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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막골의 유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1345
한자 草幕-由來
분야 구비전승·언어·문학/구비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집필자 권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0년 - 「초막골의 유래」 『청송군지』에 수록
관련 지명 초막골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금곡리 지도보기
성격 전설|지명 유래 전설
주요 등장 인물 윤씨 부모|아들
모티프 유형 부모에 대한 효성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금곡리 초막골의 유래에 관련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금곡2리에 있는 초막골의 지명이 전해지게 된 이야기이다. 가난하지만 부모를 정성껏 모신 효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0년 6월 30일 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집하고 청송군에서 발행한 『청송군지』의 703쪽에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채록 경위는 확인되지 않는다.

[내용]

초막골은 지금의 금곡2리이다. ‘초막골’이라 부르게 된 것은 이곳에 윤씨라는 효자가 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옛날에 숲이 우거진 초막골에 오막살이집 한 채가 있었는데, 그 집에는 부모님과 외아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아들은 효성이 지극하여 가난한 생활에도 부모님을 정성껏 봉양하였다. 춘궁기(春窮期)가 되어 양식을 구하기 어려워졌으나 아들은 험준한 산속을 찾아다니면서 칡뿌리와 나무 열매를 마련해서 부모님을 봉양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날이 갈수록 기력이 쇠진해져 마침내 병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병석에서 신음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아들은 쌀밥과 고기반찬을 드리지 못하는 불효를 생각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들은 약초를 캐다가 달여 드렸으나 아버지의 병은 점점 악화되었다. 어느 날 아들은 이웃 마을에 가서 양식을 구걸하여 집으로 돌아오다가 불길한 생각에 황급히 집으로 달려오니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시기 직전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유언을 하였다. “아들아, 하나밖에 없는 너를 너무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구나. 내가 죽더라도 너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후손들이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기를 바란다”고 하고는 임종하였다.

아들은 슬픔을 억누르고 아버지를 양지바른 산에 묻어 드리고, 그 무덤 옆에 초막을 지어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년 만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를 아버지 곁에 묻고 다시 3년을 지냈다. 아들은 6년 동안을 한결같이 예를 올리면서 부모님 산소를 지켰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아들이 효도한 그곳을 ‘초막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초막골의 유래」의 주요 모티프는 효도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부모에 대한 효도를 강조해 왔는데,「초막골의 유래」는 그것을 잘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청송군지』(청송군, 1990)
  • 청송관광(http://tour.cs.go.kr)
  • 청송군(http://www.c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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