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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장공의 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1354
한자 戶長公-墓
분야 구비전승·언어·문학/구비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집필자 권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0년 - 「호장공의 묘」 『청송군지』에 수록
관련 지명 호장공의 묘 - 청송읍 파천면 신기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전설
주요 등장 인물 호장공|원님|아전
모티프 유형 명당|인물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에 있는 호장 묘소에 관련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좋은 자리에 묘소를 쓰게 되어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 같은 훌륭한 후손이 나올 수 있었다는 명당에 관한 전설이다. 유사한 내용이 『한국구비문학대계』에 「퇴계 선조의 명당 차지하기」 등으로 수록되어 있다.

[채록/수집 상황]

1990년 6월 30일 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집하고 청송군에서 발행한 『청송군지』의 709~710쪽에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채록 경위는 확인되지 않는다.

[내용]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 북쪽 안 깊숙한 고을 산기슭에 묘가 하나 있는데, 이 묘지가 바로 퇴계 이황 선생의 6대조인 호장공(戶長公)의 묘이다. 이 묘소는 군내에서 제일가는 명당으로 지형이 흡사 암탉이 달걀을 품고 있는 모양이어서 호장공을 이곳에 모시게 되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옛날 퇴계 선생의 5대조 되는 이가 진보면 아전으로 있을 때 서울에서 부임해 온 풍수지리에 밝은 원님이 하루는 고을을 두루 돌아보다가 이 산의 지리를 자세히 살펴보고 나서 함께 간 아전에게 이르기를 달걀을 가지고 가서 저 산에 파묻어 두었다가 오늘 밤 자시[밤 11시~오전 1시]까지 기다려 닭이 우는 소리가 나는지 들어보고 오라고 하였다. 그 아전 또한 풍수지리에 조금은 깨우친 바가 있어 다른 생각을 품고 썩은 달걀을 가지고 가서 묻어 두었다가 닭이 울지 않아서 다시 파서 원님에게 가지고 왔다고 하였다.

원님이 즉시 그 달걀을 깨어 보니 달걀은 당연히 썩어 있었다. 원님은 약간 실망을 하였으나 그 이후 그 산에 대하여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근무하다가 2년 후 호조참판으로 승진이 되어 서울로 갔다. 원님이 떠난 지 얼마 후에 아전은 밤중에 남몰래 달걀을 가지고 가서 그 산에 묻어 두었다가 몇 시간을 기다렸다가 다시 파 보니 병아리가 되어 있었다. 아전은 이 산이 틀림없는 명산이라 확신을 하고 비록 원님을 속인 것은 죄스러웠으나 흐뭇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아전은 혼자만 알고 있다가 자기 아버지의 상사(喪事)를 당하여 그 산에 안장하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시체가 자꾸 땅 위로 솟아나왔다. 그래서 아주 깊이 파고 다시 묻었으나 하룻밤만 자고 나면 또 다시 땅 밖으로 나와 있었다. 아전은 할 수 없이 아버지의 시신을 이웃 산에 임시로 묻어 놓고 노자를 장만하여서 급히 서울로 올라갔다. 지난날에 모시던 호조참판을 찾아뵙고 옛날에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 줄 것을 빌고 찾아온 이유를 이야기했다.

호조참판은 그제서야 자기가 그 산 지리를 잘못 보지 않았음을 깨닫고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그 산은 너무나 터가 좋은 곳이라 도깨비들의 놀이터로 사용되는 곳일 것이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은 장사 지내기가 어려운 곳이다.”라고 하면서 벽장에서 헤어진 관복 한 벌을 내어 주면서 이르기를 “아버지의 시신에 이 관복을 입혀서 묻으면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전은 깊이 감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대감이 시키는 대로 하였더니, 과연 그 다음날부터는 시신이 땅 위로 솟아오르지 않았다. 이 일이 있은 후 6대 만에 퇴계 선생 같은 훌륭한 학자가 났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호장공의 묘」의 주요 모티프는 ‘명당’과 ‘인물’이다. 땅의 기운을 얻어 후손이 잘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상을 잘 보여 주는 유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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