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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목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846
한자 李守睦
영어공식명칭 Lee Sumo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권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7년연표보기 - 이수목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7년 - 이수목 신돌석의진에 입진
몰년 시기/일시 1909년연표보기 - 이수목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6년연표보기 - 이수목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진보군 동면 화매동 -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화매리
활동지 경상북도 영덕군
활동지 경상북도 영양군
성격 의병
성별

[정의]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개설]

이수목(李守睦)[1887~1909]은 1907년경 신돌석(申乭石)의진(義陣)에 입진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8월 11일 경상북도 진보군 동면에서 영덕경찰서 순사대에게 붙잡혀 압송되던 도중 피살되었다.

[활동 사항]

이수목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화매리 출신이다. 1905년 을사늑약과 1907년 고종황제의 강제 퇴위 및 한국군 강제 해산 등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책동이 극에 달하자 이에 격분하여 1907년경 신돌석의 영해의진(寧海義陣)에 투신하였다. 이후 경상북도와 강원도 산간 지대, 동해안 일대를 오르내리며 관아를 습격하여 무기와 군수품을 확보하는 등 여러 활동을 펼쳤다.

1908년 12월 12일 신돌석 의병장이 영덕군 지품면 눌곡(訥谷)에서 김상렬(金相烈) 형제들에게 피살당하는 참변이 생겼다. 하지만 이수목은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1909년 8월 이수목은 동지들과 함께 일본군 토벌대의 추격을 피해 경상북도 진보군 동면 백자동(柏子洞)으로 피신하여 머물렀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를 탐지하고 기습 출동한 영덕경찰서 소속 일본 순사대에게 같은 해 8월 11일 김종달(金鍾達), 서고락(徐高洛) 등과 같이 체포되었다. 이수목은 이들과 함께 경찰서로 압송되던 중 경상북도 영덕군 동면 주동(酒洞) 산속에 이르렀을 때 탈주를 시도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피살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6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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