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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낳은 명당」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1368
한자 退溪-明堂
분야 구비전승·언어·문학/구비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
집필자 박다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09년 7월 24일 - 「퇴계 낳은 명당」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 경로당에서 조우재[남, 71세]로부터 임재해 등이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4년 - 「퇴계 낳은 명당」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7-20 경상북도 청송군’에 수록
채록지 신성리 경로당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 360-7 지도보기
성격 인물 전설
주요 등장 인물 퇴계 이황의 선조|사또
모티프 유형 명당 쟁취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에 전해 내려오는 퇴계 이황과 관련된 이야기.

[개설]

「퇴계 낳은 명당」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에 전해 내려오는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 관련 인물 전설이다. 퇴계의 선조가 명당에 조상의 묘를 썼기 때문에 퇴계 같은 훌륭한 학자가 나오고 좋은 집안이 될 수 있었는다는 내용이다.

[채록/수집 상황]

2009년 7월 24일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 360-7번지 경로당에서 조우재[남, 71세]로부터 임재해 등이 채록하였다. 또한 「퇴계 낳은 명당」은 2014년 12월 28일 간행한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7-20 경상북도 청송군’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퇴계 이황의 집안은 처음부터 높은 지체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퇴계 이황의 선조(先祖)는 아전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선생의 선조가 있는 곳으로 사또가 부임했다. 부임한 사또는 조상의 묘를 좋은 터에 쓰기 위해 명당을 찾아다니다가 적당한 장소를 발견한다. 사또는 퇴계의 선조에게 명하여 날달걀을 가져다가 명당 자리에 묻어 두고 닭이 울면 알려 달라고 일러둔다. 퇴계의 선조는 그 자리가 명당 자리임을 알고 삶은 달걀을 묻어 두고는 다음날 사또에게 가 닭이 울지 않았다고 고한다. 사또는 그 말을 곧이 믿고는 그 터에 조상의 묘를 이전하지 않았다. 퇴계의 선조는 몰래 명당 자리에 조상의 묘를 이전했다.

그런데 묘 안에 있어야 할 조상의 사체가 묻어 두면 다시 위로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두려움을 느낀 퇴계 선생의 선조는 사또에게 가 자신의 잘못을 고하고는 조상의 사체가 묘 위로 올라온다고 전했다. 그 말을 들은 사또는 자신의 헌 관복을 주어 묻어 주게 했다. 그러자 하늘에서 관복을 묻어 준 것을 알고 “야, 이제 큰 놈이 자리에 누웠구나”라고 여겨 그런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고, 퇴계와 같은 훌륭한 인물이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혹은 사또가 큰 곡식을 짚으로 싸서 묘 주위에 세워 두라고 일러주었다고도 전한다.

[모티프 분석]

「퇴계 낳은 명당」의 주요 모티프는 ‘명당’이다. 이 이야기는 한미한 집안이었던 퇴계의 선조가 명당을 찾아 조상의 묘를 쓰게 됨으로써 퇴계 선생 같은 훌륭한 학자를 배출하고 좋은 집안이 될 수 있었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연자의 구연 상황에서 “퇴계 선조가 고조할아버지인지 증조할아버지인지 누군지는 몰라도, 그 당시에는 진성이씨가 아전 집안이었다”라고 한 부분에서 ‘명당을 통해 신분 상승이 가능’했다는 전승자의 의식을 살필 수 있다.

또한 “명당에 조상의 묘를 썼으나 사체가 땅속에 있지 못하고 무덤 밖으로 나오자 관복을 함께 묻어 준다거나, 큰 곡식을 짚으로 싸 무덤에 세워 주어서 퇴계를 낳을 수 있었다”는 것을 통해 ‘명당이란 본디 명당에 합당한 큰 인물이 묻힐 때에야 명당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 는 의식 또한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이 이야기를 통해 신분 상승에 대한 갈망을 드러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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