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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1295
한자 松江里牧溪-洞祭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송강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창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0 - 당집 조성 및 신격 변화
의례 장소 목계마을 당집(목계 서낭당)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송강리 240-13 지도보기
성격 동제
의례 시기/일시 음력 1월 14일 자정|양력 8월 15일
신당/신체 당집|당목|돌탑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송강리 목계마을에서 음력 1월 14일 자정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마을 제사.

[개설]

청송군 파천면 송강2리 목계마을의 제당은 국도31호선 변에 조성된 목계솔밭에서 목계마을로 진입하는 곳에 있다. 목계마을의 제당은 당집, 당목, 조산으로 구성되었으며,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흗날 자정과 양력 8월 15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연원 및 변천]

목계마을 동제는 마을의 형성 시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목계마을은 고려 공민왕 때[1351~1374] 나옹대사(懶翁大師)[1320~1376]가 수정사(水淨寺)를 창건한 이후 수정동(水淨洞)이라 부르다가 약 200년 전 이인묵(李仁默)이 마을 앞 방풍림이 울창하고 맑은 물이 흐른다 하여 목계(牧溪)라 고쳐 불렀다.

원래 목계마을에서는 마을 입구의 삼두목(三頭木)과 마을 중앙에 소재한 수호신을 동신(洞神)으로 모시고 동제를 지냈다. 그런데 마을의 권씨 성을 가진 사람에게 현몽한 산신의 요청이 있은 이후로 1940년부터 당집을 지어 동제를 지내 왔다. 이에 대해서는 송강리안동권씨(安東權氏) 문중이 소장한 『현몽록』에 기록되어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목계마을의 제당(祭堂)은 국도31호선에서 마을로 진입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당집 주위에는 기둥과 철사로 울타리를 둘렀으며, 그 안에는 당목과 십여 그루의 나무가 있다. 당집의 전면에는 유래를 기록한 표지판과 비석을 세워 두었다. 당집에는 돌과 기와로 된 높이 1.2m 정도의 담이 둘러싸고 있다. 당집은 목조 건물을 흙벽으로 감싸고 기와지붕을 얹은 형태이며, 높이 2.5m, 가로와 세로는 한 칸이다.

당집 내부에는 당집을 조성하기 이전 마을의 여러 곳에 있었던 수호신을 상징하는 세 개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동제에 쓰이는 돗자리와 제기가 있다. 당집과 담 사이에는 음복에 쓰였던 술독 등이 놓여 있다. 당집 앞에 위치한 돌탑은 높이 약 1m, 지름 약 2.5m의 원형으로 돌을 쌓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힌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제사를 지낸 후 돌탑 주변의 나무 곁에 음식을 묻는다.

[절차]

목계마을의 동제는 음력 정월대보름과 양력 8월 15일에 지낸다. 과거에는 깨끗하고 무탈한 사람을 제관으로 선정하고 금기(禁忌)를 수행했으나, 현재는 동장이 제관과 도가[동제 때 사용할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의 역할을 동시에 맡고 있다. 설부터 보름까지 동제를 준비하는 기간에는 당집에 사람을 들이지 않으며, 근처에 차를 주차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동제 전에는 울타리와 조산(造山)에 금줄을 치며, 제관은 몸을 깨끗하게 관리해 두어야 한다. 제물(祭物)은 제관 부부가 장에 가서 구입한다. 제물로는 문어, 돼지고기, 포 등이 사용된다. 정월대보름날에는 제수(祭需)를 많이 장만하여 정성을 기울이지만, 양력 8월 15일에는 간소하게 준비한다. 제사에 사용한 음식은 조산 주변 나무 곁에 구덩이를 파서 묻는다. 과거에는 동제와 음복에 이용할 술을 직접 빚었으나, 최근에는 구입한 것을 사용하고 있다. 제의는 독축(讀祝)을 포함한 유교적 방식으로 지내고 있다.

[현황]

목계마을 동제의 제의와 제관 선정 방식 등은 간소화되었다. 그러나 당집을 포함한 제당 주변을 잘 정비하는 등 마을 사람들이 동제를 지속하고자 하는 전승 의지는 높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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