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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683
한자 趙遵道
영어공식명칭 Cho Jundo
이칭/별칭 경행(景行),방호(方壺)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76년연표보기 - 조준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27년 - 조준도 정묘호란 때 창의사 활동
활동 시기/일시 1627년 - 조준도 의영고주부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64년 - 조준도 통정대부 부호군 임명
몰년 시기/일시 1665년연표보기 - 조준도 사망
거주|이주지 청송도호부 - 경상북도 청송군
부임|활동지 풍수당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대곡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금곡리 지도보기
성격 학자
성별
본관 함안
대표 관직 통정대부 부호군

[정의]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경행(景行), 호는 방호(方壺).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조지(趙址), 어머니는 습독(習讀)을 지낸 권회(權恢)의 딸 증(贈) 정부인(貞夫人) 안동권씨(安東權氏)이며, 5형제 중 넷째이다. 형 조수도(趙守道)·조형도(趙亨道)·조순도(趙純道), 동생 조동도(趙東道)가 모두 현달하였다. 조준도는 재종숙으로 부사직(副司直)을 지낸 조개(趙介)의 양자로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부사직(副司直)을 지낸 조정언(趙庭彦), 증조할아버지는 의금부경력(義禁府經歷)을 지낸 조연(趙淵)이다. 조준도의 첫 번째 부인은 송복영(宋福榮)의 딸 증(贈) 숙부인(淑夫人) 야로송씨(冶爐宋氏), 두 번째 부인은 주부(主簿)를 지낸 김안계(金安繼)의 딸 증 숙부인 의성김씨(義城金氏), 세 번째 부인은 봉사(奉事)를 지낸 최두(崔㞳)의 딸 증 숙부인 월성최씨(月城崔氏)이다.

[활동 사항]

조준도(趙遵道)[1576~1665]는 10세 때 김언기(金彦璣)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으며, 성장해서는 정구(鄭逑)·장현광(張顯光)·정경세(鄭經世) 등 여러 학자들에게 수학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창의사(倡義使)로 활동하였는데, 이때 조준도는 군수 충당을 위해 사재를 털어 조(租) 300석을 기부하였다. 이 소식이 정부에 알려졌고, 이식(李植)의 건의로 의영고주부(義盈庫主簿)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곧 관직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학문 연구에 주력하였다.

고향으로 내려온 조준도는 어머니 안동권씨 묘소 인근에 풍수당(風樹堂)[지금의 방호정(方壺亭)으로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에 있음]을 세웠다. 조준도풍수당을 거점으로 둘째 형 조형도를 비롯해 이준(李埈), 권익(權翊), 신집(申輯) 등의 인사와 교유하며, 평생 학문 연구에 주력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고을 선비들과 의병을 일으키려고 하였으나,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비보를 듣고 북쪽을 향해 통곡한 뒤 그만두었다.

1664년(현종 5) 영의정 정태화(鄭太和)의 건의로 수직(壽職)을 받았다. 원래 80세 이상의 노인은 수직을 내려 우대하는 법이 있었다. 이에 조준도의 자제들도 소를 올려 수직을 청원하려 하였지만, 조준도가 이를 금지하였었다. 그래서 조준도는 89세가 되어서야 정부에 알려지게 되었고, 정태화의 건의로 통정대부(通政大夫) 부호군(副護軍)에 임명되었다.

[학문과 저술]

문집으로 5권 2책의 『방호문집(方壺文集)』이 전한다. 『방호문집』에는 이언적(李彦迪) 문묘(文廟) 배향 상소 때의 「소회일록(疏會日錄)」, 정묘호란 때의 「정묘록(丁卯錄)」, 병자호란 때의 「정축일록(丁丑日錄)」, 한양에 머물 때의 「유경일록(留京日錄)」과 같은 일기체의 글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당시 생활상을 살펴보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묘소]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거대리 대곡(大谷)에 묘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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