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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1027
한자 大典寺
영어공식명칭 DaeJeonsa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공원길 226[상의리 442-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병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672년 - 대전사 의상대사 창건설
문화재 지정 일시 2008년 7월 28일 - 청송 대전사 보광전 보물 제1570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04년 10월 14일 - 대전사 보광전 석조여래삼존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56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04년 10월 14일 - 대전사 명부전 지장삼존 및 시왕상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69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04년 10월 14일 - 대전사 명부전 지장탱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68호로 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76년 - 대전사 번와 및 단청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8년 - 대전사 봉향각, 수선당, 회연당 신축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5년 - 대전사 명부전, 산신각 이전 및 신축
현 소재지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공원길 226[상의리 442-1]지도보기
성격 사찰
창건자 의상대사|낭공대사|눌옹
전화 054-873-2908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상의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

[개설]

대전사(大典寺)주왕산에 있는 고대 사찰로, 통일신라시대 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의 말사이다.

[건립 경위 및 변천]

대전사 창건에 관한 명확한 기록은 없이 통일신라시대 672년(문무왕 12)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설, 892년(진성여왕 6)에 낭공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설, 그리고 919년(고려 태조 2)에 눌옹(訥翁)이 창건하였다는 설이 전하고 있다. 대전사 절 이름은 나옹화상 혜근(惠勤)이 붙였다고 한다.

한편, 『주왕내기(周王內記)』에는 주왕산대전사의 명명과 관련된 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중국 당나라의 주도(周鍍)라는 사람이 스스로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로 쳐들어갔다가 크게 패하고 신라로 건너와 주왕산에 숨었다. 이에 당나라가 신라에 주왕을 없애달라고 부탁을 하자 마일성 장군 오형제를 보내 주왕의 무리를 죽였다. 그 뒤부터 주왕이 숨었던 산을 주왕산이라 하고, 절은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大典道君)의 이름을 따서 대전사라 했다고 한다.

대전사라는 사찰 명칭이 기록으로 가장 먼저 확인되는 자료는 1976년 보광전 중수 과정에서 발견된 1672년의 「대전사법당상량문(大典寺法堂上樑文)」이다. 상량문을 제외하고 대전사라는 명칭이 등장하는 가장 이른 기록은 『영남일기(嶺南日記)』[1708년]이다. 이후 『여지도서(輿地圖書)』, 『청송부읍지(靑松府邑誌)』, 『범우고(梵宇攷)』 등 18세기에 출간된 각종 읍지류에 대전사가 기록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16세기 기록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대전사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기록에 따르면, 이곳의 사찰은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 세종 비 소헌왕후와 명종 비 인순왕후를 배출한 공로로 대전사가 왕실의 원찰로 지정되어 국가적 보호를 받았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명대사 유정(惟政)[1544~1610]이 승군을 훈련시키기도 하는 등 번성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전사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전소되었고, 「대전사법당상량문」에서 확인되듯이 다시 중창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대전사법당상량문」에 건물 이력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때 상량은 중수보다는 창건 상량문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는 억불정책의 하나로 새로운 사찰을 창건하지 못하도록 국법으로 정하였는데, 다만 옛 절터에 중창하는 경우는 허용했다고 한다. 따라서 중창을 빙자한 새로운 사찰 창건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지금의 대전사 터에 대전사가 건립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현재 대전사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은 보광전 앞에 있는 금강탑인데, 금강탑은 쌍탑으로 조성 시기가 고려 말부터 조선 초 사이로 추정되며, 이에 따라서 대전사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사찰이 존재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후 대전사소헌왕후와 인순왕후의 원찰이 되면서 사세(寺勢)를 누렸는데, 『주왕산지(周王山志)』[1833년]에 의하면, 대전사에는 5방 3불 3루각이 있었다고 한다. 5방은 설선당·탐진당·수월당·관음전·한산전이고, 3불전은 보광전·극락전·명부전, 3루각은 용화루·범종각·응향각이다.

대전사는 19세기 말엽에 이르러 쇠락하였다. 급기야 1884년부터 1894년까지 10년 동안 세 차례나 조정으로부터 완문(完文)을 받아 잡역 등을 면제받아 사찰을 지탱하는 처지가 되었던 것이다. 『방산이방헌선생문집(方山李邦憲先生文集)』에 의하면, 대전사는 쇠락하여 단지 2개의 불당만이 존재하였다고 하는데, 그 두 불당이 보광전과 명부전이라 추측된다. 1976년에 보광전은 중수 및 단청을 하였으며, 1988년에 봉향각, 수선당, 회연당을 신축하였고, 1995년에는 명부전과 산신각을 이전·신축하였다. 현재 대전사는 보광전, 관음전, 응진전, 탐진당, 심검당, 해우소 등 12개의 전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활동 사항]

대전사청송불교사암연합회 회원으로 ‘사랑의 쌀’ 나눔 행사를 매년 실시하고 있으며, 2016년부터 보광사, 수정사, 청송포교당 등과 청송불교대학을 열어 불자들의 불교 공부를 지원하고 있다. 2017년에는 산사 음악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대전사의 전각 배치는 주불전인 보광전이 기암을 등지고 가운데 배치되어 있고, 그 앞쪽에 삼층석탑이 복원되어 있으며, 오른쪽[남쪽]으로는 명부전이 나란히 앞을 보고 있다. 그리고 보광전과 명부전 사이에 뒤로 약간 물린 지점에 산령각이 배치되어 있다. 보광전의 왼쪽[북쪽]에는 2017년 현재 수리 중인 봉향각과 승당의 역할을 하는 수선당이 있고, 봉향각 앞쪽에 보광전과 나란히 관음전이 배치되어 있다.

사찰 입구 오른쪽에 명부전을 마주보는 방향으로 종무소로 사용하는 탐진당이 있고, 직각 방향 앞쪽으로 제2탐진당과 응진전이 옆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그 뒤쪽에 대중방 역할을 하는 심검당이 배치되어 있다. 또 사찰 입구 왼쪽으로 행랑채로 사용되는 회연당이 배치되어 있고, 그 뒤쪽 멀리 떨어져서 해우소가 배치되어 있다. 한편, 관음전 왼쪽으로 돌아가면 경월대사 등 4기의 부도가 소담하게 서 있다. 현재 대전사 소속 승려는 3명이고, 신도 수는 500여 명 정도이다.

[관련 문화재]

대전사에는 1672년(현종 13)에 중창되고 보물 제1570호로 지정된 청송 대전사 보광전이 있고, 보광전에는 1685년(숙종 11)에 조성되고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56호로 지정된 대전사 석조여래삼존상이 안치되어 있다. 또 명부전에는 1703년(숙종 29)에 조성되고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69호로 지정된 대전사 지장삼존 및 시왕상이 안치되어 있으며, 1806년(순조 6)에 조성된 대전사 명부전 지장탱화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68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6월 17일에는 청송 대전사 영산회상도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1.07.07 현행화 [관련 문화재] 2021년 6월 17일에는 청송 대전사 영산회상도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2019.04.09 행정지명 현행화 부동면 -> 주왕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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