 안동농림학교 제10기 재학 중 조선회복연구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박춘식은 1928년 1월 16일 경북 청송군 진보면 진안리에서 태어났다. 안동농림학교 제10기 학생으로 입학하여 1944년 10월 말 조선회복연구단에 가입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은 군사 교육과 근로봉사를 강요당했을 뿐만 아니라, 학도병으로 징집되는 등 일제의 침략 전쟁에 동원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42년 같은 9기생인 황병기(黃炳基), 이갑룡(李甲龍) 등은 문학 모임인 상지회(尙志會)를 만들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방송을 청취한 후 일제의 패망을 예상하고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을 규합하는 활동을 펼쳤다.

1943년 8월 대구 동촌비행장 확장 공사에 강제 동원되었던 제8·9·10기 학생들이 공사 현장에서 비밀결사를 조직하기 위한 활동에 착수하여 이상룡(李相龍)의 손자이자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이대용(李大用)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 친척인 이승태의 도움으로 활동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1943년 일본 도쿄에서 유학하던 이정선(李貞善)이 귀국하여 안동농림학교 9회생 동기들을 규합하였다. 같은 해 4월 이들은 면학과 민족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명성회(明星會)를 조직하고 『여명(黎明)』이라는 교양 잡지를 발간하였다. 이때 박춘식은 10기생들과 함께 명성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44년 10월 일제가 학생들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수업 연한을 단축하여 졸업반의 졸업일을 앞당기자 이에 대응하여 조선회복연구단을 조직하였다. 조선회복연구단명성회는 독립 전쟁의 일환으로 일제의 후방을 교란시키는 계획을 수립하였으며, 안동 시내의 일본인 기관 및 요인의 습격 등을 투쟁 방침으로 삼았다. 박춘식을 비롯한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은 안동경찰서와 헌병파견대를 기습하여 무기를 탈취하고, 나아가 의성(義城)으로 이동하여 대구에서 출동하는 일본군과 일전을 벌인다는 거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1945년 3월 10일 소위 일본육군기념일(日本陸軍記念日)에 총궐기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거사를 추진하던 중 사전에 발각되고 말았다. 박춘식은 다른 단원들과 함께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으며 옥고를 치르다가 가석방되었다.

[상훈과 추모]

2004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